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7. 5. 7. 13:08
 

교수들은 담론 생산의 주체로 거듭 나야 한다


                                                                                             조규익

제1회 숭실 인문학 포럼의 성공을 보면서 대학의 본질과 가능성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고자 한다. 진부한 말이지만, 대학은 교육과 연구의 중심이고 그 핵심에 교수들이 있다.


해당 분야의 체계적인 지식과 창조적인 능력을 지녀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면, 대부분의 교수들은 1차적으로 전공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교수들이 전공의 협소한 분야에 갇혀 좀 더 넓은 세계나 현실을 보지 못할 때, 그 지식이나 창조력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상아탑 속의 존재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전공분야에 대한 탐구와 함께 세상과의 소통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교수들이 고도의 윤리의식과 해박한 전문가적 식견을 통해 공동체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 일조하길 바란다. 그러나 현재의 교수집단은 다원화 된 현실 속에서 왜소한 지식인 군상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 초라한 지식상(知識商)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눈초리는 차갑다. 그들로부터 아무런 비전도, 철학도, 노력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번 교수집단에 들어가고 나면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이나 보여주기 일쑤인 점은 더욱 한심한 노릇이다.


그러나 교수집단도 기회와 동기만 주어진다면, 사회의 정론(正論)을 생산하고 주도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포럼은 매우 유익한 기회였다. 최근 기독교에 대한 김용옥씨의 비판적 주장에 많은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반론이나 비판이 없었던 것은 우리 지식사회에 대한 사망선고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기라성 같은 기독교 대학들이 포진하고 있음에도 어느 대학 하나 나서서 그의 문제적 논리에 반박을 가하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하며 우리는 미래에 대한 일종의 ‘공포’를 경험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숭실 인문학 포럼을 통해 김용옥 논리의 시시비비를 가려 줌으로써 학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올바른 판단의 자료를 제공해 준 것은 당사자 김회권 교수를 포함 숭실의 인문학자들이 향후 적극적인 담론 생산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쾌거였다.


이제부터라도 대학교수들은 전공책의 행간에 현미경이나 들이대는 ‘골방의 샌님’ 신세를 청산하고 사회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가치 있는 담론을 생산해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들의 전공을 살리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며 대학을 살리는 길이다.

                                   

Posted by kicho
글 - 학술문2007. 5. 6. 15:19

       갈수록 새로워지는 역사의 의미
        -<<역사란 무엇인가>> 서평-
   
                                                                                                          조규익(숭실대 교수)

