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1. 5. 5. 23:18

 

 

 

내 아무리 바빠도, ‘대통령’이란 ‘걸맞지 않은 옷을 입은’ 인간 문재인의 마지막을 기록해 두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지금까지 사관(史官)이 사초(史草)를 기록하듯, 그의 언행들을 하나하나 마음속에 기록해온 나다. 이제 종말로 다가가며 비틀거리는 그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그의 ‘쌩얼’을 내 사적 공간 블로그에 갈무리해두기로 한다. 이 기록은 이승에서의 삶을 마치기 전 내 스스로 완성하고자 하는 가칭 <<베이비 부머의 대한민국 근대사>> 마지막 장의 사료(史料)로 요긴하게 활용될 것이다.

 

그가 취임하면서 나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고, 그 후 지저분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간간이 다음과 같은 말을 그녀에게 상기시키곤 했다.

 

 

“내 말을 분명히 기억해 두소. 저 사람은 대통령으로서의 철학도 바탕도 능력도 없는 인간이오. 아니 ‘사나이로서의 기백이나 결기’ 조차도 없는, 비겁한 얼간이요. 그러니 얼마 안 가 저 사람은 ‘내가 왜 대통령을 한다고 했을까?’라고 가슴을 치며 후회를 할 것이오!”

 

 

처음에 그녀는 이 말을 수긍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이런 투의 말을 동네방네 흘리고 다니다가 위해(危害)나 당하지 않을까 염려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소극적이나마 동조하는 투로 나온다. 이제 좀 깨닫게 되었다는 뜻일까.

 

 

최근 대통령이 자신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한 젊은이[김정식/34세]를 고소한 일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개인 문재인이 아니라 ‘대통령 문재인’이 고소했기에 문제가 된 사건이었다. 참고로 그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를 인용한다.

 

 

文대통령 비난 전단 살포, 모욕죄로 검찰 송치

 

김지원 기자

 

입력 2021.04.29 03:00 | 수정 2021.04.29. 03:00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 인사를 비난하는 내용의 전단을 뿌린 보수 성향 시민단체 대표가 모욕죄로 검찰에 넘겨졌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을 배포한 보수 성향 시민단체 대표 김모(34)씨를 모욕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28일 밝혔다. 김씨는 2019년 7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분수대 주변에서 ‘민족문제인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문 대통령과 여권 인사들을 비난하는 내용의 전단을 뿌린 혐의를 받는다. 당시 김씨가 뿌린 전단 앞면에는 문 대통령을 비방하는 문구가 담겼다. 뒷면에는 문 대통령을 비롯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 등 여권 인사들의 선대가 일제 강점기 때 어떤 관직을 맡았는지 등이 적혔다. 법조계에선 해당 전단에서 문 대통령을 비방한 부분은 모욕, 나머지 여권 인사에 대한 구체적 사실이 담긴 부분은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김씨에게 적용된 혐의인 ‘모욕죄’는 피해자 본인이나 법정 대리인이 직접 고소해야 기소가 가능한 친고죄다. 따라서 법리상 문 대통령 측에서 고소장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사건 당사자인 김씨에게도 고소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누가 김씨를 고소했는지는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비방[아니 '비판'이 정확하다!] 전단을 뿌렸다는 이유로 서른넷 젊은이를 경찰에 고소했고, 수사를 끝낸 경찰은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는 것이다. 오죽 화가 났으면 대통령이 그를 경찰에 고소까지 했을까마는, 참으로 기괴한 일이다. 대통령을 비난한다고 일일이 고소하기로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7, 8할은 그 대상이 되어야 할 일 아닌가. 고소를 하고 안하고가 ‘전단에 적어 뿌렸는가’ 여부에 달렸다면, 자잘한 형식논리에 사로잡힌 말장난일 뿐이다. 보라!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실상을 알기 위해  굳이 전단사건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문재인에 대한 성토는 이미 산 높이의 종이들과 장강대하(長江大河)의 언설(言說)들로 세상을 뒤덮고 있지 아니한가. 불도저로 밀어버린들 그 산이 사라질 것이며, 성능 좋은 양수기로 퍼낸들 그 말들의 강줄기가 말라붙을 것인가.

 

그 전단지 사건이 2019년도의 일인데, 어찌하여 그보다 2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 같은 필부들에게까지 알려졌는지 알 수는 없다. 짐작컨대 형편없는 이 정권이 언론의 숨통을 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언론의 숨통을 쥐고 임시방편으로 틀어막을 수는 있지만, 때가 되면 알려지게 되어 있다는 점을 이 사건은 분명히 보여준 셈이다.

 

설사 김정식 씨가 전단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도 대통령 스스로 그를 고소하는 일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사실을 적고 있음에도 ‘모욕혐의’로 걸어 젊은 국민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행태를 대통령이 보인 점은 참으로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은 대통령의 ‘자격 없음’과 국민을 멱살잡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대통령의 저급성’을 만천하에 유감없이 드러낸 일이자 국민적 자괴감을 촉발시킨 치명적 사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2021. 5. 5.], ‘고소를 취하 한다’는 대통령의 뜻을 대변인의 발표를 통해 듣게 되었다. 그 발표를 아무리 뜯어 보아도 경솔한 행위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는 없었고, 그 젊은이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적반하장의 말만 들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이 요구한 ‘성찰’의 의무를 도로 대통령에게 돌려주는 그 젊은이의 반응이 나왔는데, 그 내용이 크게 돋보였다.

