글 - 칼럼/단상2015. 2. 25. 11:40

이선애의 <<강마을 편지>>를 받아들고

 

 

 

 

 

 

 

 

 

해군사관학교에서 전역한 뒤 자리 잡은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당시 그곳엔 국어 선생님의 꿈을 갖고 몰려 든 지역의 인재들로 그들먹했다. 마산은 이은상, 이원수, 김수돈, 조향 등 별처럼 많은 문인들이 거쳐 간 문향이었다. 해동 최고의 문장가로 꼽힌 최치원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월영동 캠퍼스, 그 발아래 펼쳐진 합포만, 그리고 합포만 건너편에 앉아있던 돝섬 등이 캔버스처럼 한 세트로 엮여 있었다. 가끔씩 길 잃은 갈매기들이 연구실 창문으로 날아와 기웃거리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들여다보던, 기가 막힌 에코 유토피아이기도 했다.

 

월영동을 떠난 뒤 십년쯤 되었으리라. 내 고향 태안으로 시집 와 멋지게 살고 있는 제자 김난주 시인을 통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이선애였다. 월영동에서 만난, ‘작고 말 없던 문학소녀이선애. 가끔씩 내 홈피의 게시판에 강마을 편지를 올렸고, 경남 의령의 시골마을에 피어나던 풀꽃들을 말려서 보내주기도 했다. 그가 꽃 소식을 보내올 때마다 그 향내 속에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향수를 달랠 수 있었다. 월영동의 연구실에 앉아 녹차를 마시며 합포만을 내려다 볼 때의 내 마음처럼, 처음 그의 글은 담담하고 잔잔하기만 했다. 횟수를 더해갈수록 담담함과 잔잔함옷소매를 당기는 매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간결하면서도 깔끔한 문장은 더더욱 좋았다. 그래서 한동안 강마을 편지가 배달되어 오지 않으면 은근히 궁금해지고,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혹시 이선애가 강마을에서 북적대는 도시로 옮겨간 것은 아닐까’, ‘요즘 중고등학교 교단이 만만치 않다던데 글쓰기를 그만 둔 거나 아닐까’ ‘혹시 몸이 아픈 건 아닐까등등. 별별 요사스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긴 세월. 목소리 한 번 들려주지 않은 그였다. 의령의 남강에서 길어 올린 청수 같은 글 몇 단락으로 할 말을 대신하던 그였다. 이역만리 해외에서도 버튼만 누르면 이웃집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는 요즈음이다. 맑은 글로, 말린 들꽃으로 수다를 대신할 수 있다니! 정녕 이건 시대를 거스르는 기적이다. 진정으로 아껴야 할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이라면, 그들 사이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석가모니가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연꽃을 들어보이자, 그 가운데 가섭만이 홀로 빙그레 웃었다지 않는가. 그래서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란 말이 나왔고. 원래 그는 나의 제자였으나, 의령 남강 가에서 이십년 가까이 수도했으니, 그와 내가 자리바꿈할 때도 되었으리라. 그래서 그가 자신의 마음을 담아 들어 보이는 말린 들꽃에 내 미소로 답하노라. 부처의 연꽃에 미소로 답한 그 옛날의 가섭처럼.<2005. 2. 24.>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2. 21. 16:12

 


Fishing in the Lake Boomer

 

 

 
 YB speaking to her fish friends in aquarium

                                                                   

 

 

 긴긴 설 명절 내내 서울을 지키다 보니 좀이 쑤셨던 걸까.

점심을 사겠다는 핑계로 밖에서 영빈(永彬)을 만난 것도 그 때문. 이제 막 돌 지낸 녀석의 말하려 애쓰는 모습이 신기하다. ‘할아버지를 불러보라 애타게 주문해도 어렵사리 내놓는 발음은 한결같이 하메이~’. ‘할아버지 어디 있나?’라는 물음에 손가락으로 정확히 짚어내긴 하는데, 발음은 여전히 하메이. 어찌어찌 할머니까지는 성공했는데, 네 음절을 뱉어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인가. 네 음절 발음을 주문하는 성화에 가까스로 세 음절을 뱉어내곤 녀석도 쑥스러운지 웃음으로 눙친다. 인간이 말을 익혀가는 모습을 녀석에게서 새삼 흥미롭게 발견한다.

