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11. 13. 12:25

 

 

 

 

마늘 먹는 남자

 

 

 

 

세상에 별걸 다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분석해놓은 결과 또한 기가 막힌다.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한 기사에 눈이 꽂혔다. ‘마늘 먹는 남자에게 여성이 더 매력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그것이다. 스코틀랜드 스털링대학과 체코 프라하대학 연구진의 공동연구 결과란다.

 

대상으로 선정된 남성 42명에게 차례로 마늘 실험을 해본 모양이다. 처음엔 마늘, 그것도 생마늘(!)을 섭취하게 하고, 다음엔 더 적은 양의 마늘가루를 섭취하게 하고, 그 다음엔 아예 마늘을 먹지 않게 한 다음 각각의 경우 겨드랑이에 패드를 붙여 12시간 동안 땀을 모아 여성 82명에게 냄새를 맡아보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늘을 섭취한 남성이 더 매력적이고 남자답고 상쾌한 향을 준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더 해괴한 것은 마늘 두 쪽을 섭취할 경우 별 차이가 없었던 반면, 네 쪽(마늘가루 12g)을 먹으면 여성의 호감도가 더 올라가는 것으로 나왔다는 사실.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마늘의 항균, 항바이러스 특성이 악취의 원인인 미생물의 농도를 약화해 겨드랑이 냄새를 더 달콤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추론은 겨드랑이 냄새가 사람의 친밀성을 좌우하는 중요 인자라는 것, 여성이 마늘 먹는 남자를 선호하도록 진화했을 수 있다는 것 등이었다. 또한 마늘이 항생, 항바이러스, 항균 성분이 있기에 남성의 땀을 통해 섭취 여부를 알 수 있고 남성의 건강을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마늘 좋다는 건 단군 할아버지를 낳아주신 웅녀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이미 입증된 바이고, 수천 년 내려오면서 마늘 없이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다만약 이 연구결과가 타당하다면, 전 세계의 여성들은 벌써부터 한국 남자들에게 빠져 있었어야 하고, 지금 '농촌 총각 장가 보내기' 위해 동남아 나라들을 뒤지고 다니는 결혼정보회사들은 앞장 서서 총각들에게 '마늘 먹이기 운동'이라도 벌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현실은 과연 그런가. 근래 해외로 나가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마늘냄새때문에 스스로 갖게 되는 자기 검열의 콤플렉스 또한 적지 않다. ‘혹시 외국인들이 강한 마늘냄새로 나를 기피하지나 않을까?’, ‘오늘 무슨 모임이 있는데, 마늘 들어간 음식은 절대로 먹지 말아야지!’ 등등.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마늘 때문에 갖게 되는 불안감으로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소싯적 언제던가 한동안 마늘에 빠져 지낸 적이 있었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서 정확한 건 기억에 없지만. 건강 정보에 귀가 얇은 내가 방송에 나와 열변을 토하는 누군가를 보았던 것이다. 그가 말한 요점은 누구나 아침 빈 속에 생마늘 3~4쪽을 생수와 함께 씹어 먹으면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옳다구나!’ 쾌재를 부른 나는 즉시 실천에 옮겼다. 물론 아내와의 갈등도 동시에 시작되었고. 마늘을 먹는 본인이 자신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상식을 나는 그만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맵고 알싸한 생마늘을 생수와 함께 먹고 나니 식욕도 늘어나고 삶의 원기도 넘치는 것 같았다. 내게서 고약한 냄새가 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은 일종의 비극이었다. 날이 지나면서 나는 콧노래를 불렀으나, 아내는 점점 내 곁에서 멀어져 갔고, 가끔씩 내 연구실에 찾아오던 동료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늘 내 코앞에까지 와서 무언가를 묻던 학생들의 발길도 드물어졌다. 그 뿐인가. 틈만 나면 내 무릎에 앉아 조잘대던 내 아이들도 자꾸만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의 회식이 끝나고 2차 술자리로 몰려갔을 때였다. 다른 학과의 선배교수 한 사람이 맥주잔을 부딪치면서 슬쩍 묻는 것이었다. ‘조교수, 요즘 무슨 약을 드시오? 늘 활력이 넘쳐 보이니. 그런데 냄새가 좀 유쾌하지 못한 건 약간의 흠이라 할 수 있겠는데.’라는 그의 조심스런 말을 듣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하니, 이제야 승기를 잡았다는 듯 그녀는 언성을 높이며 생마늘 절대 금지의 팻말을 치켜드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마늘 많이 먹는 사람들 곁에 한 번 가보라고, 마늘 먹는 자신은 그 냄새를 맡을 수 없는 법이라고, 그녀는 나의 무책임과 미련함을 마구 성토하는 것이었다. 사실 선배교수의 말에서 활력이 넘쳐 보인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은 나는, ‘냄새가 좀 유쾌하지 못하다는 부분은 아예 무시하려 했으나, 아내의 견해는 달랐다. ‘오죽하면 그 교수가 그렇게 말했겠느냐? 그러니 그 교수가 너무 고맙다.’는 것이 아내 주장의 요지였다.

