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학술문2019.07.20 08:33

 

 *이 글은 <<동동動動: 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민속원/<<한국문학과 예술>> 30집 게재)에 대한 서평으로, 필자의 허락을 받고 퍼왔습니다.

 

 

궁중 융합무대예술 동동(動動)’의 본질에 대한 모색과 결실-<<동동動動: 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민속원)을 읽고-

 

 

                                                                                                     하경숙(선문대 교양학부 계약제 교수)

 

 

이 책은 고려조와 조선조의 궁중 연향에서 공연되던 가무악 융합 무대예술 동동에 관한 공동저술(저자: 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이다. ‘동동은 고려 속악정재들 가운데 하나로서 아박(牙拍)이란 이름으로 조선조에서도 연행되던 가무악(歌舞樂) 융합의 궁중무대예술이다. 최근까지 <동동>문자 텍스트로서의 동동일 뿐이었고, 그것은 고려속요·고려가요·여요·려가등의 명칭으로 부르던 시문학 텍스트일 뿐이었다. 초창기 연구자들이 명칭에 대하여 갖고 있던 편견과 그로부터 확립된 문제들을 타개(打開)하고자 문학·음악·무용을 연구하는 저자들이 동동정재(呈才)의 융합예술적 성격을 분석적으로 고찰하기 시작했다. 중세왕조의 임금이나 고귀한 존재를 대상으로 토로한 불멸의 사랑과 불변의 서정이 융합 무대예술로 응집되었다는 것이 동동논의의 출발점이다. 특히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시간이 흘러도 계절이 바뀌어도 바치는 자의 사랑은 변함없음을 가··악으로 표현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가무악 융합의 미학적 본질을 점검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다. 그리고 결국 동동은 전통무대예술의 진수로 꽃피어났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저자(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들은 <<대악후보>> 동동의 리듬을 해석하여 선율을 찾고, 그 선율에 <<악학궤범(樂學軌範)>> 소재 <동동>의 노랫말을 구체적으로 붙여, 그 노래와 무용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속악정재 동동이 지닌 가무악 융합의 본질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각 장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저자들의 의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책은 전체 7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총서, 2부는 <동동>- 텍스트의 정체, 3부는 <동동>의 장르적 속성과 원형 모색, 4부는 조선전기 동동의 가무악 융합 양상, 5부는 조선전기 아박무 복원연구, 6부는 총결, 7부는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노랫말 원문과 현대어 역, 복원음악 악보가 수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문헌과 재현 아박무(牙拍舞)를 비교·검토하여 상이점을 찾고, 조선전기 동동중기의 무용구조와 복원에 필요한 내용을 상세히 살피고 있다.

 

1부에서는 속악정재 동동의 성격을 살펴 그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또한 장르적 속성이나 명칭 등과 함께 학계에서 미해결된 속가의 문화·예술적 측면을 면밀히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동동이 그동안 하나의 공연물로 연구되지 못한 원인은 악보와 무보 해석의 불완전성에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동동의 음악을 찾아야 하고, 그 음악에 노랫말을 융합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노래와 무용을 융합함으로써 가무악 융합의 속악정재 동동을 온전히 복원”(21)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담론을 뛰어넘어, 정재의 악곡과 노랫말 모두가 동동이라는 구체적인 융합예술작품으로 구현되는 핵심임을 밝히고 있다.

 

2<동동>-텍스트의 정체(조규익)에서는 동동 텍스트가 지닌 문화·예술적 본질과 지향성을 찾고 송도지사(頌禱之詞)와 선어(仙語)’의 관계, ‘놀이와 선어의 상관성등을 규명했다. 저자(조규익)“‘동동은 생산 시점 이후 현재까지 노랫말과 음악·무용의 인접분야들이 하나로 융합된 텍스트로 존재해왔고, 그 예술·문화적 콘텍스트 양상 또한 적어도 근대 이전까지는 유지”(62)되었다고 밝혀, 텍스트 하나만을 적출하여 해석하는 작업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이는 원천적 오류를 초래하는 일로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콘텍스트(context) 의 현실을 살피는 작업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동동에 송도의 말이 많고, 그것들은 신선의 말을 본뜬 것이라 한 <<고려사 악지>>의 언급이야말로 속악정재 동동이 당시의 당악정재들과 상호텍스트적 연관성이 있음을 암시한다는 것이 저자(조규익)의 주장이다. 즉 당대 궁중악 중 당악과 속악은 임금의 수와 복을 송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행되던 예술장르였고, 그 범주에서 공연되던 정재들은 송도적 모티프의 구현을 지향하던 공연예술의 형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동놀이[動動之戱]’라 지칭한 <<고려사 악지>> 속악조에 따르면 동동이 지닌 놀이적 성격이 상세히 나타나고 있으며, 동시에 융합예술체로서의 놀이적 면모를 보여준다. 놀이에 상정된 대상은 임금이며 원시 제천행사들에서 공연되던 놀이들이 후대의 정재들에 이르러 그것들의 의례화·질서화를 통하여 완성된 예술의 모습으로 구현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당악정재의 창작원리나 동기·구조 등과, ‘동동을 비롯한 속악정재들이 상호텍스트적 연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등을 상세히 보여준다. 이는 속악정재 동동이 당악정재의 악장들을 본뜬 송도를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으로 패러프레이즈함으로써 속악정재 나름의 독자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화론적 측면으로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3동동의 장르적 속성과 원형 모색(성영애)에서는 <동동>의 장르적 속성 및 그간 문제가 되어온 <동동><장생포>와의 관련성 등을 살폈고, <동동>의 원형 모색과 함께 그동안 미해결된 문제들의 방향을 찾고자 했다. 저자(성영애)“<동동>은 궁중에서 공연된 국가음악으로 정재의 악곡과 노랫말 모두 <동동>이란 명칭 아래 역사서나 악서(樂書)에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다”(77)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장르 명칭을 고려속악가사로 부르고, 그 줄임말로 고려속가를 사용하는 것이 <동동>의 장르적 속성을 나타내는 정확한 용어임을 밝히고 있다. 저자(성영애)는 그간 논란이 많았던 <동동>과 장생포와의 관계를 다양한 문헌의 비교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고려사>> 악지와 열전의 기록을 중심으로 곡명과 창작자, 왜구 출몰지역으로 살펴본 내용을 통해 <동동>은 관찬서와 일반 문집에 기록된 <장생포>와 전혀 관련이 없었으며, <<동국문헌비고>>를 수보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상세히 밝혔다. 또한 <동동>은 궁중연례악으로서 회례연(會禮宴사신연使臣宴나례연(儺禮宴)에서 송축이나 송도의 의도로 연행되었으며, 특히 나례연 중 처용지희(處容之戱)’ 안에서 동동지희가 연행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동동은 악··무를 통해서 임금에게 송도의 뜻을 바치는 종합예술작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문해(文解) 위주로만 연구해온 상황이 그간 <동동>의 원형을 밝히는데 어려움을 주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4조선전기 동동의 가무악 융합 양상(문숙희)동동의 선율을 찾고, 그 선율에 노랫말을 융합하여 동동노래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여기에 노래와 무용을 융합하여 가··악으로 합쳐진 융합적 존재로서의 동동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저자(문숙희)“‘동동은 장구점 단위가 소절에 해당되고 악보에 가사도 없고 음 또한 퍼져 있어서, 악보에서 기본박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113)고 밝히면서 연구가 쉽지 않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기본박 찾기를 통한 방법으로 해석된 리듬을 찾고, 그 중 동동과 같은 장단의 악곡을 통해 동동의 리듬과 정간시가를 찾는 노력을 기울여 결과를 도출하고 이에 동동의 특질을 찾아 보여주었다.

