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07. 6. 24. 19:36
 퍼옴)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선출장면을 보며...


                                                                      김사량(가명)


 집안의 일을 밖에 밖에 나와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고금동서의 양식(良識)에 속하는 일이긴 하지만, 공동체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한 마디 안할 수 없다.

                    ***

 어떤 분들이 찍어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우편투표에 의해 지역이사에 선임되었다는 통보와 함께 전공이사 12명을 대상으로 평의원들과 이사들의 합동회의에서 대표이사를 선출하니 ‘뜻 있는 이들’은 ‘학회 운영 소견문’(이른바 출마의 뜻)을 학회에 보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시점부터 나는 누가 출마하는가, 누가 대표이사에 선임되는가를 예의주시해왔다.


 회원 수 2,000명이 넘는 거대학회 국어국문학회. 그러나 총회 등의 행사에는 고작 20명 남짓의 회원만 참석할 뿐이다. 지금껏 특정대학 출신들이 모든 직책을 도맡다시피 해왔고, 누구 말대로 ‘무슨 수’를 부렸는지는 모르지만 이사들의 대다수를 그 쪽 동네에서 독점하다시피 해온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걱정되는 건 학회의 존망이었다. 특정 동네에 독점된 ‘학문권력’. ‘학자로서의 걱정과 자존심’이 뜻 있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는 요즈음이다. 합동회의 한 주일 전 당도한 공문을 보니 조 아무개 교수 혼자 출마한 게 아닌가. 혹시 ‘저들에게 무슨 꼼수가 있나?’ 좀 의아스러웠다. 출마하겠다고 소문이 돌고 있던 ‘그 쪽 동네의 어떤 분’은 왜 안 나온 것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그 쪽 동네 사람’이 아닌 조 아무개 교수가 출마한 일은 잘 된 일로 보였다. 그가 보내온 공약 사항들이 이행하기 쉽지 않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무언가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조짐으로 생각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이사회 날. 현장에 가보니 과연 ‘그 쪽 동네 사람들’이 방 안 그득 포진하고 있었다. 평의원회 의장이 일어서더니 2명 이상 출마해야 출마자를 대상으로 투표를 하는데, 1명만 출마했으므로 모든 전공이사를 대상으로 투표한다고 했다. 더구나 그 자리 참석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전공이사들은 피선거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참으로 해괴한 규정이었다. 투표함의 뚜껑이 열린 다음, 정작 ‘학회운영 소견문’을 제출하고 출마를 천명한 조 아무개 교수를 제치고 출마의 소문만 나돌던 사람이 몇 표 차이로 당선된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쪽 동네 사람들’의 전략(?)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조 아무개 교수가 출마한 사실을 안 다음 아예 출마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를 아예 ‘나가리’시켜 버렸고, 합동회의의 현장에서 표로 승부를 가려버린 것이었다. 정작 당선자는 현장에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당선자가 현장에 나오지 않은 것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과를 미리 예측한 그들이 ‘당당하게 출마한’ 조 아무개 교수와 마주치지 않게 하려고 배려한 결과였을까. ‘악법도 법’이니 따라야 한다지만, 상식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이사들은 학회 운영에 관한 그의 소견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심지어 그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표를 던져 그를 대표로 뽑은 셈이었다. 이른바 한국의 '국어국문학'을 대표한다는 분들의 의식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결과를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나는 버거운 공약을 수행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조 아무개 교수의 마음이 어쩌면 홀가분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구나 누가 대표이사가 되던 학회는 ‘이렇게 변신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조 아무개 교수는 제시한 셈이니, 그 일만으로도 그의 임무는 다 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점 하나는 조 아무개 교수가 ‘당당하게 졌다’는 사실이다. 비록 소수파에서 필마단기(?)로 전장에 나섰지만, ‘그 쪽 동네 사람들’ 가운데 단 몇 분이라도 그에게 표를 던져주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했다. 투표의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그 쪽 동네’의 한 원로학자는 ‘짰구먼!’이라고 탄식의 말씀을 내뱉으셨다. 그의 ‘떳떳함’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

 다음은 조 아무개 교수가 제시한 공약 전문이다. 학회에서 이메일로 전송해준 내용이다. 학회원 모두 함께 새겨들어야 할 내용인 듯 하여 이곳에 붙인다.



