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20. 5. 9. 15:43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는 7명의 학자들이 선조조~인조조의 탁월한  경세가(經世家) 최현(崔晛)의 연행록 <<조천일록(朝天日錄)>>을 역주・분석하여 최근 다음과 같은 자매편 저술들을 발간했다.

 

1. <<역주 조천일록>>[조규익・성영애・윤세형・정영문・양훈식・김지현・김성훈 공역/학고방, 2020. 5.])

2. <<최현의 <<조천일록>> 세밀히 읽기>>[조규익・성영애・윤세형・정영문・양훈식・김지현・김성훈 공저/학고방, 2020. 5.]

 

**<<역주 조천일록>>의 목차

 

화보

머리말

역자의 말/조규익

권1 인재선생속집-<<조천일록 1>>

권2 인재선생속집-<<조천일록 2>>

권3 인재선생속집-<<조천일록 3>>

권4 인재선생속집-<<조천록 4>>

권5 인재선생속집-<<조천록 5>>

권5 인재선생속집-<인재선생속집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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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조천일록>>의 머리말

 

광주 이현조 박사의 후의로 인재 최현의 <<조천일록>>을 손에 넣은 것은
2006년 무렵이었다.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고, 훑어보니 내용
또한 여러 면에서 매력적이었다. 즉시 숭실의 학인들과 강독을 시작했다.
반쯤 진행되던 중 뜻하지 않게 새로운 프로젝트에 매달리게 되어, 강독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그간 이 텍스트에 관한 논문은 두세 편 발표했으나,
번역을 마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미적거리는 사이 세월은 마구
흘렀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 겨우 작년(2019) 중반
쯤이었다. 서너 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초벌 번역과 주석 작업을 마쳤고,
최종적으로 마무리 강독을 통해 번역작업은 완성되었다.


문헌학도인 나는 늘 번역문제로 시달린다. 논문 한 편을 쓰려 해도
맞닥뜨리는 원전들이 많기 때문이다. 논문 쓸 때는 정확하게 번역했다고
자부하지만, 논문이 나온 후에 오역들이 발견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래
서 좋은 번역서가 늘 반갑고 고맙다. 좋은 번역서들은 연구에 들어가는
품을 많이 덜어준다. 그러나 아직도 번역을 기다리는 원전들은 수두룩하다.


인재 공의 <<조천일록>>은 예사로운 사행록이 아니다. 사행을 출발하는
날부터 돌아와 복명한 뒤 우여곡절을 겪다가 하향(下鄕)하는 날까지 단
하루 빠뜨리지 않고 기록한 점도 놀랍다. 무엇보다 원리주의자에 가까운
성리학자들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면서도 실용주의적 경세가의 면모를 보
여주었다는 점에서 인재 공은 특이한 존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
전했고,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대열의 선봉에 서기도 한 그였다. 그 뿐
아니다. 분명한 메시지가 담긴 가사와 소설작품을 남겼고, 각종 소차(疏
箚)들을 통해 민생과 안보․ 경제 등 현실 정치에 관한 건의들을 임금에게
부단히 올리기도 했다. 공리공담 아닌 실용 정신에 입각하여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뜻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역사에 보기 드문 실천
적 애국 지식인이었다. <<조천일록>>의 표층은 ‘중국에서의 문견사건(聞見
事件)들’이나 심층은 ‘나라걱정’인 것도 그런 점에서 당연하다.


공역자들 각자가 발표한 논문들을 모은 <<최현의 조천일록 세밀히 읽
기>>를 이 번역서의 자매편으로 함께 세상에 내어 놓는다. 뜻 맞는 학인들
과 함께 공부한 결과를 세상에 내어 놓는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
까. 그러나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다음 작업들을 위해 지금 너무 많이
웃지는 말아야 하리라.


맨 처음 텍스트를 제공해주신 이현조 박사와 성균관대 존경각, 텍스트
의 원본 이미지들을 제공해주신 서울대 규장각, 거친 원고들을 보암직한
책으로 엮어주신 학고방의 하운근 사장님과 조연순 팀장을 비롯한 직원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하며, 강호 제현의 일독과 질정(叱正)을 고대한다.


