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1. 9. 7. 21:28

 서실에서 고서를 보여주시는 인산 선생님

 

인산 선생님,

 

며칠 전 소식이 궁금하여 전화를 드렸었지요.

전화기 너머로 간신히 이어가시던 몇 마디 말씀을 잊지 못합니다.

끝내 말씀을 맺지 못하시고, 사모님께 전화기를 넘겨주시던 일을 잊지 못합니다.

그 즉시 달려가지 못한 제 불찰을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제 선생님이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고약한 코로나 핑계나 대야 할까요?

제 타고난 게으름과 대책 없는 낙천성이나 탓해야 할까요?

설마 설마하며 볕 들 날만 기다려 온 못난 후학은 이제 어찌해야 할까요?

 

선생님과는 실 꼬리만큼의 학연이나 지연조차 갖고 있지 못한 저였지만,

선생님께서는 저를 어여삐 여기시고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지요.

지금도 제 컴퓨터 속에는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의 자료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 큰 부분이 선생님께서 주신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아낌없이 주시면서

“조 교수를 만난 건 내 행운이여. 이것들을 갖다가 학계에 제대로 알려 주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 아니겠소?”라고 껄껄 웃으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바로 앞에 대한 듯,

지금 이 순간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손 선생님도, 연민 선생님도 안 계신 이 땅에 인산 선생님마저 이렇게 홀연 떠나시면

가련한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인간의 마지막 길은 정해져 있다지만,  겨우 산수(傘壽)에 이리도 바삐 떠나실 줄 알았다면, 코로나를 핑계로 지난 2년간이나 뵙지 못하는 일은 없었겠지요?

 

인산 선생님,

선생님께서 평소에 베풀어주신 사랑의 힘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학문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선생님은 제게 건네주시는 책들을 통해 삶의 진실까지 덤으로 전수해 주셨습니다. 그 크신 뜻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 진실을 삶이 끝날 때까지 실천하다가 선생님 계신 곳으로 가고자 합니다. 모든 병마들이 범접할 수 없는 그곳에서 영원하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시는 모습을 반드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명계에서 편안하고 행복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2021. 9. 7.

 

못난 후학 백규는 울며 절하옵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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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1. 8. 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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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사계 제42호(2021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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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조규익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야기 속의 삶과 바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땅. 우리 민족은 한시도 바다와 떨어져 살 수 없었다. 아무리 내륙으로 숨어도 바다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특히 먼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세상을 벗어나 알 수 없는 이계異界로 나아감을 의미했다. 바다는 물고기와 해초, 소금을 구하는 현실의 공간이자 알 수 없는 환상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인물들은 늘 바다 밖으로 나가는 꿈을 꾸었다. 비좁은 땅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다 밖을 몽상하는 일이었다.

 

신라 진평왕 9년 7월 바다 밖으로 떠나간 대세大世와 구칠仇柒은 그 시기에 이미 바다 밖의 세계를 꿈꾼 인물들이었다. 대세는 친구 구칠에게 “이 좁은 신라의 산골 속에 파묻혀 일생을 마친다는 것은 못물 속의 고기가 바다 큰 줄을 모르고 조롱 속의 새가 산림 넓은 줄을 모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나는 장차 떼를 타고 바다에 두둥실 떠 오나라·월나라로 가서 스승을 찾아 따르려 하네. 명산에서 도를 구하여 만약 속태를 바꾸고 신선을 배운다면 바람도 잡아타고 훨훨 허공 위로 날 것이니 이야말로 천하에 신기한 놀음이요 장관 아니겠나?”[《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진평왕조]라고 설득하여 둘은 드디어 바다로 떠났고, 결국 역사의 기록으로도 남게 되었다.

 

성격이 약간 다른 기록들 둘만 더 들어보자. 첫째는 강원도 고성 땅의 유동지가 동네 사람들과 동해로 미역 따러 나갔다가 풍랑에 떠밀려 고성으로부터 31만 리 밖 단구丹邱라는 절 도絶島에 표착한 사건이다. 그 섬에서 그들은 마찬가지로 고성 땅으로부터 표류해와 정착한 노인의 보호를 받고 50여일을 지냈다. 그 섬에서의 하루는 인간세계의 일 년에 해당하므로 표착 시점부터 50년이나 지났으니, 섬에서 그냥 머물러 지내는 게 좋을 거라고 노인은 말했다. 그 말을 거부하고 돌아와 보니 부모와 처자는 모두 죽고 손자마저 이미 늙어 있었다. 화식火食을 재개하면서 함께 돌아온 두 사람은 죽고 유랑은 단구에서 훔쳐 온 경액 덕분에 200살을 살았다는 것이다.[〈식단구유랑표해識丹邱劉郞漂海〉, 《청구야담》(권19), 학고방, 2017].

 

또 하나는 청주 상인이 제주도에서 만난, 다리 없는 노인으로부터 들은 경험담으로 젊은 날의 노인은 바다에서 표류하던 중 한 섬에 도착했다. 극심한 배고픔과 갈증에 한 집으로 들어갔다가 엄청난 체구에 검은 얼굴, 움푹 파인 둥그런 눈, 나귀 같은 음성의 식인거인食人巨人에게 일행 중 총각 한 명이 잡아먹힌 뒤 천신만고 끝에 탈출했고, 배가 파선되면서 혼자만 살아남았으나 몹쓸 고기에 두 다리를 잃었다는 이야기였다.[〈대인도상객도잔명大人島商客逃殘命〉, 임명덕 《한국한문소설전집》(권 8),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대세와 구칠의 이야기〉는 큰 꿈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이 바다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데 성공했음을 암시했으니, 그 때의 바다는 도전을 통해 극복할만한 가치가 있는 장애물로서의 공간이었고, 〈식단구유랑표해〉의 바다는 선계를 설정하여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킨 환상적 공간이었으며, 〈대인도상객도잔명〉의 바다는 제주도 남쪽 먼 곳 어떤 섬에서 식인종을 만나 고난을 당한 이야기로서 험난한 고통의 현실적 공간일 수 있다.

 

이것들이 상당부분 흥미로운 허구를 뼈대로 삼아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삶의 한복판에서 경험한 바다가 없었다면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이야기들이다. 인간 현실의 복잡한 삶을 표본으로 삼아 만들어지는 것이 서사문학인데, 바다 이야기들 대부분은 삶과 바다가 하나로 결합된 서사가 그 주축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우리 문학에 나타나는 바다는 경험과 환상,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결합된 이중적 의미의 공간이고, 바다의 이런 성격은 동시대나 후대 서사문학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어왔다.

 

 

노래문학 속의 삶과 바다

 

원래 말로 만들어져 존속되던 이야기나 노래들을 문서로 기록한 것들이 우리 고전문학이다. 이야기나 노래에 쓰인 말들 대부분 일상의 구어口語였으므로, 고전문학이 특정 지식층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모든 계층이 이야기와 노래에 쓰인 개념어와 사물 지시어 등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노래문학이나 이야기문학에 바다가 소재 혹은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들은 적지 않다. 향가·악장·가곡창사[시조]·가사 중 몇 작품들을 통해 바다의 의미를 찾기로 한다.

