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학술문2021. 11. 18. 21:22
                                                                                           

                                                시사IN 740호[2021. 11. 23.]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인공지능 분야 최정상에 오른 조경현 교수는 인공지능의 편향과 사회적 영향에 목소리를 내고 다양성을 강조한다. “인간의 나쁜 면과 기술은 같이 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인공지능 분야 차세대 톱스타로 꼽히는 조경현 뉴욕 대학 컴퓨터과학과 교수.ⓒ시사IN 조남진

 

인공지능의 세계적 권위자들이 나란히 손에 꼽는 차세대 톱스타는 1985년생인 조경현 뉴욕 대학 컴퓨터과학과 교수다. 그는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 대학 교수와 ‘신경망 기계번역’을 고안해 인공지능 번역의 혁신을 이끈 인물이다. 그가 만든 ‘어텐션(attention·집중)’ 메커니즘은 GPT-3를 비롯한 초거대 인공지능의 기반 기술이 되었다.

 

지난 6월 삼성 호암상 공학상을 수상한 그는 상금 3억원 중 1억원을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는 여자 학생’을 위해 써달라며 모교인 카이스트에 기부했다.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교사 일을 그만둔 어머니의 이름을 딴 ‘임미숙 장학금’이다. 1억원은 인문학 연구를 위해 백규고전학술상에, 3만 유로(약 4000만원)는 비유럽 국가에서 온 컴퓨터과학 전공 여자 학생에게 써달라며 자신이 유학한 핀란드 알토 대학에 기부했다.

그가 여성 과학자 양성을 위해 상금을 기부하는 일은 이미 유명하다. 남성이 대부분인 이 분야에서, 그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조카가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여성 AI 과학자가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호암상 수상 연설에서는 “제 공부 및 연구 경력에는 ‘우연’과 ‘운’이 많이 작용했다”라고 말했다. 카이스트에서 같이 강의를 듣던 선배가 핀란드 알토 대학 머신러닝(기계학습) 석사과정 팸플릿을 우연히 전달해줘서 인공지능을 공부했고, 역시 우연히 신경망 연구 그룹에 배정됐으며, 학회 아침식사에서 요슈아 벤지오 교수 옆자리에 앉은 인연으로 그와 함께 연구한 데다, 연구 주제로 생소했던 기계번역을 선택한 것 모두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이다.

궁금했다. 세계 레벨에서 최정상에 오른 그는 왜 자신의 커리어를 ‘운’이라 말하나. 인공지능 연구의 최전선에서 오히려 인공지능의 편향과 사회적 영향에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양성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친구들과 놀러 나가고 맥주 마시는 데서 즐거움을 얻으며, 최근에는 〈오징어 게임〉도 한번에 다 봤다는 조경현 교수를 화상 앱 ‘줌’으로 90분간 만났다.

 

조경현 교수와 함께 ‘신경망 기계번역’을 고안한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 대학 교수.ⓒAP Photo

 

GPT-3의 등장을 어떻게 보셨나요?

 

사실 이렇게 대중적으로 크게 관심이 있을 줄은 예상 못했어요.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 기술은 굉장히 조금씩 발전해요. 하루아침에 뭐가 확 바뀌는 건 별로 없고요. GPT-3에서 쓰는 알고리즘 자체는 나온 지 꽤 오래됐어요. 다만 이걸 그동안 상상하지 못한 스케일과 엄청나게 많은 양의 데이터로 훈련시켰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GPT-3가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죠.

 

GPT-3는 ‘파라미터(parameter· 매개변수)’를 1750억 개 갖췄다고 합니다. 기존 GPT-2의 100배라는데, 이게 커졌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너무 좋은 질문인데요.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앱스토어 들어가서 앱을 설치할 때 용량이 나오잖아요. 어떻게 보면 용량과 파라미터 개수는 같은 거거든요. (딥러닝이 사용하는) 신경망이나 AI 시스템이 다 소프트웨어니까, 파라미터 개수는 프로그램의 사이즈와 같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이게 크면 좀 더 뭘 많이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죠.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답했을 때의 문제점은 언제나 이게 틀린다는 건데요(웃음). 사실 파라미터의 개수를 세는 거 자체가 연구 주제입니다. 그걸 어떻게 정의하고, 세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가 않아서요.

 

무슨 뜻인가요?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기자 두 명이 썼는데 길이가 다르다고 해보죠. 그렇다면 과연 기사의 길이를 글자 수로 세는 게 맞는지, 아니면 실제 기사 안에 담긴 내용의 양을 세는 게 맞는지 생각해볼 수 있겠죠. 어떤 사람은 글을 간결하게 잘 써서 똑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데도 짧게 쓰는 반면, 주저리주저리 늘려 쓰는 사람도 있잖아요. 신경망이나 소프트웨어도, 똑같은 걸 배우는 데 파라미터가 굉장히 많이 쓰일 수도 있고 적게 쓰일 수도 있어요. 용량이 큰데 아무것도 못하는 프로그램을 짜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GPT-3가 교수님에 대해 “바둑 챔피언이었다가 구글 딥마인드의 머신러닝 연구자가 되었다”라고 틀린 주장을 한 게 떠오르네요.

 

네, 봤어요(웃음). 어떻게 보면 놀랍고, 다르게 보면 놀랍지 않은 일이에요. 사실 저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꽤 ‘그럴싸한’ 답이었잖아요. 근데 문제를 푼다는 건 원래 그런 거거든요. 학습 중에 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 답을 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좀 지어내야 해요. 전에 봤던 걸 그럴듯하게 조합하는 거죠. 그럼 지금까지 없던 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과연 이게 맞는 답인지 알기 힘들다는 게 문제입니다. 재밌는 게, 이 답을 생성한 신경망에게 물으면 당연히 맞는다고 할 거거든요. 그게 아니었다면 답을 안 했겠죠. 이렇다 보니 인공지능의 답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할 수 있고 그러려면 뭐가 필요한지 질문이 생기고,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GPT-3가 이른바 ‘인공 일반지능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의 시초이거나 적어도 포문을 열었다는 평가도 있는데요.

 

그래요? 하하하. 제 생각에 그건 비약이 큰 것 같은데요. 대체 AGI가 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거의 철학이나 종교에 가까워서, 그렇게 정의가 안 되어 있는 용어로는 무슨 얘길 할 수가 없습니다. 지능이란 것도 과연 어디에서 선을 그을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사람이 지능이 있냐, 없냐 하면 대부분 있다고 하겠죠. 유인원의 경우도 대부분 있다고 하고요. 아무래도 똑똑하잖아요. 사자나 호랑이, 개와 고양이는 지능이 있나 하면 또 있는 것 같죠. 조금 더 가서 벌을 생각해보면, 기억력이 좋아서 몇십㎞ 밖에 있는 꽃을 보고 돌아와서 다른 벌들을 다 데리고 가니 똑똑한 것 같고요. 그럼 지렁이는? 땅속에 있다가 비가 오고 습해진 걸 느끼면 올라가요. 이런 걸 보면 조금 똑똑한 거 같고. 만약 주위의 자극에 반응해 몸을 움직이는 게 지능의 일부라면, 사람은 호랑이·사자·개·고양이에 비해 떨어지죠. 벌이 수십㎞ 길을 외우는 것도 사람은 못하고요. 이렇게 보면 지능이란 ‘있다, 없다’라기보다는 스펙트럼에 가깝습니다. 다방면에 걸쳐 있죠.

