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6. 7. 5. 08:50


앙증스런 대회 입간판

 

 

 


CSUN 입구에서

 

 


학술대회장에 들어서며

 

 

 

LA, 그 바벨탑의 체험

-2016 ASPAC 참가기-

 

 

 

 

 

지난 달 10-12일(미국 날짜). 2016 ASPAC(Asian Studies on the Pacific Coast) 학술대회 참석 차 LA 인근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노스리지 캠퍼스(CSUN: California State University, Northridge)에 다녀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넓은 캠퍼스에 갖가지 사막 식물들이 삶의 원기를 방출하는 곳. 주렁주렁 노랑 오렌지들이 캠퍼스 도처에 향을 내뿜고, 하늘에 닿을 듯한 야자수들이 가로수로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 이면의 문제들이야 그곳이라고 없을까만, 외관만으로는 말 그대로 에콜라지컬 유토피아(ecological utopia)’였다. 캠퍼스 전체가 식물원에 가까운 컨셉이었지만, 학술행사가 열린 이스트 컨퍼런스 센터(East Conference Center)’ 앞의 버태니컬 가든(botanical garden)’은 특별한 공간이었다. 이번 행사는 그 숲 한 가운데서 미국인들과 아시아인들이 함께 어울린 학술의 난장이었다.

 

캠퍼스 하우징의 한 복판에서 인도의 젊은 인류학자 프라빈 박사(Dr. Pravin S. Khandagale/School of Hyderabad, India)를 룸메이트로 만났고, 또 다른 인도의 법학자 쿠마르 교수(Dr. Saroj Kumar Dhal/Symbiosis International University, India)와 중국학자 왕 교수(Dr. Wang Wuyun/Gifu City Women’s College, Japan), 호주 학자 앤드류 선생(Andrew De Lisle/PhD Candidate/School of Culture, History and Language, College of Asia and the Pacific) 등 무수한 외국학자들을 같은 공간에서 패널리스트이자 청중으로 만났다. 유럽계 미국인들, 아시아계 미국인들, 아시아인들이 두루 섞여 이루어진, 그들 말로 한시적인 용광로(a temporary melting pot)’였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태국어, 인도어 등으로 각자의 모국어는 달랐으나, 발표장이나 식당에서는 순식간에 영어로 바뀌어 나오는 특이한 공간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룸메이트 프라빈과 하우스메이트 쿠마르의 인도 영어(Indian English)’는 얼마나 특이한가. 그들의 영어에 적응되기까지 몇 시간은 그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서 답답했다. 내가 듣기에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인도 말과 영어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사람들이 인디언 잉글리쉬(Indian English)를 대표적인 혼합영어(pidgin English)로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물론 콩글리쉬(Korean English)’보다야 소통의 면에서 훨씬 나은 건 사실이지만.

 

와스프(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즉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백인 중에서 특히 잉글랜드 출신의 영국계, 기독교 중 신교도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나 그에 근접하는 백인들이 주류사회의 정점을 형성하는 미국사회에서 그 주류사회의 오만(pride)과 유색 이민자들의 영어 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 with English)언어(영어) 제국주의(linguistic imperialism)국가 미국의 두드러진 표지(標識)’이자 이민자들에겐 넘을 수 없는 장벽이라는 점, 이창래 작품(Native Speaker)의 주제를 이루는 주인공의 깨달음도 결국은 이런 장벽을 피하고자 한 지점에서 얻게 되었다는 점 등이 내 발표의 핵심이었다.

 

작품의 주인공이 뉴욕이나 LA를 로마에 이은 바벨탑으로 규정한 것도 그 도시들이 신의 뜻을 받아 지은이상적 공간은 아니라는 점, 그래서 그런 도시들의 마이너리티들은 결국 썩은 내 나는콤플렉스를 청산하지 못한 채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을 아프게 확인한 것이 이창래의 본뜻이었으리라. 이민자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주류 출신 아내 릴리아가 이민자들의 모국어로 하나하나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모습을 보며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는 작품의 결말도 알고 보면 긴 좌절과 방황을 거친주인공의 현실적 타협의 소산에 불과한 것 아닌가. 어차피 영어가 모국어 아닌이민자들이 주류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는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 옛날 바빌론처럼 이 새로운 바벨탑들이 무너질 가능성 또한 없을 것이다. 소설이 현실을 오롯이 담아내는 그릇임을 인정하면서도 결말은 얼마간 이상이나 추상일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의 벽을 깨기가 현실적으로어렵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다양한 인종들의 용광로(melting pot)가 지금의 미국인데, 당신의 그런 부정적인 결론은 비현실적이거나 부정확하다고 보지 않는가라는 백인 학자의 질문에, ‘사실 내가 비관주의자일지는 모르지만, 멜팅팟은 비현실적 상징(idealistic symbol)이거나 현실을 호도하기 위한 은유(metaphor for glossing over the reality)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발표 마지막 날. 만찬장에서 만난 인도계 미국 노학자 람 교수(Dr. Ram M. Roy/Emeritus Professor of International Relations & Political Science, College of Social and Behavioral Sciences, Cal. State Univeristy, Northridge)의 초대로 몇몇 학자들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 나는 내 말이 맞았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저택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는 없었으나, 산 중턱에 우뚝 서있는 그의 붉은 색 2층 벽돌집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20대 후반부터 이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50년이 훨씬 넘는 경력을 쌓은 그였다. 이른 나이에 풀브라이트(Fulbright)의 지원을 받아 미국으로 올 수 있었다는 무용담(?)과 함께, 은퇴를 했지만 아직도 학교의 중심 건물에 독자 연구실을 부여받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는 점을 푼수 없이되뇌는 그를 보며, 이민생활 50년에 LA 인근 산록(山麓)의 붉은 벽돌집 한 채로 현시(顯示)되어 있는 아메리칸 드림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의 콤플렉스를 헤아리게 된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간파하고 나니 얼마간 처연해짐을 금할 수 없었다. 미국 지식사회에서 그 세월을 살아왔으면서도 그의 영어에서 느껴지는 인도인의 혀 놀림(Indian tongue)은 어쩔 수 없음을, 주방의 미니바에 즐비하게 세워놓은 와인 병들을 따서 권하는 그의 호기 너머에 잠재된 외로움의 흔적은 지울 수 없음을 나는 그만 알아채게 된 것이다. 발코니 건너 편 겹겹의 산맥 넘어 태평양으로 스러져가는 석양이 80대 노인의 깊은 주름에 반사되어 수심과 외로움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알아챈 건 아마도 일행 중 나뿐이었으리라!