 지금의 녀석처럼 호사스럽진(?) 않았지만, 내게도 저렇게 말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문득 녀석의 부모를 보니, 재롱부리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솜털처럼 아련히 남아 있는 것 아닌가벌써 아버지의 포스를 갖춰가고 있는 모습. 그동안 내게도 네게도 시간은 여지없이 흘렀구나!     

 

                                                ***

 

 모두들 잠들어 사방이 적막할수록 내 의식은 또렷해진다. 책상에 앉으니 당장 생각을 굴려야 할 일들과 밀린 글들이 산적해 있지만, 여러 갈래로 마음이 부서진다.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먹고 사는 문제 뿐 아니라, 이제 어떤 마음과 표정, 태도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갓난아기와 젊은 아이들이 뒷물이 되어 나를 밀어내고 있는데, 방향을 제대로 잡고 밀려가는 앞물의 모습을 아름답게 갖추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리라. 세대마다 다르기 마련인 그 문제를 공자 문하의 똑똑한 제자들도 깨달았던 것일까. 그 점이 궁금한 듯 선생께 여쭈었다. <<논어>>공야장(公冶長)26번째 대목이 바로 그것. 자로(子路)수레와 말과 가벼운 가죽옷을 친구와 함께 쓰다가 망가져도 원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으며, 안연(顔淵)남에게 착하게 했노라 자랑하지 않고 남에게 공치사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자 공자는 늙은이들이 편안하게 여기고, 친구들이 믿음직하게 여기며, 젊은이들이 기억하고 그리워해주었으면 한다(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고 말했다.

 

 바로 그것이다. 바른말 한답시고 가까이에 있는 부모와 주변 어른들의 마음을 편안치 못하게 한 일, 가까운 친구들을 살갑게 대하지 못해 믿음을 주지 못한 일, 그런 가운데 아름답지 못한 말을 무사려하게 내뱉어 주변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 일 등등. 내 아픈 곳을 어찌 이리도 정확히 짚어냈을까. 혹시 공자도 만년에 이르러서야 모든 문제의 근원이 가까이에 있음을 깨달았던 것일까.

 

 가까운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편안하고, 믿고, 그리워하게 만들려면어떻게 해야 할까. 법대로 원칙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다. 나이 든 자의 여유와 너그러움, 그리고 스스로 즐거워함으로써 남들을 즐겁게 하는 것만이 해결책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게 세상이다. 정치도 마찬가지. 틈만 나면 신뢰와 원칙을 언급하는 박 대통령은 왜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 긴긴 설 연휴에 혼자 구중궁궐을 지키시는가. 혹시 대통령의 언행이 나이 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친구들을 미덥지 못하게 하며, 어린 사람들을 소원(疏遠)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섭공(葉公)이 정치를 묻자 공자는 가까이에 있는 자가 즐거우면,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몰려온다(近者悅 遠者來)”고 했다. 굳이 대통령까지 갈 필요도 없다. 주변 사람들과 즐겁게 살아가는 것만이 세상의 무대에서 사라질 때까지 외롭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임은 나 같은 필부(匹夫)들도 마음에 새겨야 할 삶의 진리이리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2. 20. 04:11

갑오년 그믐날 밤의 단상: 이완구 총리를 보며

 

 

 

복잡한 것 같지만 단순한 게 인생사다.

많은 관계들이 얽혀 여러 의미들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 한 두 가지 개념의 공약수로 수렴되는 것이 세상사다욕망과 허무는 내 경험으로 파악한 인간사의 두 공약수다. 위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서지지 않는 성채(城砦)가 어디 있으랴! 잘 되었든 못 되었든 욕망으로부터 기획되거나 이루어지는 것이 인간만사이며, 성서의 말씀대로 창대해지지 못한 채그 끝은 허무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 세상사다.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작품 큰 바위 얼굴이 있다. 어머니로부터 앞 산의 '큰 바위 얼굴'과 똑같이 생긴 위인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설을 전해 듣고 이 이야기를 철썩 같이 믿으며 그를 기다려 온 어니스트(Ernest). 부자장군정치가시인 등이 거쳐 갔지만, 그 중에 큰 바위 얼굴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지독히 평범한 촌부 어니스트는 자애와 진실사랑을 설파하는 설교자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서 큰 바위 얼굴을 발견하지만, 어니스트는 여전히 위대한 인물을 기다린다는 것이 작품의 요지다.

