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1. 7. 3. 22:38

 

 

미국 뉴욕대 근처 워싱턴 스웨어 아치 앞에 조경현 교수가 섰다. 핀란드와 캐나다를 거쳐 뉴욕으로 온 이 한국 젊은이는 지금 세계 인공 지능 학계의 주목을 받는 스타다. 조 교수는 말하기를 "AI는 만능도, 마법도 아니다" 라며 "세상을 한번에 바꾸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라고 했다. 사진에 프로그래밍 언어 이미지를 합성했다. 사진작가 서승재, 그래픽 김현국

 

 

2019년 '삼성 AI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조경현 교수/삼성전자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김미리 기자의 1미리]

 

호암상 받은 36세 인공지능 석학

조경현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김미리 기자/입력 2021.07.03. 03:00]

 

2008년 가을 KAIST(한국과학기술원) 대덕 캠퍼스. 졸업으로 직진하는 대부분의 KAIST 천재와는 달리 7년째 학부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전산학과 ’02학번' 학생이 있었다. 유일한 목표는 무사히 졸업하는 것. 학점 따기 쉬운 1학년 교양과목을 집중 공략해 강의실 뒷자리를 지켰다. 하루는 선배가 학과 사무실에서 가져온 팸플릿을 건넸다. 핀란드 알토대 ‘인공 지능(AI)’ 석사과정 프로그램 모집 공지였다. 미래가 희미했던 공학도는 이듬해 무작정 핀란드로 떠났다.

 

13년 전 졸업을 걱정했던 그 청춘이 지난달 모교 KAIST 전산학과에 1억원을 쾌척했다. 장학금 이름은 ‘임미숙 장학금’, 지원 대상은 여학생이었다. 그렇다면 그 졸업생이 임미숙이냐고? 아니다. 임미숙은 기부자의 어머니다.

 

자기 이름 대신 어머니 이름 석 자를 내걸며 “여성 공학도를 지원하겠다”고 한 주인공은 30대 남자 공학자다. 세계적 AI 석학으로 꼽히는 조경현(36)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인공 지능 번역’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가 스물아홉 살이던 2014년,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와 함께 발표한 ‘신경망 기계 번역’ 개념은 기존 기계 번역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버렸다. 구글 번역기 등 대부분 번역기가 이 개념을 활용한 것이다.

 

이 천재 공학자에게 쏠린 관심은 뜨겁다. 2015년 뉴욕대 교수로 임용된 지 4년 만에 종신 교수가 됐고, 작년까지 페이스북에서 연구 과학자로도 일했다. 구글, 아마존 등 굴지의 글로벌 IT 기업이 그의 연구를 후원했다. 네이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기업의 자문도 맡고 있다. 얼마 전엔 국내 최고 권위 학술상인 ‘삼성호암상’ 공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은 타는 족족 기부하고, 남성 공학자이지만 여성 공학자 육성을 누구보다 강조한다. 최첨단 AI 전문가인데 정작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분야는 인문학이라고 역설한다. 뉴욕에 있는 괴짜 공학자를 화상 앱 ‘줌’으로 만났다.

 

 

◇AI 전설 삼인방이 인정한 ‘천재’

 

AI ‘딥 러닝(컴퓨터가 방대한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규칙을 찾아내는 기술)’ 분야에서 ‘3대 전설’로 꼽히는 이들이 있다. 제프리 힌턴(구글 석학 연구원)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얀 르쾽(페이스북 수석 AI 엔지니어) 뉴욕대 교수. 2018년 ‘컴퓨터 과학계의 노벨상’으로 꼽히는 ‘튜링상’을 공동으로 받은 이 삼인방이 공통으로 꼽는 이 분야 차세대 스타가 조경현 교수다.

 

–천재들한테 천재로 인정받은 셈 아닌가요.

 

“스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세 분 다 이 분야에서 매우 유명하신 분이죠. 모두 친분이 있고요. 벤지오 교수 연구실에선 박사 후 과정(포스트닥터)을 했고, 얀 르쾽 교수는 뉴욕대 동료입니다.” 2017년 블룸버그가 선정한 ‘2018년에 주목할 인물 50인’ 명단에 올랐을 때, 그를 추천한 이는 ‘딥 러닝의 아버지’라는 힌턴 교수였다.

 

–교수님이 고안한 ‘신경망 기계 번역’은 어떤 개념인지요.

 

“기존 기계 번역은 원문과 번역본 사이에서 ‘단어’가 어떻게 번역됐는지 보고,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번역하는 시스템이었어요. 단어와 어순이 비슷한 언어끼리는 번역이 잘되는데, 한국어·영어처럼 완전히 다른 언어끼리는 엉터리 번역이 많았죠. ‘신경망 기계 번역’은 딥 러닝을 적용해 문장의 ‘맥락’을 파악해 번역하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과거엔 ‘나 말리지 마’란 문장을 번역기에 돌리면 ‘Don’t dry me’가 나왔지만, 요즘은 ‘Don’t stop me’가 나온다. AI가 접목된 결과인데, 그 핵심 기술이 조 교수가 고안한 개념에서 나왔다.

 

–'번역'에 왜 관심이 많은가요?

 

“10년 넘게 헬싱키, 몬트리올, 뉴욕에서 살며 번역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그리고 인터넷 세상에선 번역이 더 중요해요. 온라인 콘텐츠의 60%가 영어, 나머지 40%가 중국어·아랍어·불어 등으로 돼 있다고 해요. 영어 편중이 너무 심하죠.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3억명 가까운데 인도네시아어로 된 콘텐츠는 거의 없어요. AI 번역이 잘되면 이런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고, 디지털 장벽도 확 낮출 수 있어요.”

 

–곧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올까요?

 

“안타깝지만, 한참 걸릴 겁니다. AI는 만능도, 마법도 아닙니다.”

 

 

자택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조경현 / 사진작가 서승재

 

 

◇넥타이 못 매도 AI 알고리즘은 뚝딱

 

–호암재단 관계자가 공식 자료용으로 넥타이 맨 사진을 요청했더니 교수님이 넥타이를 못 맨다고 했다고요? 담당자가 “그 복잡한 알고리즘을 짜는 분이 넥타이를 못 맨다니 안 믿긴다”면서 웃더군요.

 

“교복 입을 때 지퍼로 된 넥타이 맨 거 빼고 넥타이 맬 일이 거의 없었어요. 안 해본 건 잘 못 해서…. 담당자가 유튜브로 넥타이 매는 법 영상까지 보내주셨는데 포기했어요(웃음).”

 

–'링크트인'(인맥 전문 소셜미디어)에서 한 지인이 “조경현만큼 똑똑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같이 일하면 명석함과 통찰력에 놀랄 뿐만 아니라, 유머로 동료를 무장해제시키는 재주가 있다”고 평한 걸 봤습니다.

 

“굳이 재미없고 딱딱하게 일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사람처럼 웃고 농담하는 생명체는 없어요. AI가 아직 사람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영역이기도 하고요. 유머는 창의력이 있어야 나오는데 AI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창의력입니다.”

 

–비과학고 출신으로 KAIST에 들어갔다고요?

