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1. 1. 12:09

 

 

Daum 이미지에서

                                                                                                                                                                                                                              백규

 

 

기해년이 뒷산으로 넘어가고 경자년이 앞산에서 넘어왔다. 돼지해가 가고 쥐해가 된 것이다. 돼지도 풍요와 다산(多産)의 동물이지만, 쥐는 거기에 ‘근면성’까지 더하는 동물이다.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쥐에 관련되는 경험과 일화들을 적지 않게 갖고 있다. 우리는 1년 내내 쥐와의 신경전을 벌였다. 추수가 끝나는 늦가을부터 곡식을 두고 그들과 전쟁을 벌였고, 이른 봄에는 소중한 씨앗들을 지키기 위해 더욱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종자를 심고 나서도 쥐와 새는 우리의 변함없는 주적(主敵)이었다. 그토록 미운 존재가 쥐였지만, 관점을 약간 바꾸면 그들은 우리가 배워야 할 ‘선생’이었다. 바로 근면성과 민첩성 때문이었다. 그들은 항상 가족단위로 움직이며 부지런히 먹이를 훔쳐내는 ‘기술 좋은 꾼들’이었다. 다산의 동물이니, 많은 자식들을 먹이려면 몸이 부서져라 ‘도둑질’에 나설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부성애와 모성애가 출중하고 삶에 대한 집착과 적응력이 누구보다 강한 그들이다. 쉴 새 없이 갉아대고 물어뜯으며 먹을 것을 찾는 그들을 보라. 쥐의 군단이 달려들어 갉아대면 철옹성이라도 단번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만큼 강한 어금니와 전투력을 갖고 있는 그들이다.

 

지금 나는 쥐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쥐의 ‘다산성과 근면성’에 기대어 올 한 해 나 스스로를 고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내 처지이기 때문이다. 올해 나는 재직 중인 대학으로부터 생애 마지막 연구년을 얻었다. 대부분의 대학 교수들은 별 문제만 없으면 6년에 1년씩은 연구년을 받을 수 있지만, ‘말년 병장’인 나로서는 참으로 긴요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대를 앞두고 이것저것 할 일도 많다. 옛날 같았으면, ‘당근!’ 이 귀한 연구년을 해외로 나가 연구활동에 몰두할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제대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놓칠 수 없는’ 기회. 내 삶터를 잠시도 떠날 수 없다. 문득 지난 세 번의 연구년을 생각해본다. 첫 연구년엔 LG연암재단으로부터 ‘해외연구교수’ 프로젝트의 '따뜻한' 연구비를 받아 미국 UCLA에서 스스로 개안(開眼)하며 '비교문학'의 진수를 익힐 수 있었고, 두 번째 연구년엔 동서유럽 20여 개 나라들을 돌며 ‘유럽문명의 보편성’을 답사∙체험했으며, 세 번째 연구년엔 풀브라이트(Fulbright) 재단의 지원으로 미국 OSU에서 자아를 확장∙심화시키며 '미국내 소수민족의 문학'을 연구할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연구년. 겸허하고 조신한 자세로 치밀하게 지난날들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멋진 농막’을 완성하는 일이다. 그간 잡초 무성하게 방치해 두었던 에코팜에 작지만 의미 있는 내 ‘마지막 집’을, 정말로 튼튼하고 순조롭게 완성해야 한다. 2월 20일 착공하여 6월 10일 완공할 수 있으려면, 계획과 다짐에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리라. 두 번째는 그동안 진행해오던 ‘한중일 악장문학 비교연구’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일이다. ‘문학사 집필’을 현역 마지막 과업으로 삼아 진행해오다가, 5~6년 전 문학사 집필을 뒤로 미루고 앞당긴 과업이 바로 이것. 제대와 더불어 깨끗이 정리하려던 내 연구실을 에코팜으로 고스란히 옮기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 내 시대의 마지막 문학사를 풀 향기와 흙 내음 섞어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가 남다르지 않겠는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향리로 돌아간 도연명과는 처지가 다르겠지만, 주경야독(晝耕夜讀)의 패기나 철학이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고, 그 준비를 제법 ‘옹골차게’^^ 해보려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이다.

 

아, 사람에게 주어진 물리적 시간이야 부귀빈천(富貴貧賤)을 가리지 않고 동일할 것이나, 그것들을 ‘내 것’으로 재창조하는 일만큼은 천만 가지로 다를 것이다. 공자는 삼계(三計)를 설명하며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으며, 일생의 계획은 근면함에 있다’[一日之計在晨 一年之計在春 一生之計在勤]고 했으며, 송나라 학자 주신중(朱辛中)은 인생오계(人生五計)로 ‘생계(生界)∙신계(身計)∙가계(家計)∙노계(老計)∙후계(後計)’를 들었다.[<<독서기수략(讀書記數略)>> 권 24] 지금의 나는 이 가운데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공자의 이른바 ‘근면’을 좇아야 하고, 주신중의 이른바 ‘후계’를 좇아야 하리라. 공자 말씀대로 근면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삶을 마쳐야 후손들에게 남기는 것이 있고, 죽을 때까지 건강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주신중 선생의 말씀대로 ‘후계(後計)’[“60 이상 된 사람이면 안으로 마음을 살펴 추호라도 부끄럼이 없게 해야 한다”]에 따라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이다.

