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3. 10. 9. 12:47

 

오클라호마의 숨어 있던 별 ‘Guthrie City’

 

 

 

오클라호마 시티로부터 35번 하이웨이를 타고 20~30분을 달리자 길가에 ‘Oklahoma Territorial Museum[오클라호마 지역 박물관]’이란 입간판이 서 있었다. ‘territorial’이란 이름에 관심이 갔다. 특수한 분야를 표방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박물관이란 시간과 지역을 초월하는 공간인지라, ‘territorial’을 강조한 그 이름이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이다.


Oklahoma Territorial Museum 전경


오클라호마 주 인디언 분포도

 

105일 토요일. 맘먹고 기억 속에 각인된 그곳엘 갔다. 거쓰리(Guthrie) 인터체인지로 진입하니 겉보기에 한적한 시골이었다. 다운타운이라 할 만 한 거리의 주차 공간들은 텅텅 비어 있었으나 도시 곳곳에 서려 있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다. 이곳이 바로 오클라호마의 첫 주도[州都, Capital]였다. 인근의 오클라호마 시티에 주도의 지위를 넘겨 준 뒤 와신상담(臥薪嘗膽)해 온 듯하지만, 한 번 지나간 역사의 물결을 되돌리기란 불가능함을 그들인들 모를 리 없을 터. 힘들여 보존하고 있는 영화의 옛 자취들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주 간선도로를 따라 100년 넘는 건물들이 즐비하고, 거리에는 승객들을 가득 실은 당시 모양의 버스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옛날 모습의 트롤리 버스
 

잠시 걷다 보니 하얀 천막들이 우리의 길을 막았다. ‘Guthrie Escape’란 명칭의 가을 축제였다. ‘거쓰리로의 탈출쯤으로 번역될 수 있을까. 큰 도로 위에 설치된 각각의 천막들에는 각종 미술품, 음식, 와인, 의상, 도자기, 공예품 등이 그득그득 전시되어 있고, 천막 거리를 벗어난 곳의 가설무대에서는 그룹 싱어들과 악사들이 각국의 민속음악들을 공연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100년이 훨씬 넘는 건물들이 우뚝우뚝 서서 축제의 현장을 굽어보고 있고, 사람들은 그 사이를 냇물처럼 흐르고 있는 시간의 여울에서 물고기가 되어 유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시간이 각인된 그 자리에서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축제의 힘임을 비로소 느껴본 우리였다.


축제 공연장 앞에서 만난 가수들


거리의 오래된 악기점


축제장 도자기 부스에서 만난 아마추어 도예가


축제장 장식물 부스에서


거쓰리 축제 포스터


축제장 공연무대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부터 두 개의 네거리를 지나자 박물관이 서 있었다. 건물은 그럴 듯 했으나, 관람객은 우리 둘 뿐이었고, 들어가 보니 빈약한 컬렉션 또한 우리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주로 개척시대 이 지역의 생활사 자료들이거나 복원된 것들이 대부분으로, 1, 2층에 나누어 진열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미 오클라호마 시티의 카우보이 박물관과 털사 시의 길크리스 박물관을 본 우리의 안목을 만족시키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박물관과 함께 하고 있는 카네기 도서관은 오클라호마 주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것으로 당시 소장하고 있던 책들과 열람실이 그대로 보존되어 이 도시의 역사적 연원과 문화적 깊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박물관 소장품(집안 모습)


페인카운티의 창설자 페인 기념 페넌트


박물관 소장 가구들


박물관에 전시된 옛날 버스


인디언 체이옌족 추장 울프


카네기 도서관의 모습

박물관에서 나와 중앙의 대로를 타고 끝까지 가자 큰 건물의 '스코틀랜드 프리메이슨 사원(Scottish Rite of Freemasonry)'이 서 있었다. 기독교와 계통을 달리 하는 광신도들의 비밀 결사로서 이미 200~300 년 전부터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백인사회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민간조직이 바로 이것이다. 루스벨트, 처칠 등 세계의 지도급 인사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십자군 전쟁 때의 성당 기사단에서 연원되었을 만큼 역사가 길다.


십자군 전쟁 뒤 스코틀랜드로 도피하여 석공으로 변신한 기사들은 비밀 결사를 만들어 유지하며 수백 년을 지탱했고, 그로부터 약 400년이 지난 1717, 흩어져 있던 지부들이 규합하여 프리메이슨의 공식명칭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프리메이슨의 사원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잠겨 있는 사원의 주위를 뱅뱅 돌면서 비밀스런 내부를 보고자 했으나 문은 굳게 잠겨 나그네의 출입을 완강히 막는 것이었다.

프리메이슨을 떠나 클리블랜드가에 위치한 레스토랑 ‘EAT’를 찾았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 집의 돼지 갈비 바비큐와 맥주 한 잔은 나그네의 출출한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고, 모여드는 사람들의 친절한 표정과 응대가 이 지역의 분위기를 말해주고도 남았다.