 

“사촌 형이 KAIST에 다니고 있어 그런 학교가 있다는 건 알았어요. 고2(서울 경문고) 때 대학 입시를 생각하다가 KAIST를 찾아봤더니 일반고 2학년까지만 마치고도 갈 수 있더라고요. 빨리 대학에 가고 싶어 시험 삼아 지원했는데 운 좋게 붙었어요. 저처럼 일반고 2학년을 마치고 들어온 친구들이 만든 ‘2막 1장’이란 모임이 있었는데 열 명 정도밖에 안 됐어요. 어릴 때부터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준비한 과학고 출신과 같이 공부하려다 보니 1~2년은 엄청 헤맸죠. 방황하다 휴학도 하고,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고 오니 동기들은 거의 졸업을 했더라고요.”

 

–인공 지능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습니까.

 

“학부 땐 인공 지능 관련 정규 수업이 아예 없었어요. 특강을 들은 적이 있는데, 너무 어려워 이런 걸 어떻게 배우나 싶었습니다.”

 

 

–결국 선배가 가져다준 알토대 AI 석사과정 팸플릿이 운명을 바꿨군요.

 

“아직도 생각나요. 노란색 팸플릿. 얼마나 조악했는지. 이렇게 내 인생을 바꿀 줄 알았다면 보관하고 있을걸!”

 

–주로 미국으로 유학을 많이 가던데 굳이 핀란드를 택한 이유라도.

 

“미국으로 유학 가려면 GRE 점수가 필요한데 막판에 졸업 학점 채우느라 한 학기에 24학점씩 몰아서 들었어요. GRE고 뭐고 준비할 시간이 없었어요(웃음). 알토대 프로그램이 마침 영어로 하는 프로그램인 데다 학비가 공짜였고, 유럽에 대한 동경도 있었어요. 가보니 한국에선 모든 뉴스의 중심이 미국, 중국, 일본이었는데, 거기선 러시아, 발트 3국 같은 나라 뉴스가 계속 나왔어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핀란드에서 한 AI 연구는 어땠습니까.

 

“신입생에게 무작위로 연구실을 배정했는데, ‘인공 신경망’(인간의 신경 세포 구조를 본떠 만든 기계 학습 모델)을 다루는 연구실에 당첨됐어요. 처음 들어본 개념이라 이해는 안 됐지만, 다른 사람이 연구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굉장히 신났지요. 딥 러닝, 머신 러닝(기계 학습) 같은 개념이 지금만큼 뜨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엄청난 연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 없이 즐겁게 석·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캐나다로 건너갔지요?

 

“대학원 생활 막바지에 AI 구루들이 ‘아이클리어’라는 인공 지능 학회를 만들어 미국 애리조나에서 행사를 했어요. 핀란드에서 돌아갔는데 어찌나 멀던지. 학회 첫날 아침 식사 때 옆자리 분과 대화를 했는데, 그분이 저명한 벤지오 교수였어요. 그 인연으로 몬트리올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했고요. 정말 제가 지금까지 온 데는 ‘우연’과 ‘운’이 참 많이 작용했네요.”

 

 

맨해튼의 거리를 걸어가는 조경현 / 사진작가 서승재

 

◇AI 분야 남자 일색… 불평등 깨려 여자 공학도 지원

 

조 교수는 젊은 나이인데도 줄기차게 기부를 해왔다. 지난해 11월 ‘삼성 AI 연구자상’을 받고 상금 전액을 몬트리올대에 기부했다. 네이버, SK텔레콤 등 국내 기업체 강의료도 받는 족족 내놓았다.

 

–블로그에 이번 호암상 상금 3억원 기부 계획을 밝혔더군요.

 

“재단에서 세금 떼고 바로 계좌로 입금해주시더라고요. 수중에 이렇게 많은 돈이, 그것도 현금으로 들어오다니! 계획에 없던 돈이 생긴 거라, 제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쓸 데도 없었고요. 맨해튼 사니까 자가용 살 필요도 없고, 팬데믹 시대니 고급 휴양지 갈 일도 없고(웃음).”

 

–상금에 전혀 미련이 없을 만큼 많이 부유한가요?

 

“부자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받는 월급이면 저 혼자 충분히 삽니다. 학계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어요. 초반 운이 어쩌다 좋아 기회를 잡으면 그걸 기반으로 점점 더 좋은 일자리를 찾게 되고, 실력이 있어도 타이밍이 안 좋아 기회를 못 잡으면 점점 더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저는 운 좋게도 전자였고요. 실제 능력 차이보다 아웃풋(결과) 차이가 작은 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불평등을 일정 부분 완화해주는 쿠션 역할을 해야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기회 불평등 때문에 실제 능력 차이보다 아웃풋 차이가 더 나요. 형편이 되는 한, 형평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호암상 상금으로 지금까지 세 가지 기부를 했다. 석·박사를 한 알토대에 3만유로(약 4000만원), 모교 KAIST에 1억원, 한국 고전 연구자를 위한 ‘백규 고전 학술상’ 제정에 1억원을 기부했다.

 

–알토대나 그 이전 몬트리올대 기부를 보면 대상이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는 신입 여자 유학생’이더군요.

 

“우선 유학생으로 사는 게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많아요. 언제든 이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사는 임시 거주자인 데다 계좌 잔액을 계속 신경 써야 해요. 유명한 관광지가 널렸는데, 부모님 오실 때나 겨우 가봅니다. 침대 틀 없이 매트리스만 깔고 지내는 경우도 많고요. 저는 아주 쪼들리지 않았는데도 늘 이케아 제일 싼 침대만 썼어요. 서울 부모님 집을 떠난 후 얼마 전까지 소파도 없었고요. 팬데믹이 길어져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지난겨울 해외 생활 처음으로 소파를 하나 장만했죠.”

 

–여학생만 후원하는 것도 특이합니다.

 

“KAIST 전산학과 때 동기 60~70명 중 여자가 너덧 명밖에 없었어요.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컴퓨터과학 분야엔 젠더(性) 불균형이 심각합니다. 그런데 AI에서는 ‘젠더 균형’이 더 중요해요. AI는 간단히 말하면 알고리즘 안에 데이터를 넣어서 학습하는 건데, 이 데이터가 젠더·지역 등 여러 측면에서 대표성(representation)을 갖는가가 중요합니다. 편향된 데이터는 알고리즘을 반복해 거치면서 편향성이 증폭돼요. 여성과 소수 집단이 배제되면 점점 더 배제되는 거지요. 이런 문제를 보완해 나가야 하는데, 연구자 대부분이 남성이에요. 그들 눈엔 이런 편향이 잘 안 보여요. 그래서 ‘다양성’을 높이는 게 무척 중요해요.” 그는 ‘증폭(amplification)’과 ‘데이터 편향(bias of data)’ 문제가 요즘 인공 지능에서 굉장히 중요한 화두라고 했다.

 

–금액을 보니, 1인당 1000달러(약 112만원) 정도를 여럿에게 나눠 주던데요.