 

아, 이제 막 새로운 도전의 경자년이 시작되었다!

‘공자의 말씀대로 근면하게, 주신중 선생의 말씀대로 후계(後計)를 철저하게’ 준비할 일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 8. 30. 12:01

네가 쓴 논문들을 찢어 버려라!”

 

 

                                                                                                            조규익

 

 

 

 

 

 

학자란 누구인가. 넓은 의미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 좁은 의미로 대학교나 연구소 등 연구기관에서 전문적으로 학문을 다루는 사람이다. 학문을 연구하거나 다룬 결과는 논문이나 책으로 나오기 마련이니, 교수나 학자는 논문 쓰는 사람, 혹은 논문으로 말하는사람이다. 그래서 학자가 제 아무리 언변이 뛰어나고 생각이 기발해도 그것이 논문으로 엮여져 나오지 않으면 그냥 달변가 혹은 재주꾼일 뿐이다.

 

공부도 잘하고 말까지 잘하는 재주꾼을 최고로 치는 시대가 되었지만, 동양 사회에서 말 잘하는 사람을 경원(敬遠)해 온 역사는 길다. 특히 학자들의 말이 뻔지르르하면 일단 의심을 하고 보는 것이 전통사회의 통념이었다. 오죽하면 공자는 말에 있어서 더듬거리고 실행에 있어서는 민첩하고자 하는 것이 군자(欲訥於言而敏於行/󰡔논어(論語)󰡕 「이인(里仁))’라고 했을까.

 

옛날의 군자는 완성된 도덕을 갖춘 인격자로서 남의 사표(師表)가 되는 사람, 그래서 전통사회의 학자를 겸한 인간상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말을 더듬어야 했을까. 자신의 내뱉는 말이 과연 얼마나 진실한지, 누가 보아도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을지 아무도 자신 못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누군들 자신의 말을 100% 자신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군자란 단 한 마디 말이라도 내뱉기 전에 수십 수백 번을 되씹어 보고 숙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막상 말을 내뱉는 순간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과연 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내 말에 분명한 근거가 있는가.’ 거침없이 나가야 하는 말 줄기를 이 두 가지 물음이 막아서면 더듬거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한 마디 말이라도 내뱉기 전에 심사숙고하라는 것이고,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학자의 자세다.

 

그러나 지금은 말() 잘하는 학자들이 너무나 많다. 매스 미디어가 지배하는 이 시대엔 말 잘하는 것이 모든 조건들을 압도한다. 방송에 나와 사자후를 토하는 학자들치고 제대로 된 논문이나 저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고들 한다. 언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공부를 다져 논문이나 저서로 만들어내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쉽게 내뱉는 말들이라면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쳤을 리 없을 터. 당장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고 그들의 찬탄을 이끌어내기에 급급할 것이니, 언제 책상머리에 앉아 자신의 가설을 논증하고 강호 현인들의 생각을 참고할 겨를이 있단 말인가. 대중의 눈과 귀를 솔깃하게 하는 달변가들 가운데 의외로 좋은 학자가 드물다는 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제대로 학자 노릇을 하기란 어렵다. 선현들이 남긴 생각을 토대로 자신의 뜻을 세우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저 앞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건 그런대로 가능할 수도 있으리라. ‘전술(傳述)할 뿐 짓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한다(述而不作 信而好古)’󰡔논어󰡕 「술이편에서 공자는 말했다. 정말로 그가 술이부작으로만 일관했을까. 사실은 앎에 대한 겸양의 태도를 강조한 말이었을 것이다. 학자는 도덕가를 겸해야 한다는 차원 높은 인식의 노출로 보는 것이 옳다. 공자가 극구 사양한 것은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는 창조자의 타이틀. 외람하다 보았기 때문이리라. 외람하지만 않다면, 그 역시 인간에게 좋은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다는 판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공자가 얼마나 창조적인 생활을 했는가를 생각해보면, ‘술이부작속에는 자칫 교만해지기 쉬운 인간을 다잡는 의미가 들어 있을 뿐, ‘새로운 것을 고안하거나 만들어내는 일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

 

한여름 더위를 먹어서 그런가. 쓸데없이 서론이 길어졌다.