 

현실적 고통에 시달리던 중생들을 깨우치고 구세하려는 목적으로 지은 노래가 균여대사의 〈보현시원가普賢十願歌〉였다. 한시 아닌 일상의 구어로 부르고 향찰鄕札로 표기하여 중생들이 쉽게 부르며 얻은 깨달음을 오래 전해질 수 있도록 기록한 것이 향가다. 이 노래의 몇 군데에 바다[海]가 등장하는데, 바다에 대한 당시 민중들의 기대지평이 명료하게 반영되어 있다. 〈보현시원가〉 중 〈칭찬여래가稱讚如來歌〉의 ‘無盡辯才叱海(끝없는 말재주의 바다)’·‘際于萬隱德(갓 없는 덕의 바다)’, 〈광수공양가廣修供養歌〉의 ‘燈油隱大海逸留去耶(등유는 큰 바다 이루거라)’, 〈보개회향가普皆廻向歌〉의 ‘佛體叱海(부처ㅅ바다)’ 〈총결무진가總結無盡歌〉의 ‘際毛冬留願海(갓 모를 소원의 바다)’ 등에 나타나는 바다는 불교의 종지宗旨를 드러내기 위한 유의喩意이다. 관념적 용어이긴 하나 경험을 전제로 하지 않은 경우 노래로 불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보현시원가》의 바다는 관념과 경험 양자를 절충하여 당대의 보편적 인식을 드러낸 사례이다. 당대에도 실재의 바다는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의 세계였고, 외경스럽고 위력적인 대상이었으며, 깊고 충만하고 무한·광활하며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의 근원이자 실체였다. 이런 관념적 바다와 달리 경험적 공간인 바다가 미래의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속악가사俗樂歌詞 〈청산별곡靑山別曲〉의 사례도 있다. 이 노래 제6연의 “살어리 살어리랏다/바ᄅᆞ래 살어리랏다/ᄂᆞᄆᆞ자기 구조개랑 먹고/바ᄅᆞ래 살어리랏다”에서 ‘나마자기와 구조개를 먹는’ 바다는 ‘머루랑 다래를 먹는’ 청산[제1연]과 함께 한계상황에 부닥친 화자가 돌아와 살고 싶은 두 갈래의 이상향 들이었다. 세속에서 버림받은 시적 자아에게 바다는 청산과 함께 허여許與된 유일한 대안이자 선택지였던 것이다.

 

조선조로 넘어오며 의미심장한 첫 바다는 《용비어천가》 제2장[“ᄉᆡ미기픈므른 ᄀᆞᄆᆞ래아니그츨ᄊᆡ내히이러ᄇᆞᄅᆞ래가ᄂᆞ니”]에 등장한다. 건국신화·영웅신화의 모티프를 뼈대로 이루어진 교술적 서사시 《용비어천가》는 궁중 의례문학儀禮文學으로서의 악장이면서 노래문학의 모범적 선례이기도 했다.

 

깊은 샘물은 바다를 이루는 근원이고, 바다는 자손만대 왕조의 번영을 상징한다. 원래 샘과 바다는 물을 공유하는 공간들이며, 그것들 모두 생생력生生力의 근원적 실체들이다. 샘물처럼 유래가 오랜 조상으로부터 바다같이 무한한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왕조의 번영을 기원한 것이 이 노래다. 《용비어천가》 제53장[사해四海ᄅᆞᆯ 평정平定ᄒᆞ샤 길우희 양식糧食니저니]을 포함,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사해四海ㅅ믈이여 오나ᄂᆞᆯ 마리예 븟ᄉᆞᆸ고 태자太子를 셰ᄉᆞᅀᆞᄫᆞ니]·〈감군은感君恩〉[오백년五百年이 도라 사해四海ㅅ므리 ᄆᆞᆯ가] 등의 악장들에 두루 사해四海가 등장한다. 이 경우 ‘바다’라는 유의喩意와 ‘온천하’라는 취의趣意들로 이루어진 ‘사해’는 불덕佛德 혹은 왕이나 왕조의 치공이 미치는 범위를 최대한 넓혀 표현하려는 욕망의 소산이다. 그리고 이것들 모두 실제 바다가 지닌 무한無限[무변無邊]의 이미지로부터 나왔음은 물론이다.

 

이 같은 관념의 바다와 현실이 결부되어 나타난 사례가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라고 할 수 있다. 〈춘사春詞 제1연〉[압개예 안개 것고 뒫뫼희 ᄒᆡ비췬다/밤믈은 거의디고 낟믈이 미러온다/강촌江村 온갖고지 먼 빗치 더옥 됴타]·〈추사秋詞 제3연〉[수국水國의 ᄀᆞᄋᆞᆯ히 드니 고기마다 살져읻다/만경징파萬頃澄波의 슬ᄏᆞ지 용여容與ᄒᆞ쟈/인간人間을 도라보니 머도록 더옥 됴타]·〈동사冬詞 제4연〉[간밤의 눈갠후後에 경물景物이 달랃고야/압희는 만경유리萬頃琉璃 뒤희ᄂᆞᆫ 천첩옥산千疊玉山/선계仙界ㄴ가 불계佛界ㄴ가 인간人間이 아니로다] 등에는 바다와 대비되는 현실의 모습이 눈에 잡힐 듯 나타나 있다. 어로인漁撈人 아닌 작자가 어부漁父의 페르소나를 빌려 쓴 채 실제 바다에서 자신을 버린 세상 현실을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인용한 부분들 각각의 앞부분 두 구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바다를 객관적으로 그려낸 내용인 반면, 마지막 구절들[강촌江村 온갖고지 먼 빗치 더옥 됴타, 인간人間을 도라보니 머도록 더옥 됴타, 선계仙界ㄴ가 불계佛界ㄴ가 인간人間이 아니로다]은 인간세상과 대비되는 바다를 윤선도 자신의 감정에 적셔낸 것들이다. ‘먼 빛이 더옥 좋다’든가 ‘멀수록 더욱 좋다’는 것은 부정적인 세상현실로부터 멀어지고 싶다는, 세상에 대한 윤선도의 혐오를 암시한다. 바다로 갈수록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니, 세상이 좋아 보이는 것은 현재 그가 세상으로부터 미학적 거리를 유지하며 바다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사夏詞 제2연〉[년닙희 밥싸두고 반찬으란 쟝만마라/청약립靑篛笠은 써 잇노라 녹사의綠蓑衣 가져오냐/무심無心ᄒᆞᆫ 백구白鷗ᄂᆞᆫ 내 좃ᄂᆞᆫ가 제 좃ᄂᆞᆫ가]를 보면 작자가 비록 가어부假漁父에 불과하다 해도 전형적인 어부의 삶을 노래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앞의 노래들처럼 부정적인 세상에 대한 이상공간으로서의 바다를 노래하지는 않았으며, 무엇보다 바다의 활력을 제유提喩하는 백구와 시인의 자아가 합일되는 경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지 않은가. 분명 초창기에 비중이 높았던 관념의 바다로부터 현실적이며 미학적인 바다로 옮겨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다.