 

그 다음날부터 냉장고 속의 생마늘이 모두 사라지고사람들이 내 곁에서 슬슬 사라진 것도 마늘때문인개벼~’라는 굼뜬 깨달음을 계기로 나는 결국 마늘을 끊게 되었다. 그 뒤로 다시 사람들은 내 곁에 오게 되었고, 결국 음식과 성공적인 사회생활 간의 밀접한 상관성도 깨닫게 되었다.

 

***

그런 마늘을 많이 먹은 남성에게 여성들이 호감을 갖는다니! 내가 생마늘을 먹기시작한 날부터 내게서 멀어져 간 내 아내는 그럼 여성이 아니었단 말인가? 서양 사람들의 연구결과가 마늘 없이 못 사는 민족의 일원으로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그 결과의 타당성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소싯적의 내 씁쓸한 경험 때문이다. 겨드랑이 냄새보다는 입에서 풍기는 냄새가 더 화급한 문제인 것을. 할 일 없으면 누워 낮잠들이나 잘 것이지, 연구치고는 참 해괴하지 않은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11. 8. 23:33

 

 

 

 

 

종합편성채널들에게 한 마디

-출연자들의 어법을 제대로 모니터링하라-

 

 

 

 

 

 

정치가 어수선하고 사회가 혼란스럽다 보니,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으로 약칭)에 출연하여 궁금증을 풀어주는 각계의 전문가들이 반가울 때가 많다. 어쩌면 그렇게 내 생각과 같은지 신기할 때도 있고, 비판의 언성을 높일 때면 속이 후련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매일 똑같은 얼굴들이 등장하여 별스럽지 않은 말들을 반복한다고 불만인 아내와 종종 채널 다툼을 벌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처럼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점에서 종편 출연 전문가들의 식견과 말솜씨는 탁월하다. 그러나 가끔 귀에 거슬리는 점도 없지 않다. 최근 방송에 출연하는 변호사들이 부쩍 늘었다. 공부를 많이 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들이니만큼 논리적으로는 흠 잡을 데 없다. 그러나 호칭을 비롯하여 몇몇 말투는 몹시 귀에 거슬린다. 그런 실수들을 반복할 때마다 그들에 대한 신뢰감은 저하된다. 예컨대 어떤 여성 변호사는 존대어법을 남발한다. 분명한 범죄인을 언급하면서도 꼬박꼬박 존대어를 붙이는 그의 어투와 어법이 참으로 듣기에 거북하다.(심지어 서술어에까지 존칭어를 남용하는 통에 '과공(過恭)'의 무리를 지나치게 자주 범하곤 한다.)  법정에서 의뢰인인 범죄인을 변호하면서 반복해오던 습관 때문일까. 물론 범죄인에게 대해서라고 경칭을 사용해서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제3의 장소, 객관적 인용의 경우에서까지 범죄인에게 존칭어를 남발해야 하는지, 참으로 거북살스럽다.

