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1. 9. 7. 21:28

 서실에서 고서를 보여주시는 인산 선생님

 

인산 선생님,

 

며칠 전 소식이 궁금하여 전화를 드렸었지요.

전화기 너머로 간신히 이어가시던 몇 마디 말씀을 잊지 못합니다.

끝내 말씀을 맺지 못하시고, 사모님께 전화기를 넘겨주시던 일을 잊지 못합니다.

그 즉시 달려가지 못한 제 불찰을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제 선생님이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고약한 코로나 핑계나 대야 할까요?

제 타고난 게으름과 대책 없는 낙천성이나 탓해야 할까요?

설마 설마하며 볕 들 날만 기다려 온 못난 후학은 이제 어찌해야 할까요?

 

선생님과는 실 꼬리만큼의 학연이나 지연조차 갖고 있지 못한 저였지만,

선생님께서는 저를 어여삐 여기시고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지요.

지금도 제 컴퓨터 속에는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의 자료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 큰 부분이 선생님께서 주신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아낌없이 주시면서

“조 교수를 만난 건 내 행운이여. 이것들을 갖다가 학계에 제대로 알려 주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 아니겠소?”라고 껄껄 웃으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바로 앞에 대한 듯,

지금 이 순간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손 선생님도, 연민 선생님도 안 계신 이 땅에 인산 선생님마저 이렇게 홀연 떠나시면

가련한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인간의 마지막 길은 정해져 있다지만,  겨우 산수(傘壽)에 이리도 바삐 떠나실 줄 알았다면, 코로나를 핑계로 지난 2년간이나 뵙지 못하는 일은 없었겠지요?

 

인산 선생님,

선생님께서 평소에 베풀어주신 사랑의 힘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학문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선생님은 제게 건네주시는 책들을 통해 삶의 진실까지 덤으로 전수해 주셨습니다. 그 크신 뜻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 진실을 삶이 끝날 때까지 실천하다가 선생님 계신 곳으로 가고자 합니다. 모든 병마들이 범접할 수 없는 그곳에서 영원하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시는 모습을 반드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명계에서 편안하고 행복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2021. 9. 7.

 

못난 후학 백규는 울며 절하옵니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