 

6월24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조경현 교수 발전기금 감사패 전달식. 미국에 있는 조 교수를 대신해 어머니 임미숙씨(가운데)와 아버지 조규익씨(오른쪽)가 대신 참석했다.ⓒKAIST 제공
 

GPT-3는 어디쯤일까요?

 

짧게 질문했을 때 그 뒤를 어떻게 이어야 하는지 답하는 걸 보면, 확실히 언어 면에선 어떤 동물보다도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반면 이미지나 비디오를 보는 건 못하니, 이쪽은 어떤 동물보다도 못한 것 같고요. 롱 텀 메모리(장기 기억)도 없죠. 그렇다면 과연 GPT-3라는 게 (지능의 다방면 중에) 어디에 위치하는지, 나아가서 AGI가 대체 이 큰 면의 어디에 있는 건지 알아야 GPT-3가 AGI에 가까이 간 건지 멀리 떨어진 건지 알 수 있는데 그게 전혀 정의가 안 되어 있잖아요. 그렇게 보면 GPT-3가 AGI의 포문을 열었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네요. 답이 아닌 답이네요(웃음).

 

오픈 AI가 올해 1월 내놓은 DALL-E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이미지를 생성합니다. 인공지능이 어디쯤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인간 같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은 맞지 않나요?

 

졸업 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는 제 박사과정 학생이 2015년에 쓴 논문이, 설명이 주어졌을 때 이미지를 생성하는 거였어요.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하면 파란 바탕에 비행기 모양이 나오는. 물론 지금은 퀄리티가 굉장히 좋아졌죠. 그럼 여기서 질문은, 과연 이미지나 텍스트를 생성하는 퀄리티만 높이면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지능이라는 게 올라가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것도 해야 하는지인데, 그건 사실 알기 힘들죠.

 

한국에서는 ‘이루다’라는 이름의 AI 챗봇이 성소수자나 흑인을 혐오하는 발언을 하고, 이용자들이 챗봇을 상대로 성희롱을 했으며, 업체가 연인들의 카카오톡 대화를 설명 없이 수집해 20여 일 만에 서비스가 중단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회사에서 굉장히 실수한 거죠. 아무리 그래도 프라이버시에 대해 조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고요. 얼마 전 뉴스를 보니 한국 법무부에서 내·외국인 출입국 얼굴 사진을 사기업에 넘겼다는데 기업 이름도 안 나오고… 제 것도 다 들어가 있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큰 이슈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사후관리가 거의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그런데 이 분야가 좀 그렇습니다. 항공이나 조선 엔지니어링은 갑자기 비행기나 배를 만들어서 띄우기 어려운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은 뭘 새로 만들기가 쉬워요. 그냥 랩톱에 앉아서 알고리즘을 짤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사용할 때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일단 만들고 반응을 보자’는 식이죠.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서는 네트워크 효과가 크니까, 시스템을 만들 때의 결과를 상상해보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사용자들이 이렇게 쓰면 어떡하지’, ‘이런 질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답할까’ 몇 번 더 생각해봤어야 하는데 (이루다 운영사 스캐터랩이) 그러지 못한 게 아닐까 싶네요. 저도 교수이지만 이건 우리 교육하는 사람들의 실책이 아닌가 합니다.

 

인천공항 입국장(위). 지난해 법무부는 ‘인공지능 식별추적시스템 구축 사업’을 위해 내·외국인 출입국 얼굴 사진을 관련 업체에 넘겼다.ⓒ시사IN 이명익
 

인간이 차별이나 혐오를 하는 이상, 기술로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인간의 나쁜 면과 기술은 전혀 같이 갈 이유가 없습니다. AI라고 해서 뭔가 특이한 것 같지만 다 소프트웨어이고 알고리즘을 짜는 건데, 만약 사람이 만든 데이터에 나쁜 것들이 들어 있었고, 알고리즘은 구분을 못하니까 뭔가 나쁜 걸 내놓는다면, 그냥 그걸 안 써야 되는 것 아닌가요? 알고리즘이 그렇게 나쁜 것이라면요. 사회가 잘못된 건 잘못된 거지, 그걸 데이터로 입력해서 잘못된 편견을 더욱 재생산하는 기술을 만든다고요? 두 번째 것은 그냥 잘못된 거 같은데요.

 

기술이 사회를 반영할 뿐 아니라, 사회에 있는 편향을 증폭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

 

좀 완벽하지가 않습니다, 저희가 쓰는 알고리즘들이. 세상에는 명확한 답이 있지만 정보를 완벽하게 갖고 있지 못해서 답을 알 수 없는 문제가 있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경우에도 우리는 보통 알고리즘에게 답을 달라고 하거든요. 이때 알고리즘은 A와 B 중에 조금이라도 A가 답일 것 같으면 A만을 답으로 내놓습니다. A와 B를 같이 주는 게 아니라요. 그러다 보면 잘못된 답이 갑자기 맞는 답처럼 보이기 시작하죠. 알고리즘이 답을 모르겠다거나, 정보가 부족하니 더 가져오라거나, 정확한 확률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이 세 가지가 다 안 되니까요. 여기에 알고리즘을 배포하고 나면 사회에서 만드는 데이터들이 다시 알고리즘에 들어가고, 그걸 알고리즘이 학습하다 보니 좋지 않은 ‘되먹임 고리(feed back loop·원인과 결과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강화되는 것)’가 생길 수 있죠. 그래서 잘못된 답이 증폭되면 쉽게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공기업 등 채용에서 AI 면접이 쓰입니다. 이를 두고 “혹시 본인의 자녀가 어린 시절 잠깐 강남이 아닌 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바람에 AI 인터뷰에서 자동적으로 떨어진 건 아닐까요?”라고 블로그에 썼는데요.

 

보통 AI라고 하면 가벼운 예제를 생각해요. 프로야구에 대해 질문하면 답변해준다든지, 넷플릭스에서 다음에 볼 영화를 추천해준다든지. 실제로는 필수적인 절차에 AI가 쓰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채용 같은 경우 한번 잘못되면 사람들이 몇 년 고생한 게 날아갈 수도 있죠. 극단적으로는 드론처럼 전쟁에서 쓰이는 무기가 한번 실수하면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고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 정치적 견해를 양극화하는 게 아닌지 전 세계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간단해 보이는 알고리즘이 한번 쓰이고, 뭔가 잘못된 걸 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9년 12월12일 서울 세종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공공연구기관 기술이전 성과확산대전 2019’에서 구직자가 AI 면접을 체험하고 있다.ⓒ연합뉴스
 

예를 들면 채용 면접에 AI를 쓸 경우 사회적 합의나 안전장치가 많이 필요한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AI를 썼을 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입니다. 이 시스템을 구현했을 때 얼마나 투명성이 있는지도 중요하고요. 이 두 가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고, 규제나 감리 등 많은 체계가 필요합니다. 기록을 어떤 방식으로 남겨놓을 것이며, 결정을 누가 언제 내릴 건지도 생각해야 하죠. 그냥 ‘여기 AI 알고리즘이 있네, 한번 써보자’ 하기엔 문제가 많습니다.