학회의 운영에 관한 소견

                                                                         

 존경하는 평의원님들과 이사 및 감사님들께 학회의 운영에 관한 소견 몇 가지를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간 평의원님들과 역대 집행부의 노력으로 학회의 규모가 현재와 같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대부분의 회원들은 학회를 외면하고 있으며, 그 결과 학회는 적막강산으로 변했습니다. 급격히 바뀌어가는 시절 탓만을 하고 있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절박합니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 이런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민첩하게 대응해야 학회는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합의와 단결을 바탕으로 학회의 발전적 미래를 가꾸어 나가는 것이 새 대표의 사명이라고 봅니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방안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것을 ‘국어국문학회 중흥 프로젝트’로 부르고자 합니다.  


 첫째, 학회의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자세한 것은 셋째 항 참조) 회원들의 참여 부진과 회비 미납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제로서 학회의 존립에 큰 장애요인입니다. 또한 이사(혹은 대표이사) 선출 방식과 연계시켜 생각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 학술진흥재단 등재(후보) 논문집들이 많이 늘어난 지금 굳이 <<국어국문학>>에 ‘힘들여’ 논문을 실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우선 <<국어국문학>>의 위상을 높여서 회원들이 ‘가중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게재 논문이 가중점수만 받게 된다면, 학회 및 학회지에 관한 회원들의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지리라 봅니다.(자세한 것은 둘째 항 참조) 그와 함께 홈페이지를 대대적으로 개편·보수해야 합니다. 일단 모든 회원들을 등록하게 하고 기존의 서비스 외에 ‘논문 투고, 심사업무, 이사선출’ 등을 홈페이지에서 일괄 처리할 수 있도록 그 기능을 대폭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비 납부를 홈페이지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고치는 것도 적극 고려되어야 할 사항입니다. 평생회비를 약간 낮추어서라도 많은 회원들을 평생회원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아울러 총회에 참석한 모든 회원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대표이사가 선출되는 방향으로 평의원회 및 이사회와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습니다. 대표이사 선출에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여 총회를 대통합의 ‘잔치판’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회비 미납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되리라 보기 때문입니다.


