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학술문2007. 4. 17. 08:21


사계의 순환과 디지털 유토피아, 그리고 달관의 미학
        -두메솔 시인의 시세계-



                                                                                                                           조규익


하나. 계절의 순환, 그리고 디지털 이미지

계절은 순환의 엄숙한 고리를 반복하지만, 그 순환이 모든 인간에게 똑 같은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계절적 순환의 물리적 횟수도 다 다르지만, 그 질적인 차이 또한 간단치 않다. 아름다운 계절을 만끽하는 사람도 있으나, 씁쓸하게 일생을 마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경험한 계절들이 아름다웠건 씁쓸했건, 계절이 바뀌는 어름에 이르면 누구나 아쉬움과 회한을 피할 수 없다. 계절로 인식되는 시간의 흐름이 인간 자신의 변화와 구조적으로 부합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삶이나 공동체의 변화 과정에 계절과 맞먹는 순환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우리가 경험으로 아는 사실이다.
컴퓨터를 통해 음악과 시, 그리고 이미지를 배웠다는 경영학자 두메솔 시인. 그는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무능함을 줄여주고 예술·문화·정서의 영역을 보충하며 인간들 사이의 참다운 대화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믿는다. 디지털의 단점을 부각시키는 사람들을 꾸짖으며 무한대의 ‘따스한 디지털 공동체’를 꿈꾸기도 한다. 그런 만큼 육안(肉眼)과 심안(心眼)만으로 잡아낼 수 없는 세상사의 예각들을 디지털의 보안경(保眼鏡)으로 잡아내려는 야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확하면서도 빠짐없이, 사람들이 이리저리 흘리고 다니는 세상살이의 파편들을 주워 올려 그 속에서 무한대의 우주를 찾아내려는 그의 의도는 얼마나 놀라운가!
<디지털 2>에서 시인은 디지털 혁명을 노래한다. 차가운 금속성의 디지털이 아니라, “개인주의의 그늘을 없애고/영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공동체 영혼과 시인의 영역/꿈의 세계에까지 나아가는” 디지털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아날로그 시절의 어두움→디지털 시대의 밝음→디지털 혁명의 이상세계’로 그 시의 의미는 상승된다. ‘전달의 느림, 대화 없음’이 아날로그 시절의 어두움을 형성했으나, 디지털의 '신속·무한한 리치reach와 풍부한 리치rich'가 그 어두움을 밝힌다고 했다. ‘함께 만들고 쌓아가는’ 공동체가 바로 디지털의 혁명이 이룩한 미래라는 것이다. 디지털 세계에 대한 믿음을 시적으로 형상화 시켜가는 시인의 통찰이 빛난다.  
쉬지 않고 순환하는 계절 속에서 인생은 늙어가고 세상 또한 변해간다.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이별 등 모든 곡절과 사연들도 그 순환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순환의 체계 속에서 늘 가변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둘. 봄/생명의 역설과 소망의 힘

봄은 소생과 희망의 계절이다. 겨울의 잔인한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만물은 자유와 흥취를 구가한다. 그래서 봄은 생명력·자유·평화를 상징한다. 산들산들 봄바람이 불면 춘흥에 겨운 만물은 어쩔 줄 모르고 날뛴다. <봄봄>·<동백꽃> 등 김유정의 소설들에는 봄을 맞아 몸살 앓는 청춘의 아름다움이 그려져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는 자연에 내재하는 순환적 질서의 어김없음과 절망 속의 희망을 노래했고,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이장희는 봄의 향기로움과 고양이털의 부드러움을 비교했다. 이처럼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봄을 예찬하고, 봄에 기대어 청춘을 노래했다. 봄과 관련되는 전통 미의식에 디지털의 의상을 입혀 내세운 것이 21세기 초입을 살고 있는 두메솔 시인이다. 표면적으론 단정하고 일견 냉정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봄노래들. 그러나 그 이면에 끈끈한 정이 흐르는 것은 이미지화된 디지털 세계의 조화다.

사 랑 해 요
해피 버스 데이
안 ㄴ ㅕ ㅇ…

예쁜 글자들이
때마다 나를 위해
반딧불처럼 떼 지어 날아와
창에 잠시 머물고
나는 늘 바빴다.

글자들은 창을 떠나
낡은 책과 노트가 쌓인
음산한 지하창고로 간다.
창 위를 날던 모습
작은 몸들을 떨며
웅크리고 있다.

나는 무엇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었던가.

얼어버린 창문
조작된 상상과 추억을
씩씩한 행진곡으로 바꾸고
글자들이 좋아할 만큼
예쁘게 단장했어야 할 것을.

반갑게 봄비처럼 돌아와
작은 물방울 튕기며
내 창을 적셔줄
0과 1의 비트 수백만 개가
날 위해 태어나 곁에 있었음을
정녕 몰랐다.
       <봄비 오는 창(窓)>