 

미국에서도 알고리즘이 얼굴 인식을 잘못해서 무고한 흑인이 체포된 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문제가 그런 알고리즘들이 쓰이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쓰이고 있었던 점입니다. 대체 어떤 회사가 공급을 하는지도 한참 동안 몰랐고요. 회사를 찾아봤는데 어디 존재하는지도, 어떤 데이터를 썼는지도 알 수 없었죠. 그런 걸 법원이며 경찰이며 다 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말 그대로 흑인이면 범인일 확률이 더 높게 나오는 식이었고요. 심지어 이런 걸 쓰지 못하게 누구한테 얘기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이게 어떤 소프트웨어이고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르고,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못하고, 규제도 감사도 할 수 없었어요. 이러면 사실 알고리즘을 쓸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인공지능의 편향과 사회적 영향에 관심이 많은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저도 별로 크게 생각을 안 했는데, 팀닛 게브루(구글 AI 윤리조직을 이끌다 지난해 말 대규모 언어모델을 비판한 논문을 계기로 해고되었다고 알려진 에티오피아계 미국인 여성 연구자)가 2015년인가 뉴립스 학회(인공지능 분야의 대표적 글로벌 학회)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어요. 그러면서 ‘여기에 2000~3000명이 왔는데 흑인 연구자가 3~4명밖에 없고, 여자 연구자도 거의 없다’고 썼더라고요. 저도 거기 있었거든요. 보는 순간에 ‘어 그러네, 이거 좀 이상하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카이스트 전산과 다닐 때 같은 학년에 전산과 선택한 친구들이 60여 명이었는데, 여학생이 한 3명 있었던 것 같아요. 핀란드에서 머신러닝 석사 할 때도 여학생들은 한 10~15%밖에 안 되었고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할 때도 40~50명 중에 여자는 4~5명 정도였거든요. 뭔가 이상하죠. 그럴 이유는 딱히 없는 거 같은데. 좀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진화가 뭐 어떻게 되어서 여자는 컴퓨터 과학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데, 아니 컴퓨터가 생긴 지 60년밖에 안 되었는데 진화란 게 무슨 상관인지(웃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런 게 어딨어요.

 

인공지능 연구자나 개발자의 다양성이 왜 중요한가요?

 

어떤 분야든 다양성은 중요합니다. 특히 직접적으로 사회에 배포되어 쓰일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든다면요. 어떤 알고리즘을 배포했을 때 이게 어떤 식으로 쓰일지, 어떤 그룹에겐 결과가 긍정적이고 다른 그룹에겐 부정적일지 많이 상상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모두가 다 똑같은 학교를 나오고 똑같은 배경을 가졌다면 그런 상상을 하기가 힘들죠. 게다가 인공지능은 하나의 상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쓰일 수 있는 알고리즘이다 보니 다양성이 정말 중요한데, 아직은 안타깝게도 많이 부족합니다. 제 연구실만 봐도 여자 학생은 거의 없고, 흑인 학생도 한 명도 없어요. 남미 출신이 한 명 있었는데 졸업했고요. 조금씩 바꿔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겠죠.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상금을 기부하는 이유를 언급하며 “실제 능력 차이보다 아웃풋(결과) 차이가 작은 게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단 이 사람의 능력이 저 사람보다 더 좋다, 안 좋다 얘기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보통, 능력이라는 게 사회적인 프록시(대용물)를 써서 재는 거잖아요. 대학 입학시험을 잘 봤는지, 어느 회사에 입사했는지, 연봉이 얼만지, 사는 데가 어딘지 애들이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이런 걸 써서 ‘저 사람은 능력이 좋은가 보다’ 하고 사람들이 생각하죠. 그러다 보면 실제로 능력이 있는데도 사회적인 영향 때문에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고, 능력이 없는데도 운이 좋아서, 혹은 태어나길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죠. 그렇다면 사회의 역할은, 이런 노이즈(왜곡)를 최대한 막아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개개인의 능력 차이라는 게 그렇게 어마어마하지 않을 거거든요, 아무리 봐도.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웃음). 심지어는 능력을 완벽하게 측정할 수 있다고 해보죠. 능력 있는 사람은 더 잘살고 능력 없는 사람은 못살면 그게 그냥 정글이죠. 우리가 사회를 만든 목적은 태어날 때의 능력을 떠나서 모두가 더 잘될 수 있게 하는 것 아닌가요? 저희 통계에서 쓰는 말로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배리언스(variance·분산, 어떤 대상의 흩어진 정도)는 줄이고 애버리지(average·평균)는 높여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구글 AI 윤리조직을 이끌다 대규모 언어모델을 비판한 논문을 계기로 해고된 것으로 알려진 팀닛 게브루.ⓒThe New York Times
 

본인도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던데.

 

실제로 운이 좋았습니다. 해외에서 몇 년 살다 보니까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는데, 한국에서 태어난 것도 운이 아주 좋았고요. 서울에서 계속 커온 것도 운이 좋았어요. 학교도 좋은 학교를 다녔죠. 카이스트도 다니고, 고등학교는 일반고였지만 집에서 가깝고 선생님도 좋았습니다. 다 너무 운이 좋았던 것 같은데요(웃음).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공포가 뿌리 깊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지금껏 아무것도 못하다가 이제 조금 하기 시작했는데 뭐가 잘 되었는지 생각해보죠. 사진을 보여주면 대상이 뭔지 알려주긴 하지만 비디오는 잘 못해요. 음성인식은 요새 잘 되지만 좀 시끄러운 데선 잘 안 되고요. 기계번역도 예전보단 낫지만 전문적인 목적으로는 힘들죠. GPT-3의 질문과 답변은 중·고등학생 정도인데, 실제로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아직 인공지능과는 차이가 크지 않나요? 짧은 기사야 GPT-3가 쓰겠지만 요새 〈월스트리트저널〉이 쓰는 페이스북 탐사보도는 절대 못 쓸 거거든요. 〈조선왕조실록〉을 기계번역으로 영어로 옮기는 것도, 파티장에서 잘 작동하는 바텐더 로봇을 만드는 것도 아직 어렵습니다. 일부 일자리가 대체되는 건 있겠지만 아직 그렇게 대규모로 대체되거나 하진 않을 거라 봅니다. 물론 5년 지났을 때 실제로 어떨지는 정확히 알기가 힘드네요.

 

인공지능이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보나요?

 

아무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 특정한 일자리가 대체된다면 그 대체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불평등한 상황에 처하게 되겠죠. 불평등이라는 건 인공지능이라서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모두에게 동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상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은 모두가 일자리 대체를 걱정할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미리 준비를 해야죠. 나중에 10년 후가 되었든 20년 후가 되었든 갑자기 기계가 일자리를 다 대체한다고 했을 때 잃어버린 소득을 보장해줄 건지, 해준다면 어느 수준으로 할지, 그 안에서 차등을 둘 건지 아닌지 얘기를 많이 해봐야겠죠. 앤드루 양이 ‘유니버설 베이직 인컴(보편적 기본소득)’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대로 보지 못해서요. 최근 저서 〈포워드〉에서 그 얘길 많이 했다는데 시간 내서 읽어봐야겠네요.