내 본업은 교수다. 교수는 당연히 학자이고, 학자가 대부분 교수인 것은 우리의 상식이다. 그래서 교수는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겸하는 존재다. 대학원 시절, 존경하던 은사들은 늘 좋은 논문 많이 쓰라고 말씀하셨고, 당신들께서 몸소 모범을 보이셨다. 상당 기간 대가들의 곁을 배회하며 논문 쓰는 일의 중요함을 마음에 새겨온 나다. 언제나 되어야 저 분들처럼 멋진 논문들을 맘껏 써서 후학들을 위해 지남(指南)할 것인가. 뜻은 높되 손과 아이디어가 따라주지 않아, 일종의 비원이 마음속에 똬리처럼 들어앉게 된 내 '학자로서의 한평생'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인 스물일곱 여덟에 대학 교수로 자리를 잡았으면서도 마음은 편치 못했다. 초년 시절 내내 논문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왔으면서도, 진짜로 쓰지 않고 못 배기는 테마나 문제의식 혹은 가설 하나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 나날이 꽤 오래 지속되기도 했다. 어느 순간 공부가 설어서 그렇다는 것을 스스로 깨치긴 했으나, 그에 대한 처방을 얻지 못한 채 이날까지 삽질을 하며학자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밤늦도록 연구실에서 고민하며 책장을 넘기고, 휴일을 잊은 적도 적지 않았지만, 내 곳간은 늘 적막하다. 지금도 물색 모르는 고향 친구들은 교수는 그저 놀고먹으며 땡하는 직업 아니야?’ 라고들 놀리기 일쑤다. 수시로 전해오는 친구들의 번개 자리에 불참하는 나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적막한 연구실에 틀어박혀 글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끙끙대는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눈총을 줄 때마다 빙그레 웃음으로나 화답할 뿐이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한가로워진다.

 

여섯 평 연구실에서의 삼십여 성상(星霜)! 엊그제 존경하는 소재영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내게 늘 사표(師表)가 되어주신 학자의 표본. 문득 생각해보니 그 분이 지금의 내 나이셨을 때 나는 40을 바라보는 애송이였다. 당시 그 분은 참으로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였다. ‘나도 저 연세, 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라는 멍청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나이만큼은 어느덧 그 고개에 올라서고 말았다. 논문 쓰는 일도, 강의도, 세상사도 모두 달관의 경지에서 유유자적 해결하시던 내 나이 때의 선생님이셨는데. 지금의 나는 어찌 그 경지를 상상도 못한단 말인가. 늘 뇌리를 훑고 지나는 아이디어나 가설을 잡아 매어놓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진 애를 쓰지만, 손에 잡히는 결론은 늘 텅 빈 괄호( )’ 뿐이다!

 

누가 있어 무엇이 중헌디?’라고 물으면, 정말로 할 말이 없다. 쉽게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논문들을 써 보았지만, 결론이 하나같이 공백으로 남아 있다면, 그간 줄창 헛공부만 해왔다는 말이다. ‘교수니까 논문을 쓴다는 구조화된 아비투스(habitus) 속에서 가치 있게 살아야 했던 삶을 내 스스로 몰각(沒却)해온 건 아닐까. 그러면서도 교단생활을 쓸쓸하게 마무리하지 않으려는습관적 욕망에 사로잡혀 논문의 화두(話頭)를 꼭 틀어쥐고 의자를 당겨 앉는 내 모습은 또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인문학이 밥을 해결해주지 않는 시대에 (고맙게도) 우리를 찾아준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며, 고담준론(高談峻論)^^을 펴는 내 모습은 또 얼마나 가련하고 처량한가.

한 주에 단 하루, 육체의 괴로움을 통해 내 실존을 아프게 자각하는 에코팜의 은혜로운 시간이라도 없었다면, 허물어져가는 내 자존심의 성벽을 무슨 용기로 대면할 수 있을까.

 

네가 쓴 논문들을 찢어 버려라!” 등짝을 후려치는 죽비와 함께 귀를 찢는 노() 선승(禪僧)의 할()이 텅 빈 내 마음을 울린 뒤 메아리가 되어 여섯 평 연구실을 휘감다가 사라지곤 한다. 깨달음은 내게 미래의 시간을 부여할 것인가. 갈가리 찢긴 논문들을 주섬주섬 이어 붙이면 천사의 날개옷으로 부활할 것인가. 그 옷 걸치고 구만리장천을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인가.

 

 

 

 

 

 

 

졸우(拙愚)-우공 이일권 작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7. 3. 24. 12:27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님께

 

 

 

 

탄핵 소추가 의결되면서부터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국정수행에 대해서도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고, 일부 정치세력들의 무리한 딴죽걸기 또한 없지 않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나날이시겠지요. 그러나 비록 한시적인 대행이라 할지라도, 국가원수로서 하셔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제 미국의 매티스 국방장관은 상원 세출위원회 국방소위 청문회에서 중국이 주변 국가를 조공국가 대하듯이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두 가지 상념이 떠올랐습니다. 미국의 집권세력이 비로소 동북아의 정치외교적 상황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갖기 시작했다는 점, 상대적으로 역사와 현실의 상관관계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우리의 현주소를 내 스스로 아프게 파악했다는 점 등입니다 

 

