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 전공자료2017. 4. 19. 19:21

네이버 번역이 구글 못따라가는 이유

데이터·신경망 구조 조밀한 구글 `번역품질`이 타사 압도
사회·문화적 맥락 집중 학습…인공지능, 곧 인간번역 추월

  • 신현규 기자
  • 입력 : 2017.04.04 17:03:59   수정 : 2017.04.05 10:08:21

 

'신경망번역' 탄생시킨 조경현 뉴욕대 교수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최근 세종대에서 벌어진 인간 대 인공지능 번역 대결은 피조물의 패배로 끝났다. 판정 시비 논란이 있긴 했지만 번역은 아직 인간의 영역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이벤트였다. 글에 담긴 사회적 의미와 문화적 차이 등을 인공지능이 인간만큼 번역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기사가 아니라 문학작품 번역에서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해 바둑에서 인공지능에 완패 당한 기억 탓인지 '인간의 승리'는 더 값져 보였다. 하지만 상대는 점점 더 강해진다.

인공신경망 번역 분야에서 주목받는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조경현 미국 뉴욕대 교수(33·사진)는 "지금은 문장 단위 번역이지만, 앞으로는 이를 보완하는 사회·문화적 맥락 단위 번역이 이뤄질 것"이라며 "현재 딥러닝 연구자들이 그런 방향의 리서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 번역가처럼 사회·문화적 맥락과 작가 스타일을 살려 번역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조 교수는 '신경망 번역(Neural Machine Translation)'이라는 학술용어를 처음으로 탄생시킨 인물이다. 공저자로 참여해 2014년 머신러닝 관련 콘퍼런스(ICLR)에서 발표한 논문 '배치작업과 번역작업을 동시에 학습시키는 신경망 번역'은 현재 대부분 번역엔진에 채택돼 있다. 조 교수가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와 함께 쓴 논문이다. 벤지오 교수는 앤드루 응 전 바이두 인공지능연구소장, 얀 르쿤 뉴욕대 교수,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 등과 함께 현존 최고 딥러닝 학자 4인방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대가다.

조 교수는 "예를 들어 이미지를 문장과 함께 인공지능 신경망에 포함해 번역시키면 결과물 품질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며 "이미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보조 정보를 인공지능 신경망에 포함시켜 번역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웃는 이모티콘을 사용하면서 '죽을래?'라고 쓴 문장을 번역하면 'Wanna die?' 대신 'Are you messing with me?'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통해 살의를 갖고 협박하는 말이 아니라 장난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저자의 국적, 성별, 스타일까지 반영한 인공신경망 번역이 나올 수도 있다.

인공신경망 번역은 문장 하나를 그 의미와 구조에 따라 가상공간 점에 위치시킨 후 해당 점을 번역해 문장으로 풀어내는 기술이다. 변수들로 구성된 벡터 공간에 문장을 배치하기 때문에 그 공간에 이미지, 이모티콘, 저자 특성 등을 변수로 추가하면 이 같은 사회·문화적 맥락을 가미한 번역이 가능해진다. 이전 통계기반 번역에서는 어구 하나하나를 대입시켜 번역했기 때문에 변수를 추가하기 힘든 구조였다.

 
조 교수는 "기존 통계기반 번역기술에서는 이런 게 불가능했지만, 인공지능 신경망 번역이 나오면서 가능성이 새롭게 열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구글, 바이두, 네이버,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내놓은 신경망 번역 엔진들 품질이 다른 걸까. 조 교수는 "사실 모든 회사의 기반기술 자체는 같다"며 "다만 개별 회사가 갖고 있는 데이터 양과 질, 신경망 모델의 크기, 학습 시간, 어떤 특성화된 알고리즘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동물 중에서 고등동물 뇌에 훨씬 많은 신경세포가 연결돼 있고, 그 연결이 많을수록 지능이 높다"며 "인공신경망 번역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훨씬 범위가 넓고 조밀한 신경망을 구성하는 설계 구조가 번역 품질의 차이점이라는 것이다.

[신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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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소식2015. 7. 3. 11:59

 

 

 

 

 

 

 

 

지난 몇 년 간 악장문학과 해외 한인문학을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틈틈이 북한에서 나온 문학사들을 읽어 왔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그에 관한 제 생각들을 정리하게 되었고, 그 가운데 고전시가들을 중심으로 몇 편의 논문들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강조한 것처럼 북한사람들 특히 학자들의 생각이 너무나 경직되어 가뭄에 실개천 마르듯문학작품의 분석이나 해석에서는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른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나 주체적 사실주의만으로 무궁무진한 문학작품의 이면적 의미를 퍼 올리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들 사유(思惟)의 정형성은 침대에 키를 맞추어 발을 잘라내던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몇 종 되지도 않지만, 그들의 문학사를 다 읽고 더 많은 글을 쓰다가는 수많은 동어반복(同語反覆)’의 함정에 빠질지 모르겠다는 우려 때문에, 당분간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제 사유의 또 다른 틀이 생성되어 이전에 보이지 않던 그들 문학사의 이면적 의미들이 보일 때쯤 다시 쟁기를 들고 나설 생각입니다.