 

인문학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조한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과학은 우주에 있는 것들을 다뤄요. 컴퓨터과학이나 인공지능이 마치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것 같아도, 계산이라는 게 다 어쨌든 우주 안에 있는 걸 어떻게 붙여서 쓰느냐의 문제니까요. 그런데 인문학은 그야말로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고 할까요. 인간이 지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의 끝은 어디인지 계속 밀어붙여보는 일에 가깝죠. 그러다 보면 말도 안 되는 게 나올 수도 있는데, 이런 건 당장의 비즈니스엔 도움이 되기 어렵죠. 인공지능 연구야 기업들이 필요하다면 자기들 돈을 많이 쓰겠지만요. 그런 면에서 인문학을 사회적으로 좀 더 서포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까 얘기랑 비슷한데, 학문 분야 간 차이도 줄여주는 게 결국은 사회의 역할 아닌가 싶네요.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21. 11. 8. 21:25

딸과 함께 에코팜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시며

 

 

 

“그래, 이곳 정안이 그렇게도 좋던감?

돌아 다니다 다니다 이곳으로 들어오게?”

 

--빙모(聘母)님을 보내드리며--

 

 

 

“어머님의 맥박이 점점 느려지신대요.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큰 처남댁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라온병원'으로 달려가는 길. 안개 자욱한 도로 위, 핸들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착해서 2층으로 뛰어 올라가니, 방금 잠에 빠지신 듯 빙모님의 표정은 거짓말처럼 고요하고 평온하셨다. 아직 손에도 볼에도 가슴에도 온기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뿐. 이미 받으신 선고를 되물릴 수는 없었다. 다시 기동을 하시면, 에코팜에 모셔와 멋진 파티라도 한 번 열어 드려야겠다는 야무진 꿈이 무색했다. 빙모님은 총총히 먼 길을 떠나셨고, 우리는 허탈했다.

 

어수선함 속에 도착한 공주시의료원 장례식장은 시골 장날 새벽녘인 듯 조용함 속에 붐비기 시작했다. 먼 길 보내드리는 의식이 번잡하기만 했다. 차라리 문상 온 지인들과 함께 빙모님의 얼굴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픈 충동이 일기도 했다. 함께 목청을 돋우어 “이제 일어나세요!”라고 외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실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빙모님의 다정하신 음성과 환한 미소는 벌써부터 저 멀리 공중에 맴돌고 계셨다. 남은 건 차가운 육신 뿐. 그래서 더욱 허탈했다.

 

그런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이틀을 보내고 난 사흘째. 우리는 빙모님을 모시고 느릿느릿 '나래원'으로 향했다. 시원한 녹색과 따스한 주황색이 섞인 계곡 한 가운데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장모님의 육신은 단정한 상자 속 한 그릇의 재로 돌아와 우리의 가슴에 안겼다. 단 두 시간 만에! ㅠㅠ

 

그 상자를 안고 ‘대전공원묘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멀리 계룡산의 연봉이 건네다 보이는 산 중턱 양지바른 곳. 빙부(聘父)께서는 이미 그곳에 누워 계셨다. 그 옆자리에 빙모님의 유골함을 묻고 나니, 마음의 짐을 함께 내려 묻은 듯 약간 가벼워짐을 느꼈다. ‘금슬 좋으시던 두 분이 15년 만에 만나셨으니 얼마나 반가우실까’ 생각하며, 합장(合葬)의 취지가 ‘산 자들의 위안’에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다정하시던 두 분이 오랜만에 다시 만나시리라 우리는 굳게 믿고 있지 아니한가. 그렇게 빙모님은 이승을 하직하셨다.

 

1926년 11월 4일(음) 공주에서 태어나시고, 2021년 10월 1일(음) 공주에서 돌아가셨으니, 한 달 모자라는 향년 96세. 공주여자사범 부속학교 2회 졸업,  1938년-1943년 도립여자사범학교 에서 수학, 부모님의 고향인 평양의 여러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심. 

 

***

 

대학 시절의 은사 유당 림헌도 선생은 내 빙부이시고 최순보 님은 내 빙모이시다. 엄격하기만 하시던 빙부와 달리 빙모님은 자애로우셨다. 훤칠한 키에 시원한 미모와 따사한 미소가 어우러져 군계일학(群鷄一鶴)으로 돋보이는 분이셨다. 학창시절엔 공주시내에서 행사들이 더러 있었는데, 어쩌다 빙부・빙모님이 동반으로 참석하시는 경우가 있었다. 화사한 한복을 입고 착석하신 모습을 뵐 때마다 ‘참으로 멋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한 토막의 일화가 있다. 나이 듬뿍 든 딸[임미숙]이 어떤 촌놈에게 시집가겠노라 하니, 걱정에 싸인 엄마가 그 녀석의 고향집을 보러 먼 길을 나선 것. 버스도 들어가기 전이니, 고초가 오죽하셨을까. 태안읍에서 택시로 자갈길 100리를 달려 시골구석의 작은 초가집을 찾아가신 것이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개 한 마리와 닭 몇 마리가 손님을 맞았던 모양이다.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당장 돌아와 ‘딸년’을 꿇어앉히고 종아리를 쳤을 것이다. ‘정신 나간 것아! 그 놈 집에 가본 적이나 있니?’라고 소리소리 쳐댔을 것 아닌가. 그러나 빙모님은 ‘그런 곳에서 대처로 학교를 보낼 정도면, 사람 만나 보지 않아도 됨됨을 알 수 있다’고 오히려 딸을 안심시키셨던 모양이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내 변변찮음을 들며 혼사를 극구 말렸다는 사실을 그 후 알고 나서 나 스스로 크게 웃은 적이 있었다. 차라리 그 때 깨어졌더라면, 나야말로 더 멋진 짝을 만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빙모님은 이른바 여장부 혹은 대인배(大人輩)이셨다. 늘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셨다. 걱정에 휩싸인 주변사람들에게 늘 위안과 자신감을 주시던 분이었다. 결혼식 전날 밤,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진해에서 예식장이 있던 서울로 올라온 나는 크게 걱정되어 빙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랬더니, “이 사람아, 걱정 말게. 하늘도 둘의 결혼을 축복하느라고 그러는 걸세!”라고 명랑하게 대답하시는 게 아닌가. 다음 날 하늘은 거짓말처럼 청명하게 개었고, 나는 빙모님의 담대하심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최근 기억력을 잃으시면서 한동안 말수도 크게 줄으셨다. 그렇게 말씀 나누시길 좋아하시던 빙모님이 안타까워 일부러 새로운 화제들로 대화를 이어나가곤 했다. 그러나 대화는 늘 다음과 같은 문답으로 똑 같이 마무리되곤 했다.

 

“그래, 이곳 정안이 그렇게도 좋던감? 돌아 다니다 다니다 이곳으로 들어오게?”

 

“그럼요. 돌아 다니다 다니다 보니 이곳이 최고였어요. 무엇보다 빙모님이 가까이 계시고, 형제들도 모두 근처에 살고 있잖아요? 외롭지 않아서 좋지요. 그러니 빙모님께서도 저희 집에서 오래 오래 머무시며 옛날의 건강을 회복하도록 하세요. 진지도 많이 드시고요.”

 

“놀고먹는 할매 밥 많이 먹어서 뭐하게?”

 

“진지 많이 드시고 걷기 운동도 많이 하셔서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셔야지요. 오래 사셔야 손주들이 자라서 제 앞가림 하는 것도 보시고, 좋은 세상 많이많이 즐기실 수 있지요.”