봄비 내리는 날 시인은 창 앞에 앉아 컴퓨터의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으리라. 예리한 시인의 촉수가 모니터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수많은 글자들과 창문에 ‘다다닥’ 붙었다 사라지는 빗방울 사이의 어낼러지를 놓칠 리 없다. 수많은 말들이 ‘때마다 나를 위해’ ‘반딧불처럼 떼 지어 날아와’ ‘창에 잠시 머문다’고 했다. 그래서 시인 자신은 ‘늘 바쁘다’는 것이다. 모니터에 명멸하는 장면들이야 얼마나 정확하면서도 쉬운 말들의 향연인가.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 끌어온 것이 ‘반딧불의 떼’였다. 반딧불이 덧없는 생명체이긴 하나 까만 밤을 수놓는 그 아름다움만큼은 다른 무엇에 비할 수 없으리라. 어둠을 촘촘히 수놓는 반딧불이 시인에겐 일종의 희망이다.
모니터에 올라왔다간 ‘덧없이’ 사라지는 글자들과 함께 해온 ‘다망했던 세상살이’가 바로 자신의 과거였음을 시인은 깨닫게 된다. 그것이 둘째 연의 내용적 핵심이다. 모니터를 떠난 글자들이 틀어박힌 ‘음산한 지하창고’는 시인이 경원해 마지않는 아날로그의 세계, 투박한 물질의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는 책들 아닌가. 어쩌면 시인이 일생 쓰고 만들어온 책들이야말로 생동감 넘치는 글자들을 가둬두기 위한 음산한 감옥 이상의 공간은 아니었음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리라. 부지런히 글자들로 채운 노트와 책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지내왔을 시인의 과거가 얼마나 부질없는 시간대였는가를 스스로 알아버린 것이리라.
‘따스한 디지털’의 세계를 떠난 글자들이 투박하고 ‘음산한’ 아날로그의 세계로 들어와 떨고 있음을 시인은 크게 외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무엇을 찾아/산과 들을 헤매었던가.” 산처럼 쌓인 책들, 생동감 넘치는 글자들을 떨게 만드는 그 공간을 보며 시인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봄비 방울져 내리는 창의 소묘(素描)를 마감하는 5연과 6연의 ‘후회’는 과거 삶에 대한 반성적 인식의 소산이다. 버려야 할 것은 ‘얼어버린 창문’, ‘조작된 상상과 추억’이고, 찾아야 할 것은 ‘씩씩한 행진곡’이었다. ‘마음의 창을 적셔줄’ 수백만 비트로 이루어지는 ‘따스한’ 디지털의 세계가 시인의 곁에 있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다.
시인이 따스하고 생동감 넘치는 봄의 이미지로 디지털의 세계를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것은 철저한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을 전제로 한다. 그 예가 바로 <나의 봄>이다.


봄의 여신,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좋은 말은 다 있는데
나의 봄은 어디 있는가.

<중   략>

나의 봄아
향긋한 입김일랑
꿈도 꾸지 않겠네
내게는 기별 없이 와도 좋으니
밤이슬처럼
남 남 처럼
내 곁을 지나쳐도 좋으니

편한 마음으로
어서 어서
이 땅에도 오시게.

이 작품에 표면화 되는 것은 시인의 절규다. ‘나의 봄’은 이미 가버린 청춘이다. 사정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뜯겨지는’ 캘린더는 허상일 뿐이다. 세상 모든 곳에 봄은 다시 오지만, 한 번 가버린 청춘은 돌아올 기미조차 없다. 계절은 순환하건만 인생의 봄은 1회적이라는 깨달음. 그로부터 생겨나는 절망감의 표출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절망이나 이면적으로는 달관한 자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짐짓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는 시인의 몸짓은 흘러간 청춘에 대한 아쉬움이나 예찬일 뿐, 절망은 아니다. ‘늙어가는’ 인생과 순환하는 계절의 논리를 대비시켜 ‘가난한’ 소망(素望)을 성공적으로 부조해낸 것, 시인의 탁월함이 드러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청춘에 대한 시인의 소망 혹은 예찬은 <MT(멤버십 트레이닝)>에서 더욱 아름답게 분출된다.

영원한 소년이 되고 싶은
피터 팬 신드롬과
영원한 고수가 되고 싶은
사울 왕 신드롬이
뒤섞이는 밤을 밝혀
즐기고 호령한다.

겨울도 봄도 아닌 2월
엠티에서는
노인도 소년도 아닌
영원한 청년이어라.

꾸라쥬(Courage)!!

2월은 환절기다. 다독다독 겨울을 보내고, 슬금슬금 눈치 보며 봄을 맞는 어정쩡한 시기다. 대학가 엠티들의 상당 부분은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교수의 신분으로 그 자리에 참여했을 시인. 시인은 절묘하게 구성원들과 계절 사이의 상동성(相同性)을 읽어낸다. 피터팬 신드롬과 사울왕 신드롬을 동시에 지닌 시인은 모순적 존재이지만, 그게 바로 생명의 역설이기도 하다. 소년티를 벗지 못한 학생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과 영원한 고수가 되고픈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계인적 존재’가 엠티 자리의 교수 아닌가. 2월이 겨울인 1월도 아니고 봄인 3월도 아니듯이 노교수는 소년도 노인도 아닌 영원한 청년으로 남고자 한다는 소망을 쏟아놓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영원한 청년’을 환절기의 존재로 묘사할 수 있는 것도 시인 스스로 자신을 객관화·대상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순과 역설을 통해 자신을 관조할 수 있게 된 시인의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의 결과가 아닐까.

셋. 여름/열정과 자기응시, 달관으로 승화되는 깨달음의 심연

여름의 뜨거운 햇볕은 만물을 키워내는 열정이다. 담금질의 시련을 통해 쇠는 강철로 바뀐다. 만물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뜨거움. 시련을 통해 성숙해가는 섭리의 시간대가 바로 여름이다. 봄이 그랬듯이 여름도 시인에게 또 다른 차원의 깨달음을 준다. 겨울의 속박에서 벗어난 반발과 반역의 파토스가 봄의 열정이라면, 순응과 수용의 파토스는 여름의 열정이다. 견딜 수 없는 시련을 수용하고 순응하는 일은 그에 내재된 의미를 읽어내고 이해하는 자만이 가능하다. 내재된 의미의 이해가 바로 깨달음이다. 그래서 시인이 살고 있는 ‘디지털 사계’는 ‘깨닫는 순간들의 집합’인 셈이다.
자연의 변화, 생활주변의 일들 모두는 여름의 의미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시인은 작품 <연(蓮)>에서 여름에 피는 연꽃을 통해 달관의 심상을 보여주었다.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밤에 피든 낮에 피든/아무러면 어떠하랴/사는 곳, 흙탕물,/아무러면 어떠하랴”고 했다. 꽃은 열림과 포용, 용서의 세계를 표상한다. 더러운 진흙에 뿌리를 박고 있으되 아름답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는 연꽃, 제 열매의 숭숭 뚫린 상처들을 대범하게 보여주는 연꽃에 시인은 감동을 받는다. 주렴계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의 21세기 식 버전이라 할까.
이에 비해 <등대>는 예리한 관찰을 토대로 시인 자신의 모습을 애절하게 투사한 독백이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서 있는’ 등대,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품고 있는 듯한 등대, 험한 폭풍우에도 한 마디 불평 없이 ‘보람을 찾으려는 듯한’ 자세로 서 있는 등대... 등대는 곡절 많은 인생을 살아 넘긴, ‘욕망을 초월한 사내’의 모습으로 서 있다. 마지막 연(“더 잘 할 수 있었는데.../후회하며 곱씹다가/자리를/영/못 뜨는 것인가”)에서야 시인은 등대가 자신임을 밝힌다. 그건 자기 응시를 통한 깨달음과 달관의 서정이다.
여름의 깨달음은 <하계 농촌봉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아담과 이브는
갑자기 노동자가 되었다.