 

또 다른 여자 변호사도 비슷한 경우다. 오늘 방송에서도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 혹은 부인을 언급하면서 아내 분이라 했고, 남편을 언급하면서 남편 분이라 했다. ‘이란 사람을 높여 부르거나, 높이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리는 의존명사다. ‘저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라거나 국회의원 세 분이 오셨다등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정확한 어법이다. 그러나 신문에 보도된 바와 같이 김○○ 씨의 아내 분이 그런 행동을 했다거나 방송에 출연한 이○○ 씨의 남편 분이 그런 말을 했다고 말한다면 무언가 어색하다. 그냥 아내 혹은 남편이라 해도 무방하나, 굳이 높여줄 요량이라면, ‘부인이나 부군이란 말을 쓰는 것이 마땅하다. ‘아내()+()’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남편이 자신의 각시를 존중해서 부르는 뜻이라고 설명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대부분의 국어사전에서 이 말은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로 설명되어 있으니, 객관적 입장에서 언급하는 특정 남성의 각시를 의미할 경우는 그냥 아내로 호칭하는 것이 옳다. 그래도 굳이 경칭을 써야겠다면, ‘부인이란 말을 쓰는 것이 아내 분보다는 정확하고 듣기에도 좋다. 사실 요즈음에는 '제 아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처럼 상대 웃사람에게 자신의 각시를 가리키기 위한 객관적 호칭으로 쓰는 경향이 일반적이라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젊은 남자 변호사 한 사람은 다르다라고 해야 할 경우에 자꾸만 틀리다/틀린다/틀렸다고 말한다. 가끔 그가 출연하는 프로를 보곤 하는데, ‘다르다라고 정확하게 말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평소에도 다른 것틀린 것으로 말하고 있음에 분명한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다르다라고 써야 할 곳에 시종일관 틀리다/틀린다/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르다를 써야 할 곳에 가끔은 다르다라고 맞게 말해야, 그가 제대로 알고 있으면서 방송에서만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봐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의 직업이 변호사임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작은 실수가 아니다. 그가 변론을 하면서 다르다라고 해야 할 때 틀리다/틀린다/틀렸다라고 한다면, 변론이 의도한 대로 정확히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 말 때문에 소송의 상대편으로부터 되잡힐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 말이 참으로 귀에 거슬리고, 가끔은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신문사에는 교열부라는 곳이 있다. 기자들이 써낸 기사를 편집하고 나면(혹은 편집 이전에?) 전문 기자들이 꼼꼼히 읽고 잘못을 고치는 전담부서다. 그러나 방송국에도 그런 부서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모니터링이라는 작업을 하긴 하는 모양이다. 비록 생방송이라 해도 제대로 모니터링이 된다면, 그런 실수들이 다음 방송에서는 반복되지 않을 것 아닌가. 그 변호사들이 방송에 등장한 지 꽤 오래 된 점으로 미루어, 시청자들의 인기는 높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그런 말투나 말실수는 제대로 교정되지 않고 있다. 방송사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방송사가 어쩜 그런 말들을 표준어()의 하나로 추인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들을 개인적인 언어습관으로 가볍게 생각하여 용인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방송은 파급력이 신문에 비해 훨씬 크고, 교육적인 영향력 또한 막대하다. 향후 대중들이 다르다틀리다가 같은 말이라고 받아들인다면, 그건 지금 사회적문화적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는 종편들 때문일 것이다. 부디 종편들이 방송 언어의 정확성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주기 바란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11. 5. 07:08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서의 5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세인트루이스 공항 인근

 

 

 


발표문 ppt 일부

 

 

 


발표문 ppt 일부

 

 

 


워싱턴대학교 댄포스 캠퍼스 남쪽 입구

 

 

 


브루킹스홀 쪽의 게이트

 

 

 


캠퍼스 일부

 

 

 

 