 

“그래. 말은 고맙네만. 늙은이 그저 걸치적거리기만 하지 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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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빙모님의 영전에 명복을 빌어드립니다. 두 분이서 영원히 행복하게 영계(靈界)의 청복(淸福)을 많이많이 누리소서.

 

 

2021. 11. 7.

 

 

사위 규익 엎드려 절하고 올립니다

 

초코를 데리고 사위와 함께 에코팜을 산책하시는 빙모님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21. 9. 7. 21:28

 서실에서 고서를 보여주시는 인산 선생님

 

인산 선생님,

 

며칠 전 소식이 궁금하여 전화를 드렸었지요.

전화기 너머로 간신히 이어가시던 몇 마디 말씀을 잊지 못합니다.

끝내 말씀을 맺지 못하시고, 사모님께 전화기를 넘겨주시던 일을 잊지 못합니다.

그 즉시 달려가지 못한 제 불찰을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제 선생님이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고약한 코로나 핑계나 대야 할까요?

제 타고난 게으름과 대책 없는 낙천성이나 탓해야 할까요?

설마 설마하며 볕 들 날만 기다려 온 못난 후학은 이제 어찌해야 할까요?

 

선생님과는 실 꼬리만큼의 학연이나 지연조차 갖고 있지 못한 저였지만,

선생님께서는 저를 어여삐 여기시고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지요.

지금도 제 컴퓨터 속에는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의 자료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 큰 부분이 선생님께서 주신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아낌없이 주시면서

“조 교수를 만난 건 내 행운이여. 이것들을 갖다가 학계에 제대로 알려 주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 아니겠소?”라고 껄껄 웃으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바로 앞에 대한 듯,

지금 이 순간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손 선생님도, 연민 선생님도 안 계신 이 땅에 인산 선생님마저 이렇게 홀연 떠나시면

가련한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인간의 마지막 길은 정해져 있다지만,  겨우 산수(傘壽)에 이리도 바삐 떠나실 줄 알았다면, 코로나를 핑계로 지난 2년간이나 뵙지 못하는 일은 없었겠지요?

 

인산 선생님,

선생님께서 평소에 베풀어주신 사랑의 힘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학문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선생님은 제게 건네주시는 책들을 통해 삶의 진실까지 덤으로 전수해 주셨습니다. 그 크신 뜻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 진실을 삶이 끝날 때까지 실천하다가 선생님 계신 곳으로 가고자 합니다. 모든 병마들이 범접할 수 없는 그곳에서 영원하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시는 모습을 반드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명계에서 편안하고 행복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2021. 9. 7.

 

못난 후학 백규는 울며 절하옵니다.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21. 8. 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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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사계 제42호(2021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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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조규익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야기 속의 삶과 바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땅. 우리 민족은 한시도 바다와 떨어져 살 수 없었다. 아무리 내륙으로 숨어도 바다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특히 먼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세상을 벗어나 알 수 없는 이계異界로 나아감을 의미했다. 바다는 물고기와 해초, 소금을 구하는 현실의 공간이자 알 수 없는 환상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인물들은 늘 바다 밖으로 나가는 꿈을 꾸었다. 비좁은 땅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다 밖을 몽상하는 일이었다.

 

신라 진평왕 9년 7월 바다 밖으로 떠나간 대세大世와 구칠仇柒은 그 시기에 이미 바다 밖의 세계를 꿈꾼 인물들이었다. 대세는 친구 구칠에게 “이 좁은 신라의 산골 속에 파묻혀 일생을 마친다는 것은 못물 속의 고기가 바다 큰 줄을 모르고 조롱 속의 새가 산림 넓은 줄을 모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나는 장차 떼를 타고 바다에 두둥실 떠 오나라·월나라로 가서 스승을 찾아 따르려 하네. 명산에서 도를 구하여 만약 속태를 바꾸고 신선을 배운다면 바람도 잡아타고 훨훨 허공 위로 날 것이니 이야말로 천하에 신기한 놀음이요 장관 아니겠나?”[《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진평왕조]라고 설득하여 둘은 드디어 바다로 떠났고, 결국 역사의 기록으로도 남게 되었다.

 

성격이 약간 다른 기록들 둘만 더 들어보자. 첫째는 강원도 고성 땅의 유동지가 동네 사람들과 동해로 미역 따러 나갔다가 풍랑에 떠밀려 고성으로부터 31만 리 밖 단구丹邱라는 절 도絶島에 표착한 사건이다. 그 섬에서 그들은 마찬가지로 고성 땅으로부터 표류해와 정착한 노인의 보호를 받고 50여일을 지냈다. 그 섬에서의 하루는 인간세계의 일 년에 해당하므로 표착 시점부터 50년이나 지났으니, 섬에서 그냥 머물러 지내는 게 좋을 거라고 노인은 말했다. 그 말을 거부하고 돌아와 보니 부모와 처자는 모두 죽고 손자마저 이미 늙어 있었다. 화식火食을 재개하면서 함께 돌아온 두 사람은 죽고 유랑은 단구에서 훔쳐 온 경액 덕분에 200살을 살았다는 것이다.[〈식단구유랑표해識丹邱劉郞漂海〉, 《청구야담》(권19), 학고방, 2017].

 

또 하나는 청주 상인이 제주도에서 만난, 다리 없는 노인으로부터 들은 경험담으로 젊은 날의 노인은 바다에서 표류하던 중 한 섬에 도착했다. 극심한 배고픔과 갈증에 한 집으로 들어갔다가 엄청난 체구에 검은 얼굴, 움푹 파인 둥그런 눈, 나귀 같은 음성의 식인거인食人巨人에게 일행 중 총각 한 명이 잡아먹힌 뒤 천신만고 끝에 탈출했고, 배가 파선되면서 혼자만 살아남았으나 몹쓸 고기에 두 다리를 잃었다는 이야기였다.[〈대인도상객도잔명大人島商客逃殘命〉, 임명덕 《한국한문소설전집》(권 8),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대세와 구칠의 이야기〉는 큰 꿈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이 바다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데 성공했음을 암시했으니, 그 때의 바다는 도전을 통해 극복할만한 가치가 있는 장애물로서의 공간이었고, 〈식단구유랑표해〉의 바다는 선계를 설정하여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킨 환상적 공간이었으며, 〈대인도상객도잔명〉의 바다는 제주도 남쪽 먼 곳 어떤 섬에서 식인종을 만나 고난을 당한 이야기로서 험난한 고통의 현실적 공간일 수 있다.

 

이것들이 상당부분 흥미로운 허구를 뼈대로 삼아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삶의 한복판에서 경험한 바다가 없었다면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이야기들이다. 인간 현실의 복잡한 삶을 표본으로 삼아 만들어지는 것이 서사문학인데, 바다 이야기들 대부분은 삶과 바다가 하나로 결합된 서사가 그 주축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우리 문학에 나타나는 바다는 경험과 환상,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결합된 이중적 의미의 공간이고, 바다의 이런 성격은 동시대나 후대 서사문학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어왔다.