 

페이스북에서 김정식 씨의 글을 찾아 읽으며, 대통령의 일그러졌을 표정이 떠올랐다. 사실 대통령이 정상이라면, 자신이 이런 젊은이를 상대로 고소한 일에 대하여 심히 자책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에게 ‘성찰’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런 대통령의 요구에 대하여 김정식 씨가 응답한 내용을 보며 나의 내면에는 감동과 함께 누군가에 대한 적개심이 동시에 일었다. 아, 그가 대통령을 이겼구나! 그것도 KO로!

 

무엇보다 김정식 씨의 글은 어른스러웠다. 조목조목 문재인을 다독이며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배려가 돋보였다. ‘먼저 누가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지’를 문재인에게 조근조근 알려주는 대목에서 나는 무릎을 치고 말았다. 말하자면 그는 뻗어오는 스트레이트를 맞받아침으로써 대통령을 KO 시킨 것이다.

 

이런 젊은이가 있어서 망가진 나라에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가 쏘아 올린 것은 ‘국가 질서 회복’의 희망적 신호탄이지만, 문재인에겐 자멸을 알리는 조종(弔鐘)이다. 또 이 일이 단순히 늘 있는 자잘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만은 아니다. 이 사건은 문재인의 민낯을 분명히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문재인 정권 붕괴의 신호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문재인의 ‘고소취하’ 발표에 대한 김정식 씨의 답글을 여기에 들어둔다.

 

 

 

김정식

 

*

어제 대통령의 '모욕죄 고소 철회 지시'에 대한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을 언론으로 접하고 답변을 남깁니다.

 

우선, 국민을 적폐ㆍ친일ㆍ독재 세력과 독립ㆍ민주화 세력으로 양분하여 나라를 반으로 갈라놓는 듯 한 정부와 여당의 행태에 분노해 대통령의 선친께서 일제시절 친일파가 아닌 이상은 불가능한 공무원 신분이었다는 의혹 등에 대한 답을 듣고자 했을 뿐인데, 개인의 입장에서는 혐오와 조롱으로 느껴지고 심히 모욕적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정상적인 이웃 국가의 기업을 '극우' 등의 표현을 빌어 규정짓는 행위는 국격 훼손 및 외교적 마찰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지양할 것을 당부드리며, 국격과 국민의 명예에 해악을 미친 것이 이웃 국가를 적대시하는 발언을 일삼으며 본인의 SNS 계정에는 해당 국가의 차마 입에 담지 못 할 음란한 영상 표지를 올렸다가 5분만에 삭제하고 제대로 된 해명조차 없는 대통령인지, 그 내용을 통해 '국민 모욕과 국민 분열을 멈추라'는 표현을 한 사람인지에 대하여 숙고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남북관계 등 국가의 미래에 미치는 것은 말장난 같은 지지결속용 쇼가 아니라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 개개인이 상대 국가보다 더 큰 경쟁력을 갖고 부강해지는 것임을 인지하여주시고,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의도와 능력을 가지고 온갖 위협을 가하는 '집단' 혹은 '국가'에 대한 방비는 '민족'이나 '큰 산봉우리'같은 단어에 매몰되지 마시고 정부차원에서 더욱 엄중하고 철저히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이지만 누구에게도 침범받지 않아야 할 인격과 행복추구권을 침해당한 것에 대해, 비록 저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는 하나,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자 같은 남성으로서만큼은 심심한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 복잡한 근대사를 진영의 이익을 위해 멋대로 재단하며 국격과 국민의 명예, 국가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행위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6년 11월 26일, "군대 안 가고, 세금 안 내고, 위장전입하고, 부동산 투기하고, 방산비리하고, 반칙과 특권을 일삼고, 국가권력을 사익 추구 수단으로 삼은, 경제를 망치고 안보를 망쳐 온, 이 거대한 가짜 보수 정치세력을 횃불로 모두 불태워버리자"며 대통령이 촛불시위대 앞에서 직접 했던 발언을 귀감삼아 혹여 스스로 불태워져야 하는 진영의 수장이 되지 않도록 유념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

개인의 입장에서는 나름 오래 기억될 만 한 일이 마무리되는 듯 합니다.

비록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나 이미 흐릿해진 기억들이지만, 되짚어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해 봅니다.

 

논어에 '군자의 마음은 평탄하고 너그러우며, 소인의 마음은 항상 근심에 차 있다(君子 坦蕩蕩, 小人 長戚戚).'는 말이 있지요.

 

이번 일로 인해 저의 마음엔 한동안 근심이 깃들었고, 모욕죄 고소를 취하까지 해주시는 너그러운 절대권력자 대통령의 마음은 평탄하였으니, 대통령은 군자에 가깝고 저는 소인에 가깝겠지요?

