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12. 5. 21. 20:23

 

“한국문예에 반영된 서울의 형상”

 

2012년도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전국 학술발표대회

 

일시 2102. 6. 8.(금) 10:00~18:00

장소 숭실대학교 벤처중소기업센터 311호

주최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소장 조규익 교수)에서는 2012년 6월 8일(금요일) “한국문예에 반영된 서울의 형상”이란 주제로 2012년도 전국학술발표대회를 갖는다. 문학과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서울의 형상을 찾아 보는 논문들 7편이 발표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기조강연) 고문헌 참색의 길에 만난 <한양가> : 박순호(원광대 명예교수)

2. <한양가>에 나타난 한양 경관과 장소애착성 : 최은숙(경북대)

3. <한양오백년가>에 나타난 역사인식 : 박연호(충북대)

4. 이본 대조를 통한 <한양오백년가>의 텍스트 고찰 : 정영문(숭실대)

5. <천변풍경(川邊風景)>과 <삼대(三代)> 속의 서울방언에 대하여 : 유필재(울산대)

6. 1970-90년대 서울 관련 대중가요를 통해 본 서울 풍경 : 장유정(단국대)

7. 조선후기 한양의 명승명소도와 국도(國都) 명승의 재인식 : 조규희(서울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5. 12. 21:01

 

                                <위에서 내려다 본 백양사 전경>

 

요것들을 어찌 할꼬?


                                                                                                            백규

며칠 전 밤늦게 TV로 뉴스를 시청하다가 간이 떨어질 만큼 충격적인 광경을 접하게 되었다. 장성 백양사 인근의 한 특급 호텔 스위트룸. 반팔 속옷 차림의 승려들이 빙 둘러앉아 도박판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언론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겸 조계사 주지와 부주지를 비롯 이른바 도가 높다고 일컬어지는 승려들 8명이 그들이었다. 때는 4월 23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술과 담배를 곁들인 억대의 포커 도박판이었다. 24일은 백양사에서 고불총림 방장 수산당 지종 대종사의 49재가 봉행되기로 예정된 날. 앵커의 설명과 화면은 즉시 나의 상상력을 가동시켰다. 당시 그 승려들은 절 근처 특급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옷가지들을 벗어던진 채 담배를 꼬나물고 술[보아하니 양주로 짐작되었다!]을 병째로 들이키며, 억대의 판돈을 걸고 도박판을 벌이고 있었다. 하도 궁금하여 인터넷으로 백양사 근처의 호텔들을 검색해 본즉 2인 1실 기준 스위트룸 1박이 20만원 정도. 모처럼 객고(客苦)(?)을 풀기에 딱이었을 그런 좋은 곳에서, 더구나 돈이 넘쳐나는 그들이 방을 함께 쓰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각자 방을 얻은 다음 어느 한 방에 몰려 가 놀았을 가능성이 크다. 술상도 결코 쓸쓸하지는 않았을 게다. 온갖 산해진미가 그득하지 않았겠는가. 혹 술 따르는 여인들까지 곁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심심하면 한 번씩 전국의 승려들이 조계사에 몰려들어 각목 들고 패싸움을 벌이던 일을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가. 겉옷을 벗어던진 채 담배를 피워 물고 술을 병째로 들이키며 포커 판을 돌릴 정도라면, 그 자리에서 오고 간 말들은 어땠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고상한 법문(法門)이나 경구(經句), 혹은 선문답(禪問答)들이라도 돌리고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아, 몇 번 어깨 너머로 구경한 적이 있는 속한(俗漢)들의 고스톱 판을 떠올려 보았다. 대개 고스톱 판에서는 패가 잘 못 들어왔을 때 내뱉는 단발성 ‘쌍욕’들이 대부분이고, 어떤 경우는 지저분한 음담패설에 허접한 농담들이 대부분이다. 투전판이란 고상한 말들이 오고 갈 자리는 결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 아닌가. 함께 이 모습을 시청했을 아이들이나, 부처님 모시듯 ‘스님’들을 모시는 전국의 불쌍한 신도 할머니들에게 이 장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가끔 여행을 하다가 새참 시간에 맞춰 시골 마을에 들어가면 쫓아와 합장하며 들밥을 권하는 할머니들이 있다. 내가 삭발을 하고 다니니 그 분들은 나를 피곤한 탁발승으로 오인하곤 하신다. 합장을 하면서 ‘어느 절에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셨느냐?’고 정중하게 예를 표하시는 것이 신심 깊은 우리네 시골 할머니들이다. 그런 할머니들에게 승려들의 이런 수행 장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그 화면에 말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당시 오고 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온갖 지저분한 음담패설들까지 방송되었더라면, 찬란한 한국 조계종의 역사는 그 순간에 멈춰버렸을 것이다!!!