 

그랬다. 미국에 자리 잡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삶은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로 나뉘는 것 같았다. 아메리칸 드림이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전자(아메리칸 드림의 성취)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젊어서 뭣 같이 벌어놓은재산에 기대어 힘 빠진 노년기를 그나마 불편 없이 보내는 게 미국에 자리 잡은 그들의 꿈이라면 할 말은 없다. 우리 몇 사람을 강권하여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간 람 교수. 어쩌면 그는 붉은 벽돌집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성취 여부를 우리로부터 직접 확인받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당신은 아메리칸 드림의 가장 성공적인 성취 사례임을 그의 면전에서 거듭거듭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

 

그곳 사람들은 -(CSUN: California State University, Northridge)’으로 부르며, 이 대학을 사랑했다. 노스리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일찍이 자리 잡은 곳이고, 그 분의 따님인 안수산 여사가 일생을 사시다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가. 이곳 주민들 가운데는 한국계가 가장 많았다. 우리 가족이 안수산 여사를 방문, 그 분의 팔순 생신연에 참여한 1999년 1월은 우리가 인근의 UCLA에 머문지 1년이 넘어가던 때였다. 벌써 18년 전의 일. 아름답게 채색해놓았던 당시의 추억은 세월의 모진 풍우에 빛이 바랬고, 곱게 웃으시던 안수산 여사의 표정도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 그곳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슬픈 한계를 재확인하게 된 마음이 자못 착잡할 따름이었다.

 

 

 


이창래의 작품들

 

 


이창래에 대한 언론의 관심들

 

 


학술대회가 열린 East Conference Center

 

 


첫날 발표 후 프라빈 박사(인도), 필자, 쿠마르 박사(인도), 치앤타이 교수(태국)

 

 


점심 뷔페

 


 


점심식사 광경

 

 


점심시간에 담소하는 각국 학자들

 

 


이틀째 발표가 끝난 뒤 행사장 밖에서

 

 


야자수 무성한 CSUN 캠퍼스의 모습

 

 


캠퍼스에서 맛난 걸 요구하는 청설모(?)

 

 


먹을 것을 주지 않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앞에서 재주를 보여주는 부부

 

 


인간과 동식물의 공존

 

 


선인장

 

 


이름모를 풀꽃

 

 


대나무 숲길

 

 


오렌지향은 바람에 날리고...

 

 


초대받아 간 람 박사의 자택

 

 


람 박사 자택 발코니에서 석양을 담기에 바쁜 손님들

 

 


람 박사 자택에서 바라본 태평양 연안의 연봉들

 

 


와인 시중을 들고 있는 람 박사

 

 


람 박사 자택에서 내다 본 석양

 

 


밤 하늘, 그리고 달...

 

 


람 박사 자택의 야경

 

 


람 박사의 아끼는 아들 소개

 

 


인도의 두뇌 쿠마르 교수와 프라빈 박사

 

 


벨기에 화가 뤼카스 판 팔켄보르흐(Lucas van Valckenborch)가 1568년에 그린 바벨탑(Tower of Bable)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 1. 26. 21:09

 

게리를 하늘나라로 보내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스마트 폰을 켠 게 불찰이었을까.

이메일 함에 레슬리(Lesley) 교수의 이름과 함께 떠오른

‘Very sad news’란 세 단어가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게리(Gary Younger)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각주:1]

그의 어머니와 함께 휴스턴에서 스틸워터로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

갑자기 캄캄해진 눈앞에서 추억의 필름 한 통이 스륵스륵 돌기 시작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던 오클라호마와 텍사스의 고속도로들.

주변의 경관들이 단조롭고 광활해서 짜증나던 곳.

풀을 뜯던 목장의 소들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되새김질에 몰두하던 곳.

사마귀 모양의 원유 채굴기들이 끄덕거리며 열심히 원유를 퍼내던 곳.

그런 한가한 도로에서 웬 교통사고?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상상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 역사과.

2013년 풀브라이트 방문 연구원으로 한 학기를 지낸 곳이다.

그곳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던 그를 만났다.

고등학교 교사를 몇 년 지낸 뒤 진학했기 때문일까. 나이가 들어보였다.

한국 현대사, 그 중에서도 한미외교사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그였다.

자주 내 연구실을 찾아와 물었고,

우리는 꽤 긴 시간 한국의 역사와 정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문제에 관한 논평을 내곤 하는 미국의 전문가들이 있었는데,

알고 보면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통이었다.

가끔 내가 너를 미국 최고의 한국 전문가로 만들어 주겠다!’

가당찮은 너스레를 떤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귀국 무렵 그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차세대 한국학자프로그램에 지원하게 했고,

귀국 후 얼마 만에 한국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그는 열심이었다.

한국말도 열심히 배웠다.

연구기관과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자료도 열심히 수집했다.

내 말대로 몇 년 안에 미국 내 최고의 한국 전문가가 되려고 했던 것일까.

정말로 열심이었다.

술자리에선 미국인답지 않게 소주를 잘 마시고 삼겹살도 잘 씹었다.

‘1년 만에 한국사람 다 되었다는 농에 식당 가득 파안대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하늘나라로 갔다는 그의 부음을 받은 것이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미국 내 최고의 한국 전문가가 되려는 꿈을,

이승 아닌 어디서 펼치겠다는 것일까.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박사 후 과정을 하겠다는 그 계획을 어디 가서 이루겠다는 것일까.

어학능력도, 분석력도, 아시아 역사에 대한 지식도 출중한 그였다.

그래서 앞으로 10. 아니 사실은 10년까지 갈 필요도 없을 그였다.

미국의 일본이나 중국 전문가들이 곁다리로 내 뱉는 한국 관련 논평들이 못마땅하여

그가 제대로 된 한국 전문가로 성장하기를 기원해온 나였다.

지금 30대 초반이니, 어쩜 40대 초반에는 미국의 실력 있는 한국 전문가로 성장하여

내 속을 후련하게 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는 그렇게 가고 말았다.

흔적도 없이, 누구 말대로 나 이제 갑니다라는 말도 못한 채

그는 그렇게 가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

죽음보다 삶의 덧없음, ‘수포로 돌아간 삶의 계획,

아무 약속도 할 수 없는 공허함이 두려운 것이다.