늦은 점심을 때운 옛날 레스토랑 EAT


레스토랑 EAT 캐시어의 상큼한 미소


레스토랑 벽에 붙어 있는 옛날 상표

 

식사 후 커피 마실 만한 집을 찾다가 들른 곳이 바로 빅토리안 티룸(Victorian Tea Room). 레스토랑이 주업인 그 집에서 차 한 잔만 마시기가 미안해 쭈뼛거리는 우리를 호화롭게 세팅된 자리에 앉힌 다음 여주인 셰릴(Cheryl)은 맛있는 티와 커피를 내왔다. 차를 마시면서 여주인과 우리는 이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시를 세운 인물 거쓰리의 이야기, 거쓰리 시의 역사와 문화, 조상들과 자신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 등을 자분자분 얘기해준 그녀는 우리가 미국에 도착한 이후 대학 밖에서 만난 첫 지성인이었다.


빅토리아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빅토리아 다방의 주인 Cheryl씨와 함께

 

그 뿐 아니었다. 한참 만에 일어나 나가면서 찻값을 지불하려 하자 그녀는 돈을 받지 않으려 했다. 미국이 어딘가? 음식 값을 내고도 팁까지 얹어 줘야 하는 나라다. 그런데 우리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난 그녀가 찻값을 받지 않겠다니! 오클라호마의 경건함과 친절함에 이미 감동받은 바 있는 우리는 거쓰리에 와서도 대접받는 기분을 가질 수 있었다. 자본주의의 천국 미국에서 공짜 커피를 마시고, 미국 친구까지 만들게 되었으니, 이만 하면 몇 배 남는 장사를 한 셈이었다. 즐거운 기분으로 거쓰리의 추억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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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훈식

    교수님을 담은 사진사 분의 마음이 훈훈하여 피사체에 투영된것 같습니다.^^그곳 분들도 겸손하군요. 공수자세를 보니까요.

    2013.11.07 22:34 [ ADDR : EDIT/ DEL : REPLY ]
  2. 백규

    미국인들이 생각보다 예의바른 게 사실입디다. 물론 계산이 분명하고,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점은 미국인 모두에게 공통된 생활습성이겠지만. 드물게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매우 진지하고 배우려 하고, 남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 여기서 만난 셰릴은 그런 케이스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나고 기분 좋기가 쉽지 않은데, 이 경우는 100%였어요.

    2013.11.14 01:08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13. 9. 18. 12:07

 

 


오클라호마 장터축제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며


축제장 입구에서


축제장의 모습


장난감 부스 옆을 지나며


장난감 부스들의 모습


축제장 입구에서 만난 바비큐장


익어가는 바비큐


만화가와 가족들


칼 가는 장인의 포스


스시 장인의 맵짠 눈길


짐 노릭 경기장 앞에서


 노릭 경기장 안에서(Disney on Ice의 한 장면)


축제장 안에 설치된 모터쇼의 현대차

 

문화답사1

 

오클라호마 스테이트 페어(Oklahoma State Fair)

 

 

해외의 어디를 가든 우리의 1차적인 관심 대상은 박물관이나 교회 혹은 성당이었다. 그런 공간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912.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뒤 최근까지 분주히 지내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9월도 반 가까이나 흘러 버렸다.

 

아뿔싸.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른다면 텍사스나 아칸소, 미주리, 캔자스 등 오클라호마 주변 지역들은 고사하고 오클라호마의 문화답사조차 물 건너가는 것 아닌가. 그 때 마침 우리 숙소를 관리하는 OSU의 FRC[Family Resources Center]로부터 입주민들에게 인근의 오클라호마 시에서 열리는 오클라호마 스테이트 페어[Oklahoma State Fair]’를 구경시켜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오클라호마 스테이트 페어’란 쉽게 말하여 주() 차원의 장터축제였다.

 

우리는 박물관, 교회, 혹은 성당이라는 문화답사 1순위의 원칙을 깨고 무조건 버스에 올랐다. 지금 살아 움직이는 삶의 문화를 느끼려면 박물관보다도 그곳이 썩 나은 현장이었다. 토요일 아침 830분에 출발한 버스는 1시간 남짓 달려 축제장에 도착했다. 드넓은 평원의 울긋불긋한 포장들. 어째 낯이 익다 했더니, 바로 우리나라의 무슨 무슨 축제장들, 바로 그 모양새 아닌가.

