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6. 26. 15:49

 

 

안수산 선생

 

 

노스리지(Northridge) 선생의 자택에서
선생 모자와 백규 가족

 

 

 


자택에서 책을 중심으로 환담하는
선생과 백규 가족

 

 

 


자택에서 환담하는 선생 모자와 백규 가족

 

 

 

 

, 안수산(Susan Ahn Cuddy) 선생님!

 

 

1991116. 1월이 캘리포니아에 비가 잦은 계절이긴 하지만, 그 날은 약간 햇볕이 들었었지요. 귀국을 며칠 앞 둔 시점에 우리 가족은 미리 약속했던 대로 안수산 선생님 댁을 방문하게 되었지요. 우리가 머물고 있던 UCLA의 대학 아파트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소도시 노스리지(Northridge). 가로수 잎이 참하게 깔린 한적한 동네 한복판의 깔끔하고 나지막한 단층집이었지요. 반색을 하며 맞아주시는 선생님과 외아들 필립(Philip Ahn Cuddy)의 표정이 정겹게 다가오더군요. 미리 연락을 하셨는지, 잠시 후 인근에서 변호사 일을 하고 있는 지성적 마스크의 따님 크리스틴(Christine Ahn Cuddy)도 도착했고요.

 

도산 선생의 유품들을 일일이 보여주시고 설명해 주시는 열정을 통해 도산 선생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을 짐작할 수 있겠더군요. 가족 단위로 방문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였을까요? 유독 우리 아이들을 귀여워해주시더군요. 도산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한 자부심, 도산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펼치던 당시 어른들을 추억하시며 눈시울을 적시곤 하셨지요. 감동이었습니다.

 

1915116일 생. 선생님은 1942년 스물일곱의 나이로 미 해군 해군 최초의 여성 포격술 장교로 1946년까지 복무하셨지요. 전역 후 미 의회 도서관과 연방 국가안전보장국(NSA)에서 비밀정보 암호분석가로 활약하셨고, 1959NSA에서 은퇴할 때까지 워싱턴 D.C.에서 300여명의 학자들에게 동서 냉전관련지식과 정보를 교육하는 일을 맡기도 하셨지요. 은퇴 후엔 노스리지로 돌아와 가족이 운영하던 중국 식당 필립 안의 문게이트(Phil Ahn's Moongate)'1990년까지 도우셨답니다. 우리가 만난 때는 그 일로부터 벗어나서 쉬고 있는 중이셨고요.

 

우리가 찾아간 그 날이 바로 선생님의 84세 생신이시더군요. 전화를 드렸을 때 이 날 만나자고 말씀하신 것도 당신의 생신날이기 때문이었음을 그 자리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지요. 우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저녁 무렵이 되자 파티에 함께 가자고 하시면서 우리를 동네의 한 레스토랑으로 인도하셨어요. 이미 그곳엔 많은 친척들과 지인들이 모여 좌정해 있데요. 우리 가족에 대한 소개가 끝나고 우리는 따뜻한 환영의 박수를 받았지요. 특히 선생님의 남동생이신 필립 선생은 파티 내내 우리 아이들을 쓰다듬으며 정을 표시하기도 하셨어요.

 

파티가 끝난 한밤중 재회를 약속하며 헤어졌으나, 몇 년 뒤 재외동포재단 사무원의 실수로 서울에 오신 선생님을 뵙지 못했고, 결국 오늘 선생님의 부음을 접하게 되었네요. 그 분의 외 아드님 필립은 몇 년 전 우리 집을 방문해 식사를 나누며 선생님과의 추억을 되새기도 했으나, 어찌 선생님을 친히 뵌 것만 하리오?

 

천만리나 떨어진 미국 땅에서 조국 사랑을 실천하시다 돌아가신 선생님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2015. 6. 26.

 

조규익 절

 

 

 


1999년 84세 생신연에서 게잌을
자르시는 선생님

 

 

 

 


하객들과 함께 한 생신연

 

 

 


생신연에서 선생님의 남동생과 백규 & 경현

 

 

 


선생님의 아드님 필립과 백규

 

 

 


젊은 시절의 선생님과 남자 형제들

 

 

Posted by kicho
출간소식2015. 6. 25. 16:32

 

 

 

 

일을 추진한 지 대략 7~8개월 만에 <<한국문학개론>>(새문사)이 세상에 나왔다. 시대와 학생들이 바뀌었음에도 한국문학계 전반이 시름에 빠져 있기 때문일까. 좀처럼 새로운 한국문학개론이 나올 기미가 없었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었다. 이런 갈급(渴急)의 상황에서 이 <<한국문학개론>>이 튀어나온 만큼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으리라 본다.

이 책의 출간 의도는 다음과 같은 머리말에 명료하게 드러난다. 그 글을 여기에 붙임으로써 이 책의 특징과 의미를 널리 공유하고자 한다.