우리는 왜 중국의 시대착오적 패권주의의 악행(惡行)’을 두 눈 멀뚱멀뚱 뜨고 바라보기만 해야 할까요?패권국가란 쉽게 말하여 깡패국가란 뜻일텐데요. 한낮의 대로 위에서 깡패에게 얻어맞으며 똑 같이 깡패처럼 대응할 필요는 없다 해도, 논리 정연한 꾸지람 한 번 건네지 못하는 현실이 통분하여 일개 민초인 저로서는 편안히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세계를 향해서 입을 열 때마다 화평(和平)’을 말하고, 미국의 보호무역을 비판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거짓구호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그 반대의 뻘짓들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흡사 범죄자들이 문서의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귓속말로 속닥거리듯, 자국의 모든 분야 일꾼들에게 한국을 응징하라는 구두지령을 내린 바 있고, 일당독재의 나라답게 그 명령을 받아 기계처럼 움직이는 중국 사람들입니다 

 

공자와 맹자를 낳은 나라라고 믿어오던 중국과 전쟁 없이 살기 위해굴욕에 가까운 저자세 외교로 중세 이래 근대까지 정체성을 근근히 유지해 온 우리민족입니다. 그로부터 무려 2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런 불평등의 관계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오랜 역사의 관성(慣性) 때문일까요? 아니면 힘의 불균형을 바탕으로 한 현실의 부조리때문일까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동(깡패 짓’)을 놓고 볼 때, 시진핑이 말한 화평굴기(和平崛起)’란 '근대 이전 중화제국의 재건 혹은 회복을 염원하는 몽상(夢想)이라 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이 부조리한 현실의 본질을 저 같이 하찮은 민초도 잘 알고 있는데, 하물며 국가원수이신 황 대행님께서야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미국의 국방장관이 먼저 이런 문제를 아프게 지적하고 말았습니다. 그 지적을 시대와 역사에 둔감한 중국의 지도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한편으로 사이다처럼통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그 말은 먼저 우리 국가원수의 입에서 점잖으면서도 조리있게 표출되었어야 합니다. 혹시 그 언급이 음으로 양으로 매티스 장관과의 교감 하에 생긴 일인가요?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의도치 않게 <<삼국지>>에서 왕윤이 여포를 시켜 동탁을 죽인 것같은, 일종의 차도살인(借刀殺人)’의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더더욱 떳떳치 못한 일입니다

 

, 이쯤 해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우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발뺌해도, 사태는 백일하에 드러났을 뿐 아니라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나아갔습니다. 어쩌면 지금 양국 정부가 출구를 찾기 위한 물밑 교섭을 진행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분노와 무력감에 빠져있는 국민들을 위하고 비정상적인 중국 지도층의 사고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국가원수인 대행께서 즉시 나서셔야 합니다. 약간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중국의 지도부와 우리 국민들을 상대로 담화문이라도 발표하셔야 합니다. 매티스 장관이 말한 중국의 '패권국가적 태도'는 대행께서 지적하셔야 할 내용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이젠 당신들의 조공국이 아니라는 것, 이제부터는 화평과 선린우호의 태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조속히 정상국가로 돌아오길 기다린다는 것' 등을 조용하지만 엄숙한 어조로 중국에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비이성적 태도로 상처를 입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순리로 그들을 설득하는 동안 국가의 힘을 동원하여 민생을 안정시킬 것이니, 잠시 정부를 믿고 인내해 달라' 당부를 건네는 것이 옳습니다. 대외적인 식견이나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대선 후보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현실이 무엇보다 답답한 요즈음입니다. 그러니 중국이 좋아할 '우물 안 개구리'가 새 대통령으로 등장하기 전에 저들을 향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 두셔야 합니다.      

 

덩치만 크고 속이 좁은이웃을 달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은 역사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당당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은 자손만대 저 나라와 이웃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숙이고 들어가는 것은 하지하책(下之下策)’도 되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그들이 말도 안 되는 행패를 부리고 있는 점에 대하여 지금 온 국민이 공분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보다 더 중한 국사가 어디에 있을 것이며, 이 문제의 해결보다 더 큰 국가원수의 책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소수의 정파나 인사들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 뒤에서 응원을 보내고 있으니, 대행께서는 부디 힘과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7. 1. 19. 16:24

 

  나이타령

-정치인들에게-

 

 

 

 


세종대왕

 

 

 

세종 18(1436) 326일의 일이다. 당시 판중추원사를 지내던 허조(許稠)가 벼슬에서 물러나고자 했다.