 

실제 들어가 살펴보니 각종 먹거리, 아이들 장난감, 놀이기구, 의상, 생활용품, 세계 자동차 쇼 등 종류나 품목들이 다양하고, 한 구석에 아이스링크를 갖춘 큰 경기장[Jim Norick Arena]도 자리 잡고 있었다. 축제장 중앙에 큰 규모의 모터쇼[현대기아자동차의 빛나는 신차들도 큰 자리를 잡고 구경꾼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나 아레나에서 열리는 디즈니 아이스 발레단의 공연만 빼고는 여느 우리나라 지역 축제들과 유사한 포맷이었다.

 

우리나라 축제장에서는 각설이 타령, 뽕짝 등 사람들의 귀가 찢어져라 틀어대는 음악 소리에 혼이 반쯤 날아가는 것이 예사인데, 이곳은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는 것이 분명한 차이였다. 김연아의 빙상예술로 한껏 높아진 우리의 눈을 만족시키지는 못했어도 장장 2시간에 걸친 아이스 발레단의 연기 정도가 이 축제를 여느 장터축제들과 구별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고 할 수 있을까.

 

주민들의 관심을 끌고 그들을 참여시킴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높이는 행사가 축제라면, 오클라호마 주 장터 축제는 비교적 성공적인 듯 했다. 특히 인종의 전시장이라 할 이 나라에서 하나의 미국이란 기치 아래 수많은 인종들 간의 장벽을 헐고 하나로 묶는 데 장터 축제만큼 효과적인 이벤트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너른 들판을 꽉 메운 자동차와 인파에 이 사람들이 모두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호기심이 생길 만큼 성황이었고, 먹고 입고 타는 모든 것들을 한 곳에 오롯이 모아놓음으로써 주민들에게 현실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말 그대로 장터였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무엇보다 이채로운 것은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전혀 없이 조용했다는 점, 그 많은 인파와 규모의 축제에 술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참으로 부럽고도 희한한 일이었다. 축제라 하면 늘 노래 소리 울려 퍼지고, 이따금 술 취해 싸우거나 야바위판 돌아가는 데 익숙해 있는 백규거사의 눈에 오클라호마 주 페어의 차분한 분위기는 미래 축제의 한 모델로 보였다. 오클라호마가 프로테스탄트 복음주의의 성향이 강한 바이블 벨트(Bible Belt)의 한 축이기 때문일까? 이 점은 이곳에 거주하는 동안 직접 관찰하고 분석해볼 내용이다.

축제는 축제답게 떠들썩해야 한다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이제 목청을 좀 낮추고도 축제의 본령을 구현할 만한 단계가 되지 않았을까. 오클라호마 주 장터축제를 보며 우리 축제의 미래를 생각해 본 하루였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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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정

    시끄럽게 음악 틀어놓고 호박엿 자르는 아저씨 한 명만 있으면 딱 시골 장터 모습이네요ㅎㅎ

    2013.09.23 07:37 [ ADDR : EDIT/ DEL : REPLY ]
  2. 엄마

    맞아
    ㅎㅎㅎ

    2013.09.23 10:46 [ ADDR : EDIT/ DEL : REPLY ]

알림2011. 11. 15. 20:28


한국문예연구소, 이 가을에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다!!!

 

이 가을 들어 한국문예연구소의 뛰어난 학자들이 좋은 책들을 발간했습니다.

정영문 박사가 <<조선시대 통신사문학 연구>>(지식과교양/학술총서 30)과 <<조선시대 사행록의 텍스트와 콘텍스트>>(학고방/학술총서 32)를, 김성훈 박사가 <<바늘(箴)로 마음을 치료하다!>>(학고방/*학술총서 33)를, 박선영 박사가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은유미학>>(지식과 교양/학술총서 34)를, 민충환 교수가 <<변영태가 쓴 영시집 Songs From Korea>>(지식과교양/문예총서 13)을 각각 펴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디자인도 깔끔하고 멋집니다. 축하의 말씀들을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각 저서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영문

 