 

“유학생들이 막 입학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 때 숨 돌릴 수 있는 조금의 여유를 준다는 의미예요. 사용처 제한도 없습니다. 친구하고 맥주 마셔도 되고, 근사한 데서 밥 한 끼 먹어도 되고, 넷플릭스 결제를 해도 되고, 아이패드 사도 됩니다. 매트리스만 사지 말고 제대로 된 침대를 사도 좋고요(웃음).”

 

–한국 기업과도 일하는데, 해외 기업과 격차가 있던가요.

 

“연구원 미팅을 주로 하는데, 다들 똑똑하고 열심히 합니다. 다만 차이라면 한국 기업엔 한국 사람만 있다는 것? 다양성을 강화해야 해요. 너무 남성 중심인 것도 문제고요. 한국 유명 IT 기업이 주최한 AI 학회 공지를 봤는데 발표자가 100% 남성이었어요. 그런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편향돼 있다는 걸 몰라요. 불균형을 깨기 위해서라도 여성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봐요.”

 

–AI가 모든 것을 대체하면 어쩌나, 사람 일자리를 위협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어요.

 

“미래 예측은 정말 어려워요. 맹목적으로 예측을 따라가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요. 증기기관, 자동차, 인터넷 등이 나왔을 때 당장엔 영향이 없었지만 몇 십 년 뒤 대중화됐을 땐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AI도 그렇습니다. 당장 이거 큰일 났네 하기보다는 어떤 영향을 줄까 심도 있게 분석하고 부작용을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해야 해요. 기술로 저같이 이득 보는 사람도 있지만, 손해 보는 사람도 있어요. 정책적으로 부작용,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경현이 엄마'로 산 어머니 향한 헌사

 

–KAIST에 어머니 이름으로 기부한 게 화제가 됐어요. 아버지 이름으로 내는 경우는 봤어도, 어머니 이름으로 내는 경우는 거의 못 봤습니다.

 

“부모님이 대학(공주사대 국어교육과) 동기예요. 어머니는 국어 교사였는데 저와 남동생을 낳고 기르느라 일을 관두셨어요. 그 시절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겠지만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어머니 희생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 이름을 넣었어요. 혹시 여자 후배들이 저희 어머니처럼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관둘까 고민하게 된다면, 이 장학금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한번 더 생각해줬으면 하고요. 개인적으론 초등학교 1학년인 여자 조카(영빈)가 나중에 AI 과학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 아이가 롤모델로 삼을 여성 AI 전문가가 나왔으면 합니다.” 장학금은 어머니의 과거, 조카의 미래를 위한 그의 작은 응원이었다. 그는 “그러고 보니 어머니와 조카 생일이 같다”며 웃었다.

 

어머니 임미숙(65)씨는 기자와 한 통화에서 “엄마를 생각하는 고운 맘을 거절하지 않는 것도 부모 역할이라 생각해서 아이 뜻을 따랐는데, 아직도 내 이름을 넣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몸을 낮췄다.

 

조 교수는 장학금을 내며 KAIST 측에 조건 하나를 걸었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과 조 교수 부모님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부친은 조규익(64) 숭실대 국문과 교수다. 그는 “내년이면 아버님이 정년인데 적적하실 것 같다. 부모님이 젊은 세대와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 부탁했다”고 했다.

 

–AI 전문가인데 한국 고전 학술상 제정도 후원했어요. 대척점에 있는 학문 같아 보이는데.

 

“아버지가 고전 문학 전문가입니다. 아버지와 제자들이 지원도 부족한데 수십 년 고군분투하며 연구하는 모습을 봐왔어요. ‘미래가 안 보이는 갑갑한 연구를 어떻게 할까’ 싶은데 돈이 안 될지라도 묵묵히 한 우물 파는 인문학자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고전’ 아들은 ‘AI’라는 전혀 다른 갱도를 파고 있는 듯했지만, 부자(父子)는 ‘언어’라는 공통분모에 뿌리 내리고 있었다.

 

–최첨단 기술을 다루는 전문가인데,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보나요?

 

“어렸을 때 책에 둘러싸여 지냈어요. 소설이든 논픽션이든 작가들이 시대상을 작품에 남기기 때문에 가보지 않고도 그 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게 신기했어요. 현재 고민을 해결하는 지혜를 과거에서 얻기도 하고요. 고전, 인문학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부는 AI 사업 등 과학기술 산업엔 컨소시엄을 만들어 몇 조원씩 지원하면서, 인문학 분야는 거의 지원을 안 합니다. 돈이 되는 분야는 기업들이 알아서 투자해요. 정부는 미래를 위해 기업이 투자하지 않는 분야에 장기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봐요.”

 

그는 “AI 연구를 하면 할수록 과연 ‘지능이란 무엇인가’ ‘이성이란 무엇인가’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인문학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상금 3억원 중 세금까지 떼니 이제 2000만원 정도만 남았다. 그래도 자신을 위해 하나쯤은 하고 싶은 게 있지 않으냐고 묻자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심심하게 사는 사람이에요. 필요한 거라고 해 봐야 맥주 정도? 그건 제 봉급으로 해결할 수 있고요. 10원짜리 하나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다 기부할 거예요. 하하!” 줌 영상 건너, 조 교수의 뉴욕 집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가구 한 점 없이 휑했고, 설거지 거리가 쌓인 싱크대 옆으로 술 몇 병이 달랑 보였다. 가상 세계를 움직이는 서른여섯의 천재 공학자는 이미 물질세계로부터 초탈한 듯했다.♣

 

 

 

=인터뷰 기사를 읽고=

 

 

아들 덕에 며칠 꿈 속 여행을 했다. 발은 땅에 붙어 있으되 머리는 구름에 닿아 있었다. 조선일보의 김미리 기자가 경현이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다며 내게 몇 가지 물어온 날부터 토요일판 조간신문이 발간・배포된 오늘[2021/7/3]까지 마음속에는 갖가지 상념들이 명멸했다. 오늘 아침 조선일보 주말 판 B01면을 가득 채운 경현이의 기사를 접한 나는 그간 숨어 살던 동굴에서 커밍아웃 당한 기분을 느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랬다.

 

첫째, 그간 산발적이고 즉흥적이며 정치적으로 취급되어오던 우리 사회 페미니즘론의 수준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였다. 그는 과학계[아니 거의 모든 분야!]에 여성인력이 소수인 문제적 현실을 강조하며 개선의 당위성을 환기시켰다. 그동안 자신이 받는 상금이나 강연료를 여성들을 위해 기부해옴으로써 여성 진출을 고무시키는 대열의 상징적 기수 역할을 스스로 떠맡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기존의 위선적 페미니즘론이 보다 개선될 가능성을 보여 준 점은 인정할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자신의 모친을 피해자의 사례로 내세움으로써 자신의 부친 역시 반페미니즘 대열의 일원임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지 아니한가.^^

 

둘째,  '인문학 중시'를 표방한 점은 자신의 부친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모친에 대한 배려와 균형을 맞추려는 세심한 마음 씀의 소산일 것이다. 나는 그간 세상이나 가족의 일에 일견 무심한 듯했던 경현이가 부모에 대하여 그런 생각까지 갖고 있으리라는 점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신문 기사를 접한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오거나 문자를 보내오면서 그의 생각이 ‘범상치 않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내가 그동안 그를 매우 무심하게 대해 왔음을 처음으로 고백하고자 한다. 경현이에 대한 지인들의 칭찬을 귓전으로 흘려 들으며, 나는 지난 시간들을 성찰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이가 자라 나름대로 무언가를 성취하기까지도 나는 내 생각과 일에 매몰되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지난 시간들에 대한 상실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걸 눈치 챈 것일까. 그는 인터뷰 후반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멘트를 덧붙였다.

