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학술문2007. 9. 17. 17:57

'얼음을 함께 논할 수 없는 여름 버러지' 틈을 벗어나고자 한
 홍대용의 연행길 육천리-『을병연행록』


                                           조규익(숭실대 교수)

               연행 길, 고행 길

1765년(영조 41년) 동지사행의 서장관 홍억을 따라나선 그의 조카 담헌 홍대용. 자제군관의 자격이었다. 실학을 발흥시킨 조선 후기의 대표적 지식인이었던 그는 당대 유학자 김원행에게 배웠고, 북학파의 대표 박지원과 교제가 깊었다. 그러나 화이관과 대명의리론(大明義理論)이 지배하던 그 시절. 명분과 현실은 크게 괴리되어 있었다. 담헌 스스로 벼슬을 추구하지 않았던 것도 그 괴리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이러한 괴리감을 청산하고 세계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연행'의 기회를 고대하다가 드디어 그 기회를 잡았던 것. 거기서 나온 것이 "을병연행록"이다.
 그가 두 달 걸려 도착한 연경까지는 편도 3천리, 왕복 6천리의 장도였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무리 지어 도보로 오가던 '공무 여행길'. 교통편이 마땅치 않으니 숙박시설인들 변변할 리 없었다. 윗사람들이라고 으레 '한둔'하기 일쑤이던 아랫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나을 것도 없었다. 목욕은커녕 제때 옷을 갈아입는 일마저 분에 넘치는 사치였을 만큼 행차의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위·아래 할 것 없이 군말을 보탤 수 없었다. 지엄한 왕명으로 나선 길이기 때문이었다.
 중국과 조선, 두 왕조의 외교적 연결은 주로 우리 쪽에서 파견하던 사행단이 담당했다. 조선은 동지(冬至)·정조(正朝)·성절(聖節)·천추(千秋) 등에 정례적인 사행단을 파견했다. 왕비나 세자의 책봉, 왕의 죽음에도 사행단을 보냈으며, 왕위를 물려줄 때도 선왕을 추숭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은(謝恩)·주청(奏請)·진하(進賀)·진위(陳慰)·진향(進香) 등은 수시로 파견되던  임시 사행단이었다. 정사·부사·서장관 각 1인, 대통관 3인(수역 당상관 1인·상통사 2인), 호공관(護貢官) 혹은 압물관(押物官) 24인 등 30명 내외가 공식 인원이었으나, 의원·서자관·화원 및 기타 수행원과 노자(奴子)들을 합하면 총인원 기백에 달하는 큰 규모였다. 그렇게 다녀 온 사행이 조선조 말까지 수백 회. 경제와 문화의 교류도 사행단이 수행하던 실질적 사명의 큰 부분이었다.

              서양문물과의 만남과 깨달음
                  
 "여름 버러지와는 족히 더불어 얼음을 이르지 못하고, 오곡한 선비와는 족히 더불어 큰 도를 의논치 못한다"는 『장자』의 말을 끌어와 담헌은 조선의 답답한 선비들을 비웃고 '길 떠나는' 자신의 결의를 다졌다. 그는 또 "간밤에 꿈을 꾸니/요야(遼野)를 날아 건너/산해관 잠긴 문을/한 손으로 밀치도다"라고 도도한 패기를 자신의 노래에 표현하기도 했다. 그 뿐 아니다. 평소 역관을 만날 때마다 한어를 부지런히 익혀둘 만큼 연행의 기회를 노리며 준비를 철저히 해온 그였다. 그 덕분으로 연경에 가서도 웬만한 대화는 한어로 통할 수 있었다. 오직 간정동의 세 벗(엄성·육비·반정균)과 나눈 대화들만은 필담으로 주고받았다. 정확성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연행 길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기록했으나,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간정동 세 벗과의 만남, 서양문물과의 만남이었다. 담헌은 연경에 도착한지 두어 달 째인 1766년 1월 7일·8일·9일·13일·19일과 2월 2일에 천주당을 방문하여 서양인 사제 유송령·포우관 등과 만났다. 그는 이들과 만나 대화를 나눔으로써 비로소 서양세계와 우리의 같고 다름을 깨닫고 개안을 하게 되었다. 정월 7일 천주당에 사람을 보내 유송령·포우관을 만나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9일에서야 결국 두 사람을 만난다. 천주화상을 보며 그 화격(畵格)이나 천주교리에 대하여 비판하기도 하고 오르간의 구조와 음계를 자세히 관찰한 다음 즉석에서 연주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19일에도 천주당을 찾은 담헌은 그들과 장시간 만나 종교와 교리, 역서(曆書), 혼천의, 관상대, 망원경, 흑점(黑點), 안경 등 과학과 문물에 관한 문답을 교환했고, 2월 2일에는 자명종, 서양과 중국의 문자 언어 및 방위(方位) 등에 관한 문답도 나누었다. 처음으로 접한 천주화상을 담헌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북편 벽 위에 당중하여 한 사람의 화상을 그렸으니 계집의 의상이오, 머리를 풀어 좌우로 드리우고 눈을 찡그려 먼데를 바라보니 무한한 색과 근심하는 기색이라. 이것이 천주라 하는 사람이니 형체와 의복이 다 공중에 서있는 모양이오, 선 곳은 깊은 감실(龕室) 같으니, 첫 번 볼 제는 소상(塑像)인 줄만 여겼더니 가까이 간 후에 그림인 줄 깨달았으나, 안정(眼睛)이 사람을 보는 듯하니 천하에 이상한 화격이오.

 처음 보는 예수상에 놀랐던 것일까, 묘사의 세밀함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사실 담헌은 그림 뿐 아니라 거문고를 능숙하게 탈 정도로 악기를 좋아했고 음률에도 조예가 깊었다. 처음 보는 오르간으로 우리나라의 음악을 연주해보이기도 했고, 악기를 접할 때마다 구조와 연주법을 묻거나 조선의 악기와 비교하기도 했으며, 거문고 연주를 들려주어 반정균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도 했다. 거문고 연주로 연경의 역관 서종맹의 탄성을 자아낸 담헌. 그는 악기상 유씨의 <평사낙안> 연주를 악사들로 하여금 익히게 한 다음 밤마다 그들을 불러 그것을 배웠다. 그처럼 그는 악기 연주의 매니아이기도 했다.

              간정동에서 만난 세 벗, 그리고 천고의 우정

 『을병연행록』 권 6에서 권 9까지 26일간은 담헌이 중국의 세 선비를 만난 간정동 이야기다. 이 부분은 전체 기록의 삼분지일을 넘을 만큼 양으로나 내용으로나 중국 체험의 핵심이다. 간정동을 처음 방문했을 때 왕어양의 『감구집(感舊集)』에 실린 김상헌의 시가 화제로 올랐으며, 2차 방문 때는 허난설헌의 시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담헌은 도학과 절의로 저명한 김상헌을 통해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려 했고, 시율에 비해 덕행이 미치지 못함을 들어 난설헌을 비판하기도 했다.
 다섯 번째로 간정동을 방문했을 때, 담헌은 육비·평중 등과 형제의 의를 맺고 '오늘의 모꼬지가 천고의 기특한 연분'이라 말하며 기뻐했다. 국경을 넘는, 지극한 우정이었다. 『담헌서』 외집의 <항전척독(杭傳尺牘)>은 연행에서 돌아온 담헌이 이들과 주고받은 편지 33통이 실려 있는 글이다. 육비에게 주는 편지 4통, 엄성에게 주는 편지 3통, 반정균에게 주는 편지 5통, 손유의에게 주는 편지 4통 등이 그 중심이다. 이들 중 담헌과 특히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 것은 엄성이었다. 엄성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의 아버지·형·동생·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7통이나 될 정도였다. 엄성이 죽은 뒤 반정균에게 보낸 편지의 다음 구절엔 감동적인 우정이 흘러넘친다.

 철교(엄성의 호 ; 인용자 주)의 무덤에 풀이 이미 두 달을 묵었구료. 매양 깊었던 우정을 생각하면 벽을 돌며 기가 꺾이고 마음이 슬퍼집니다. 그 초상을 꼭 한 번 보고 싶건만 부쳐 주기가 쉽지 않겠지요.

 엄성은 담헌의 초상을 그려준 적이 있었는데, 정작 담헌은 그의 초상을 갖고 있지 못했으니, 엄성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었으리라. 그토록 그들은 우정으로 맺어진 큰 선비들이었다. 담헌이 보기에 단순히 '오랑캐 나라의 시시한 선비'들은 아니었다. '우물 안 개구리 같던' 조선의 선비들이 얕잡아 봄직한 인물들은 더더욱 아니었다. 담헌은 연행 길에 나서면서 "대개 사람이 작은 일을 즐기고 큰일을 모르는 자는 그 가슴에 호준한 뜻이 적음이요, 좁은 곳을 평안히 여겨 너른 곳을 생각지 아니하는 자는 그 도량에 원대한 계교가 없음이라"고 일갈했다. 어쩌면 그는 중국에 가서 이런 선비들과 교제하고 좀 더 큰 문제들을 담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담헌은 당시 조선의 꽉 막힌 선비들을 비판하고 매도했다. 담헌 자신 연행을 통해 '얼음을 함께 논할 수 없는 여름 버러지들' 틈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었을까. 그는 우리나라의 예악문물을 소중화로 부르긴 하지만, 100리 되는 들판이 없고 천리를 흐르는 강이 없으며 땅덩어리가 좁고 좁아 중국의 한 고을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그 가운데 도사리고 앉아 부릅뜬 눈으로 소소한 영리를 추구하고 악착한 언론을 구사하니 그들이 가련하다고 했다.
 오랑캐가 웅거하여 중국의 문물이 비록 변했다 하나 사람만은 고금이 없으니, 천하의 큼을 보고 천하의 선비를 만나 천하의 일을 의논하며 저들의 규모와 기상을 한 번 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런 포부를 지닌 담헌이었기에 국경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교우관계의 모범적 선례를 남길 수 있었다. 반년 동안의 연행길이 그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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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학술문2007. 6. 6. 14:06

* 이 글은 <<불교문예>> 37호(2007년 여름호, 2007/ 6/1)에 실려 있습니다.