<<조선시대 통신사문학 연구>>,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30으로 출간!!!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로 발간된 <<朝鮮時代 通信使文學硏究>>(정영문, 지식과교양)는 조선시대에 일본을 여행했던 통신사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연구서이다. 한국과 일본은 고대국가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교류가 있었지만, 이러한 교류는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교류라기보다는 국가적인 필요에 의해 진행된 정책적인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한ㆍ일간의 교류를 기록한 자료가 많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 그나마 풍부한 자료를 수록하고 있는 <<해행총재>>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해행총재>>를 텍스트로 삼아 조선시대의 한ㆍ일 교류사를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박사학위논문을 다듬어 <<朝鮮時代 通信使文學硏究>>로 출판하였다. 이 책은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Ⅱ장에는 통신사의 사행노정과 그 노정이 지니는 성격, 조선시대 통신사행의 시기별 분류와 각각의 성격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임진왜란, 1636년, 1682년 전ㆍ후로 통신사의 사행을 4분류하면서 각 시기를 대표하는 사행록을 제시하였는데, 건국직후에서부터 임진왜란 직전까지 사행했던 통신사의 대표적인 기록으로는 송희경의 <<일본행록>>과 김성일의 <<해사록>>을 제시하였다. 이들 사행록을 Ⅲ장에서 분석하고 있다. 1592(선조 25)년부터 1635(인조 13)년까지 사행한 통신사의 사행록은 Ⅳ장에서 분석 제시하였다. 1636(인조 14)년부터 1655(효종 6)년까지 사행한 통신사의 대표적인 기록으로는 김세렴의 <<해사록>>과 남용익의 <<부상록>>을 제시하고, 이들 사행록을 Ⅴ장에서 분석하였다. 1682(숙종 8)년부터 1811(순조 11)년까지 일본을 사행한 통신사의 대표적인 기록으로는 신유한의 <<해유록>>과 조엄의 <<해사일기>>을 제시하고, 이를 Ⅵ장에서 분석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저자는 통신사가 비록 시기마다 다른 특징을 보이지만, 왜구문제해결이라는 현실적인 필요성에서 점차 문화교류라는 형식적인 교류로 성격이 변모되어 갔다고 보았다.

조선시대에 외국을 여행하는 기회는 사행에 참여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할 정도였다. 이런 까닭에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조선시대에 주변국가와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사행록은 여행하면서 실제로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서술한 기록문학인 동시에 보고문학이다. 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비록 한시형식으로 기록했다고 할지라도 문학적 상상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을 선험적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체험을 바탕으로 일본과 일본인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대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사행록을 읽음으로써 조선지식인들의 일본관과 일본의 풍속, 생활상 등을 이해할 수 있다. 사행록에 대한 연구서이기에 <<朝鮮時代 通信使文學硏究>>도 한ㆍ일 관계를 이해하는데 약간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도서춢판 지식과교양, 2011. 값 22,000원

 

2. 정영문

 

<<조선시대 사행록의 텍스트와 콘텍스트>>,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2로 발간!!!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2으로 발간된 <<조선시대 사행록의 텍스트와 콘텍스트>>(정영문, 학고방)는 사행체험과 인식, 사행을 계기로 발전하였던 지방의 관변공연물에 관한 연구논문을 정리한 것이다.

조선에서는 중국과 일본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를 진행하였는데, 이들 나라를 사행하고 돌아온 사신들은 자신의 견문과 감상을 기록하였다. 그 속에는 사행당시의 상황과 사행에 참여한 인물들의 인식만 아니라 사회, 문화, 외교, 경제 등의 다양하고 상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 중에는 조선시대에 한양과 지방에서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관변공연물에 대한 관심이 책으로 나온 것이다.

저자는 사행록을 텍스트로 하여 연구한 9편의 논문을 1부 연행사와 통신사의 기록과 인식과 2부 사행록과 문화적 배경에 나누어 수록하고, 사행록과 관련한 연구논저의 목록을 부록으로 첨부하였다.

사신행차는 정해진 노정을 따라 이동하였는데, 몇몇 지역에서는 사신을 위로하는 전별연이 있었다. 전별연은 숙소와 가까운 누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자리에서 주된 관심거리는 공연이었다. 이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주변의 여러 고을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공연무대 주변은 커다란 축제의 장이 되었다. 여기에서 공연되는 양상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각 고을을 대표하는 기생과 악공이 모여들어 기량을 드러낸 반면에 평안도 지역에서는 경제력을 갖춘 일부 지역에서 독자적인 공연을 기획하였다. 그러므로 공연된 춤과 음악을 통해서 지역의 문화적 우열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공연물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부 공연물은 선상기를 통해 궁중에 소개되어 궁중정재로 정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확산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신을 위로하는 전별연 등에서 공연된 관변공연물이 여러 해 동안 반복되면서 높은 수준의 형식미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당시의 관변공연물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공연의 정확한 면모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오늘날의 지방축제처럼 조선시대에도 축제가 있었고, 지방민들도 이러한 축제를 통해 문화를 향유하였음을 이 책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도서출판 학고방, 2011. 값 22,000원

 

3. 김성훈

 

『‘箴’문학의 세계, 바늘(箴)로 마음을 치료하다!』,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3으로 출간!!!

 

잠(箴)은 침(鍼)과 통용되는 字義를 가지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때 鍼을 놓았다. 이러한 의학적 효용성이 타인이나 자신을 규계(規戒)하는 목적을 지닌 문학 장르로 발전한 것이 바로 ‘箴’이다.