문고본으로 출간된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학부 3학년 때였다. 길현모 선생 번역의 ‘가볍지만 무거운’ 책이었다. 두세 번 곱씹어가며 읽으라던 선배의 권유로 열심히 밑줄 그으며 읽은 덕분이었을까. 어수룩한 후배들에게 역사나 역사철학, 아니 현실에 관한 ‘그럴 듯한’ 언설들을 제법 풀어놓을 수 있었다. 역사를 떠나 존립하기 어려운 우리의 문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탈근대의 담론을 지향하는 최근의 역사서들까지 두루 섭렵해왔으나, 이 책이 내 마음에 심어준 생각의 그루터기는 처음부터 요지부동이었다.  
최근 나는 당시 그 선배의 마음으로 돌아가 ‘한국문학사’를 수강하는 학부 3학년생들에게 이 책을 ‘반 강제로’ 읽혔다. 그런데 아이들의 눈이 ‘번쩍’ 빛나는 듯 했다. 지적 충격이었으리라. 카아의 생각을 수용하는 그들의 논리는 서툴지만 풋풋했다. 일부 역사가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의 말 가운데 ‘그른 부분’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예비 지식인들의 마음에 지적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책의 힘이 30년 세월에도 변함없다면, 이제 그 책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도 되리라. 더구나 우리의 과거가 ‘드라마’란 그릇에 담겨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우리 또한 그것을 ‘역사’로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 요즈음 아닌가. 어린 시절 열심히들 외워온 ‘태정태세문단세’. 그걸 두고 ‘역사를 배웠다’고 착각하는 우리들이다. 옳건 그르건 학창시절 역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어본 적도 없는 ‘역사의 해석’을 TV 드라마에서 비로소 접하는 현실이다. 그러니 혹시 우리는 역사에 대하여 잘못 알아 왔거나 그릇 배워온 것이나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해보지 못한, 학문적 불모지의 백성들임이 분명하다.
‘역사는 과학이며, 진보한다’는 대전제를 쉽게 풀어나가는 언술들의 집합이 바로 이 책이다. 우리는 과거의 사건들을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 중시한다. 다시 말하면 사건들의 맥락이나 갈피들마다 숨어있는 의미를 ‘해석’해 내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 사건들을 모두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래서 카아는 역사가의 태도야말로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역사적 사건들의 지위(地位) 또한 해석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눈과 관점으로 보는데서 성립하며 역사가의 임무는 기록이 아닌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는 크로체의 생각을 논리적 바탕으로 삼은 것도 사건들의 해석을 역사기술의 대전제로 삼고자 한 그의 철학 때문이었다. 이런 근거 위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멋진 명제를 도출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일들이 ‘역사적 사실들’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가의 해석과 평가가 필요하며, 그 상호작용인 ‘대화’야말로 역사 기술의 대상들을 무한한 가능태로 격상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비전이 현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통찰에 의해 빛을 받을 때에만 쓰이는 것이 ‘위대한 역사’라는 관점도 이런 전제를 통해 얻어낸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한 시대를 만든 위인(偉人)은 어떤 존재인가. 한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다음 시대에 그것을 전해주며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상, 즉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존재를 카아는 위인이라 했다. 이처럼 카아는 역사의 과정에서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창조적 개인을 중시했다. 그가 시대를 만들고 이끌어간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대의 보통사람들은 그런 위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위인은 자기 시대보다 너무 앞서 가기 때문에 뒷시대에 가서야 겨우 인정받게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가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바로 그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다. 다시 말하여 그것은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부단한 대화’라는 그의 핵심명제를 부연한 내용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역사가란 단순한 분석가, 해석가에 그쳐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과거 사실들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란 언제나 도덕적 판단이나 가치판단을 내포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추상적인 도덕개념 속에 특수한 역사적 내용이 담겨져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자 산물이란 것이다. 이런 역사나 역사철학 혹은 역사 서술에 관한 본질적 견해를 바탕으로 카아는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찾는 역사가의 방법적 모색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도해왔다. 인과(因果)의 문제, 진보의 문제, 이성의 확대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미래를 모색하는 문제 등이 인류에 대한 역사 혹은 역사가의 임무라고 본 것이다. 비록 현재를 잣대로 삼긴 하지만, 단순히 과거 사실들의 해석이나 평가에만 머물 수는 없고, 미래에 대한 지평을 확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역사가의 책무라는 것이 행간에 숨어있는 그의 생각이다.
우리는 역사적 사건들을 허구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거나 해석하여 보여줌으로써 대중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가의 통찰이나 시선이 결여되기 마련인 이른바 ‘팩션(faction)’이란 새로운 장르가 범람함에 따라, 일반인들은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주몽이나 대조영은 분명 과거 한 때 이 땅에서 활약한 위인들이다. 그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무대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지만, 그 사건들이 과연 역사가의 책임 있는 비전으로 해석 또는 재현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바로 지금 동북공정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역사왜곡으로 심기가 불편한 우리가 재확인해야 할 역사철학의 금과옥조를 카아의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자소개

E. H. 카아

1892년 영국 런던 출생의 역사학자이자 국제정치학자. 케임브리지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졸업 후 1916년∼1936년까지 20여 년 간 외무성 관리로 공직생활에 몸을 담았다. 특히 1919년에는 베르사이유 강화회의에 영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1936∼1947년까지 웨일즈대학(University of Wales)의 국제정치학 교수로 있으면서 '타임(The Times)'지 논설위원을 겸했고,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 기초위원장, 옥스퍼드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 1955년 이후 모교인 트리니티 칼리지로 돌아가 1982년 타계할 때까지 고급연구원으로 지내면서 소비에트 러시아사 연구에 몰두했다. 그가 외교관이나 언론인으로 활약하면서 쌓은 현장경험은 역사와 정치에 관한 그의 시각(視角)을 형성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는 이상과 현실 혹은 이론과 실제의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도적 균형을 잡고자 노력했으며, 이런 성향은 그의 학문적 업적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과거와 미래의 대화, 사실과 해석의 상호작용 등 그의 역사인식 역시 그러한 현장경험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4. 30. 20:02

