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 확인한 도서관의 힘
조 규 익 (숭실대 국문과 교수)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책을 소중히 여겨왔다. 그러나 책이 넘쳐나는 오늘날엔 사정이 달라졌다. 그 책들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사를 밥먹듯 하는 요즘 생활에서 처분 대상 영순위가 바로 책이다. 가끔 아파트의 쓰레기장에 수북이 쌓이곤 하는 화려한 장정의 책들을 보라.
우리 나라 사람들은 책을 별로 읽지 않는다. 공공도서관에서도 책을 사지 않는다. 공공도서관이 책을 사지 않아도 탓하는 국민이 없다. 도서관이 무엇 하는 곳이며 왜 중요한지 아는 정치인도 별반 없다. 이른바 출판대국인 이 나라에서 만드는 책들은 학습참고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니 두고두고 읽으며 의미를 반추한다던가 그럴 목적으로 책을 보존한다는 것은 애당초 엄두를 내지도 못하는 일이고,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그럴 만한 문화의식이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초강대국 미국의 힘이 책과 도서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그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나 부러운 그들 대학의 도서관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꺼내지도 말자. 틈날 때마다 동네의 도서관에 나가서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진지한 모습을 신기한 눈초리로 구경하곤 했다. 도서관의 주 이용객은 주부와 노인,초·중등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학생들이라 해도 우리 나라처럼 시험공부나 하러 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좋은 책들을 마음껏 읽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부대행사로 여는 각종 과외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주부들과 노인들이었다. 구부정한 노인들이 책을 한아름 들고와 반납하고 서가를 돌며 새로운 책을 찾는 모습. 주부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와서 책을 읽거나 대출하는 모습은 선진국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실감할 수 있게 하는 광경이었다. 점심때 만 되면 널찍한 식당을 점령해 수다로 시간을 죽이는 우리네 주부들을 생각하며, 할 일 없이 공원에 나와 먼 하늘만 우두커니 바라보는 우리네 노인들을 생각하며 나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의 주부와 노인들이 꼬마들 손을 잡고 동네도서관에 나와 독서삼매에 빠질 수만 있다면 그 순간 아마도 우리의 모습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룸살롱, 갈빗집, 다방, 노래방 등이 촘촘히 박힌 수렁 같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건져내려면 단 한 순간이라도 내면을 가꿀 여유가 있어야 한다. 도시마다 구색으로 하나씩 세워놓은 듯한 도서관이란 으레 학생들이 찾아가 노닥거리거나 시험 공부하는 독서실쯤으로 이해되고 있는 이 후진적 현실을 바꿔야 한다.
과격하고 이기적이며 진지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확바꾸려면' 전국민이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의 축적된 경험을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도서관을 확충하고 도서관 이용을 생활화해야 한다. 도서관 이용의 생활화나 독서 열풍은 단기간의 캠페인으로 이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인들이 손자녀들을 이끌고 도서관을 찾아 자신들의 진지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주부들이 장바구니를 든 채 도서관을 찾는 일이 생활화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경(經)을 읽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진지해지고 독서에 빠져들게 될 것이며 아파트 쓰레기장에 멀쩡한 책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야 학습참고서 아닌, 제대로 된 책들을 내는 출판사들이 살아날 것이고, 우리 나라도 비로소 선진국의 문턱을 넘게 될것이다. 책을 가까이 하는 날이 바로 우리가 한 차원 높아지는 날이다.
( 출처 : 출판저널 286호, 2000, 9,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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