이에 의거하여 과거의 학자들 역시 마음속의 티끌을 미리 제거하고 예방하기 위해 ‘箴’이라는 장르의 글을 많이 창작했다. ‘箴’은 옛 성현들의 훌륭한 문구들을 가져다가 일상의 경계로 삼기에 매우 적합한 장르였으며, 그 글에는 교훈적인 내용을 오롯이 담아냈지만 문학이라는 유연한 문체를 그릇으로 했기에 수양의 도구로도 적합하다. 즉, 교훈과 경계가 될 만한 내용을 효용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장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역대작가들의 箴작품을 대상으로 그 양식적 특성을 살피기 위해 사상적, 표현적 특질을 두루 연구한 것이다. 이를 통해 그간에 철학적인 성격이 짙은 글로만 여겨왔던 箴의 문학성도 추출해내는 계기가 되었다.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2장에서는 箴의 발생 연원을 문헌적 측면과 개념적 측면으로 나누어 고찰했다. 문헌적 측면에서는 여러 문헌의 글을 살핀 결과, 箴이 三代에 발생하였으나 周代 이후에 더욱 뚜렷한 발전양상을 보인 것으로 판단했다. 개념적 측면에서는 허신의『설문해자(說文解字)』를 비롯한 몇몇 문헌을 통해서 箴이 효용성을 목적으로 하게 된 유래를 살폈다.

3장에서는, 箴의 종류가 관잠(官箴)과 사잠(私箴)으로 나뉘는 근거를 구체적으로 살폈고, 서로 주고받는 효용성을 다분히 가진 문학임을 확인했다. 또 경전류(經典類)의 전고(典故)를 활용하기에 적합한 장르임을 확인했으며, 心性 의인문학의 대표작품인「천군전(天君傳)」과 心性을 의인화한 箴을 비교하여 그 영향관계를 고찰했다. 더불어 五倫歌類의 교훈시가와의 비교를 통해 내용적 상관성을 살폈다.

4장에서는, 箴의 주제표현 양상을 직설적 경계와 비유적 경계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직설적 경계에서는 유학사상의 실천덕목과 유학적 정치관을 경계한 작품들을 주제별로 세분해보았다. 비유적 경계에서는 心性 의인화 표현이 보이는 箴을 고찰하여, 내용 전달의 효율성을 확인했다. 또 몇몇 사물 및 동물을 소재로 하여 비유적 표현을 구사한 작품들을 살폈다. 예를 들어, 거울의 속성을 비유해서 심성을 수양하는 箴의 내용을 확인했고, 사물 및 동물을 빗댄 풍유의 수사를 통해서도 箴의 문학성을 고찰했다.

5장에서는, 구약성서 ‘잠언’과의 비교를 통해 한문학 ‘箴’과의 공통적 요소를 살펴보았다. 잠언은 이야기 형식이 아니면서,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는 속담ㆍ격언ㆍ옛말ㆍ금언 등의 형식적 특성이 있는데, 이 잠언은 고립된 사건에서 끌어낸 관찰들이 아니며, 고립된 사건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니다. 이러한 점은 箴도 마찬가지인데, 箴에 담긴 교훈적 의미는 시대를 초월해서 적용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윤리적인 교훈을 주로 담아냈다는 점도 잠언과 箴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또 형식ㆍ표현적 측면에서는 잠언과 箴 모두 암송에 적합한 對句형식을 활용했음을 확인했고, 잠언의 ‘지혜’ 의인화와 箴의 ‘마음’ 의인화도 서로 비슷한 이념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6장에서는, 箴의 통시적 양상을 알아보았다. 우선 역대작가의 작품 일람을 통해 箴의 존재 양상을 살폈고, 箴이 역사적으로 어떤 전개 양상을 보였는지 역사 사료 및 문집의 기록을 통해 고찰했다.

연구 초기의 열정에 비해서는 많이 모자란 결과물이지만, 이 글이 ‘箴’ 장르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어 조금이나마 학계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더불어 ‘箴’은 올바른 삶을 살도록 권계하는 처세법을 담은 글이기에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내용으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 본다.

 

도서출판 학고방, 2011. 값 18,000원

 

4. 박선영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은유미학>>,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4로 출간!!!

 

 