위대한 모정의 승리
  --<도천수관음가> 새로 읽기--


                                                                         조규익

하나. 부성보다 강한 모성, 그 전통

입시를 서너 달이나 앞 둔 무렵의 사찰. 손 모아 부처님께 절 올리며 자녀의 고득점과 미래의 행복을 비는 어머니들로 북적인다. 한 사람의 아버지도 보이지 않는 그곳은 조건 없는 사랑이 꽃 피어나는 현장이다.
병원 입원실. 선천적인 불구로 태어난 어린 아들 곁에서 밤을 지새우는 모정이 TV 화면 가득 쏟아진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힘에 겨워 보이는 젊은 엄마의 처량하지만 강한 모습만 의연하다. 기약 없는 세월을 좁디좁은 입원실에서 보내야 하는 처지임에도 여윈 얼굴에는 담담한 여유마저 흐른다. 아버지라고 어찌 자식 사랑이 없을까. 다만 그 절절함에서 모성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부성이다. 우리는 고려의 속악 <사모곡(思母曲)>을 통해 그런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호미도 날이지마는
     낫같이 잘 들 리도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위 덩더둥셩
     어머님같이 사랑해주실 이 없어라
     아, 님이시여! 어머님같이 사랑해주실 이 없어라

아버지의 사랑이 어머니의 그것보다 못하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 이 노래 화자의 의도는 아니리라. 다만 양자 간의 차이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사랑보다 어머니의 사랑이 훨씬 두드러지는 것은 그 간절함 때문이다. 자신의 전 존재를 던져 자식을 감싸 안는 어머니의 사랑을 화자는 노래한다. 어쩌면 이 노래는 지은이의 특이한 체험으로부터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읽거나 듣는 누구라도 그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말하자면 현실 속의 그런 체험이 노래 속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호미와 낫에 비유한 품새가 범상치 않은 것도 그런 효과를 배가시킨다. 그래서 짧지만 절창이고, 당시 인정의 기미(機微)를 잘 드러낸다고들 하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되는 모티프를 지닌 노래가 <목주(木州)>다. <<고려사 악지>>의 삼국 속악에 실려 있으므로 원래 민간에서 만들어져 불리던 노래일 것이다. 배경적 사실은 다음과 같다.   목주에 살고 있던 효녀가 아버지와 후모(後母)를 지성으로 섬겼는데, 아버지는 후모가 그녀를 헐뜯는 말만 듣고 그녀를 쫓아냈다. 쫓겨나 떠돌다가 한 노파에게 구제되었고, 그녀는  노파의 아들과 결혼하여 부자가 되었다. 심히 가난한 친정 부모를 모셔다가 극진히 봉양했으나, 부모는 그래도 기뻐하지 않자 그녀가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것이다.
후모는 그렇다 치고,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처사(處事)가 서정화 될 경우 <사모곡> 같은 노래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목주>가 <사모곡>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나 아닐까.
어쨌든 본능적으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그 가운데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일 만큼 절절하다. <목주>나 <사모곡>이 나왔을 삼국시대에 우리는 절절한 모성애가 흘러넘치는 또 하나의 노래를 만난다. 향가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가 바로 그것이다. <<삼국유사>> 권3 ‘분황사(芬皇寺) 천수대비(千手大悲) 맹아득안(盲兒得眼)’에 실려 전해지는 노래다.

둘. 지혜와 광명을 희구하는 모정

신라 경덕왕 대(재위 742~765)에 한기리에 사는 여인 희명(希明)의 아들이 생후 다섯 살 되었을 때 갑자기 눈이 멀게 되었다. 하루는 어미가 아들을 안고 분황사 좌전(左殿) 북쪽 벽에 걸려 있는 천수대비의 화상 앞에 가서 아들에게 명하여 노래를 지어 빌었더니 다시 시력이 되돌아 왔다는 것이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무릎을 꿇으며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빌고 사뢰는 말씀을 두노라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에서
  하나를 놓고 하나를 덜어
  두 눈 감은 나라
  ‘하나를 주소서!’ 하고 매달리나이다.
  아아, 나를 알아주실진대
  어디에 쓰실 자비인고

기록에는 ‘아들에게 명하여 노래를 지어 기도하게 했다’고 했으나, 다섯 살 된 아이가 이 노래를 지었을 리는 없다. 실제로는 희명 자신이 지은 노래를 그로 하여금 따라 부르게 했을 것이다.
서사 부분인 1~4행은 자비로운 천수관음을 향한 기구(祈求)의 언사이고, 5~8행은 본사로서 그 기구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결사인 9~10행은 마무리 부분으로서 눈 먼 아들의 눈을 뜨도록 만든 천수관음의 자비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천수관음 즉 관세음보살은 ‘관세음자재보살(觀世音自在菩薩)’이라고도 하여 중생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그들의 소망과 아픔을 보살펴 준다는 믿음을 받고 있는 존재다. 그만큼 중생들과 가장 친근하여 염불에는 반드시 부처와 함께 칭명되기도 한다.
천수관음은 성관음(聖觀音),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준제관음(準提觀音), 불공견색관음(不空絹索觀音), 마두관음(馬頭觀音),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등과 함께 대표적인 7가지 관음이며, 1천개의 팔에 달린 각각의 손바닥에 눈을 가졌다고 여겨져 온다.
여기서 ‘천’을 단순한 숫자 개념으로만 볼 수는 없다. 우주만방 즉 넓고 커서 한계가 없는 공간을 나타내며, 관음보살의 보살핌이 끝없이 펼쳐나감을 암시한다. 말하자면 도처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일을 관음보살이 수행한다는 것이다.
가진 것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중생 희명이 이런 관음보살에게 자비를 베풀어줄 것을 기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돈이나 권력을 희구한 것은 아니다. 두 눈을 잃은 자신의 아들에게 눈을 하나만 달라는 소청이었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정이 찾아 헤맨 끝에 만난 존재가 관음보살이었다. 더구나 관음보살은 눈을 천 개나 갖고 있지 않은가.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노래인가. ‘당신이 천 개의 눈을 가졌으니, 그 가운데 하나만 덜어서 우리 아이에게 주면, 우리 아이는 광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진술이야말로 무엇보다 진솔하고 담백하다. 그리고 순진무구한 아이로 하여금 그 노래를 부르게 했다. 아이의 순진성과 노래의 소박함이 만나 이루는 진실함은 결국 관음보살을 움직일 수 있었다.
천수다라니계청(千手陀羅尼啓請)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1.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광대원만(廣大圓滿) 무애대비심(無碍大悲心)     대다라니(大陀羅尼) 계청(啓請)
2. 천비장엄보호지(千臂莊嚴普護持)
3. 천안광명변관조(天眼光明遍觀照)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자재보살님과 같이 중생 보살핌이 넓고 크고 원만하여 막히는 데가 없이 자비심을 크게 하는 대다라니 열기를 청한다는 것이 1이다. 2는 관세음보살님이 천 개의 팔로 자비로운 원력을 널리 보급·보호·수지하게 하듯, 천 개의 팔로 중생들의 가정과 사회를 장엄하게 해달라는 뜻이며, 3은 관세음보살의 천 개 눈으로 세상을 두루 비추어 보듯이, 어두운 중생들도 마음을 항상 두루 비추어 보게 해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눈은 무엇일까. 외계의 빛을 내면으로 투과시키는, 마음의 창(窓)이다. 동시에 생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눈을 감는다’고 표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눈을 되찾는 것은 광명을 찾음과 동시에 잃어버렸던 사회적 권력이나 사랑을 되찾는 것이기도 하다.
고전소설 <심청전>을 보자. 심봉사의 딸 심청이는 지극한 효성으로 아버지의 감은 눈을 뜨게 한다. 자신의 몸을 팔아 공양미 삼백 석을 구했고, 자신의 몸을 희생시킴으로써 아버지에게 새로운 삶을 되찾아 드렸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비는 기도에서 심청이는 눈을 ‘일월(日月)’이라 했다. 말하자면 광명이라는 것이다. 효성으로 아버지에게 광명을 드린 <심청전>은 지극한 사랑으로 자식의 눈을 뜨게 한 <도천수관음가>의 경우와 대조되지만, 그 정신이나 눈이 갖는 의미는 정확히 일치한다.
시력을 잃은 아들. 그를 바라보는 모정의 안타까움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은 아들이 비록 눈이 없다 해도 그를 먹여 살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늙어 죽고 나면 그 아들은 험한 세상을 살아갈 방도가 없을 터. 그래서 모정은 크게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불완전한 사람이 홀로 살아가긴 어렵다. 그 가운데 눈은 가장 중요하다.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길이 바로 지혜요 광명이다. 어머니인 희명의 이름이 심상치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희명(希明)’이란 광명을 희구한다는 뜻이다. 이때의 광명은 진리를 비추어 주는 지혜의 빛이다.
지혜란 깨달음으로 통하는 길이다. 그러니 ‘희명’은 자연인이기보다 모든 불도들의 소망이 집약되어 만들어진 관념적 존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치상으로는 그렇다 해도, 희명이란 존재를 부조(浮彫)할 때 당대인들의 마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던 어머니의 이미지가 결정적으로 그 표본 역할을 했을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을 바탕으로 ‘천수관음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 바로 이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사랑에 감동한 천수관음은 그 아들에게 시력을 주었고, 그 덕에 그는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이에 관한 일연의 찬(讚)은 다음과 같다.

竹馬葱笙戱陌塵     대말과 파피리로, 티끌 거리 노니더니.
一朝雙碧失瞳人     하루아침 파란 두 눈, 동자를 잃었도다.
不因大士迴慈眼     대사의 자비 입어, 눈을 찾지 못했다면.
虛度楊花幾社春     버들 꽃 피는 봄을, 헛되이 보냈으리.
                                           (이가원 역)

희명의 아들을 여염의 평범한 ‘장난꾸러기 아이’로 본 것이 일연의 관점이다. 일연은 죽마를 타고 파피리 불며 제 또래 아이들과 장난치다가 눈을 다친 꼬마와 눈높이를 함께 하고자 한 것이다.
대사 즉 관음보살의 자비가 아니었더라면 ‘버들 꽃 피는 봄’을 헛되이 보냈을 것이라고, 자신의 아찔한 심정을 토로했다. ‘버들 꽃 피는 봄’이란 인생의 아름다운 청춘기 혹은 황금기다. 죽음을 준비하는 노년기 보다는 인생의 행복을 구가하는 청춘기에 눈은 더 긴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생의 세속적 행복에 집착하는 공간이야말로 범인(凡人)들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일연은 그런 범인들의 시각으로 희명과 그 아들에게 일어난 이적(異蹟)을 보고자 했다. ‘광명혜안(光明慧眼)을 구비(具備)코자 하는 불도(佛徒)들의 심적(心的) 자세(姿勢)를 집약표현(集約表現)한 어사(語辭)’라는 일부 선학들의 주장도 일견 타당하겠지만, 세속에서 만나는 지극한 모정이 이루어낸 기적으로 보는 편이 훨씬 인간적이다. 이런 점에서 <도천수관음가>는 지극한 모정의 노래일 수 있는 것이다.        

셋. 시인의 눈으로 본 <도천수관음가>


도천수관음가

                  박윤기
우리가 한 송이 꽃이었을 때
우리를 스쳐가는 모든 것은
바람이었네.

아직 꽃피우지 못한 마을의 아이들은 눈이 먼 채
不感의 하늘 속으로
잃어버린 點字를 찾고 있었지.

덫에 치인 꿈은
가위 눌린 채로 시위잠을 자고
젖줄 끊긴 살 속으로
뜨거운 嗚咽의 소리는 파고 들었네.

어느 빈 뜨락에도
아침을 몰고오는
소망의 작은 새떼는 날아오지 않고
우리들의 良識은
쉬임없이 강물에 자맥질하는
悔恨이었네.

층층이 내려서는
의식의 깊은 壁에
채찍의 겨울은 또 다른 장막을 둘러치고
바람은 무거운 囹圄마다
어둠이 부딪쳐 흩어지는 窓을
흔들며 있네.

은성했던 꿈의 부스러기가
부서져 내리는 길은 길마다
낮게 낮게 埋沒되고
우울의 계단을 빠져 나올 때
다시 어둠으로 차는 굴레.
모든 思念은 기실
풀었다가 다시 짜는 페넬로페의 織造였네.

돌아다 보면
그곳엔 오랜 묵시의 江이 흐르고
하늘을 더듬는 아이들의 작은 손이
기폭처럼 바람에 찢겨 나가고 있었지.

