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4. 13. 15:33

 



 




오십의 깨달음

-성선경의 시집을 받고-

 

 

며칠 전, 학과 학술답사여행 중이었다.

학과장 이경재 교수의 생일을 용케도 알아낸 착한 학생들.

그들이 점심 상 앞으로 케익을 안고 왔다. 이 교수에게 나이를 물으니, ‘40’이란다.

그가 나의 40’에 대해 물었다. “세상 무서운 것 없던, 참 좋은 때였소.” 내 대답이었다.

나의 50’을 그가 또 물었다. “참으로 초조해집디다.” 내 대답이었다.

 

오늘 점심 후 찻집에서 독문과 김대권 교수와 나이에 대한 그 문답을 다시 반복했다.

그는 왜 초조했냐고 물었다. “50 되기 전 몸에 돋은 가시 털과 입에 붙은 칼날을 모두 갈아 없애려 했는데, 여전히 형형한 빛을 발하는 것 같아서 초조했었소.” 내 대답이었다.

 

연구실에 들어오니, 함께 늙어가는 제자 성선경 시인의 새 시집이 도착되어 있었다. 책장을 넘기니 <오십>이란 시편이 실려 있었다. 그가 내 마음을 훔쳐보았던 걸까. 다음과 같은 시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둥글어진다는 것

늙음이 넓음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온몸을 둥글게 둥글게 만다는 뜻

햇살이 잘 닦은 숟가락같이 빛나는 정오는

이제 절반을 지났다는 뜻도 되지만

아직 절반이 남았다는 말도 되지

나는 방금 전 오전이었고

나는 지금 금방 오후에 닿았지

어제의 꽃은 씨방을 키우는 중이고

어제의 나무는 막 붉게 물드는 중이지

천명(天命)을 안다는 지천명

아주 둥글어진 해

늙는다는 것은 둥글어진다는 뜻

오후가 나의 넉넉함과 이어지지 않아도

온몸을 둥글게 둥글게 만다는 뜻

햇살이 기울어 그림자가 동쪽으로 서는 시간

이제 절반을 지났다는 말도 되지

씨방 속에 또 싹이 나고

단풍 속에 물관이 선명하지

나는 방금 전 오전이었고

나는 지금 금방 오후에 닿았지

<66~67>

 

그렇다. 오십을 십년 가까이 넘기고 나서야 내겐 비로소 오십이 보였다.

그 점을 콕 집어 가르쳐준 시인은 나의 선생님이다.

그래서 지금 그가 고맙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4. 6. 07:20

교수채용 비리유감

 

 

 

 

 미국의 대학에 잠시 체류하고 있으면서, 교수 채용의 과정을 그 대학의 교수로부터 직접 듣게 되었다. 채용 심사가 완료되기까지 대략 5개월 정도 걸리는데, 서류심사와 전화 인터뷰를 통과한 응모자들 가운데 채용 예정인원 몇 배수의 인원을 직접 불러다가 며칠 동안 벌이는 여러 차례의 대면 인터뷰, 발표회 등 그 심사절차가 자못 복잡하고 번거로운 점이 놀라웠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심지어 호텔 투숙 과정 및 식사시간에도 예리한 평가의 눈이 따라다닌다니, 교수 한 사람을 뽑기 위해 미국의 대학들이 투자하는 돈, 시간, 정력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심상하게 던지는 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모두 체크한다는 것이었다. 개별 면담을 통해 응모자의 전공수준이나 향후 연구계획 등 응모자의 수월성을 평가한 뒤 교수들은 회의를 갖고 각자의 판단에 대하여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고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한 사람의 교수를 뽑는 과정이 끝나는 것이었다.

 

 교수 한 명을 채용하기 위해 학과의 교수들과 스탭들이 총동원되고, 학교 당국도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 미국의 대학들이었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신입생을 뽑기 위해 학교와 교수들이 홍역을 치르는데, 미국의 대학들은 교수를 뽑기 위해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좋은 교수들이 좋은 대학을 만들어 놓으면, 돈 들여 선전을 하지 않아도 학생들이야 제 발로 찾아오는 게 아닌가. 미국의 대학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니는 것도 이런 점에서 당연했다. 공정하고 엄정한 심사를 통해 채용된 교수들의 수월성이 미국 대학들의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나라 대학들이 눈앞에 떠오르면서 부끄러움과 절망감이 밀려들었다.