 

가사의 경우 다른 시가장르들과 달리 호흡이 길고 작품의 길이에 제한이 없었던 만큼 관념이나 압축보다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바다가 주류를 이룬다. 유배가사 중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續思美人曲〉[니진항구梨津港口의 쥬즙舟楫을 뎡돈整頓ᄒᆞ야/동풍東風이 건듯 불며 쌍범雙帆을 놉히 다니/창파묘망滄波渺茫ᄒᆞ며 물밧근 하ᄂᆞᆯ일다/고도孤島ᄅᆞᆯ 지졈指點ᄒᆞ니 흑ᄌᆞ黑子만 계유하다/시야쟝반時夜將半ᄒᆞ매 광풍狂風이 졉텬接天ᄒᆞ니/듕뉴실타中流失柁ᄒᆞ야 호흡呼吸의 위ᄐᆡᄒᆞᆯᄉᆡ/장년長年 쇽슈束手ᄒᆞ고 쥬듕舟中이 실ᄉᆡᆨ失色ᄒᆞ니/묘연渺然ᄒᆞᆫ 이 내 몸이 ᄉᆞᄉᆡᆼ死生이야 관계關係ᄒᆞ랴], 박인로의 〈선상탄船上嘆〉[ᄇᆞ람조친 황운黃雲은 원근遠近에 사혀잇고/아득ᄒᆞᆫ 창파滄波ᄂᆞ 긴하ᄂᆞᆯ과 ᄒᆞᆫ빗칠쇠/(…)/대양大洋이 망망茫茫ᄒᆞ야 천지天地예 둘려시니 진실로 ᄇᆡ아니면 풍파만리風波萬里밧긔 어ᄂᆡ 사이四夷 엿볼넌고], 김인겸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이윽고 ᄒᆡ돗거ᄂᆞᆯ 장관을 ᄒᆞ여보ᄉᆡ/ᄉᆞ면을 ᄇᆞ라보니 어와 장ᄒᆞᆯ시고/구만니 우듀속의/큰물결 분이로ᄉᆡ/동남을 도라보니 바다히 ᄀᆞ이업ᄂᆡ/슬프다 우리길이 어ᄃᆡ로 가ᄂᆞᆫ쟉고] 등은 가사에 묘사된 바다의 모범적 사례들이다.

 

광풍 속에 키를 잃은 뱃사공들이 어찌 할 바 모를 정도의 위급하고 고생스런 상황을 그려낸 것이 〈속사미인곡〉이다. 이 작품에서 바다로부터의 가혹한 시련을 묘사한 점은 표류설화나 표해록들의 그것과 같다. 그러나 〈선상탄〉과 <일동장유가>에는 다른 모습의 바다가 등장한다. 임진왜란 때 좌절도사 성윤문 막하의 수군으로 참전한 박인로의 <선상탄>에는 천지를 둘러 나라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 같은 바다가 묘사되어 있다. 배만 없었다면 왜구들이 이 땅을 넘보지 못했을 거라는, 현실적이면서도 약간은 소극적인 바다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서정적 공간으로서의 바다가 <일동장유가>에는 등장한다. ‘어와 장ᄒᆞᆯ시고’, ‘슬프다’ 등 감탄구들이 정서의 핵심 포인트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바다의 서사적 흥분이나 긴장보다는 자아와 대상의 합일을 미학적으로 드러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나가며

 

예로부터 다양한 산문들과 운문들의 배경으로 사용하거나 개별 작품들의 주지主旨를 드러내기 위한 이미지로 바다를 끌어왔다. 대부분의 산문들에서 바다는 위기와 시련으로 점철된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현실적 공간으로, 운문들에서는 이미지를 통해 작자의 미적 인식과 작품의 미학을 완성시켜주는 서정적 공간으로 각각 사용되어 왔다. 관념과 현실, 서사와 서정의 병행이나 착종錯綜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온 공간이 바로 바다였다. 심해深海 탐사 기술이 발달한 현재도 바다의 깊은 속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겉만 알고 속을 모르면, 그걸 안다고 할 수 없는 법, 바다 속을 모르니, 예나 지금이나 바다는 공포와 경외의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며 당하는 시련은 인간의 공포와 경외심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고전문학에 등장하는 바다의 맥을 잡는다거나 의미를 구조화시키는 것이 그다지 수월한 일은 아니다. 고전문학이 생산되고 소비되던 각 시대의 미의식과 정신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과 관념, 서사와 서정을 적절히 조합하여 바다를 아름답게 형상해낸 우리 고전문학은 매우 소중하다. 미친 듯 파도치는 대양을 일엽편주로 건넌다든가 사투 끝에 괴물 같은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행위를 ‘대자연에 대한 인간의지의 승리’로 그려내는 현대 해양문학의 전통적 발판이 바로 고전문학의 바다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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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21. 7. 19. 23:31

 

                                                 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37913 

 

 

 

“앞으로 우리 뇌가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면서요?”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필요가 없어지지요. 어차피 함께 살게 되니까요. 이미 시작되었잖아요.”

 

유튜브 녹화 차 회사를 방문한 박외진 AI 로봇전문가와 잠시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 메타버스(metaverse) 얘기가 나왔다. 현실적 감각으로는 아직 이해가 어려운 가상의 세계와 AI에 대한 대화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서 흥미로웠다. 문득 최근 관심을 갖게 된 AI의 불균형에 대해 질문을 했다. 모교인 카이스트 전산학과에 1억 원의 장학금을 쾌척하면서 지원 대상을 여학생으로 한정했다는 뉴욕대 조경현 교수가 떠올라서였다.

 

“조경현 교수 알아요?”

 

“아, 조경현 교수요. 카이스트 후뱁니다. 조 교수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여성들을 상대로 장학금을 지원한 것 정말 잘한 일이에요. 요즘 전세계 AI 연구자들의 최대 화두가 ‘다양성’과 ‘성별균형’이거든요. 그동안 AI에 들어간 데이터에는 ‘흑인’이 없어요. ‘소수집단’이나 ‘여성’도 없어요. ‘소외된 지역’도 없지요. 잘사는 나라, 백인, 남성의 데이터로 만들어지고 있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AI는 불균형일 수 밖에 없어요. AI의 활동이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요. 늦었지만 최근 들어서 ‘데이터 편향(bias of data)’ 문제를 바로잡자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고 그것이 AI업계의 과제입니다.”

 

편향된 데이터로 알고리즘을 만든 AI는 인류의 대표성을 지닐 수 없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은 인공지능업계의 연구자 대부분이 남성들로, 그들 눈에는 이런 문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이 없다는 이유로 여성이나 소수 집단이 데이터에서 배제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AI연구에서 ‘젠더 균형’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대놓고 드러내 여성전문가를 지원하고 있는 이가 조경현 교수이다. 조 교수는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핀란드와 캐나다를 거쳐 미국 뉴욕대의 종신교수로 세계 인공 지능 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AI를 연구하는 천재 공학도. ‘인공 지능 번역’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자랑스런 30대 젊은 남성 공학자다.