 

“아버지가 고전 문학 전문가입니다. 아버지와 제자들이 지원도 부족한데 수십 년 고군분투하며 연구하는 모습을 봐왔어요. ‘미래가 안 보이는 갑갑한 연구를 어떻게 할까’ 싶은데 돈이 안 될지라도 묵묵히 한 우물 파는 인문학자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 책에 둘러싸여 지냈어요. 소설이든 논픽션이든 작가들이 시대상을 작품에 남기기 때문에 가보지 않고도 그 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게 신기했어요. 현재 고민을 해결하는 지혜를 과거에서 얻기도 하고요. 고전, 인문학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내 성찰의 결과 필연적으로 안게 될 후회나 상실감을 어루만져 주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게 도래할 회한과 미안함을 이런 말들로 조금은 가볍게 해주려는 어른스러움을 발휘한 것이리라. 내 추론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지금부터 나는 더 큰 부채감과 후회의 아픈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잠시 분리되었던 '이상 지향의 머리'와 '현실 집착의 다리'는 시간이 흘러 봉합되었고, 나는 결국 현실과 이성 조합의 시간대로 돌아왔다. 이제 30대 중반의 요량과 기획으로 세상은 분명 변할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매트릭스로 전환되어 나의 사고와 움직임을 조종할 것이다. 관념상으로나마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착각했던 나는 오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시공(時空)으로 이입(移入)하고 있음을, 지금 이 순간 깨닫고 있다. 어쨌든 앞으로 나는 그 시공의 충실한 사역자가 되어야 하리라.♥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21. 7. 2. 06:30

 

 

조경현 뉴욕대 교수, KAIST에 장학금 1억원 쾌척

 

- 어머니 이름 딴 '전산학부 임미숙 장학금' 신설

 

 

조경현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과학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다양성과 대표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조경현 뉴욕대 교수가 1억원의 발전기금을 기탁했다고 30일 밝혔다. 조 교수가 올해 삼성호암상의 공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받은 상금 중 1억 원을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쾌척한 것이다.

 

전산학부 학사과정 여학생 중 지원이 필요하거나 리더십을 발휘한 학생이 이 장학금의 수혜자가 되며, KAIST는 매 학기당 5명을 선발해 1인당 100만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눈에 띄는 점은 조경현 교수가 이 장학금의 이름을 ‘전산학부 임미숙 장학금’으로 지정했다는 점이다. 임미숙은 조 교수 어머니의 이름이다.

 

AI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 어머니 이름을 딴 장학금을 신설한 데에는 컴퓨터 공학 분야의 여성 인재 양성에 기여하고자 하는 고민이 담겨있다.

 

조 교수는 “저의 어머니는 대학을 졸업해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출산과 육아로 인해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남성과 여성이 만나 가정을 이룬 뒤 ‘출산과 육아’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면, 부부 중 여성이 직업을 포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1980년대의 사회적 인식이었다.

 

성별에 따른 고유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2000년대 초반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학부에서 전산학을 공부했던 조 교수는 “남학생은 전산학을 전공하고 여학생들은 생물학을 선택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장학금을 받은 여학생들이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 좋은 본보기를 만들고 그 모습에서 동기부여를 받은 다른 여학생들이 모여들어 보다 더 다양한 컴퓨터 과학자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은 것이 조 교수의 바람이다.

 

조 교수는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이슈에 대해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꼬집어내어 쉬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절대 인식하지 못할 것 같다”라며 “이번 기부를 통해 작게는 KAIST 크게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성과 대표성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류석영 KAIST 전산학부장은 “조 교수가 장학금을 기탁하며 매 학기 선정된 장학생들과 부모님의 식사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해왔다ˮ라며 ”세대와 환경이 다른 기부자와 수혜자가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자리를 마련해 임미숙 장학금에 담긴 뜻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도록 장학기금을 운영해 나갈 계획ˮ이라고 밝혔다.

 

지난 24일 KAIST 대전 본원에서 열린 기부 약정식에는 미국에 체류 중인 조경현 교수를 대신해 부친 조규익 씨와 모친 임미숙 씨가 참석했다.

 

임미숙 씨는 “아들은 삼성호암상이 개인이 아닌 자기 연구 분야 전체에게 주어진 상이기 때문에 상금을 사회와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아들의 마음이 담긴 전산학부 장학금 기부에 동참할 수 있게 되어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2021.06.30. 13:00>

 

조경현

                                                       

지난  24 일  KAIST  대전 본원에서 열린 조경현 뉴욕대 교수의 발전기금 약정식이 열렸다 .  미국에 체류 중인 조 교수를 대신해 부모인 임미숙 · 조규익 씨가 행사에 참석했다 .  왼쪽부터 이광형  KAIST  총장 ,  임미숙 · 조규익 씨 .[KAIST  제공 ]

 

***

 

지난 달 말일, 도하 각 언론매체에 경현의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이미 우리 부부는 24일 오후 5시 카이스트의 초청으로 총장 공관에서 장학기금 전달식과 만찬에 참석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기사로 접하고 보니, 그의 선행은 또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 정권이 탄생하고 나서 이른바 '여성 운동가들'의 거짓과 위선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은 만인공지의 사실이다. 그간 틈만 나면 여성의 인권을 고창해온 자들이[그것도 같은 여성들이!] 자기들 패거리의 남성들로부터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철저히 외면하는 이중성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켜온 것이다. '멍청하고 반역사적인' 문재인 정권 하에서 반복되는 이런 류의 사건들을 통해, 그간 여성의 인권은 이른바 '여성 운동가들'의 출세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음을 우리 사회는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여성의 현실을 배려해온 조경현의 선행은 그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특히 여성 과학인에 대한 배려는 여러 번의 상금 혹은 강연료 기부로 실행되어 왔고, 그 일이 '작지만 큰 울림'으로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 모두 그간 우리 사회의 '여성 인권 개선'에 대한 강조가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조경현의 이 선행은 조만간 기성세대의 허위와 가식에 대한 질타의 쓰나미로 증폭되어 낡고 공고한 '남성 중심 권력 카르텔'을 덮칠 것이다. 그 때가 도래하기를 기다리며 새로운 시각(視角)을 열심히 벼려두기로 한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21. 6. 3. 18:51

 

 