三界에 가득히
천사들의 흰 은총은 내려앉고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청댓잎 푸른 가지를 비집고
피어오르는 아침은.
海潮音에 실려오는
비취 빛 청아한 아침 노래는.
오랜 冬眠의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은 외출을 서두르고
회색의 겨울은
부활의 눈을 뜬다.

8연의 매우 긴 이 시에서 시인은 향가 <도천수관음가>를 구체화하고 내면화 시켰다. 향가 <도천수관음가> 및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산문은 ‘암흑→광명’, ‘무명(無明)→지혜’로 전환되는 의미구조를 지니고 있다. 박윤기의 <도천수관음가>도 그런 의미구조를 충실히 따랐다고 볼 수 있다.
1연은 전체의 서사(序詞)로서, ‘꽃’과 ‘바람’으로 환유되는 ‘나(우리)’와 ‘세계’ 즉 우주적 보편상을 노래했다. 2연부터 6연까지는 실명과 암흑, 미망(迷妄)과 불행이 나열된다. ‘덫에 치인 꿈’, ‘젖줄 끊긴 살’, ‘뜨거운 오열’, ‘날아오지 않는 소망의 작은 새떼’, ‘회한’, ‘의식의 깊은 벽’, ‘채찍의 겨울’, ‘무거운 영어(囹圄)’, ‘어둠이 부딪쳐 흩어지는 창’, ‘꿈의 부스러기’, ‘우울의 계단’ 등 어둡고 칙칙한 운명적 상황을 구체화 시키는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비로소 신의 힘이 ‘묵시’되는 부분이 바로 7연의 ‘묵시의 강’이다. 물론 아직도 ‘하늘을 더듬는 아이들의 작은 손이/기폭처럼 바람에 찢겨나가는’ 모습을 아프게 보여주는 곳이 그 부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7연은 단절이 깊어진 성(聖)과 속(俗)의 두 영역 사이에서 하나의 가능한 기적이 역사적 사건으로 구체화 되려는 단초를 마련해둔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8연에서 시적 의미는 행복으로 전환된다. ‘삼계에 가득히/천사들의 흰 은총은 내려 앉’게 되고. ‘비취빛 청아한 아침 노래’도 해조음에 실려 오게 되는 것이다.
‘오랜 동면의 잠에서 깨어난’ 일은 이미 암흑에서 광명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회색의 겨울’이 ‘부활의 눈’을 뜬 것은 희명의 아들이 시력을 회복하듯 죽음에서 생명을 얻은 것과 등치의 관계를 보여준다. 
시인 박윤기는 <도천수관음가>에서 ‘개안(開眼)’의 멋진 서사(敍事)를 길어 올려 서정의 틀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형상화 하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시 내용 가운데 향가 <도천수관음가>에서 필자가 읽어낸 ‘모정’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에서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모정 역시 시의 내면이나 바탕에 잠재할 수 있는 정서의 큰 갈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넷. 갈수록 그리워지는 모정

<도천수관음가>의 모정이 바깥으로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그 많은 천수관음의 손과 눈 밑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보살의 힘이나 부처의 힘으로 찬양되던 불교왕국 신라. ‘한기리의 희명 모자’는 그 시절의 ‘힘없는’ 중생을 대표하던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오고 가던 정, 특히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정은 무엇보다 강했다. 귀족계급도 아닌 시골 사람 희명이 모정이라는 단순 소박한 무기로 관음보살을 움직인 것이다. 그건 감동의 힘이었다.
그래서 “신라 사람들 가운데는 ‘향가’를 숭상하는 자가 많았고, 천지귀신을 감동시킬 만한 노래가 한 둘이 아니었다.”고 <<삼국유사>>의 편찬자는 말했을 것이다. 희명의 염원을 실은 <도천수관음가>가 천수관음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천수관음이 그녀의 소원을 들어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염원에 힘입어 눈을 뜬 어린 아들은 과연 그 자리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는 어른이 되어서야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모가 되어 보아야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 속에는 자연의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 진실이 내재되어 있다.
신달자의 <사모곡>과 가수 태진아의 <사모곡>을 통해 <도천수관음가>에 담긴 모정의 실체를 찾아보기로 하자.


사모곡

          신달자   
길에서 미열이 나면
하나님 하고 부르지만
자다가 신열이 끓으면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요

아직도 몸 아프면
날 찾냐고
쯧쯧쯧 혀를 차시나요
아이구 이꼴 저꼴
보기 싫다시며 또 눈물 닦으시나요

나 몸 아파요, 어머니
오늘은 따뜻한 명태국물
마시며 누워 있고 싶어요
자는 듯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부르튼 입으로 어머니 부르며
병뿌리가 빠지는 듯 혼자 앓으면
아이구 저 딱한 것
어머니 탄식 귀청을 뚫어요

아프다고 해라
아프다고 해라
어머니 말씀
가슴을 베어요


사모곡

                            태진아
앞산 노을 질 때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화전밭 일구시고 흙에 살던 어머니
땀에 찌든 삼베적삼 기워 입고 살으시다
소쩍새 울음 따라 하늘 가신 어머니
그 모습 그리워서 이 한 밤을 지샙니다

무명치마 졸라매고 새벽이슬 맞으시며
한평생 모진 가난 참아내신 어머니
자나 깨나 자식 위해 신령님 전 빌고 빌며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 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 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자나 깨나 자식 위해 신령님 전 빌고 빌며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 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 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두 노래 모두 어머니의 위대한 힘을 말하고 있다. 문제가 생길 경우 신에게 매달리듯 전자의 화자에게 어머니는 매달리는 존재다. ‘자다가 겪는 신열’은 ‘길에서 겪는 미열’보다 고통의 면에서 심각하다. 그럴 때 화자는 신이 아니라 어머니를 부른다고 했다.
‘엄마 손은 약손’임을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이, 아프고 괴로울 때 떠올리게 되는 존재가 어머니임을 화자는 말하고 있다. 자식의 아픔에 눈물을 닦고 탄식하는 존재가 어머니임을 안타깝게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아프다고 해라/아프다고 해라’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가슴을 벤다고 슬퍼한다. 자식의 아픔과 어려움을 자신이 떠안으려는 존재가 어머니임을 결련에서 밝힌 것이다.
전자의 경우 1→2→3→4연으로 갈수록 모정에 대한 느낌의 강도는 고조된다. ‘불러요→닦으시나요→뚫어요→베어요’ 등 각 연의 결미(結尾) 동사들은 정서적 고양의 극적인 단서들이다. 아픈 자식을 근심스레 바라보며 그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어머니, 그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뒤늦은 깨달음을 절절하게 노래한 경우다. 신달자의 <사모곡>에 그려진 모성애야말로 <도천수관음가>의 모성애 바로 그것이다.
태진아의 <사모곡>에는 ‘흙에 살던, 가난한’ 어머니가 등장한다. 모진 가난을 참아내며 땅 속에서 힘겹게 살다가 ‘소쩍새 울음 따라 하늘 가신’ 어머니다. 그토록 어렵게 살면서도 ‘자나 깨나 자식 위해 신령님 전 빌고 빌던’ 분이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 신령에게 기원하던 모정을 ‘눈물로’ 그리워하는 노래다. 따라서 태진아가 부른 <사모곡>의 모정 역시 <도천수관음가>의 모정 그 자체다. 
<도천수관음가>는 천수관음의 영험함을 드러내어 신라사회에 관음사상의 뿌리를 굳히려는 목적으로 만든 노래로만 볼 수는 없다. ‘한기리의 여자 희명’이나 ‘다섯 살에 눈 먼 그의 아들’이 실존했던 인물들일 수 있고, 분황사에 가서 갑작스런 눈병을 고친 사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실존인물들과 사실을 통해 부처나 관음의 영험함을 선양하려는 의도 역시 분명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시와 배경산문에서 모정을 읽어내려는 것은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모정은 샛별처럼 빛남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천수관음가> 이래 시대마다 모정은 위대한 힘을 발휘했고, 여성이 사회적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모정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삶과 생각을 휘어잡고 있다. <도천수관음가>의 모정은 천수대비를 감동시킴으로써 원하는 바를 얻었다. 그러나 지금의 모정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식이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주려고 한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결과일 뿐 <도천수관음가>의 모정으로부터 변화(혹은 변질)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도천수관음가>의 모정은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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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학술문2007. 5. 6. 15:19

       갈수록 새로워지는 역사의 의미
        -<<역사란 무엇인가>> 서평-
   
                                                                                                          조규익(숭실대 교수)

문고본으로 출간된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학부 3학년 때였다. 길현모 선생 번역의 ‘가볍지만 무거운’ 책이었다. 두세 번 곱씹어가며 읽으라던 선배의 권유로 열심히 밑줄 그으며 읽은 덕분이었을까. 어수룩한 후배들에게 역사나 역사철학, 아니 현실에 관한 ‘그럴 듯한’ 언설들을 제법 풀어놓을 수 있었다. 역사를 떠나 존립하기 어려운 우리의 문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탈근대의 담론을 지향하는 최근의 역사서들까지 두루 섭렵해왔으나, 이 책이 내 마음에 심어준 생각의 그루터기는 처음부터 요지부동이었다.  
최근 나는 당시 그 선배의 마음으로 돌아가 ‘한국문학사’를 수강하는 학부 3학년생들에게 이 책을 ‘반 강제로’ 읽혔다. 그런데 아이들의 눈이 ‘번쩍’ 빛나는 듯 했다. 지적 충격이었으리라. 카아의 생각을 수용하는 그들의 논리는 서툴지만 풋풋했다. 일부 역사가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의 말 가운데 ‘그른 부분’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예비 지식인들의 마음에 지적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책의 힘이 30년 세월에도 변함없다면, 이제 그 책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도 되리라. 더구나 우리의 과거가 ‘드라마’란 그릇에 담겨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우리 또한 그것을 ‘역사’로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 요즈음 아닌가. 어린 시절 열심히들 외워온 ‘태정태세문단세’. 그걸 두고 ‘역사를 배웠다’고 착각하는 우리들이다. 옳건 그르건 학창시절 역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어본 적도 없는 ‘역사의 해석’을 TV 드라마에서 비로소 접하는 현실이다. 그러니 혹시 우리는 역사에 대하여 잘못 알아 왔거나 그릇 배워온 것이나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해보지 못한, 학문적 불모지의 백성들임이 분명하다.
‘역사는 과학이며, 진보한다’는 대전제를 쉽게 풀어나가는 언술들의 집합이 바로 이 책이다. 우리는 과거의 사건들을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 중시한다. 다시 말하면 사건들의 맥락이나 갈피들마다 숨어있는 의미를 ‘해석’해 내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 사건들을 모두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래서 카아는 역사가의 태도야말로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역사적 사건들의 지위(地位) 또한 해석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눈과 관점으로 보는데서 성립하며 역사가의 임무는 기록이 아닌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는 크로체의 생각을 논리적 바탕으로 삼은 것도 사건들의 해석을 역사기술의 대전제로 삼고자 한 그의 철학 때문이었다. 이런 근거 위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멋진 명제를 도출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일들이 ‘역사적 사실들’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가의 해석과 평가가 필요하며, 그 상호작용인 ‘대화’야말로 역사 기술의 대상들을 무한한 가능태로 격상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비전이 현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통찰에 의해 빛을 받을 때에만 쓰이는 것이 ‘위대한 역사’라는 관점도 이런 전제를 통해 얻어낸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한 시대를 만든 위인(偉人)은 어떤 존재인가. 한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다음 시대에 그것을 전해주며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상, 즉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존재를 카아는 위인이라 했다. 이처럼 카아는 역사의 과정에서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창조적 개인을 중시했다. 그가 시대를 만들고 이끌어간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대의 보통사람들은 그런 위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위인은 자기 시대보다 너무 앞서 가기 때문에 뒷시대에 가서야 겨우 인정받게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가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바로 그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다. 다시 말하여 그것은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부단한 대화’라는 그의 핵심명제를 부연한 내용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역사가란 단순한 분석가, 해석가에 그쳐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과거 사실들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란 언제나 도덕적 판단이나 가치판단을 내포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추상적인 도덕개념 속에 특수한 역사적 내용이 담겨져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자 산물이란 것이다. 이런 역사나 역사철학 혹은 역사 서술에 관한 본질적 견해를 바탕으로 카아는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찾는 역사가의 방법적 모색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도해왔다. 인과(因果)의 문제, 진보의 문제, 이성의 확대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미래를 모색하는 문제 등이 인류에 대한 역사 혹은 역사가의 임무라고 본 것이다. 비록 현재를 잣대로 삼긴 하지만, 단순히 과거 사실들의 해석이나 평가에만 머물 수는 없고, 미래에 대한 지평을 확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역사가의 책무라는 것이 행간에 숨어있는 그의 생각이다.
우리는 역사적 사건들을 허구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거나 해석하여 보여줌으로써 대중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가의 통찰이나 시선이 결여되기 마련인 이른바 ‘팩션(faction)’이란 새로운 장르가 범람함에 따라, 일반인들은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주몽이나 대조영은 분명 과거 한 때 이 땅에서 활약한 위인들이다. 그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무대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지만, 그 사건들이 과연 역사가의 책임 있는 비전으로 해석 또는 재현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바로 지금 동북공정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역사왜곡으로 심기가 불편한 우리가 재확인해야 할 역사철학의 금과옥조를 카아의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자소개