 

그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뉴욕대 교수로 임용된 지 4년 만에 종신 교수가 됐고, 구글, 아마존 등 굴지의 글로벌 IT 기업이 그의 연구를 후원하는 등 뛰어난 연구업적과, 강연료나 상금을 받는 족족 탈탈 털어 전액을 기부, 그것도 여성공학도를 위한 장학금으로 쾌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성별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다.

 

지난해 ‘삼성 AI 연구자상’으로 받은 상금은 전액을 포닥(포스트닥터)을 한 캐나다 몬트리올대에 기부했고, 네이버, SK텔레콤 등 국내 기업체 강의료도 받은 즉시 학생들에게 내놓았다. 올해 받은 호암상의 상금은 석·박사를 공부한 핀란드 알토대에 3만유로(약 4000만원)를 보냈고, KAIST에 1억원을 기부했다. 몬트리올대 알토대 카이스트는 모두 조 교수가 공부를 한 모교들이다. 그는 모교에 장학금을 보내면서 대상을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는 여학생’으로 한정했다.

 

카이스트 장학금도 마찬가지로 여학생 전공자를 대상으로 지정했다. 카이스트 장학금에는 자기 이름 대신 어머니 이름을 내걸어 ‘임미숙 장학금’이라 명칭을 붙였다. 어머니 이름을 내건 이유는 부모님이 대학동기로 똑같이 공부했지만, 어머니는 조 교수 형제를 기르느라 경력단절여성이 되어서, 그런 어머니의 희생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여자 후배들이 자신의 어머니처럼 출산과 육아 때문에 고민하게 된다면, 장학금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 교수는 또 한국 고전 학술상 제정에도 1억원을 기부했다. 고전문학자인 아버지와 제자들이 지원도 없이 묵묵히 한 우물 파는 것을 보면서 인문학자들을 돕고 싶었단다.

 

균형 잡힌 생각과 물질에 매이지 않는 천재가 우리의 미래를 맡는 AI연구자라는 것이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우리사회 불평등, 그 가운데서도 젠더 평등을 위해 바른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동양일보 2021. 7. 15.]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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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1. 7. 6. 10:11

 

 

http://cc.newdaily.co.kr/site/data/html/2021/07/04/2021070400057.html

 

 

 

박 교수의 칼럼을 잔잔한 감동 속에 읽었다. 내용 가운데 조경현이 언급되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경직성에 대한 지적이 매우 온당하고 시의적절하기 때문이었다. 로펌 김앤장 소속 김진수 변호사와 그 부모의 이야기 또한 참으로 감동적이다.

 

 

'자식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적이 없고, 악기를 배우도록 했으며, 좋은 경험들을 두루 쌓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실제로 거의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무한경쟁 속에서 시험 문제 하나 맞고 틀림에 따라 미래의 진로가 결정된다고 믿는 우리나라의 교육 체제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 변호사 부모의 교육을 김 변호사와 박 교수는 '방목형 교육'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 부모의 심지 깊은 철학이 없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굳이 내 생각을 보태서 표현하자면, '철학을 바탕으로 한 방목형 교육'이라 해야 할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세상 부모들은 방목형 교육에 대한 철학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아니 그런 교육철학을 아예 허용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현실이다. 그런 현실적 여건 속에서도 자신들의 철학을 실천에 옮긴 부모의 용기와 그 철학을 받아들여 노력함으로써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휘한 김 변호사가 상호조응을 했기에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이 점을 예리하게 간파하여 설명한 것이 박 교수의 이 칼럼이다.

 

 

조경현에 대한 박 교수의 진단 역시 정곡을 찔렀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막내로서 '깡촌'에서 태어난' 나는 미래에 대한 꿈이나 계획 자체가 소박하기 짝이 없었다.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신 아버지도, 간이소학교를 마치신 어머니도 내게 앞날에 대하여 조언을 건네시거나 강요를 하신 적이 없다. 그저 농사일보다는 '펜대를 굴리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들을 갖고 계셨다. 만약 남들보다 돈 많이 버는, 그럴 듯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부모님께서 강요하셨다면,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던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 방향으로 나갔을 것이다. 물론 잘 되었을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지금보다 그다지 마음 편하고 행복하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부모님은 다만 ‘철저히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만을 보여주셨다. 지금도 내가 대략 아침 5시쯤이면 기상하는 것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습성들 가운데 하나다. 그처럼 모든 것을 나는 내 삶에 대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다.

 

객지에서의 말 못할 고생 속에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돈 없고 빽 없는' 내가 가장 빨리 ‘펜대 굴리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일이 '교직'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고, 당시 학비와 생활비가 가장 저렴한 공주사범대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가까스로 제도권 교육을 받으면서 표본으로 삼을만한 선생님은 없었고, 무엇보다 자라면서 주변에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조차 없었지만, 교직에 대한 막연한 동경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졸업 후 1년 간 교직에 있다가 대학원에 진학했고, 그로부터 전개되는 여러 단계들을 거치는 동안 부모님은 '그래 잘했다!'는 말씀 뿐이셨다. 그 과정에서 으레 누구나 스스로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으로 알았고, 부모가 자식의 미래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체득하게 된 것이다. 내가 아버지 된 후에 단 한 번 자식의 미래를 재단하려 하지 않은 것도 돌아가신 내 부모님의 철학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내 결정의 온당함을 믿어주셨기 때문에 그나마 엇나가지 않고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었음을 깨달았고, 나는 이날까지 '진정한 교육자'이셨던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조경현도 그렇다. 좀 뭣한 말이지만, 나는 그가 언제부터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카이스트로 진학하려고 했는지를 이번 인터뷰 기사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카이스트를 마치고 유럽으로 유학을 간다는 사실과, 여러 유명 대학원들로부터 어드미션을 받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핀란드의 알토대학 대학원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그가 떠날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그러니 그 후에 인공지능을 전공으로 선택한 일을 어찌 알았겠는가. 생각해보면, 참으로 창피스런 일일 수도 있고 서운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결코 창피하다거나 서운하지 않았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 내 부모님께 진학할 대학과 학과, 전공을 상의한 적이 있었는가. 모두 내가 결정한 일이었다. 의사결정에 관한 그런 일이 나와 내 자식 사이에 재현된 것 아니겠나. 나는 그저 '무엇을 하든 나태하지 말고 성실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점만 강조하고, 그 말을 실천으로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 내 뜻을 간파하느냐의 여부는 그에게 달린 일이고, 그로부터 그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믿어온 나였다.