 

  ***

 

 지난 정권 시절 저지른 이웃 J대학의 비리들이 최근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세한 건 관심도 없고 복잡한 사안이라 잘 모르지만, 그들이 받고 있는 교수 채용 상의 비리 의혹은 참으로 흥미롭고도 뻔했다. 보도에 의하면, 그 대학은 국악분야의 교수를 한 명 채용키로 하고 20142학기에 초빙 공고를 낸 모양이었다. 그런데, '가야금 전공자, 음악이론 전공자, 영어 수업 가능자' 등의 조건이 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만한 사람이 국내엔 단 한 사람만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사람을 뽑으려는 꼼수였던 것이다. 거추장스럽게 새삼 검찰 수사까지 필요한 일이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당시 앙앙불락(怏怏不樂)하던 몇몇 국악 전공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입을 모아 그 대학과 함께 지금 혐의를 받고 있는 모 인사를 성토하면서도, 드러내놓고 반발하지 못한 점을 지금서야 깨닫게 되었다. 국악계 인사로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권력을 잡아 본 게 아마 유사 이래 처음일 것이라는 그들의 자조 섞인 한탄을 당시에는 귓전으로 들어 넘긴 나였다. 그래, 불쌍한 교수 예비군들이 어찌 총장 출신의 청와대 수석에게 덤벼 들 수 있었으랴?

 

 그러나 그게 어찌 이 대학 이 분야만의 일일까? 모든 대학들이 학연/혈연/지연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내 사람 심기[뽑기]의 카르텔과 그저 고만고만한 사람들만 고르는 안이함에 매몰되어 있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자기비하일까? 자기 대학 출신으로 70~80%, 심지어 90% 이상의 교수를 뽑아놓고도 희희낙락하는 게 대한민국의 대학사회다. 모교 출신 비율을 법으로 제한하려 하자 학과가 다르면 된다고 강변하며 같은 대학 다른 학과 출신의 학자를 교수로 뽑는, 그런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그렇게 해놓고도 학문적 수월성을 강요하는 게 우리나라의 수준이다.

 

 교수를 뽑으면서 아예 자기 대학 출신은 서류도 내지 못하게 규정해 놓은 미국의 대학들을 본다면, 목하(目下) 진행되고 있는 대학 붕괴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이른바 나라를 경영한다는 자들이 거대한 카르텔의 중심이 되어 자행했다는 짓을 보며, 북한의 핵무기를 걱정을 하는 국민들이 우스울 뿐이다. 그야말로 이미 뿌리가 다 썩어 바람만 불어도 넘어질 고사목이 저 산 너머에서 날아올 악동(惡童)의 돌멩이를 걱정하는경우가 아닌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3. 28. 17:48

 


백규서옥을 방문한 아리안 군

 

 


백규서옥을 방문한 유리 군

 

 

언어구사의 천재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몇 년 전 고려인들을 찾기 위해 벨라루스의 민스크에 간 적이 있다. 공항에서 호텔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들판과 자작나무 가로수 길이 인상적이었다. 벨라루스는 1922년 소련에 편입되어 1991년까지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존속하다가, 1991년 독립 선언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와 함께 독립 국가 연합(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의 창설을 주도한 나라다. 당연히 공용어는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였다. 동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남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북쪽으로는 라트비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니, 이를테면 다수의 민족국가들 속에 파묻힌 육지 속의 섬과 같은 나라였다.

민스크 도착 다음 날 벨라루스 국립대학 한국어과의 요청으로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게 되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학생들을 통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곳 사람들의 혈통과 말이었다. 강의실에서 젊은 학생들을 만났다. 한국어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서는 영어를 썼는데, 소통의 정도는 기가 막힐 정도였다. 얼굴 모습들은 슬라브 계통의 백인들이었으나, 피부 한 꺼풀만 벗기면 다양한 모습들이 드러났다. 다음 날부터 학과에서 소개해준 두 명의 학생들이 민스크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한 사람은 아리안(Aryan), 또 한 사람은 유리 킴(Yuri Kim)이었다.