 둘째, <<국어국문학>>은 ‘세계 최고·최대’의 한국어문학 종합 학술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것을 세계 학술 시장에 상장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예컨대 ‘朝鮮學會’나 그 학술지인 <<朝鮮學報>>, 혹은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AAS ; 아시아 학회)’나 그 학술지인 ‘The Journal of Asian Studies(JAS)’ 등을 국제학회 혹은 국제학술지로 선정하여 높은 가중 점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질적인 면에서 이들보다 못할 이유가 결코 없음에도, <<국어국문학>>은 아직 한국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번에 국제학회의 반열로 올라서기가 어렵다면 이런 학회들과의 제휴를 통해서라도 국어국문학회를 국제 학문시장에 상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안을 실천해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는 이들 학회와 연합하여 국제학술대회를 여는 일이고, 두 번째는 단계적으로 <<국어국문학>>을 국문학술지와 영문학술지로 이원화 하여 발행하고[예컨대 1년에 한 번은 국문, 한 번은 영문 식으로], 해외의 저명 한국어문학자들을 편집위원으로 영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국제화 시키는 방법입니다. 특히 후자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기존의 ‘국어국문학회’를 가칭 ‘국제한국어문학회(Association For Korean Language & Literature ; AKLL)’로 확대·전환하고, 그 안에서 국내 파트(국문 학술지)와 국제 파트(영어 학술지)로 병행·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국제학회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충실한 영어학술지를 만드는 일, 기존의 국제학회들과 제휴하는 일 등이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빠른 길입니다. 과도기적인 조치로 ‘한국AAS'와 협력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을 잘 아는 로버트 버스웰(R. E. Buswell) UCLA 교수가 올해 AAS의 회장으로 추대된 만큼 국어국문학의 국제화에 호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새 대표의 임기 안에 충분히 성사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셋째, 평의원회 및 이사회와의 협의를 거쳐 현재 임의단체인 국어국문학회를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만드는 일에 착수하겠습니다. 저는 이미 온지학회를 사단법인으로 만든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사단법인으로 만들어야 학회 자체의 사업을 벌일 수 있고, 회원들 또한 주인의식을 갖고 갖가지 사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회원 혹은 외부인사들 가운데 매년 일정한 돈을 출연할 수 있는 분들을 위촉하여 별도의 재정지원이사회를 결성하는 한편, 학회 차원에서 인재들을 결집·배분·지원하여 각종 학술 진흥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도록 주선·관리하겠습니다. 사단법인으로 만들어야 정부에 기탁되는 기업체들의 후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고, 각종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100% 회비만으로 운영되는 학회의 재정에 결정적인 전기가 마련되리라 봅니다. 학회를 사단법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넓이의 공간이 필요한데, 현재 비어있는 학회의 사무실 정도면 충분합니다. 저는 그곳을 회원들을 위한 ‘국어국문학자료센터’로 가꾸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넷째, 지방화 시대가 뿌리를 내리고 있음에도 학회는 오히려 서울이나 일부 대학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문제를 고쳐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지방이나 여타 대학의 학자들이 학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상당 부분 학회가 안고 있는 시대 역행의 폐쇄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사를 임명할 때 학교와 지역이 골고루 안배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상당수의 회원들이 갖고 있는 소외감과 냉소주의를 불식할 수만 있다면, 회원들의 참여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리라 봅니다.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지역별 분회를 두고자 합니다. 지역단위로 실질적인 활동을 벌이게 하고, 중앙의 학회는 그런 활동들을 통합하는 체제로 개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영남지회, 호남지회, 기호지회 등으로 나누어 각 지회의 운영진(지회장·총무이사·연구이사·사업이사 등)이 거점 대학(들)을 중심으로 활동을 벌인 다음, 연 1회 정도 중앙에서 만나 전체 학회를 갖는 방식으로 운영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잘만 하면 각 지역에 맞는 정서들이 지회에서 수렴될 수 있고, 그것들은 중앙의 총회에서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국어국문학회는 회원 수 2000명이 넘는 매머드 학회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학회 창립 이후 반세기가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회원들의 의식변화를 본격적으로 조사하여 학회 발전의 핵심 지표로 활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만약 대표가 된다면, 새 집행부 주도로 치밀하고 유용한 설문조사와 분석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국어국문학회 회원들의 의식변화와 학회발전방향’(가제)이란 조사 보고서를 작성, 6개월 이내에 학회지와 언론매체를 통해 발표하고 학회의 정책 수립에 반영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전국 순회에 나서서 회원들과 의견을 나누고, 그 결과를 3개월 이내에 평의원회와 이사회에 보고토록 하겠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몇 가지 사실들은 결코 간단한 문제들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미루어 둘 수 있는 일들도 아닙니다. 우리가 지혜와 힘만 모은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조속히 추진하여 국어국문학회를 새로운 궤도에 올려놓고 싶은 것이 제 포부입니다. 존경하는 평의원님들과 이사님들의 많은 지도와 편달을 부탁드리오며 현명하신 판단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2007. 6. 9.



                    국어국문학회  전공이사  조 아무개 드림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07. 6. 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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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시선(醉是僊)!

'취하고 보니 이 경지가 바로 신선'이란 뜻일까.
술을 애호(愛好)하는 동포선생,
일필휘지 보내온 '취시선' 앞에
잠시 넋을 잃는다.

시간은 폭염 속에 쉬임없이 달려가고
욕망과 분노는 녹음마냥 무성하여
지긋이 기지개켜며 눌러보는 이 한낮

이참에 나도 한 번 취한 신선이나 되어볼까나^.^

6. 14.

백규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07. 6. 14. 10:51
이 시대의 가객 박문규와 문현의 '2인 가사 발표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시원한 바람 불어오는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우리 전통노래와 함께 초여름 밤의 정취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일시 : 2007년 6월 16일(토) 오후 5시
*장소 : 남산 한옥마을 박영효 고택
*입장료 : 없음

레퍼터리(12가사 중 6 작품)

문   현--<어부사>, <춘면곡>, <수양산가>
박문규--<상사별곡>, <백구사>, <죽지사>

Posted by kicho
글 - 학술문2007. 6. 6. 14:06

* 이 글은 <<불교문예>> 37호(2007년 여름호, 2007/ 6/1)에 실려 있습니다.