 

 

머리말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국문학개론의 체제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되, 이름을 한국문학개론으로 바꾸고 새 얼굴의 필자들이 참여하여 논조와 방향의 참신함을 추구고자 한다.

 

세상이 급격히 변한다하여 한국문학개론도 그에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한국문학에 관한 관점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고, 바꾸는 것이 꼭 지혜로운 일도 아니다. 이 단계에서 체제와 내용 등 모든 것들을 바꾸는 모험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이 책이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혹은 앞 세대와 뒷 세대의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사실들의 부정확함이나 해석상의 오류들에 대한 수정과 함께 새로운 해석적 견해들을 덧붙임으로써 완성단계의 혁신적 한국문학개론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우리는 자부한다. 독자들은 각각의 장르에서 필자들이 말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리라 보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 소임 중의 큰 부분이다.

 

한국문학 가운데 주로 고전문학을 해석설명해온 것이 한국문학개론의 대체적인 모습이다. 조만간 고전-현대의 시간적 통합이나 남북한-해외한인의 민족 통합을 지향하는 한민족문학개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 우리의 미래지향적 관점이다. 이 책은 그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과도기적 산물들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편의상 다음과 같이 16개 분야로 나누어 집필되었다.

 

총론: 조규익(숭실대학교 교수)

고대시가향가: 서철원(서울대학교 교수)

고려속악가사: 허남춘(제주대학교 교수)

경기체가: 최재남(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악장: 조규익(숭실대학교 교수)

시조: 신경숙(한성대학교 교수)

가사: 윤덕진(연세대학교 교수)

민요: 권오경(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무가: 표인주(전남대학교 교수)

신화전설민담: 송효섭(서강대학교 교수)

국문소설: 차충환(경희대학교 교수)

한문소설: 정출헌(부산대학교 교수)

판소리와 창극: 김기형(고려대학교 교수)

전통희곡: 전경욱(고려대학교 교수)

속담수수께끼: 최원오(광주교육대학교 교수)

고수필: 한길연(경북대학교 교수)

한문학: 이종묵(서울대학교 교수)

 

쉽지 않은 주문에도 최고의 글들을 주신 필자 여러분, 학술출판의 외길을 꼿꼿이 걸어가시는 새문사 이규 사장님, 프로의식으로 무장한 편집부원 여러분. 이 분들 덕에 멋진 책이 나왔음을 기뻐하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15. 5. 20.

 

필자들을 대표하여 조규익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6. 10. 06:47

21세기에 염병을 치르며

 

 

내가 얼굴도 못 뵌 외할머니는 1940년대 초 이 땅을 휩쓴 염병[染病, 장티푸스]의 와중에 동네사람들을 간병하다 돌아가셨다. 당시 염병이 돌자 마을 바깥에 천막을 쳐 놓고 고열과 설사로 신음하던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간호하시다가 그 병에 감염되신 외할머니. 모두가 존경하던 여장부이셨다. 그러나 정작 할머니는 누구의 간호도 받지 못한 채 40대 중반에 세상을 뜨셨다. 병원도, 약도, 정부의 도움도 없던 그 시절. 자고나면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던 참상이 몰고 온 건 공포와 절망이었을 것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가마솥에 물을 끓이시며 마을 밖으로 격리시킨 환자들을 돌보신 것도 어쩌면 그 절망과 공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으리라. 토하고 설사하는 환자에게 뜨거운 물이라도 마시게 하고, 배설물로 더러워진 그들의 몸을 닦아내며, 그들이 벗은 옷을 가마솥에 푹푹 삶아 말리시던 할머니. 지금껏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시며 그 광경을 말씀하곤 하신다.

 

***

 

2015년의 한 복판에서 우리는 또 다른 얼굴의 염병을 만났다. 물론 그 양상은 당시의 몹쓸 병인 염병과 다를 것이다. 병원도, 약도, 정부의 도움도 없던 그 시절. 식민지 시절 면사무소에 가려 해도 4, 5십리 산길을 족히 걸어야 했다. 그러나 문 열고 나서면 병원 간판들이 즐비하고, 허깨비 같긴 하지만 대통령과 장관들이 있는 이 시절에 감기 비스름한 메르스를 그 옛날 염병앓 듯 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날마다 자고 일어나면 메르스 환자의 수를 헤아리기 바쁜 언론 매체들이다. 노란 점퍼에 큼지막한 마스크를 쓴 대통령과 정부 요원들, 하얀 방제복에 모자와 마스크를 참하게 착용한 의료요원들이 화면 가득 일렁대는 모습에서 그 옛날 외할머니의 모습을 찾기란 어렵다. 가마솥에 물을 끓이시며 환자들의 이마를 짚어 주시던 그 모습은 전설이 되어 내 곁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햇살에 안개 퍼지듯 우리의 공포심이 사라지면서 이 병도 곧 잡힐 것이다. 역사상 우리는 많은 역병(疫病)들에 시달려 왔다. 나라가 거덜 날 정도로 심한 경우도 많았다. 역병을 경험한 뒤 <<동의보감>>을 만드신 허준 선생 같은 분도 있긴 하지만, 사실 그런 역병들을 극복한 것은 의사나 의료기술이 아니었다. 민중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이마를 짚어주던 무명의 착한 손들이었다. 내 외할머니는 어떤 기록에도 남을 수 없던 시골 아낙이었다. 그저 쓰러져 죽어가는 동네 사람들을 보며 그 공포와 절망감을 떨쳐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여장부였을 뿐이다.