숭실대학교의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34)로 박선영의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은유 미학>>(지식과교양)이 발간되었다. 이 책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은 박목월 시인(1916~1978)과 김현승 시인(1913~1975)은 동시대에 살았으며 우리 현대시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들은 기독교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표적인 시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지금까지 박목월과 김현승의 시에 관한 논의가 상당한 연구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두 시인의 시세계 전반에 걸쳐서 연구가 활성화되지는 못하였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박목월과 김현승에 관한 선행연구에서 초기시와 중기시에 비해 후기시에 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한 실정임을 지적하였다. 그는 박목월과 김현승의 후기시는 이들의 시적 역정을 마감하는 시점으로서 여기에는 이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기독교적 초월성이 수렴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특히 두 시인의 유고시집은 기독교의식이 본격적으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핵심이 초월성에 놓여 있다는 점에 천착하여 이를 고찰하였다. 초월성은 기독교 시인에게 있어 아주 보편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두 시인의 경우에는 후기시로 오면서 초월성이 본격화되기에 이른다. 이에 저자는 두 시인의 시세계 가운데서도 기독교적 초월성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후기시, 즉 박목월의 <<경상도의 가랑잎>>(1968), <<어머니>>(1968), <<무순>>(1976), 유고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1979)과 김현승의 <<김현승시전집>>(1974)에 수록된 <<날개>>, 유고시집 <<마지막 지상에서>>(1975)를 연구 범주로 삼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목한 것은 박목월과 김현승 시인이 지향하는 초월성이 정교한 은유적 의미망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박목월과 김현승은 격변기였던 근대적 시간을 살았던 시인들로서 동일성이 상실된 근대를 지나면서도 동일성의 시학을 고수하였다. 그래서 이들의 시에는 자아와 세계의 합일을 추구하는 은유적 세계관이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주지하다시피 은유는 단순히 표현 기법의 문제가 아닌 인식의 문제에 관련된 것으로 창조적인 의미생성에 관여하는 시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저자는 이러한 은유가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핵심적인 시적 원리이자 미학적 원리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이에 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두 시인의 시에 나타난 은유적 상상력을 총체화하기 위해 언술의 차원에서 은유를 파악하는 흐루쇼브스키의 은유 이론을 시분석의 방법론으로 활용하였다.

이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서론에 해당하는 Ⅰ부에서는 문제제기와 더불어 방법론을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그리고 Ⅱ부에 수록된 「<<경상도의 가랑잎>>의 사물화 양상」, 「<<사력질>>, <<무순>>에 나타난 죽음과 초월의 은유체계」, 「‘어머니’ 시에 나타난 은유 양상」, 「<<크고 부드러운 손>>에 나타난 초월성의 은유 미학」은 박목월 후기시에 나타난 은유 양상을 분석한 것이며, Ⅲ부에 수록된 「후기시의 사물화 양상 -광물에 토대 한 사물을 중심으로」, 「후기시에 나타난 ‘동물’의 은유화 양상」, 「<<마지막 지상에서>>에 나타난 은유 미학」은 김현승 후기시에 나타난 은유 양상을 분석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하여 Ⅳ부에서는 박목월과 김현승 시인의 시에 나타난 은유적 인식의 차이를 고찰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은유가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주된 미학적 원리임을 밝히고, 이들의 인식의 확장 및 갱신을 조명해내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단어나 문장의 차원에서 논의되어 온 은유의 지평을 확대하여 언술의 차원에서 고찰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은유적 상상력을 총체화함으로써 기존의 논의들과 뚜렷한 변별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도서출판 지식과 교양, 2011. 값 24,000원

 

 

5. 민충환

 

<<변영태가 쓴 영시집 Songs From Korea>>, 한국문예연구소 문예총서 13으로 출간!!!

 

 

<<변영태가 쓴 영시집 Songs From Korea>>가 한국문예연구소 문예총서 13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의 1부에는 영어로 번역한 옛 시조 102수를 실었고, 2부에는 자작 영시 33수를 우형숙 선생의 번역으로 실었으며, 책 전체는 민충환 교수가 편집했다. 변영태(1892~1969)는 큰 형 변영만[법조인이자 한학자], 동생 변영로[시인이자 교육자]와 함께 ‘삼변(三卞)’으로 불리던 정치가⋅학자⋅시인이었다. 그는 이승만 정권에서 외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내면서 큰 공을 세웠고, 고려대학교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그의 저술로 <<나의 조국>>(1956), <<외교어록>>(1959), <Songs From Korea>>(1948) 등이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시조 영역의 선례(先例)들이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시조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영역(英譯)을 시도함으로써 후대 인사들에게 시조 영역의 모범을 보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창작 영시 또한 당시로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희귀한 작업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쉽지 않은 영시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시를 창작하고 옛 시조를 번역했다는 점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요즈음에도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도서출판 지식과교양, 2011. 값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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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0. 3. 1. 10:39
최근 일부 대학들의 ‘호화 입학식’이 경향각지의 언론매체들로부터 연일 뭇매를 맞고 있다. 학교 밖에서 연예인들을 동원하여 축제 형식으로 벌이는 입학식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대학본연의 정신면에서도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이다. 사실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돈을 들여 축제나 공연형식으로 입학식을 벌이는 현실을 곱게 보아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도에 지나친 비판도 없지 않은 듯하다. 누구 못지않게 셈이 밝다고 자부하는 대학의 경영자들이나 교수 직원들인들 대학 밖에서 내세우는 원칙론을 모를 리 없다. 불행한 것은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사정이 현실의 이면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대학을 바라보는 자가당착적인 시선 하나가 대학인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대학도 적자생존의 논리가 지배하는 무한경쟁의 무대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일수록 대학의 자유나 자율에는 일정한 선을 긋기 일쑤다. 무한경쟁을 강요하면서도 자신들이 그어놓은 금을 넘어서면 매섭게 나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순된 모습이다. 그들은 걸핏하면 선진국 특히 미국의 잘 나가는 대학들로부터 빌려 온 잣대를 들이댄다. 선진국의 대학들과 다른 우리 대학들의 모습을 무조건 비판하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지식인들의 행태다. 미국 사회가 대학들에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지원을 하는지는 슬쩍 외면하고, 풍요 속에서 대학의 본질을 추구하는 그들의 행보를 따르지 못하는 우리의 대학들만 나무란다.