가시덤불 헤치며 지새운
공포의 밤들,
얼굴에 땀이 흘러야
하늘을 볼 수 있고
흙이 되어야
쉴 수 있으리니

어설픈 곡괭이 삽질 몇 번에
하늘 한 번 쳐다보고
김매기 반나절에
열 번 넘게 하늘을 본다

땅거미 지면
물집 난 손바닥 감추고
안식하는 연습을 한다.

밀짚모자도 사치스러운 산촌에
왜 별은 빛나는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땀 흘려 하늘을 보고
흙이 된다.

시인은 도시 대학생들의 하계 ‘농활’ 현장을 격려차 방문했던 것일까. 농부들의 동작과 함께 그들의 시간과 공간을 흉내 내는 ‘청춘의 어설픔’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노동의 어려움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이 뛰어든 농촌봉사 현장. 여름이 익어가는 현장에서 어설픈 노동을 통해 내면이 성숙해가는 젊음의 모습과 삶의 진실을 그려내고 있다. ‘나’와 흙이 하나가 되는 경지는 변함없이 빛나는 별처럼 소중한 깨달음이다. 열정뿐인 젊음들이 차분한 자기응시를 통해 대상의 본질과 진실을 깨우쳐가며 달관의 종착에 이르는 과정. 시인은 지금 어설픈 모습의 그들과 열정으로 살아오면서 삶의 진실을 터득하고 달관의 경지에 이른 자신을 오버랩 시키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조용하면서도 집요하고 겸손한 담쟁이의 정신미학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담쟁이>도 시인 자신의 투사 대상임은 물론이다. 담쟁이가 시인 자신의 모습이거나 최소한 시인이 이상으로 여기는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여우와 사람의 상동성을 바탕으로 ‘세상엔 사람답지 않은 사람들이 많고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꾸짖음 아닌 꾸짖음으로’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납량특집 전설>의 깨달음과 차원을 달리하는 서정이기도 하다.
깨달음의 서정은 <여름 밤하늘>에 와서 아름다움의 정점에 이른다. 시인은 ‘딩 안 지히(Ding an sich)’를 두 번이나 반복적으로 썼다. “세월이란 그런 건가”와 “세월 때문인가” 뒤에 한 번씩 쓴 것은 의미와 리듬을 배려한 시인의 절묘한 아이디어다. 물 자체, 본체, 혹은 선험적 객관이란 철학적 의미는 고사하고, 흡사 거문고 가락을 튕기는 듯한 그 말의 음성학적 쾌감은 얼마나 환상적인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함없이 깊고 나직한 거문고 가락처럼 사물은 ‘본질 그대로’ 그곳에 있는 것을. 인간은 자신의 변화에 따라 세상 모든 것이 변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존재다. 소년시절에 보았던 여름 밤하늘,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은가루 별빛만 찬란한’ 그 본질이야 변할 리 있는가. 여름 밤하늘의 아름답던 옛 추억은 전설처럼 아스라해지다가 나이 따라 사라지고 그냥 은가루 별빛 찬란한 공간으로 남아있을 뿐이라는 깨달음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된 지점에서 얻는 것이 바로 인생에 대한 달관임을 이 시는 보여준다.

넷. 가을/향수와 회귀, 실향(失鄕)의 아릿한 추억

가을은 대개 풍요의 이미지로 나타나지만, 시인에겐 고향과 코이노니아를 떠올리게 하는 시간대다. 바다, 벌판, 시골, 연어가 돌아오는 여울목, 배추밭, 가벼운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 등. 그 시간과 공간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비록 마음속에 갈무리된, 상상 속의 고향이지만, 그곳은 시인이 돌아갈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은 가을이면 실향민이 된다. 그 압권이 <연어의 회귀>다.

담수에 비해 바다는
짜고 험하고 거칠었지만
내게 광활한 자유와 풍요와
환상을 주었다.

어려서 떠날 때는
스틸헤드 치어(稚魚)처럼
머뭇거렸으나
금방 대양에 익숙해지고

생의 희로애락을
바닷물에 듬뿍 적셔
돌아올 날이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다.
그러나 떠남이 운명이었다면
회귀(回歸)는 더 끈질긴 본능.

잉태와 부활을 위한,
변치 않는 DNA 안테나가
내게도 있었다.

돌아갈 고향은
좁고 가파르고 위험한 시내
아무 교통표지판도 없는 계곡.

그래도 회귀는
바다보다 더 자유롭고
더 크게 거칠게 다가오는
전율의 은총이었다.