 

                                               

동동 복원공연 실황

 

“‘동동은 정읍을 편곡하여 만든 노래로 보고 있다. 정읍과 같은 이름을 공유하기도 하고 또 많은 선율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두 악곡에는 가사가 다르듯이 다른 부분도 있다.”(138)고 설명하면서 두 악보를 비교한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동동선율은 정읍의 선율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대악후보>> 동동악보는 현악기 악보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동동악보에 이란 용어가 직접 사용되지 않았지만, 음악적인 내용으로 볼 때 동동은 진작류 형식에 해당한다고 밝히며 동동에서 강이란 가사의 구를 싣고 있는 선율, 하나의 악구에 해당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동동의 정간시가는 일정한 길이로 되어있지 않고, 5정간과 3정간이 각각 같은 길이의 3분박 한 박으로 해석되며 노랫말 텍스트 <동동>은 선율이 가사에 비해 매우 길 뿐만 아니라, 가사를 천천히 진행하면서 음을 길게 늘여 부르는 노래라고 설명했다.

 

5조선전기 아박무 복원연구(손선숙)는 문헌 고증을 통해 전기 아박무를 복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아박무는 고려시대에 동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조선전기에 명칭이 아박으로 바뀐 뒤 조선후기를 거쳐 현재까지 이른다. 이에 <<악학궤범>>에 기록된 조선전기 아박무를 검토, 기존의 재현 아박무를 점검하고 문헌과 재현 아박무를 비교 검토하여 복원 관점으로 기록구조와 진행구조를 살펴 복원에 필요한 실제 수용범위와 근거에 대해 살피고 있다.

 

저자(손선숙)기존에 재현된 아박무는 기존의 선행연구자들이 해석한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여 매월 가사에 따라 춤에 변화를 주는 등 다양한 춤사위를 구성하여 추었는데, 2월사부터 8월사까지만 새로운 춤을 추고, 10월사부터 12월사까지는 <<악학궤범>>에 기록된 북향-대무-배무를 추었다.”(155)고 밝혔다. 이는 재현 때 수용한 변무의 원칙에 위배되고, 문헌 기록대로 재현하였다는 원칙에도 위배되어, 결국 재현 아박무는 그 어느 원칙에도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저자가 <<악학궤범>>의 변무가 새로운 춤이 아니라 북향-대무-배무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북향·대무·배무할 때 박을 치는 횟수와 무용 진행구조 관점으로 분석했기 때문임을 밝혔다. 또한 기존 재현 아박무는 가사 및 춤 진행에 따른 무구 사용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유절형식에 따른 변무의 원칙성에 위배되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아박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구성인 대형 이동 위치와 방향, 춤사위가 필요한데, <<악학궤범>>에는 춤사위와 무용수들이 선 위치를 제외한 나머지 내용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166)고 밝혔다. 특히 이 책에서는 아박무 복원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내용들과 보충되어야 함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악학궤범>>에 기록된 동동중기의 아박무는 무진-북향무-대무-북향-배무-환북향-무퇴로 추어야 하고, 이와 같은 춤을 무려 11회 반복하며 추는 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악학궤범>>과 같은 고무보를 바탕으로 아박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문헌 고증이 선행되어야 하고, 궁중정재의 재현 및 복원을 위해 춤의 기록이 문헌으로 전해지는 <<악학궤범>>의 내용을 단순히 이론상으로 이해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여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궁중왕실문예시스템마련과 궁중 정재복원전문가의 배출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6총결에서는 가무악 융합 예술체 동동의 본질을 분석하고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고려조 궁중에서 시작된 속악정재 동동이 조선조에 들어와 아박으로 개명되면서 변화를 모색했고, 새롭게 추구된 변화가 그 뒷시대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미학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도 그래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학적 측면은 지속과 변이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음악과 무용의 텍스트를 온전하게 복원하고자 하는 목표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노랫말 텍스트 동동을 정확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접분야인 음악 텍스트와 무용 텍스트를 이해해야 하고, 이들이 하나로 융합된 텍스트 전체를 이해·분석하기 위해서는 콘텍스트로서 당대의 예술적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융합 텍스트로서의 동동을 이해하기 위해 근대 이전까지 조선 왕조에서 공연된 재현 정재들을 통해 가무악 융합의 예술적·문화적 분위기를 이해·분석·수용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동동이 단순히 문자 텍스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무악 융합 무대예술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동동은 여성의 예술이다. 단순히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왕조의 임금이나 고귀한 존재를 대상으로 토로한 불멸의 사랑과 정서가 결합된 총체적인 종합예술임을 규명해낸 것이다. 저자(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들은 동동의 예술미학을 구현하기 위해 그동안 기울여온 노력과, 그에 따른 다양한 결과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노랫말 텍스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콘텍스트로서의 악곡과 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동안 연구자들은 간과해왔다. 고전시가가 어떤 양상으로 실연(實演)되어 왔는지에 대한 통합적 시각이나 시야를 충분히 갖출 필요가 있음을 저자들은 강조한다. 그것들 가운데 상당수 작품들의 생산이나 향유계층이 민중이라는 사실만을 강조함으로써, 그것들이 궁중에서 임금을 비롯한 지배계층의 연향에 쓰였다는 사실을 그동안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음악학계 및 무용학계와 협업의 필요성과 절실함을 느낀 저자들이 착수한 작업들의 결실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런 모색과 노력을 통하여 이루어진 이 책이야말로 고려속요 동동에서 속악정재 동동으로 인식을 전환함으로써 그 원형과 위상을 새롭게 찾아낸 구체적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저자들은 텍스트 지평의 전환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텍스트의 본질을 외면한 채 무조건 답습해 오던 기존의 오류들과 다양한 문제들에 주목하고, 텍스트의 분리에서 융합으로 전환한 다음 지속적인 모색과 반성을 통해 만들어낸 연구 결과들 덕에 우리는 동동의 융합예술적 본질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동동은 단순한 그리움과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융합적인 궁중무대예술작품이다. 그 본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차원 높은 예술적 경지를 경험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동동 저서

 

동동 해석(조규익)

                                          

 

 

Posted by kicho
글 - 학술문2019.07.05 16:15

단원 김홍도의 춘화

 

 

고전과의 대화

 

만횡청류성 담론의 정체

 

 

조 규 익

 

 

 

 

하나. 왜 성을 노래했나

 

 

김천택은 <<진본 청구영언>> 말미에 만횡청류116수를 실어 놓았다. 학계에서는 만횡청류라는 명칭을 도외시하고 사설시조로 호칭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편찬자 김천택의 원래 의도는 사설시조란 출처불명의 명칭에 있지 않았고, ‘만횡청류라는 명칭에 담겨 있다. 가곡에서 초장을 곧은 목의 삼삭대엽, 2장 이하는 흥청거리는 농조로 부르는 것이 만횡이고, 만횡과 농편을 두루 포괄하는 노래들의 부류가 만횡청류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노래들의 상당수가 여성의 성적 개방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의 주도자가 남성이었던 유교 사회에서 화자인 여성들의 입으로 노래한 개방적인 성을 오늘날의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혹자는 남성들이 지은 것들도 있기 때문에 여성의 성 담론과 거리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성 작자들의 작품을 짚어내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남성이 지은 것이라 해도 여성화자로 설정되어 있는 이상,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보는 것이 맞다.