한국의 대학들에게 2월은 피를 말리는 ‘고난의 계절’, 일종의 ‘춘궁기(春窮期)’다. 최상위 대학은 예외이겠지만, 그 나머지 대부분의 대학들은 신입생들의 ‘대이동’으로 큰 괴로움을 겪는다. 학생 교육이라는 본연의 업무 외에 수시로 전국을 돌며 입시설명회를 갖는다거나 비싼 이미지 광고로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것이 대학 1년 농사의 큰 부분이다. 그러나 수확이 제법 쏠쏠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신입생들은 사정없이 상위 랭킹 대학들로 빠져나가고, 아래쪽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그 빈 곳을 채워 나가는 대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교사(校舍) 건축 등 요긴한 곳에 쓰려고 매년 예산을 아껴 모아둔 적립금도 ‘형편 좋은 돈놀이’ 쯤으로 매도되는 현실에서, ‘잡은 토끼들’을 눈 뜨고 놓쳐야 하는 일이 대학으로서는 이만저만 곤혹스럽지 않다. 이른바 ‘미끼학과’가 등장하고, ‘이벤트성 입학식’이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런 상황이다. 그것이 일견 하지하책(下之下策) 같아 보이지만, ‘어떻게 하면 맘에 드는 인재들을 안 놓치고 내 품 안에 가두어둘 수 있을까?’ 고심 끝에 나온 본능적 전략일 것이다. 틈만 나면 분명히 빠져나갈 줄 알면서도, 그들과 정서적 유대를 맺음으로써 ‘심리적으로나마’ 위안을 얻으려는, 궁핍한 대학가의 곤혹스런 선택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그것은 변화되고 있는 이 시대의 문화의식을 암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대중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라난 신세대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그들이 대학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때 느낄 수 있는 생소함을 최소화 시켜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안온함’을 느낄 때 비로소 소속감을 갖게 된다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대학인들만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사항이다. ‘저급한 유흥문화의 연장’이라는 논리로 이벤트성 입학식을 무턱대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대학의 문화와 대중의 유흥문화를 구분하는 일은 화이트(David Manning White)의 말대로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를 구분하는 전통적 엘리트주의자의 편견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대학들은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현실과 대학의 전통적 본질을 요구하는 사회의 기대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딱한 처지에 놓여있다. 고급문화의 생산자이어야 할 대학이 사회로부터 역류해 들어온 유흥문화의 소비처로 전락해간다는 사실조차 깨달을 여유가 없을 만큼 대학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체질을 강화시키기는커녕 ‘빠져 나가려는’ 인재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하는 대학의 현실, 그 복잡한 이면을 읽어주지 못하는 사회인들의 편견이 대학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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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09. 10. 12. 21:18

조선일보 기사보기


[책, 함께읽자] 재치·폭소 넘친 시(詩)와 퍼포먼스의 만남


숭실대 축제서 시 낭송 대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8일 오후 숭실대 벤처관에 설치된 무대 가운데에 선 문예창작과 김용섭 학생은 김춘수의 <꽃>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스스로 촬영한 비디오 대형화면이 비쳐졌다. 화면에서 목욕탕 한구석에 선 그는 '나는 꽃, 용화' 등의 내용이 적힌 종이들을 번갈아 들면서 김춘수의 시구(詩句)와 조응했다. 대형강의실을 메운 150여명의 관객은 연이어 폭소를 터뜨렸다.

숭실대 인문대는 가을축제 기간을 맞아 이날 '시(詩)와 퍼포먼스의 만남, 숭실 시 낭송 축제' 행사를 가졌다. 기성시인들의 시 작품을 암송하되 학생 스스로 창안한 퍼포먼스를 활용해 표현하게 함으로써 대학생다운 창의성을 마음껏 펼치게 한 장(場)이었다. 인문대 학장인 조규익 국문과 교수는 "문학의 해석이 연희(演��)적인 표현으로 전환되고, 문화 콘텐츠의 소비와 생산이 선순환 구조로 연결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총 23개 팀 가운데 본선에 오른 8개 팀이 이날 각자의 재기를 다양하게 펼쳤다. 학생들은 윤동주의 <서시>를 랩으로 부르고,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를 배경으로 그림자극을 보여줬으며, 백무산의 <까마귀>는 아예 록으로 바꿨다. 오규원의 <프란츠 카프카>는 실업자가 넘쳐나는 2009년 한국을 배경으로 한 단막극으로 극화되었다.