흔히 종교를 믿지 성직자를 믿는 게 아니라고들 말한다. 성직자도 사람인 이상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음을 전제하는 말이다. 그렇다. 이 승려들 뿐 아니라,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외국 신부들의 성추문들, 간혹 교회를 사유재산처럼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온갖 꼼수를 부리거나 여신도들을 성폭행하는 목사들... 성직자도 인간인 이상 어느 순간 세속의 유혹에 빠져 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성직자를 보지 말고 종교의 참뜻을 바라보며 신앙심을 가지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인가. 목자 없는 새끼염소들이나 선생 없는 어린아이들을 생각할 수 없듯, 성직자 없는 신앙인들을 생각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승려들이 불교 입문을 원하는 사람들이나 신도들을 만나면 으레 삼독심(三毒心)을 버리라 한다. 삼독심 즉 ‘탐진치[貪瞋癡]’란 ‘탐욕[貪]/분노[瞋]/어리석음[癡]’ 등인데, 인간을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원인적 요소들이다. 그러나 삼독심을 버리는 게 그리 쉽겠는가. 자신들은 삼독심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세속인들을 상대로 ‘삼독심을 버리라!’고 일갈(一喝)한들 그게 무슨 감동을 줄 것인가. 차라리 그 많은 불경들 가운데 좋은 경구라도 골라 들려주어 듣는 사람 스스로 발심(發心)하도록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자신은 원수들을 죽도록 미워하면서 신도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친들 무슨 소용 있나? 자신은 재물에 끔찍한 애착심을 보이면서 ‘재물의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천당 가기 어렵다!’고 외칠 수 있나? 차라리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시편 119장 105절] 혼자서 열심히 성서를 읽고 묵상하며 실천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승려들의 참담한 행태를 목격하고나서 밀려드는 허무감을 주체할 수 없는 나날이다.  
                                                          

                                                                                                 <2012. 5. 11.>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4. 21. 17:52

가거지(可居地)를 찾아

 

 

 

 

                                                                                                                                                       


                                                                                                                                                          백규

어릴 적 자신의 ‘주검 옷’을 미처 마련하지 못한 노인들이 초조해 하는 모습을 뵐 때마다, 그 분들의 마음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못난 자식들이라 해도 당신 마지막 가는 길에 옷 한 벌 못해 입힐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안달하시는 걸까?’ 생각하며 그 분들의 속내를 가늠하지 못했다. 당신들 스스로의 손으로 최고의 주검 옷을 만들고 싶으신 마음, 그 옷을 입고 ‘고운 자태로’ 저 세상의 첫 문턱을 밟고 싶으신 그 마음을 철없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악다구니처럼 뜯어갈 줄만 알았지 부모의 마음을 한 치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 놈들, 제 가족이나 자신의 치장에는 돈 아까운 줄 모르면서 부모를 위해서는 푼돈을 아까워하는 자식 놈들, 바쁜 세상 탓만 하며 모든 걸 대강대강 장사치들의 손에 맡겨버리곤 ‘할 일 다 했다’고 손 터는 자식 놈들을 보며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들어가는 여행길만큼은 스스로의 손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이 땅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매 순간 갖고 계시는 거다. 이 땅의 어떤 자식이 그 지극한 속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우리나라 노인들이 땅에 발붙이고 말년을 살아가며 땅 속으로 들어갈 날을 준비하는 것은 오랜 세월 이어 내려 온 삶의 지혜이자 법칙이다. 번잡한 도회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떵떵거리다가 어느 순간 닥쳐 온 죽음 앞에 허둥대는 현대인들로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철학이기도 하다. 노후나 죽음에 대한 대비의 전통이 끊어진 것은 산업화에 이은 고도정보화의 물결 탓이다. 요즘 그 격랑이 점점 잦아들어 평온을 되찾고 있기 때문인가. 일부이긴 하지만 이제 현대인들이 조부모나 부모세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지혜의 전통을 찾아 나서게 된 것도 그로부터 생겨난 성찰의 덕분이리라. 자식들을 독립시키고 직장에서 퇴임한 다음 잡답(雜沓)의 도시를 탈출하여 조용한 전원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관조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깨달음의 묵직한 보따리를 텅 빈 농촌에 풀어놓고, 잠시 후면 몰려 올 자식들의 귀향을 기다리며 살다가 슬그머니 흙 속으로 스며드는 것. 한 줌 흙이 되어 소나무를 잣나무를 밤나무를 키우는 거름이 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삶일 것이냐.