 

나름의 대의와 명분이 있었다고는 하나, 당시 정부여당의 반일감정 조장과 국민 갈라치기를 막고자했던 개인적 목표는 제대로 달성하지 못 하고 오히려 세상을 시끄럽게 한 것만 같아 부끄럽고 민망함이 남습니다.

 

저로인해 이번 사건에 함께 휘말려 기소의견으로 송치되었음에도 묵묵히 뜻을 모아주신 두 명의 나의 동지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응원해주시는, 마음을 나눠주시는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20. 3. 22. 01:13

 

                                                                                                                                                    조규익

 

박근혜가 탄핵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무능함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대 진영에 의해 ‘대통령 탄핵’의 사유가 날조되었고, 그들이 불법으로 동원한 이른바 ‘촛불 시위대’의 협박에 비겁한 대법관들이 꼬리를 내린 결과가 탄핵으로 귀결되었다고, 지금까지 그의 진영에서는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설사 부분적으로 그런 점을 인정한다 해도, 당시 박근혜의 상황 대처 모습에 대하여 나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실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처음부터 변함없는 보수 쪽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박근혜가 대통령 자격을 흡족하게 갖추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홀로서기’를 할 수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었고,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원천적으로 그에겐 내가 생각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카리스마’가 없었다. 순발력 있는 상황판단과 결단력, 설득과 포용의 인간적 매력, 시대의 변화를 읽을 줄 아는 최소한의 예지력, 권력에의 선한 의지 등을 바탕으로 시운(時運)의 도움을 만나야 비로소 대통령으로서의 카리스마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당시 나는 투표장에서 그를 찍었다. 사실 당시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 모두 내 기준에 부합하는 ‘대통령감’들은 아니었다. 처음엔 투표장에 가지 않으려 했다. 좀 우스운 고백을 하자면, ‘박정희 숭배자’에 가깝던 노모의 소원을 들어드리는 것이 불효자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소박한 생각에 결국 박근혜에게 한 표를 던지고 말았다. 몸속에 중병을 안고 계시면서도 ‘박근혜 당선’의 소식에 파안대소를 하시던 어머니의 표정을 뵈며 ‘내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박근혜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문재인은 그 자리를 ‘꿰어 찼다’

 

***

 

나는 원래부터 문재인에게 아무런 기대도 갖고 있지 않았다.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에 가까운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에 대한 원천적인 환멸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노무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나는 취임 직후부터 우왕좌왕하며 문제를 야기하던 노무현을 싫어했다.

 

나도 ‘흙 수저’ 출신으로 이 땅의 ‘운명적 비주류’이기 때문에, 당시 혜성 같이 등장한 노무현에게 작지 않은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다. 부디 그가 조심조심 ‘기득권 주류세력’을 다독여 가며 연착륙 해주기를 바란 것이 내 진심이었다. 대한민국 정치판의 험난함이야 꼭 정치를 해본 사람만 아는 사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가 큰 충돌 없이 ‘주류세력 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룩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당시 좌파 개혁세력의 역량이 실제로 모자랐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나는 기득권 주류세력에 대한 노무현의 콤플렉스와 조급증이 오히려 일을 그르친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이 점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른 자리에서 거론하기로 한다.]

 

대통령 노무현의 실패에 큰 역할을 했으리라 보는 것이 문재인이다. 노무현은 200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했고, 문재인도 똑 같은 시점에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이 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4년 3월부터 연말까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1년 뒤인 2005년 1월부터 2006년 5월까지 다시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그리고 2007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1년 동안 비서실장으로 노무현의 곁을 지켰다. 문재인이 노무현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2008. 2.~2013. 2.]에 이어 들어선 박근혜 정권[2013. 2.~2017. 3.]이 탄핵되면서 문재인 정권[2017. 5.~]이 들어섰고, 현재 임기 만 3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박근혜 정권 출범 1년 남짓 만인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사고가 터졌고, 그로 인해 박근혜는 임기 내내 사고의 마무리를 두고 야당과 좌파세력에게 끌려 다니게 되었다.

 

***

 

나는 세월호 사고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한 피해 학생의 아버지가 광화문에서 벌이던 단식농성 사건을 잊지 못한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대표 문재인이 ‘단식을 중단하도록 그를 설득하겠노라’며 천막을 찾았다. 그런데 천막에 들어간 문재인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피해학생의 부친과 함께 앉아 단식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무리 설득해도 학생의 부친이 말을 듣지 않아서 자신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함께 단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의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들을 했지만, 그에 대한 언론의 분석들이 어떠했는지 기억할 수도 없다.

 

 

그러나 당시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있게 문재인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애당초 학생의 부친을 설득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쉽게 설득당할 거라면, 애당초 광화문에 천막을 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공당(公黨)의 대표로서 어떻게 처신했어야 할까. 제1야당의 대표란 여당의 상대가 되어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정을 조율해 나가야 할 자리 아닌가. ‘내가 국회의원들과 협의하고 정부와 싸워서라도 해결책을 모색할 테니, 나를 믿고 빨리 단식을 끝내라’고 당부한 다음, 국회로 돌아가 동분서주하며 해결책을 찾았어야 마땅한 일 아닌가. 말끔한 얼굴로 농성천막에 들어간 뒤 수염이 더부룩해지도록 여러 날 단식하고 앉아 있는 그에게서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를 읽어낼 수는 없었다.