그가 가꾸어 온 꿈과 삶의 흔적들은 모두 어디로 날아간 것인가.

저 숲속의 늠름한 나무들은 못 된다 해도

하다못해 길 가의 못난 띠 풀로라도

하다못해 보이지 않는 메아리로라도

모습을 바꾸어 남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잠시 고갤 숙여 내려다보면 보일 것이고

잠시 귀를 기울여 들어보면 들릴 것 아닌가.

그렇게도 열심히 꿈을 보듬어가며 살아온 인생인데...

 

게리여,

부디 이 땅의 하찮은 꿈 따윈 접어두고

그곳에 맞는 새 꿈을 가꾸며

행복한 삶을 누리시라!

머지않아 찾아갈 그대의 동료들을 위해

그대만의 멋진 영역을 잘 가꾸어 놓으시라!

 

 

2016. 1. 26.

 

게리 영거의 부음을 듣고

 


숭실대 교정에서

 

 


올림픽 공원에서

 

 


백규 연구실에서 게리와 세바스티안

 

 


백규 연구실에서

 

 


숭실대 교정에서

 

 


학교 앞 식당에서

 

 


선무치료학 전문가 이선옥 박사 및 이 박사의 지인들과 함께

 

  1. *레슬리 교수로부터 온 이메일의 번역문과 원문// 조박사님께 얼마 전부터 박사님께 편지를 쓰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제 급한 일이 생겨 연락드리네요. 오늘 아침 일찍 게리 영거와 그의 모친이 휴스턴에서 스틸워터로 오는 길에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끔찍한 뉴스를 접하게 되었어요. 자세한 건 모릅니다만, 저는 우리 학과에서 지금까지 가장 우수한 학생들 중의 하나를 잃었다는 사실에 비통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항상 명랑했고 열심히 공부했으며 자신의 공부에 관하여 열심히 말했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가 한국 역사의 뛰어난 학자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지요. 그는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친절하고 너그러웠으며, 그래서 전 학과가 모두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저는 박사님께서도 그에 관하여 똑같은 느낌을 갖고 계시리라 믿어요. 특히 박사님과 그가 한국에서 얼마동안 함께 계시기도 했잖아요? 그는 박사님이 OSU를 방문해주신 점에 대하여 매우 고맙게 생각했어요. 글쎄요. 유감스럽게도 제가 나쁜 소식을 전한 사람이 되었네요. 저는 박사님께 저의 위로를 보냅니다. 게리의 죽음이 박사님께도 굉장한 상실이겠지요. 레슬리 림멜 드림 Dear Dr. Cho, I've been meaning to write to you for some time, but now there is something else that is rather urgent. Earlier today I learned the horrible news that Gary Younger and his mother were killed in a car accident on their way to Stillwater from Houston. I don't know any details, and I am heartbroken about the loss of one of the best students we have ever had in our department. He was always so cheerful and eager to work and to talk about his work; we were all certain that he was going to be an outstanding historian of Korea. He was also so kind and generous to others, and the whole department is in mourning. I am sure that you felt the same way about him, especially as you and he spent time together in South Korea. He so appreciated your visit to OSU. Well, I am sorry to be the bringer of bad news. I send you my condolences; this must be a great loss to you, too. Sincerely, Lesley Rimmel [본문으로]
Posted by kicho
알림2014. 11. 5. 13:59

 

 

 

 

 

저는 2013년 2학기 풀브라이트 방문학자(Visiting Fulbright Scholar)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 역사학과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현지를 틈틈이 답사하고 체험한 기록들을 정리하여, 최근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푸른사상)라는 제목의 문화 답사기를 펴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토네이도의 본고장으로만 알려졌을 뿐인 오클라호마를 보물찾기라는 테마를 통해 새롭게 읽어내고자 했지요. 책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물 1: 스틸워터와 OSU, 그 안식과 탐구의 낙원

평온과 정밀(靜謐)의 오클라호마에 안착

역사학과를 찾아

학과 비서들과의 만남

카우보이 풍의 노신사, 학과장 로간 교수와의 만남

브렛 학장과의 만남

평원 속 지성의 오아시스, OSU에서

역사학과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마치고: 한국의 이미지를 새것으로!

카우보이들, 풋볼의 진수를 보여주다!

미국 대학의 졸업식과 감동: 왜 우리는 이렇게 하지 못하는가?

안식과 힐링의 낙원 스틸워터에서

 

보물 2: 인디언, 인디언 역사, 인디언 문화

오클라호마와 인디언 부족들

대초원에서 만난 오세이지 인디언들

체로키 후예의 집을 찾아 패러다임 전환의 증거를 찾다

오클라호마 동쪽에서 체로키 인디언들을 만나다!

체로키어오시요(Osiyo)’와 우리말‘ (어서) 오세요!’의 정서적 거리

스틸워터의 이웃동네에서 만난 판카 인디언들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아이오와 인디언 족

지혜로운 치카샤 족, 인디언 사회의 자존심

촉토 족의 뿌리와 투쟁, 그리고 예술

촉토 족의 탁월한 교육열, 풍부한 역사 자취

놀라운 세미놀 인디언들의 역사와 문화의식

카이오와, 아파치, 코만치, 그리고 대평원의 서사시

카이오와 족의 삶과 예술

무서운 코만치에서 상식의 미국인으로!

크릭 족의 꿈과 현실을 찾아

오클라호마 밖의 인디언: 뉴멕시코의 앨버커키와 스카이 시티, 그리고 푸에블로족

암굴 속에 서린 생존 의지‘, 반델리어 국립 유적지와 푸에블로 족의 말 없는

외침

부드러운 어도비, 완강한타오 푸에블로인디언들

 

보물 3: 미국의 길, 66번 도로(Route 66)의 낭만

미국에서 길을 찾으며: 우리도 스토리가 있는 길을 한 번 만들어 봅시다!