‘짜고 험하고 거친’ 바다는 세상이다. 연어가 바다에서 얻은 것은 자유, 풍요, 그리고 환상이었다. 그가 바다에서 얻은 것이 자유와 풍요뿐이었다면, 다시는 모천(母川)으로 회귀하지 않았을 것이다. 환상이 모천회귀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환상이란 현실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형상이나 생각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환상임을 깨닫기 위해서는 체험이 필수적이다. 누구나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름의 환상이 필요하다. 환상을 현실로 바꾸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세상살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 보아도 환상만으로 남는 게 있다. 삶은 유한하고 꿈은 원대하니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 또한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남는 환상 때문에 좌절한 실존이 기댈 언덕은 모천 혹은 고향으로 회귀하는 일 뿐이다.
“돌아올 날이 있는 줄은/까맣게 몰랐다”고 한 것도 떠날 때의 환상에 눈이 가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떠남은 운명이고, 돌아옴은 더 끈질긴 본능’이라 했다. 고향이 비록 교통 표지판 하나 없는 좁고 가파르고 험한 곳일지라도 크고 넓으며 자유로운 바다(혹은 세상)보다 훨씬 크고도 거칠게 다가오는 ‘전율의 은총’이라는 것이다. 누군들 나이 들어 그동안 잊고 지내던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지 않겠으며, 돌아가려 애쓰지 않겠는가. 연어가 그 험한 모천으로 회귀하듯 낙후된 고향이나마 돌아가려 애쓰는 것을 ‘DNA 안테나’ 즉 본능이라 했다. 근원과 고향으로의 운명적 회귀는 세상에 대한 선망이 환상이었음을 깨달은 다음에나 가능한 일이다. 연어라고 모두 모천회귀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사람이라고 모두 귀향하는 것은 아니다. 험한 바다에서 길을 잃기도, 죽음을 당하기도 하는 연어들. 넓은 세상을 방황하는 인간도 그러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도 연어처럼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이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을은 향수와 회귀의 계절인 것이다.
이 작품과 연결되는 작품이 <서울내기>다. 서울내기인 시인에 별다른 고향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마음의 발만 고향 길을 걷는다”고 했다. 고향에 살면서 실향의 아픔을 체험하며 그 옛날의 아련한 추억을 반추하는 화자를 시인은 절묘하게 그려냈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고향에 돌아가고자 하는가. 바로 사람들 사이의 정과 대화가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바로 <코스모스>에 그 해답이 숨어있다. 가을날 고향의 둑방 길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코스모스. 카오스에 대한 코스모스는 시인의 말대로 ‘계절의 질서’다. 그러나 그건 멀리 볼 때이고, 가까이 보면 ‘가지각색 자유로운 코이노니아’, 즉 자유로운 공동체의 대화라고 했다. 꽃 색깔도, 키도 각각인 코스모스들이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모습이 대화를 나누는 고향 사람들의 얼굴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코스모스 필 때는/기다리는 사람 없어도/종일 창문을 열어놓는다/무작정 길을 떠난다”고 했다. 누군가가 올 것만 같은 분위기는 가을이 향수의 계절임을 말하고,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가슴앓이를 하는 시간대임을 말한다. 훌쩍 큰 키로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코스모스의 모습이야말로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고독한 실존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시인을 가히 이미지의 마술사라 할 수 있으리라.
코스모스에서 유발된 향수는 <연시(軟柿)>에서 무르익는다. 도시 한 복판의 카페. 시인은 그 벽에 걸려 정감을 피워내는 (고향의) 연시를 발견한다. “촌스러움을/예쁘게 봐주는/촌스러움이/허공에 남아 있는” 그 카페의 연시들. 그것들과 공존하는 “축하, 정담(情談), 약속/메모 쪽지들”은 연시로 이미지화된 고향이야말로 따스한 정이 흐르는 공간임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이 <오항리(烏項里)>다. “연시 한 소쿠리/곡주 한 사발/그냥 쥐어주는 인심에 취하”기도 하고, “곡마단 나팔소리/아이들 웃음소리/품어 안아주는/노을에 취하는” 넉넉한 공간이기도 하다. 시인이 비록 그곳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그런 공간을 ‘고향’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태어난 곳에서 자라나 실향해본 적이 없는 시인에게 ‘오항리’는 비록 타향이나 고향 이상의 정감을 주는 곳,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 가을은 향수와 회귀의 시간대다.
가을의 이미지에 향수나 회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봄날 창문에 흩뿌리는 봄비를 보며 시인은 글자가 난무하는 컴퓨터의 모니터를 연상한 바 있다. 시인은 고적한 가을 날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서 디지털 이미지를 읽어낸다. 가볍게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를 ‘압축 파일’로 대치(代置)할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시인의 센스였다. 더 나아가 그는 “새는/나뭇잎의 이슬방울을/달게 마실 줄 알고/영혼의 날개로/우주와 입 맞추는/아름다운 시집”(<새(鳥)>)이라 정의했다. <새 2>에서 시인은 한 발 더 나아가 “그대에게 남은 것은/옷 한 벌/가냘픈 노래/GIS 네비게이션/날개를 펴고 접는/압축 실행 파일”이라고 노래했다. 그러면서 결국 “그래서 땅 딛고 사는 나에게/모든 중생에게/훌쩍 인사도 없이/아무 때나 떠나는 것인가”라고 새와 관련한 가을의 상념을 털어놓았다.
‘떠남’은 상실이나 버림이고, 그것은 시인이 발견한 가을의 이미지인 회귀와 정반대의 개념이다. 고향에 돌아오는 계절도 가을이고, 고향을 떠나는 계절도 가을이다. 마치 ‘압축실행파일’처럼 가벼이 고향을 뜨는 새들과 고향을 뜨는 사람들을 병치시키는 데 성공하는 시인의 손끝을 보라. 그의 손과 마음을 통과하면서 가을은 ‘떠남과 돌아옴의 계절’이 된다. 떠나면서도 돌아오는 것 못지않게 포근한 정을 느끼게 만든 것이 바로 시인의 짭잘한 ‘손맛’이다.  

다섯. 겨울/만남과 설렘, 그리고 방황의 끝

시인에게 봄·여름·가을은 이산(離散)과 방황의 계절들이다. 열기와 열정의 시간대들이다. 그러나 겨울은 그런 열정들을 안으로 여미고, 방황을 끝내는 계절이다. 방황이 끝나는 곳에는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한 설렘이 있다. 기쁨과 설렘을 배가해주는 대화의 장(場)이 있다. 그곳에선 세상을 방황하며 겪은 온갖 신산(辛酸)한 체험들은 웃음에 곁들인 안줏거리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겨울 序詩>는 겨울 이미지들의 모든 것을 포함한 ‘압축파일’이다.