 

사람에 대한 동정도 중요하지만, 그건 장삼이사(張三李四) 모두가 지녀야 할 선한 마음일 뿐이다. 그 학생의 아버지를 동정하여 함께 벌여야 할 동조단식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지, 국정을 맡아야 할 지도자의 처신은 아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간도 못하는 사람에게 대통령이란 크나큰 직임(職任)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철학이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가 혹시 ‘선한 사람’일 수는 있지만, 한 나라의 운명을 지고 나갈 지도자는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노무현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첫 평가에 이은 두 번째 평가였다.

 

***

 

자타가 평가하는 대로 그는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짐작한 바와 같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그가 질러대는 헛발질은 처음부터 가관이었다. 내 기억에 남는 것들은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제, 주 52시간제, 탈 원전’ 등 섣부르고 민감한 경제정책들 뿐이다. 겉멋만 잔뜩 들어있는 이 어휘들은 극소수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논문 쪼가리’나 좌파들이 제작한 '감성 만땅'의 영화를 보고 즉흥적으로 잡게 된 문재인 경제정책의 키워드들로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방향타가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북한과 섣불리 체결한 ‘군사합의서’는 안보의 근간을 허물었고, 그 합의서 체결 이후 북한의 각종 장・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일상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 형편없는 국제인식에 무능하기 짝이 없는 외교장관이 가세함으로써 ‘대미・대일・대중・대아세안’ 등 우리나라 전통외교의 주축이 모두 내려앉았다. 즉 한 정부 혹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임 사안인 국방・경제・외교 등을 짧은 시간에 송두리째 ‘말아먹은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유능한 후속 대통령만 뽑힌다면 시간이야 많이 걸릴지라도 얼마간 복구할 수 있는 문제들일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이 자행한 ‘씻을 수 없는’ 최대의 죄과가 있으니, 바로 ‘국민 분열’을 앞장서서 선동한 점이다. 문재인은 취임하자마자 이른바 ‘적폐청산’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전 정권의 인사들을 탄압하고 그 시기의 정책들을 폐기하기 시작했다. 그 대상 또한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분야의 인사들을 망라했다. 이미 사법적 판단을 받은 사건들도 다시 들춰내어 탈탈 털기 시작했다. 문재인의 눈으로 보기에 전 정권의 인사들은 모두 나쁘고 부패했으며, 정책들은 폐기되어야 했다.

 

모르고 그랬는지 알면서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급기야 문재인 일파도 그러한 아니 그보다 훨씬 부정한 일들을 자행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것을 사람들은 ‘내로남불’ 혹은 ‘문로남불’이란 속어로 풍자하고 있지만, 이미 ‘게이트’ 수준으로 확대된 많은 사건들이 이런 점을 웅변으로 입증한다. 자신들의 말을 고분고분 따를 것이라 기대했던 검찰총장이 원칙대로 밀고 나가려 하자, 취임 초엔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그를 ‘검찰개혁’이란 미명으로 정권과 지지자들을 총동원하여 밀어내고자 안간힘을 쓰는 ‘코미디’가 대명천지에 1년 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이 점은 너무 식상한 일이 되었으므로, 이 자리에서 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그렇다면, 애당초 문재인은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처신했어야 하는가. 어떻게 처신했어야 성공적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가. 아니, ‘모자란 자질의’ 그가 성공한 대통령은 되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탄핵의 구덩이에 빠지거나 지탄을 받지 않고 ‘임기만이라도 채우려면’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그는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어야 하고, 또한 실천했어야 한다.

 

 

“우리 헌정사에는 부끄러운 오점들이 많습니다. 나라를 위해 잘 해보려다 그런 오점을 남긴 경우들도 있고, 개인의 욕망 때문에 오점을 남긴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전 정권들의 잘 한 점들을 적극 수용하고, 잘 못한 점들을 적극 고치겠습니다. 저와 이 정부는 이 전 시대의 잘못한 점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일들을 지금 법규의 잣대로 다시 재어 그 책임자들을 벌함으로써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부로 지난 시대의 과오를 모두 용서하고, 국민 단결의 출발선에 서도록 합시다. 온 국민의 촛불은 ‘화합의 신호탄’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일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선거 과정에서 저를 지지한 분들이나 지지하지 않은 분들 모두 이 나라의 소중한 국민들입니다.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어 갈등을 벌여 온 지난 시기의 어리석음은 우리가 버려야 할 가장 큰 적폐입니다. 그런 갈등을 오늘의 취임식을 계기로 모두 해소하고, 한 마음이 되어 국가 발전에 매진합시다.”