만횡청류의 여성들은 성을 노래하며 전혀 쭈뼛거리지 않는다. 여성 화자들이 당당하게 성을 노래한 것은 당시의 여성들이나 만횡청류의 담당자들이 성적 자기 결정권이나 성적 주체성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만횡청류의 야한 노래들 때문에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하던 김천택은 <<청구영언>>의 원고를 싸들고 당시 지식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던 마악노초를 찾아간다. 임해군(선조의 장남)의 후손인 마악노초는 시조 창작과 가창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소론 계통의 지식인이었다. 만횡청류를 <<청구영언>>에 실어 가요계에 노출시키려던 김천택으로서는 사회적 제재를 막아줄 안전판이 필요했고, 마악노초는 그에 적합한 인사였으리라.

작자들을 익명으로 처리한 점은 또 하나의 안전판이었다. 만횡청류를 제외한 상당수의 노래들에 분명한 작자명이나 적어도 작자를 추정할만한 단서들이 제시되었으나, 만횡청류에 대해서만은 작자 혹은 최소한 그것을 짐작할만한 단서 하나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 노래들이 원래부터 익명의 상태로 전승되거나 창작되고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김천택 스스로 작자를 추정할만한 단서를 일부러 밝히려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악노초는 만횡청류에 대하여, ‘곡조는 비록 아름답고 세련되지 못하나 기뻐 즐기며 원망하고 탄식하고, 미쳐 날뛰며 거칠게 구는 모습과 태도는 모두 자연의 진기(眞機)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설명한 다음, 걱정할 필요 없다고 김천택을 안심시켰다.

여성화자들이 성적 주체성을 노래한 논리적 근거를 자연의 발로에서 찾은 마악노초의 생각은 매우 열려 있었다. 그가 말한 자연은 인간과 사물의 존립근거인 스스로 그러함/저절로 그러함이고, ‘진기현묘한 이치나 비결이다. 반복하건대, 앞에서 제시한 만횡청류의 특징(곡조는 비록 아름답고 세련되지 못하나 기뻐 즐기며 원망하고 탄식하고 미쳐 날뛰며 거칠게 구는 모습과 태도)자연의 진기에서 나온 것이라면, 과연 스스로 그러함의 현묘한 이치나 비결이란 무엇일까. 바로 꾸밈없음, 걸림이 없음, 현실적 이해나 이념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있음등으로 설명될 수 있고, 그것들은 자유분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자유분방은 억압으로부터의 탈출이고, 그 가장 극적인 형태가 여성의 성적 일탈이었다. 만횡청류를 통하여 남성이 향유하던 성적 희열을 관념적으로나마 공유 혹은 향유하게 되었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심리적 평등으로 상쇄하는 효과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김천택의 그 말에서 생태여성주의 즉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의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유교적 세계관이 자연을 억압하는 시대 분위기에서 여성들 스스로 성의 자유를 구가한 일이야말로 우리 문학사에서 드물게 보는 생태여성주의의 증거다. 만횡청류에서 성을 언급하는 노래들의 화자로 남성이 등장한다 해도 노래 밖으로 두드러지는 개방의 실질적인 주체는 여성이다. 따라서 이 노래들은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꽤 도전적이다. 이처럼 조선조 이념사회의 차별 구조 속에 은폐되어 왔던 여성이 노래에 표현된 성적 사건의 분명한 당사자로 노출된 점은 큰 사건이었다. 남성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로 성을 노래하기도 쉽지 않았을 터인데, 여성의 목소리로 거리낌 없이 성을 노래하다니! 이 책이 나돌던 당시 조야(朝野)가 떠들썩하지 않았을까. 책을 만들어 배포한 김천택으로서는 무척 긴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횡청류로 문제가 되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풍류방을 중심으로 유락적 분위기가 만연되고 있던 당대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서일 것이다.

과연 만횡청류가 반역하려 한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남성 중심의 지배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열녀담론임은 물론이다. 만횡청류담당계층은 숨김과 드러냄이란 노랫말의 표현적 기교를 통해 열녀담론의 틀을 깨려 했고, 그런 기교를 통해 억눌렸던 리비도의 해소는 가능했으며, 리비도의 해소야말로 몸의 자연 상태를 회복하는 지름길이었다. 그것은 여성들의 인간선언이기도 했다.

 

 

 

. 어떻게 성을 노래했나

 

 

노래 세 편만 들어보자. 먼저 <샛서방 노래 1>.

 

본서방은 광주 싸리비 장사, 샛서방은 삭녕 짚 비 장사, 눈짓으로 맺어놓은 임은 뚝딱 두드려 방망치 장사, 또르르 감아 홍두깨 장사, 빙빙 돌아 물레 장사, 우물 전에 치달아 간당거리다가 워렁충창 풍 빠져 물 담뿍 떠내는 두레박 장사

어디 가서 이 얼굴 가지고 조리 장사를 못 얻을까?<만횡청류-565>

 

이 노래의 여성화자는 자신의 상대역으로 본서방, 샛서방, 눈짓으로 맺어놓은 임등 여러 종류의 남성들을 들었다. 본서방을 광주 싸리비 장사라 했고, 샛서방을 삭녕의 짚 비 장사라 했다. 그리고 눈짓으로 맺어놓은 임방망치 장사홍두깨 장사물레 장사두레박 장사라 했으며, ‘뚝딱 두드려도르르 감아빙빙 돌아우물 전에 치달아 간댕간댕하다가 워렁충창 풍 빠져등으로 각각의 모습이나 행위를 묘사하여 덧붙였다. 싸리비짚 비방망이홍두깨두레박 등은 남성의 성기를 은유한 말들이다. 싸리비는 강하나 거칠고, 짚 비는 부드럽고 곱다. 화자는 빗자루를 들어 남편의 성기와 샛서방의 성기를 대조적으로 그려냈다. ‘눈짓으로 맺어놓은 임은 좀 더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눈짓으로 맺어놓은 임이란 아직 본격적인 관계는 갖지 않은 채 눈짓으로만 걸어둔 대상이다. 방망이홍두깨두레박 등에 덧붙은 뚝딱 두드려또르르 감아빙빙 돌아우물 전에 치달아 간당거리다가 워렁충창 풍 빠져등은 성행위의 기교나 모습을 묘사한 은유적 표현들이다. 그리고 우물 전은 여성 화자 자신의 성기를 은유한 말이다.