지난 4월 18일에 조경현[뉴욕대 교수]이 2021년 삼성호암공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보도를 접했고, 그로부터 2개월 반쯤 지난 시점[2021. 6. 1.]에 시상식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에코팜의 잡초들을 뽑고 있던 중 호암재단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5월 31일[월]에 상경, 다음 날 삼성호암상 대리수상자의 자격으로 시상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조경현이 직장[뉴욕대 컴퓨터과학과]에서 학기 중이고, 무엇보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는 현 시점에서 귀국하려면 격리 등 시간적인 부담을 감당할 수 없었으므로 재단은 부모인 우리 내외를 대리수상자로 부른 것이었다. 덕분에 평소 갈 이유도 기회도 없었던 신라호텔에서의 1박과, 그 안의 비싼 식당들에서 몇 끼의 식사와 잘 관리되는 수영장 사용 등 융숭한 대접의 호사를 누렸다.^^

 

6월 1일 오후 1시. 영빈관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다른 참석자들과 30분 정도 환담을 나눈 뒤 식장으로 옮겨 1시간 정도 리허설을 가졌다. ‘시상식에 무슨 리허설일까?’ 의아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극히 제한된 관계자들만 시상식에 참여했고, 6명의 수상자들[과학상 물리・수학 부문: 미 스탠퍼드 대 허준이(38) 교수/과학상 화학・생명과학 부문: 서울대 강봉균(60) 교수/공학상: 미 뉴욕대 조경현(36) 교수/의학상: 미 존스홉킨스대 이대열(54) 특훈 교수/예술상: 봉준호(52) 영화감독/사회봉사상: 방글라데시 꼬람똘라 병원 이석로(57) 원장] 가운데 조경현과 이대열 교수, 이석로 원장 등이 온라인으로 참여했으며, 행사 전체가 온라인으로 중계되는 까닭에 치밀한 시나리오와 리허설이 필수절차임을 곧 깨달을 수 있었다.

 

6명의 수상자들 가운데 직접 참석한 허준이 교수, 강봉균 교수, 봉준호 감독 등 3명과 김황식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들, 심사위원들, 그리고 다수의 보조요원들이 참석한 작지만 큰 규모의 행사였다. 특히 다수의 보조요원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빈틈없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생겨나기 전인 2019년의 행사 때는 전체 500여명의 인원들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재단 사무국장의 사회로 시상식은 정각 3시에 시작되었다. 김황식 이사장의 인사말, 김기문 심사위원장[포스텍 교수]의 심사보고, 부문별 시상과 수상소감[수상자마다 공적에 대한 설명과 수상, 수상소감의 세 부분으로 진행],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의 축하연주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행사의 전 과정이 온라인으로 생중계되었다. 수상자들의 수상소감 중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허준이: “수학은 나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아직 풀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들은 이해의 통합을 통해 해결되리라 믿는다.”

 

강봉균: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의 영광은 실험실에서 함께 고생한 많은 학생들과 연구원들의 피땀어린 노력 덕분이다.”

 

조경현: “인공지능 연구의 궁극적 목표는 지능이란 무엇인지, 이성이란 무엇인지, 감히 과학으로는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먼 인공지능 분야에 격려과 응원의 의미가 담긴 상을 받아 감사하다.”

 

이대열: “뇌의 기능과 기능장애에 대해 알고 싶고 연구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뇌 과학 선배 과학자들과 새로운 지식과 통찰을 나눠 준 공동 연구자와 학생들에게 감사하다.”

 

봉준호: “창작의 불꽃이 꺼지지 않아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중에 한 편 정도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고전으로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면 기쁠 것 같다.”

 

이석로: “한국보다 방글라데시가 나를 더 필요로 해 3년을 약속하고 왔지만 27년이 지나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봉사란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삶의 본질이다.”

 

***

 

수상자들의 말을 들으며 절감한 공통점 두 가지. 바로 ‘만남과 즐거움’이다. 그것들이 그들의 오늘을 만든 바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배나 선생, 혹은 우연한 기회를 ‘만나’ ‘즐겁게’ 탐구해온 것이 대성(大成)의 비결이었음을 이번에 깨닫게 된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해왔다고 했다. 탐구 과정에 어찌 어려움이 없었을까. 그럼에도 그런 어려움을 퉁치고 남을만한 보람과 희열이 있었으니, 그걸 즐거움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특히 허준이와 조경현에게서 그런 점이 두드러졌다. 두 사람은 30대의 청년들이다. 나는 지금까지 학생들에게나 아들들에게 ‘노력만이 성공의 유일한 열쇠’임을 강조해왔다. 개성과 끼를 한사코 죽여 가며 정해진 틀에 가장 신속하고 정확히 적응하여 남보다 먼저 앞자리로 나아가는 것. 그것만이 베이비 부머 세대인 우리에게 허용된 ‘살 길’이었다. 규격화된 인재를 만들어 집단적 진보와 대량생산에 즉각 투입하는 일만이 국가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개인들도 그에 부응하여 공식을 열심히 외우고 ‘쓸데없는’ 잡생각들을 하지 말아야 했다. 개성은 망치로 쳐서 들여보내야 할 ‘돌출’로서 집단문화에 대한 일종의 반역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타나기 시작한 ‘반역자’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허준이나 조경현 같은 신인류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허준이는 시인이 되고 싶었단다. 기형도 같은 시인에게 한동안 빠져 있었다고. 그러니 학부시절 규격화된 평가체계 안의 학점도 ‘당근’ 안 좋았고, 방황도 많이 한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를 강의실에서 만나 수학의 세계에 몰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경현도 마찬가지다. 사실 아버지인 나도 몰랐었다. 왜, 하고많은 선진 대국들을 놔두고 북유럽의 작은 나라 핀란드로 유학을 떠났을까. 그 점에 대하여 지금껏 의문을 갖고 있었지만, 그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수상자 소감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학과 사무실 앞에 놓여있던 핀란드 헬싱키 대학 석사과정 팸플릿을 선배로부터 받은 뒤 핀란드로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 핀란드에 가서야 전혀 알지 못하던 인공지능을 접하게 되었고, 작은 학회에 참여했다가 아침식사 자리에서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의 요슈아 벤지오 교수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 인연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캐나다의 그 대학으로 박사후 과정을 가게 되었다는 것. 캐나다에 도착한 다음 날 벤지오 교수가 과제로 던져 준 ‘기계번역’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

그의 다이내믹한 역정들 모두가 ‘만남’의 연속이었고, 기회와 모험의 연속이었으며, 두근거림과 즐거움의 연속이었다는 말 아닌가.

 

조경현이 호암공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서른여섯 밖에 안 된 녀석에게 무슨 호암상을 준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혹시 ‘호암상이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주는 상인가’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할 만큼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내 ‘시간적・문화적 지체(遲滯)’ 증상의 결과일 뿐임을 시상식에 가서야 깨닫게 되었다. 서른여덟의 허준이와 서른여섯의 조경현은 시대와 조류(潮流) 변화의 상징적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이제 즐겁고 다이내믹하게 무언가를 추구하면 삼십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수긍할만한 멋진 패러다임을 이룰 수 있을 만큼 시대가 변했음을 드디어 깨닫게 된 것이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만일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북적대는 하객들의 틈 속에서 이런 깨달음을 차분하게 얻지 못했을 것이다. 수상자들의 말을 새겨 들으며 순간적이나마 자아와 시대를 성찰할 수 있었던 것은 호암상 시상식으로부터 내가 얻은 망외(望外)의 소득이었다.