 

 

대통령의 어법은 화합과 용서를 바탕으로 해야 하고, 검찰총장의 어법은 ‘정의 구현’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국방부 장관의 어법은 ‘국가 안보를 통한 국민의 안심’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대통령이 증오를 갖고 어느 한 편을 징치(懲治)하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 밑에 도열한 공직자들 모두는 증오와 징치를 행동수칙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나라는 완벽하게 두 패로 갈리게 되었고, 문재인은 대통령 아닌 ‘문패’의 두목으로 전락하여 두목 없는 나머지 국민들을 두들겨 패는 ‘깡패’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경제나 외교의 실패보다 훨씬 치유하기 어려운 것이 ‘국민들의 분열’이다. 정권의 연장을 위해 국민의 ‘융합’보다 ‘분열’이 훨씬 쓸모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 바에야, 어찌 지금같은 대한민국의 문제적 현실이 대통령의 손과 머리에서 빚어질 수 있단 말인가. 문재인은 지금 국민 반쪽의 확고한 지지만 받으면 무슨 짓을 해도 탄핵 당하지 않을 수 있고, 정권을 무한 연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현재로선 다른 무슨 문제들보다 바로 이 점이 문재인의 죄를 무겁게 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

 

대통령 탄핵이란 국가의 큰 불행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 땅에서 그런 불행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미 ‘그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는 불안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검찰개혁’이란 미명 아래 자행되어온 많은 부조리들이야말로 대통령 주변이나 그의 지지자들도 이미 그런 위험이 박두했음을 감지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어떻게 이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대통령 스스로 대오각성(大悟覺醒)하여 잘못을 고백하고, 개선광정(改善匡正)의 길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부디 지금이라도 문재인은 은폐와 사술(邪術)의 뒷골목에서 허둥대지 말고, 햇볕 내려 쪼이는 대로(大路)로 과감하게 나서야 할 것이다.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19. 9. 22. 19:42

                                                                                                                                                             조규익

 

 으레 ‘조씨’는 ‘趙氏’려니 했는데, 얼마 전에 ‘曺氏’임을 알고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조 장관 선친의 항렬이 ‘현(鉉)자이니, 장관이 내 손자뻘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문중에서 고관하나 나왔구나!’했는데, 마냥 자랑스러워 할 상황이 아님을 깨달은 요즈음. 눈 뜨고 귀 열기가 부담스러워졌습니다. 더 이상 인내해서는 안되겠다 싶어 몇 마디 고언을 전하고자 합니다.

 

 최근 아파트 놀이터를 지나다가 초등학교 아이들이 재잘대는 말 속에서 언뜻 ‘조국’이란 단어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말끝에 깔깔대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미루어 결코 좋은 말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꼬마들이 공부나 학교교육을 통해 ‘조국이 우스운 인물’임을 알게 되었을 리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집안에서 툭하면 내뱉는 어른들의 말을 들었거나, 연일 TV나 인터넷 포털 등에 도배되는 조 장관 관련 기사들을 접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어른들은 이미 조 장관의 이름에 식상해 있고, 이제 초딩들까지 입에 올릴 정도면, 장관은 이미 ‘전 국민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안주나 횟감이 되어 있다고 말할 만합니다. 그런데, 어느 담소 자리에 가도 장관을 쓴 소주의 안주로 삼거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욕설의 대상으로 삼을 뿐, 단 한 마디 칭송이나 방어의 말은 들을 수 없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일부 과격론자들의 술자리들에서 ‘조국 체포조 결성’ 농담도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상황이 나빠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해결 책 없이 조금 더 지날 경우, 상황이 극적으로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사고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상황판단이 매우 안이하다는 점. 그게 조 장관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매일 터져 나오는 혐의들[그 중에는 혐의의 수준을 넘어 꼼짝없는 사실들로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임]의 바다에서 용케 익사하지 않고 버텨 나가는 모습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나날입니다. 조 장관은 아주 강한 멘탈리티의 소유자이거나 ‘공감능력 제로의 칠푼이’, 둘 중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느 경우라 해도 지금 저를 포함한 이 나라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미구에 도래할 비극을 예견할 수 있고, 조만간 목격하게 될 비극의 참상과 그로 인한 연민을 이겨내기 위한 ‘자기방어 메커니즘’을 슬슬 준비하고 있다는 점쯤은 알아주기 바랍니다.

 

 모든 비극의 근원은 ‘욕망’입니다. 저는 최근에 얻어 들은 가족사와 개인사를 통해 조 장관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욕망의 본질을 나름대로 분석하게 되었습니다. 조 장관이 자식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는 과정에서 부모가 저질러선 안되는 ‘반생태적・반인간적・반윤리적・반사회적’ 판단이나 행위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부와 권력의 추구 등은 결국 조 장관이 태어나고 자라온 과정에서 물려받은 생존본능의 발현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엊그제인가요? 조 장관과 함께 공부한 82학번 친구가 이렇게 술회했다지요? “조 장관은 운동권이면서도 그리 철저하게 운동하지 않은, 이른바 '반(半)운동권'인물”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현 대통령이 ‘얼치기 좌파’임은 '공인된' 한국 좌파운동의 대부 한 분이 이미 폭로한 바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제대로 된 운동권’이었다면, 지금 그 정도의 권좌에 앉을 수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운동에 모든 걸 걸고 나섰다면, 역사의 ‘거름’으로 분해되어 전설이 되었거나 간신히 역사책의 한 줄 기록으로 남는 데 불과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수고와 보상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역사를 살아왔다면, 그 운동권의 대부가 권력과 부를 차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이 역사이고, 또 그런 점이 역사의 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치기들은 역사가 수여하는 전리품을 독식하기 위해서 운동권의 명찰만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진짜 운동가들’의 희생을 통해 남겨진 전리품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한 대통령이나 조 장관 등은 ‘얼치기 운동가’들에 불과합니다.