 

지금 나는 조경현이 일생 해야 할 공부를 발견하고 매진하며 무언가를 이룬 모습을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 성취로 인해 매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따스한 감동이 가슴 가득 차오름을 느끼고 있다. 만약 미래에 대한 통찰이 결여된 나의 짧은 안목으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들과 맞지 않아 불만스럽게 살아간다면, 그 비극적 참상을 나는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조경현이 자신의 전공에 만족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그의 동생 조원정에 대해서도 나는 똑같은 잣대로 거리를 두었고, 지금 그는 형과 다른 길을 걸으며 마찬가지로 매우 행복해 한다. 그러니 내 경우야말로 박 교수가 말한 '방목형 교육'에 들어맞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연한 기회에 박 교수의 칼럼을 읽게 되었고, 잠시 내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

 

좋은 글로 나를 돌아보게 만들어 주신 박규홍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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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1. 7. 3. 22:38

 

 

미국 뉴욕대 근처 워싱턴 스웨어 아치 앞에 조경현 교수가 섰다. 핀란드와 캐나다를 거쳐 뉴욕으로 온 이 한국 젊은이는 지금 세계 인공 지능 학계의 주목을 받는 스타다. 조 교수는 말하기를 "AI는 만능도, 마법도 아니다" 라며 "세상을 한번에 바꾸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라고 했다. 사진에 프로그래밍 언어 이미지를 합성했다. 사진작가 서승재, 그래픽 김현국

 

 

2019년 '삼성 AI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조경현 교수/삼성전자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김미리 기자의 1미리]

 

호암상 받은 36세 인공지능 석학

조경현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김미리 기자/입력 2021.07.03. 03:00]

 

2008년 가을 KAIST(한국과학기술원) 대덕 캠퍼스. 졸업으로 직진하는 대부분의 KAIST 천재와는 달리 7년째 학부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전산학과 ’02학번' 학생이 있었다. 유일한 목표는 무사히 졸업하는 것. 학점 따기 쉬운 1학년 교양과목을 집중 공략해 강의실 뒷자리를 지켰다. 하루는 선배가 학과 사무실에서 가져온 팸플릿을 건넸다. 핀란드 알토대 ‘인공 지능(AI)’ 석사과정 프로그램 모집 공지였다. 미래가 희미했던 공학도는 이듬해 무작정 핀란드로 떠났다.

 

13년 전 졸업을 걱정했던 그 청춘이 지난달 모교 KAIST 전산학과에 1억원을 쾌척했다. 장학금 이름은 ‘임미숙 장학금’, 지원 대상은 여학생이었다. 그렇다면 그 졸업생이 임미숙이냐고? 아니다. 임미숙은 기부자의 어머니다.

 

자기 이름 대신 어머니 이름 석 자를 내걸며 “여성 공학도를 지원하겠다”고 한 주인공은 30대 남자 공학자다. 세계적 AI 석학으로 꼽히는 조경현(36)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인공 지능 번역’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가 스물아홉 살이던 2014년,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와 함께 발표한 ‘신경망 기계 번역’ 개념은 기존 기계 번역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버렸다. 구글 번역기 등 대부분 번역기가 이 개념을 활용한 것이다.

 

이 천재 공학자에게 쏠린 관심은 뜨겁다. 2015년 뉴욕대 교수로 임용된 지 4년 만에 종신 교수가 됐고, 작년까지 페이스북에서 연구 과학자로도 일했다. 구글, 아마존 등 굴지의 글로벌 IT 기업이 그의 연구를 후원했다. 네이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기업의 자문도 맡고 있다. 얼마 전엔 국내 최고 권위 학술상인 ‘삼성호암상’ 공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은 타는 족족 기부하고, 남성 공학자이지만 여성 공학자 육성을 누구보다 강조한다. 최첨단 AI 전문가인데 정작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분야는 인문학이라고 역설한다. 뉴욕에 있는 괴짜 공학자를 화상 앱 ‘줌’으로 만났다.

 

 

◇AI 전설 삼인방이 인정한 ‘천재’

 

AI ‘딥 러닝(컴퓨터가 방대한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규칙을 찾아내는 기술)’ 분야에서 ‘3대 전설’로 꼽히는 이들이 있다. 제프리 힌턴(구글 석학 연구원)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얀 르쾽(페이스북 수석 AI 엔지니어) 뉴욕대 교수. 2018년 ‘컴퓨터 과학계의 노벨상’으로 꼽히는 ‘튜링상’을 공동으로 받은 이 삼인방이 공통으로 꼽는 이 분야 차세대 스타가 조경현 교수다.

 

–천재들한테 천재로 인정받은 셈 아닌가요.

 

“스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세 분 다 이 분야에서 매우 유명하신 분이죠. 모두 친분이 있고요. 벤지오 교수 연구실에선 박사 후 과정(포스트닥터)을 했고, 얀 르쾽 교수는 뉴욕대 동료입니다.” 2017년 블룸버그가 선정한 ‘2018년에 주목할 인물 50인’ 명단에 올랐을 때, 그를 추천한 이는 ‘딥 러닝의 아버지’라는 힌턴 교수였다.

 

–교수님이 고안한 ‘신경망 기계 번역’은 어떤 개념인지요.

 

“기존 기계 번역은 원문과 번역본 사이에서 ‘단어’가 어떻게 번역됐는지 보고,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번역하는 시스템이었어요. 단어와 어순이 비슷한 언어끼리는 번역이 잘되는데, 한국어·영어처럼 완전히 다른 언어끼리는 엉터리 번역이 많았죠. ‘신경망 기계 번역’은 딥 러닝을 적용해 문장의 ‘맥락’을 파악해 번역하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과거엔 ‘나 말리지 마’란 문장을 번역기에 돌리면 ‘Don’t dry me’가 나왔지만, 요즘은 ‘Don’t stop me’가 나온다. AI가 접목된 결과인데, 그 핵심 기술이 조 교수가 고안한 개념에서 나왔다.

 

–'번역'에 왜 관심이 많은가요?

 

“10년 넘게 헬싱키, 몬트리올, 뉴욕에서 살며 번역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그리고 인터넷 세상에선 번역이 더 중요해요. 온라인 콘텐츠의 60%가 영어, 나머지 40%가 중국어·아랍어·불어 등으로 돼 있다고 해요. 영어 편중이 너무 심하죠.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3억명 가까운데 인도네시아어로 된 콘텐츠는 거의 없어요. AI 번역이 잘되면 이런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고, 디지털 장벽도 확 낮출 수 있어요.”

 

–곧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올까요?

 

“안타깝지만, 한참 걸릴 겁니다. AI는 만능도, 마법도 아닙니다.”

 

 

자택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조경현 / 사진작가 서승재

 

 

◇넥타이 못 매도 AI 알고리즘은 뚝딱

 

–호암재단 관계자가 공식 자료용으로 넥타이 맨 사진을 요청했더니 교수님이 넥타이를 못 맨다고 했다고요? 담당자가 “그 복잡한 알고리즘을 짜는 분이 넥타이를 못 맨다니 안 믿긴다”면서 웃더군요.

 

“교복 입을 때 지퍼로 된 넥타이 맨 거 빼고 넥타이 맬 일이 거의 없었어요. 안 해본 건 잘 못 해서…. 담당자가 유튜브로 넥타이 매는 법 영상까지 보내주셨는데 포기했어요(웃음).”

 

–'링크트인'(인맥 전문 소셜미디어)에서 한 지인이 “조경현만큼 똑똑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같이 일하면 명석함과 통찰력에 놀랄 뿐만 아니라, 유머로 동료를 무장해제시키는 재주가 있다”고 평한 걸 봤습니다.