작은 일탈을 꿈꾸는 66번 도로, 그 낭만과 허구

엘크 시티와 국립 66번 도로 박물관 단지

클린턴 시티와 ‘66번 도로 박물관

엘 르노 시티와 캐나디언 카운티 뮤지엄

66번 도로에 살아 있는 역사의 공간, 유콘 시티

누구 혹시 이 소녀를 아시나요?: 유콘에서 만난 우리들의 누이

한국전 참전용사의 아들 리차드 카치니와 유콘 참전용사 박물관

오클라호마의 숨은 별: 거쓰리 시티/ 66번 길의 경이로운 옛 건축물: 아카디아 라운드

 

 

 

 

 

 

보물 4: 박물관과 미국 역사

서부 개척시대 미국의 소리: 국립 카우보이와 서부유산 박물관

예술로서의 역사, 역사로서의 예술: 털사의 길크리스 박물관에서 길을 잃다!

인간의 악마성을 깨우쳐 준 공간: 오클라호마 시 메모리얼 뮤지엄
오클라호마 밖의 박물관: 예술과 역사의 도시 산타페와 박물관들

 

보물 5: 열정과 도전의 대학인들

미국의 중남부에서 아시아 역사를 가르치는 젊은 학자: 용타오 두 교수

학자와 목자의 삶: 한인 교수 장영배 박사

빛나는 한국학생 브라이언

한반도에 관심이 큰 소련 역사 전문가 림멜 교수

탁월한 젊은 영어 교육자 제이슨 컬프

역사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온 프레너 교수

 

보물 6: 아름다운 자연, 안식의 낙원

부머 호수에서 찾은 마음의 고요

리틀 사하라에서 되찾은 고향의 꿈

대초원에서 멋진울음 터를 발견하고

낙원 속의 산책로: OSU 크로스 컨트리 코스의 안식과 힐링

 

 

 

 

 

***

일반적으로 미국은 역사가 짧고, 넓은 땅에 비해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역사 문화유적의 답사라는 여행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공간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백인들의 이주 후 200여년, 인디언으로부터 따지면 그보다 훨씬 더 긴 역사가 이어져 온 땅이고, 그에 따르는 문화유산들이 적지 않은 곳입니다. 더구나 경쟁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의 대학들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문화를 생각하면, 미국은 유럽과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을 지닌 지역입니다. 무엇보다 39개에 달하는 인디언 부족의 보호구역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오클라호마는 대초원(Tall Grass Prairie)과 대평원(The Great Plains)등 풍부한 목초지와 함께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원유 등으로 오랜 동안 풍요를 구가해온 지역이기도 합니다. 풀브라이트(Fulbright)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곳의 대표적인 교육기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에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만. 이곳에 오자마자 연구 과제 외에 이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의미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가 관심을 가졌던 대상은 인디언의 역사와 문화였습니다. 저는 사람, 자연, 도시, 제도, 역사, 문화 등 감고 있던 마음의 눈을 뜨게 한 모든 것들이 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간 모르고 지내온 것들이 그의 편견을 바로잡아 주었기에 보배로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디언들과의 만남은 무엇보다 소중했습니다. 인종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백인들에 의해 고통을 받아온 인디언이야말로 역사의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보물이었던 것입니다. 서부영화나 백인들에 의해 저술된 책들을 통해 제 마음에 뿌리 내린 왜곡된 인디언의 이미지가 비로소 바로잡혀지게 된 점을 가장 곰지게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배자들이 펼쳐 온 자기 합리화의 억설(臆說)에 의해 일그러진 인디언들의 실체를 삶의 현장에서 바로잡음으로써 내면에 고착된 편견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 인디언에 대한 발견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을 통해 미국 대학들의 경쟁력이 바로 미국의 경쟁력임을 깨닫게 된 점입니다. 대학의 역사와 현실을 통해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체력을 단련하며 단합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운영되는 미국 대학의 장점을 읽어낸 것은 제 글 내용의 핵심적인 축입니다.

인디언이나 대학의 힘에 대한 발견과 함께 오클라호마나 스틸워터의 깨끗한 자연으로부터 얻게 된 힐링의 감동은 이 책 내용의 또 다른 축입니다. 부머 호수, 리틀 사하라, 산책로로 쓰이고 있는 크로스 컨트리 코스 등 잘 보존된 자연이 인간의 내면적 평정이나 행복을 위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체험적으로 진술하고자 했습니다. 제 글의 에필로그 가운데 마무리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풀브라이트 학자로서의 가볍지 않은 사명을 짊어지고 오긴 했지만, 연구 외

에 이곳에서 발견한 또 다른 것들이 나를 달뜨게 했다. 오클라호마 사람들과의

만남, 인디언의 역사나 문화와의 만남, (특히 Route 66)과의 만남,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과의 만남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했던 스틸워터는 문만 닫으

면 절간처럼 조용해지는 공간이었다. 맑은 공기 속에 한 발만 나서면 온갖 새

와 나무들이 그들먹한 낙원이었다. 그래서 기대 이상의 힐링을 체험하며 마음

속의 온갖 찌꺼기들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물론 이곳이라고 어찌 사람들 사

이의 갈등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불행들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러나 유목민들이

아름다운 꽃향기와 산토끼의 해맑은 눈빛, 그 지순(至純)한 추억으로 광풍 몰

아 치던 수많은 밤들의 괴로움을 지우듯,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걸러내는 능력

이야말로 지혜로운 인간의 전유물 아닌가. 사실 짧지 않은 6개월 동안 걸러내

야 할 단 하나의씁쓸함도 만나지 못한 나였다.

                                                          ***

스틸워터에서 화려한 행복보다는 작고 따스하며 담백한 즐거움 속에 거의

완벽한 힐링의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으니, 이제 맛있고 영양가 풍부한 풀들이

많이 자라 있기를 기대하며 다시 옛 고향으로 노마드의 소떼를 몰고 재입사(

入社)하기로 한다.”

 

그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책을 펼치기만 하면 오클라호마와 스틸워터의 감동과 아름다움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지리라 생각합니다. 강호제현의 질정(叱正)을 고대합니다.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 푸른사상, 2014.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3. 17. 20:07

 

 


OSU in Stillwater 캠퍼스 조감도

 

 

 


OSU의 분 피켄스 스테이디엄(Boone Pickens Stadium)

 

 

 

 


OSU의 전신인 Oklahoma A&M 건물.
현재는 OSU의 Honors College로 쓰이고 있음[아래 사진 참조].

 

 

 

 


OSU의 Honors College로 쓰이고 있는 Oklahoma A&M  건물.