가을을 쓸쓸히 보낸 사람일수록
겨울이 더 따듯할 수 있습니다.

봄, 가을 온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겨울은
느낌을 하나로 만듭니다.

온 하늘이 눈송이로 가득 차면
우리 시선은
방황을 끝내고
화로 가에 모입니다.

가슴 설레던 봄 아지랑이
여름의 태양과 태풍,
가을의 수확,
모든 것을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가을 감사절뿐만 아니라
서로의 거칠어진
피부를 볼 수 있는
이 겨울도
감사의 제목입니다.

온 하늘이
눈송이로 가득 차듯
남은 시간이
가득 차고 깊어집니다.

‘겨울은 정감 넘치는 감사와 회동(會同)의 계절’이라는 것이 이 시의 주지(主旨)다. 경건할 만큼 따스하다는 점에서 ‘겨울 기도’라는 부제를 붙일 수도 있으리라. 봄에서 가을까지 천지 사방으로 흩어져 지내던 붙이들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지난 계절들의 시간과 공간을 응시하고 관조하며 감사하는 모습은 침잠의 계절, 겨울만이 선사할 수 있는 풍경이다. 그래서 시인은 사람들이 겨울에 “모든 것을 초연하게/바라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마지막 연의 “가득 차고 깊어지는” 남은 시간은 신의 은총이 지배하는, 거룩한 그것이다. 지난 계절들의 열정과 풍요, 그리고 무사함을 담론하며 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경건한 시간대로 겨울을 묘사하는 시인의 심상이 그래서 돋보인다.
겨울은 차갑다. 그래서 모든 것을 얼리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안으로 뜨거운 정을 품는다. 그래서 겨울은 춥지만 따뜻한 계절이다. 그 ‘춥고 따뜻한’ 겨울을 가장 멋지게 노래한 작품이 <겨울비>다. 겨울비 추적추적 뿌려대는 어느 날. 시인은 좌판 위의 사과들을 닦는 과일 노점상을 만난다. 반짝거리도록 닦아내는 동작에서 ‘군대 간 아들의 비 맞은 얼굴’을 ‘지극정성으로 닦아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읽어낸다. 그것이 첫 연이다. 둘째 연에서는 군대 간 아들 녀석이 등장한다. “기상나팔에 눈 비빌 새 없이/달력에 줄 하나 긋고/싱긋 웃는 아들,/구두약 듬뿍 찍어/반짝반짝 닦는” 군대 간 아들을 시인은 끌어왔다. 휴가 나갈 생각에 흐뭇한 마음으로 구두에 ‘광내고 있는’ 그 녀석. 시인의 아들일 수도 노점상의 아들일 수도, 아니 우리 모두의 아들일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다. 겨울비 맞아가며 사과에 광을 내는 노점상. ‘돌아가는 국방부 시계’만 믿으며 구두에 광내며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 아들 덕에 부모는 꿋꿋이 어려움을 삭이고 있으리라.
이 시에서 우리는 세상 부모들의 마음을 축축하게 만들어주는 감동을 만난다. 그러나 시인의 재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겨울비야/뿌리다 말겠지”라고 흡사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눙치고 만다. 앞에서 울적한 마음이었던 우리를 쑥스럽게 만드는 한 마디다. 노점상을 우울하게 만든 겨울비였다. 그러나 ‘까짓 겨울비 기껏 얼마나 내릴까?’라는 자기 위안의 말은 희망 그 자체다. 마지막 연에서야 우리는 안심을 하게 된다. 슬픔이나 울적함으로 끝내지 않으려는 시인의 재치와 따스한 마음을 비로소 확인하게 된다. 차가운 계절에 만나는 따뜻한 정감. 그것은 머지않아 군대 간 아들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지난 계절의 이산과 방황을 관조하는 시간대가 바로 겨울임을 보여준다.  

여섯. 제5의 계절, 환절기/가열 찬 생명의 이어짐

순환하는 계절의 주기는 네 개의 단위다. 이른바 사계절이다. 그러나 계절들 사이의 시간대를 어찌 무시할 수 있으랴. 디지털 감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시인은 환절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환절기를 제5의 계절이라 부를 수 있을까. 4계절보다 환절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시인의 정감 덕분이다. 시인은 <MT>에서 ‘영원한 청년’을 환절기의 존재로 묘사한 바 있다. 즉 2월이 겨울인 1월도 아니고 봄인 3월도 아니듯 노교수는 소년도 노인도 아닌 영원한 청년으로 남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계절의 생명성은 환절기에 오히려 치열하게 준비된다. 그것은 단순한 ‘이어짐’이 아니다. 서로 다름의 융섭(融攝)이다. 그래서 그 부분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니,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시간대라고 할 수 있다. 시행착오와 미래지향의 발전 가능성을 함께 지닌 독특한 시기가 바로 인생의 환절기인 것도 그 때문이다.

계절의 순환은 맺힌 데 없는
완전한 순간들의 점철,
심지어 환절기에도
완전한 의상으로
생명의 합창을 한다.

나무들이 낙엽을 뿌릴 때나
앙상한 가지만 남았을 때도
병들어 그런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이 제 모습이다.

변하기는 하되
변하지 않는 듯
오가는 계절의 속도처럼
철새들은 여유롭고
대륙을 순환하고
천리만리 힘차다.

산은 움직임 없이 노래하고
강물은 움직여 장단을 맞춘다.
변하지 않는 듯 천천히
의상과 곡목이 바뀌고

늘 완전한 모습으로
세상이 달라진다.