경자년 새봄
백규서옥에서
조 규 익

 

두 책의 화보

 

**<<최현의 <<조천일록>> 세밀히 읽기>>의 목차

 

화보

머리말

최현과 <<조천일록>>을 보는 관점/조규익

<<조천일록>>과 현실인식/정영문

<<조천일록>>과 의례/성영애

<<조천일록>>과 누정문학/양훈식

<<조천일록>>과 유산기/김지현

<<조천일록>>과 요동정세/윤세형

<<조천일록>>과 글쓰기 관습/조규익

최현 문학 연구의 현황과 전망

Abstract: A Detailed Analysis of Choi, Hyeon's Jocheonilrok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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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의 조천일록 세밀히 읽기>>의 머리말

 

인재(訒齋) 최현(崔晛) 공의 6세손인 광벽(光璧)으로부터 <<조천일록>>
의 서문을 청탁받은 당시의 탁월한 학자 이헌경(李獻慶). 다음과 같은
말로 글을 시작한다.


“조천록이 이 세상에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사대부들이
연경에 갔다가 돌아오며 이런 기록을 남기지 않은 이가 없었으나 선생처
럼 상세하지 않았다. 이를 갖고 연경에 가서 살펴 따라가면 비록 처음
가는 나그네라도 익숙한 길처럼 생각될 것이다. 군대를 이끄는 자가 이를
얻으면 견고함과 빈틈, 험지와 평지의 소재를 알 수 있고, 풍속을 살피는
자가 이를 보면 풍속의 교화와 다스림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를 알
수 있다.(…)당시에는 경계할 줄 몰랐고 오히려 뒷사람에게 밝은 본보기
를 남겨주었으니, 조천록이 세상에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연경은 세상을 향한 창문이었고,
중국은 자신들을 지탱해주던 중세 질서의 근원이었다. 인재 공 또한 중국
의 실상을 바탕으로 조선의 문제적 현실을 고쳐보려는 꿈을 갖고 있었지
만, 이미 기득권 세력의 아성으로 굳어버린 조선에서 어찌 그 꿈의 실현
이 가당키나 했겠는가. 150여년 후에야 겨우 문집의 한 부분으로 엮이어
나온 인재 공의 기록. 그 시기에라도 지식사회가 인재 공의 경계(警戒)를
받아들였더라면, 왕조는 더욱 탄탄해질 수 있었을 텐데... 후손들을 위한
그런 꿈을 기록으로나마 제대로 남겨 놓은 인물이 바로 인재 공이었다!

 

나는 십 수 년 전 인재 공의 <<조천일록>>을 발견했고, 최근 숭실의 학인
들과 함께 역주(譯註) 작업을 마친 바 있다. 그 사이에 발표한 몇 편의
논문들 가운데 두 편을 고르고 학인들의 논문을 덧붙여 묶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근래 인재 공의 정치적 활약이나 저술들에 관한 연구가 활발
해진 것은 사실이나 <<조천일록>>에 관한 논의는 아직 없는 점으로 미루
어, 그간 이 기록이 강호 학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음이 분명하다.
우국의 충심으로 점철된 인재 공의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으면
어쩌나? 서둘러 <<조천일록>>의 역주서와 연구서를 자매편으로 엮어내는
이유도 이 점에 있다.


맨처음 텍스트를 제공해주신 이현조 박사, 텍스트의 원본 이미지들을
제공해주신 서울대 규장각과 성균관대 존경각, 거친 원고들을 보암직한
책으로 엮어주신 학고방의 하운근 사장님과 조연순 팀장을 비롯한 직원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하며, 강호 제현의 일독과 질정(叱正)을 고대한다.


2020. 4.