화자 자신은 스치는 뭇 남자들로부터 사랑 받고 있으며,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는 여성이다! 그러기에 끝부분에서 어디 가서 이 얼굴 가지고 조리 장사를 못 얻을까?’ 라고 큰소리 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생각하는 최상의 남성은 조리 장사이다. 조리란 곡식을 이는 데 쓰는 도구다. 화자는 곡식을 이는 행위와 성행위의 기교를 병치적으로 은유했다. 이 노래의 화자는 현실이든 가상이든 자신이 최상으로 생각하는 어떤 남성과도 만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여성이다. 이처럼 남성들 앞에서 쭈뼛거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대로 짝을 찾아 성적 쾌락을 즐기는 여성상을 만횡청류에서 찾기란 어렵지 않다. 성적 쾌락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고 은폐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으며, 스스로 그것을 찾아 나서는 일은 자연 혹은 자연스러움의 표준을 자신의 욕망에 맞추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분명 이 여성은 남성 중심의 유교 이데올로기 사회에서 성적 본능을 억압하고 살아온 그녀는 아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성적 주체성을 주장하고 그 즐거움을 향유하려는, ‘새로운 시대의 여인이다.

 

다음은 <샛서방 노래 2>.

 

어쩔 거나 어쩔 거나, 시어머님.

샛서방의 밥을 담다 놋 주걱 자루를 부러뜨렸으니

이를 어찌하여요? 시어머님!

저 아기야, 너무 걱정 마라

우리도 젊었을 적에

많이 꺾어 보았노라.<만횡청류-478>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화자로 등장하여 대화를 나눈다. ‘며느리가 샛서방의 밥을 푸다가 놋 주걱 자루를 부러뜨렸다는 사건이 노래의 핵심이다. 밥을 너무 꾹꾹 눌러 담다 보니 놋 주걱 자루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며느리의 입장에서야 이보다 더 큰 낭패가 어디 있겠는가.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 밥그릇에 밥을 꾹꾹 눌러 담은 것은 그 밥그릇 임자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다만 그 사랑의 대상이 남편 아닌 샛서방인 점이 문제였다. 며느리는 죽음에 가까운 불벼락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벼락을 치는 대신 시어머니 자신도 그러한 과거가 있었다고 고백하는 게 아닌가. 그 덕에 숨 막히는 긴장은 극적으로 해소되었다. ‘놋 주걱 자루를 부러뜨린 사건으로 샛서방과의 사랑을 절묘하게 노출시켰다. 기가 막히는 기지(機智)와 해학이다. 불륜이 자아내는 무겁고 탁한 분위기가 비교적 가벼운 느낌의 해학으로 바뀌는 반전의 메커니즘이야말로 탁월한 은유의 소산이었다.

노래 내용의 핵심은 불륜이다. ‘서방 있는 젊은 여인이 샛서방을 두고 있다는 서사적 문맥이 이 노래에는 들어 있다. 그 문맥 속에는 다양한 상황이 내포되어 있다. 서방이 있음에도 샛서방을 갖게 된 이유가 바로 그 다양한 상황들의 출발점이다. 며느리의 본남편은 나이가 어리거나 반대로 아주 늙은 서방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젊지만 성적으로 무능력한 서방일 수도 있다. 어떤 유형의 서방이든 이 여성을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으리라. 그래서 며느리는 샛서방을 두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샛서방에 대한 사랑은 그의 밥을 꾹꾹 눌러 퍼 담는 행위로 암시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시어머니도 젊은 시절 그런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물론 노래 속의 내용을 당시의 세태로까지 확대시킬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노래는 노래일 뿐이고, 노래는 노래하는 자의 상상에서 만들어진 언어적 구조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당시 사람들은 음으로 양으로 이 노래를 부르며 자신들의 현실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삼았을 것이다.

이 노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 성 문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거나 쥐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 노래의 작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지배층이 만들어낸 열녀담론을 통해 여성들의 성적 결정권을 억압해온 남성 위주의 반 생태적 인습과 제도에 반역을 꾀함으로써 성에 관한 자연적 질서를 회복하고자 한 시도의 결과로 보는 것이 옳다.

 

다음은 <비파노래>.

 

비파야, 너는 어찌 가는 곳마다 앙알거리느냐?

홀쭉한 목을 둘러 안고 움파 같은 손으로 배를 잡아 뜯는데

앙알거리지 않을 소냐!

아마도

크고 작은 구슬이 옥 소반에 떨어지는 소리는 너뿐일 거야.<만횡청류-536>

 

비파는 아름다운 여성을 닮은 악기이다. 비파의 모습, 아름다운 소리, 연주할 때 비파를 잡는 모습 등이 노래의 중심 소재다.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하여 대화를 주고받는다. 비파를 불러낸 화자가 왜 가는 곳마다 앙알거리느냐?’고 묻자 상대 화자인 비파는 홀쭉한 목을 둘러 안고 움파 같은 손으로 배를 잡아 뜯는데 앙알거리지 않을쏘냐?’고 대답했다. 그러자 다시 처음의 화자는 아마도 크고 작은 구슬이 옥 소반에 떨어지는 소리는 너뿐일 것이라고 감탄한다. 노래의 핵심은 앙알거리는 비파의 소리, 가는 목을 둘러 당겨 안은 채 희고 가냘픈 손으로 배를 잡아 뜯는 듯한 연주 태도 등에 내용 파악의 열쇠가 있다. ‘가는 목을 안고 배를 잡아 뜯으니 앙알거리지 않을 수 없다는 요지의 언술은 외견상 비파 연주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내용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적 의미는 다르다. 우선 비파를 생명체로 설정한 점, 목이나 배 등 인간의 육체를 끌어온 점, 그 육체에 손을 대니 소리를 내는 것으로 묘사한 점 등은 작자의 실제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 크고 작은 구슬이 옥 소반에 떨어지는 소리의 크고 작은 구슬은 여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노래의 주 화자는 남성, 상대 화자인 비파는 여성이다. 노래의 작자는 비파의 모습에서 여인을, 비파 연주 모습 혹은 그 소리를 통해 여인과 벌이는 사랑의 행위를 각각 떠올린 것이다. 비파와 비파 연주자는 사랑하는 남녀와 유사성을 가졌다고 보았음이 분명하다. 비파 연주자가 비파를 다루는 행위는 남자가 여자를 애무하는 행위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가. 비파를 연주할 때 울려 나오는 소리는 남자가 여자를 애무할 때 여자가 토해내는 기쁨의 소리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비유 구조의 바탕이다. 그러나 노래의 문면에는 남자와 여자, 혹은 남녀 간의 애정에 관한 말은 한 마디도 노출되고 있지 않다. 세련된 악기 이야기를 펼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심하게 하면서도 이면적으로는 도에 넘치는 외설적 이야기를 펼치는 범상치 않은 표현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사랑을 나눌 때 여성이 느끼는 쾌락의 실황을 내용으로 한다. 편의상 주 화자로 남성 화자를 등장시켰을 뿐, 노래의 실질적 주체는 여성이다. 이 시기에 쾌락 추구의 성 담론을 이처럼 과감하게 펼친 것은 사회의 이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성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입장에서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남성주도의 이념사회에 대한 반역인 동시에 여성들의 성적 주체성에 대한 깨달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자는 왜 비파를 소도구로 사용했을까. 작자는 은유를 자기검열 혹은 자기보호의 효과적인 장치로 여겼음에 분명하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잠재된 꿈의 내용이 외현된 꿈의 내용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마음의 검열관이 자리 잡고 있다 했다. 자기검열의 무의식적 결과를 도출하는 수단이 바로 은유다. 작자 자신 혹은 작자계층의 집단적 욕구[성욕과 쾌락의 자유로운 표출 및 향수를 통한 성적 주체성의 확인]를 드러내기 위해 끌어온 비파의 의미적 명징성에는 한계가 있다. 그 점에 작자의 의도가 숨어 있다. 수용자나 해석자의 능력에 맡겨둘 수밖에 없을 만큼 이 노래의 은유적 표현은 애매하다. 작자는 자기검열을 통해, 외설을 노래함으로써 당할 수 있는 사회적 제재로부터의 도피처를 마련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경우 은유가 훨씬 창조적이고 심층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건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한다. 사실 노래의 외설적 의도나 의미가 쉽게 간파될 수도 있었고, 단순한 비파노래로 이해되는 데 그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작자로서 손해 볼 이유가 없었던 것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남성중심의 사회가 자행하던 성적 억압에 맞서 그들 스스로 시도한 첫 단계의 반역이 바로 이런 노래에 나타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성을 노래한 결과는 어떠했나