자연은 계절의 순환을 통해 생명의 합창을 구체화 시킨다. 사이사이에 마련한 것이 환절기라는 고비다. 그러니 그 고비만큼 오묘한 생명의 정수(精髓)란 있을 수 없다. “순간순간이 제 모습”이란 말은 순환을 형성하는 모든 순간들이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계절의 순환 속도가 우리의 의식을 어지럽힐 만큼 빠르지 않은 것은 환절기라는 완충장치를 두었기 때문이다. ‘변하되 변하지 않는 듯’ 느낄 수 있는 것도 순환의 마디와 마디를 이어주는 환절기 덕분이다. “산이 움직임 없이 노래하고/강물이 움직여 장단을 맞추듯” 천천히 계절은 바뀌다가 새로운 계절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 버린다. 완벽하게 바뀐 계절의 한 복판에서 ‘늘 완전하게 달라진’ 세상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의 끊임없는 움직임과 변화를 포착하여 세상에 적용시킨 시인의 통찰력, 디지털적 시각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환절기>가 자연과 세상 변화의 이치를 원론적 측면에서 노래한 것이라면, <환절기 2>는 ‘80년대의 젊음이 겪어온 모순과 역리의 소용돌이’를 환절기에 기대어 구체화시킨 작품이다. ‘1980년대를 돌이켜 보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시에서 시인은 회오리처럼 휩쓸고 간 80년대 캠퍼스의 열풍을 노래했다. 부모나 선생으로 대변되는 기성세대보다 선배나 친구로 대변되는 신세대가 소중하고 진실하게 여겨지던 ‘부조리와 반항’의 시대정신을 모두(冒頭)에서 강조했다. 시인은 그 시절을 ‘젊음의 길고 긴 환절기’라 했다. 그런데 ‘다음 계절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이전 계절과 다음 계절을 함께 아우를 수 있어야 환절기일 수 있는데, 이 반항의 계절, 모순의 환절기에 처한 젊은이들에겐 다가올 계절에 대한 준비가 없다고 했다. ‘여름 옷, 겨울 옷’ 중 무엇을, ‘옛 노래, 새 노래’ 중 무엇을 택해야 할지 망설인다고 했다. 그저 뿜어대는 최루가스를 뒤집어쓰고 ‘역사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구원의 신호등 찾아/달리고 달린다”고 했다. 기나긴 독재정치의 터널에서 민주화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바로 80년대였다. 지금 이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활약해야 할 세대가 바로 그 과도기를 아프게 살아온 젊음들이다. 민주화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80년대, 그 부조리로 점철되어 있던 모순과 반항의 환절기를 시인은 아프게 회상한다. ‘준비 없이’ 지내온 환절기의 젊음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환절기란 단순한 과도기가 아니다. 그 나름의 온전한 의미를 지닌 순환의 마디다. 그렇게 완벽한 환절기가 있는 반면, 80년대 같은 불완전한 환절기도 있음을 시인은 숨 가쁜 템포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환절기이든 그것은 ‘계절의 순환에서 가열 찬 생명의 이음매’이어야 한다.

일곱. 마무리 : 시인의 이상, 그리고 디지털 유토피아

시인은 사물의 예각을, 계절의 순환을, 아니 인간의 삶을 디지털의 눈으로 포착해왔다. 단순히 미세한 부분을 잘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숨어있는 진심을 드러내어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것. “진심이 진심을 만나/커뮤니티를 이루”(<네트워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목적은 ‘(모든 것을)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심지어 신화도 옛날이야기나 헐어빠진 책 속에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열린 가슴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제자에게 배우면 행복한 선생이지/강자가 약자 되고 약자가 강자 되고/유식자도 하루아침에 무식자 되고/돌고 도는 것이 세상이치거늘/오천년 배달민족 자부심은 좋다만/언제 진심으로 배웠는가./뇌물공여지수 제3그룹/그런 것 말고 꾸준한 것이 있는가”(<신화>)라고 울분을 터뜨리는 시인의 한탄은 통렬한 자아반성과 깨달음의 소산이다.
여기서 비로소 우리는 시인이 지향해온 문학세계가 ‘열린 마음의 시학’임을 알게 된다. 시인이 역설하는 ‘신화 재창조의 당위성’도 바로 열린 가슴에서 비롯됨을 알게 된다. 그런 바탕 위에서 시인은 자신의 인식을 문명비평, 시대 비평으로 확대한다. 그가 시도한 <색상반전>은 단순한 컴퓨터 이미지의 놀음이 아니다. 그 경우의 이미지는 세상과 만나고 대화하는 창이다. “낙엽 지니 봄이요/눈 내리니 삼복이라/색상반전 재미있네.”라는 가사체의 요설(饒舌)이 ‘거꾸로 가는 세상’에 대한 비판으로는 제격임을 보여준다. 시인은 <악몽(惡夢)>을 통해 ‘아름다운 강토 도시마다 비린내 나는 비늘을 뿌려대는 이무기 한 놈’을 적시했다. 그 이무기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그는 시인으로부터 ‘개처럼’ 두들겨 맞은 셈이다. 살아가고 있는 지금을 악몽으로 본 것은 시인의 현실인식이다.
그러나 시인이 남의 탓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의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비판한 다음, 최종적인 메스는 자신에게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네 죄를 알렷다>는 통렬한 자기반성의 호령이다. 단순한 호령이기보다 자신의 평생 결산서인 셈이다. 이미 <색상반전>을 통해 ‘거꾸로 가는 세상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 시인이다. ‘뒤집어 보기’로 자신의 일생을 평가하고 있는데, 모두 ‘죄’라고 결산했다. 그 죄라고 한 것을 다시 ‘뒤집어 보면’ 참으로 ‘열심히 살아온’ 일생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죄’라고 판정했다.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잘 살아도, 못 살아도 후회는 남기 마련이라는 깨달음일 것이다. ‘살아가는 방향’이 단일할 수 없음에도 자신이 살아온 길이 잘못되었다는 후회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마지막의 단행련(單行聯)(“처음부터 다시!”)이 함축한 의미가 바로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방향으로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가능치 않은 소망을 드러내고 있는 그 외마디 말 속에 이 시의 주제는 담겨 있다.
시인은 곧 정년을 맞는다. 그래서 지금 그는 ‘환절기’를 살고 있는 셈이다. 환절기에 흔히 걸리는 감기 몸살도 용케 피해가며 새로운 계절을 마련하고 있는 그다. 환절기를 맞아 지나온 계절들의 영광과 상처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걸까. 그것도 디지털의 미세한 촉수를 통해 지금껏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심연(深淵)을 더듬어 보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디지털 사계’는 차이코프스키나 비발디의 ‘사계’보다 훨씬 따스하고 감미롭다. 모든 사람들이 찾아 헤맸으나 결국 찾아내지 못한 정감들이기에 더욱 따스하고, 디지털의 눈으로 확대한 것이기에 그 이미지는 더욱 깔끔하다. 시인은 ‘디지털이 차가운 기술이므로 아날로그의 따스함으로 데워야 한다’는 이른바 ‘디지로그’ 논자의 편견을 일축한다. 디지털은 태생부터 따스한 세계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공동체와 대화문화는 디지털이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보기 때문이리라. 그런 이유로 시인은 공동체 의식과 대화에 스며있는 삶의 따스함을 찾아 나선 것이나 아닐까.
아름다운 봄이 가면 뜨거운 여름이 오고, 수확의 계절이 가면 죽음 같은 침묵의 겨울이 오듯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으로 교직(交織)되는 인간의 삶 역시 순환의 객체일 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4계절을 노래한다. 그것도 디지털의 섬세한 시각과 필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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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6. 15:03