 

백규서옥에서

조규익

 

*****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인재(訒齋) 최현[崔晛, 1563(명종 18)~1640(인조18)]은 고응척[高應陟, 1531∼1605]・김성일[金誠一, 1538∼1593]・권문해[權文海, 1534∼1591]・장현광[張顯光, 1554∼1637]・정구[鄭逑, 1543년∼1620년] 등 명현들에게 일생 배움을 받았고, 44세 되던 해 관직에 오른 이후 수많은 요직들을 거치면서 임・병 양란에 참전하는 등 국가적 위기들의 해결에 부심한 애국적 지식인이었다. 46세[1608년] 8월에는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상사(上使) 신설(申渫)・부사(副使) 윤양(尹暘) 등과 함께 명나라에 다녀왔고, 78세 되던 인조 18년(1640) 고종(考終)한 뒤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인재선생문집(訒齋先生文集)>>은 원집(原集) 13권, 별집(別集) 2권, 습유(拾遺)・연보(年譜)・부록(附錄) 등 다양한 문체의 방대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 온 기록인 <<조천일록(朝天日錄)>>은 <<인재선생속집(訒齋先生續集)>>에 실려 있다. 그 외에 가사 <용사음(龍蛇吟)>・<명월음(明月吟)>, 소설 「금생이문록(琴生異聞錄)」, 선산읍지인 <<일선지(一善志)>> 등이 남아 있다.

 

그의 생애나 관직・저술 등을 통괄할 때 ‘의병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점,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 온 점, 임금에게 여러 번 소(疏)와 차자(箚子)들을 통해 시무책(時務策)을 올린 점’ 등은 그의 <<조천일록>>과 관련하여 두드러진 행적들이다. ‘공이 사람들의 착함을 말하기 좋아하고 사람들이 잘못과 악함을 입에 올려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해(利害)에 임하고 사변(事變)을 만나면 의연하여 뺏을 수 없는 게 있었고, 마음의 공평함을 잡아 같고 다름을 따져 논하지 않았으므로 좌우의 사람들도 감히 헐뜯지 않았다는 점/일찍이 스승의 문하를 찾아 정인(正人)과 군자(君子)의 논의를 들었고, 일찍이 한강(寒岡)과 여헌(旅軒) 두 선생을 따라 놀며 학문을 연마하여 온축에 근본이 있으니, 그 수립한 바가 근본 없이 그러할 수 없었다는 점/공은 귀가 밝고 기억을 잘하여 천문・지리・병법・산수를 통해 알지 못함이 없었으므로 문장을 함에 매이거나 꾸밈을 일삼지 않았고, 산이 맥을 타고 흐르듯 끝없이 이어지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듯 기세가 왕성하여 이치의 통달로 주를 삼았다는 점’ 등을 지적한 권두인[權斗寅, 1643∼1719]의 평[「관찰사인재선생최공묘갈명(觀察使訒齋先生崔公墓碣銘)」]에도 성리학으로 배움을 시작했으되 실용학문으로 입신한 그의 철학과 학문적 성향은 분명히 드러난다. 따라서 당대 여타의 유자(儒者)들과 달리 의병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함으로써 충성심이나 애국심을 몸으로 실천했고, 그런 차원에서 그가 올린 각종 소차(疏箚)들의 진정성이나 실용성은 <<조천일록>>의 방향성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찍이 그는 임진왜란 참전의 경험을 가사 <용사음>으로, 임금에 대한 근심을 가사 <명월음>으로 각각 술회한 바 있었다. 그리고 각종 시무책에 관한 소차들을 여러 번 올린 점 등은 <<조천일록>> 텍스트의 방향이나 이면적 의미의 형성에 결정적인 단서나 바탕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이 그것들이다. 첫째, 그가 임진왜란에 참전했다는 것은 애국심의 진정성과 함께 당시 일반적인 유자들과 달리 투철하고 합리적인 국방(國防)의 방책이나 안보의식으로 무장하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따라서 <<조천일록>>에 반영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애국심이나 안보의식의 양상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인재선생문집>>에 실려 있는 15편의 소(疏)와 9편의 차자(箚子)들 대부분은 시무책에 관한 것들이다. 그것들에서 개진한 내용을 통해 시국이나 정치현실에 대한 최현의 생각을 알 수 있고, 그 내용의 요목들은 <<조천일록>>의 내용적 골자를 판별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천일록>>은 기록자 최현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나 중세 보편적 질서의 본산인 중국을 밟아보고 그곳에서의 견문을 바탕으로 자기 개혁의 처방을 만들어내고자 한 경세(經世/警世)의 기록이다.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1564~1635]의 사행록들[「무술조천록 상・하(戊戌朝天錄 上・下)」/「갑진조천록 상・하(甲辰朝天錄 上・下)」/「병진조천록(丙辰朝天錄)」/「경신조천록 상・하(庚申朝天錄 上・下」], 죽천(竹泉) 이덕형[李德泂, 1566~1645]의 <<죽천조천록(竹泉朝天錄)>>,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노가재연행일기(老稼齋燕行日記)>>,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담헌연기(湛軒燕記)>>,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열하일기(熱河日記)>>, 학수(鶴叟) 서유문[徐有聞, 1762~1822]의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 여행(汝行) 김경선[金景善, 1788~1853]의 <<연원직지(燕轅直指)>> 등 16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까지 조선조 여행문학 혹은 외교문학의 맥을 형성하던 사행록의 계보에서 인재의 <<조천일록>>은 앞자리를 차지하지만, 연행록 전성기의 막내격인 김경선 조차 ‘노가재・담헌・연암’ 3인의 사행록을 꼽았을 뿐 인재의 사행록은 거론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조천일록>>이 인재의 6대손 최광벽[崔光璧, 1728~1791]에 의해 비로소 편집・간행되었다는 것, 즉 원작은 16세기 후반에 이루어졌으되 공간(公刊)된 것은 19세기의 일인 셈이니, 사람들에게 쉽사리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재의 <<조천일록>>이 단순한 보고용으로 사용된 뒤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행록의 일반적인 패턴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을 때의 기록이었다는 사실도 그 가능성을 설명해주는 점이다.