이들의 우열을 가린 심사위원들은 2부에서 자신들의 시를 낭송했다. 이번 가을 학기부터 문예창작과 교수로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는 최승호 시인은 "부패해가는 마음 안의 거대한 저수지를/ 나는 발효시키려 한다"는 <발효>를 낭독했다. 문정희 시인은 <나는 나쁜 시인>의 마지막 부분, "중세의 부패한 귀족이 남긴 유적에 숨이 막혔어/ 그 아름다움 속에 죽고 싶었어"를 읽으며 파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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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소식2009. 5. 3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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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민간노래들의 한국어 번역서 『베트남의 민간노래』(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 문예총서 2)출간!

연합뉴스 관련기사 클릭

숭실대 국어국문학과의 조규익 교수와 베트남 달랏대학 한국어과의 응웬 응옥 꿰 교수는 베트남의 민간노래들을 편집번역하여『베트남의 민간노래』라는 책을 펴냈다. 특히 노래 내용과 관련되는 베트남의 생활상을 찍은 사진들을 곁들이고 고유명사나 어려운 말들에 주석까지 붙임으로써 책의 사실성과 가독성(可讀性)을 드높인 점이 두드러진다. 이 책은 베트남에서 2007년에 출판된 응옥 란 씨의 『베트남 가요선』에 실린 노래들의 한 부분을 번역한 것인데, 역자들은 노랫말의 내용에 따라 크게 ‘사람-풍습’, ‘일-노동-문화’ 등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전자에는 58 작품이 후자에는 103작품의 노래들이 각각 실려 있다.

 

베트남은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하며, 미작문화권(米作文化圈)에 속해 있는 점이나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는 점이 우리나라와 같다. 일상생활이나 삶에 대한 의식의 상당부분이 우리와 겹치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근대 이전에는 중국을 매개로 베트남과 우리는 교류를 해왔으며, 최근 베트남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양국은 뗄 수 없는 관계로 이어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날 베트남의 젊은 여성들이 우리나라에 건너와 많은 남성들과 결혼함으로써 역사상 유례(類例) 없는 이른바 ‘다문화 가정’의 주체로 부상했으며, 많은 수의 젊은 남성들 또한 유학생이나 근로자의 신분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베트남에도 전통적으로 노래문화의 유산이 많다. 노래란 ‘정신적인 음식’이라 할 만큼 베트남 사람들에게 삶과 노래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특히 농촌사람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농부들이 농사일을 하면서, 어머니가 아가를 재우면서, 매년 봄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축제를 벌이면서, 젊은 남녀들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때는 반드시 노래를 활용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노동가요, 풍속가요, 문화가요 등등 어떤 내용이나 주제도 노래로 소화시킬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의 앞 쪽에는 ‘사람과 풍습’에 관한 노래들이 실려 있다. 이 노래들에는 베트남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다양한 축제의 분위기가 녹아 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매년 음력 설날 후 3월까지는 축제의 계절이다. 전국의 유명한 지역이나 절들은 베트남 전통 문화 축제들이 열리던 현장이었다. 그런 점은 다음과 같은 노래에 잘 나타나 있다.

 

칠일날은 캄 축제, 팔일날은 저우 축제
구일날엔 어디 있든 저옹 축제에 돌아와요

 

저우절과 림 축제가 있는 박닌성은 리 왕조의 고도(古都)였다. 박닌성에서 벌어지는 캄 축제, 저우 축제, 저옹 축제 등은 베트남 전역의 축제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 책의 후반에는 일과 노동, 농업문화에 대한 노래들이 실려 있다. 이 노래들에는 직업이나 일에 관한 옛날 베트남 사람들의 관점과 노동의 경험 등이 잘 형상화 되어 있다. 옛날의 베트남 사회에도 조선과 같이 ‘사-농-공-상’ 등 네 계층이 있었으며, 평민들에게는 농업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그 점은 다음과 같은 노래에 잘 나타나 있다.

 

사(士), 농(農), 공(工), 상(商)
첫째는 사, 둘째는 농이며
쌀이 없어 돌아갈 땐
첫째는 농, 둘째는 사이라네.

 

당시 농업은 평민들을 먹여 살린 유일한 산업이었으며, 그들에게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던 유일한 방책이기도 했다.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이나 연구자들로 하여금 베트남의 가요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획된 첫 단계 작업의 결과다. 앞으로도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노래들을 광범하게 번역함으로써 두 나라 사람들이 서로의 생활감정과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뜻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인터북스 , 2009. 값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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