 

여기에 이 책의 머리말을 이곳에 옮겨 놓습니다.

 

 

머리말

 

남북한은 말과 글자, 그리고 역사를 공유한다. 그래서 이 땅의 단일민족은 역사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단과 이질화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역사 또한 양분되고 말았다. 민족에게 남겨진 역사적 사실들은 하나이되, 그에 대한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남북한 역사 이질화의 근원은 이념이다. 처음에 통치이념으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북한은 한 발 더 나아가 주체사상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역사의 이질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북한에서 이른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나 주체적 사실주의의 잣대는 그런 것들이 없던 시기의 옛 문학이나 지금의 창작문학에 가리지 않고 적용되었다. 옛 문학에 대해서는 해석의 도구로, 지금의 문학에 대해서는 창작과 비평의 원리로! ‘김일성의 교시’, ‘김정일의 지적과 함께 제시된 것이 강령으로서의 사회주의 미학 혹은 주체미학이었다. 문학작품이든 문학사이든 획일화의 감옥에 가둬버린 것이다.

 

우리 고전시가를 통해 그 실상의 일부나마 확인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 이 글이고, 일부 학자들이 고창해 온 통일문학사의 서술이 허구라는 점도 이 공부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북한의 문학사()를 이 땅의 다수 문학사들 가운데 하나로 취급해주면 될 일이지, 다양성을 추구해온 남한의 문학사들까지 굳이 주체미학의 형틀에 묶인 북한식 문학사로 획일화시킬 필요야 있겠는가.

 

문학사에도 시대의 소임이 주어진다. 시대정신이나 미학을 벗어나기 힘든 것이 문학사라는 뜻이다. 각자 자기 시대의 목소리로 해석한 문학사를 읽으려 하기 때문이다. 통일 후 문학사 아카이브에는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남한의 문학사들과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북한의 문학사()가 그들먹하게 들어차겠지만, ‘문학사 서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극소수의 학자들이나 그것들을 찾게 될 것이다.

 

책을 멋지게 만들어주신 보고사 김흥국 사장님과 편집부 이순민 선생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해외에서 학업을 마치고 패기 넘치는 교수로 뉴욕대학(New York University)에 입성한 큰 아이(경현)와 현대건설에서 훌륭한 기업인의 꿈을 키우고 있는 작은 아이(원정)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이 책을 건넨다.

 

을미년 한여름

백규서옥 주인

조규익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문학사>>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문학사>>

 

 

 


북한에서 발간된 고전 작품들

 

 

 


북한에서 발간된 고전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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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3. 4. 11. 17:31

 


<땀뻬레 시가지>


<땀뻬레 시가지>


<땀뻬레 상설시장>


<땀뻬레 상설시장의 육류가게>


<땀뻬레 상설시장의 빵가게>


<핀레이슨 산업단지>


<핀레이슨 산업단지 주차장 표시 및 구역도>


<핀레이슨이 지은 교회>


<핀레이슨 산업단지 내 신발가게>


<땀뻬레 핀레이슨 저택>


<하메 성 입구>


<하메 성에서 조경현과 백규>


<하메 성 안의 우물> 


<하메성 안의 채플>



<하메성 안에서, 임미숙과 조경현> 


<하메 성에서 만난 악사> 



<다시 헬싱키로>


<핀란드의 국민적 영웅 칼 구스타프 만네르하임 장군 상>


<핀란드의 루터교회>

 

 

산업화, 외세와의 투쟁, 그리고 미래의 꿈

 

 

뽀리(Pori)의 아름다운 추억을 마음 가득 충전한 뒤 다시 향한 곳은 헬싱키. 이번 일정의 막바지에 가까워진 것이다. 바쁜 일정에서 10여일을 덜어 다른 나라의 핵심 지역들을 순력(巡歷)하는 건, 우리 나름의 ‘장정(長征)’일 수 있었다. 아랫 날씨는 쌀랑했으나, 위에서는 태양이 빛났다. 로바니에미 인근과 달리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에 차들이 제법 많았다. 아직도 몸서리쳐지는 추위 속에서 허우적대는 북쪽과 달리 이곳 길가의 자작나무들에는 녹색이 돌기 시작했다. 국토를 따스하게 감싸고 있는 나무들이 봄볕의 세례 아래 몸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

 

규모로 보아 핀란드 제2의 도시 땀뻬레(Tampere)에 들렀다. 네시 호수와 퓌헤 호수를 잇는 작은 물길이 지나는 항구도시. 방직공장, 피혁공장, 제재소, 각종 기계공장, 아이티 업체 등 내용은 공업 중심의 현대 도시였으나, 모든 공장들은 자연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화석연료 대신 풍부한 수력을 이용하기 때문일까. 대기오염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 곳이었다. 18만에 육박하는 인구도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관계로 도심에서 약간의 인파를 목격할 수 있을 뿐 전반적으로 한산한 느낌을 받는 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였다.