 

중추원은 왕명의 출납(出納)이나 병기(兵器)군정(軍政)숙위(宿衛) 등 임금 주변에서 군무나 경비를 담당하던 핵심 부서였고, 판중추원사는 정2품의 고위직이었다. 조선조 18개 품계 가운데 정1, 1품 다음의 세 번째로 높은, 오늘날로 치면 장차관이나 도지사급에 해당하는 직급이었으니, 권세 또한 막강했을 것이다.(그는 좌보궐로 조선조의 벼슬을 시작하여 좌의정 영춘추관사에 이르기까지 문무의 요직들을 두루 역임했다.)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그는 조선조에 들어와 국방은 물론 조선조 예악정치(禮樂政治)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었다. 태종 때는 명나라 사행 길에 서장관으로도 참여하여 국제적인 안목까지 갖추게 되었으니, 핵심 요직에서 조선왕조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중세적 질서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었다. 조선조 건국과 함께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해 오다가, 연부역강(年富力强)마흔아홉에 세종의 치세를 맞이한 그의 기세는 대단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세종 조에 들어와 20년 가까이 활약한 뒤 67세에 이르자 왕에게 치사(致仕)를 요청한 것이다. 그 시대로 보면 고령이었고, 세종은 39세의 팔팔한 청춘이었다. 그가 요청한 사직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종척(宗戚)도 아니고, 훈벌(勳閥)도 아니며, 공의(公議) 또한 호의적이지 않다.

2. 평소의 질병으로 근력은 쇠약하고 피곤하여 걷기가 힘들 뿐 아니라, 정신이 없어져서 앞뒤를 기억하지 못한다.

 

육체적정신적 노화현상을 밝힌 2는 지극히 평범하여 누구나 수긍할 만 하다. 그러나 임금의 친척도 아니고 공신의 후예도 아니라는 점과 함께 공의가 호의적이지 않다1의 이유는 요즘에 비추어 보아도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임금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그가 밝힌 사의를 반려한다.

 

1. 나이는 높으나, 눈과 귀는 밝고 자세하며 근력은 아직 편안하고 튼튼하다.

2. 만년(晩年)을 온전하게 하여 공명(功名)을 보전하고자 하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3. 그러나 좋은 계책을 내고 큰일을 결정할 때 임금인 내가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4. 몸을 보전하고자 하는 것과 나라의 임무를 맡는 것 중 무엇이 더 중한가?

5. 그래서 사직을 윤허할 수 없다.

 

그로부터 3년 후인 70에 사망한 것을 보면, 실제로 그는 그 때쯤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겪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허조가 사직의 결정적 이유로 제시한 1은 무엇이었을까. 원문(“猶竊殊寵, 私自未安, 公議何如?”)‘(임금의)특별한 사랑을 독차지함이 스스로 편안치 않은데, 사람들의 뒷말은 어떻겠습니까?’로 풀어도 좋으리라. 말하자면 나이를 먹어서까지 임금의 총애를 독점하는 그에 대한 뒷담화들이 많았던 모양이고, 사실 그로서는 육체적인 질병보다 그것들이 더 괴로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67세에 사직소를 올린 것이다. 그러나 세종은 학문이나 경륜의 면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그를 물러나게 할 수 없었다. 39세의 왕이 보기에 67세의 원훈대신(元勳大臣)은 나라의 믿을만한 기둥이었으리라. 패기 하나 믿고 경륜의 노년을 업신여기는 젊은 친구들이 미덥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왕은 극구 떠나가려는 허조를 붙들어 앉힌 것이나 아닐까.

 

***

 

이와 관련, 요즘 벌어지는 선출직 65세 정년론(停年論)’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개운치 않다. 그 문제를 제기한 표창원 의원은 현재 51세이니, 14~5년 후인 그의 65세에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으나, ‘친문으로 분류되고 있는 그가 반기문 전 유엔총장을 견제하고 문재인 전 의원을 돕기 위해 이런 논의를 제기했다고 보는 항간의 풍문도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도우려는 문재인 전 의원이 올해로 64세임을 감안하면, 그런 항간의 의혹이 정확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그가 언급한 65세가 은퇴하기에 적절한 나이임에는 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표 의원의 전직이 대학교수임을 감안하면, 아마도 대학교원들의 정년을 쉽게 떠올렸을 것이다. 나 역시 65세가 되면 미련 없이 강호로 들어가 조월경운(釣月耕雲)’하며 남은 삶을 엮어가려 한다.

 

그런데, 지금이 어느 때인가. 이른바 ‘100세 시대. 가끔 동네 사우나에서 70대 어른을 한 분 만난다. 구릿빛 몸매와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며 나보고 근육운동을 권하시는 분이다. 근육질의 70대와 선병질(腺病質)20대가 공존하며 경쟁하는 것이 오늘날의 특징이다. ‘가스통으로 불리는 부정적 노인들도 있지만, 지혜와 경륜을 갖춘 어른들도 적지 않다. 단순히 육체 나이를 들이대며 은퇴를 강요하는 것은 구시대의 사고방식이다. 바람직한 희망과 목표를 갖고 노력하는 경우에만젊음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준다. 아무런 공부나 대책도 없이 성질 부룩거리고, 막말이나 해대는 것을 젊음의 특권이라 여긴다면, 그건 나라와 민족에게 재앙이다. 그런 젊음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길 수 있단 말인가.