E. H. 카아

1892년 영국 런던 출생의 역사학자이자 국제정치학자. 케임브리지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졸업 후 1916년∼1936년까지 20여 년 간 외무성 관리로 공직생활에 몸을 담았다. 특히 1919년에는 베르사이유 강화회의에 영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1936∼1947년까지 웨일즈대학(University of Wales)의 국제정치학 교수로 있으면서 '타임(The Times)'지 논설위원을 겸했고,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 기초위원장, 옥스퍼드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 1955년 이후 모교인 트리니티 칼리지로 돌아가 1982년 타계할 때까지 고급연구원으로 지내면서 소비에트 러시아사 연구에 몰두했다. 그가 외교관이나 언론인으로 활약하면서 쌓은 현장경험은 역사와 정치에 관한 그의 시각(視角)을 형성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는 이상과 현실 혹은 이론과 실제의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도적 균형을 잡고자 노력했으며, 이런 성향은 그의 학문적 업적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과거와 미래의 대화, 사실과 해석의 상호작용 등 그의 역사인식 역시 그러한 현장경험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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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학술문2007. 4. 29. 17:55
 

 
시집 『디지털 사계』를 받아 들고


김인섭 교수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오늘 저는 정년은퇴를 기념하여 시집을 간행하시는 이재관교수님의 퇴임예배에 귀중한 순서를 맞아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까마득한 사람이 이 엄숙하고 뜻 깊은 자리에 서기까지 망설임이 없지 않았습니다만, 맑고 깨끗한 마음을 정갈한 언어로 담아 시집으로 발간하시는 교수님을 뵈면서 축하드리는 일에 사양만 하는 것은 시 전공자로서 도리가 아니다 싶은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시집이 발간되자마자 건네주신 시집을 받아 읽고 저는 기존 시에서는 흔히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감동을 받았고, 교수님의 시적 경지에 크게 놀랐습니다. 이런 감동과 경탄의 마음을 여러분 앞에서 말씀 드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남다르게 얻게 되어 오히려 감사드리고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집 뒤에 수록되어 있는 교수님의 경력과 논저목록만으로도 학자로서 학문적 업적과 성과가 가히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만 죄송스럽게도 이 분야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시피 합니다. 그렇지만, 교수님의 시집 속의 작품 하나하나를 통해, 한 시인이 오랜 시간을 두고 만들어온 마음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의 치열한 시가 도달하고자 했던 정신의 세계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환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시집을 내는 일이 한 사람의 일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특히 한 평생 학문에 매진한 분에게 있어서 얼마나 아름다운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시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는 예술의 한 장르로서 문학입니다. 문학에는 시 외에도 소설과 희곡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장르가 어떻게 다른지를 말할 때 흔히 희곡은 ‘놀이’, 소설은 ‘이야기’라고 한다면, 시는 ‘노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하루 일과를 도식적으로 나누어 보면, 낮에는 세상 속에서 실제의 삶을 살아갑니다. 무대 위에서 놀이를 하는 희곡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낮 동안의 행동으로는 다하지 못했던 삶들을 찻집이나 술집에서 이야기로 풀어내기도 합니다. 이야기로도 못다 푼 마음 속 깊은 감정은 나중에 노래방에 가서라도 풀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 시는 이야기 끝에 풀어내는 노래와도 같은 것입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쌓이고 쌓였던, 일상생활에서는 좀처럼 내비치지 않는 깊은 생각, 그윽한 감정을 은밀하게 표현하는 문학입니다.


또한, 시는 언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예술입니다. 언어를 가장 정교하게 갈고 다듬는 과정이 요구되는 예술입니다. 언어는 우리의 정신적 삶에서 공기와 같은 것이지만, 우리의 언어는 이미 탁해질 대로 탁해졌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언어를 다듬는 일은 단순한 기예가 아니라 우리의 타고난 좋은 마음을 갈고 닦는 일이기도 합니다. 번잡한 세계에서 조용히 물러나 이 세계를 고독하게 깊이 음미하는 자들의 과업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시집을 받아 든다는 것은 이같은 고귀한 작업이 빚어낸 작품들을 접하는 그야말로 정밀한 즐거움을 누리는 일입니다. 시집을 받아든 우리는 교수님을 직장의 동료나 선배, 일상인으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시인의 영혼과 교감하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저는 이 시집을 읽다가 이 분이 한 평생 시를 쓰셨더라면 우리 문단에 분명히 한 자리를 차지하셨을 거라는 생각을 금방 하게 되었습니다. 시 세계가 남다르고, 시적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집에 들어 있는 시 몇 편을 잠시 들여다 보겠습니다. 먼저, 시집 50쪽에 실려 있는 <새>라는 시를 보겠습니다. 이 시는 전체 다섯 연으로 되어 있는데, 특히 마지막 연은 놀라운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새’는 그 자유로운 비상 때문에 시인들이 즐겨 표현하는 시적 소재입니다. 그래서 예사 표현으로는 진부할 수도 있는 위험한 시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새’를


        영혼의 날개로

        우주와 입 맞추는

        아름다운 시집(詩集)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김현승 시인은 자신의 고독을 표상하는 이미지로써 ‘까마귀’라는 새를 즐겨 상징화한 적이 있습니다. 김현승 시인도 이 까마귀를 두고서 ‘영혼의 새’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 시의 새는 영혼의 날개로 우주와 입 맞춘다고 하여 김현승시의 비유보다 매우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새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시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시적인 관습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작고하신 오규원 시인이 <한 잎의 여자>라는 시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서 ‘시집같은 여자’라고 비유한 적이 있는데, 제가 알고 있기로는 ‘시집’이라는 말을 시의 비유로 표현했던 유일한 경우가 아니었나 합니다. 비유의 구체성이나 파격성에서 기성 시인에게서도 흔히 느낄 수 없는 참신한 표현을 보여주었고, 그 때문에 시적인 긴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함축적이고도 탁월한 표현에서 교수님의 시인으로서의 태도와, 시에서 추구하고 있는 시정신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현승의 경우처럼 이 시인에게 있어서도 ‘새’는 영혼으로 표상되면서 시인에게 있어서는 시적인 분신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영혼’이며, 그 영혼은 지상의 온갖 굴레와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우주의 신적인 세계와 교감하고자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혼입니다. 그런데, 더욱 아름다운 대목은, 이러한 새는 다름 아닌 ‘시집’ 자체라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교수님께서 쓰신 모든 시들은 영혼의 새가 비상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지상의 척박한 삶을 벗어나 신성한 우주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고뇌와 희열이 담긴 언어의 파노라마와 같은 것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는 동안 찬송가 394장 <주를 앙모하는 자>라는 찬송의 리듬을 마음 속으로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 독수리 같이 모든 싸움 이기고 근심 걱정 벗은 후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 주 앙모 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라는 노래 말입니다. 이 시를 통해 저는 영혼이 강건한 인간의 힘찬 상상력을 접하였고 속된 세계를 일거에 승화시키는 신성한 전율에 휩싸이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만약 김현승 시인의 시표현처럼, 하나님께서 더욱 값진 것으로 바치라 하실 때, 이 시인이 신에게 드릴, 가장 나중까지 지니고 있을,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을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아름다운 시집이 아니겠습니까?


조규익 교수님께서 시집 말미에 교수님의 시세계에 대해 치밀하고도 체계적인 해설을 덧붙여주셨습니다. 적절한 안내를 해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교수님의 시정신의 근저에는 언제나 절대자에 대한 구도자적인 겸허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시집 84쪽에 있는 <엄동설한>이라는 시를 그 예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첫 연만 읽어보면


       닫힌 그대의 창은

       빙벽처럼 날마다 두꺼워지고

       위엄 있게 빛나,

       다가서는 내 모습만

       말없이 반사하는 거울입니다.


시인이라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는 겸허한 자들입니다. 이 시에서도 그러한 시인의 본령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여기서 ‘그대’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창’은 빙벽처럼 날마다 두꺼워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인에게 단절감을 주는 부정적인 게 아니라, 위엄 있게 빛나는 존재입니다. 나아가 그 존재는 시인을 되비추어 스스로 성찰하게 만듭니다. 우리 인간들은 이 시의 3연에서 보는 것처럼 스스로 잠재울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그대의 세계로 성급하게 나아가고자 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우리는 그분 앞에서 눈도 뜨지 못하는 미미한 존재라는 겸허한 성찰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부분의 두 연에서는 “낮엔 반사되는 햇빛에 / 눈을 뜨지 못하고 / 밤이면 / 가랑잎 구르는 소리조차 / 과분한 낭만”이라거나,  “거울마다 갉아 지워지는 / 내 반쪽 모습이 / 엄동의 고요를 / 초침처럼 구릅니다.”라는 표현을 접하게 됩니다. 위엄 있게 빛나는 절대자와 지상의 어둠 속에 쇠락해 가며 뒹구는 인간존재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엄정한 질서를 시인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깊은 신앙은 이같은 겸허한 자세에 굳은 뿌리를 내리는 게 아닌가 합니다.