고향에서 만난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조규익

내 고향 태안엔 샛별처럼 반짝이는 제자 난주시인이 살고 있다. 경남 산청 출신. 당차면서도 맑은 영혼의 여인이다. 경남대학의 전임으로 막 부임한 나는 스물여덟. 갓 스무 살 난 그녀는 학교의 문학 서클에서 시인에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일상에 매몰되어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던 나는 떠난다는 말도 없이 두 해만에 서울로 오게 되었다. 그 후 우연히 그녀가 내 고향으로 시집 와 산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로부터 나는 부끄럽게도 잊고 있던, 아니 잃어버린 지 오래였던 고향을 다시 찾게 되었다. 척박한 내 고향에 문화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그녀를 보며 스스로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독서회, 시 낭송회, 논술·토론회 등, 문화의 모종삽을 들고 분주한 그녀. 그녀의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신선했다.

         ***

유럽 여행기 <<아, 유럽!-그 세월 속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를 펴내자마자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독서 모임 회원들을 위해 ‘저자와의 만남’ 시간을 갖겠다는 것. 그래서 태안도서관을 찾았다. 아, 그런데 그곳엔 올망졸망한 ‘초딩’들과 그 지역의 어른들이 뒤섞여 강의실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니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으랴? 그저 책에 목마르던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 지금도 여전히 허기에 시달리며 무언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내 삶의 이야기나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여행과 독서! 그러고 보면 참으로 절묘한 일치였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찾기 위해 우리는 책을 읽는다.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찾거나 알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찾아다니는 세상이나 우리가 읽는 책이나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유럽을 비롯 그간 내가 밟았던 곳들은 모두 내 공부를 위한 텍스트였던 셈이다. 태안의 사임당 독서회를 위해 난주시인이 내게 부탁한 것은 여행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야기 내내 ‘책 읽기’와 ‘여행하기’라는 두 영역을 왕래하게 되었다.
         ***

청중석에 앉아있는 어른들은 참으로 훌륭했다. 이런 시대에 책을 가까이 하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있을 수 있다니! 모여 앉으면 부동산 이야기, 남 헐뜯기로 세월을 보낼 법 한데도 그 분들은 열심히 책을 읽고 정기적으로 만나 토론을 한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 책을 읽으라!’ 경을 읽을 필요가 어디 있을까.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보며 스스로 책을 읽고 사색에 빠질 것이다. 단 한 시간이라도 어머니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들도 옷깃을 여미고 책상 앞에 달라붙는 것을. 어른들 자신들은 ‘먹자 마시자’로 일관하며 입으로만 경을 읽는다. 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내 고향 태안의 미래는 밝았다. 그곳은 내 고향 태안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함께 모인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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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주꾸미 샤브샤브로 태안의 풍미를 듬뿍 맛본 식당 앞에서





         ***

차를 타고 떠나든, 책 속으로 떠나든 여행은 즐겁고 가슴 설레는 일이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문화를 만나게 되고, 나와 다른 그것들을 통해서 나의 자아를 깨닫는다는 점에서 여행만큼 위대한 선생님도 없다. 역사상 위대한 사상가, 문학가, 예술가, 정치가 등은 모두 여행에 나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 자아를 깨닫고 거듭 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자식을 성공시키려면 일찍부터 여행을 시키라’고 강조했다. 다만,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뚜렷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만은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

태안. 아름다운 봄꽃들이 만개한 그곳엔 은총처럼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몽대 포구의 바닷바람도 이리저리 봄 내음을 흩어내고 있었다. 김영곤 시인의 시낭송과 조은숙 회장의 가곡 한 자락은 방파제를 넘어 햇살 반짝이는 물결 위로 파문처럼 번져갔다. 난주 시인의 해맑은 웃음이 그 사이를 수놓은 봄날 오후의 한 순간. 살아있는 내 고향의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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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대포구의 따스한 봄바람을 맞으며

                                                                       2007.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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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5. 22:54
민족의 자존심

                                                                                                                      조규익

자격 있는 자만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원문보기 클릭-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중국의 공권력에 폭행을 당했다. 국가 간의 이해(利害)가 개입된 문제라고는 해도 ‘때린 놈’이나 ‘맞은 놈’ 모두 우습게 되었다. 더욱 희한한 일은 때린 놈의 역성을 드는 집단이 우리들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점잖다 해도 ‘불량배에게 맞고 들어온 자식’을 꾸중하는 부모는 없다.