 

최근 저잣거리에 나와서 표를 구걸하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라. 괜찮아 보이는 인물들은 잘 알려지지 않아 당선의 가능성이 없고, 제법 지지율이 높은 인물들은 대부분 경륜이나 식견이 매우 모자라 믿음을 주지 않으며, 심지어 인간성이 개차반으로 보이는경우까지 있어 걱정이다. 거기에다 나이의 잣대를 들이대어 그나마 잘라 버린다면, 도대체 경륜 있는 지도자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공자

 

 

공자는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이라 했다. "후생이 두렵나니 어떻게 미래의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만 못할 줄로 알겠는가? 사오십 세가 되어도 명성이 없다면 이 역시 두려워할 게 못 된다."고 번역되는 이 말에는 크게 두 가지의 뜻이 들어 있다. ‘나이 먹었다고 젊은이들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 그 하나요, ‘40, 50이 되어 제대로 된 명성을 얻지 못하면 그 젊음도 별 볼 일 없다는 것이 그 둘일 것이다.

 

첫 번째는 당연함에서 재론의 여지가 없으나, 두 번째는 요즈음의 현상과 매우 깊은 관련을 갖는다. 40이나 50이 되어, 아니 그 이전에라도 뜨는인사들은 부지기수다. 그런데, ‘무엇으로뜨느냐가 문제다. 막말로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여(그들을 속여서) 뜨는 것도 공자의 이른바 명성[]’이라 할 수 있는가. 교묘한 심리적 사술(邪術), 이른바 포퓰리즘으로 유권자들을 속여서 뜨는 것도 그 명성의 범주에 속하는가. 자기편에 선 사람들을 조종하여 상대편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갖도록 함으로써 뜨는 것도 그 명성의 범주에 속하는가. 공자가 말씀하는 문()이란 군자로서의 소문이고, 군자란 도와 덕에 바탕한 훌륭한 인간상이라면, 무엇으로 떠야 하는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살 넘은 자들은 물러서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이제 ‘50대가 깃발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발언들은  대부분 육체나 물질의 허상에 잡혀 있는 자들의 텅빈 구호일 뿐이다. 세상을 경영할만한 덕과 방책을 갖추고 있기만 하다면, 지금 그들이 몰아내고자 하는 연령대의 인물들을 지도자로 뽑는 데 무슨 문제가 있으며, 20대나 30대인들 무슨 문제란 말인가. 설마 표 의원이 자신의 나이를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그런 말 자체가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 것은 오늘날 지식사회의 의식이 지나치게 표피적이고 사려 깊지 못한 데서 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른바 정치인들이여, 쓸데없는 말로 가뜩이나 경조부박(輕佻浮薄)한 이 사회를 흔들지 마라! 한 마디 말이라도 아끼고 좋은 일들을 더 많이 실천함으로써, 방황하는 젊음들을 제대로 이끄는 삶의 푯대가 되어 달라! ‘나이 타령같은 요설(妖說) 말고, 제대로 된 담론(談論)으로 우리 사회의 품위를 한 단계 높여달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 12. 17. 13:51

대통령의 콤플렉스

 

 

 

최근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사람들은 그를 비판하고 질타하느라 여념이 없다. 단군 이래 우리가 이렇게 하나로 단결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우스갯말로 못난 대통령이지만 국민들의 단결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고 말할만도 하다. 의정 단상에서 사자후를 토하는 선량(選良)들 가운데 몇이나 돌을 던질 만한자격을 갖추고 있을 것이며, 촛불을 들고 나선 나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 가운데 몇이나 국민으로서의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어차피 물러날 대통령이긴 하지만, 이쯤 우리는 그를 거울로 삼는 게 옳다그를 거울로 삼기 위해서라도 우리 스스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질 필요는 있다.

 