 

 

노래문학 속의 삶과 바다

 

원래 말로 만들어져 존속되던 이야기나 노래들을 문서로 기록한 것들이 우리 고전문학이다. 이야기나 노래에 쓰인 말들 대부분 일상의 구어口語였으므로, 고전문학이 특정 지식층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모든 계층이 이야기와 노래에 쓰인 개념어와 사물 지시어 등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노래문학이나 이야기문학에 바다가 소재 혹은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들은 적지 않다. 향가·악장·가곡창사[시조]·가사 중 몇 작품들을 통해 바다의 의미를 찾기로 한다.

 

현실적 고통에 시달리던 중생들을 깨우치고 구세하려는 목적으로 지은 노래가 균여대사의 〈보현시원가普賢十願歌〉였다. 한시 아닌 일상의 구어로 부르고 향찰鄕札로 표기하여 중생들이 쉽게 부르며 얻은 깨달음을 오래 전해질 수 있도록 기록한 것이 향가다. 이 노래의 몇 군데에 바다[海]가 등장하는데, 바다에 대한 당시 민중들의 기대지평이 명료하게 반영되어 있다. 〈보현시원가〉 중 〈칭찬여래가稱讚如來歌〉의 ‘無盡辯才叱海(끝없는 말재주의 바다)’·‘際于萬隱德(갓 없는 덕의 바다)’, 〈광수공양가廣修供養歌〉의 ‘燈油隱大海逸留去耶(등유는 큰 바다 이루거라)’, 〈보개회향가普皆廻向歌〉의 ‘佛體叱海(부처ㅅ바다)’ 〈총결무진가總結無盡歌〉의 ‘際毛冬留願海(갓 모를 소원의 바다)’ 등에 나타나는 바다는 불교의 종지宗旨를 드러내기 위한 유의喩意이다. 관념적 용어이긴 하나 경험을 전제로 하지 않은 경우 노래로 불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보현시원가》의 바다는 관념과 경험 양자를 절충하여 당대의 보편적 인식을 드러낸 사례이다. 당대에도 실재의 바다는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의 세계였고, 외경스럽고 위력적인 대상이었으며, 깊고 충만하고 무한·광활하며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의 근원이자 실체였다. 이런 관념적 바다와 달리 경험적 공간인 바다가 미래의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속악가사俗樂歌詞 〈청산별곡靑山別曲〉의 사례도 있다. 이 노래 제6연의 “살어리 살어리랏다/바ᄅᆞ래 살어리랏다/ᄂᆞᄆᆞ자기 구조개랑 먹고/바ᄅᆞ래 살어리랏다”에서 ‘나마자기와 구조개를 먹는’ 바다는 ‘머루랑 다래를 먹는’ 청산[제1연]과 함께 한계상황에 부닥친 화자가 돌아와 살고 싶은 두 갈래의 이상향 들이었다. 세속에서 버림받은 시적 자아에게 바다는 청산과 함께 허여許與된 유일한 대안이자 선택지였던 것이다.

 

조선조로 넘어오며 의미심장한 첫 바다는 《용비어천가》 제2장[“ᄉᆡ미기픈므른 ᄀᆞᄆᆞ래아니그츨ᄊᆡ내히이러ᄇᆞᄅᆞ래가ᄂᆞ니”]에 등장한다. 건국신화·영웅신화의 모티프를 뼈대로 이루어진 교술적 서사시 《용비어천가》는 궁중 의례문학儀禮文學으로서의 악장이면서 노래문학의 모범적 선례이기도 했다.

 

깊은 샘물은 바다를 이루는 근원이고, 바다는 자손만대 왕조의 번영을 상징한다. 원래 샘과 바다는 물을 공유하는 공간들이며, 그것들 모두 생생력生生力의 근원적 실체들이다. 샘물처럼 유래가 오랜 조상으로부터 바다같이 무한한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왕조의 번영을 기원한 것이 이 노래다. 《용비어천가》 제53장[사해四海ᄅᆞᆯ 평정平定ᄒᆞ샤 길우희 양식糧食니저니]을 포함,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사해四海ㅅ믈이여 오나ᄂᆞᆯ 마리예 븟ᄉᆞᆸ고 태자太子를 셰ᄉᆞᅀᆞᄫᆞ니]·〈감군은感君恩〉[오백년五百年이 도라 사해四海ㅅ므리 ᄆᆞᆯ가] 등의 악장들에 두루 사해四海가 등장한다. 이 경우 ‘바다’라는 유의喩意와 ‘온천하’라는 취의趣意들로 이루어진 ‘사해’는 불덕佛德 혹은 왕이나 왕조의 치공이 미치는 범위를 최대한 넓혀 표현하려는 욕망의 소산이다. 그리고 이것들 모두 실제 바다가 지닌 무한無限[무변無邊]의 이미지로부터 나왔음은 물론이다.

 

이 같은 관념의 바다와 현실이 결부되어 나타난 사례가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라고 할 수 있다. 〈춘사春詞 제1연〉[압개예 안개 것고 뒫뫼희 ᄒᆡ비췬다/밤믈은 거의디고 낟믈이 미러온다/강촌江村 온갖고지 먼 빗치 더옥 됴타]·〈추사秋詞 제3연〉[수국水國의 ᄀᆞᄋᆞᆯ히 드니 고기마다 살져읻다/만경징파萬頃澄波의 슬ᄏᆞ지 용여容與ᄒᆞ쟈/인간人間을 도라보니 머도록 더옥 됴타]·〈동사冬詞 제4연〉[간밤의 눈갠후後에 경물景物이 달랃고야/압희는 만경유리萬頃琉璃 뒤희ᄂᆞᆫ 천첩옥산千疊玉山/선계仙界ㄴ가 불계佛界ㄴ가 인간人間이 아니로다] 등에는 바다와 대비되는 현실의 모습이 눈에 잡힐 듯 나타나 있다. 어로인漁撈人 아닌 작자가 어부漁父의 페르소나를 빌려 쓴 채 실제 바다에서 자신을 버린 세상 현실을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인용한 부분들 각각의 앞부분 두 구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바다를 객관적으로 그려낸 내용인 반면, 마지막 구절들[강촌江村 온갖고지 먼 빗치 더옥 됴타, 인간人間을 도라보니 머도록 더옥 됴타, 선계仙界ㄴ가 불계佛界ㄴ가 인간人間이 아니로다]은 인간세상과 대비되는 바다를 윤선도 자신의 감정에 적셔낸 것들이다. ‘먼 빛이 더옥 좋다’든가 ‘멀수록 더욱 좋다’는 것은 부정적인 세상현실로부터 멀어지고 싶다는, 세상에 대한 윤선도의 혐오를 암시한다. 바다로 갈수록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니, 세상이 좋아 보이는 것은 현재 그가 세상으로부터 미학적 거리를 유지하며 바다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사夏詞 제2연〉[년닙희 밥싸두고 반찬으란 쟝만마라/청약립靑篛笠은 써 잇노라 녹사의綠蓑衣 가져오냐/무심無心ᄒᆞᆫ 백구白鷗ᄂᆞᆫ 내 좃ᄂᆞᆫ가 제 좃ᄂᆞᆫ가]를 보면 작자가 비록 가어부假漁父에 불과하다 해도 전형적인 어부의 삶을 노래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앞의 노래들처럼 부정적인 세상에 대한 이상공간으로서의 바다를 노래하지는 않았으며, 무엇보다 바다의 활력을 제유提喩하는 백구와 시인의 자아가 합일되는 경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지 않은가. 분명 초창기에 비중이 높았던 관념의 바다로부터 현실적이며 미학적인 바다로 옮겨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다.