나이 사십 후반이라면, 틈틈이 전국의 산과 들판을 돌아다녀볼 일이다. 돌아다녀보면 안다. 우리를 키운 8할이 계곡의 바람과 고운 물, 보드라운 흙이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역시 거기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라도 욕망을 버리고 ‘살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고의 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 ; 1670~1756)이야말로 우리 역사상 드문 선각자다. 살 만한 곳의 조건으로 그는 네 가지를 제시했다. 지리(地理)⋅생리(生利)⋅인심(人心)⋅산수(山水)가 그것들인데, 그 가운데 하나만 빠져도 낙토(樂土)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리란 ‘장풍득수(藏風得水)’ 즉 풍수를 포함한 그 땅의 현실적⋅형이상학적 이치, 생리란 그 땅이 인간에게 허락할만한 경제적 가치, 산수란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경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다한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頑惡)하다면 소용없는 일. 괜한 텃세로 들어와 정착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어놓거나 사사건건 트집으로 괴롭힌다면, 차라리 사막 한 가운데서 선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다녀보면 안다. 우리네 강토 안에서 이 네 조건 갖춘 땅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

  정년퇴임한 곳 언저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얼쩡대는 인사가 있다면, 어리석은 후배들을 닦달하고 작당하여 소리(小利)를 탐하려는 자가 있다면, 고개 들어 마지막 광채를 불사르며 바다로 스며드는 태양을 응시해볼 일이다. 깨끗하지 못한 우리를 자신의 넓은 품에 받아들여 정화시키고, 마지막을 아름답게 해 줄 대자연이 우리네 삶터 바로 곁에 있지 않은가. 허탕 치는 나날이지만, 오늘 또 다시 ‘가거지(可居地)’의 탐색에 나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012. 4. 21.>    

Posted by kicho
알림2012. 4. 16. 18:17

 

 

한국문예연구소 논문집 <<한국문학과 예술>>(9집) 출간!!!


한국문예연구소에서는 반년간 학술지 <<한국문학과 예술>> 9집을 출간했다. 이번 호에는 “1990년대 이후 패러다임과 문학지형의 변화”라는 주제 하에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소설적 형상화」(이경재), 「1990년대 이후 한국 연극의 변화」(백로라), 「윤대녕 소설의 노스탤지어 미학 : <<은어낚시통신>>을 중심으로」(백지혜), 「멜랑콜리 시학」(류신), 「현대시에서의 그로테스크」(이해운), 「이미지에서 서사로, 악몽에서 일상으로-편혜영 소설의 변화와 2010년대 소설의 향방-」(서영인) 등 6편의 특집논문과 1편의 일반논문[「조선조 文宣王樂章 연구」/조규익]을 실었고, 「중국 석학이 바라 본 지난날의 우리 모습-<<해동삼유록>>(위욱승 지음)을 읽고-」(소재영), 「난해한 선천역학의 닫힌 문 열기-<<소강절의 선천역학(고회민 저/곽신환 옮김)>>을 읽고-」(조희영), 「한 식민지 엘리트 군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경천아일록>>(김경천 지음/김병학 옮김)을 읽고-」(김기철), 「발로 쓰는 학문태도의 정수-<<동아시아 문화 교류론>>(소재영 지음)을 읽고-」(김태준), 「사행록 텍스트 다양하게 곱씹어보기-<<조선시대 사행록의 텍스트와 콘텍스트>>(정영문 지음)를 읽고-」(한태문) 등 5편의 서평과 자료 및 자료해제[「가사로 풀어낸 조선왕조의 이면사-박순호 본 <한양가(1)> 소개-」]를 실었다. 지금까지 <<한국문학과 예술>>에는 국내외 석학들에 의해 작성된 해당분야의 주목할 만한 논문들과 서평들, 해제들이 실림으로써 한국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