비선(秘線)의 인물이나 조직이 국정을 농단케 한 일에 대해서는 입이 천 개라도 변명할 수 없다. 그와 함께 불통, 여염집 여인에 의한 연설문 수정(혹은 대필), 머리 손질과 피부미용에 대한 집착 등은 대통령의 큰 문제로 지적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콤플렉스. 인간의 현실적 행동 및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이나 감정의 복합체가 콤플렉스다. 콤플렉스는 열등의식을 비롯한 내면의 응어리 혹은 억압된 감정으로 구체화 되며, 이런 무의식은 대부분 개인차가 있지만, 간혹 집단적인 모습을 띠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콤플렉스는 무엇일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공주로 자란 대통령이 타고난 책벌레는 아닌 듯 하고, 순발력 있는 두뇌의 소유자는 더더욱 아닌 듯하다. 성장기 내내 생존경쟁의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던 까닭일까. 앎에 대한 욕망과 투지에서 평균치 이하이고, 그러다 보니 모든 분야의 지적 수준이 평균 이하임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인사에 실패했다고 비판을 받긴 하지만, 대통령 주변의 인물들이 대체로 우수한 인재들인 것은 사실이다. 그들로부터 대면보고를 받으면서 자자구구(字字句句) 사전이나 인터넷을 들춰볼 수도 없고, 초등학생처럼 사사건건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존감을 손상받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모든 보고사항을 문서로 받아보고자 했을 것이다. 혼자 꼼꼼히 읽어가면서 자유롭게 사전이나 인터넷의 도움을 받고자 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충분치 못한 지적 용량을 부하직원들 앞에서 노출시키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으리라. 대면보고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고, 그 점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불통이란 비판이 따라붙게 된 것이다. 대통령 자신의 자존심만 지킬 수 있다면, 불통에 대한 비판 쯤 감수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와 관련되는, 대통령의 특징이 바로 눌변(訥辯)이다. 공자는 欲訥於言 而敏於行(말에 있어서는 어눌하게 하고 실행에 있어서는 민첩하게 하고자 한다)’이라 했다. 공자의 언급대로 심사숙고 끝에 내놓는 말을 어눌하다고 한다면, 그 어눌함이 생각 없이 내뱉는 達辯(달변)’보다 훨씬 낫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대통령  뺨칠 만한 눌변이다. 사실 세상엔 말 잘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그 말 잘 하는 사람들에게 도무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말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첫판에 , 사기꾼이다!’라는 느낌이 전기처럼 전해져온다. 내가 목격한 사기꾼들 치고 말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나의 눌변이 결코 부끄럽지 않고, 대통령의 눌변을 그리 큰 흠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2012년 대통령 선거 토론 때 야당 후보로 출마한 어떤 젊은 여자와 마주 앉은 모습을 TV로 지켜본 적이 있다. 그 젊은 여자는 참으로 말을 잘했다. 그러나 그 역시 내겐 입만 살아있는선동가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차라리 어눌한 대통령이 나았다. 그런데, 대통령은 자신의 어눌함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TV에 나와서 사자후를 토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모두 달변가들이다. 그러나 입으로 하는 말과 속셈이 대부분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잘 놀리는 혀가 그리 중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자신의 어눌함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다. 차라리 자신이 말로 뱉어낼 콘텐츠의 부족을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말솜씨 없음만 부끄러워한다. 그게 바로 해결할 수 없는 그의 어리석음이다.

 

대통령이 눌변과 함께 부끄러워하는 것이 바로 렬한 글 솜씨인 것 같다. 연설문 담당관에게 연설문을 받고서도 다시 최순실의 수정을 받은 이유는 뭘까. 최순실의 어투나 문장이 편했을 것이다. 잘 나고 뛰어난 사람들이 현학적으로 작성한 글보다는 통일은 대박식의 단문이 수준에 맞아 훨씬 맘이 편했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 두 번 글 도움을 받다 보면, 스스로 글 쓰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글은 습관이다. 한 번 최순실에게 맡겨 본 대통령으로서는 어느 순간부터 대필자 혹은 검토자를 다른 누구로도 바꿀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내 맘을 콕 짚어낼 수 있을까?’라는 찬탄을 보내며, 대부분의 연설문을 그녀에게 맡기는 동안, 대통령 자신의 글 솜씨는 점점 퇴보하고 말았으리라. 아니, 단 한 줄의 글도 제 손으로 써내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말이 어눌하고 글이 졸렬하니, 내로라하는 참모들을 대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말이 어눌하고 글이 졸렬하면, 책이라도 열심히 읽고 짧은 글이라도 열심히 써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자 하는 대통령으로서는 단 한 번도 국민들 앞에서 어눌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으며, 참모들 앞에서 단 한 점의 무식한 모습도 보여줄 수 없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것이 대통령 권위의 전부라 생각하여 아예 취임 첫날부터 대면보고를 받지 못했던 것일까. 처음부터 그런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오늘과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이 머리 손질과 피부미용이다. 대통령만큼 나이에 맞지 않는 외모와 고운 피부를 갖고 있는 여성도 드물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그는 늘 자신의 얼굴과 피부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역시 여성인지라 아름다움에 관한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여인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 덕에 우리나라의 화장품 산업이 이토록 발전했겠지만, 대통령까지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각종 주사까지 맞아가며 피부나 머리 관리를 해야 했는지, 생각할수록 한심하다. 화장품 광고마다 화이트닝(whitening)’을 강조하고, 각종 주사제를 선전하며 어린애 같은 피부를 내거는 광고에 한국 여성들이 거금을 아까워하지 않는 건 일견 당연하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나랏돈으로 각종 주사제까지 사들이고, 마구잡이로 비선의 의사들을 불러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 와중에 불거진 사건이 세월호 7시간이다. 남자고 여자고 간에 60 넘어 귀한 것은 내면의 덕이 내뿜는 광채다. 쓸데없이 이것저것 덕지덕지 바르고, 주사바늘로 밀어 넣어 팽팽해진들 그게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대부분 돈과 시간의 낭비요,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우스워지는 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부질없는 일로 국민의 기대와 공적 임무를 저버리는 것은 왜일까.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콤플렉스 탓이다. 그리고 그 콤플렉스는 그간의 삶이 정상적이지 못했거나 불건전했음을 드러내는 증거일 뿐이다.