예로 든 이 작품 외에도 이 시집에는 신앙적인 시심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적지 않게 실려 있습니다. 신앙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상력의 근저에 신앙심이 작용하고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시집의 미덕은, 종교적인 신앙과 문학 예술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팽팽한 긴장을 보여주고 있어서 독자들이 신성성과 심미성이 잘 어우어진 품격 높은 정신의 세계를 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시에서도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수님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연어의 회귀>를 들고 싶습니다. 시집 46쪽에 실려 있는 작품 전문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담수에 비해 바다는                      그러나 떠남이 운명이었다면

 짜고 험하고 거칠었지만                 회귀(回歸)는 더 끈질긴 본능.

 내게 광활한 자유와 풍요와

 환상을 주었다.                            잉태와 부활을 위한

                                                변치 않는 DNA 안테나가

 어려서 떠날 때에는                       내게도 있었다.

 스틸헤드 치어처럼

 머뭇거렸으나                              돌아갈 고향은

 금방 대양에 익숙해지고                 좁고 가파르고 위험한 시내

                                                아무 교통표지판도 없는 계곡.

 생의 희로애락을

 바닷물에 듬뿍 적셔                       그래도 회귀는

 돌아올 날이 있는 줄은                   바다보다 더 자유롭고

 까맣게 몰랐다.                            더 크게 거칠게 다가오는

                                                전율의 은총이었다.


저는 이 작품을 이 시집 전체의 에필로그로 읽고 싶습니다. 에필로그의 시라면, 시집 전체는 이 한 편의 시를 위해 쓰여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시가 너무 좋아 오랫동안 감상해보고 싶습니다만, 사정상 그렇게 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정말 좋은 시는 설명 필요 없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입니다. 이 시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읽은 소감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3연과 5연, 그리고 7연에서 시 속으로 한 동안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3연에서 ‘까맣게 몰랐다.’는 이 평범한 말 한 마디가 저에게는 깊이 울려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혹은 인간 사이에서 정말 ‘까맣게’ 모를 일은 흔치 않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는’ 경우는 빈번하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까맣게 몰랐다’고 합니다. 시인은 이제야 어떤 근본적인 각성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성을 얻게 된 계기는 누가 마련해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의 문맥에 비추어 보면 ‘은총’을 베푸시는 분의 지극한 사랑의 섭리 아니겠는가 합니다.


5연에서 말하는 “변치 않는 DNA 안테나”는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테나는 누군가와 수신하고 송신하는 장치입니다. 그렇다면 DNA 안테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그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의 입김으로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맺은 신과 인간의 생명적인 관계를 계속 교신해가는 안테나이며, 그것은 영적인 안테나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또한 지상으로 잉태해 내려와 부활 승천한 예수의 위대한 삶을 이끌었던, 그의 아버지와 연결된 안테나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그 안테나가 나에게도 있었음을 비로소 확인하고 감사하며 은총을 예감합니다.


마지막 연에서 회귀는 안테나의 저쪽에 계신 분에게서 비롯된 은총이며, 그 은총은 바다보다 더 자유롭고 더 크게 거칠게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초월적인 전율에 휩싸입니다. 이와 비슷한 경지를 박목월 시인은 그의 말년의 신앙시 <크고 부드러운 손>이라는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크고 부드러운 손이 / 내게로 뻗쳐 온다. / 다섯 손가락을 / 활짝 펴고 / 그득한 바다가 / 내게로 밀려온다. / 인간의 종말이 / 이처럼 충만한 것임을 / 나는 미처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돌아가는 삶에 대한 각성과 그 벅찬 은총을 실감하는 두 시인의 상상은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경험은 이렇게 보편적인 감동과 고백을 불러일으키나 봅니다. 저는 이 시를 앞으로 저의 ‘기독교문학’ 수업시간에 좋은 작품의 사례로써 학생들에게 소개할 생각입니다. 시심과 신앙심이 어우러져 이처럼 성스럽고도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작품은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시집 <디지털 사계>을 읽고, 엄정한 신앙인이자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탁월한 시인 한 분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시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이렇게 귀한 시인이 같은 교정에 계신 줄은 저야말로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정년 퇴임을 맞이하여서야 비로소 물밀듯이 밀려오는 한 시인의 시적인 전율을 느낍니다. 일생을 몸 바친 학교를 떠나시면서 예술의 향기와 빛깔로 옷 입힌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아 있는 저희 식구들의 마음마다에 아로 새겨주셨습니다. 소중하게 남겨주신 선물 감사드리며 받겠습니다.


학자로서 듬뿍 적신 노고는 이제 풀어놓으시고, 시의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자유로운 노래를 맘껏 부르셨으면 합니다. 육신의 몸은 시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시들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럴수록 시를 쓰시는 신성한 창조적 에너지는 더욱 새롭게 솟아날 것입니다. 우주와 입 맞추는 아름다운 시들을 앞으로도 더 많이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교수님의 앞날과 또 그와 함께 잉태될 시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2월 23일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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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학술문2007. 4. 17. 08:21


사계의 순환과 디지털 유토피아, 그리고 달관의 미학
        -두메솔 시인의 시세계-



                                                                                                                           조규익


하나. 계절의 순환, 그리고 디지털 이미지

계절은 순환의 엄숙한 고리를 반복하지만, 그 순환이 모든 인간에게 똑 같은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계절적 순환의 물리적 횟수도 다 다르지만, 그 질적인 차이 또한 간단치 않다. 아름다운 계절을 만끽하는 사람도 있으나, 씁쓸하게 일생을 마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경험한 계절들이 아름다웠건 씁쓸했건, 계절이 바뀌는 어름에 이르면 누구나 아쉬움과 회한을 피할 수 없다. 계절로 인식되는 시간의 흐름이 인간 자신의 변화와 구조적으로 부합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삶이나 공동체의 변화 과정에 계절과 맞먹는 순환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우리가 경험으로 아는 사실이다.
컴퓨터를 통해 음악과 시, 그리고 이미지를 배웠다는 경영학자 두메솔 시인. 그는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무능함을 줄여주고 예술·문화·정서의 영역을 보충하며 인간들 사이의 참다운 대화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믿는다. 디지털의 단점을 부각시키는 사람들을 꾸짖으며 무한대의 ‘따스한 디지털 공동체’를 꿈꾸기도 한다. 그런 만큼 육안(肉眼)과 심안(心眼)만으로 잡아낼 수 없는 세상사의 예각들을 디지털의 보안경(保眼鏡)으로 잡아내려는 야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확하면서도 빠짐없이, 사람들이 이리저리 흘리고 다니는 세상살이의 파편들을 주워 올려 그 속에서 무한대의 우주를 찾아내려는 그의 의도는 얼마나 놀라운가!
<디지털 2>에서 시인은 디지털 혁명을 노래한다. 차가운 금속성의 디지털이 아니라, “개인주의의 그늘을 없애고/영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공동체 영혼과 시인의 영역/꿈의 세계에까지 나아가는” 디지털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아날로그 시절의 어두움→디지털 시대의 밝음→디지털 혁명의 이상세계’로 그 시의 의미는 상승된다. ‘전달의 느림, 대화 없음’이 아날로그 시절의 어두움을 형성했으나, 디지털의 '신속·무한한 리치reach와 풍부한 리치rich'가 그 어두움을 밝힌다고 했다. ‘함께 만들고 쌓아가는’ 공동체가 바로 디지털의 혁명이 이룩한 미래라는 것이다. 디지털 세계에 대한 믿음을 시적으로 형상화 시켜가는 시인의 통찰이 빛난다.  
쉬지 않고 순환하는 계절 속에서 인생은 늙어가고 세상 또한 변해간다.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이별 등 모든 곡절과 사연들도 그 순환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순환의 체계 속에서 늘 가변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둘. 봄/생명의 역설과 소망의 힘

봄은 소생과 희망의 계절이다. 겨울의 잔인한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만물은 자유와 흥취를 구가한다. 그래서 봄은 생명력·자유·평화를 상징한다. 산들산들 봄바람이 불면 춘흥에 겨운 만물은 어쩔 줄 모르고 날뛴다. <봄봄>·<동백꽃> 등 김유정의 소설들에는 봄을 맞아 몸살 앓는 청춘의 아름다움이 그려져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는 자연에 내재하는 순환적 질서의 어김없음과 절망 속의 희망을 노래했고,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이장희는 봄의 향기로움과 고양이털의 부드러움을 비교했다. 이처럼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봄을 예찬하고, 봄에 기대어 청춘을 노래했다. 봄과 관련되는 전통 미의식에 디지털의 의상을 입혀 내세운 것이 21세기 초입을 살고 있는 두메솔 시인이다. 표면적으론 단정하고 일견 냉정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봄노래들. 그러나 그 이면에 끈끈한 정이 흐르는 것은 이미지화된 디지털 세계의 조화다.

사 랑 해 요
해피 버스 데이
안 ㄴ ㅕ ㅇ…

예쁜 글자들이
때마다 나를 위해
반딧불처럼 떼 지어 날아와
창에 잠시 머물고
나는 늘 바빴다.

글자들은 창을 떠나
낡은 책과 노트가 쌓인
음산한 지하창고로 간다.
창 위를 날던 모습
작은 몸들을 떨며
웅크리고 있다.

나는 무엇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었던가.

얼어버린 창문
조작된 상상과 추억을
씩씩한 행진곡으로 바꾸고
글자들이 좋아할 만큼
예쁘게 단장했어야 할 것을.

반갑게 봄비처럼 돌아와
작은 물방울 튕기며
내 창을 적셔줄
0과 1의 비트 수백만 개가
날 위해 태어나 곁에 있었음을
정녕 몰랐다.
       <봄비 오는 창(窓)>

봄비 내리는 날 시인은 창 앞에 앉아 컴퓨터의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으리라. 예리한 시인의 촉수가 모니터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수많은 글자들과 창문에 ‘다다닥’ 붙었다 사라지는 빗방울 사이의 어낼러지를 놓칠 리 없다. 수많은 말들이 ‘때마다 나를 위해’ ‘반딧불처럼 떼 지어 날아와’ ‘창에 잠시 머문다’고 했다. 그래서 시인 자신은 ‘늘 바쁘다’는 것이다. 모니터에 명멸하는 장면들이야 얼마나 정확하면서도 쉬운 말들의 향연인가.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 끌어온 것이 ‘반딧불의 떼’였다. 반딧불이 덧없는 생명체이긴 하나 까만 밤을 수놓는 그 아름다움만큼은 다른 무엇에 비할 수 없으리라. 어둠을 촘촘히 수놓는 반딧불이 시인에겐 일종의 희망이다.
모니터에 올라왔다간 ‘덧없이’ 사라지는 글자들과 함께 해온 ‘다망했던 세상살이’가 바로 자신의 과거였음을 시인은 깨닫게 된다. 그것이 둘째 연의 내용적 핵심이다. 모니터를 떠난 글자들이 틀어박힌 ‘음산한 지하창고’는 시인이 경원해 마지않는 아날로그의 세계, 투박한 물질의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는 책들 아닌가. 어쩌면 시인이 일생 쓰고 만들어온 책들이야말로 생동감 넘치는 글자들을 가둬두기 위한 음산한 감옥 이상의 공간은 아니었음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리라. 부지런히 글자들로 채운 노트와 책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지내왔을 시인의 과거가 얼마나 부질없는 시간대였는가를 스스로 알아버린 것이리라.
‘따스한 디지털’의 세계를 떠난 글자들이 투박하고 ‘음산한’ 아날로그의 세계로 들어와 떨고 있음을 시인은 크게 외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무엇을 찾아/산과 들을 헤매었던가.” 산처럼 쌓인 책들, 생동감 넘치는 글자들을 떨게 만드는 그 공간을 보며 시인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봄비 방울져 내리는 창의 소묘(素描)를 마감하는 5연과 6연의 ‘후회’는 과거 삶에 대한 반성적 인식의 소산이다. 버려야 할 것은 ‘얼어버린 창문’, ‘조작된 상상과 추억’이고, 찾아야 할 것은 ‘씩씩한 행진곡’이었다. ‘마음의 창을 적셔줄’ 수백만 비트로 이루어지는 ‘따스한’ 디지털의 세계가 시인의 곁에 있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다.
시인이 따스하고 생동감 넘치는 봄의 이미지로 디지털의 세계를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것은 철저한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을 전제로 한다. 그 예가 바로 <나의 봄>이다.