 

***

 

지금 내 외할머니의 훌륭함을 자랑하려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환자가 확인된 뒤 십 며칠 만에 남의 일처럼메르스를 언급했다는 대통령이나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해 허둥대는 정부관리들을 바라보며, 그 한심함에 치가 떨려 몇 자 적고 있을 뿐이다. 외할머니가 마을 밖에 쳐 놓은 차일 안으로 동네 환자들을 옮기고, 가마솥에 물을 끓여 그들을 간호하신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공동체에 대한 근심의 발로였으리라. 그 외할머니의 모습에 박근혜 대통령을 갖다 붙이려 해도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멀어지기만 하는 것은 왜일까. 우리가 언제나 되어야 '굼뜨지 않고 멍청하지 않은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지, 절망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날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6. 4. 15:16

   대한민국의 재앙

-어떤 국회의원의 말본새를 보며-

 

 

“구설(口舌)은 재앙과 근심의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경구(警句)다. 평원의 필부라 할지라도 잘못 뱉은 말 한 마디가 몸을 망치거든, 하물며 책임 있는 야당의 원내대표야 오죽하겠는가. 저 혼자 망하는 거야 제 업보이니 그럴 수 있다 해도, 공당(公黨)의 책임 있는 자가 막말을 해댐으로써 국가의 일을 그르치고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일은 간단히 보아 넘기기 어렵다.

 

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며칠 전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종걸 원내대표가 대통령에게 ‘호들갑 떨지 말라’고 했다 한다. 사람들이 그 말의 몰상식함을 비난하자, 그게 ‘아름다운 말’이라고 둘러댔다. 오랜 기간 국어 선생으로 살아오고 있지만, ‘호들갑 떨다’는 말이 ‘아름다운 말’이라거나 ‘윗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억지를 난생 처음 접하면서, 참으로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 무엇보다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이다가 ‘공갈하지 말라’는 투의 ‘막말 아닌 막말’로 징계를 내린 공당에서, 명색이 대표가 그보다 몇 배나 심한 막말을 뱉어냈는데도 못 들은 척 하고 있는 그 당 인사들의 수준은 참으로 기이하기까지 하다. 징계를 받은 그 말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 경우는 2년 정도 당직을 정지시켜야 할 수준의 막말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막말은 이번뿐 아니다. 둔감한 내가 기억하기에도, 이미 그는 대통령을 ‘그년’으로 호칭한 전과가 있다. 그 때도 그는 그 말을 ‘그녀는’의 줄임말이라고 강변한 바 있다. 미련한 것인지, 교활한 것인지, 참으로 속내를 알 수 없는 인사다. 누구든 같은 대상에 대하여 연거푸 막말을 뱉어대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대상에 대한 분노나 반감이 가득 차 있다는 증거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분노조절장애’는 말 그대로 억누르지 못한 마음속의 분노가 반사회적 범죄로 표출되는 경우를 지칭한다. 따라서 이 원내대표의 경우는 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나 분노가 조절되거나 막말로 표출된, 일종의 ‘분노조절장애’의 결과일 것이다. 그가 막말대신 칼을 들었다면 인명을 살상하는 사고로 드러났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보는 인사들이 있을 정도로 끔찍한 사례다.

 

나라의 공인으로서 국회의원은 과연 어떤 덕목들을 갖추어야 할까.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것들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신중한 언행과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신사도’라 할 수 있다. 국가의 법을 만들고 심의하며 통과시키는 국회의원이라면 행동거지나 언사가 최고로 엄정하고 규범적이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툭하면 칼을 빼들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골목깡패’일 수 없기에, 분노가 턱밑까지 치밀어 올라도 그가 내뱉는 말은 절제되고 정제된 모범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의 국회의원이 공식석상에서 대통령을 ‘년, 놈’으로 호칭하며, ‘호들갑 떨지 말라’는 막말로 비하한단 말인가.

 

훌륭한 조상으로부터 망나니 같은 후손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반대로 별 볼 일 없는 조상들로부터 훌륭한 후손들이 나올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잘못된 경우로 인해 훌륭한 쪽이 본의 아닌 피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가문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행동거지, 말본새 하나라도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혹시 내 행동 때문에 훌륭하신 내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욕을 먹게 되지나 않을지, 훌륭한 내 아들이나 손자가 욕을 먹게 되지나 않을지 전전긍긍하며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원의 필부들도 그러한데, 하물며 ‘훌륭한 할아버지를 둔’ 국회의원이야 오죽하겠는가.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