위대한 모정의 승리
  --<도천수관음가> 새로 읽기--


                                                                         조규익

하나. 부성보다 강한 모성, 그 전통

입시를 서너 달이나 앞 둔 무렵의 사찰. 손 모아 부처님께 절 올리며 자녀의 고득점과 미래의 행복을 비는 어머니들로 북적인다. 한 사람의 아버지도 보이지 않는 그곳은 조건 없는 사랑이 꽃 피어나는 현장이다.
병원 입원실. 선천적인 불구로 태어난 어린 아들 곁에서 밤을 지새우는 모정이 TV 화면 가득 쏟아진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힘에 겨워 보이는 젊은 엄마의 처량하지만 강한 모습만 의연하다. 기약 없는 세월을 좁디좁은 입원실에서 보내야 하는 처지임에도 여윈 얼굴에는 담담한 여유마저 흐른다. 아버지라고 어찌 자식 사랑이 없을까. 다만 그 절절함에서 모성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부성이다. 우리는 고려의 속악 <사모곡(思母曲)>을 통해 그런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호미도 날이지마는
     낫같이 잘 들 리도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위 덩더둥셩
     어머님같이 사랑해주실 이 없어라
     아, 님이시여! 어머님같이 사랑해주실 이 없어라

아버지의 사랑이 어머니의 그것보다 못하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 이 노래 화자의 의도는 아니리라. 다만 양자 간의 차이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사랑보다 어머니의 사랑이 훨씬 두드러지는 것은 그 간절함 때문이다. 자신의 전 존재를 던져 자식을 감싸 안는 어머니의 사랑을 화자는 노래한다. 어쩌면 이 노래는 지은이의 특이한 체험으로부터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읽거나 듣는 누구라도 그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말하자면 현실 속의 그런 체험이 노래 속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호미와 낫에 비유한 품새가 범상치 않은 것도 그런 효과를 배가시킨다. 그래서 짧지만 절창이고, 당시 인정의 기미(機微)를 잘 드러낸다고들 하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되는 모티프를 지닌 노래가 <목주(木州)>다. <<고려사 악지>>의 삼국 속악에 실려 있으므로 원래 민간에서 만들어져 불리던 노래일 것이다. 배경적 사실은 다음과 같다.   목주에 살고 있던 효녀가 아버지와 후모(後母)를 지성으로 섬겼는데, 아버지는 후모가 그녀를 헐뜯는 말만 듣고 그녀를 쫓아냈다. 쫓겨나 떠돌다가 한 노파에게 구제되었고, 그녀는  노파의 아들과 결혼하여 부자가 되었다. 심히 가난한 친정 부모를 모셔다가 극진히 봉양했으나, 부모는 그래도 기뻐하지 않자 그녀가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것이다.
후모는 그렇다 치고,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처사(處事)가 서정화 될 경우 <사모곡> 같은 노래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목주>가 <사모곡>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나 아닐까.
어쨌든 본능적으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그 가운데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일 만큼 절절하다. <목주>나 <사모곡>이 나왔을 삼국시대에 우리는 절절한 모성애가 흘러넘치는 또 하나의 노래를 만난다. 향가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가 바로 그것이다. <<삼국유사>> 권3 ‘분황사(芬皇寺) 천수대비(千手大悲) 맹아득안(盲兒得眼)’에 실려 전해지는 노래다.

둘. 지혜와 광명을 희구하는 모정

신라 경덕왕 대(재위 742~765)에 한기리에 사는 여인 희명(希明)의 아들이 생후 다섯 살 되었을 때 갑자기 눈이 멀게 되었다. 하루는 어미가 아들을 안고 분황사 좌전(左殿) 북쪽 벽에 걸려 있는 천수대비의 화상 앞에 가서 아들에게 명하여 노래를 지어 빌었더니 다시 시력이 되돌아 왔다는 것이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무릎을 꿇으며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빌고 사뢰는 말씀을 두노라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에서
  하나를 놓고 하나를 덜어
  두 눈 감은 나라
  ‘하나를 주소서!’ 하고 매달리나이다.
  아아, 나를 알아주실진대
  어디에 쓰실 자비인고