봄의 여신,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좋은 말은 다 있는데
나의 봄은 어디 있는가.

<중   략>

나의 봄아
향긋한 입김일랑
꿈도 꾸지 않겠네
내게는 기별 없이 와도 좋으니
밤이슬처럼
남 남 처럼
내 곁을 지나쳐도 좋으니

편한 마음으로
어서 어서
이 땅에도 오시게.

이 작품에 표면화 되는 것은 시인의 절규다. ‘나의 봄’은 이미 가버린 청춘이다. 사정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뜯겨지는’ 캘린더는 허상일 뿐이다. 세상 모든 곳에 봄은 다시 오지만, 한 번 가버린 청춘은 돌아올 기미조차 없다. 계절은 순환하건만 인생의 봄은 1회적이라는 깨달음. 그로부터 생겨나는 절망감의 표출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절망이나 이면적으로는 달관한 자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짐짓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는 시인의 몸짓은 흘러간 청춘에 대한 아쉬움이나 예찬일 뿐, 절망은 아니다. ‘늙어가는’ 인생과 순환하는 계절의 논리를 대비시켜 ‘가난한’ 소망(素望)을 성공적으로 부조해낸 것, 시인의 탁월함이 드러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청춘에 대한 시인의 소망 혹은 예찬은 <MT(멤버십 트레이닝)>에서 더욱 아름답게 분출된다.

영원한 소년이 되고 싶은
피터 팬 신드롬과
영원한 고수가 되고 싶은
사울 왕 신드롬이
뒤섞이는 밤을 밝혀
즐기고 호령한다.

겨울도 봄도 아닌 2월
엠티에서는
노인도 소년도 아닌
영원한 청년이어라.

꾸라쥬(Courage)!!

2월은 환절기다. 다독다독 겨울을 보내고, 슬금슬금 눈치 보며 봄을 맞는 어정쩡한 시기다. 대학가 엠티들의 상당 부분은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교수의 신분으로 그 자리에 참여했을 시인. 시인은 절묘하게 구성원들과 계절 사이의 상동성(相同性)을 읽어낸다. 피터팬 신드롬과 사울왕 신드롬을 동시에 지닌 시인은 모순적 존재이지만, 그게 바로 생명의 역설이기도 하다. 소년티를 벗지 못한 학생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과 영원한 고수가 되고픈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계인적 존재’가 엠티 자리의 교수 아닌가. 2월이 겨울인 1월도 아니고 봄인 3월도 아니듯이 노교수는 소년도 노인도 아닌 영원한 청년으로 남고자 한다는 소망을 쏟아놓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영원한 청년’을 환절기의 존재로 묘사할 수 있는 것도 시인 스스로 자신을 객관화·대상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순과 역설을 통해 자신을 관조할 수 있게 된 시인의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의 결과가 아닐까.

셋. 여름/열정과 자기응시, 달관으로 승화되는 깨달음의 심연

여름의 뜨거운 햇볕은 만물을 키워내는 열정이다. 담금질의 시련을 통해 쇠는 강철로 바뀐다. 만물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뜨거움. 시련을 통해 성숙해가는 섭리의 시간대가 바로 여름이다. 봄이 그랬듯이 여름도 시인에게 또 다른 차원의 깨달음을 준다. 겨울의 속박에서 벗어난 반발과 반역의 파토스가 봄의 열정이라면, 순응과 수용의 파토스는 여름의 열정이다. 견딜 수 없는 시련을 수용하고 순응하는 일은 그에 내재된 의미를 읽어내고 이해하는 자만이 가능하다. 내재된 의미의 이해가 바로 깨달음이다. 그래서 시인이 살고 있는 ‘디지털 사계’는 ‘깨닫는 순간들의 집합’인 셈이다.
자연의 변화, 생활주변의 일들 모두는 여름의 의미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시인은 작품 <연(蓮)>에서 여름에 피는 연꽃을 통해 달관의 심상을 보여주었다.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밤에 피든 낮에 피든/아무러면 어떠하랴/사는 곳, 흙탕물,/아무러면 어떠하랴”고 했다. 꽃은 열림과 포용, 용서의 세계를 표상한다. 더러운 진흙에 뿌리를 박고 있으되 아름답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는 연꽃, 제 열매의 숭숭 뚫린 상처들을 대범하게 보여주는 연꽃에 시인은 감동을 받는다. 주렴계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의 21세기 식 버전이라 할까.
이에 비해 <등대>는 예리한 관찰을 토대로 시인 자신의 모습을 애절하게 투사한 독백이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서 있는’ 등대,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품고 있는 듯한 등대, 험한 폭풍우에도 한 마디 불평 없이 ‘보람을 찾으려는 듯한’ 자세로 서 있는 등대... 등대는 곡절 많은 인생을 살아 넘긴, ‘욕망을 초월한 사내’의 모습으로 서 있다. 마지막 연(“더 잘 할 수 있었는데.../후회하며 곱씹다가/자리를/영/못 뜨는 것인가”)에서야 시인은 등대가 자신임을 밝힌다. 그건 자기 응시를 통한 깨달음과 달관의 서정이다.
여름의 깨달음은 <하계 농촌봉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아담과 이브는
갑자기 노동자가 되었다.

가시덤불 헤치며 지새운
공포의 밤들,
얼굴에 땀이 흘러야
하늘을 볼 수 있고
흙이 되어야
쉴 수 있으리니

어설픈 곡괭이 삽질 몇 번에
하늘 한 번 쳐다보고
김매기 반나절에
열 번 넘게 하늘을 본다

땅거미 지면
물집 난 손바닥 감추고
안식하는 연습을 한다.

밀짚모자도 사치스러운 산촌에
왜 별은 빛나는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땀 흘려 하늘을 보고
흙이 된다.

시인은 도시 대학생들의 하계 ‘농활’ 현장을 격려차 방문했던 것일까. 농부들의 동작과 함께 그들의 시간과 공간을 흉내 내는 ‘청춘의 어설픔’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노동의 어려움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이 뛰어든 농촌봉사 현장. 여름이 익어가는 현장에서 어설픈 노동을 통해 내면이 성숙해가는 젊음의 모습과 삶의 진실을 그려내고 있다. ‘나’와 흙이 하나가 되는 경지는 변함없이 빛나는 별처럼 소중한 깨달음이다. 열정뿐인 젊음들이 차분한 자기응시를 통해 대상의 본질과 진실을 깨우쳐가며 달관의 종착에 이르는 과정. 시인은 지금 어설픈 모습의 그들과 열정으로 살아오면서 삶의 진실을 터득하고 달관의 경지에 이른 자신을 오버랩 시키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조용하면서도 집요하고 겸손한 담쟁이의 정신미학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담쟁이>도 시인 자신의 투사 대상임은 물론이다. 담쟁이가 시인 자신의 모습이거나 최소한 시인이 이상으로 여기는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여우와 사람의 상동성을 바탕으로 ‘세상엔 사람답지 않은 사람들이 많고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꾸짖음 아닌 꾸짖음으로’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납량특집 전설>의 깨달음과 차원을 달리하는 서정이기도 하다.
깨달음의 서정은 <여름 밤하늘>에 와서 아름다움의 정점에 이른다. 시인은 ‘딩 안 지히(Ding an sich)’를 두 번이나 반복적으로 썼다. “세월이란 그런 건가”와 “세월 때문인가” 뒤에 한 번씩 쓴 것은 의미와 리듬을 배려한 시인의 절묘한 아이디어다. 물 자체, 본체, 혹은 선험적 객관이란 철학적 의미는 고사하고, 흡사 거문고 가락을 튕기는 듯한 그 말의 음성학적 쾌감은 얼마나 환상적인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함없이 깊고 나직한 거문고 가락처럼 사물은 ‘본질 그대로’ 그곳에 있는 것을. 인간은 자신의 변화에 따라 세상 모든 것이 변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존재다. 소년시절에 보았던 여름 밤하늘,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은가루 별빛만 찬란한’ 그 본질이야 변할 리 있는가. 여름 밤하늘의 아름답던 옛 추억은 전설처럼 아스라해지다가 나이 따라 사라지고 그냥 은가루 별빛 찬란한 공간으로 남아있을 뿐이라는 깨달음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된 지점에서 얻는 것이 바로 인생에 대한 달관임을 이 시는 보여준다.

넷. 가을/향수와 회귀, 실향(失鄕)의 아릿한 추억

가을은 대개 풍요의 이미지로 나타나지만, 시인에겐 고향과 코이노니아를 떠올리게 하는 시간대다. 바다, 벌판, 시골, 연어가 돌아오는 여울목, 배추밭, 가벼운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 등. 그 시간과 공간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비록 마음속에 갈무리된, 상상 속의 고향이지만, 그곳은 시인이 돌아갈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은 가을이면 실향민이 된다. 그 압권이 <연어의 회귀>다.

담수에 비해 바다는
짜고 험하고 거칠었지만
내게 광활한 자유와 풍요와
환상을 주었다.

어려서 떠날 때는
스틸헤드 치어(稚魚)처럼
머뭇거렸으나
금방 대양에 익숙해지고

생의 희로애락을
바닷물에 듬뿍 적셔
돌아올 날이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다.
그러나 떠남이 운명이었다면
회귀(回歸)는 더 끈질긴 본능.

잉태와 부활을 위한,
변치 않는 DNA 안테나가
내게도 있었다.

돌아갈 고향은
좁고 가파르고 위험한 시내
아무 교통표지판도 없는 계곡.

그래도 회귀는
바다보다 더 자유롭고
더 크게 거칠게 다가오는
전율의 은총이었다.