작년에 신청했어야 하는데, 게으름을 부린 탓에 그만 올해 아시아학회(AAS: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참여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올해 초반 부랴부랴 찾아낸 학술발표회가 바로 AAS의 중서부 지역 분회에서 열리는 MCAA(Midwest Conference on Asian Affairs). ‘미국 중부의 하버드라 불리는 워싱턴대학교에서 열린다 하여 더 매력적이었다. 발표 및 참가 신청, 발표문 송부 및 심사, 숙소 및 항공편 예약 등 자잘한 절차들이 자못 번거로웠으나, 서양의 학자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면서 새로운 기운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움직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 과정에서 큰 학술발표회를 조직하고 움직이는 그들의 메커니즘을 배울 수도 있었고,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들의 내면 또한 살짝 훔쳐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아직 가보지 못한 세인트루이스와 워싱턴대학교였다.

 

멀었다. 비행기가 태평양 상공에 도달할 즈음에야 모니터에 뜨는 항로를 보며 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약간의 후회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었다. 시카고의 오헤어(O’hare) 공항까지 꼬박 12시간, 오헤어에서 기다린 3시간, 오헤어에서 세인트루이스 공항까지 1시간 20, 공항에서 호텔까지 30분 등 무려 17시간이나 걸렸으니!

 

시차 부적응으로 피곤한 몸을 끌고 다음 날의 발표(*발표문은 백규서옥http://kicho.pe.kr 연구업적>논문>No.221’ 참조)를 포함, 꼬박 사흘간의 학술발표회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 61개의 패널, 패널 당 4명의 발표였으니, 발표자만 해도 240명이 넘었다. 토론자, 진행자, 참관자까지 합치면 1,000명이 넘는 규모였다. 발표도, 발표에 대한 반응도 비교적 만족스러웠기 때문일까. 몸과 마음 상태는 크게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워싱턴 대학의 이지은 교수와 전임강사로 있는 고인성 박사, 울산과기원의 이재연 교수 등을 만난 것은 피로를 가시게 한 청량제였다. 이지은 교수, 이재연 교수 등과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대화는 무엇보다 유익했다. 발표장을 메운 외국의 학자들에게 조선의 건국서사시(foundational epic of Joseon Dynasty)를 소개하고, 그 밑바탕으로 작용한 유토피아 찾기로서의 풍수론을 전통 생태 담론적 차원에서 설명한 것은 아주 짜릿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학회 종료 후 하루 반 동안의 여유가 있었다. 워싱턴대학교 댄포스(Danforth) 캠퍼스의 구석구석, 밀드레드레인켐퍼 미술박물관(Midred Lane Kemper Art Museum), 미주리 역사박물관(Jefferson Memorial Missouri History Museum), 게이트웨이 아치(Gateway Arch) 등을 포함, 다운타운 몇 곳들을 도는 데 그쳤지만, 그간 서구 여러 나라의 도시들을 돌아보며 익힌 노하우(?) 덕분일까. 세인트루이스와 워싱턴대학교의 장점들을 순식간에 체감할 수 있었다.

 

1853년 윌리엄 그린리프 엘리엇(Willam Greenleaf Eliot)이 주도하여 엘리엇 세미너리(Eliot Seminary)를 세웠는데, 이 학교가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로, 다시 워싱턴대학교로 확대발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전역에 워싱턴의 이름을 딴 대학들이 늘어나자 다시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로 교명을 환원했다 한다. 댄포스 캠퍼스는 빅벤 대로(Big Bend Boulevard), 퐈리스트 팍 파크웨이(Forest Park Parkway), 스킹커 대로(Skinker Boulevard), 와이다운 대로(Wydown Boulevard) 등으로 둘러싸인 변형된 직사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었는데, 중앙에서 동서로 가로지르는 포시쓰 대로(Forsyth Boulevard)가 캠퍼스를 남북으로 가르는 형국이었다.