 

이 늦은 밤, 사람들의 이목을 한껏 끌어올렸다가 바닥에 내팽개친 이완구란 인물을 생각해 본다. 나를 포함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를 난국 구제의 해결사쯤으로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누구도 수완을 보여주지 못하는 작금의 문제적 상황을 그만은 어느 정도 해소해 내리라 보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며 흠결이 나타나다 못해 급기야 '조무래기 기자들' 몇을 앉혀놓고 힘자랑하다가 들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누구의 표현대로, 인간 최후의 자존심마저 팽개치고 허겁지겁 재상의 자리에 기어오른그였다. 정작 그가 아니면서도 그의 부끄러움을 내 부끄러움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같은 욕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의 참모습을 일찌감치 깨닫게 해준 그가 고마운지도 모른다. 그 점 때문에 그를 함부로 미워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가 그렇게 헛발질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한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으로 남아 한동안 우리를 더 농락했을지도 모른다. 국회에서 고만고만한 인물들과 어울리면서 기고만장하던 그의 모습에 잠시 우리는 판단력을 잃었던 것일까. 그러나 그 역시 욕망의 덩어리였고, 그 욕망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그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으니, 다행스런 일인가. 이렇게 잠시나마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 이완구는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다. 그래서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다시 허무에 직면하는 것이다.

 

욕망과 허무! 정치인종교인학자사회운동가 등 우리 시대 리더의 직함을 달고 있는 인물들이 바야흐로 욕망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욕망의 운명적인 더러움에 빠져 있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부끄러움을 모르니, 허무를 인식할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대다수 민초들은 부끄러움과 허무감에 몸부림친다.

 

새해 을미년도 그런 허무와 부끄러움의 연속일 것이다. 욕망과 허무의 삐에로가 되어 무대에 오른 이완구 총리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Posted by kicho
알림2015. 2. 10. 07:32

등재후보지 <<한국문학과 예술>>15집에 게재할 논문을 공모합니다.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에서는 한국문학과 예술 전문학술지인 <<한국문학과 예술>> 15집에 게재할 논문을 아래와 같이 공모합니다. 사계 연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다음 ◈



1. 공모 분야: 한국의 문학과 예술 및 문화 전반에 관련된 분야로, 독창적인 연구결과이거나 그러한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논문을 대상으로 합니다.
(현대와 고전문학을 포함한 국문학, 한문학, 전통시대의 음악ㆍ무용ㆍ미술 등 문화예술을 대상으로 하며, 학제 간 연구결과도 환영합니다.)


2. 투고 방법

① 투고하실 분은 논문투고신청서, 연구 윤리 확약서, 논문을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편집위원회에 다음과 같이 전자우편으로 제출하셔야 합니다.
o 전자우편: ktla@ssu.ac.kr(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② 논문은 200자 원고지 150매 이내(국문요약, 영문초록, 참고문헌 포함)로 하며, 자세한 내용은  <<한국문학과 예술>>의 논문 작성 형식을 참조해 주십시오.

투고 시 투고자의 성명, 소속, 주소, 연락처(전화번호 및 이메일 주소) 등이 기재된 신청서를 별도의 파일로 첨부하셔야 합니다.(첨부 참조).


3. 발간 일정

o 논문 투고 마감: 2015년 2월 21일(토) 24:00

o  <<한국문학과 예술>> 발간일(연 2회)

- 제15집 : 2015년 03월 31일(발간예정)
- 제16집 : 2015년 09월 30일(발간예정)



4. 기타

o 한국연구재단 KCI 등재후보지
o 심사료 및 게재료 없음
o 투고일로부터 20일 안에 심사결과 공지
o 게재본, 별쇄본 무료송부


5.  <<한국문학과 예술>>15집의 논문투고에 관한 문의

o 전화 : 02-820-0846, 010-6799-4670
o E-mail : dull-baram@hanmail.net
o 우편 (우)156-743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로 369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한국문학과 예술>> 편집위원회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커밍홀 311호)
02-820-0846 / 02-820-0326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