 

최현은 당대 성리학의 학풍에 매몰되지 않고, 민생과 안보 등 국가의 현실문제들에 대하여 실용적인 가치를 추구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성리학으로 입문했음에도 성리학에 대한 저술을 남기지 않았고, 많은 소차(疏箚)들을 통해 인재등용・민생・국방 등 정치의 요체를 임금에게 간언해왔으며, 무엇보다 임진・병자 두 전쟁에 참전한 점은 그가 공리공담에 매몰되어 있던 당대 유자들의 범주로부터 훨씬 벗어나 있던 존재임을 입증한다.

 

사행기간 내내 매일매일 문견사건(聞見事件)들을 기록하고 사일기(私日記)를 부대함으로써 자신의 견해와 철학을 담고자 했는데, 그것들 모두는 ‘중국에 대한 정보’이자 조선의 국내 상황이나 외교 정책의 수립에 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었다. 제도・정책・사회풍조・민생 등의 문제, 오랑캐와의 갈등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안보 문제, 관리들의 탐풍(貪風)이나 예법의 문란을 중심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적 기강 해이의 문제, 학자나 무장(武將)을 중심으로 하는 인물 등용의 문제, 문화・역사에 대한 평가와 해석의 문제 등 중국에서 만나는 각종 물상들에 대한 기록은 조선의 왕과 지배층이 유념하기를 바라던 최현의 소망이 담긴 글들이었다. 그가 주력해오던 경세문들의 골자를 이루는 철학이나 시국관으로부터 그의 비평안이 나왔고, 그런 안목으로 중국의 문제적 현실에 대한 관찰을 기록한 결과가 <<조천일록>>이었는데, 그 점은 그가 글쓰기에서 평생 일관성 있게 견지해온 실용주의의 소산이었다.