 

자식을 대리하여 상을 받는 자리. 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그 자리에서 예상 외로 깨달은 바가 컸다. 잘못 들어선 뒤 많이 나아가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올바른 길을 찾아 잘못 든 길을 되돌릴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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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21. 5. 22. 22:13

 

2021. 5. 20. 오후 2. ‘월곡고려인문화관의 감격스런 개관식이 열렸습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주택가 한 복판에 숨듯이 자리한 문화관의 개관식에 다녀왔습니다. 광산구청에 소속된 문화관은 김병학 관장이 25년 간 중앙아시아에 체류하면서 모은, 고려인 관련 역사문화자료들을 모태로 이루어진 공간입니다. 냉전 종식 이후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을 포함한 해외 한인들은 그들의 조국 대한민국으로 밀려들고 있지만, 정부는 물론 우리의 지식사회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보존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김병학 관장 같은 선각자가 없었다면, 이곳에서도 이런 쾌거는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서 들은 바에 의하면, 광산구에는 현재 6000~7000명의 고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려인들 뿐 아니라 10여개 종족이 넘는 소수민족 출신들도 함께 섞여 있다는 것이니, 이 작은 지역은 다양한 인종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잠시 동안 거리를 걷다보면, 여러 나라의 글자들로 이루어진 간판들이 예사롭지 않고 식당이나 까페에 앉아 있는 손님들의 면면 또한 낯설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단순히 고려인들 뿐 아니라 그들 나라의 원주민들도 고려인들과 함께 들어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김병학 관장. 만나던 첫날부터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 생각했고, 교유를 지속해온 15년 간 그 생각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저는 고전문학을 연구강의해 오던 중 중국 조선족의 문학과 재미한인문학을 만났고, 그 연장선에서 구소련 고려인들의 존재와 문학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지답사의 필요에 의해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찾게 되었고, 그 초입에서 만난 인사가 바로 김병학 관장입니다. 2007년 그를 만난 뒤로 우리는 지금까지 15년간 담담한 관계로 우정을 나누어 오는 사이입니다. 그의 자산은 겸손과 집념입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지극히 겸손하고 소박합니다. 그러나 일단 마음을 먹으면 그만 두지 않는 투지와 집념이 누구 못지않게 강합니다. 사실 중앙아시아처럼 한국 사람이 마음 붙이고 살기에 척박한 지역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5년을 그곳에서 지내왔습니다. 웬만하면 중간에 그만 두고 뛰쳐나올 수도 있었으련만, 왜 그는 투사처럼 그 긴 세월을 그곳에서 보냈을까요?

 

1992년 민간한글학교 교사로 카자흐스탄에 처음 들어갔고, 1995-1996, 2000-2003년 등 두 차례에 걸쳐 재소 고려인 한글신문 <고려일보>의 기자로 일했으며, 알마틔 국립대학교 한국어과 강사,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센터 소장 등으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냉전체제가 흔들리던 1980년대 말부터 구소련 고려인 동포들 사이에서 잃[]어버린 모국어를 부흥시키자는 운동이 크게 일어났고, 그에 부응하여 광주와 전남 지역의 유지들이 기금을 모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러시아에 각각 두 개씩의 민간한글학교를 세웠는데, 그것들이 그에게 중앙아시아 체류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던 것입니다. 그 때 그는 우리나라 바깥에서 우리의 전통과 언어를 지키고 있는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민간한글학교 교사에 자원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김 관장의 중앙아시아 생활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가 첫발을 내디딘 곳은 카자흐스탄의 우쉬또베 마을이었습니다. 이곳은 1937년 강제이주 때 고려인들이 처음으로 짐짝처럼 실려와 부려진 곳이었습니다. 첫 도착자들의 공동묘지가 아직도 처절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곳에서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고려인 사회의 어른들로부터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들을 얻어 들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과정에서 김 관장은 고려인의 역사와 슬픔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그의 첫 관심사는 고려인들의 언어나 문화였으나, 점차 강제이주를 중심으로 고려인들이 당한 역사적 시련에 공감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그곳에서 고려인과 공존하고 있는 많은 인종들의 삶 또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문화종교가 다른 민족들이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보면서 김 관장은 새로운 삶의 양식과 공존의 원리를 배우게 되었다고 술회합니다.

 

그는 고려인들의 언어문화역사를 탐구해오는 한편 시와 산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시인과 작가로 활동영역을 넓혔고, 러시아 말로 쓰인 시나 산문들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기억나는 것들만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병학 지음,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문예총서 3, 인터북스, 2009.

아바이, 김병학 역, <<황금천막에서 부르는 노래>>, 인터북스, 2010.

이 스따니슬라브, 김병학 역, <<모쁘르 마을에 대한 추억>>,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문예총서 5, 인터북스, 2010.

김병학 엮음, <<한진전집>>,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수고 문예총서 12, 인터북스, 2011.

조규익김병학, <<카자흐스탄 고려인 극작가 한진의 삶과 문학>>, 글누림, 2013.

김병학 편, <<김해운 희곡집>>,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학술자료총서 4, 학고방. 2017.

김경천, 김병학유가이 콘스탄틴 공역, <<경천아일록 읽기-김경천 장군의 전설적 민족해방 투쟁론(한글판러시아어판 합본>>,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학술자료총서 5, 학고방 | 2019.

 

이제 막 개관된 월곡고려인문화관은 우리 동포가 해외로 나가 보존해오던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자료의 형태로 갖고 돌아와, 이 땅의 우리에게 보여주는 보물창고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다른 지역의 동포들을 포함한 해외 동포 문학관으로 확대될 단초 역할을 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월곡고려인문화관과 김병학 관장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021. 5. 20.

 

백규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21. 5. 5. 23:18

 

 

 

내 아무리 바빠도, ‘대통령’이란 ‘걸맞지 않은 옷을 입은’ 인간 문재인의 마지막을 기록해 두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지금까지 사관(史官)이 사초(史草)를 기록하듯, 그의 언행들을 하나하나 마음속에 기록해온 나다. 이제 종말로 다가가며 비틀거리는 그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그의 ‘쌩얼’을 내 사적 공간 블로그에 갈무리해두기로 한다. 이 기록은 이승에서의 삶을 마치기 전 내 스스로 완성하고자 하는 가칭 <<베이비 부머의 대한민국 근대사>> 마지막 장의 사료(史料)로 요긴하게 활용될 것이다.

 

그가 취임하면서 나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고, 그 후 지저분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간간이 다음과 같은 말을 그녀에게 상기시키곤 했다.

 

 

“내 말을 분명히 기억해 두소. 저 사람은 대통령으로서의 철학도 바탕도 능력도 없는 인간이오. 아니 ‘사나이로서의 기백이나 결기’ 조차도 없는, 비겁한 얼간이요. 그러니 얼마 안 가 저 사람은 ‘내가 왜 대통령을 한다고 했을까?’라고 가슴을 치며 후회를 할 것이오!”

 

 

처음에 그녀는 이 말을 수긍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이런 투의 말을 동네방네 흘리고 다니다가 위해(危害)나 당하지 않을까 염려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소극적이나마 동조하는 투로 나온다. 이제 좀 깨닫게 되었다는 뜻일까.