기록에는 ‘아들에게 명하여 노래를 지어 기도하게 했다’고 했으나, 다섯 살 된 아이가 이 노래를 지었을 리는 없다. 실제로는 희명 자신이 지은 노래를 그로 하여금 따라 부르게 했을 것이다.
서사 부분인 1~4행은 자비로운 천수관음을 향한 기구(祈求)의 언사이고, 5~8행은 본사로서 그 기구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결사인 9~10행은 마무리 부분으로서 눈 먼 아들의 눈을 뜨도록 만든 천수관음의 자비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천수관음 즉 관세음보살은 ‘관세음자재보살(觀世音自在菩薩)’이라고도 하여 중생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그들의 소망과 아픔을 보살펴 준다는 믿음을 받고 있는 존재다. 그만큼 중생들과 가장 친근하여 염불에는 반드시 부처와 함께 칭명되기도 한다.
천수관음은 성관음(聖觀音),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준제관음(準提觀音), 불공견색관음(不空絹索觀音), 마두관음(馬頭觀音),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등과 함께 대표적인 7가지 관음이며, 1천개의 팔에 달린 각각의 손바닥에 눈을 가졌다고 여겨져 온다.
여기서 ‘천’을 단순한 숫자 개념으로만 볼 수는 없다. 우주만방 즉 넓고 커서 한계가 없는 공간을 나타내며, 관음보살의 보살핌이 끝없이 펼쳐나감을 암시한다. 말하자면 도처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일을 관음보살이 수행한다는 것이다.
가진 것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중생 희명이 이런 관음보살에게 자비를 베풀어줄 것을 기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돈이나 권력을 희구한 것은 아니다. 두 눈을 잃은 자신의 아들에게 눈을 하나만 달라는 소청이었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정이 찾아 헤맨 끝에 만난 존재가 관음보살이었다. 더구나 관음보살은 눈을 천 개나 갖고 있지 않은가.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노래인가. ‘당신이 천 개의 눈을 가졌으니, 그 가운데 하나만 덜어서 우리 아이에게 주면, 우리 아이는 광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진술이야말로 무엇보다 진솔하고 담백하다. 그리고 순진무구한 아이로 하여금 그 노래를 부르게 했다. 아이의 순진성과 노래의 소박함이 만나 이루는 진실함은 결국 관음보살을 움직일 수 있었다.
천수다라니계청(千手陀羅尼啓請)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1.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광대원만(廣大圓滿) 무애대비심(無碍大悲心)     대다라니(大陀羅尼) 계청(啓請)
2. 천비장엄보호지(千臂莊嚴普護持)
3. 천안광명변관조(天眼光明遍觀照)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자재보살님과 같이 중생 보살핌이 넓고 크고 원만하여 막히는 데가 없이 자비심을 크게 하는 대다라니 열기를 청한다는 것이 1이다. 2는 관세음보살님이 천 개의 팔로 자비로운 원력을 널리 보급·보호·수지하게 하듯, 천 개의 팔로 중생들의 가정과 사회를 장엄하게 해달라는 뜻이며, 3은 관세음보살의 천 개 눈으로 세상을 두루 비추어 보듯이, 어두운 중생들도 마음을 항상 두루 비추어 보게 해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눈은 무엇일까. 외계의 빛을 내면으로 투과시키는, 마음의 창(窓)이다. 동시에 생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눈을 감는다’고 표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눈을 되찾는 것은 광명을 찾음과 동시에 잃어버렸던 사회적 권력이나 사랑을 되찾는 것이기도 하다.
고전소설 <심청전>을 보자. 심봉사의 딸 심청이는 지극한 효성으로 아버지의 감은 눈을 뜨게 한다. 자신의 몸을 팔아 공양미 삼백 석을 구했고, 자신의 몸을 희생시킴으로써 아버지에게 새로운 삶을 되찾아 드렸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비는 기도에서 심청이는 눈을 ‘일월(日月)’이라 했다. 말하자면 광명이라는 것이다. 효성으로 아버지에게 광명을 드린 <심청전>은 지극한 사랑으로 자식의 눈을 뜨게 한 <도천수관음가>의 경우와 대조되지만, 그 정신이나 눈이 갖는 의미는 정확히 일치한다.
시력을 잃은 아들. 그를 바라보는 모정의 안타까움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은 아들이 비록 눈이 없다 해도 그를 먹여 살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늙어 죽고 나면 그 아들은 험한 세상을 살아갈 방도가 없을 터. 그래서 모정은 크게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불완전한 사람이 홀로 살아가긴 어렵다. 그 가운데 눈은 가장 중요하다.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길이 바로 지혜요 광명이다. 어머니인 희명의 이름이 심상치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희명(希明)’이란 광명을 희구한다는 뜻이다. 이때의 광명은 진리를 비추어 주는 지혜의 빛이다.
지혜란 깨달음으로 통하는 길이다. 그러니 ‘희명’은 자연인이기보다 모든 불도들의 소망이 집약되어 만들어진 관념적 존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치상으로는 그렇다 해도, 희명이란 존재를 부조(浮彫)할 때 당대인들의 마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던 어머니의 이미지가 결정적으로 그 표본 역할을 했을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을 바탕으로 ‘천수관음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 바로 이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사랑에 감동한 천수관음은 그 아들에게 시력을 주었고, 그 덕에 그는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이에 관한 일연의 찬(讚)은 다음과 같다.