 

예컨대 「신수노하기(新修路河記)」나 「제본(題本)」 등 중국의 관리들이 쓴 글을 비평 없이 인용한 것도 그런 글들에 제시된 정치・사회・안보・문화・인물・역사 등의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견해가 조선의 현실에도 매우 긴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에 들어서는 시점부터 업무를 마친 뒤 귀로에 압록강을 건너기 전까지 사행을 괴롭힌 탐풍(貪風)의 문제나 중국 체류 중 목격하게 된 비례(非禮)의 모습들은 조선의 경우도 현재 진행 중이거나 미구에 도래할 문제적 현실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상세히 기록하고자 한 듯하다. 그것들을 시시콜콜 나열한 것은 중세 보편주의의 근원인 명나라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역으로 조선에도 그런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학문으로서의 유학이나 유교를 가까이 하는 대신 기복(祈福)신앙으로 빗나간 비례(非禮)의 현장을 통해 유교의 순정성이 훼손되는 모습은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 경우였다. 유자이되 실용주의적 사고를 겸한 합리주의적 경세가로서의 최현이 보기에도 중국인들의 신앙은 궤도를 상당히 이탈해 있었던 것이다. 탐풍으로 인한 이도(吏道)의 붕괴, 인간적 도리나 예의를 망각한 백성들, 정책의 실패로 인한 민생의 파탄과 그로 인한 오랑캐의 침탈 등 명말 비정(秕政)의 근저에 비례(非禮)가 있었고, 그것들은 공고하게 구축되어 있던 중세적 질서를 허무는 요인들이었다. 최현은 권력의 힘으로 백성이나 타국 빈객들의 재물을 탈취하거나 오랑캐들이 침범하여 안보를 해치는 현실 등을 현장에서 목격하며 그것들이 예를 바탕으로 형성된 중세적 통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요인들로서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망국의 근원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조선 역시 지방관들의 탐학으로 민생이 어려워졌고, 안보를 소홀히 함으로써 임진왜란의 외침을 겪었으며, 그로 인해 중세질서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음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던 최현의 입장에서 그런 말기적 현상들이 중세질서의 본산인 명나라의 경우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점을 발견한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최현이 명나라 비정(秕政)의 원인으로 비례(非禮)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함으로써 유사한 상황에 빠져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조선 지배층을 경각시키고자 한 데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처럼 인재에게 중국 사행길은 단순한 여행길이 아니었고, 당연히 <<조천일록>>은 단순한 ‘사행 보고서’나 중국 여행기가 아니었다. 조선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현실적 방책이나 처방을 찾아보려는 ‘모색의 길’이자, 자신이 임금에게 올렸던 많은 소차(疏箚)들처럼 정치의 방향을 바로 잡도록 진언(進言)하는, 일종의 경세적(經世的/警世的] 기록이었다.

 

 

 

조규익・성영애・윤세형・정영문・양훈식・김지현・김성훈 공역, <<역주 조천일록>>, 학고방, 2020. 5./ 31,000원.

조규익・성영애・윤세형・정영문・양훈식・김지현・김성훈 공저. <<최현의 <<조천일록>> 세밀히 읽기>>, 학고방, 2020. 5./28,000원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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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2020. 2. 1. 23:44

선생님들께

 

그간 안녕들 하셨는지요?

'우한 폐렴'의 확산 양상이 심상치 않아,

일단 지난 번 보내드린 토요일(2020. 2. 8.)의 '공연 및 학술대회'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번 보내드린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시: 2020년 2월 8일(토) 오후 1시~6시

장소: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전수회관 풍류극장

 

그러나 저희들은 '우한 폐렴'에 무릎 꿇은 게 아닙니다.

놈이 무릎 꿇을 때까지 잠시 쉬어가려는 거지요.

 

부디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무지막지한 시간이 지난 뒤,

막 뒤에서 갈고 닦은 저희들의 솜씨를 다시 들고 나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 2. 1.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소장 조규익 올림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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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2020. 1. 29. 17:16

 

<모시는 글>

신선의 음악과 춤, 노래 속에 멋진 ‘시간여행’을...

 

                                                                                    조규익(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소장)

 

언제부턴가 우리에게는 별난 꿈이 있었습니다.