 

  ‘진짜 운동가들’의 내면은 진심이나 진실로 가득 차 있어, 더 이상 현실적인 욕망을 채울 공간이 없지만, ‘얼치기 운동가들’의 내면에는 빈 곳이 많습니다. 그들이 필사적으로 권력과 부를 거머쥐고 싶은 것도 그 내면의 공간이 허전하게 텅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채우기 위해서라면, 가족도, 부모형제도, 친구도, 민족도 안중에 있을 턱이 없습니다. 이런 얼치기들일수록 치밀한 이론으로 치장한 멋진 위장막을 만들어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늘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구사하기 마련인 미끈한 언변을 ‘최종병기’로 갖춘 그들입니다. ‘조 장관의 말 가운데 90% 이상이 거짓’이라거나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 그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사람들의 평가도 그런 점을 뒷받침합니다.

 

이제 조 장관은 ‘얼치기 운동권’의 위장을 벗고 진정한 아버지와 남편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어떤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든 더 이상 장관으로서 나라의 법무행정을 총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장관직을 억지로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하고 급한 것이 가족을 본래의 자리로 모으는 일입니다. 자신의 죄를 서둘러 고백한 뒤 사법적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책입니다. 그러자면, 장관직을 던져 버려야 합니다. 누가 집어가든 장관직을 수행할만한 인재는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만약 지금도 장관직에 미련을 갖고 있다면, 그건 조 장관과 가족들을 속속들이 파괴하고, 종국에는 이 정권까지 산산조각 내게 될 것입니다.

 

자랑스런 선조 남명 조식(曺植) 선생은 <민암부(民巖賦)>에서 ‘백성은 물과 같아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는 <<순자(荀子)>> 왕제(王制) 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백성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하라’는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어쩌면 요즘의 시국을 미리 점쳤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조 장관이 권력에 미련을 둘수록 오점은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 즉시 맞지 않는 옷을 벗어던지고, 부디 인간 본연의 양심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 12. 16. 01:37

국가부도의 아수라장을 뒤돌아보며

 

 

                                                                                                         조규익

 

 

                         

 

 

 

음울하고 처참했던 1997년의 겨울.

 

날만 새면 굴지의 기업들이 쓰러졌다는 소식과 일가족 자살 같은 끔찍한 뉴스들이 귓전을 때렸다. 이미 재계 14위 한보는 무너졌고, 진로도 재계 4위인 기아도 무너졌으며, 2위인 대우도 막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러니 이들보다 규모가 작은 무수한 기업들은 물어 무엇하랴! 가장의 실직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족들이 한파에 내몰리는 등 나라 전체가 상갓집 분위기였다. 자살률도 OECD 국가들 중 최고로 치솟았다. 곳곳에 곡성이 울렸고,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자기 한 몸 추스르기에도 버거운 시련의 시절이 계속되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층의 리더십은 간 데 없고, 그 많던 사회의 지도 그룹들도 종적을 감추었다. 불쌍한 국민들만 각자도생의 벌판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나는, 아니 우리 가족은 19981월 미국(UCLA)으로 첫 연구 년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떠나기로 되어 있었으나, 1997년 12월까지 확실한 것은 4인 가족 비행기 표를 사놓은 일 뿐이었다. 가족들에게 차마 말은 못했지만, ‘떠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혼자서 속을 끓이고 있었다. 고맙게도 19972LG연암재단 해외연구교수프로그램에 선발되었고, 98년 출국을 위해 착착 준비를 진행하고 있던 참이었다. 당시 연암재단 지원금 25,000불은 큰돈이었다. 4인 왕복 비행기 표와 건강보험료까지 계산하면 3만 불이 훌쩍 넘는 거금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10월 중 연암재단으로부터 선금 12,500불에 해당하는 원화가 입금되어야 했다. 그러나 소식이 없었다. 매일 아침 뉴스에서는 환율 고시가 나왔다. 연초 800원대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재단의 오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음성 역시 가라 앉아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환율을 보고 있는데, 환율이 조금이라도 안정되면 송금해주겠노라고 했다. 거기에 대고 독촉할 배짱은 없었다. 평소 LG는 무너질 수 없는 회사라고 믿어왔지만, 대우가 흔들리는 마당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11월이 되면서 1,600~1,700원을 오르내리던 환율은 12월이 되자 1,800원대를 찍기 시작했다. , 나라가 드디어 망하는구나! 123일 깡드쉬 IMF 총재와 임창렬 총리 사이에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되면서, 대한민국은 IMF 치하로 들어갔고, 환율도 1,830~1,850원대를 오르내렸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 재단에서 1,830원대에 12,500불에 해당하는 원화를 송금해주었다.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인천공항에 나갔으나, 개미들처럼 커다란 이민 팩 서너 개를 밀고 일가족이 나타난 건 우리뿐이었다. LAX에 픽업 나온 배광복 선생 부부는 우리가 미국행을 포기한 줄 알았다고 했다. 당시 미국의 대학으로 오는 가족단위 한국인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기 때문이었다만약 LG 연암재단의 배려가 없었다면, 우리도 당연히 미국행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 체류 13개월 동안 늘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인터넷으로 전해지는 고국의 소식들은 언제나 끔찍했다.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모르고 방만하게 지내온 우리 모두의 탓이라는 반성도 있었지만, 순진한 장삼이사들이야 무슨 수로 세상의 변화를 알아 미리 대처하겠는가.