‘짜고 험하고 거친’ 바다는 세상이다. 연어가 바다에서 얻은 것은 자유, 풍요, 그리고 환상이었다. 그가 바다에서 얻은 것이 자유와 풍요뿐이었다면, 다시는 모천(母川)으로 회귀하지 않았을 것이다. 환상이 모천회귀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환상이란 현실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형상이나 생각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환상임을 깨닫기 위해서는 체험이 필수적이다. 누구나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름의 환상이 필요하다. 환상을 현실로 바꾸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세상살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 보아도 환상만으로 남는 게 있다. 삶은 유한하고 꿈은 원대하니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 또한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남는 환상 때문에 좌절한 실존이 기댈 언덕은 모천 혹은 고향으로 회귀하는 일 뿐이다.
“돌아올 날이 있는 줄은/까맣게 몰랐다”고 한 것도 떠날 때의 환상에 눈이 가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떠남은 운명이고, 돌아옴은 더 끈질긴 본능’이라 했다. 고향이 비록 교통 표지판 하나 없는 좁고 가파르고 험한 곳일지라도 크고 넓으며 자유로운 바다(혹은 세상)보다 훨씬 크고도 거칠게 다가오는 ‘전율의 은총’이라는 것이다. 누군들 나이 들어 그동안 잊고 지내던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지 않겠으며, 돌아가려 애쓰지 않겠는가. 연어가 그 험한 모천으로 회귀하듯 낙후된 고향이나마 돌아가려 애쓰는 것을 ‘DNA 안테나’ 즉 본능이라 했다. 근원과 고향으로의 운명적 회귀는 세상에 대한 선망이 환상이었음을 깨달은 다음에나 가능한 일이다. 연어라고 모두 모천회귀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사람이라고 모두 귀향하는 것은 아니다. 험한 바다에서 길을 잃기도, 죽음을 당하기도 하는 연어들. 넓은 세상을 방황하는 인간도 그러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도 연어처럼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이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을은 향수와 회귀의 계절인 것이다.
이 작품과 연결되는 작품이 <서울내기>다. 서울내기인 시인에 별다른 고향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마음의 발만 고향 길을 걷는다”고 했다. 고향에 살면서 실향의 아픔을 체험하며 그 옛날의 아련한 추억을 반추하는 화자를 시인은 절묘하게 그려냈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고향에 돌아가고자 하는가. 바로 사람들 사이의 정과 대화가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바로 <코스모스>에 그 해답이 숨어있다. 가을날 고향의 둑방 길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코스모스. 카오스에 대한 코스모스는 시인의 말대로 ‘계절의 질서’다. 그러나 그건 멀리 볼 때이고, 가까이 보면 ‘가지각색 자유로운 코이노니아’, 즉 자유로운 공동체의 대화라고 했다. 꽃 색깔도, 키도 각각인 코스모스들이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모습이 대화를 나누는 고향 사람들의 얼굴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코스모스 필 때는/기다리는 사람 없어도/종일 창문을 열어놓는다/무작정 길을 떠난다”고 했다. 누군가가 올 것만 같은 분위기는 가을이 향수의 계절임을 말하고,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가슴앓이를 하는 시간대임을 말한다. 훌쩍 큰 키로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코스모스의 모습이야말로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고독한 실존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시인을 가히 이미지의 마술사라 할 수 있으리라.
코스모스에서 유발된 향수는 <연시(軟柿)>에서 무르익는다. 도시 한 복판의 카페. 시인은 그 벽에 걸려 정감을 피워내는 (고향의) 연시를 발견한다. “촌스러움을/예쁘게 봐주는/촌스러움이/허공에 남아 있는” 그 카페의 연시들. 그것들과 공존하는 “축하, 정담(情談), 약속/메모 쪽지들”은 연시로 이미지화된 고향이야말로 따스한 정이 흐르는 공간임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이 <오항리(烏項里)>다. “연시 한 소쿠리/곡주 한 사발/그냥 쥐어주는 인심에 취하”기도 하고, “곡마단 나팔소리/아이들 웃음소리/품어 안아주는/노을에 취하는” 넉넉한 공간이기도 하다. 시인이 비록 그곳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그런 공간을 ‘고향’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태어난 곳에서 자라나 실향해본 적이 없는 시인에게 ‘오항리’는 비록 타향이나 고향 이상의 정감을 주는 곳,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 가을은 향수와 회귀의 시간대다.
가을의 이미지에 향수나 회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봄날 창문에 흩뿌리는 봄비를 보며 시인은 글자가 난무하는 컴퓨터의 모니터를 연상한 바 있다. 시인은 고적한 가을 날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서 디지털 이미지를 읽어낸다. 가볍게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를 ‘압축 파일’로 대치(代置)할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시인의 센스였다. 더 나아가 그는 “새는/나뭇잎의 이슬방울을/달게 마실 줄 알고/영혼의 날개로/우주와 입 맞추는/아름다운 시집”(<새(鳥)>)이라 정의했다. <새 2>에서 시인은 한 발 더 나아가 “그대에게 남은 것은/옷 한 벌/가냘픈 노래/GIS 네비게이션/날개를 펴고 접는/압축 실행 파일”이라고 노래했다. 그러면서 결국 “그래서 땅 딛고 사는 나에게/모든 중생에게/훌쩍 인사도 없이/아무 때나 떠나는 것인가”라고 새와 관련한 가을의 상념을 털어놓았다.
‘떠남’은 상실이나 버림이고, 그것은 시인이 발견한 가을의 이미지인 회귀와 정반대의 개념이다. 고향에 돌아오는 계절도 가을이고, 고향을 떠나는 계절도 가을이다. 마치 ‘압축실행파일’처럼 가벼이 고향을 뜨는 새들과 고향을 뜨는 사람들을 병치시키는 데 성공하는 시인의 손끝을 보라. 그의 손과 마음을 통과하면서 가을은 ‘떠남과 돌아옴의 계절’이 된다. 떠나면서도 돌아오는 것 못지않게 포근한 정을 느끼게 만든 것이 바로 시인의 짭잘한 ‘손맛’이다.  

다섯. 겨울/만남과 설렘, 그리고 방황의 끝

시인에게 봄·여름·가을은 이산(離散)과 방황의 계절들이다. 열기와 열정의 시간대들이다. 그러나 겨울은 그런 열정들을 안으로 여미고, 방황을 끝내는 계절이다. 방황이 끝나는 곳에는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한 설렘이 있다. 기쁨과 설렘을 배가해주는 대화의 장(場)이 있다. 그곳에선 세상을 방황하며 겪은 온갖 신산(辛酸)한 체험들은 웃음에 곁들인 안줏거리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겨울 序詩>는 겨울 이미지들의 모든 것을 포함한 ‘압축파일’이다.

가을을 쓸쓸히 보낸 사람일수록
겨울이 더 따듯할 수 있습니다.

봄, 가을 온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겨울은
느낌을 하나로 만듭니다.

온 하늘이 눈송이로 가득 차면
우리 시선은
방황을 끝내고
화로 가에 모입니다.

가슴 설레던 봄 아지랑이
여름의 태양과 태풍,
가을의 수확,
모든 것을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가을 감사절뿐만 아니라
서로의 거칠어진
피부를 볼 수 있는
이 겨울도
감사의 제목입니다.

온 하늘이
눈송이로 가득 차듯
남은 시간이
가득 차고 깊어집니다.

‘겨울은 정감 넘치는 감사와 회동(會同)의 계절’이라는 것이 이 시의 주지(主旨)다. 경건할 만큼 따스하다는 점에서 ‘겨울 기도’라는 부제를 붙일 수도 있으리라. 봄에서 가을까지 천지 사방으로 흩어져 지내던 붙이들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지난 계절들의 시간과 공간을 응시하고 관조하며 감사하는 모습은 침잠의 계절, 겨울만이 선사할 수 있는 풍경이다. 그래서 시인은 사람들이 겨울에 “모든 것을 초연하게/바라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마지막 연의 “가득 차고 깊어지는” 남은 시간은 신의 은총이 지배하는, 거룩한 그것이다. 지난 계절들의 열정과 풍요, 그리고 무사함을 담론하며 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경건한 시간대로 겨울을 묘사하는 시인의 심상이 그래서 돋보인다.
겨울은 차갑다. 그래서 모든 것을 얼리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안으로 뜨거운 정을 품는다. 그래서 겨울은 춥지만 따뜻한 계절이다. 그 ‘춥고 따뜻한’ 겨울을 가장 멋지게 노래한 작품이 <겨울비>다. 겨울비 추적추적 뿌려대는 어느 날. 시인은 좌판 위의 사과들을 닦는 과일 노점상을 만난다. 반짝거리도록 닦아내는 동작에서 ‘군대 간 아들의 비 맞은 얼굴’을 ‘지극정성으로 닦아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읽어낸다. 그것이 첫 연이다. 둘째 연에서는 군대 간 아들 녀석이 등장한다. “기상나팔에 눈 비빌 새 없이/달력에 줄 하나 긋고/싱긋 웃는 아들,/구두약 듬뿍 찍어/반짝반짝 닦는” 군대 간 아들을 시인은 끌어왔다. 휴가 나갈 생각에 흐뭇한 마음으로 구두에 ‘광내고 있는’ 그 녀석. 시인의 아들일 수도 노점상의 아들일 수도, 아니 우리 모두의 아들일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다. 겨울비 맞아가며 사과에 광을 내는 노점상. ‘돌아가는 국방부 시계’만 믿으며 구두에 광내며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 아들 덕에 부모는 꿋꿋이 어려움을 삭이고 있으리라.
이 시에서 우리는 세상 부모들의 마음을 축축하게 만들어주는 감동을 만난다. 그러나 시인의 재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겨울비야/뿌리다 말겠지”라고 흡사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눙치고 만다. 앞에서 울적한 마음이었던 우리를 쑥스럽게 만드는 한 마디다. 노점상을 우울하게 만든 겨울비였다. 그러나 ‘까짓 겨울비 기껏 얼마나 내릴까?’라는 자기 위안의 말은 희망 그 자체다. 마지막 연에서야 우리는 안심을 하게 된다. 슬픔이나 울적함으로 끝내지 않으려는 시인의 재치와 따스한 마음을 비로소 확인하게 된다. 차가운 계절에 만나는 따뜻한 정감. 그것은 머지않아 군대 간 아들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지난 계절의 이산과 방황을 관조하는 시간대가 바로 겨울임을 보여준다.  

여섯. 제5의 계절, 환절기/가열 찬 생명의 이어짐

순환하는 계절의 주기는 네 개의 단위다. 이른바 사계절이다. 그러나 계절들 사이의 시간대를 어찌 무시할 수 있으랴. 디지털 감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시인은 환절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환절기를 제5의 계절이라 부를 수 있을까. 4계절보다 환절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시인의 정감 덕분이다. 시인은 <MT>에서 ‘영원한 청년’을 환절기의 존재로 묘사한 바 있다. 즉 2월이 겨울인 1월도 아니고 봄인 3월도 아니듯 노교수는 소년도 노인도 아닌 영원한 청년으로 남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계절의 생명성은 환절기에 오히려 치열하게 준비된다. 그것은 단순한 ‘이어짐’이 아니다. 서로 다름의 융섭(融攝)이다. 그래서 그 부분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니,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시간대라고 할 수 있다. 시행착오와 미래지향의 발전 가능성을 함께 지닌 독특한 시기가 바로 인생의 환절기인 것도 그 때문이다.

계절의 순환은 맺힌 데 없는
완전한 순간들의 점철,
심지어 환절기에도
완전한 의상으로
생명의 합창을 한다.

나무들이 낙엽을 뿌릴 때나
앙상한 가지만 남았을 때도
병들어 그런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이 제 모습이다.

변하기는 하되
변하지 않는 듯
오가는 계절의 속도처럼
철새들은 여유롭고
대륙을 순환하고
천리만리 힘차다.

산은 움직임 없이 노래하고
강물은 움직여 장단을 맞춘다.
변하지 않는 듯 천천히
의상과 곡목이 바뀌고

늘 완전한 모습으로
세상이 달라진다.