 

 

조선조의 열녀담론은 반자연적반생태주의적 산물이었다. 그 속에서 여성들은 고작 한숨을 내쉬거나 측은한 신세타령으로 가슴 속의 응어리들을 삭이며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것으로 알고들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 생태적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 당시 여성들이었다. 노래를 통한 가슴 속 응어리의 해소가 바로 그 방법이었다. 남성중심의 성 담론이나 열녀담론에 대한 반역의 의지를 노랫말에 숨겨놓거나 과감히 드러냄으로써 억눌렸던 리비도의 해소는 가능했고, 몸도 얼마간 자연의 상태를 회복할 수 있었다. 노래를 통해서이긴 하나, 남녀가 성적 쾌락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여성이 관념 차원의 주도권이나마 쥐게 된 점이야말로 여성이 비로소 성의 향유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남녀가 함께 성행위를 하면서도 쾌락을 표현할 경우 가차 없이 음탕한 여자로 매도되던 것이 당대의 불평등 구조였다. 그런 억압을 극복하고 성적 쾌락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몸으로 지각하는 자연의 질서에 부합하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으니, 만횡청류를 통해 에코페미니즘적 성 담론은 제대로 구현된 셈이다.

만횡청류에코페미니즘의 가장 큰 부분은 은유를 통한 여성의 존재확인,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통한 자연성의 회복, 여성의 성적 주체성과 자신감의 확립등으로 구체화된다. 노래를 통해 반 생태주의적 열녀담론을 깨는 데서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반역은 시작된 셈이다. 사실 가장 높은 수준의 생태주의는 자연 혹은 자연스러움의 표준을 자신의 욕망에 맞춤으로써 스스로 성적 쾌락을 찾아 나서는 내용의 노래들이다. 남성 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순종하는 여성들과 달리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성적 쾌락을 탐닉하는 여성들의 노래는 반 생태주의적 억압에 대한 반항의 선언이다. 아울러 당당한 자신감의 표출이야말로 가장 수준 높은 에코페미니즘적 성 담론임을 만횡청류는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억압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같은 일이라고 인식하는 데서 만횡청류식 에코페미니즘의 단서는 분명해진다. 자연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관점에 설 때 비로소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성적 쾌락을 느끼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 사이에 균형과 조화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이런 노래들이야말로 생명 평등주의 성 담론의 구현일 수 있는 것이다.

 

신윤복의 <단오풍정>

 

조규익

숭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아너 펠로우 교수(Honor Soongsil Fellowship Professor)’. 인문대 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소장. 도남국문학상성산학술상한국시조학술상 등을 수상. LG 연암재단 해외연구교수로 UCLA에서 재미한인 이민문학, 풀브라이트 학자(Fulbright Scholar)OSU에서 해외한인문학과 비교문학을 연구. 󰡔조선조 악장 연구󰡕󰡔북한문학사와 고전시가󰡕󰡔고전시가의 변이와 지속󰡕 외 다수의 저역서와 논문들을 발표했음.

 <<정형시학>> 23, 사단법인 열린시조학회, 2019. 6. 2019년 여름호

 

 

Posted by kicho
글 - 학술문2017.05.14 22:34
Neural Machine Translation Research Accelerates Dramatically

Academia continues to ramp up its research into neural machine translation (NMT). Five months into the year, the number of papers published in the open-access science archive, arXiv.org, nearly equals the research output for the entire year 2016. The spike confirms a trend Slator reported in late 2016, when we pointed out how NMT steamrolls SMT.

As of May 7, 2017, the Cornell University-run arXiv.org had a total of 137 papers in its repository, which had NMT either in their titles or abstracts. From only seven documents published in 2014, output went up to 11 in 2015. But the breakthrough year was 2016, with research output hitting 67 contribu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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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MT, or an approach to machine translation based on neural networks, is seen as the next evolution after phrase-based statistical machine translation (SMT) and the previous rules-based approach.

While many studies and comparative evaluations have pointed to NMT’s advantages in achieving more fluent translations, the technology is still in its nascent stage and interesting developments in the research space continue to unfold.

Most Prolific

At press time, NMT papers submitted in 2017 were authored by 173 researchers from across the world, majority of them (63 researchers) being affiliated with universities and research institutes in the US.

The most prolific contributor is Kyunghyun Cho, Assistant Professor at the Department of Computer Science, Courant Institute of Mathematical Sciences Center for Data Science, New York University. Cho logged 14 citations last year.

He has, so far, co-authored three papers this year —  “Nematus: a Toolkit for Neural Machine Translation,” “Learning to Parse and Translate Improves Neural Machine Translation,” and “Trainable Greedy Decoding for Neural Machine Translation” — in collaboration with researchers from the University of Edinburgh, Heidelberg University, and the University of Zurich in Europe; the University of Tokyo and the University of Hong Kong in Asia; and the Middle East Technical University in Turkey.

Aside from Cho, 62 other researchers with interest in NMT have published their work on arXiv under the auspices of eight American universities: UC Berkeley, Carnegie Mellon, NYU, MIT Computer Science and Artificial Intelligence Laboratory, Cambridge, Stanford,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Atlanta, Johns Hopkins University, and Harvard.

Sixty-one researchers from Europe have also substantially contributed to the collection, with authors from the UK (18), Germany (11), Ireland (13), and the Netherlands (7) submitting the most papers.

There were also 58 NMT academic papers from Asia, authored by researchers mostly from China, Hong Kong and Taiwan (31), Japan (22), South Korea (3), and Singapore (2).