예술인들과 학인들이 가슴 가득 담고 있었으되 펼쳐 보이지 못한, 작지만 울림이 큰 꿈입니다. 악사들의 반주로 가공(歌工)과 무용수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무대. 그 무대 주변에 둘러앉은 학인들이 예인(藝人)들의 몸놀림과 또 다른 하나가 되는 경험을 통해 비로소 이지(理智)의 샘을 열고 도란도란 그들의 미학을 담론하는 자리. 세상 어디에 그보다 더 아름답고 성대한 공간이 있을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두 번의 멋진 무대를 만들었고, 이것들을 두 권의 책으로 엮어 낸 바 있습니다.

 

<지난 무대들>

“봉래의(鳳來儀): 세종의 꿈, 봉황의 춤사위 타고 하늘로 오르다!”[2013. 11. 21./국립국악원 우면당]

“동동(動動):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사랑의 염원이여!”[2018. 12. 1/국가지정문화재 전수회관 풍류극장]

 

<새 무대>

“보허자(步虛子): 허공을 즈려밟고 훨훨 나는 신선이여! 태평성세 유토피아 이루시는 제왕이여!”[2020. 2. 8./국가지정문화재 전수회관 풍류극장]

 

우리는 그동안 가꾸어 온 ‘꿈의 무대’를 이렇게 펼쳐 보여 왔고, 이번에도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앉으실 폭신한 좌석은 여러분을 모시고 그 옛날 고려∙조선시대의 궁중으로 날아갈 타임머신입니다. 좌석에 앉아 음악에 따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임금의 장수를 축원한 보허(步虛)의 예술에 잠시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시면, 여러분은 그 옛날 진사왕(陳思王) 조식(曹植)이 어산(魚山)의 동아(東阿)에서 만난 ‘신선 예술’의 경지를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맑고 심원하며 굳세고 밝은 그 소리와 춤사위를 통해 허공을 날아다니는 신선들을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 그들과의 그런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되돌아온 현실의 공간에서 우리는 다시 씩씩하고 치밀한 논조로 새롭고 아름다운 경험들을 담론하게 될 것입니다.

 

원래 보허성(步虛聲)이나 보허자(步虛子)는 중국에서 발생한 도교음악이었고,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보허사(步虛詞)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유교적 패러다임으로 변용했고, 중세적 보편성의 바탕으로 녹여내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임금이 앉아있는 궁중을 현실 속에 자리 잡은 ‘선계(仙界)’라 여겼습니다. ‘상선(上仙)’인 임금의 불로장생은 당위(當爲)에 속하는 일이었지만, ‘보허 예술’에 담아낸 만백성의 염원으로 그것은 더욱 확실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시는 여러분이 바로 임금님들이십니다. 우리 예술의 헌상 대상이 바로 임금이신 여러분들입니다. 여러 가지로 바쁘시겠지만, 잠시 이곳에 오셔서 저희와 함께 멋진 ‘시간여행자’가 되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2020. 02. 08.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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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2019. 4. 30. 13:32

 

                                                                                                                     조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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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動動: 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을 내며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에서 올해의 첫 책인 <<동동動動: 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민속원)이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학술총서 58’로 나왔다. 고려조와 조선조의 궁중 연향에서 공연되던 가∙무∙악 융합 무대예술 ‘동동’에 관한 공동저술(저자: 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이다. 이미 2015년에도 우리(조규익∙문숙희∙손선숙)는 궁중 예술 역사상 최고봉으로 인정받고 있는 ‘봉래의鳳來儀’를 유사한 관점과 방법론으로 연구한 저서(<<세종대왕의 봉래의, 그 복원과 해석>>, 민속원/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47)를 낸 바 있다. 양자 모두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들러붙어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무대공연을 갖고, 그 결과를 엮어 낸 것들이다. 전자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규모는 비록 작으나, 학계에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턱 없이’ 크다. 사실 기존의 학문적 관습이나 섹트의식에 매몰되어있는 동학들이 개권(開卷)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설사 슬그머니 열어본다 해도 가납(嘉納)될 확률은 더더욱 희박함에도 할 말이 많은 우리였다.