 

#1 아리안의 할머니는 이란인으로서 현재 테헤란에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에 관해서는 미처 묻지 못했는데, 그의 얼굴 모습으로 보아 할아버지가 아리안족인 듯 했다. 그러니 그의 아버지는 이란과 인도계의 혼혈일 것이고, 그 혼혈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출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것이 아리안이었다. 내 관심은 그가 지닌 외국어 능력이었다. 그는 이란어, 러시아어, 벨라루스어, 우크라이나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한국어에 이미 능통해 있었고, 막 일본어에 손을 대고 있었음은 물론 중국어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한자도 제법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어머니로부터 젖을 받아먹듯 우크라이나어와 벨라루스어를 마더 텅(mother tongue)으로 받았고, 할머니 혹은 아버지로부터 이란어를 받았으며, 중학교~대학에 이르는 학교 교육에서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한국어를 익힌 것이었다. 대개 마더텅으로 두, 세 개의 언어를 습득한 경우, 마음만 먹으면 또 다른 언어를 배우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을 그들로부터 알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한국에 와서 모 대학의 어학코스를 최우등으로 마치고 돌아가 벨라루스 국립대학에서 대학원을 이수하면서 어학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2 내가 벨라루스에 머무는 동안 내게 친절을 베푼 또 하나의 벨라루스 청년이 유리였다. 워낙 한국어에 출중하여 당시 학부생의 신분임에도 한국어 강사로 활약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던 할아버지가 고려인이긴 했으나, 할아버지 자신이 고려 말을 버린 지 오랜 상태였을 뿐 아니라 그들은 서로 왕래도 없었다. 당연히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서 한국인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우자마자 마스터했다고 한다. 그의 언어 내력이 궁금하여 가계를 캐물었다. 할아버지는 고려인이고 할머니는 타타르인으로서 카자흐스탄 사람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벨라루스로 이주하여 벨라루스인 여자와 결혼하여 유리를 낳은 것이었다. 화학 전공자였던 외할아버지와 프랑스어 음운론 교수였던 외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어머니는 편집 기자였고, 아버지는 가구 및 건축 디자이너였다. 그러니 그가 태어나자마자부터 접했을 언어적 다양성의 실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를, 아버지로부터 카자흐스탄어와 러시아어 및 벨라루스어를, 그리고 간혹 아버지로부터 단 몇 단어라 할지라도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고려어의 냄새 정도는 맡았던 것 같다. 따라서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3개 국어를 마더텅으로 물려받은 것이고, 그 후 자라는 과정에서 다민족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학교교육을 통해 여러 외국어들을 덤으로 배우게 된 것이었다. 벨라루스어, 러시아어, 불어, 영어, 독일어,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는 그는 지금 한국에서 공부하는 중이다.

 

일생을 노력해야 겨우 영어 하나를 외국어로 구사하게 되는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그들이었다. 참으로 부러운 그들이었다. 간혹 외국에 나가면서 몇 개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을 흔히 만난다. 그러면서 외국어에 관한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뒤처진 사람들이 또 있을까?’라는 한탄을 매번 하게 된다. 그러면서 말은 혼임을 깨닫는다. 혼은 물려받는 것일 뿐 흉내를 내거나 노력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3 최근 나에게 이쁜손녀가 하나 생겼다. 이제 돌을 갓 지난 녀석을 보며 나는 언어 학습의 과정과 실상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다. 녀석이 말을 배워가는 과정과 방법이 참으로 신기하다. 제 어미가 젖병을 물리는 동안 녀석의 눈길 멈추는 곳이 예사롭지 않다. 바로 엄마의 얼굴인데, 그 가운데도 입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었다. 녀석은 무얼 보고 듣는 것일까. ‘자 이제 다 먹었네? 그럼 일어나 트림을 해야지!’라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엄마 입술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는 듯 했다. 말하자면 녀석은 엄마 입술의 움직임만으로도 그 말을 알아듣겠다는 듯 반응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오묘했다. 그러다가 엄마의 말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한 단어, 두 단어, 세 단어...녀석이 흉내 내는 엄마 말의 분량은 주간 단위로 늘어나는 것이었다.[나는 사실 짧으면 한 주, 길면 두 주 정도에 한 번씩 녀석을 만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 사실은 매일 달라지고 있을 것이다!] 이제 세 음절짜리 단어들을 흉내 내어 구사하기 시작했고, 문장 단위의 말을 내뱉으려 할 땐 , 하고 소리치며 손짓을 하기에 이르렀다. 말 뿐 아니라, 행동거지도 제 부모와 우리를 흉내 내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따라쟁이라는 애칭으로 놀리기도 하는데, 바로 그 점에 언어 학습의 요체가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인류가 세상에 출현한 이래 말이란 그렇게 전승되어 온 것이다. 젖을 먹을 때 엄마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마더 텅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엄마가 다중언어 구사자(multilingual speaker)’라면, 말에 따라 순위는 생기겠지만, 그 언어들이 그대로 아기에게 전수되지 않겠는가. 바이링궐(bilingual), 트라이링궐(trilingual) 등 흔한 다중언어 구사 엄마들이야 기분 내키는 대로 자유자재로 여러 언어들을 갖고 아기와 소통할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런 엄마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이미 다중언어 구사자가 될 소지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