 

 

 

 


OSU의 상징 마크

 

 

 

 


Oklahoma A&M의 문장(紋章)

 

 

 

 


OSU의 문장

 

 

 

 


OSU의 마스코트인 '피스톨 페테(Pistol Pete)

 

 

 

 


피스톨 페테의 모델인 프랭크 이튼(Frank Eaton)

 

 

 

 


1928~1950년까지 Oklahoma A&M의 총장을 지낸 베네트(Henry G.Bennett) 박사 동상.
베네트 총장은 이 대학 발전의 초석을 놓았음.

 

 

 

 


OSU의 중심에 서 있는 중앙도서관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의 설경

 

 

 

 


OSU의 '선진 기술 연구 센터[Advanced Technology Research Center/ATRC]

 

 

 

 


OSU 캠퍼스의 한 건물

 

 

 

 


스튜던트 유니언(Student Union)에서 내려다 본 OSU의 가든

 

 

 

 


OSU의 중심에 서 있는 중앙도서관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의 여름 경치

 

 

 

 


백규 연구실이 들어 있던 사우스 머레이홀(South Murray Hall)의 복도

 

 

 

 


OSU의 중심을 관통하는 몬로 거리[Monroe Street]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특강 중인 백규

 

 

 

 


 OSU의 예술과학대학[College of Arts and Science]
대닐로위츠( Bret Danilowicz)학장과 상면(학장실에서)

 

 

 

 


백규 연구실을 방문한, OSU의 탁월한 한인 교육학 교수 조윤정 박사

 

 

 

 


OSU 인근 다운타운의 레스토랑에서 역사학과의 에멀리[Graham, Emily] 교수와  함께

 

 

 

 


OSU 역사학과의 반짝이는 두 학생 마켄지(Mackenzie)와 루크(Luke Mccamon) 

 

 

 

 

 

 

평원 속 지성의 오아시스,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미국 내에서의 연구기관을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으로 정했다고 하자, 한국 풀브라이트의 심재옥 단장은 참 잘한 결정이라고 나를 추어주었다. 미국 내에서 그 학교만큼 친절하고 협조적인 기관도 드물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오클라호마 주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에 대해서 눈곱만큼의 사전 정보나 지식도 없었던 나로서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도착 후 뙤약볕 내려 쪼이는 캠퍼스를 걸어보니, 소떼 노니는 초원인 듯 한없이 넓었다. 방문한 사무실의 직원들도, 교정에서 만나는 학생들도 모두 친절해서 마음이 놓였다. 따가운 햇살만 아니라면 시차로 인해 무거워진 눈꺼풀을 닫은 채 마냥 걷고 싶은 공간이었다. 듬성듬성 세워놓은 갖가지 양식의 건축물들도 고풍스럽고 따스해 보였다. 사우스 머레이홀(South Murray Hall)과 스튜던트 유니온(Student Union) 사이에 있는 쎄타 폰드(Theta Pond). 그 안에서 살아가며 이방인이 나타나도 무서워하지 않고 꽉꽉거리며 다가오는 기러기와 오리들도 정겨웠다.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 친절한 인간, 고풍스런 건축물들이 잘 어울려 친근미를 자아내는 OSU에서 꿈같은 한동안을 지내게 된 것이었다.

 

OSU는 이른바 랜드 그랜트(land-grant), 선 그랜트(sun-grant)’ 대학이었다. ‘랜드 그랜트 대학이란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한 토지에 세운 대학을 뜻하는 말이다. ‘랜드 그랜트 대학에 대한 지원은 1862년에 제정된 모릴법[Morrill Acts] 대학에 대한 연방 토지 허여법(許與法)’에 근거한다. 연방이 각 주에서 선출된 상하원 의원 1명당 3만 에이커의 나라 땅을 무상으로 주고, 그 토지 수익의 90%를 농학이나 공학 관련 강좌가 개설되어 있는 주립대학의 발전 기금이나 유지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모릴법이다. 1890년과 1907년에는 기존의 모릴법에 의해 지원을 받는 모든 대학들에 의회가 직접 보조금을 교부하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다. ‘선 그랜트 대학이란 지속 가능하고 환경 친화적인 생태 기반의 대안 에너지를 연구 개발하는 대학을 뜻한다. ‘선 그랜트 계획의 지역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다섯 개의 미국 대학들이 모여 선 그랜트 연합이 결성되었고, 그 연합은 교통부, 에너지부, 농업부 등을 파트너로 삼아 연구교육 활동을 펼친다.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을 비롯, 코넬 대학교(Cornell Univ), 오레곤 주립대학교(Oregon St. Univ.), 사우스 다코타 대학교(South Dakotat Univ.), 녹스빌 테네시 대학교(Univ. of Tennessee at Knoxville) 등 다섯 대학들은 각각 선 그랜트에 기반을 두고 있는 기관들이다.

 

1890년에 세워졌고, 2012년 기준으로 23,459명의 학생들과 1,857명의 직원을 포함한 OSU는 스틸워터 캠퍼스만 해도 1,489 에이커[6.03]에 이를 만큼 넓다. 캠퍼스 안 어디에서나 피스톨을 찬 카우보이[피스톨 페테(Pistol Pete)]의 사진과 마스코트를 볼 수 있었으며, 풋볼을 비롯한 각종 경기 중에도 피스톨 페테의 분장을 한 사람이 그라운드에 나타나 분위기를 띄우곤 했다. 함께 풋볼을 관람한 제이슨으로부터 피스톨 페테의 연원을 들을 수 있었다피스톨 페테는 OSU, 뉴멕시코 주립대학, 와이오밍 대학교가 함께 사용하는 운동경기의 마스코트였다. 피스톨 페테는 프랭크 이튼(Frank Eaton)을 닮은 전통적인 카우보이의 의상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는데, 그의 형상이 OSU 카우보이 팀의 마스코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23부터였다. OSU가 원래 ‘Oklahoma A&M 대학[Oklahoma Territorial Agricultural and Mechanical College]’으로 출발할 때 당시 이 대학의 스포츠 팀은 ‘Agriculturists, Aggies, Farmers’ 등으로 불렸고, 사실 그다지 인기는 없었지만 공식명칭은 ‘Tigers’였다. 그러다가 1923년 경 Oklahoma A&M은 스틸워터의 양떼 행진[Sheep Parade]’을 인도하던 프랭크 이튼(Frank Eaton)을 새로운 마스코트의 모델로 삼아 기존의 호랑이 마스코트를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1923년부터 프랭크 이튼은 Oklahoma A&M의 마스코트로 계속 쓰였으나, 1958년에 이르러서야 OSU는 이것을 공식적인 상징으로 인정했다 한다.