 

가사의 경우 다른 시가장르들과 달리 호흡이 길고 작품의 길이에 제한이 없었던 만큼 관념이나 압축보다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바다가 주류를 이룬다. 유배가사 중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續思美人曲〉[니진항구梨津港口의 쥬즙舟楫을 뎡돈整頓ᄒᆞ야/동풍東風이 건듯 불며 쌍범雙帆을 놉히 다니/창파묘망滄波渺茫ᄒᆞ며 물밧근 하ᄂᆞᆯ일다/고도孤島ᄅᆞᆯ 지졈指點ᄒᆞ니 흑ᄌᆞ黑子만 계유하다/시야쟝반時夜將半ᄒᆞ매 광풍狂風이 졉텬接天ᄒᆞ니/듕뉴실타中流失柁ᄒᆞ야 호흡呼吸의 위ᄐᆡᄒᆞᆯᄉᆡ/장년長年 쇽슈束手ᄒᆞ고 쥬듕舟中이 실ᄉᆡᆨ失色ᄒᆞ니/묘연渺然ᄒᆞᆫ 이 내 몸이 ᄉᆞᄉᆡᆼ死生이야 관계關係ᄒᆞ랴], 박인로의 〈선상탄船上嘆〉[ᄇᆞ람조친 황운黃雲은 원근遠近에 사혀잇고/아득ᄒᆞᆫ 창파滄波ᄂᆞ 긴하ᄂᆞᆯ과 ᄒᆞᆫ빗칠쇠/(…)/대양大洋이 망망茫茫ᄒᆞ야 천지天地예 둘려시니 진실로 ᄇᆡ아니면 풍파만리風波萬里밧긔 어ᄂᆡ 사이四夷 엿볼넌고], 김인겸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이윽고 ᄒᆡ돗거ᄂᆞᆯ 장관을 ᄒᆞ여보ᄉᆡ/ᄉᆞ면을 ᄇᆞ라보니 어와 장ᄒᆞᆯ시고/구만니 우듀속의/큰물결 분이로ᄉᆡ/동남을 도라보니 바다히 ᄀᆞ이업ᄂᆡ/슬프다 우리길이 어ᄃᆡ로 가ᄂᆞᆫ쟉고] 등은 가사에 묘사된 바다의 모범적 사례들이다.

 

광풍 속에 키를 잃은 뱃사공들이 어찌 할 바 모를 정도의 위급하고 고생스런 상황을 그려낸 것이 〈속사미인곡〉이다. 이 작품에서 바다로부터의 가혹한 시련을 묘사한 점은 표류설화나 표해록들의 그것과 같다. 그러나 〈선상탄〉과 <일동장유가>에는 다른 모습의 바다가 등장한다. 임진왜란 때 좌절도사 성윤문 막하의 수군으로 참전한 박인로의 <선상탄>에는 천지를 둘러 나라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 같은 바다가 묘사되어 있다. 배만 없었다면 왜구들이 이 땅을 넘보지 못했을 거라는, 현실적이면서도 약간은 소극적인 바다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서정적 공간으로서의 바다가 <일동장유가>에는 등장한다. ‘어와 장ᄒᆞᆯ시고’, ‘슬프다’ 등 감탄구들이 정서의 핵심 포인트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바다의 서사적 흥분이나 긴장보다는 자아와 대상의 합일을 미학적으로 드러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나가며

 

예로부터 다양한 산문들과 운문들의 배경으로 사용하거나 개별 작품들의 주지主旨를 드러내기 위한 이미지로 바다를 끌어왔다. 대부분의 산문들에서 바다는 위기와 시련으로 점철된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현실적 공간으로, 운문들에서는 이미지를 통해 작자의 미적 인식과 작품의 미학을 완성시켜주는 서정적 공간으로 각각 사용되어 왔다. 관념과 현실, 서사와 서정의 병행이나 착종錯綜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온 공간이 바로 바다였다. 심해深海 탐사 기술이 발달한 현재도 바다의 깊은 속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겉만 알고 속을 모르면, 그걸 안다고 할 수 없는 법, 바다 속을 모르니, 예나 지금이나 바다는 공포와 경외의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며 당하는 시련은 인간의 공포와 경외심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고전문학에 등장하는 바다의 맥을 잡는다거나 의미를 구조화시키는 것이 그다지 수월한 일은 아니다. 고전문학이 생산되고 소비되던 각 시대의 미의식과 정신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과 관념, 서사와 서정을 적절히 조합하여 바다를 아름답게 형상해낸 우리 고전문학은 매우 소중하다. 미친 듯 파도치는 대양을 일엽편주로 건넌다든가 사투 끝에 괴물 같은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행위를 ‘대자연에 대한 인간의지의 승리’로 그려내는 현대 해양문학의 전통적 발판이 바로 고전문학의 바다였기 때문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21. 7. 19. 23:31

 

                                                 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37913 

 

 

 

“앞으로 우리 뇌가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면서요?”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필요가 없어지지요. 어차피 함께 살게 되니까요. 이미 시작되었잖아요.”

 

유튜브 녹화 차 회사를 방문한 박외진 AI 로봇전문가와 잠시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 메타버스(metaverse) 얘기가 나왔다. 현실적 감각으로는 아직 이해가 어려운 가상의 세계와 AI에 대한 대화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서 흥미로웠다. 문득 최근 관심을 갖게 된 AI의 불균형에 대해 질문을 했다. 모교인 카이스트 전산학과에 1억 원의 장학금을 쾌척하면서 지원 대상을 여학생으로 한정했다는 뉴욕대 조경현 교수가 떠올라서였다.

 

“조경현 교수 알아요?”

 

“아, 조경현 교수요. 카이스트 후뱁니다. 조 교수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여성들을 상대로 장학금을 지원한 것 정말 잘한 일이에요. 요즘 전세계 AI 연구자들의 최대 화두가 ‘다양성’과 ‘성별균형’이거든요. 그동안 AI에 들어간 데이터에는 ‘흑인’이 없어요. ‘소수집단’이나 ‘여성’도 없어요. ‘소외된 지역’도 없지요. 잘사는 나라, 백인, 남성의 데이터로 만들어지고 있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AI는 불균형일 수 밖에 없어요. AI의 활동이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요. 늦었지만 최근 들어서 ‘데이터 편향(bias of data)’ 문제를 바로잡자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고 그것이 AI업계의 과제입니다.”

 

편향된 데이터로 알고리즘을 만든 AI는 인류의 대표성을 지닐 수 없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은 인공지능업계의 연구자 대부분이 남성들로, 그들 눈에는 이런 문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이 없다는 이유로 여성이나 소수 집단이 데이터에서 배제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AI연구에서 ‘젠더 균형’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대놓고 드러내 여성전문가를 지원하고 있는 이가 조경현 교수이다. 조 교수는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핀란드와 캐나다를 거쳐 미국 뉴욕대의 종신교수로 세계 인공 지능 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AI를 연구하는 천재 공학도. ‘인공 지능 번역’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자랑스런 30대 젊은 남성 공학자다.