 

 

최근 대통령이 자신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한 젊은이[김정식/34세]를 고소한 일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개인 문재인이 아니라 ‘대통령 문재인’이 고소했기에 문제가 된 사건이었다. 참고로 그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를 인용한다.

 

 

文대통령 비난 전단 살포, 모욕죄로 검찰 송치

 

김지원 기자

 

입력 2021.04.29 03:00 | 수정 2021.04.29. 03:00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 인사를 비난하는 내용의 전단을 뿌린 보수 성향 시민단체 대표가 모욕죄로 검찰에 넘겨졌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을 배포한 보수 성향 시민단체 대표 김모(34)씨를 모욕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28일 밝혔다. 김씨는 2019년 7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분수대 주변에서 ‘민족문제인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문 대통령과 여권 인사들을 비난하는 내용의 전단을 뿌린 혐의를 받는다. 당시 김씨가 뿌린 전단 앞면에는 문 대통령을 비방하는 문구가 담겼다. 뒷면에는 문 대통령을 비롯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 등 여권 인사들의 선대가 일제 강점기 때 어떤 관직을 맡았는지 등이 적혔다. 법조계에선 해당 전단에서 문 대통령을 비방한 부분은 모욕, 나머지 여권 인사에 대한 구체적 사실이 담긴 부분은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김씨에게 적용된 혐의인 ‘모욕죄’는 피해자 본인이나 법정 대리인이 직접 고소해야 기소가 가능한 친고죄다. 따라서 법리상 문 대통령 측에서 고소장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사건 당사자인 김씨에게도 고소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누가 김씨를 고소했는지는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비방[아니 '비판'이 정확하다!] 전단을 뿌렸다는 이유로 서른넷 젊은이를 경찰에 고소했고, 수사를 끝낸 경찰은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는 것이다. 오죽 화가 났으면 대통령이 그를 경찰에 고소까지 했을까마는, 참으로 기괴한 일이다. 대통령을 비난한다고 일일이 고소하기로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7, 8할은 그 대상이 되어야 할 일 아닌가. 고소를 하고 안하고가 ‘전단에 적어 뿌렸는가’ 여부에 달렸다면, 자잘한 형식논리에 사로잡힌 말장난일 뿐이다. 보라!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실상을 알기 위해  굳이 전단사건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문재인에 대한 성토는 이미 산 높이의 종이들과 장강대하(長江大河)의 언설(言說)들로 세상을 뒤덮고 있지 아니한가. 불도저로 밀어버린들 그 산이 사라질 것이며, 성능 좋은 양수기로 퍼낸들 그 말들의 강줄기가 말라붙을 것인가.

 

그 전단지 사건이 2019년도의 일인데, 어찌하여 그보다 2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 같은 필부들에게까지 알려졌는지 알 수는 없다. 짐작컨대 형편없는 이 정권이 언론의 숨통을 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언론의 숨통을 쥐고 임시방편으로 틀어막을 수는 있지만, 때가 되면 알려지게 되어 있다는 점을 이 사건은 분명히 보여준 셈이다.

 

설사 김정식 씨가 전단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도 대통령 스스로 그를 고소하는 일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사실을 적고 있음에도 ‘모욕혐의’로 걸어 젊은 국민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행태를 대통령이 보인 점은 참으로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은 대통령의 ‘자격 없음’과 국민을 멱살잡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대통령의 저급성’을 만천하에 유감없이 드러낸 일이자 국민적 자괴감을 촉발시킨 치명적 사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2021. 5. 5.], ‘고소를 취하 한다’는 대통령의 뜻을 대변인의 발표를 통해 듣게 되었다. 그 발표를 아무리 뜯어 보아도 경솔한 행위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는 없었고, 그 젊은이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적반하장의 말만 들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이 요구한 ‘성찰’의 의무를 도로 대통령에게 돌려주는 그 젊은이의 반응이 나왔는데, 그 내용이 크게 돋보였다.

 

페이스북에서 김정식 씨의 글을 찾아 읽으며, 대통령의 일그러졌을 표정이 떠올랐다. 사실 대통령이 정상이라면, 자신이 이런 젊은이를 상대로 고소한 일에 대하여 심히 자책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에게 ‘성찰’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런 대통령의 요구에 대하여 김정식 씨가 응답한 내용을 보며 나의 내면에는 감동과 함께 누군가에 대한 적개심이 동시에 일었다. 아, 그가 대통령을 이겼구나! 그것도 KO로!

 

무엇보다 김정식 씨의 글은 어른스러웠다. 조목조목 문재인을 다독이며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배려가 돋보였다. ‘먼저 누가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지’를 문재인에게 조근조근 알려주는 대목에서 나는 무릎을 치고 말았다. 말하자면 그는 뻗어오는 스트레이트를 맞받아침으로써 대통령을 KO 시킨 것이다.

 

이런 젊은이가 있어서 망가진 나라에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가 쏘아 올린 것은 ‘국가 질서 회복’의 희망적 신호탄이지만, 문재인에겐 자멸을 알리는 조종(弔鐘)이다. 또 이 일이 단순히 늘 있는 자잘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만은 아니다. 이 사건은 문재인의 민낯을 분명히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문재인 정권 붕괴의 신호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문재인의 ‘고소취하’ 발표에 대한 김정식 씨의 답글을 여기에 들어둔다.

 

 

 

김정식

 

*

어제 대통령의 '모욕죄 고소 철회 지시'에 대한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을 언론으로 접하고 답변을 남깁니다.

 

우선, 국민을 적폐ㆍ친일ㆍ독재 세력과 독립ㆍ민주화 세력으로 양분하여 나라를 반으로 갈라놓는 듯 한 정부와 여당의 행태에 분노해 대통령의 선친께서 일제시절 친일파가 아닌 이상은 불가능한 공무원 신분이었다는 의혹 등에 대한 답을 듣고자 했을 뿐인데, 개인의 입장에서는 혐오와 조롱으로 느껴지고 심히 모욕적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정상적인 이웃 국가의 기업을 '극우' 등의 표현을 빌어 규정짓는 행위는 국격 훼손 및 외교적 마찰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지양할 것을 당부드리며, 국격과 국민의 명예에 해악을 미친 것이 이웃 국가를 적대시하는 발언을 일삼으며 본인의 SNS 계정에는 해당 국가의 차마 입에 담지 못 할 음란한 영상 표지를 올렸다가 5분만에 삭제하고 제대로 된 해명조차 없는 대통령인지, 그 내용을 통해 '국민 모욕과 국민 분열을 멈추라'는 표현을 한 사람인지에 대하여 숙고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남북관계 등 국가의 미래에 미치는 것은 말장난 같은 지지결속용 쇼가 아니라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 개개인이 상대 국가보다 더 큰 경쟁력을 갖고 부강해지는 것임을 인지하여주시고,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의도와 능력을 가지고 온갖 위협을 가하는 '집단' 혹은 '국가'에 대한 방비는 '민족'이나 '큰 산봉우리'같은 단어에 매몰되지 마시고 정부차원에서 더욱 엄중하고 철저히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이지만 누구에게도 침범받지 않아야 할 인격과 행복추구권을 침해당한 것에 대해, 비록 저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는 하나,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자 같은 남성으로서만큼은 심심한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 복잡한 근대사를 진영의 이익을 위해 멋대로 재단하며 국격과 국민의 명예, 국가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행위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6년 11월 26일, "군대 안 가고, 세금 안 내고, 위장전입하고, 부동산 투기하고, 방산비리하고, 반칙과 특권을 일삼고, 국가권력을 사익 추구 수단으로 삼은, 경제를 망치고 안보를 망쳐 온, 이 거대한 가짜 보수 정치세력을 횃불로 모두 불태워버리자"며 대통령이 촛불시위대 앞에서 직접 했던 발언을 귀감삼아 혹여 스스로 불태워져야 하는 진영의 수장이 되지 않도록 유념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

개인의 입장에서는 나름 오래 기억될 만 한 일이 마무리되는 듯 합니다.