 

최근까지 <동동>은 국어국문학과 은사님들로부터 배운 ‘문자 텍스트로서의 동동’일 뿐이었고, 그것은 고려속요∙고려가요∙여요∙려가’ 등의 명칭으로 부르던 시문학 텍스트일 뿐이었다. 초창기 연구자들이 명칭에 대하여 갖고 있는 편견과 그로부터 확립된 논리구조가 별 수정 없이 대물림되어 내려오고 있는 형편이다. 본 연구소에서는 그런 문제를 타개하고자 문학∙음악∙무용을 연구하는 4인이 머리를 맞대고 ‘동동’ 정재의 융합적 성격을 분석적으로 고찰하기 시작했고, 작년 12월 초에 그 중간 결과를 무대로 올렸으며, 그 결과를 보충하고 다듬어 지금의 책으로 묶어내게 된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나 방향을 점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머리말을 첨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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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지난 해 12월, 우리는 그동안 공부해온 ‘동동’을 무대(“동동,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사랑의 염원이여!”/국가지정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2018년12월 1일)에 올렸다. 고려와 조선조 궁중연향에서 속악으로 연행되던 ‘동동’을 가․무․악의 융합예술 그대로 재현해 본 것이다. ‘동동’이 고려사 악지(「악 2/속악」 ‘동동’)와 악학궤범(권 3 「고려사 악지 속악정재」 ‘동동’/권 5 「성종조 향악정재도의」 ‘아박’)에 그 존재를 드러낸 것은 수백 년 전의 일. 그러나 그 맥박과 온기는 아직도 살아 있었다.

 

"마음속의 뜻을 말로 나타내면 시가 되나, 말만으로 부족하니 탄식하고, 탄식만으로 부족하니 길게 노래하고, 길게 노래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니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흔들어 춤추고 발을 움직여 뛰게 된다."

 

그 옛날 <<모시毛詩>> 「대서大序」의 이 단언斷言이야말로 훗날 ‘동동’의 예술성 해명을 위해 예비한 것이나 아니었을까? ‘말(시), 노래, 춤’ 등 메시지 전달의 수단들은 대체재代替財나 독립재獨立財 아닌 상호 보완재補完財들이다. 개별적으로보다 함께 쓰면 전달의 효율성과 예술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동동’의 융합예술미 대신 “고려속요 <동동> 운운”하며 조각난 텍스트만을 공부해오던 지난날들. 고전시가의 콘텍스트에 대한 무지가 불러 온 무명無明의 시간대였다.

 

‘동동’은 여성의 예술이다. 임에게 바치고픈 자신의 존재와 마음을 설명하기엔 ‘사랑’이란 개념어가 지극히 제한적이고 추상적이었으리라. 그래서 노래로 음악으로 춤으로 들려주고 보여주려 한 것이나 아닐까? 중세왕조의 임금이나 고귀한 존재를 대상으로 토로한 불멸의 사랑과 불변의 서정이 융합 무대예술 ‘동동’의 핵심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간이 흘러도 계절이 바뀌어도 바치는 자의 사랑은 변함없음을 가․무․악으로 표현하려 애쓴 점이 참으로 놀랍지 아니한가.

 

문학, 음악, 무용 세 분야의 행복한 융합을 꿈꾸며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를 출범시켰고, 우리 역사상 최고․최대의 궁중악무 ‘봉래의’를 무대(“세종의 꿈, 봉황의 춤사위를 타고 하늘로 오르다!”/국립국악원/2013년 11월 21일)에 올리기도 했다. 그 감동과 추억을 떠올리며 감행해본 지난 해 겨울의 그 무대는 실연實演과 연구발표를 통해 ‘동동’의 예술미학을 구현하기 위한 실험적 자리였다. 그리고 오늘, 그 결과를 이렇게 엮어낸다. ‘고려속요 동동’에서 ‘속악정재 동동’으로, ‘분리에서 융합’으로! 단언컨대, ‘텍스트 지평의 전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귀한 고악보 및 사진자료들의 사용을 허락해주신 국립국악원․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국립중앙박물관, 꿈과 땀의 결실을 아름다운 책으로 엮어주신 민속원 홍종화 사장님과 신나래 선생님 등께 감사드리며, 강호제현의 가르침을 고대한다.