 

멋진 캠퍼스였다. 어떤 건축양식을 본떴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평탄한 대지에 늘어선 단정한 베이지색 톤의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따스해보였으며, 안으로 들어가니 철저히 인체공학에 맞추어 지은 듯 이동하기에 편했다. 거의 반반인 대학원과 학부 합쳐 14천의 학생들과 3000여명이 넘는 교수진이 댄포스 캠퍼스(206,885), 메디컬 캠퍼스웨스트캠퍼스노스캠퍼스(165.263) 등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들 캠퍼스에 산재해 있는 14개의 도서관들엔 총 420만권의 도서가 소장되어 있었으며, 이 대학의 자랑인 밀드레드레인켐퍼 미술박물관도 미시시피강 서부 연안 최고(最古)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교수진에 22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10명에 가까운 퓰리처 수상자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 미국 대학평가에서 늘 10위권(12~14)을 유지하고 있는 최고 명문이라는 점도 놀라웠다.

 

학회 덕에 이 대학에서 종신 교수직을 받고 한국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이지은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연세대학교에서 노문학을 전공하고 하바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이 대학교 인문대학(Arts & Sciences) 동아시아 언어문화학부(East Asian Languages and Cultures) 한국학과의 학과장이었다. 이 교수는 저서 <<Women Pre-Scripted: Forging Modern Roles through Korean Print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5)>>를 비롯하여 많은 논문들을 발표했으며, ‘한국문명론(Korean Civilization)근현대 한국문학(Literature of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한국문학과 문화의 주제들: 젠더 구축하기(Topics in Korean Literature & Culture: Constructing Gender)현대 한국인의 자아: 한국문학과 문화의 주제들(Contemporary Korean I: Topics in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한국문학과 문화의 주제들(Topics in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 등의 강의를 통해 미국 학생들과 만나고 있었다. 이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미국 인문학계의 자세한 모습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함께 발표에 참여한 울산 과기원의 이재연 교수 또한 하바드와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한 한국문학 세계화의 주역이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비롯한 한국문학 전공자들이 앞으로 무엇에 주력해야 할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젠다(agenda)의 쉼 없는 발굴과 논리 구축을 통해 세계 학자들과 소통하는 일만이 우리의 낙후성을 탈피하는 유일한 출구임을 알게 된 것이다.

 

***

 

귀국 날까지 짬을 내서 찾은 워싱턴대학교의 밀드레드레인켐퍼 미술박물관은 건물도 훌륭했지만, 마침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내 가슴을 뛰게 했다. 하루를 쉰 다음 찾은 미주리주 역사박물관과 게이트웨이아치는 미주리 주와 세인트루이스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명소들이었다. 미주리 역사박물관은 제퍼슨(Thomas Jefferson) 대통령을 기념하는 의미도 갖고 있었다. 사실 제퍼슨 대통령이 프랑스로부터 미시시피강에서 로키산맥에 이르는 80만 평방 마일의 광대한 땅을 사들임으로써 미주리 주는 비로소 미국 땅이 되었고, 본격적인 번영이 시작된 것이다. 세인트루이스의 역사가 독립선언을 기점으로 시작된 미국의 역사보다 100년 이상이나 긴 것도 그 때문이다. 1673년 이 지역에 도착한 프랑스 탐험가들은 원주민이 살고 있던 이 땅을 접수하여 프랑스령으로 만들었고, 자신들의 왕 루이 14세의 이름을 따서 루이지애나(Louisiana)로 명명한 것. 3대 대통령 제퍼슨이 1803년 나폴레옹으로부터 이 땅을 매입하여 1804310일 미합중국의 한 부분으로 공식화한 다음 1808년에 시의원단을 선출했고, 1809년에 정식 시로 등록한 것이다. 1904년의 국제무역박람회, 커피산업, 도시 확장 및 정비 등이 박물관 소장품의 대표적 컨셉들이었다. 사실 1904년의 국제무역박람회와 하계올림픽은 1896년에 세인트루이스를 덮친 허리케인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 시도였는데, 역대 최악이었던 올림픽과 달리 박람회는 성공적이었다. 그 내용들이 박물관 중심의 전시물들을 통해 설명되고 있었다.