 

“굳이 재미없고 딱딱하게 일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사람처럼 웃고 농담하는 생명체는 없어요. AI가 아직 사람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영역이기도 하고요. 유머는 창의력이 있어야 나오는데 AI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창의력입니다.”

 

–비과학고 출신으로 KAIST에 들어갔다고요?

 

“사촌 형이 KAIST에 다니고 있어 그런 학교가 있다는 건 알았어요. 고2(서울 경문고) 때 대학 입시를 생각하다가 KAIST를 찾아봤더니 일반고 2학년까지만 마치고도 갈 수 있더라고요. 빨리 대학에 가고 싶어 시험 삼아 지원했는데 운 좋게 붙었어요. 저처럼 일반고 2학년을 마치고 들어온 친구들이 만든 ‘2막 1장’이란 모임이 있었는데 열 명 정도밖에 안 됐어요. 어릴 때부터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준비한 과학고 출신과 같이 공부하려다 보니 1~2년은 엄청 헤맸죠. 방황하다 휴학도 하고,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고 오니 동기들은 거의 졸업을 했더라고요.”

 

–인공 지능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습니까.

 

“학부 땐 인공 지능 관련 정규 수업이 아예 없었어요. 특강을 들은 적이 있는데, 너무 어려워 이런 걸 어떻게 배우나 싶었습니다.”

 

 

–결국 선배가 가져다준 알토대 AI 석사과정 팸플릿이 운명을 바꿨군요.

 

“아직도 생각나요. 노란색 팸플릿. 얼마나 조악했는지. 이렇게 내 인생을 바꿀 줄 알았다면 보관하고 있을걸!”

 

–주로 미국으로 유학을 많이 가던데 굳이 핀란드를 택한 이유라도.

 

“미국으로 유학 가려면 GRE 점수가 필요한데 막판에 졸업 학점 채우느라 한 학기에 24학점씩 몰아서 들었어요. GRE고 뭐고 준비할 시간이 없었어요(웃음). 알토대 프로그램이 마침 영어로 하는 프로그램인 데다 학비가 공짜였고, 유럽에 대한 동경도 있었어요. 가보니 한국에선 모든 뉴스의 중심이 미국, 중국, 일본이었는데, 거기선 러시아, 발트 3국 같은 나라 뉴스가 계속 나왔어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핀란드에서 한 AI 연구는 어땠습니까.

 

“신입생에게 무작위로 연구실을 배정했는데, ‘인공 신경망’(인간의 신경 세포 구조를 본떠 만든 기계 학습 모델)을 다루는 연구실에 당첨됐어요. 처음 들어본 개념이라 이해는 안 됐지만, 다른 사람이 연구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굉장히 신났지요. 딥 러닝, 머신 러닝(기계 학습) 같은 개념이 지금만큼 뜨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엄청난 연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 없이 즐겁게 석·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캐나다로 건너갔지요?

 

“대학원 생활 막바지에 AI 구루들이 ‘아이클리어’라는 인공 지능 학회를 만들어 미국 애리조나에서 행사를 했어요. 핀란드에서 돌아갔는데 어찌나 멀던지. 학회 첫날 아침 식사 때 옆자리 분과 대화를 했는데, 그분이 저명한 벤지오 교수였어요. 그 인연으로 몬트리올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했고요. 정말 제가 지금까지 온 데는 ‘우연’과 ‘운’이 참 많이 작용했네요.”

 

 

맨해튼의 거리를 걸어가는 조경현 / 사진작가 서승재

 

◇AI 분야 남자 일색… 불평등 깨려 여자 공학도 지원

 

조 교수는 젊은 나이인데도 줄기차게 기부를 해왔다. 지난해 11월 ‘삼성 AI 연구자상’을 받고 상금 전액을 몬트리올대에 기부했다. 네이버, SK텔레콤 등 국내 기업체 강의료도 받는 족족 내놓았다.

 

–블로그에 이번 호암상 상금 3억원 기부 계획을 밝혔더군요.

 

“재단에서 세금 떼고 바로 계좌로 입금해주시더라고요. 수중에 이렇게 많은 돈이, 그것도 현금으로 들어오다니! 계획에 없던 돈이 생긴 거라, 제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쓸 데도 없었고요. 맨해튼 사니까 자가용 살 필요도 없고, 팬데믹 시대니 고급 휴양지 갈 일도 없고(웃음).”

 

–상금에 전혀 미련이 없을 만큼 많이 부유한가요?

 

“부자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받는 월급이면 저 혼자 충분히 삽니다. 학계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어요. 초반 운이 어쩌다 좋아 기회를 잡으면 그걸 기반으로 점점 더 좋은 일자리를 찾게 되고, 실력이 있어도 타이밍이 안 좋아 기회를 못 잡으면 점점 더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저는 운 좋게도 전자였고요. 실제 능력 차이보다 아웃풋(결과) 차이가 작은 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불평등을 일정 부분 완화해주는 쿠션 역할을 해야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기회 불평등 때문에 실제 능력 차이보다 아웃풋 차이가 더 나요. 형편이 되는 한, 형평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호암상 상금으로 지금까지 세 가지 기부를 했다. 석·박사를 한 알토대에 3만유로(약 4000만원), 모교 KAIST에 1억원, 한국 고전 연구자를 위한 ‘백규 고전 학술상’ 제정에 1억원을 기부했다.

 

–알토대나 그 이전 몬트리올대 기부를 보면 대상이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는 신입 여자 유학생’이더군요.

 

“우선 유학생으로 사는 게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많아요. 언제든 이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사는 임시 거주자인 데다 계좌 잔액을 계속 신경 써야 해요. 유명한 관광지가 널렸는데, 부모님 오실 때나 겨우 가봅니다. 침대 틀 없이 매트리스만 깔고 지내는 경우도 많고요. 저는 아주 쪼들리지 않았는데도 늘 이케아 제일 싼 침대만 썼어요. 서울 부모님 집을 떠난 후 얼마 전까지 소파도 없었고요. 팬데믹이 길어져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지난겨울 해외 생활 처음으로 소파를 하나 장만했죠.”

 

–여학생만 후원하는 것도 특이합니다.

 

“KAIST 전산학과 때 동기 60~70명 중 여자가 너덧 명밖에 없었어요.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컴퓨터과학 분야엔 젠더(性) 불균형이 심각합니다. 그런데 AI에서는 ‘젠더 균형’이 더 중요해요. AI는 간단히 말하면 알고리즘 안에 데이터를 넣어서 학습하는 건데, 이 데이터가 젠더·지역 등 여러 측면에서 대표성(representation)을 갖는가가 중요합니다. 편향된 데이터는 알고리즘을 반복해 거치면서 편향성이 증폭돼요. 여성과 소수 집단이 배제되면 점점 더 배제되는 거지요. 이런 문제를 보완해 나가야 하는데, 연구자 대부분이 남성이에요. 그들 눈엔 이런 편향이 잘 안 보여요. 그래서 ‘다양성’을 높이는 게 무척 중요해요.” 그는 ‘증폭(amplification)’과 ‘데이터 편향(bias of data)’ 문제가 요즘 인공 지능에서 굉장히 중요한 화두라고 했다.