竹馬葱笙戱陌塵     대말과 파피리로, 티끌 거리 노니더니.
一朝雙碧失瞳人     하루아침 파란 두 눈, 동자를 잃었도다.
不因大士迴慈眼     대사의 자비 입어, 눈을 찾지 못했다면.
虛度楊花幾社春     버들 꽃 피는 봄을, 헛되이 보냈으리.
                                           (이가원 역)

희명의 아들을 여염의 평범한 ‘장난꾸러기 아이’로 본 것이 일연의 관점이다. 일연은 죽마를 타고 파피리 불며 제 또래 아이들과 장난치다가 눈을 다친 꼬마와 눈높이를 함께 하고자 한 것이다.
대사 즉 관음보살의 자비가 아니었더라면 ‘버들 꽃 피는 봄’을 헛되이 보냈을 것이라고, 자신의 아찔한 심정을 토로했다. ‘버들 꽃 피는 봄’이란 인생의 아름다운 청춘기 혹은 황금기다. 죽음을 준비하는 노년기 보다는 인생의 행복을 구가하는 청춘기에 눈은 더 긴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생의 세속적 행복에 집착하는 공간이야말로 범인(凡人)들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일연은 그런 범인들의 시각으로 희명과 그 아들에게 일어난 이적(異蹟)을 보고자 했다. ‘광명혜안(光明慧眼)을 구비(具備)코자 하는 불도(佛徒)들의 심적(心的) 자세(姿勢)를 집약표현(集約表現)한 어사(語辭)’라는 일부 선학들의 주장도 일견 타당하겠지만, 세속에서 만나는 지극한 모정이 이루어낸 기적으로 보는 편이 훨씬 인간적이다. 이런 점에서 <도천수관음가>는 지극한 모정의 노래일 수 있는 것이다.        

셋. 시인의 눈으로 본 <도천수관음가>


도천수관음가

                  박윤기
우리가 한 송이 꽃이었을 때
우리를 스쳐가는 모든 것은
바람이었네.

아직 꽃피우지 못한 마을의 아이들은 눈이 먼 채
不感의 하늘 속으로
잃어버린 點字를 찾고 있었지.

덫에 치인 꿈은
가위 눌린 채로 시위잠을 자고
젖줄 끊긴 살 속으로
뜨거운 嗚咽의 소리는 파고 들었네.

어느 빈 뜨락에도
아침을 몰고오는
소망의 작은 새떼는 날아오지 않고
우리들의 良識은
쉬임없이 강물에 자맥질하는
悔恨이었네.

층층이 내려서는
의식의 깊은 壁에
채찍의 겨울은 또 다른 장막을 둘러치고
바람은 무거운 囹圄마다
어둠이 부딪쳐 흩어지는 窓을
흔들며 있네.

은성했던 꿈의 부스러기가
부서져 내리는 길은 길마다
낮게 낮게 埋沒되고
우울의 계단을 빠져 나올 때
다시 어둠으로 차는 굴레.
모든 思念은 기실
풀었다가 다시 짜는 페넬로페의 織造였네.

돌아다 보면
그곳엔 오랜 묵시의 江이 흐르고
하늘을 더듬는 아이들의 작은 손이
기폭처럼 바람에 찢겨 나가고 있었지.