 

맨 처음 찾은 곳은 이 도시의 상설시장. 각종 먹거리 중심의 살아 있는 생활문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빵과 생선, 각종 패션용품 등 모든 것들이 공존하며 그들의 풍요로운 현재를 증거하는, 생생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어딜 가나 들르는 ‘과거 혹은 죽은 자들의 박물관’ 아닌 보통 사람들이 등장하여 보여주는 ‘지금 혹은 산 자들의 박물관’이었다. 그 다음으로 찾은 곳이 도심의 큰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섬유재벌 핀레이슨(Finlayson)의 산업단지. 그는 가고 없었지만, 그가 살아가던 저택도 신을 만나던 교회도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고, 그의 꿈을 구현하는 각종 업무 공간들이 이 시대 산업화의 인력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곳이었다. 그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매장에서는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핀레이슨 디자인의 각종 생활용품들이 팔리고 있었다. ‘디자인 천국’으로 자처하는 핀란드 인들의 자부심, 그 근원을 알려주는 곳이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핀레이슨 산업단지였고, 그곳을 품고 있는 공간이 땀뻬레였다.

 

***

 

땀뻬레로부터 40여분을 달린 뒤, 굳건한 핀란드 국방의지의 상징적 표상 ‘하메 성(Häme Castle)’을 만났다. 지배세력인 스웨덴에 의해 13세기 후반쯤 지어진 중세의 성으로, 최근까지 보수(補修)를 거듭해 온 역사적 공간이었다. 차에서 내려 보니 육지와 연결된 호수 안의 섬이었다. 중세 전반만 해도 이곳에는 여러 개의 섬들이 있었고, 스웨덴 지배 이전 즉 가톨릭이 들어오기 이전에는 이 지역의 핀족 원주민들에 의해 공동묘지나 시장터 등으로 사용되던 곳이라 한다. 지금은 껍데기만 남아 있지만, 단단한 암석과 벽돌들을 여러 겹으로 쌓아 만든 성벽은 나그네로 하여금 다채로운 ‘역사적 상상력’을 발동하게 했다.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투자했을 많은 노력들이 우리로 하여금 시간의 여울을 뛰어넘게 했다. 그들이 추위와 배고픔, 외적의 약탈에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을 성 밖의 백성들을 얼마나 생각했을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두터운 성벽 안에서 자신들의 영화가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을 그들의 우매함이 서글퍼지는 순간이었다. 화려한 카펫에 각종 명화들로 장식된 빛나는 내부, 따뜻한 벽난로와 고량진미의 행복 속에 펼쳐지는 화려한 무도회, 성 밖 전투에서 한 팔을 잃고 돌아온 기사에게 건넸을 형식적인 위로의 말 한 마디, 추수 때 들어온 세곡의 부족을 질책하던 노여운 음성 등등. 그 공간엔 역사의 환영(幻影)들이 끝없이 명멸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피지배의 질곡에서 고통 받다가 가까스로 독립하여 민족적 자존심을 세워가고 있는 핀란드 인들의 영욕(榮辱)이 나그네의 눈앞에서 파노라마로 재현되고 있었다. 바로 그 역사의 질곡을 확인하기 위해 여섯 시간 시차의 땅에서 9시간 비행의 고통을 참아가며 이곳에 왔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인가.

 

***

 

다시 돌아온 헬싱키. 겨울에 내려 쌓인 눈은 녹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바람결이 찬 걸로 미루어 이 눈이 따스하고 달디 단 봄물로 흐르기까지 아마 두어 달은 족히 걸리리라. 헬싱키 현대 미술관 KIASMA 앞에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칼 구스타프 만네르하임 장군 곁을 지나며 핀란드 인들의 정신적 지표를 상상한다. 핀란드 내전과 겨울전쟁 등에서 소련과의 전쟁을 이끌어 많은 전과를 올린 만네르하임 장군. 결국 약소국이었던 핀란드의 패배로 끝나긴 했지만, 만네르하임이 보여준 불굴의 군인정신이야말로 오늘날의 핀란드를 이룬 초석이었을 것이다. 만네르하임 장군 곁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은 에스또니아(Estonia)의 딸린(Tallin)을 향해 발트해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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