 

IMF 통치를 받기 시작한 1998년으로부터 만 20년이 지나고 있다.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치욕적인 IMF의 기억을 지금의 상황에 대입하면 상당 부분 들어맞는다. 우리는 지금 그 때와 큰 차이 없는 상황으로 내닫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엊그제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기본은 튼튼하다고 장담했다. 그 말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은 튼튼하다고 호언하던 당시 정부 관계자들의 말과 어찌 그리도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가. 소상공인들이 퍽퍽 나가떨어지고,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못 잡으며, 대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는 지금의 상황이 어째서 걱정 없는 상태란 말인가. 과연 지금의 대통령은 무슨 신통한 방책이라도 갖고 있는가. 사악한 정치인들의 인기놀음에 멍드는 건 서민들뿐이니, 과연 저들의 말을 믿어도 될 것인가.

 

***

 

오늘 국가부도의 날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것은 내 가슴의 트라우마를 지우고 싶어서였다. 집단적 트라우마를 왜 내 작은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하는지 답답할 때가 많다. 늘 팽팽한 긴장 속에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나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이젠 좀 털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유사한 상황이 닥친다면, 당당하고 똑똑하게 사태의 진실을 인식하며 용감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 속의 김혜수처럼...

 

어쨌든 이 영화, 참 좋다.

 

<2018. 12. 15.>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7. 5. 4. 17:23

 

투표권 '자가 박탈'의 변  

 

 

 

목하 대통령 선거운동이 진행 중이다. 며칠 남지 않은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번에 나는 내 투표권을 스스로 박탈하기로 했고, 아내가 내 판단과 결정의 증인이 되기로 했다. 성년 이후 대통령 선거를 위한 투표에 여러 번 참여했지만, 결과가 만족스러운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설사 당선되었다 해도 그 직책을 만족스럽게 수행하는 대통령이 없었다. 최근의 탄핵사건은 그 비극의 정점이었다. 그러니 투표장에서 붓 뚜껑을 들었던 내 손과 그 손을 움직인 내 판단력이나 탓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래서 이번엔 스스로에게 한시적 공민권 박탈의 실형을 내리기로 한 것이다.

 

참 후보들에게 불만이 많다. 대통령이란 분명 도덕군자도, 박식한 학자도, 순발력 뛰어난 전장의 장수도, 능숙한 행정가도, 출중한 장사꾼도, 말솜씨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웅변가도, 글 솜씨로 사람을 움직이는 문필가도 아니다. 그러나 대중은 이 모든 것을 합친 능력자를 대통령으로 뽑길 원한다. 나보다 나은 인격과 능력을 갖춘 인물을 뽑고 싶어 한다. 그런 인간만이 우리를 대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기준이 뒤죽박죽으로 뒤엉겨 그냥 아무나뽑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보면 ×하나를 대통령으로 뽑아 놓고 매일매일 어안이 벙벙해 하는어떤 나라처럼 되는 것 아닌가.

 

후보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행적을 뒤져보라. 얼마나 구린 구석들이 많은가. 뻔한 질문에 답변이 궁색하여 진땀 흘리는 모습들을 보라. 거칠 것 없는 나에 비해 그들은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가. 둔사(遁辭)를 농하며 상대가 파놓은 덫을 빠져 나가려는 가련한 몸짓들을 보라. 아무도 무언가를 추궁하지 않는 달달보살인 나에 비해 그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긴장된 삶을 살아가는가.

 

그들도 대통령(후보)이란 허울을 벗겨 놓으면지극히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 가운데 하나이리라. 진실은 바로 거기에 있다. 겸허한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대통령직을 수행하고자 하는 결기(決氣)만 있다면, 대통령으로서 충분하다. 내가 매일 만나는 친구들이나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만나서 나누는 정담(政談)’은 정치인 누구 못지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 후보들의 도덕과 상식 수준보다 이들이 훨씬 우위에 서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끔 친구들 중의 하나에게 대통령의 허울을 씌워서 청와대에 들여보내는 상상 유희를 즐기곤 한다. 그들 중의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아도 탄핵으로 쫓겨난 그녀나 지금 그 대통령직을 차지하기 위해 부나방처럼 달려든 15명보다야 낫지 않겠나 생각한다. 누구 말대로 이번에도 어느 사기꾼이 대통령으로 뽑히나’, ‘국민을 얼마나 괴롭게 할 것인가라는 불안감 때문에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는 속담만 원망스러울 뿐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7. 3. 24. 12:27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님께