Tech Firms in the Mix

Research teams from US tech giants such as Facebook Research, Google Brain, IBM Watson, NVIDIA (on whose GPU chips NMT runs), and translation technology pioneer SYSTRAN have also been increasingly contributing their research to arXiv. 

A paper from a team of researchers from Google Brain, for example, offers insights on building and extending NMT architectures and includes an open-source NMT framework to experiment with results.

Researchers from Harvard and SYSTRAN introduced an open-source NMT toolkit — OpenMT — which provides a library for training and deploying neural machine translation models. They said the toolkit will be further developed “to maintain strong MT results at the research frontier” and provide a stable framework for production use.

NMT, where math meets language

Facebook, which announced on May 9, 2017 that it is outsourcing its NMT model, has one other paper on arXiv. Entitled “Learning Joint Multilingual Sentence Representations with Neural Machine Translation,” it is authored by two members of its AI research team in collaboration with two other researchers from the Informatics Institute – University of Amsterdam and the Middle East Technical University.

In Asia, China’s Internet provider, Tencent, has two contributions this year. One is from its AI Lab in Shenzhen (“Modeling Source Syntax for Neural Machine Translation”); the other, from its Mobile Internet Group (“Deep Neural Machine Translation with Linear Associative Unit”), done in collaboration with researchers from Soochow University, Chinese Academy of Sciences, and Dublin University.

The Beijing-based Microsoft Research Asia has also started to contribute its own studies on NMT this year. Two papers (“Adversarial Neural Machine Translation” and “MAT: A Multimodal Attentive Translator for Image Captioning”) were uploaded just this month.

The company’s own researchers have collaborated with other scientists from the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of China, Sun Yat-sen University (Taiwan), Guangdong Key Laboratory of Information Security Technology, Tsinghua University, UESTC, and Johns Hopkins University.

Surge Will Last

As early as February 2016, an informal survey conducted by Cho indicated that the NMT research boom would have legs.

In a blog post dated February 13, 2016, Cho said he conducted the informal (he admits highly biased) poll mainly to determine researchers’ opinion about contributing to arXiv. Rather than being a peer-reviewed journal or online platform, arXiv is an automated online distribution system for research papers (e-prints).

“In total, 203 people participated, and they were either machine learning or natural language processing researchers. Among them, 64.5% said their major area of research is machine learning, and the rest natural language processing,” Cho wrote.

It is a big number of scholars and scientists who could feed the NMT research funnel for years — whether, as Cho calls it, they choose “to arXiv” or “not to arXiv” their works right away.

Eden Estopace

An IT journalist for the past 17 years, Eden has written for the top publications in the Philippines and Asia, covering consumer and enterprise IT. Offline, her interests are creative writing, photography, and film.

Posted by kicho
글 - 학술문2014.12.15 13:23

<<아리랑연구총서 ②>>가 출판되었습니다!

 

 

 

 

 

 

 

아리랑 연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아리랑 논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어떠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아리랑 연구를 시작해야 하는가?’

아리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거나, 좀 더 심도 있는 연구를 원하는 학자들은 흔히 이러한 의문과 곤란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번에 출판된 <<아리랑 연구총서 2>>2010~2013년 사이에 발표된 논문들을 모은 것으로, 최근에 이루어진 아리랑 논고의 정화(精華)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리랑을 왜곡한 당대의 역사관에 대한 학술적 비평 및 기록을 바탕으로 한 원형적 모습에 대한 역사적 고찰(숭실대 조용호 교수), 북한(한양대 김영운 교수강원(민족사관고 박관수 박사경상(부산대 서정매 교수전라(전남대 이용식 교수) 등 지역별로 존재하는 아리랑에 대해 심화된 연구, 기호학(서강대 송효섭 교수) 및 정신분석(서강대 김승희 교수) 측면에서 시도하는 새로운 분석 기법, 음악학적 논의(경인교대 김혜정 교수), 호머 헐버트에 대한 분석적 고찰(전주대 김승우 교수), 지금까지 존재하는 아리랑의 주요 담론에 대한 정밀한 비평(숭실대 조규익 교수) 등 축적된 연구물의 결정판이라는 것이 보신 분들의 평입니다. 나아가 향후의 연구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아리랑 연구 총서 작업은 전10집을 목표로 진행 중입니다. 1집은 초창기 연구자들의 주요 담론들을 수록함으로써 원문 탐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질 높은 자료를 제공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2집은 초기의 상황과 대비하여 어떠한 발전 도상에 있는지 반성하는 측면에서 최근의 논의들을 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나오게 될 제3집에는 192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온 일본관련 학자들의 아리랑 논고들을 모아 실을 예정입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획된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의 아리랑 연구총서를 아리랑 연구의 길잡이로 보는 이유도 이 점에 있습니다.

 

*********

 

 

 

 

 

 

참고로 <<아리랑 연구총서 2>>의 머리말을 들겠습니다.

 

 

 

머리말

 

201212,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아리랑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아리랑의 연고권에 관한 특정 국가와의 갈등을 극복하고 이룩한 쾌거라서 더욱 값진 일이긴 하나, 새롭게 지게 된 부담 또한 만만치 않다. 현재 아리랑이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정신적예술적 유산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유관국은 자국 내 조선족의 존재를 내세워 자신들이 아리랑을 선점하려는 욕을 내보였다. 그 뿐 아니다. 그들이 그런 욕을 내보인 데는 아리랑이 우리 것이라는 사실만 믿고 그것을 갈고 다듬는 일에 소홀한 우리의 게으름도 한몫을 했다는 점이 섬뜩하다. ‘아리랑에 대한 내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여타 외국인들로서야 제대로 된 논리나 근거를 먼저 들고 나오는 쪽의 손을 들어줄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 것이 그 나라계산이었을 것이다. 그간 아리랑에 대하여 태평하게 세월만 까먹으며 살아온 우리가 화들짝 놀란 건 당연한 일이다.

 

과연 아리랑에 대하여 우리가 해놓은 건 무엇인가? 어느 날 이웃나라가 아리랑을 내놓으라고 달려들 때 그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논리적사실적 근거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으며, 현재와 미래를 위해 아리랑을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가? 아리랑의 학술적 담론들은 얼마나 창출되었으며, 그것들을 통해 아리랑의 본질은 얼마나 밝혀졌는가? 등등 가장 현실적인 질문들에 딱히 내 놓을 게 별로 없다. 이 물음들 대부분이 학계에 던져지는 것들일 텐데, 속 시원하게 보여 줄만한 답지가 없어 안타깝다. 지금 아리랑 연구가 꽉 막혔다고들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리랑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대답을 못하니, 연구 활동들 역시 변죽만 울릴 따름이다.

 

이런 상황인식을 전제로, 아리랑 연구의 주된 결실들을 한 군데로 모으는 것이 난국 타개의 첫 단계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리랑 담론들은 어떻게 생겨났고, 후대 연구자들에게 어떻게 수용되었으며, 향후 연구의 진로는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를 알기 위해서라도 아리랑 연구의 업적들을 모으는 일이 중요했다. 아리랑이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기 전에 발간한 것이 <<아리랑 연구총서 1>>인데, 여기에 실린 글들은 다음과 같다.