 

–금액을 보니, 1인당 1000달러(약 112만원) 정도를 여럿에게 나눠 주던데요.

 

“유학생들이 막 입학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 때 숨 돌릴 수 있는 조금의 여유를 준다는 의미예요. 사용처 제한도 없습니다. 친구하고 맥주 마셔도 되고, 근사한 데서 밥 한 끼 먹어도 되고, 넷플릭스 결제를 해도 되고, 아이패드 사도 됩니다. 매트리스만 사지 말고 제대로 된 침대를 사도 좋고요(웃음).”

 

–한국 기업과도 일하는데, 해외 기업과 격차가 있던가요.

 

“연구원 미팅을 주로 하는데, 다들 똑똑하고 열심히 합니다. 다만 차이라면 한국 기업엔 한국 사람만 있다는 것? 다양성을 강화해야 해요. 너무 남성 중심인 것도 문제고요. 한국 유명 IT 기업이 주최한 AI 학회 공지를 봤는데 발표자가 100% 남성이었어요. 그런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편향돼 있다는 걸 몰라요. 불균형을 깨기 위해서라도 여성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봐요.”

 

–AI가 모든 것을 대체하면 어쩌나, 사람 일자리를 위협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어요.

 

“미래 예측은 정말 어려워요. 맹목적으로 예측을 따라가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요. 증기기관, 자동차, 인터넷 등이 나왔을 때 당장엔 영향이 없었지만 몇 십 년 뒤 대중화됐을 땐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AI도 그렇습니다. 당장 이거 큰일 났네 하기보다는 어떤 영향을 줄까 심도 있게 분석하고 부작용을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해야 해요. 기술로 저같이 이득 보는 사람도 있지만, 손해 보는 사람도 있어요. 정책적으로 부작용,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경현이 엄마'로 산 어머니 향한 헌사

 

–KAIST에 어머니 이름으로 기부한 게 화제가 됐어요. 아버지 이름으로 내는 경우는 봤어도, 어머니 이름으로 내는 경우는 거의 못 봤습니다.

 

“부모님이 대학(공주사대 국어교육과) 동기예요. 어머니는 국어 교사였는데 저와 남동생을 낳고 기르느라 일을 관두셨어요. 그 시절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겠지만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어머니 희생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 이름을 넣었어요. 혹시 여자 후배들이 저희 어머니처럼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관둘까 고민하게 된다면, 이 장학금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한번 더 생각해줬으면 하고요. 개인적으론 초등학교 1학년인 여자 조카(영빈)가 나중에 AI 과학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 아이가 롤모델로 삼을 여성 AI 전문가가 나왔으면 합니다.” 장학금은 어머니의 과거, 조카의 미래를 위한 그의 작은 응원이었다. 그는 “그러고 보니 어머니와 조카 생일이 같다”며 웃었다.

 

어머니 임미숙(65)씨는 기자와 한 통화에서 “엄마를 생각하는 고운 맘을 거절하지 않는 것도 부모 역할이라 생각해서 아이 뜻을 따랐는데, 아직도 내 이름을 넣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몸을 낮췄다.

 

조 교수는 장학금을 내며 KAIST 측에 조건 하나를 걸었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과 조 교수 부모님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부친은 조규익(64) 숭실대 국문과 교수다. 그는 “내년이면 아버님이 정년인데 적적하실 것 같다. 부모님이 젊은 세대와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 부탁했다”고 했다.

 

–AI 전문가인데 한국 고전 학술상 제정도 후원했어요. 대척점에 있는 학문 같아 보이는데.

 

“아버지가 고전 문학 전문가입니다. 아버지와 제자들이 지원도 부족한데 수십 년 고군분투하며 연구하는 모습을 봐왔어요. ‘미래가 안 보이는 갑갑한 연구를 어떻게 할까’ 싶은데 돈이 안 될지라도 묵묵히 한 우물 파는 인문학자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고전’ 아들은 ‘AI’라는 전혀 다른 갱도를 파고 있는 듯했지만, 부자(父子)는 ‘언어’라는 공통분모에 뿌리 내리고 있었다.

 

–최첨단 기술을 다루는 전문가인데,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보나요?

 

“어렸을 때 책에 둘러싸여 지냈어요. 소설이든 논픽션이든 작가들이 시대상을 작품에 남기기 때문에 가보지 않고도 그 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게 신기했어요. 현재 고민을 해결하는 지혜를 과거에서 얻기도 하고요. 고전, 인문학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부는 AI 사업 등 과학기술 산업엔 컨소시엄을 만들어 몇 조원씩 지원하면서, 인문학 분야는 거의 지원을 안 합니다. 돈이 되는 분야는 기업들이 알아서 투자해요. 정부는 미래를 위해 기업이 투자하지 않는 분야에 장기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봐요.”

 

그는 “AI 연구를 하면 할수록 과연 ‘지능이란 무엇인가’ ‘이성이란 무엇인가’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인문학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상금 3억원 중 세금까지 떼니 이제 2000만원 정도만 남았다. 그래도 자신을 위해 하나쯤은 하고 싶은 게 있지 않으냐고 묻자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심심하게 사는 사람이에요. 필요한 거라고 해 봐야 맥주 정도? 그건 제 봉급으로 해결할 수 있고요. 10원짜리 하나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다 기부할 거예요. 하하!” 줌 영상 건너, 조 교수의 뉴욕 집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가구 한 점 없이 휑했고, 설거지 거리가 쌓인 싱크대 옆으로 술 몇 병이 달랑 보였다. 가상 세계를 움직이는 서른여섯의 천재 공학자는 이미 물질세계로부터 초탈한 듯했다.♣

 

 

 

=인터뷰 기사를 읽고=

 

 

아들 덕에 며칠 꿈 속 여행을 했다. 발은 땅에 붙어 있으되 머리는 구름에 닿아 있었다. 조선일보의 김미리 기자가 경현이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다며 내게 몇 가지 물어온 날부터 토요일판 조간신문이 발간・배포된 오늘[2021/7/3]까지 마음속에는 갖가지 상념들이 명멸했다. 오늘 아침 조선일보 주말 판 B01면을 가득 채운 경현이의 기사를 접한 나는 그간 숨어 살던 동굴에서 커밍아웃 당한 기분을 느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랬다.