비록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나 이미 흐릿해진 기억들이지만, 되짚어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해 봅니다.

 

논어에 '군자의 마음은 평탄하고 너그러우며, 소인의 마음은 항상 근심에 차 있다(君子 坦蕩蕩, 小人 長戚戚).'는 말이 있지요.

 

이번 일로 인해 저의 마음엔 한동안 근심이 깃들었고, 모욕죄 고소를 취하까지 해주시는 너그러운 절대권력자 대통령의 마음은 평탄하였으니, 대통령은 군자에 가깝고 저는 소인에 가깝겠지요?

 

나름의 대의와 명분이 있었다고는 하나, 당시 정부여당의 반일감정 조장과 국민 갈라치기를 막고자했던 개인적 목표는 제대로 달성하지 못 하고 오히려 세상을 시끄럽게 한 것만 같아 부끄럽고 민망함이 남습니다.

 

저로인해 이번 사건에 함께 휘말려 기소의견으로 송치되었음에도 묵묵히 뜻을 모아주신 두 명의 나의 동지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응원해주시는, 마음을 나눠주시는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21. 4. 23. 19:57

 

 

어제 밤 내 블로그의 조회 수가 급상승한 채로 마감했고, 오늘 아침 일찍 100 건이 넘는 조회수를 보이더니, 오후 5시 현재 358회를 기록하고 있다. 오후 쯤 작은 아이로부터 경현의 뉴스에 관한 카톡을 받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현대차그룹에서 조경현을 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는 내용의 소식이 인터넷 매체에 뜨면서, 조경현을 검색하는 사람들이 급증했고 급기야 내 블로그까지 덩달아 분주해졌던 것이다.

 

많은 매체들에서 그의 소식을 전하고 있으나, 그 가운데 연합뉴스와 중앙일보의 기사만을 들기로 한다.

 

◆연합뉴스◆

 

현대차그룹, 세계적 AI 석학 조경현 교수 자문위원으로 영입

 

모빌리티산업 선도할 AI 기술 연구개발 방향 수립 등 자문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현대자동차그룹이 인공지능(AI) 분야 세계적인 석학을 잇달아 자문위원으로 영입하며 자체 AI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기계학습과 AI 응용 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로 손꼽히는 미국 뉴욕대(NYU) 조경현(36) 교수를 이달 초 자문위원으로 영입하고 협업 중이라고 23일 밝혔다. 조 교수는 현대차그룹 AI 분야 자문위원으로 현대차・기아 AI 기술의 연구개발 방향 설정을 지원하고, 주요 프로젝트 추진과정에서 필요한 AI 기술 개발 등 현안에 대해 자문한다.

 

조 교수는 인공 신경망 중 하나인 순환 신경망 내에서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길어지면 결과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문제점을 기존의 방법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기계학습으로 문장의 전후 맥락까지 파악해 번역하는 ‘신경망 기계번역’ 알고리즘도 개발했고, 사진・문자와 같이 서로 다른 형태의 데이터를 AI 학습을 통해 함께 처리하는 ‘멀티모달 AI 시스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뛰어난 연구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조 교수는 이같은 업적을 바탕으로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에 임용된 지 4년 만인 2019년 종신교수로 임명됐다. 작년 삼성이 신설한 ‘삼성 AI 연구자상’과 올해 호암재단이 선정한 ‘2021 삼성호암상’ 공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자체 AI 전문조직인 ‘AIRS 컴퍼니’를 중심으로 조 교수와 협력을 통해 미래차 개발 경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모빌리티 산업의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AI 기술 적용・발전방안 등을 구체화활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앞서 2019년 말에도 AI 분야 최고 석학으로 손꼽히는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토마스 포지오 교수와 다니엘라 러스 교수를 자문위원으로 영입해 AI를 확용한 차량 품질 향상과 로보틱스,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등 다양한 신규사업 전략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 이중 포지오 교수는 계약이 만료된 상태이며 러스 교수는 여전히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현대차・기아는 AI, 자율주행, 차량공유, 모빌리티, 전동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투자와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AI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조 교수와 함께 모빌리티 산업에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동시에 세계적인 전문가, 기관과의 다양한 협업을 추진해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 시대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중앙일보◆

 

삼성 이어 현대차도 ‘30대 AI 전문가’ 조경현 교수에 러브콜

 

현대자동차그룹이 최근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주목받는 30대 한국인 교수를 자문위원으로 선임했다. 현대차뿐 아니라 삼성도 먼저 러브콜을 보냈을 정도로 AI 영역에서 손꼽히는 인물이다.

 

현대차그룹은 23일 조경현(36) 미국 뉴욕대학교(NYU) 교수(컴퓨터과학과)를 이달 초 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1985년생인 조 교수는 200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컴퓨터과학부를 졸업했다. 2015년 뉴욕대 교수로 임용된 지 4년여만인 지난해 종신교수로 승진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조 교수는 최근 현대차의 AI 담당 연구진과 협업을 시작했다. 앞으로 현대차의 AI 연구개발 방향 설정을 지원하고, 주요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문 역할을 맡는다.

 

AI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 조 교수는 최고 수준의 연구자로 꼽힌다. 단순한 언어 번역이 아닌 언어에 이미지를 더하는 방식인 ‘신경망 번역’을 통해 의료・바이오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조 교수는 AI 데이터 과정에서 기존 알고리즘보다 구조적으로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인 해법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에서도 조 교수를 눈여겨봐 지난 해 11월 ‘삼성 AI 연구자상’에 선정했었다. 당시 수상자(5명) 가운데 조 교수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는 올해도 삼성이 후원하는 ‘2021 삼성호암상’ 공학상을 받았다. 그는 미국 기업 페이스북의 객원연구원으로도 활동했었다.

 

현대차는 자체적인 AI 개발 조직인 ‘AIRS 컴퍼니’를 중심으로 조 교수와 협력을 지속할 계획이다. 자율 주행, 차량 공유, 전동화 등 새롭게 떠오르는 모빌리티(이동수단) 분야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동시에 세계적인 전문가와 다양한 협업을 통해 미래 스타트 모빌리티 시대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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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