선진국에서 확인한 도서관의 힘

조 규 익 (숭실대 국문과 교수)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책을 소중히 여겨왔다. 그러나 책이 넘쳐나는 오늘날엔 사정이 달라졌다. 그 책들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사를 밥먹듯 하는 요즘 생활에서 처분 대상 영순위가 바로 책이다. 가끔 아파트의 쓰레기장에 수북이 쌓이곤 하는 화려한 장정의 책들을 보라.

우리 나라 사람들은 책을 별로 읽지 않는다. 공공도서관에서도 책을 사지 않는다. 공공도서관이 책을 사지 않아도 탓하는 국민이 없다. 도서관이 무엇 하는 곳이며 왜 중요한지 아는 정치인도 별반 없다. 이른바 출판대국인 이 나라에서 만드는 책들은 학습참고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니 두고두고 읽으며 의미를 반추한다던가 그럴 목적으로 책을 보존한다는 것은 애당초 엄두를 내지도 못하는 일이고,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그럴 만한 문화의식이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초강대국 미국의 힘이 책과 도서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그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나 부러운 그들 대학의 도서관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꺼내지도 말자. 틈날 때마다 동네의 도서관에 나가서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진지한 모습을 신기한 눈초리로 구경하곤 했다. 도서관의 주 이용객은 주부와 노인,초·중등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학생들이라 해도 우리 나라처럼 시험공부나 하러 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좋은 책들을 마음껏 읽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부대행사로 여는 각종 과외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주부들과 노인들이었다. 구부정한 노인들이 책을 한아름 들고와 반납하고 서가를 돌며 새로운 책을 찾는 모습. 주부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와서 책을 읽거나 대출하는 모습은 선진국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실감할 수 있게 하는 광경이었다. 점심때 만 되면 널찍한 식당을 점령해 수다로 시간을 죽이는 우리네 주부들을 생각하며, 할 일 없이 공원에 나와 먼 하늘만 우두커니 바라보는 우리네 노인들을 생각하며 나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의 주부와 노인들이 꼬마들 손을 잡고 동네도서관에 나와 독서삼매에 빠질 수만 있다면 그 순간 아마도 우리의 모습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룸살롱, 갈빗집, 다방, 노래방 등이 촘촘히 박힌 수렁 같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건져내려면 단 한 순간이라도 내면을 가꿀 여유가 있어야 한다. 도시마다 구색으로 하나씩 세워놓은 듯한 도서관이란 으레 학생들이 찾아가 노닥거리거나 시험 공부하는 독서실쯤으로 이해되고 있는 이 후진적 현실을 바꿔야 한다.

과격하고 이기적이며 진지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확바꾸려면' 전국민이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의 축적된 경험을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도서관을 확충하고 도서관 이용을 생활화해야 한다. 도서관 이용의 생활화나 독서 열풍은 단기간의 캠페인으로 이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인들이 손자녀들을 이끌고 도서관을 찾아 자신들의 진지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주부들이 장바구니를 든 채 도서관을 찾는 일이 생활화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경(經)을 읽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진지해지고 독서에 빠져들게 될 것이며 아파트 쓰레기장에 멀쩡한 책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야 학습참고서 아닌, 제대로 된 책들을 내는 출판사들이 살아날 것이고, 우리 나라도 비로소 선진국의 문턱을 넘게 될것이다. 책을 가까이 하는 날이 바로 우리가 한 차원 높아지는 날이다.