 

 

 

 

탄핵 소추가 의결되면서부터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국정수행에 대해서도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고, 일부 정치세력들의 무리한 딴죽걸기 또한 없지 않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나날이시겠지요. 그러나 비록 한시적인 대행이라 할지라도, 국가원수로서 하셔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제 미국의 매티스 국방장관은 상원 세출위원회 국방소위 청문회에서 중국이 주변 국가를 조공국가 대하듯이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두 가지 상념이 떠올랐습니다. 미국의 집권세력이 비로소 동북아의 정치외교적 상황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갖기 시작했다는 점, 상대적으로 역사와 현실의 상관관계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우리의 현주소를 내 스스로 아프게 파악했다는 점 등입니다 

 

우리는 왜 중국의 시대착오적 패권주의의 악행(惡行)’을 두 눈 멀뚱멀뚱 뜨고 바라보기만 해야 할까요?패권국가란 쉽게 말하여 깡패국가란 뜻일텐데요. 한낮의 대로 위에서 깡패에게 얻어맞으며 똑 같이 깡패처럼 대응할 필요는 없다 해도, 논리 정연한 꾸지람 한 번 건네지 못하는 현실이 통분하여 일개 민초인 저로서는 편안히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세계를 향해서 입을 열 때마다 화평(和平)’을 말하고, 미국의 보호무역을 비판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거짓구호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그 반대의 뻘짓들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흡사 범죄자들이 문서의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귓속말로 속닥거리듯, 자국의 모든 분야 일꾼들에게 한국을 응징하라는 구두지령을 내린 바 있고, 일당독재의 나라답게 그 명령을 받아 기계처럼 움직이는 중국 사람들입니다 

 

공자와 맹자를 낳은 나라라고 믿어오던 중국과 전쟁 없이 살기 위해굴욕에 가까운 저자세 외교로 중세 이래 근대까지 정체성을 근근히 유지해 온 우리민족입니다. 그로부터 무려 2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런 불평등의 관계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오랜 역사의 관성(慣性) 때문일까요? 아니면 힘의 불균형을 바탕으로 한 현실의 부조리때문일까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동(깡패 짓’)을 놓고 볼 때, 시진핑이 말한 화평굴기(和平崛起)’란 '근대 이전 중화제국의 재건 혹은 회복을 염원하는 몽상(夢想)이라 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이 부조리한 현실의 본질을 저 같이 하찮은 민초도 잘 알고 있는데, 하물며 국가원수이신 황 대행님께서야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미국의 국방장관이 먼저 이런 문제를 아프게 지적하고 말았습니다. 그 지적을 시대와 역사에 둔감한 중국의 지도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한편으로 사이다처럼통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그 말은 먼저 우리 국가원수의 입에서 점잖으면서도 조리있게 표출되었어야 합니다. 혹시 그 언급이 음으로 양으로 매티스 장관과의 교감 하에 생긴 일인가요?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의도치 않게 <<삼국지>>에서 왕윤이 여포를 시켜 동탁을 죽인 것같은, 일종의 차도살인(借刀殺人)’의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더더욱 떳떳치 못한 일입니다

 

, 이쯤 해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우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발뺌해도, 사태는 백일하에 드러났을 뿐 아니라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나아갔습니다. 어쩌면 지금 양국 정부가 출구를 찾기 위한 물밑 교섭을 진행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분노와 무력감에 빠져있는 국민들을 위하고 비정상적인 중국 지도층의 사고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국가원수인 대행께서 즉시 나서셔야 합니다. 약간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중국의 지도부와 우리 국민들을 상대로 담화문이라도 발표하셔야 합니다. 매티스 장관이 말한 중국의 '패권국가적 태도'는 대행께서 지적하셔야 할 내용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이젠 당신들의 조공국이 아니라는 것, 이제부터는 화평과 선린우호의 태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조속히 정상국가로 돌아오길 기다린다는 것' 등을 조용하지만 엄숙한 어조로 중국에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비이성적 태도로 상처를 입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순리로 그들을 설득하는 동안 국가의 힘을 동원하여 민생을 안정시킬 것이니, 잠시 정부를 믿고 인내해 달라' 당부를 건네는 것이 옳습니다. 대외적인 식견이나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대선 후보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현실이 무엇보다 답답한 요즈음입니다. 그러니 중국이 좋아할 '우물 안 개구리'가 새 대통령으로 등장하기 전에 저들을 향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 두셔야 합니다.      

 

덩치만 크고 속이 좁은이웃을 달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은 역사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당당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은 자손만대 저 나라와 이웃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숙이고 들어가는 것은 하지하책(下之下策)’도 되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그들이 말도 안 되는 행패를 부리고 있는 점에 대하여 지금 온 국민이 공분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보다 더 중한 국사가 어디에 있을 것이며, 이 문제의 해결보다 더 큰 국가원수의 책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소수의 정파나 인사들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 뒤에서 응원을 보내고 있으니, 대행께서는 부디 힘과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