三界에 가득히
천사들의 흰 은총은 내려앉고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청댓잎 푸른 가지를 비집고
피어오르는 아침은.
海潮音에 실려오는
비취 빛 청아한 아침 노래는.
오랜 冬眠의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은 외출을 서두르고
회색의 겨울은
부활의 눈을 뜬다.

8연의 매우 긴 이 시에서 시인은 향가 <도천수관음가>를 구체화하고 내면화 시켰다. 향가 <도천수관음가> 및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산문은 ‘암흑→광명’, ‘무명(無明)→지혜’로 전환되는 의미구조를 지니고 있다. 박윤기의 <도천수관음가>도 그런 의미구조를 충실히 따랐다고 볼 수 있다.
1연은 전체의 서사(序詞)로서, ‘꽃’과 ‘바람’으로 환유되는 ‘나(우리)’와 ‘세계’ 즉 우주적 보편상을 노래했다. 2연부터 6연까지는 실명과 암흑, 미망(迷妄)과 불행이 나열된다. ‘덫에 치인 꿈’, ‘젖줄 끊긴 살’, ‘뜨거운 오열’, ‘날아오지 않는 소망의 작은 새떼’, ‘회한’, ‘의식의 깊은 벽’, ‘채찍의 겨울’, ‘무거운 영어(囹圄)’, ‘어둠이 부딪쳐 흩어지는 창’, ‘꿈의 부스러기’, ‘우울의 계단’ 등 어둡고 칙칙한 운명적 상황을 구체화 시키는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비로소 신의 힘이 ‘묵시’되는 부분이 바로 7연의 ‘묵시의 강’이다. 물론 아직도 ‘하늘을 더듬는 아이들의 작은 손이/기폭처럼 바람에 찢겨나가는’ 모습을 아프게 보여주는 곳이 그 부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7연은 단절이 깊어진 성(聖)과 속(俗)의 두 영역 사이에서 하나의 가능한 기적이 역사적 사건으로 구체화 되려는 단초를 마련해둔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8연에서 시적 의미는 행복으로 전환된다. ‘삼계에 가득히/천사들의 흰 은총은 내려 앉’게 되고. ‘비취빛 청아한 아침 노래’도 해조음에 실려 오게 되는 것이다.
‘오랜 동면의 잠에서 깨어난’ 일은 이미 암흑에서 광명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회색의 겨울’이 ‘부활의 눈’을 뜬 것은 희명의 아들이 시력을 회복하듯 죽음에서 생명을 얻은 것과 등치의 관계를 보여준다. 
시인 박윤기는 <도천수관음가>에서 ‘개안(開眼)’의 멋진 서사(敍事)를 길어 올려 서정의 틀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형상화 하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시 내용 가운데 향가 <도천수관음가>에서 필자가 읽어낸 ‘모정’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에서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모정 역시 시의 내면이나 바탕에 잠재할 수 있는 정서의 큰 갈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넷. 갈수록 그리워지는 모정

<도천수관음가>의 모정이 바깥으로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그 많은 천수관음의 손과 눈 밑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보살의 힘이나 부처의 힘으로 찬양되던 불교왕국 신라. ‘한기리의 희명 모자’는 그 시절의 ‘힘없는’ 중생을 대표하던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오고 가던 정, 특히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정은 무엇보다 강했다. 귀족계급도 아닌 시골 사람 희명이 모정이라는 단순 소박한 무기로 관음보살을 움직인 것이다. 그건 감동의 힘이었다.
그래서 “신라 사람들 가운데는 ‘향가’를 숭상하는 자가 많았고, 천지귀신을 감동시킬 만한 노래가 한 둘이 아니었다.”고 <<삼국유사>>의 편찬자는 말했을 것이다. 희명의 염원을 실은 <도천수관음가>가 천수관음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천수관음이 그녀의 소원을 들어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염원에 힘입어 눈을 뜬 어린 아들은 과연 그 자리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는 어른이 되어서야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모가 되어 보아야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 속에는 자연의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 진실이 내재되어 있다.
신달자의 <사모곡>과 가수 태진아의 <사모곡>을 통해 <도천수관음가>에 담긴 모정의 실체를 찾아보기로 하자.