 

1. 이광수, <民謠 小考()>

2. 김지연, <조선민요 아리랑朝鮮民謠硏究()>

3. 김지연, <조선민요 아리랑()朝鮮民謠硏究()>

4. 고권삼, <‘아이롱主義>

5. 이병도, <‘아리랑곡의 유래>

6. 양주동, <<도령><아리랑>>古歌硏究 二題

7. 심재덕, <아리랑 小考>

8. 정익섭, 珍島의 민요>

9. 임동권, <아리랑의 기원에 대하여>

10. 최재억, <한국민요연구아리랑 민요고>

11. 원훈의, <아리랑 系語造語論的 考察>

 

이 글들이 바로 초기 학자들의 아리랑 담론들이다. 과연 현재우리들 이들과 비교하여 어떤 진보 혹은 발전을 이룩했는가.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

 

이번에 펴내는 2집에는 반성적 시각을 제공하려는 뜻에서 최근의 논의들을 담았고, 이어 나오게 될 3집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학자들의 아리랑 관련 글들을 싣고자 한다. 아리랑이 인류무형문화재로 등재되었다하여, 우리의 할 일이 끝난 건 아니다. 치열한  논쟁과  연구를  통한  학자들의  뒷받침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리랑의  문헌들과  현장에  대한  재 탐사를  바탕으로 그간  선진국에서  배워  온  발전된  학문 방법론들을 총동원해서라도 아리랑의 본질 모색에 착수해야 한다. 그  디딤돌  혹은  마중물의  역할을  하 려는  뜻에서 아리랑 연구총서를  기획했고, 앞으로  계속  발간할  예정이다. 아리랑과  민족  전통예술에  뜻을  갖고  있는  학자들의  서재에  이  책이  연구의  길잡이로  꽂히게  될  것을  고대하며, 강호제현의 질정을  기다린다.

 

갑오년 겨울

 

한국문예연구소

소장 조규익

 

Posted by kicho
글 - 학술문2011.11.05 01:25

  <물질에 나서는 해녀들>

  <물질을 마치고 뭍에 오르는 해녀들>


토론문(2011. 11. 2.)



제주학의 글로컬化(glocalization), 그 모범적 선례의 수립을 지향하며

                                                                             조규익(숭실대학교 교수)


지역학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들이 참여하여 현대학문의 전향적 흐름인 통섭(統攝)이나 융합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학문적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분야입니다. 제주학연구센터의 신설을 통해 제주지역학을 진작(振作)하려는 제주발전연구원의 미래지향적 도전에 경의를 표합니다. 주강현 교수님, 조동오 교수님의 발표와 「제주학연구센터 운영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잘 읽었습니다. 주 교수님과 조 교수님의 발표는 「제주학연구센터 운영 기본계획」을 크게 보완해주시는 내용으로 생각되며, 저는 두 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따라서 저는 두 분의 발표와 「기본계획」을 읽은 소감 정도의 소박한 견해를 표명하는 선에서 토론자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고자 합니다.

***

제주학연구센터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각 지역에는 지역학을 연구하는 기관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학연구소의 철학이나 비전이 시대정신에 맞게 제시되어야 하고, 활동의 방향성 또한 그에 맞추어 고안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주는 한국 속의 제주이기도 하고 세계 속의 제주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제주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한국 혹은 세계 안의 한 부분이라는 보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문화적으로 본토 및 세계와의 적절한 관계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제주의 정체성은 살아날 수 있고, 세계화와 지방화라는 일견 상충되는 방향성 또한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제주의 특수성만을 강조할 경우 제주학은 결코 멀리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특수성을 몰각(沒却)한 채 보편성만 추구한다면, 제주도의 정체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상반되는 두 방향성을 발전적으로 통합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길이 제주학연구센터의 성패를 가름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기본계획」의 모두(冒頭)에 밝힌 ‘계획수립의 배경’에서 저는 현실적인 고민을 발견했습니다. 제주지역이 풍부한 문화자원을 갖고 있지만, ‘세계화의 흐름과 국제자유도시 지향 속에 제주인의 문화적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 ‘제주인들이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제주학의 대중화 실현이 요구’된다는 점 등이 해당 내용의 핵심입니다. 이런 현실인식은 뒤쪽에 제시된 제주학연구센터 설립의 비전[“지역을 넘어 세계로 향하는 제주학 정립” : 「기본계획」, 64쪽]과는 약간 어긋난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제주인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당위와 ‘세계화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는 현실의 상충을 「기본계획」의 첫머리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계획」의 도처에서 제주학연구센터의 차별화를 모토로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지역 뿌리를 찾는 작업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지역주민에게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하여 궁극적으로 지역발전의 견인차 역할’[「기본계획」 67쪽]을 해야 한다거나, ‘제주지역을 대상으로 제주지역의 내재적 발전을 위한 실천적 활동을 지향하며, 제주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추구해야 한다’는 등 대상과 활동의 범주를 제주로 국한하는 논조는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공간적 범위를 한반도, 일본, 동남아, 몽골, 중국, 대만, 연해주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와 전 지구로 확대해야 한다는 점 또한 강조하고 있습니다.[「기본계획」, 70쪽] 이처럼 「기본계획」에서 발견되는 약간의 어긋남은 역설적으로 새롭게 출범하는 제주학연구센터가 유지해야 할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제를 다음과 같이 세울 수 있다고 봅니다.

제주학의 중심은 제주이고, 한반도와 세계는 그 변방이다.

제주학의 특수성은 한반도와 세계 지역학의 보편성과 긴장의 관계를 갖는다.