 

첫째, 그간 산발적이고 즉흥적이며 정치적으로 취급되어오던 우리 사회 페미니즘론의 수준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였다. 그는 과학계[아니 거의 모든 분야!]에 여성인력이 소수인 문제적 현실을 강조하며 개선의 당위성을 환기시켰다. 그동안 자신이 받는 상금이나 강연료를 여성들을 위해 기부해옴으로써 여성 진출을 고무시키는 대열의 상징적 기수 역할을 스스로 떠맡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기존의 위선적 페미니즘론이 보다 개선될 가능성을 보여 준 점은 인정할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자신의 모친을 피해자의 사례로 내세움으로써 자신의 부친 역시 반페미니즘 대열의 일원임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지 아니한가.^^

 

둘째,  '인문학 중시'를 표방한 점은 자신의 부친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모친에 대한 배려와 균형을 맞추려는 세심한 마음 씀의 소산일 것이다. 나는 그간 세상이나 가족의 일에 일견 무심한 듯했던 경현이가 부모에 대하여 그런 생각까지 갖고 있으리라는 점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신문 기사를 접한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오거나 문자를 보내오면서 그의 생각이 ‘범상치 않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내가 그동안 그를 매우 무심하게 대해 왔음을 처음으로 고백하고자 한다. 경현이에 대한 지인들의 칭찬을 귓전으로 흘려 들으며, 나는 지난 시간들을 성찰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이가 자라 나름대로 무언가를 성취하기까지도 나는 내 생각과 일에 매몰되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지난 시간들에 대한 상실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걸 눈치 챈 것일까. 그는 인터뷰 후반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멘트를 덧붙였다.

 

“아버지가 고전 문학 전문가입니다. 아버지와 제자들이 지원도 부족한데 수십 년 고군분투하며 연구하는 모습을 봐왔어요. ‘미래가 안 보이는 갑갑한 연구를 어떻게 할까’ 싶은데 돈이 안 될지라도 묵묵히 한 우물 파는 인문학자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 책에 둘러싸여 지냈어요. 소설이든 논픽션이든 작가들이 시대상을 작품에 남기기 때문에 가보지 않고도 그 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게 신기했어요. 현재 고민을 해결하는 지혜를 과거에서 얻기도 하고요. 고전, 인문학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내 성찰의 결과 필연적으로 안게 될 후회나 상실감을 어루만져 주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게 도래할 회한과 미안함을 이런 말들로 조금은 가볍게 해주려는 어른스러움을 발휘한 것이리라. 내 추론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지금부터 나는 더 큰 부채감과 후회의 아픈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잠시 분리되었던 '이상 지향의 머리'와 '현실 집착의 다리'는 시간이 흘러 봉합되었고, 나는 결국 현실과 이성 조합의 시간대로 돌아왔다. 이제 30대 중반의 요량과 기획으로 세상은 분명 변할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매트릭스로 전환되어 나의 사고와 움직임을 조종할 것이다. 관념상으로나마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착각했던 나는 오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시공(時空)으로 이입(移入)하고 있음을, 지금 이 순간 깨닫고 있다. 어쨌든 앞으로 나는 그 시공의 충실한 사역자가 되어야 하리라.♥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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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1. 7. 2. 06:30

 

 

조경현 뉴욕대 교수, KAIST에 장학금 1억원 쾌척

 

- 어머니 이름 딴 '전산학부 임미숙 장학금' 신설

 

 

조경현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과학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다양성과 대표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조경현 뉴욕대 교수가 1억원의 발전기금을 기탁했다고 30일 밝혔다. 조 교수가 올해 삼성호암상의 공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받은 상금 중 1억 원을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쾌척한 것이다.

 

전산학부 학사과정 여학생 중 지원이 필요하거나 리더십을 발휘한 학생이 이 장학금의 수혜자가 되며, KAIST는 매 학기당 5명을 선발해 1인당 100만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눈에 띄는 점은 조경현 교수가 이 장학금의 이름을 ‘전산학부 임미숙 장학금’으로 지정했다는 점이다. 임미숙은 조 교수 어머니의 이름이다.

 

AI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 어머니 이름을 딴 장학금을 신설한 데에는 컴퓨터 공학 분야의 여성 인재 양성에 기여하고자 하는 고민이 담겨있다.

 

조 교수는 “저의 어머니는 대학을 졸업해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출산과 육아로 인해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남성과 여성이 만나 가정을 이룬 뒤 ‘출산과 육아’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면, 부부 중 여성이 직업을 포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1980년대의 사회적 인식이었다.

 

성별에 따른 고유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2000년대 초반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학부에서 전산학을 공부했던 조 교수는 “남학생은 전산학을 전공하고 여학생들은 생물학을 선택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장학금을 받은 여학생들이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 좋은 본보기를 만들고 그 모습에서 동기부여를 받은 다른 여학생들이 모여들어 보다 더 다양한 컴퓨터 과학자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은 것이 조 교수의 바람이다.

 

조 교수는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이슈에 대해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꼬집어내어 쉬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절대 인식하지 못할 것 같다”라며 “이번 기부를 통해 작게는 KAIST 크게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성과 대표성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류석영 KAIST 전산학부장은 “조 교수가 장학금을 기탁하며 매 학기 선정된 장학생들과 부모님의 식사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해왔다ˮ라며 ”세대와 환경이 다른 기부자와 수혜자가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자리를 마련해 임미숙 장학금에 담긴 뜻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도록 장학기금을 운영해 나갈 계획ˮ이라고 밝혔다.

 

지난 24일 KAIST 대전 본원에서 열린 기부 약정식에는 미국에 체류 중인 조경현 교수를 대신해 부친 조규익 씨와 모친 임미숙 씨가 참석했다.

 

임미숙 씨는 “아들은 삼성호암상이 개인이 아닌 자기 연구 분야 전체에게 주어진 상이기 때문에 상금을 사회와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아들의 마음이 담긴 전산학부 장학금 기부에 동참할 수 있게 되어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2021.06.30. 13:00>

 

조경현

                                                       

지난  24 일  KAIST  대전 본원에서 열린 조경현 뉴욕대 교수의 발전기금 약정식이 열렸다 .  미국에 체류 중인 조 교수를 대신해 부모인 임미숙 · 조규익 씨가 행사에 참석했다 .  왼쪽부터 이광형  KAIST  총장 ,  임미숙 · 조규익 씨 .[KAIST  제공 ]

 

***

 

지난 달 말일, 도하 각 언론매체에 경현의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이미 우리 부부는 24일 오후 5시 카이스트의 초청으로 총장 공관에서 장학기금 전달식과 만찬에 참석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기사로 접하고 보니, 그의 선행은 또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 정권이 탄생하고 나서 이른바 '여성 운동가들'의 거짓과 위선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은 만인공지의 사실이다. 그간 틈만 나면 여성의 인권을 고창해온 자들이[그것도 같은 여성들이!] 자기들 패거리의 남성들로부터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철저히 외면하는 이중성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켜온 것이다. '멍청하고 반역사적인' 문재인 정권 하에서 반복되는 이런 류의 사건들을 통해, 그간 여성의 인권은 이른바 '여성 운동가들'의 출세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음을 우리 사회는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여성의 현실을 배려해온 조경현의 선행은 그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특히 여성 과학인에 대한 배려는 여러 번의 상금 혹은 강연료 기부로 실행되어 왔고, 그 일이 '작지만 큰 울림'으로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 모두 그간 우리 사회의 '여성 인권 개선'에 대한 강조가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조경현의 이 선행은 조만간 기성세대의 허위와 가식에 대한 질타의 쓰나미로 증폭되어 낡고 공고한 '남성 중심 권력 카르텔'을 덮칠 것이다. 그 때가 도래하기를 기다리며 새로운 시각(視角)을 열심히 벼려두기로 한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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