사모곡

          신달자   
길에서 미열이 나면
하나님 하고 부르지만
자다가 신열이 끓으면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요

아직도 몸 아프면
날 찾냐고
쯧쯧쯧 혀를 차시나요
아이구 이꼴 저꼴
보기 싫다시며 또 눈물 닦으시나요

나 몸 아파요, 어머니
오늘은 따뜻한 명태국물
마시며 누워 있고 싶어요
자는 듯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부르튼 입으로 어머니 부르며
병뿌리가 빠지는 듯 혼자 앓으면
아이구 저 딱한 것
어머니 탄식 귀청을 뚫어요

아프다고 해라
아프다고 해라
어머니 말씀
가슴을 베어요


사모곡

                            태진아
앞산 노을 질 때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화전밭 일구시고 흙에 살던 어머니
땀에 찌든 삼베적삼 기워 입고 살으시다
소쩍새 울음 따라 하늘 가신 어머니
그 모습 그리워서 이 한 밤을 지샙니다

무명치마 졸라매고 새벽이슬 맞으시며
한평생 모진 가난 참아내신 어머니
자나 깨나 자식 위해 신령님 전 빌고 빌며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 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 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자나 깨나 자식 위해 신령님 전 빌고 빌며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 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 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두 노래 모두 어머니의 위대한 힘을 말하고 있다. 문제가 생길 경우 신에게 매달리듯 전자의 화자에게 어머니는 매달리는 존재다. ‘자다가 겪는 신열’은 ‘길에서 겪는 미열’보다 고통의 면에서 심각하다. 그럴 때 화자는 신이 아니라 어머니를 부른다고 했다.
‘엄마 손은 약손’임을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이, 아프고 괴로울 때 떠올리게 되는 존재가 어머니임을 화자는 말하고 있다. 자식의 아픔에 눈물을 닦고 탄식하는 존재가 어머니임을 안타깝게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아프다고 해라/아프다고 해라’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가슴을 벤다고 슬퍼한다. 자식의 아픔과 어려움을 자신이 떠안으려는 존재가 어머니임을 결련에서 밝힌 것이다.
전자의 경우 1→2→3→4연으로 갈수록 모정에 대한 느낌의 강도는 고조된다. ‘불러요→닦으시나요→뚫어요→베어요’ 등 각 연의 결미(結尾) 동사들은 정서적 고양의 극적인 단서들이다. 아픈 자식을 근심스레 바라보며 그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어머니, 그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뒤늦은 깨달음을 절절하게 노래한 경우다. 신달자의 <사모곡>에 그려진 모성애야말로 <도천수관음가>의 모성애 바로 그것이다.
태진아의 <사모곡>에는 ‘흙에 살던, 가난한’ 어머니가 등장한다. 모진 가난을 참아내며 땅 속에서 힘겹게 살다가 ‘소쩍새 울음 따라 하늘 가신’ 어머니다. 그토록 어렵게 살면서도 ‘자나 깨나 자식 위해 신령님 전 빌고 빌던’ 분이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 신령에게 기원하던 모정을 ‘눈물로’ 그리워하는 노래다. 따라서 태진아가 부른 <사모곡>의 모정 역시 <도천수관음가>의 모정 그 자체다. 
<도천수관음가>는 천수관음의 영험함을 드러내어 신라사회에 관음사상의 뿌리를 굳히려는 목적으로 만든 노래로만 볼 수는 없다. ‘한기리의 여자 희명’이나 ‘다섯 살에 눈 먼 그의 아들’이 실존했던 인물들일 수 있고, 분황사에 가서 갑작스런 눈병을 고친 사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실존인물들과 사실을 통해 부처나 관음의 영험함을 선양하려는 의도 역시 분명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시와 배경산문에서 모정을 읽어내려는 것은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모정은 샛별처럼 빛남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천수관음가> 이래 시대마다 모정은 위대한 힘을 발휘했고, 여성이 사회적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모정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삶과 생각을 휘어잡고 있다. <도천수관음가>의 모정은 천수대비를 감동시킴으로써 원하는 바를 얻었다. 그러나 지금의 모정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식이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주려고 한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결과일 뿐 <도천수관음가>의 모정으로부터 변화(혹은 변질)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도천수관음가>의 모정은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