( 출처 : 출판저널 286호, 2000, 9, 5 )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4. 30. 15:47
 

아버지의 정


                                                                       조규익


‘동물’의 생태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이다. 미국에 잠시 체류할 때 ‘애니멀 플래닛(Animal Planet)'이란 채널을 즐겨 보았다. 가끔 채널 다툼(?)이 생겨나곤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의 삶의 원리나 방법이 인간의 그것과 별 차이 없다는 것이 내가 동물의 세계를 즐겨 보는 이유다. 구체적으로 그들의 삶의 원리는 무엇일까. 첫째는 약육강식 등 힘의 논리에 대한 승복이고, 둘째는 자식에 대한 애틋한 정이다.


약자를 지배하는 유일한 근거는 힘이다. 그 면에서 적어도 동물계의 불확실성은 없다. 윤리나 양심 등 약간의 예외를 빼면 인간 세계의 원리 역시 약육강식이다. 사실 윤리나 양심 등도 약육강식의 잔인성을 포장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 늘 그것들이 인간행동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경우 그것은 가식으로 비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동물보다 불순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동물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삶을 훔쳐보기를 좋아한다. 한국판 애니멀 플래닛의 출범만을 기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동물의 애틋한 자식사랑도 인간과 마찬가지이고,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헌신적인 점도 인간과 마찬가지다. 부모 모두 자식 기르는 데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동물도 있긴 하다. 그러나 대충 수컷들은 육아에 무책임하다. 어떻게든 암놈을 차지하여 ‘씨를 뿌리는 데’만 혈안이다. 일단 씨를 뿌리고 나면 낳고 키우는 건 암놈의 몫이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대충이라도 알기 어려운 것이 초원에 펼쳐진 동물들의 세계다.


인간도 그렇다. ‘깊은 정은 부정(父情)’이라지만, 그건 모정에 비해 하나도 애틋하지 않은 부정의 실상에 대한 수사(修辭)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가. 아들들은 대충 아버지가 되어서야 아버지의 입장을 깨닫고 가까이 하려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정함’을 다 늦어서야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


 국내 굴지의 재벌 H그룹의 모 회장이 술집에서 얻어맞고 온 아들의 복수를 위해 끔찍한 활극을 벌였다. 아들의 나이가 스물셋이니, 일찍 장가들었다면 아들이라도 보았을 나이다. 이제 육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다 큰 녀석 아닌가. 그럼에도 밖에서 얻어맞고 들어온 아들이 그리도 애처로웠을까. 회장의 나이를 잘은 모르지만, 아마 ‘지천명(知天命)’이나 ‘이순(耳順)’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을 텐데. 이제 세상 물정 알 만큼 알고, 철이 들었을 만큼 들었을 그가 다 큰 아들이 얻어맞고 들어왔다고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직접 응징에 나섰다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옛날 내 인척 가운데 한 분도 자식 사랑이 끔찍했었다. 그러나 같은 경우의 대처방법은 회장과 달랐다. 애가 밖에서 맞고 들어왔을 때, 자초지종을 물어 억울하게 맞았으면 아들을 다시 보내 스스로 복수하고 사과까지 받아오게 했다. 만약 아들이 잘못이었다면 그를 엄하게 꾸짖었다. 그런 교육을 받은 그는 책임감 강한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애들이 밖에서 놀다 보면 사소한 다툼이 있을 수 있고, 툭탁거리며 싸우기 일쑤다. 회장의 아들은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곱고 귀하게 자랐을 것이다. 애들과 티격태격하다가 한 대 얻어맞으면 또르르 달려와 부모에게 일러바치고, 부모 또한 참을성 없이 달려가 주먹다짐을 하곤 했으리라. 그러니 스물셋이란 나이를 먹고도 몇 대 밖에서 얻어맞았다고 싸움판에 부모를 끌어들이지 않았겠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


 그 회장이 경찰 등 나라의 공권력을 우습게 만든 점은 따로 따져야겠으나, 필자 같은 일개 필부의 눈으로도 그 부자의 행실이야말로 ‘정상적인 경우’는 아니다. 초원에서 늘상 보는 ‘무책임한 수컷’의 범주는 벗어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4. 30.


백규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