자연은 계절의 순환을 통해 생명의 합창을 구체화 시킨다. 사이사이에 마련한 것이 환절기라는 고비다. 그러니 그 고비만큼 오묘한 생명의 정수(精髓)란 있을 수 없다. “순간순간이 제 모습”이란 말은 순환을 형성하는 모든 순간들이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계절의 순환 속도가 우리의 의식을 어지럽힐 만큼 빠르지 않은 것은 환절기라는 완충장치를 두었기 때문이다. ‘변하되 변하지 않는 듯’ 느낄 수 있는 것도 순환의 마디와 마디를 이어주는 환절기 덕분이다. “산이 움직임 없이 노래하고/강물이 움직여 장단을 맞추듯” 천천히 계절은 바뀌다가 새로운 계절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 버린다. 완벽하게 바뀐 계절의 한 복판에서 ‘늘 완전하게 달라진’ 세상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의 끊임없는 움직임과 변화를 포착하여 세상에 적용시킨 시인의 통찰력, 디지털적 시각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환절기>가 자연과 세상 변화의 이치를 원론적 측면에서 노래한 것이라면, <환절기 2>는 ‘80년대의 젊음이 겪어온 모순과 역리의 소용돌이’를 환절기에 기대어 구체화시킨 작품이다. ‘1980년대를 돌이켜 보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시에서 시인은 회오리처럼 휩쓸고 간 80년대 캠퍼스의 열풍을 노래했다. 부모나 선생으로 대변되는 기성세대보다 선배나 친구로 대변되는 신세대가 소중하고 진실하게 여겨지던 ‘부조리와 반항’의 시대정신을 모두(冒頭)에서 강조했다. 시인은 그 시절을 ‘젊음의 길고 긴 환절기’라 했다. 그런데 ‘다음 계절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이전 계절과 다음 계절을 함께 아우를 수 있어야 환절기일 수 있는데, 이 반항의 계절, 모순의 환절기에 처한 젊은이들에겐 다가올 계절에 대한 준비가 없다고 했다. ‘여름 옷, 겨울 옷’ 중 무엇을, ‘옛 노래, 새 노래’ 중 무엇을 택해야 할지 망설인다고 했다. 그저 뿜어대는 최루가스를 뒤집어쓰고 ‘역사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구원의 신호등 찾아/달리고 달린다”고 했다. 기나긴 독재정치의 터널에서 민주화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바로 80년대였다. 지금 이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활약해야 할 세대가 바로 그 과도기를 아프게 살아온 젊음들이다. 민주화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80년대, 그 부조리로 점철되어 있던 모순과 반항의 환절기를 시인은 아프게 회상한다. ‘준비 없이’ 지내온 환절기의 젊음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환절기란 단순한 과도기가 아니다. 그 나름의 온전한 의미를 지닌 순환의 마디다. 그렇게 완벽한 환절기가 있는 반면, 80년대 같은 불완전한 환절기도 있음을 시인은 숨 가쁜 템포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환절기이든 그것은 ‘계절의 순환에서 가열 찬 생명의 이음매’이어야 한다.

일곱. 마무리 : 시인의 이상, 그리고 디지털 유토피아

시인은 사물의 예각을, 계절의 순환을, 아니 인간의 삶을 디지털의 눈으로 포착해왔다. 단순히 미세한 부분을 잘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숨어있는 진심을 드러내어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것. “진심이 진심을 만나/커뮤니티를 이루”(<네트워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목적은 ‘(모든 것을)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심지어 신화도 옛날이야기나 헐어빠진 책 속에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열린 가슴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제자에게 배우면 행복한 선생이지/강자가 약자 되고 약자가 강자 되고/유식자도 하루아침에 무식자 되고/돌고 도는 것이 세상이치거늘/오천년 배달민족 자부심은 좋다만/언제 진심으로 배웠는가./뇌물공여지수 제3그룹/그런 것 말고 꾸준한 것이 있는가”(<신화>)라고 울분을 터뜨리는 시인의 한탄은 통렬한 자아반성과 깨달음의 소산이다.
여기서 비로소 우리는 시인이 지향해온 문학세계가 ‘열린 마음의 시학’임을 알게 된다. 시인이 역설하는 ‘신화 재창조의 당위성’도 바로 열린 가슴에서 비롯됨을 알게 된다. 그런 바탕 위에서 시인은 자신의 인식을 문명비평, 시대 비평으로 확대한다. 그가 시도한 <색상반전>은 단순한 컴퓨터 이미지의 놀음이 아니다. 그 경우의 이미지는 세상과 만나고 대화하는 창이다. “낙엽 지니 봄이요/눈 내리니 삼복이라/색상반전 재미있네.”라는 가사체의 요설(饒舌)이 ‘거꾸로 가는 세상’에 대한 비판으로는 제격임을 보여준다. 시인은 <악몽(惡夢)>을 통해 ‘아름다운 강토 도시마다 비린내 나는 비늘을 뿌려대는 이무기 한 놈’을 적시했다. 그 이무기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그는 시인으로부터 ‘개처럼’ 두들겨 맞은 셈이다. 살아가고 있는 지금을 악몽으로 본 것은 시인의 현실인식이다.
그러나 시인이 남의 탓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의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비판한 다음, 최종적인 메스는 자신에게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네 죄를 알렷다>는 통렬한 자기반성의 호령이다. 단순한 호령이기보다 자신의 평생 결산서인 셈이다. 이미 <색상반전>을 통해 ‘거꾸로 가는 세상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 시인이다. ‘뒤집어 보기’로 자신의 일생을 평가하고 있는데, 모두 ‘죄’라고 결산했다. 그 죄라고 한 것을 다시 ‘뒤집어 보면’ 참으로 ‘열심히 살아온’ 일생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죄’라고 판정했다.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잘 살아도, 못 살아도 후회는 남기 마련이라는 깨달음일 것이다. ‘살아가는 방향’이 단일할 수 없음에도 자신이 살아온 길이 잘못되었다는 후회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마지막의 단행련(單行聯)(“처음부터 다시!”)이 함축한 의미가 바로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방향으로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가능치 않은 소망을 드러내고 있는 그 외마디 말 속에 이 시의 주제는 담겨 있다.
시인은 곧 정년을 맞는다. 그래서 지금 그는 ‘환절기’를 살고 있는 셈이다. 환절기에 흔히 걸리는 감기 몸살도 용케 피해가며 새로운 계절을 마련하고 있는 그다. 환절기를 맞아 지나온 계절들의 영광과 상처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걸까. 그것도 디지털의 미세한 촉수를 통해 지금껏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심연(深淵)을 더듬어 보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디지털 사계’는 차이코프스키나 비발디의 ‘사계’보다 훨씬 따스하고 감미롭다. 모든 사람들이 찾아 헤맸으나 결국 찾아내지 못한 정감들이기에 더욱 따스하고, 디지털의 눈으로 확대한 것이기에 그 이미지는 더욱 깔끔하다. 시인은 ‘디지털이 차가운 기술이므로 아날로그의 따스함으로 데워야 한다’는 이른바 ‘디지로그’ 논자의 편견을 일축한다. 디지털은 태생부터 따스한 세계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공동체와 대화문화는 디지털이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보기 때문이리라. 그런 이유로 시인은 공동체 의식과 대화에 스며있는 삶의 따스함을 찾아 나선 것이나 아닐까.
아름다운 봄이 가면 뜨거운 여름이 오고, 수확의 계절이 가면 죽음 같은 침묵의 겨울이 오듯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으로 교직(交織)되는 인간의 삶 역시 순환의 객체일 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4계절을 노래한다. 그것도 디지털의 섬세한 시각과 필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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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학술문2007. 4. 10. 18:11
하나. 인간과 삶, 그리고 죽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음만큼 무섭고 신비한 현상도 없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따스한 햇볕 아래 오순도순 즐기다가 한 순간 숨이 끊어져 깜깜하고 차가운 땅 속에 묻히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은 죽음의 불가항력에 당황한다. 불치의 병으로 신음하다 결국 추하게 탈진한 상태로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죽음의 무자비함에 몸을 떤다. 인간이 종교에 귀의하는 것도 살아있는 동안 가차 없는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다. 종교를 성립시키는 것은 절대적인 힘을 지닌 신이다.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죽음의 공포는 얼마간 해소될 수 있다. 그 신의 위력을 빌어 이야기되는 종교적 담론의 핵심은 죽음 혹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한 것이다. 사실 인간이 죽음에 대하여 공포를 느끼는 것은 죽는 순간의 통증보다 죽음 이후의 시공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살과 뼈가 원소로 해체되어 스며들거나 흩어지면 그 뿐인가. 아니면 육체에서 이탈된 영혼이 또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가.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판이해진다. 엘리자베스 큐블러로스는 인간이 죽음을 맞는 마지막 단계로 ‘사후 생명에 대한 희망’을 들었다. 사후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가진 사람만이 죽음을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하여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독배를 마시고 죽어가던 소크라테스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나는 이제 떠날 때가 되었네. 나는 죽기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들 가운데 누가 더 좋은 일을 만나게 될 것인가, 신밖에는 아무도 모른다네.’ 라고 말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긴 했지만, 소크라테스 자신도 사후 세계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사후 세계를 믿는 것이 정신위생상 좋다는, 정신분석학자 융의 생각은 종교적 담론의 틀 안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려는 현대인의 본능적 욕구를 적절히 지적한 경우다. 키엘케골은 절망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고 그에 대한 희망을 갖는 일이야말로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니, 죽음의 두려움을 뛰어넘기 위해 만들어낸 종교의 관념체계는 빛나는 인간 지혜의 소산이라 할 것이다.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이 피할 수 없는 죽음.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우주적 그물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며, 조만간 직면해야 할 죽음으로부터 생겨하는 우울함이나 비애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오랜 세월 인간이 만들어온 문화적 집적(集積)의 대표 항은 ‘삶과 죽음’이다. 시간의 물결에 떼밀려가는 생명체들. 그래서 생명체에게 ‘살아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외연으로는 상반되는 개념들이지만, 이면적으로는 동의어인 것도 그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죽음에 대한 무수한 담론들을 만들어 왔다. 죽음의 미덕을 찬양하는 경지가 바로 그런 담론들의 극단이다. 그것들은 말하자면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효과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이른바 자기방어(自己防禦)의 기제(機制)라 할 수 있다. 거추장스런 육신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상태로 신들의 세계에 들어가 새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은 현세적 삶이 괴로운 민초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이승에서의 삶을 더 연장하고자 하는 것이 모든 이의 본능적 욕구였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은 죽음을 거부하는 그들의 본능을 표현한 말이다. 그런 욕구의 한 편에 죽음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심지어 찬양하는 표현까지 생겨나는 것이다.
죽음은 문학이나 예술적 표현물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제재들 중의 하나였다. <제망매가>는 기록으로 남겨진 것들 가운데 꽤나 이른 시기의 노래다. 작자가 비교적 소상히 설명되어 있고, 표현기법이 세련되어 있으며, 그 사상적 배경 또한 분명하다. 그 뿐 아니라 노래를 둘러싼 정황이 신비화 되어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흥미를 끈다. 말하자면 가장 흔한 주제를 노래함으로써 보고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되, 그 정황이나 배경은 가장 신비스러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게 하는 점에 이 노래의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누이동생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소재를 노래했으면서도 죽음 자체가 자아내는 미학이나 분위기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이 특이하다. 삶과 죽음의 언저리에서 이루어지는 서정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불심(佛心)으로 윤색되거나 가공되었으며, 어떻게 지속되어 왔을까.

둘. <제망매가>에 내재된 두 얼굴의 사생관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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