 

다양한 전시물들을 통해 커피 산업이 미주리의 중심에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 부분이나 도시의 형성, 발전, 팽창을 보여주는 대형 사진들과 각종 생활사 자료들은 박물관을 매우 인상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그것들은 여타 국가나 지역의 박물관들과 비교하여 특별한 의미와 함께 차별성 또한 보여주고 있었다. 그곳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우리도 이런 역사박물관 하나쯤은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박물관을 나와 들른 곳은 이 도시의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게이트웨이 아치(Gateway Arch). 국립 제퍼슨 국토 확장 기념관(Jefferson National Expansion Memorial)을 장식하는 조형물이자 '게이트웨이 시티(Gateway City)'라는 세인트루이스의 별칭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랜드마크였다. 서부개척 시대, 서부로 넘어가는 관문이 바로 세인트루이스였고, 그 개척의 상징물이 바로 이것이었다. 1947년 핀란드 계 미국 건축가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과 건축기사 한스카를 반델(Hannskarl Bandel)의 설계를 채택, 1963212일 착공, 19651028일 완공, 1967724일 일반에 개방되었으니, 설계로부터 무려 20년이나 걸린 큰 공사였다. 전체 높이 192m의 무지개 형상 스테인리스강 구조물로서 남쪽과 북쪽 두 방향에서 엘리베이터 격인 트램(tram)을 타고 아치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꼭대기의 좁고 긴 방에서 창문을 통해 미시시피강과 일리노이 평원, 세인트루이스 시내를 조망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아치 밑으로는 웨스트워드 익스팬션 박물관(Museum of Westward Expansion)이 연결되었다.

 

 

세인트루이스는 도착부터 떠나는 날까지 평화와 안온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조용한 가운데 안으로는 바글바글 끓어 넘치는 용광로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국의 여느 도시들처럼, 짧지만 화려한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아이디어와 활력이 맥박치고 있었다. 그 한 복판에서 세계의 인재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 바로 워싱턴대학교였다. 그러나, 어쩌랴! 56일 간의 짧은 일정 속에 바늘구멍으로 들여다 본 풍경. 그게 세인트루이스의 허상일까, 아니면 실상일까.

 

 


Thinker on rock-Barry Flangan 작, 1997. 워싱턴대학교 교정

 

 

 


John M. Olin Library

 

 

 


 Carl Neureuther에 대한 감사 동판

 

 

 


도서관 서가

 

 

 


도서관 서가

 

 

 


동아시아 도서관

 

 

 


인문대학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이지은 교수 연구실

 

 

 


이 교수 연구실의 서가

 

 

 


MCAA 첫날 연회

 

 

 


학술발표회에서. 린덴우드 대학교 중국어학과 Brian Arendt 교수와 함께

 

 

 


동아시아학과의 Rebecca Copeland 교수(일본문학교수/동아시아학부 학부장), 

Holden Thorp 박사(교무처장/학사부총장/리타 레비-몬탈시니 석좌교수)와 함께

 

 

 


이지은 교수와

 

 

 


연회장에서 이지은 교수, 이재연 교수, 고인성 교수 등과 함께

 

 

 


저녁식사 자리에서 함께 한 한국학자들

 

 

 


밀드레드레인켐퍼 미술박물관

 

 

 


미술박물관에서 만난 시팅불(Sitting Bull)[Andy Warhol 작]

 

 

 


피카소의 <알제리의 여인들(Women of Algiers)>

 

 

 


Max Beckmann의 <Artists with vegetable>

 

 

 


미주리 역사박물관

 

 

 


미주리 역사박물관 소장 '세계무역박람회장 가는 길'

 

 

 


역사박물관 전시품

 

 

 


역사박물관 소장 포스터

 

 

 


역사박물관 소장 '수레'

 

 

 


커피산업에 대한 세인트 루이스의 자부심 "시애틀은 비켜 서세요!"