 

처음부터 대통령에게 이런 콤플렉스가 없었다면, 비선을 가까이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비선이 없었다면, 국정농단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콤플렉스는 물론 죄가 아니다. 자신의 의지나 의도와 무관하게 생겨난 내면의 암 덩이일 뿐이다. 형사법으로 다스릴 죄이기 이전에, 용한 의사들이 달려들어 정확히 진단을 내린 다음 뿌리를 뽑아야 할 병일뿐이다. 지금 우리는 불쌍한 환자 하나를 거리로 내쫓은 뒤 괜한 마음고생으로 뒤척이고 있는지 모른다대통령은 다중(多重) 콤플렉스 환자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그에겐 추상같은 법의 단죄와 함께 치료의 손길을 건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 9. 15. 23:34

쓴물이나 한 잔 허세!”

 

 

 

 

 

몇 년이나 지났을까. 일이 있어 고향에 갔다가 친구의 사무실에 들렀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그가 마무리 멘트로 던진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시일 내로 쓴물이나 한 잔 허세!”

 

쓴물이라? 잠시 갸우뚱했다. 그러나 그게 바로 커피를 뜻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무릎을 쳤다. 그 날부터 아침마다 쓰디쓴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면서 그가 깨우쳐 준 쓴 물의 다의성(多義性)과 함축성을 곱씹기 시작했다. 최근 설탕과 프림을 듬뿍 넣은 우리네 막대커피의 우수성(?)을 서양인들도 인정하기 시작했다지만, 사실 커피의 매력은 쓴 맛에 있다. 요즘 젊은이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양동이만한 커피 잔을 안고 다니는 게 일종의 패션처럼 되어 있다. 대부분 나로선 이름도 외우기 힘든 달달한 커피 일색이다. 그러니 요즘 젊은 친구들, 쓴물의 철학적 원리나 약리(藥理)를 알 리가 없다.

 

공자는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좋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 이롭다(良藥苦於口而利於病이요. 忠言逆於耳而利於行)"고 말씀하셨다. 내 경험상 익모초 달인 물을 비롯, 전통사회의 약들은 으레 몸서리쳐질 정도로 쓴 것들뿐이었다. 현대인들의 병 가운데 상당수가 당분의 과다섭취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상식이다. 요즘 대부분의 약은 달콤한 설탕을 겉에 바른 당의정(糖衣錠)’ 형태로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쓴 약은 먹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인간의 본능적 기호(嗜好)를 역으로 잘 보여주는 경우 아닌가.

 

쓴물과 비슷한 표현에 쓴잔이 있고, 그것을 한자어 고배(苦杯)’로 쓴다. 어떤 시도가 실패할 경우 고배를 마셨다고들 한다. 그러나 쓴물혹은 쓴잔고배가 항상 같은 의미범주인 것은 아니다. 인류사 최고의 극적인 쓴물은 성서에서 발견된다. <<신약성서>>마태복음2639(“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은 그야말로 지극한 의미의 쓴잔이다.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나신 예수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마지막 관문에서 당하신 온갖 모욕과 고통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이 말 속의 쓴잔아니겠는가. 따라서 그 경우의 은 패배의 그것이 아니라 승리자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적 고통으로 보는 것이 옳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바로 쓴맛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성어도 있다. 춘추시대 마지막 패권을 다투던 오나라 부차와 월나라 구천에 관한 고사다. 치고받고 싸워오던 과정에서 위기를 모면한 월왕 구천이 다시 월나라로 돌아와 곁에 쓸개를 놔두고 항상 그 쓴맛을 보며 회계산의 치욕을 상기하다가 결국 패권을 차지했다는 것이니, 쓴맛이야말로 승리를 위해 필수적인 약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승리의 환희보다 패배의 고통을 훨씬 자주 경험하는 게 인간의 삶이다. 패배의 고통을 겪지 않은 승리는 큰 의미가 없다. ‘승승장구(乘勝長驅)’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자주 목격한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입장에서 보는 현상일 뿐이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그들의 삶도 알고 보면 성공과 실패’(혹은 승리와 패배’)가 반반, 아니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남의 성공만 볼 뿐, 실패는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실패 속에 고심참담하던 그들의 모습은 아예 보려하지 않는다. 남의 화려한 성공만을 보고 부러워하는 게 장삼이사들의 보편적인 심성이기 때문이다.

 

쓴물이나 한 잔 허세!”

내 친구의 허허로운 이 말 속에는, 성공을 소망하며 오늘을 성실하게 살고자하는 장삼이사의 철학이 들어있다. 툭하면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그들, 아니 우리들. 늘 실패를 맛보면서도 내일은 성공하고 싶다는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기에 우리네 필부필부들은 쓴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새로운 도전의 결기를 다지는 게 아닌가.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