 

그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뉴욕대 교수로 임용된 지 4년 만에 종신 교수가 됐고, 구글, 아마존 등 굴지의 글로벌 IT 기업이 그의 연구를 후원하는 등 뛰어난 연구업적과, 강연료나 상금을 받는 족족 탈탈 털어 전액을 기부, 그것도 여성공학도를 위한 장학금으로 쾌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성별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다.

 

지난해 ‘삼성 AI 연구자상’으로 받은 상금은 전액을 포닥(포스트닥터)을 한 캐나다 몬트리올대에 기부했고, 네이버, SK텔레콤 등 국내 기업체 강의료도 받은 즉시 학생들에게 내놓았다. 올해 받은 호암상의 상금은 석·박사를 공부한 핀란드 알토대에 3만유로(약 4000만원)를 보냈고, KAIST에 1억원을 기부했다. 몬트리올대 알토대 카이스트는 모두 조 교수가 공부를 한 모교들이다. 그는 모교에 장학금을 보내면서 대상을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는 여학생’으로 한정했다.

 

카이스트 장학금도 마찬가지로 여학생 전공자를 대상으로 지정했다. 카이스트 장학금에는 자기 이름 대신 어머니 이름을 내걸어 ‘임미숙 장학금’이라 명칭을 붙였다. 어머니 이름을 내건 이유는 부모님이 대학동기로 똑같이 공부했지만, 어머니는 조 교수 형제를 기르느라 경력단절여성이 되어서, 그런 어머니의 희생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여자 후배들이 자신의 어머니처럼 출산과 육아 때문에 고민하게 된다면, 장학금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 교수는 또 한국 고전 학술상 제정에도 1억원을 기부했다. 고전문학자인 아버지와 제자들이 지원도 없이 묵묵히 한 우물 파는 것을 보면서 인문학자들을 돕고 싶었단다.

 

균형 잡힌 생각과 물질에 매이지 않는 천재가 우리의 미래를 맡는 AI연구자라는 것이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우리사회 불평등, 그 가운데서도 젠더 평등을 위해 바른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동양일보 2021. 7. 15.]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21. 7. 6. 10:11

 

 

http://cc.newdaily.co.kr/site/data/html/2021/07/04/2021070400057.html

 

 

 

박 교수의 칼럼을 잔잔한 감동 속에 읽었다. 내용 가운데 조경현이 언급되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경직성에 대한 지적이 매우 온당하고 시의적절하기 때문이었다. 로펌 김앤장 소속 김진수 변호사와 그 부모의 이야기 또한 참으로 감동적이다.

 

 

'자식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적이 없고, 악기를 배우도록 했으며, 좋은 경험들을 두루 쌓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실제로 거의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무한경쟁 속에서 시험 문제 하나 맞고 틀림에 따라 미래의 진로가 결정된다고 믿는 우리나라의 교육 체제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 변호사 부모의 교육을 김 변호사와 박 교수는 '방목형 교육'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 부모의 심지 깊은 철학이 없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굳이 내 생각을 보태서 표현하자면, '철학을 바탕으로 한 방목형 교육'이라 해야 할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세상 부모들은 방목형 교육에 대한 철학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아니 그런 교육철학을 아예 허용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현실이다. 그런 현실적 여건 속에서도 자신들의 철학을 실천에 옮긴 부모의 용기와 그 철학을 받아들여 노력함으로써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휘한 김 변호사가 상호조응을 했기에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이 점을 예리하게 간파하여 설명한 것이 박 교수의 이 칼럼이다.

 

 

조경현에 대한 박 교수의 진단 역시 정곡을 찔렀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막내로서 '깡촌'에서 태어난' 나는 미래에 대한 꿈이나 계획 자체가 소박하기 짝이 없었다.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신 아버지도, 간이소학교를 마치신 어머니도 내게 앞날에 대하여 조언을 건네시거나 강요를 하신 적이 없다. 그저 농사일보다는 '펜대를 굴리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들을 갖고 계셨다. 만약 남들보다 돈 많이 버는, 그럴 듯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부모님께서 강요하셨다면,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던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 방향으로 나갔을 것이다. 물론 잘 되었을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지금보다 그다지 마음 편하고 행복하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부모님은 다만 ‘철저히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만을 보여주셨다. 지금도 내가 대략 아침 5시쯤이면 기상하는 것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습성들 가운데 하나다. 그처럼 모든 것을 나는 내 삶에 대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다.

 

객지에서의 말 못할 고생 속에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돈 없고 빽 없는' 내가 가장 빨리 ‘펜대 굴리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일이 '교직'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고, 당시 학비와 생활비가 가장 저렴한 공주사범대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가까스로 제도권 교육을 받으면서 표본으로 삼을만한 선생님은 없었고, 무엇보다 자라면서 주변에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조차 없었지만, 교직에 대한 막연한 동경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졸업 후 1년 간 교직에 있다가 대학원에 진학했고, 그로부터 전개되는 여러 단계들을 거치는 동안 부모님은 '그래 잘했다!'는 말씀 뿐이셨다. 그 과정에서 으레 누구나 스스로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으로 알았고, 부모가 자식의 미래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체득하게 된 것이다. 내가 아버지 된 후에 단 한 번 자식의 미래를 재단하려 하지 않은 것도 돌아가신 내 부모님의 철학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내 결정의 온당함을 믿어주셨기 때문에 그나마 엇나가지 않고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었음을 깨달았고, 나는 이날까지 '진정한 교육자'이셨던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조경현도 그렇다. 좀 뭣한 말이지만, 나는 그가 언제부터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카이스트로 진학하려고 했는지를 이번 인터뷰 기사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카이스트를 마치고 유럽으로 유학을 간다는 사실과, 여러 유명 대학원들로부터 어드미션을 받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핀란드의 알토대학 대학원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그가 떠날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그러니 그 후에 인공지능을 전공으로 선택한 일을 어찌 알았겠는가. 생각해보면, 참으로 창피스런 일일 수도 있고 서운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결코 창피하다거나 서운하지 않았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 내 부모님께 진학할 대학과 학과, 전공을 상의한 적이 있었는가. 모두 내가 결정한 일이었다. 의사결정에 관한 그런 일이 나와 내 자식 사이에 재현된 것 아니겠나. 나는 그저 '무엇을 하든 나태하지 말고 성실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점만 강조하고, 그 말을 실천으로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 내 뜻을 간파하느냐의 여부는 그에게 달린 일이고, 그로부터 그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믿어온 나였다.

 

지금 나는 조경현이 일생 해야 할 공부를 발견하고 매진하며 무언가를 이룬 모습을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 성취로 인해 매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따스한 감동이 가슴 가득 차오름을 느끼고 있다. 만약 미래에 대한 통찰이 결여된 나의 짧은 안목으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들과 맞지 않아 불만스럽게 살아간다면, 그 비극적 참상을 나는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조경현이 자신의 전공에 만족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그의 동생 조원정에 대해서도 나는 똑같은 잣대로 거리를 두었고, 지금 그는 형과 다른 길을 걸으며 마찬가지로 매우 행복해 한다. 그러니 내 경우야말로 박 교수가 말한 '방목형 교육'에 들어맞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연한 기회에 박 교수의 칼럼을 읽게 되었고, 잠시 내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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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로 나를 돌아보게 만들어 주신 박규홍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