 

우리의 실상을 보자. ‘단일 언어를 쓰는 단일민족이란 말을 자랑처럼 달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같은 말을 쓰면 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 소통 또한 더 잘 되겠지.’라는 우리의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세계화의 시대에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지금 세계에서 유일하게 같은 말을 쓰는동족끼리 총부리를 마주대고 으르렁거리는 곳이 바로 한반도다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부모 자식 간에, 형제자매 간에, 좌파와 우파 간에 툭하면 같은 말을 무기로 죽고 죽이는 싸움판을 벌이는 곳이 바로 이 나라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 사이에 죽고 죽이는 싸움판을 벌이는 데, 대체 단일어를 쓰는 단일민족이 무슨 자랑거리란 말인가.

 

눈만 뜨면, 베트남에서 필리핀에서 시집 온 새댁들을 무시하고 구박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들이 한국어를 잘 몰라서 말이 안 통하니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이다. 우리말을 모르는 것을 차이 아닌 차별의 근거로 내세우려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다. 더 고약한 것은 우리말을 모르는 백인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우리말을 모르는 유색인들은 매몰차게 무시하려 드는 일이다바로 우리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못난 식민주의 근성 때문이다.

 

그들이 한국어를 잘 모르면 우리가 먼저 베트남어를 공부하고 필리핀어를 배우면 안 되나? 우리 자식들에게 시집와서 손자 손녀들을 낳아주는 베트남 필리핀 며느리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인가그러니 외국인 며느리들은 구박의 대상이기는 커녕 오히려 우리가 떠받들어야 할 보배들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낳아 이중언어 구사자로 키워줄 훌륭한 어머니요 선생님들 아닌가. 아이를 낳아 젖 먹여 키우는 과정에서 우리말과 베트남 말을 '마더 텅'으로 동시에 전해준다면, 나중에 그들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우수한 국제인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나라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우린 그들을 소중하게 대접해야 한다. 그들이 당장 우리말을 못하고 못 알아듣는다면, 우리가 먼저 그들의 말을 배워서라도 그들의 마음을 잡아두고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자리를 찾아 우리나라에 온 동남아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그들이 우리보다 좀 더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 우리말에 서툴다는 이유 때문일 텐데, 그들 역시 우리에겐 소중한 보배들이다. 우리가 마다하는 궂은 일들을 달게 맡아하는 그들. 생각하기에 따라 그들은 우리의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참 못 말릴 정도로 무지하고 거친 사람들이 나를 포함한 오늘날의 한국인들이다. 인종의 전시장인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 나가서는 입도 뻥긋 못하면서, 좁디좁은 내 땅에만 들어오면 안방 호랑이 노릇을 잘도 하는 우리의 잘못된 습성이 바로 언어능력 콤플렉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인데, 이런 판단에 반론을 제기하실 분 있으면 말씀들 좀 해 보소서!

 

 


벨라루스 국립대학에서 유리 김, 샤두르스키 학장과 함께

 

 

 


벨라루스 고려인협회에서 만난 고려인들

 

 

 


밥을 받아먹는 YB

 

 


엄마를 흉내내는 YB

 

 

YB and her Mom walking on the road by the Han River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3. 22. 23:22

 


앤드류를 다그치는 플렛처

 

 


악단원에게 악을 쓰는 플렛처

 

 

 


지휘 중인 플렛처

 

 

 

 

영혼을 저미는 자학의 망치질, 허무로 끝난 전율

-영화 위플래쉬(whiplash)’를 보고-

 

 

 

                                                                                                                                                조규익

 

아내의 손에 이끌려 나간 극장 한 구석. 수영을 마친 후의 노곤함을 어둠 속의 단잠으로나 풀어볼까 하고 푹신한 의자에 몸 전체를 맡긴 채 두 다리를 뻗었다. 그 순간, 귀를 찢는 드럼 소리. 그리고 반들거리는 머리통과 형형한 눈빛의 늙은 터프가이. 고약하게도 고것들이 내 잠의 싹을 싹둑 잘라 버렸다. 첫 장면에서 나는 드럼을 사이에 둔 두 미치광이, 음악교수 플렛처(Fletcher)[J.K.Simmons ]와 그의 제자 앤드류(Andrew)[Miles Teller ]를 만난 것이다. 닫으려는 눈과 마음을 사정없이 두드려대는 두 시간 동안 잔인한 긴장과 전율 속에 떨어야 했다.