 

1860년 코네티컷 주에서 태어나 캔자스로 이주한 프랭크 이튼은 여덟 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당시 자경단원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군 소속의 잔당 6명에 의해 맥주 집에서 저격당한 것이었다. 그 후 아버지 친구의 충고에 따라 열심히 권총사격 연습을 하여 결국 원수를 갚았고, 그 후로부터 그의 영웅적 행적은 전설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피스톨 페테의 모습이 가장 강렬하게 등장하는 이벤트는 스포츠 경기들과, 홈커밍[OSU’s Homecoming Celebration]을 포함한 각종 축제들이었다. 9월부터 시작되는 1학기 초부터 기숙사별로 학생들이 단결하여 홈커밍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프래터너티(fraternity)와 소라러티(sorority) 즉 남녀 사생(舍生)들이 기숙사별로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기숙사 안팎을 치장하는 등 화려한 축제를 통해 그들의 단결심을 고취하고, 그런 유대관계는 졸업 후에도 끈끈하게 지속되는 것 같았다. 이러한 홈커밍데이의 전통과 함께 OSU는 놀랄만한 스포츠 유산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점에도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시즌 중 거의 매 주말은 게임 데이(game day)’였고, 하루 전부터 재학생동문주민들이 경기장에 총출동하다시피 함으로써 평소에 조용하던 시가지는 아연 활기를 띠곤 했다.

 

게임데이는 실질적으로 스틸워터의 도시축제인 셈이었다. 7만 명을 수용하는 분 피켄스 스테이디엄(Boone Pickens Stadium)’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였고, 응원의 함성으로 천지가 진동하는 듯 했으며, 캠퍼스 안의 잔디밭과 도로변의 공터는 외지에서 온 관객과 응원단의 텐트촌으로 바뀌곤 했다. 거대한 RV(Recreational Vehicle)들과 관객들의 승용차가 시내 공용 주차장들을 점령하고, 주차장으로부터 경기장까지는 무료 셔틀버스들이 수시로 왕래했다. 이처럼 풋볼, 농구, 여자 축구, 야구, 레슬링, 테니스, 크로스컨트리 등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들이 캠퍼스 안에서 활발한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었다.

 

OSU 스포츠의 대단한 모습은 대외적인 경기력 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을 위한 생활스포츠에서도 두드러진다. 51개의 국내 선수권 챔피언십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은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이었다많은 챔피언십 보유 순위에서 OSU는 미국 대학 경기 연맹[NCAA: 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의 최상위 그룹인 1그룹[Division 1]351개 대학들 중 4위에 속하고, 아이오와캔자스오클라호마텍사스웨스트 버지니아 주를 포괄하는 12 경기 협의회[Big 12 Conference]’ 소속의 10개 대학들 중에서는 1위에 속한다. 

 

그 뿐 아니라 캠퍼스 한 쪽에 서 있는 국립 레슬링 명예의 전당 박물관[National Wrestling Hall of Fame and Museum]’은 미국 전역에서 배출된 역대 레슬링 선수들의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링컨도 루즈벨트도 슈워츠코프도 레슬링 선수출신이라는 사실을 이곳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명예의 전당은 단순히 힘깨나 쓰는 장사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잊히는 한국과 달리 오래도록 명예가 드높여지고 보존되는 미국의 힘과 지혜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OSU 스포츠의 장점이 스타플레이어들의 엘리트 스포츠 종목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구성원들의 건강관리와 유지를 위해 세운 종합 스포츠관인 콜빈 센터와 세레티안 웰니스 센터, 크로스 컨트리 경기장, 잔디 축구장, 테니스장 등이 캠퍼스 안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포츠 공간들은 대중 스포츠의 현장이었다. 구성원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시설들은 대학이 엘리트 스포츠 아닌 대중 스포츠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들이었다.

 

18901225일 오클라호마 의회가 모릴법에 의거하여 개교한 오클라호마 지역 A&M 대학은 개교 이래, 많은 변화와 발전들을 거쳐 1957515일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으로 변신했고, 스틸워터를 그 본거지로 삼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스틸워터 이외에 ‘OSU-오크멀기 기술연구소[OSU-Institute of Technology in Okmulgee]’(1946), ‘OSU-오클라호마 시티[OSU-Oklahoma City]’(1961), ‘OSU-털사[OSU-Tulsa]’(1984), ‘OSU-건강연구소, 털사[OSU-the Center for Health Sciences-Tulsa]’(1988) 등의 분교들을 거느리게 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이 지역의 대표 대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스틸워터의 OSU 캠퍼스는 농업과학과 자연자원 대학[College Science and Natural Resource(CASNR)/농업경제학(Agricultural Economics), 농업경영학(Agribusiness) 16개 전공]’, ‘예술과학대학[College of Arts and Science(CAS)/영어(English), 역사(History) 24개 학과]’, ‘교육대학[College of Education(COE)/초등교육(Elementary Education), 직업기술교육(Career and Technical Education) 29개 프로그램]’, ‘공학건축기술대학[College of Engineering, Architecture, and Technology(CEAT)/소방안전기술(Fire Protection and Safety Technology), 산업공학과 경영학부(School of Industrial Engineering and Management) 13개 학부]’, ‘인문대학[College of Human Sciences(HS)/디자인학과(Department of Design), 호텔 식당경영학부(School of Hotel and Restaurant Administration) 4개 학과]’, ‘스피어스 경영학부[Spears School of Business/금융학과(Department of Finance), 마케팅학과(Department of Marketing) 7개 학과]’ 6개 대학 200여 전공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틸워터의 전체면적은 73.3였고, 그 중 다운타운의 면적은 이 채 안 되는 듯 했으며, 6.03에 달하는 OSU는 다운타운으로 감싸인 방사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미국 내 대학들 가운데 OSU의 서열이 어떠하든, 동부나 서부의 전통적인 명문대학들과 비교하여 그 수준이 어떠하든, 스틸워터를 비롯한 오클라호마 주민들은 정말로 OSU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점이 이채롭고 감동적이었다. 서울과 지방 대학들 간의 서열을 따지고, 같은 지역 안에서도 대학 간의 서열을 따지며, 같은 대학 내에서도 학과 간의 서열을 따지며 차별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하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에게 OSU는 오클라호마를 대표하는, ‘우리 대학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 속에 평화로운 모습으로 늘어서 있는, 나지막하고 고풍스런 건물들이 OSU 캠퍼스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고, 가끔 체육관으로 몰려가 ‘Go Pokes!’를 목청껏 외치며 OSU Cowboys들을 응원하는 세계의 수재들이 그 공간에 열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OSU에 머물며 미국 대학들의 경쟁력과, 그로부터 나오는 미국의 힘을 실감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에 막 도착하여 뙤약볕 아래 캠퍼스를 돌아보는 백규와 멜라니