 

 

 


그 당시 커피 브랜드의 하나

 

 

 


세계 각국에서 수입되는 커피 원두들

 

 

 


어렵던 시절의 미주리주 주민들

 

 

 


당시 야구경기 모습.

 

 

 


게이트웨이 아치

 

 

 


게이트웨이 아치

 

 

 


Forest Park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멋진 개인주택

 

 

 


Forest Park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멋진 개인주택

 

 

 


세인트루이스 다운타운의 한가로운 모습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10. 13. 21:57

19금 수필

 

섹스, 그리고 학문과 체험의 거리

 

 

 

 

오늘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알렉스 자보론코프라는 영국 생명과학자의 책이 소개된 기사를 읽게 되었다. <<늙지 않는 세대(the Ageless Generation)>>이란 제목의 책.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려면 성관계를 중지해야 한다는 것, 섹스를 포기한다면 150세까지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는 것, 성관계 대신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 펴기 등의 규칙적인 운동과 소식(小食)을 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장수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결혼을 크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 등이 기사에 소개된 핵심내용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오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집 을 포기한 세대)칠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 , 희망을 포기한 세대)’가 출현하여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는 지금 아닌가. 경제가 어려워 남녀의 기본관계조차 포기해야 하는 이 때, 이런 책의 출현을 바라보아야 하는 내 심정이 매우 착잡하다. ‘오래 살려면 섹스를, 아니 결혼을 포기하라는 저자의 주장에 얼마간의 근거가 있다 할지라도, 결혼과 섹스를 포기하라니? 삶의 행복을 추구하고 2세를 낳아 세상을 유지해나가도록 하는 것은 사실 인간의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한데 말이다. 150년을 살기 위해 하늘이 부여한 인간 최대의 특권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불성설이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노래문학 만횡청류(蔓橫淸類)가운데 두 작품만 들어보자.(*독자들을 위해 현대어로 번역하여 제시한다.)

 

1. 술 먹고도 병 없는 약과

   색 쓰고도 오래 사는 약을

   값 주고 살 수 있으면

   맹세코 아무리 비싼들 관계하랴!

   값 주고도 못 살 약이니

   눈치 알아가며 조금씩 하여

   백년까지 해보세.

 

2. 꼭 백년 살 줄 알면

   주색에 빠진다 관계하랴.

   행여 참은 후에 백년을 못 살면

   그 아니 애달은가?

   인명은 하늘에 달린 것이라

   주색을 참은들

   백년 살기 쉬우랴

 

두 노래 모두 절창이다. 두 노래 모두 핵심은 끝에 있다. “눈치 알아가며 조금씩 하여/백년까지 해보세”, “인명은 하늘에 달린 것이라/주색을 참은들/백년 살기 쉬우랴는 말들 속엔 인간의 최대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다는, ‘욕망 합리화의 긍정적 철학이 담겨 있다. 더구나 두 번째 노래 중간의 행여 참은 후에 백년을 못 살면/그 아니 애달은가?”라는 멘트는 통찰과 지혜가 녹아든 명언이자 자보론코프를 납작하게 밟아놓는 주장이기도 하다. 인생 백년을 한정하고 조금씩 절제하며 죽을 때까지 즐겨보자는 것, 소리 치고 살아봐야 백년을 못 사는 게 인생이니 주색을 즐겨보자는 것. 얼마나 달관한 철학자의 논리들인가.

 

수명을 연장해보려고 섹스 혹은 2세 생산의 즐거움을 포기한 채 팔굽혀 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나 쉬지 않고 해야 한다면, 참으로 따분한 일생 아닌가. 그렇게 150을 살아서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보면, 일생 연구실에서 머리를 짜낸 자보론코프 교수보다 옛날 우리네 노래꾼들이 훨씬 지혜롭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맘대로 주색에 탐닉하라는 말씀은 아니니, 강호제현은 새겨들으시라. 呵呵.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