사실 중국을 지렛대로 북한을 움직이려면, 중국과 우리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란 어렵다.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면서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이득까지 챙기려는 중국인들의 계산법은 천하공지(天下共知)의 사실이다. 분단된 우리 민족을 뒤에서 조종하며 실익을 챙기자는 그들의 ‘꼼수’를 우리는 민족사 최대의 수치로 받아들여야 정상이다.

따라서 이번 일을 국제화 시대의 나라들 간에 일어날 만한 외교적 사건으로 단순화 시킬 수는 없다. ‘민족적 자존심’의 원칙적 잣대는 어느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최우선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그 잣대가 좀더 복잡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80년 전의 일을 떠올려 보자. 반정(反正)으로 인조(仁祖)를 옹립한 서인(西人) 정권은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했다. 중국으로부터 고명(誥命)과 면복(冕服)을 받지 못하면 국내에서 반대파를 누르고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누르하치의 기세가 바야흐로 명(明)나라의 숨통을 끊어갈 무렵이었다. 이덕형(李德泂)을 정사(正使)로 하는 주청사(奏請使)가 명나라 조정에 파견되었고, 그들은 넉 달 가까이 북경에서 온갖 수모를 겪는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사가 ‘시랑(侍郞)’ 정도의 관리들에게 농락을 당하기 일쑤였고, 자신들의 뜻을 요로에 전하기 위해 뇌물을 밥 먹듯 써야 했다. 북경의 혹심한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새벽부터 길거리에 꿇어 엎드려 출근하는 각로대신(閣老大臣)들에게 손을 비비던 노구(老軀)의 정사는, 바로 역사 속에 그려진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다.

그뿐인가. 천신만고 끝에 각로들을 만난 정사. 그들의 괜한 트집으로 섬돌에 내동댕이쳐져 울부짖던 그 참상을 다시 무슨 말로 표현할까.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부질없다지만,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무자비하고 철저하게 ‘농락해 온’ 저들의 무례함을 제때 제대로 징치(懲治)했더라면 현대사는 좀더 다른 방법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징치’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우리가 ‘자존심’을 세우는 방법만이라도 강구했었다면 지금 이렇게 온 국민이 참담함을 되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망해가는 명나라에게 빌붙어 국내에서 권력을 장악하려던 일부 무리들의 ‘꼼수’는 결국 민족의 자존심을 망치고 그후 조선에 잦은 전란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 된 것만 보아도, 통치 집단의 지혜로움은 분명 민족사 전개의 향방을 가르는 지표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세상사,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겉모습은 달라져도 본질은 변할 리 없다. E H 카(Carr)의 말처럼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임에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운 것 없음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말았다. 특히 21세기 초입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집단들이 매우 우매(愚昧)하고 게으르다는 점, 국민으로서는 그것이 못내 통분하다.

역사책의 한 쪽만 넘겨 보아도 우리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진실은 그득하다. 지금 중국은 남북의 분단 상황을 지렛대로 삼아 그 사이에서 철저히 이익을 취하고 있다. 그 와중에 농락당하는 건 남북한 모두의 자존심이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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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5. 22:47
이젠 '죽는 연습'을 할 때다
영안실에서


후배의 부음을 받고 영안실로 달려가는 밤길은 멀고도 험했다.
번잡한 도회를 벗어나 접어든 꼬불꼬불 산길은 흡사 ‘저승길’ 같았다.
그랬다. 몇 발짝만 벗어나면 저승이었다. 그게 바로 삶과 죽음의 거리였다.
깜깜한 산길을 달리는 동안, 영안실에 도착해서는 크게 울리라 생각했다.
한 줌의 재로 우리 곁 어딘가에 내려앉을 그의 영혼을 위해 크게 울어 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어걸린 영정이 너무 화사하고 깨끗했다. 그 미소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없었다. 가슴 저 밑바닥에 준비해간 울음은 작은 신음으로 축소되어 눈자위만 붉히고 말았다. 말없이 이승을 떠난 그와 산 속 영안실에서 그렇게 만나고, 헤어졌다.

영안실에 다니면서 죽음을 수 없이 배운다. 아니 ‘죽는 연습’을 한다.
죽음을 받아들인 그들의 마지막 며칠을 떠올리면서 죽는 연습을 한다.
어떤 이는 숨을 놓는 그 순간까지 ‘살려고’ 버둥대는 통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더욱 애처롭게 만든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초조해하고 당황해한다. 문 밖에 기다리고 있는 저승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들이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기만을 애타게 소원한다. 그렇게 가고나면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큰 못이 하나 박힌다. 어떤 마무리건 의연하지 못할 경우 남는 건 슬픔과 욕됨 뿐이다.

후배의 마지막 며칠을 지킨 또 다른 후배는 그의 마지막이 쓸쓸했다 한다.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다. 아름답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을까. 일종의 자존심이었으리라.      

그러나 삶과 죽음의 교차로를 그토록 쓸쓸하게 건널 이유가 있을까.
그보다 먼저 간 사람들도 많았다. 그도 우리보다 좀 먼저 갔을 뿐이다.
먼저 가는 사람으로서의 소회도 있을 것이다. 살아남을 사람들에게 풀지 못한 서운함도 있을 것이다. 서운함을 넘어선 ‘응어리’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주는 거야말로 떠나는 자의 의무 아닐까. 하기야 선량한 그 친구는 누구와도 그런 서운한 관계를 맺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고운 관계만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니 생전의 인연들을 불러 서운함과 응어리를 푸는 것은 떠나는 자가 잊지 말고 해야 할 일이다. 그것도 정신 있을 때 해야 할 일이다.

영안실은 살아남은 자들의 잡담으로 떠들썩했다. 흡사 살아있음의 행복을 확인하려는 듯, 밤이 깊어갈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는 것이었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후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모두들 영안실에 가면 ‘죽는 연습’이나 한 번씩 해볼 일이다.

수원 연화장 장례식장에서

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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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규소개2007. 4. 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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