 

2019. 4. 1.

 

지은이들을 대표하여

 

조규익

 

민속원, 2019. 4. 20. 25,000원

 

 

 

 

 

 

 

<부기(附記)>

 

고전시가를 연구해오면서 깨닫는 바가 없지 않았던 나는 2005년에 한국전통문예연구소를 개설했다. 그 뒤 한국문예연구소로 개명했고, 몇 년 뒤 다시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전시가들 가운데 고려속가들과 조선조 궁중악장이 원래는 정재(呈才)라는 무대예술의 한 부분인 노랫말들이었음을, 문학도라고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고, 결국 이 연구소의 개설로 이끌었던 것이다. 정재의 한 부분인 노랫말 텍스트가 흡사 전부인양 착각한 채 그 텍스트만을 공부한다는 것이 잘못임을 학계의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노랫말 텍스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콘텍스트로서의 악곡과 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문학연구자 누구도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고전시가가 어떤 양상으로 실연(實演)되어 왔는지에 대한 통합적 시각이나 시야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선학들이 드물었다. 그것들 가운데 상당수 작품들의 생산이나 향유계층이 민중이라는 사실만을 강조함으로써, 그것들이 궁중에서 임금을 비롯한 지배계층의 연향에 쓰였다는 사실은 더더욱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음악학계 및 무용학계와의 협업이 절실함을 느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탁월한 한국음악 연구자 문숙희 박사, 앞서 가던 한국무용 연구 및 실연자(實演者) 손선숙 박사가 연구소 창립 초기부터 가세하여 활발한 활동을 통해 연구소의 발전을 견인하게 된 것이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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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2018. 2. 5. 14:09

 

 

2018년도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봄 학술대회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함께 모여 학술의 새로운 조류를 체험하시고,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자유로운 담론을 펼치도록 하십시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일시: 201826() 13:00~16:00

장소: 숭실대학교 벤처중소기업센터(벤처관) 311

 

12:30~13:00 등록

13:00~13:20 개회사: 조규익(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장),  사회: 문숙희

 

기획 발표: 한국예술의 미학적 발현태,   사회: 문숙희(숭실대)

 

13:20-13:50

문학작품의 회화 표현을 통한 시대 문화 발현

발표 조인희(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연구원) / 토론 박효은(고려대)

 

13:50-14:20

순조 대 이후 춘앵전의 변모양상-1930년대 춘앵전 기록서를 중심으로

발표 김꽃지(한국전통문화연구원 연구원) / 토론 성영애(숭실대)

 

14:20-14:50

1931년 영상자료에 기초한 향령무의 재현가치

발표 손선숙(숭실대) / 토론 강기화(한예종)

 

14:50-15:00 휴식 및 정리

 

15:00-15:30

李匡師)書訣禮道의 생명미학-意象意境變奏를 중심으로

발표 김연재(공주대학) / 한윤숙(성균관대)

 

 

자유 발표,   사회: 하경숙(선문대)

 

15:30-16:00

이덕형의 <죽천행록> 재론

발표 김일환(동국대) / 김지현(광운대)

 

16:00-16:30

대립인유를 통해 본 신동엽 시와 오장환 시 연구

발표 이대성(서강대) / 박동억(숭실대)

 

 

16:30-16:50 휴식 및 정리

16:50-18:00 종합토론(좌장: 조규익)

18:00~ 만찬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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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2017. 6. 5. 23:19

 

Keynote Speech on NMT(Neural Machine Technology) by Dr. Kyunghyun Cho(Professor/New York University) in Sweden

NMT(Neural Machine Technology:신경망 번역)의 원리에 대한 설명

https://play.gu.se/media/1_xt08m5je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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