탈식민의 시대인 지금, 그리움과 선망의 대상일지언정 제주를 변방으로 보는 본토인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본토를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제주인들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서울⋅부산⋅인천 등을 제외한 어느 지역도 제주만큼 타 지역이나 타국과 교류가 많았던 곳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제주인들 만큼 제주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를 느끼는 지역민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체성은 ‘불변(不變)과 고착(固着)’에서 형성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질적인 것들의 섞임과 변화를 통해 ‘내 것’을 좀 더 선명하게 구분해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체성입니다. 본토나 세계 문화와의 교류를 기피할 이유가 없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기존의 지역 연구소들이 정체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사업의 대상이나 범위를 자신들의 영역만으로 한정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계획」의 ‘비전’은 대단히 도전적이면서도 타당합니다. 그런데, 핵심 분야나 구체적인 사업으로 들어가면 비전의 내용은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습니다. 핵심 분야[「기본계획」, 64쪽]에 ‘본토 및 세계와의 연계사업’이 들어가야 하고, 세부사업 추진계획[「기본계획」, 78쪽]에 ‘본토와의 비교연구/다른 나라들과의 비교연구’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제주도는 인구의 유입을 통한 저변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제주에서 출생한 사람’ 뿐 아니라 주제로 이주해온 사람은 당연히 제주인으로 넣어야 하고, 타지에 살면서 제주를 연구하는 등 제주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넓은 범위의 제주인’으로 넣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점은 연구팀 구성원을 제주도 내 인력에 국한하지 말고 본토나 외국인도 포함시킬 수 있는 근거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 교수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연구 주체의 존재에 대하여 ‘대학-외부 연구주체, 대학-사회’라는 맥락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는데, 제주 내의 연구자나 제주 외의 연구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제주도 및 제주대 출신이거나 그와 연관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학문적 기반이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큰 문제입니다. 그런 한계를 뛰어넘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와 함께 ‘연구자체 사업’[「기본계획」, 86쪽]의 ‘제주도민 대상 제주학 교육사업 실시’에서 대상범위를 제주도민으로 한정한 것은 단견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제주도 밖의 주민들까지도 대상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제주학 교육사업’[「기본계획」, 79쪽]은 아카데미즘(academism) 일변도를 지양해야 합니다. ‘해녀학교/제주 민요학교/제주 민속놀이학교’ 등 놀이와 일이 통합된 체험적 교육만이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제주 해양문화 연구’[「기본계획」, 80쪽]에도 ‘제주 거주 작자의 창작문학 연구’ 혹은 ‘제주를 소재나 공간으로 한 문학 연구’ 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만약 이런 점들이 보완되면, ‘제주학연구센터의 단계별 발전과정’[「기본계획」, 76쪽]은 ‘제주학연구센터 독립기(2017)’에 ‘제주학연구센터 확장기(2020)’까지 추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주학의 대상지역을 제주만으로 한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토론자가 체험한 바에 의하면, 본토의 해안이나 오사카 등지에는 출가(出稼) 물질 후 눌러 살게 된 해녀들이나 그 후예들이 남아 있습니다. 중국의 해안에도 북한의 해안에도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에도 제주 해녀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단순히 물질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민속문화의 매개자로서 노 젓는 노래, 물질하는 노래, 각종 설화 등 많은 문화적 콘텐츠를 그런 지역들에 유포시킨 공로자들입니다. 제주학의 아카이브 구축 사업은 이런 현장조사를 병행하면서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주 교수님께서 강조하신 아카이브 확충의 방법들은 반드시 실천에 옮겨져야 할 것입니다. 아카이브를 소홀하게 생각해온 것이 우리나라 지역학회나 연구소들의 공통된 폐단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제주학연구센터는 그런 문제점의 해결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삼아야 하리라 봅니다.

***

주 교수님께서도 이미 언급하셨지만, 제주인에게 ‘변방의식의 극복’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중심적 영역의 확보를 통한 정체성의 확립은 제주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제주를 특별자치도로 설정한 것은 제주도민들의 변방의식을 떨쳐버릴 수 있는 첫 기회라고 봅니다. 진정한 ‘탈식민’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행정조치와 함께 제주도민의 자생적 의식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방언, 민속 문화, 고유한 생활양식 등 제주의 문화를 살리고, 그것들을 통해 제주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일이야말로 제주인들에게는 정신적 홀로서기의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학연구센터는 그 확실한 이론적⋅실제적 바탕일 수 있습니다. 센터를 중심으로 시대의 보편적 요구인 융복합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본토나 해외의 경험 있는 학자들이나 컨설팅 분야의 인력들을 초치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외국으로부터 섬 문화의 활성화를 통해 이룩한 선례들을 활발하게 도입할 수만 있다면, 제주학연구센터의 발전 단계는 훨씬 앞당길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할 때 정부로부터 큰돈을 끌어오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제주 연구자들의 인력풀을 확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제주를 주제로 하는 프로젝트의 개발에 적극 참여하게 하는 것도 간접적인 투자방식으로는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제주를 주제로 하는 프로젝트 팀을 꾸릴 경우 연구센터의 연구원이 공동연구자로 적극 참여하거나 소정의 절차를 거쳐 연구센터의 자료를 서비스하는 등 현실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왕 제주학연구센터가 출범한 이상 제주 지역 내 기존의 학회나 연구소, 대학 등과의 역할 중복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들과 발전적인 제휴를 맺고, 장기적으로는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 제주학연구센터는 빠른 시간 안에 지역학의 글로컬化를 이룩한 모범적 선례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kicho
글 - 학술문2010.10.13 08:05


『우즈벡의 고려인이 들려주는 디아스포라 이야기  멀리 떠나온 사람들』출간!!!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작가 블라디미르 김의 자전적(自傳的) 수기(手記)인 『멀리 떠나온 사람들』을 펴냈다. 이 책에는 이 책에는 20여 편의 체험 수기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들은 표면 상 독립적인 이야기들이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내용은 ‘디아스포라적 삶의 고통’과 ‘억척스런 극복의 역사’다. 작가의 개인사에 그치지 않고 작가의 개인사를 통해 본 고려인들의 생활사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북 분단의 민족 현실에 대한 아픈 지적과 함께 이념이나 체제경쟁에서 이겼다고 자만하는 우리에게 ‘무서운 일침(一鍼)’을 가한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글 전체를 연결해서 읽다보면, 조분조분 건네는 ‘일인칭 화자’의 말을 통해 한 편의 자전적 소설(小說)을 짚어 나가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아들 ‘빠벨’에게 자신의 험하면서도 소중한 경험을 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은 구소련 고려인들이 100년 가까이 겪어온 고통을 조국 특히 대한민국의 동족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언필칭 ‘해외 동포들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그들의 지나 온 세월과 그들의 마음을 모른다면 모두가 구두선(口頭禪)일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국인이라면 모두 읽어야 할 ‘해외동포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학계의 인사들이나 해외동포 관련 정책에 관여하는 인사들은 안두(案頭)에 두고 밥 먹듯 펼쳐 보아야 할 책이다. 우리 모두 작가가 대신 쏟아놓은 고려인들의 이야기에 부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가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해외동포들과의 의미 있는 만남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블라디미르 김의 약력
        1946년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쉬켄트 근교 촌락인 ‘꾸일로크’에서 출생출생한 해에 부모와 함께 북한으로 가서 12세 까지 살았다. 당시 소련한인을 위해 평양에 개교한 학교에 들어가 러시아어로 공부했다. 한국전쟁 동안에는 중국에서 살았고,  15세 때에 타쉬켄트로 돌아와 석공, 미장공, 판석공 등 건설노동자로 일했다. 그동안 야간학교를 마치고 종합기술학교 산업 및 민간 건축공학과에 들어가 공부했는데, 1년 후 학업을 뒤로하고 군에 입대했다. 그곳에서 지역 군사 신문에 기사를 쓰기도 했다. 제대 후 타쉬켄트 국립대학 언론학부에서 공부했고, 이후 학생 및 청년 신문사에서 일해 책임비서까지 승진했다. 1979년 한국어로 발행되는 ‘레닌기치’ 신문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이후 타쉬켄트 통신사의 소장이 되었다. 타쉬켄트 국립대학에서 언론학을 강의했으며, 사범대학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공로언론인’의 칭호를 받았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는 한국문화원 설립에 적극 참여하였다.


      블라디미르 김 지음, 최선하 옮김,  인터북스, 2010, 값 20,000원/숭실대학교 한국문
      예연구소 문예총서-7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