 

 

 

 


OSU 갤러거 아이바 경기장[Gallagher Iba Arena] 앞에 서 있는 'OSU Spirit Rider'

 

 

 

 


풋볼 경기 중 OSU가 한 점을 얻자 말을 탄 카우걸과 응원단이 경기장에 나온 모습
[Boone Pickens Stadium]

 

 

 

 


풋볼 경기를 관람하는 제이슨(Jason Culp)과 백규

 

 

 

 


풋볼 경기장에서 OSU를 응원하는 학생 응원단

 

 

 

 


풋볼 경기에서 OSU가 선취점을 올리자 기뻐 뛰쳐나온 응원단

 

 

 

 


크로스 컨트리 경기장에서 힘차게 출발하는 선수들

 

 

 

 


OSU에서 운영하는 캠퍼스 내의 호텔 Atherton

 

 

 

 


홈커밍 행사의 일환으로 학생들이 만들어 전시하는 홍보판

 

 

 

 


홈커밍 행사에 전시할 기숙사 장식물들을 합동으로 제작하고 있는 여학생들[sororities]

 

 

 

 


기숙사생들 스스로 한 학기 동안 기획하여 제작한 장식물을 기숙사 전면에 부착한 모습.
많은 일반인들이 이것을 구경하기 위해 캠퍼스를 찾는다.

 

 

 

 

"
OSU 캠퍼스 내의 아파트[101 윌리엄스]

 

 

 

 


OSU 아파트를 관리하는 사무실 건물[Famil Resource Center/FRC]

 

 

 

 


대학 내의 치안을 담당하는 OSU 대학 경찰서 순찰차량들

 

 

 

 


겨울을 맞은 OSU 쎄타폰드(Theta Pond)

 

 

 

 


학생들이 언제나 찾아 체력을 단련하는 콜빈 레크리에이션 센타(Colvin Recreation Center)

 

 

 

 


학생들의 체력과 건강 증진을 위해 건립된 '세레티안 웰니스 센터' 입간판

 

 

 

 


갤러거 아이바 아레나에서 갖는 후기 졸업식의 한 부분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2. 1. 01:15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한 림멜 교수

 

 

 

한국의 통일을 열망하는 러시아 역사 전문가, 림멜(Lesley A. Rimmel) 교수

   

 

미국에 있는 동안 꽤 많은 미국의 지식인들을 만났다. 주로 교수나 강사, 박물관의 큐레이터들,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 등인데, 그 가운데는 오가는 도중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금까지 비교적 자주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미국 지식인들이 타인들 특히 외국인들을 낯설어 하며 자신들만의 울타리에 갇혀 지내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신의 전공을 통해 얻은 통찰력으로 남을 이해하기도 하고, 남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를 통해 전공에서 만난 문제들을 풀기도 한다.

 

12월 중순의 어느 날 점심시간. 브레이크 룸에서 커피를 데우고 있는데, 평소 눈인사 정도를 나누던 여 교수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며칠 전 PBS에서 방영된 비밀의 국가 북한[Secret State of North Korea]’란 다큐멘터리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참으로 많이 부끄러워졌다. 방영된다는 소식을 뉴스로 듣긴 했으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동족의 끔찍한 참상들이 미국인들의 눈앞에 발가벗겨진 채 드러난 모양이구나! 집에 돌아가자마자 포털사이트에서 그 방송을 확인했고, 며칠 후에는 다운로드해서 직접 보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거나 짐작하고 있는 사실들의 반복에 불과했지만, 미국인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왔을 내용이었다. 특히 군사조직에 가까울 정도의 병영국가 체제, 대한민국과 미국을 주된 표적으로 무력을 앞세운 협박, 몽땅 쇼 윈도우의 컨셉으로 꾸며진 평양, 비참하고 끔찍한 정치범 수용소들, 살아남을 힘마저 상실한 아이들과 일반국민들의 참상 등. 내게 북한의 현실을 일깨워 준 림멜 교수에게 달리 할 말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녀를 만나 South Korean들의 입장을 말하지 않으면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드디어 림멜 교수의 연구실에서 장시간 만나 한반도의 현실을 설명하고, 그녀의 관심사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대화들 가운데 한 부분을 이곳에 올리기로 했다.

 

 


                                                      연구실에서 필자와 대담 중인 림멜 교수

 

 

 

***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림멜 교수는 자신의 전공을 통해 얻은 통찰력으로 남을 이해하게 된대표적 미국 지식인이다. 명문 예일 대학 역사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그녀는 이듬 해 국제 교육 교류 위원회[Council on International Educational Exchange]’의 수혜자로 선발되어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레닌그라드 주립대학[Leningrad State University]에서 러시아어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며,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키로프(Kirov) 살해와 소비에트 사회: 1934-35년 레닌그라드에서의 선전과 여론[The Kirov Murder and Soviet Society: Propaganda and Popular Opinion in Leningrad, 1934-35]’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였다.