 

TV를 통해서였는가.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며칠 밤낮 가마에 구워낸 수십 개의 도자기를 깨버리는 장인의 엄숙한 낯빛을 본 적이 있다. ‘깨어져 나가는 도자기의 단말마 소리가 정신의 결을 저리도 시퍼렇게 벼리는구나!’라는 깨달음을 그 장인의 눈빛에서 얻은 적이 있다. 내려치는 도공의 망치 언저리엔 칼날보다 날카로운 서슬이 서릿발처럼 일어서고 있었다.

보아하니 한두 번 깬 망치질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수나 어리석음을 용납하지 못하는 수도자의 자세가 그 속엔 깃들어 있었다. 자신의 심장과 영혼을 한없이 저미는 자학의 망치질이었으나, 심장과 영혼이 한 점 한 점 저며져 날리는 듯 미세한 조각들은 눈빛에서 비쳐나는 광기를 더욱 날카롭고 엄숙하게 갈아대는 것이었다. 단 하나의 그릇을 남겨 놓더라도 제대로 된 것 아니면 모두 때려 부수리라! 아마 그는 그런 심산이었을 것이다.

내 평생 인간의 행위에서 비장함과 숭고함을 느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내 마음으로 해석된 그의 모습은 참 슬프게도 멋져 보였다. 슬프게 멋진 모습을 다시 한 번 해석한 결과는 프로정신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소박한 꿈 하나를 마음속에 갖게 되었다. 무엇을 해서 밥을 먹고 살든 저 정도의 프로정신으로 살리라. 그러나 언제부턴가 적당한 이유를 붙여 깨지고 금가고 뭉그러진 도자기도 품에 안게 되었다. 내 자신과 타협한 뒤 그 원칙을 스스로 깨버린 채, ‘좋은 게 좋다는 편안함에 매몰되어 취한 듯 살아왔다. ‘그만 하면 잘 했어!라는 도취(陶醉)의 잣대로 나 자신을, 내 제자들을 대하며 살아오게 된 것이다. 

 

앤드류를 발견한 플렛처 교수. “세상에서 가장 쓸 데 없는 말이 그만 하면 잘했어야!라고 소리치는 그는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완벽 추구의 광기에 사로잡힌 악한이었다. 천재 드러머의 소질을 지닌 앤드류도 그에겐 사랑스런 제자이기 전에 그 광기로 다듬어 최고의 연주자로 만들어야 할 미완의 대상일 뿐이었다. 앤드류 역시 그의 광기에 전염되어 그를 제압하려는 욕망을 내 보인, 또 다른 광기의 소유자였다.

광기와 광기가 맞부딪쳐 좌절하는 듯하지만, 결국 앤드류는 최고의 물건이 되고 만다. 최고의 물건이 되는 데서 영화는 끝나지만, 관객들에게 남겨진 긴긴 여운. 감독이 노린 건 바로 그것이다. 관객들은 다들 저마다 두 광인(狂人)의 미래를 점치고 해석하는 데 당분간 몰두하리라. 해석의 짐을 관객들에게 넘긴 감독. 어쩌면 감독의 능력은 거기까지일 것이다.

 

***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전율에 떨었다. 영화 내내 울려 퍼지는 드럼소리와 심벌즈의 파찰음 때문만이 아니었다. 영화 내내 플렛처가 크레센도(crescendo)로 끌어올리는 광기는 내 피를 덥혀 주고 생기를 불어넣는 마약이었다. 내가 그에게서 경험한 전율은 행복한 흥분이었다. 그래서 내게 플렛처는 결코 악한이 아니었다. 악한 아닌 그가 저지르는 위악(僞惡). 내게 그는 최고를 위해 멀쩡한 도자기들을 망치로 때려 부수는 도공이었다. 비로소 나는 나를 떠나간 도공을 화면으로 재회한 것이다. 앤드류가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연주가로 살아갔는지, 플렛처가 자신의 꿈을 이루어서 행복했는지, 나는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다만 그 짧은 한 순간의 클라이막스가 필요했던 것이다. 도공이 최고의 한 작품만을 원했듯, 플렛처 역시 최고의 한 사람만을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최고란 단 한순간의 사건인 것이다. 그래서 허무하다.

 

 

 


단원들 앞에서 지시하는 플렛처

 

 

 


마지막 부분-피를 흘린 상태에서 연주하는 앤드류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