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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15 민족의 자존심
  2. 2007.04.15 이젠 '죽는 연습'도 해야 할 때다
  3. 2007.04.08 백규소개
글 - 칼럼/단상2007. 4. 15. 22:54
민족의 자존심

                                                                                                                      조규익

자격 있는 자만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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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중국의 공권력에 폭행을 당했다. 국가 간의 이해(利害)가 개입된 문제라고는 해도 ‘때린 놈’이나 ‘맞은 놈’ 모두 우습게 되었다. 더욱 희한한 일은 때린 놈의 역성을 드는 집단이 우리들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점잖다 해도 ‘불량배에게 맞고 들어온 자식’을 꾸중하는 부모는 없다.

사실 중국을 지렛대로 북한을 움직이려면, 중국과 우리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란 어렵다.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면서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이득까지 챙기려는 중국인들의 계산법은 천하공지(天下共知)의 사실이다. 분단된 우리 민족을 뒤에서 조종하며 실익을 챙기자는 그들의 ‘꼼수’를 우리는 민족사 최대의 수치로 받아들여야 정상이다.

따라서 이번 일을 국제화 시대의 나라들 간에 일어날 만한 외교적 사건으로 단순화 시킬 수는 없다. ‘민족적 자존심’의 원칙적 잣대는 어느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최우선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그 잣대가 좀더 복잡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80년 전의 일을 떠올려 보자. 반정(反正)으로 인조(仁祖)를 옹립한 서인(西人) 정권은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했다. 중국으로부터 고명(誥命)과 면복(冕服)을 받지 못하면 국내에서 반대파를 누르고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누르하치의 기세가 바야흐로 명(明)나라의 숨통을 끊어갈 무렵이었다. 이덕형(李德泂)을 정사(正使)로 하는 주청사(奏請使)가 명나라 조정에 파견되었고, 그들은 넉 달 가까이 북경에서 온갖 수모를 겪는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사가 ‘시랑(侍郞)’ 정도의 관리들에게 농락을 당하기 일쑤였고, 자신들의 뜻을 요로에 전하기 위해 뇌물을 밥 먹듯 써야 했다. 북경의 혹심한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새벽부터 길거리에 꿇어 엎드려 출근하는 각로대신(閣老大臣)들에게 손을 비비던 노구(老軀)의 정사는, 바로 역사 속에 그려진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다.

그뿐인가. 천신만고 끝에 각로들을 만난 정사. 그들의 괜한 트집으로 섬돌에 내동댕이쳐져 울부짖던 그 참상을 다시 무슨 말로 표현할까.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부질없다지만,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무자비하고 철저하게 ‘농락해 온’ 저들의 무례함을 제때 제대로 징치(懲治)했더라면 현대사는 좀더 다른 방법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징치’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우리가 ‘자존심’을 세우는 방법만이라도 강구했었다면 지금 이렇게 온 국민이 참담함을 되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망해가는 명나라에게 빌붙어 국내에서 권력을 장악하려던 일부 무리들의 ‘꼼수’는 결국 민족의 자존심을 망치고 그후 조선에 잦은 전란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 된 것만 보아도, 통치 집단의 지혜로움은 분명 민족사 전개의 향방을 가르는 지표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세상사,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겉모습은 달라져도 본질은 변할 리 없다. E H 카(Carr)의 말처럼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임에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운 것 없음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말았다. 특히 21세기 초입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집단들이 매우 우매(愚昧)하고 게으르다는 점, 국민으로서는 그것이 못내 통분하다.

역사책의 한 쪽만 넘겨 보아도 우리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진실은 그득하다. 지금 중국은 남북의 분단 상황을 지렛대로 삼아 그 사이에서 철저히 이익을 취하고 있다. 그 와중에 농락당하는 건 남북한 모두의 자존심이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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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5. 22:47
이젠 '죽는 연습'을 할 때다
영안실에서


후배의 부음을 받고 영안실로 달려가는 밤길은 멀고도 험했다.
번잡한 도회를 벗어나 접어든 꼬불꼬불 산길은 흡사 ‘저승길’ 같았다.
그랬다. 몇 발짝만 벗어나면 저승이었다. 그게 바로 삶과 죽음의 거리였다.
깜깜한 산길을 달리는 동안, 영안실에 도착해서는 크게 울리라 생각했다.
한 줌의 재로 우리 곁 어딘가에 내려앉을 그의 영혼을 위해 크게 울어 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어걸린 영정이 너무 화사하고 깨끗했다. 그 미소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없었다. 가슴 저 밑바닥에 준비해간 울음은 작은 신음으로 축소되어 눈자위만 붉히고 말았다. 말없이 이승을 떠난 그와 산 속 영안실에서 그렇게 만나고, 헤어졌다.

영안실에 다니면서 죽음을 수 없이 배운다. 아니 ‘죽는 연습’을 한다.
죽음을 받아들인 그들의 마지막 며칠을 떠올리면서 죽는 연습을 한다.
어떤 이는 숨을 놓는 그 순간까지 ‘살려고’ 버둥대는 통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더욱 애처롭게 만든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초조해하고 당황해한다. 문 밖에 기다리고 있는 저승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들이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기만을 애타게 소원한다. 그렇게 가고나면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큰 못이 하나 박힌다. 어떤 마무리건 의연하지 못할 경우 남는 건 슬픔과 욕됨 뿐이다.

후배의 마지막 며칠을 지킨 또 다른 후배는 그의 마지막이 쓸쓸했다 한다.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다. 아름답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을까. 일종의 자존심이었으리라.      

그러나 삶과 죽음의 교차로를 그토록 쓸쓸하게 건널 이유가 있을까.
그보다 먼저 간 사람들도 많았다. 그도 우리보다 좀 먼저 갔을 뿐이다.
먼저 가는 사람으로서의 소회도 있을 것이다. 살아남을 사람들에게 풀지 못한 서운함도 있을 것이다. 서운함을 넘어선 ‘응어리’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주는 거야말로 떠나는 자의 의무 아닐까. 하기야 선량한 그 친구는 누구와도 그런 서운한 관계를 맺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고운 관계만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니 생전의 인연들을 불러 서운함과 응어리를 푸는 것은 떠나는 자가 잊지 말고 해야 할 일이다. 그것도 정신 있을 때 해야 할 일이다.

영안실은 살아남은 자들의 잡담으로 떠들썩했다. 흡사 살아있음의 행복을 확인하려는 듯, 밤이 깊어갈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는 것이었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후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모두들 영안실에 가면 ‘죽는 연습’이나 한 번씩 해볼 일이다.

수원 연화장 장례식장에서

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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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규소개2007. 4. 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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