 

1995-96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강사로 재직했고, 1998년 가을학기부터 이곳 OSU에 자리를 잡고 주로 러시아중앙아시아근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과목들을 강의해 왔으며, 20여 종에 가까운 수상 및 그랜트(Grant) 수혜 경력을 갖고 있는 탁월한 교수임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는 풀브라이트(1991-92), 앨리스 폴 어워드(Alice Paul Award/1991), 국제 교류 연구 기금(International Research and Exchanges Board Grant/1991-92) 등을 비롯,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혜를 받은 학자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스탈린 시대 소련 역사에서 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이었고, 전쟁을 비롯한 집단 폭력이나 지하경제와 같은 국제적 기층민중의 현실 등에도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북한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현실에 관심을 갖는 걸까. 북한 얘기를 꺼내자 그녀는 김정은을 입에 올리며 스탈린보다 훨씬 잔인한 그의 성격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야기 도중 책장 위에 올려놓았던 스탈린의 배불뚝이 동상을 꺼내더니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체형(體形)이 스탈린과 똑같지 않으냐고 내게 물었다. 국민들을 배고프고 괴롭게 하면서 자신의 배를 불린 전형적인 독재자의 모습을 스탈린에게서 찾을 수 있고, 한반도의 김씨 3대는 바로 그 아류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스탈린 시대를 중심으로 러시아 역사를 긴 세월 연구해 온 그녀로서 국민 착취 및 학대의 전형적인 독재자로 스탈린을 꼽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체형과 인간성의 유사성까지 들면서 김씨 3대를 스탈린보다 더 잔인하고 독한 인물들로 규정하고 있는 점은 흥미로웠다. 그나마 스탈린은 자기 당대에 끝이 났지만, 김씨 왕조는 대물림을 하고 있으므로 훨씬 지독한 인물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스탈린이나 김씨 3대 등 배불뚝이 독재자들주민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악마적 지도자의 시각적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음을 그녀의 설명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스탈린의 독재가 결국 소련 해체의 단서로 작용한 것처럼 그보다 더 잔인한 모습으로 한반도 북쪽에 군림하고 있는 김씨 3대 특히 김정은의 폭력성이 조만간 체제의 전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그녀의 관점이었다.

 

 


연구실에서 필자와 대담 중인 림멜 교수

 

 


연구실에서 필자에게 설명 중인 림멜 교수

 

***

 

주변에 입양된 한국의 고아들을 언급함으로써 나를 부끄럽게 했지만, 이내 한국인 친구들이나 한국과의 친분을 강조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친밀감을 갖게 한 그녀.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삼성현대기아엘지•대한항공 등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을 죽 나열하고 그들의 장점까지 거론했으며,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삼성 폰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뿐인가. 한국의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을 독재자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을 민주주의 정착기의 대통령으로, 그 사이에 있는 노태우 대통령을 과도기로 각각 규정하는 등 한국 대통령들의 이름과 공적을 꿰고 있었으며, 반기문 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등 세계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명사들의 이름을 줄줄 외움으로써 한국인인 나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산업화의 결정적 초석을 놓은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고 있으며, 그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도 정계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다고 내가 설명하자 그 말을 수긍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물어왔다. 세대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믿음직하다는 평가를 받아 비교적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하자, 동북아시아의 큰 나라들이나 미국도 내지 못한 여성 대통령을 선출했다는 점과 함께 여성의 리더십이 나라를 흥하게 하는 선례를 한국이 만들 것이라는 고무적 관측까지 내놓는 것이었다. 북한이 매우 폭력적으로 나오는 것도 국제사회에서 보여주는 한국의 다양한 활약이나 선전(善戰)에 불쾌감을 느끼는 데 큰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그 나름의 분석을 보여주기도 했다.

 

***

 

학자로서 자신이 전공한 학문을 바탕으로 현존하는 체제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걸출했던 역사철학자 E. H. 카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가 역사라고 했다. 그 대화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온당한 해석 행위이고, 그런 해석을 통해 역사의 객관성은 확보될 수 있다고 보았다. 스탈린 시대에 생겨난 역사적 사건들의 해석을 통해 단순히 그 시대의 규명에나 그치고 만다면, 그것을 진정한 역사가의 안목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 학자를 만나자마자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김씨 3대 혹은 북한의 미래까지 내다보는 통찰을 림멜 교수는 내게 보여준 것이리라. 여지없이 엄정한 시각을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들의 해석에서 얻어내는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된 역사학자들을 만나는 일이 내겐 큰 즐거움이고, 그 즐거움을 림멜 교수와의 만남에서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컴퓨터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는 림멜 교수

 

 


림멜 교수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삼성 폰

 

 


2013. 12. 14. PBS에서 방영한 '비밀의 국가 북한' 타이틀 화면[방송화면 캡쳐]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의 어린이[방송화면 캡쳐]

 

 


군 진지를 순시하는 김정은에게 달려가며 충성을 과시하고 있는 인민군들[방송화면 캡쳐]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1. 1. 13:19

 

 

 

 

 

 

 

새해인사

 

 

 

계사년이 저물고, 대망의 갑오년이 밝았습니다.

미국의 이 지역은 한국에 비해 14시간이 늦은 관계로 이제야 새해인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사건도 많고 말도 많았던 지난해를 무탈하게 넘기시고 새해를 맞이하신 백규서옥 손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큰 복을 빌어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는 여러 면으로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개인들도 살아가기가 수월치 않은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제가 체류하고 있는 오클라호마 주의 반 밖에 안 되는 면적에 5천만의 인구가 살고 있으니, 많은 갈등과 다툼이 생겨날 것은 당연하겠습니다만. ‘원칙과 법치’, ‘양보와 신뢰만이 그나마 우리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묘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제게도 좋은 일, 궂은 일 등 곡절이 적지 않았습니다. 재직하는 학교에서 그 학교의 첫 아너 펠로우 교수(Honor Fellowship Professor)’로 선정된 일과 풀브라이트(Fulbright) 지원 학자로 선정되어 미국에서 연구와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받은 일은 제 일생을 통해 가장 과분한 영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덕에 도전과 힐링(healing)’이란 목표를 갖고 미국으로 건너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정 기간의 반 이상을 보낸 지금 그 목표가 얼마나 달성되었는지 반성하며 스스로 자책하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약간 서운한 일도 물론 있었습니다. 인간 사이에서 오고가는 거짓이나 술수만큼 사악한 행위도 없을 것입니다. 뻔히 알면서도 겪은 경우는 올해가 처음입니다만. 그 모든 것들이 제 모자람에서 기인한 것이라 치부하고, 오히려 자신을 닦달하며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결국 참회의 눈물을 보이며 돌아올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국가든 직장이든 개인이든, 새해엔 많은 시련과 도전에 직면하리라 생각합니다. 주변의 여건들이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 요즈음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중심을 잡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국가도, 직장도, 개인도, 중심이 없으면 허물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학자로서의 중심을 다잡으려는 것이 올 한 해 견지하고자 하는 목표이자 과제입니다. 여러분께 많은 지도와 편달, 부탁드립니다.

 

모쪼록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2014년 새해 아침에

 

백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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