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2. 6. 17:26

 

 

 

 

                                                                                                                                조규익

 

제가 꾸려가고 있는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의 학술지 <<한국문학과 예술>> 32집이 2019년 12월 31일자로 발간되었습니다. 이번 호는 작년 11월 8일에 소천하신 소재영 교수님 추모호로 꾸며 보았습니다. 그간 국문학계의 어른으로 존경 받아오신 소 교수님은 주지하다시피 숭실대 국어국문학과를 창설하셨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연구소 고문으로 저희들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뜻하지 않게 소천하신 점을 너무 슬프게 생각하며, 이번 호에 실은 밝은 표정의 선생님을 사진으로나마 곁에 모시고 선생님께 늘 샘솟는 힘과 지혜를 간구하고자 합니다.

 

 

***

 

 

성오 소재영 선생님을 추모하며

 

 

성오 선생님 !

 

저는 2019년 11월 8일의 날벼락 같은 비보를 잊지 못합니다. 인사동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점심을 나눈 6월 6일의 기억이 바로 어제인데, 그토록 참담한 비보를 어떻게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겠습니까?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나서도 지금껏 꿈인 듯 현실인 듯 종잡을 수 없는 것은 그날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말씀과 보여주신 미소가 너무 청청하셨기 때문입니다. 찻집에서 “우리 아버지는 101세에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며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오신 비결이 선생님의 철저한 자기관리였고,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효심어린 약속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를 자처하며’ 오랜 세월 가까이에서 선생님을 모시던 제가 배운 것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학문적 근면성, 둘째는 대인관계에서의 모나지 않은 인품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한 곳에서 공부를 마치지 못한 저는 이곳저곳으로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선생님의 간택을 받아 숭실대학에 자리를 잡았고, 숭실에 오면서 비로소 학문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 시도 쉬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쓰시는 선생님을 뵈며, 겨우 논문 한 편 써놓고는 ‘다 이루었다는 듯’ 드러눕기 일쑤였던 저 스스로를 통렬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자료를 찾아 전국을 누비시는 모습을 뵈며, 저도 ‘자료 찾아 삼천리’의 모토를 갖게 되었고, 지금도 가끔 전국을 누비곤 합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은 참으로 따뜻하고 원만한 인격을 소유하셨습니다. 열심히만 한다면 누구든 맞아들여 제자로 키워주셨고, 만나는 상대가 누구이든 그의 근기(根機)에 맞추어 도움을 주셨습니다. 국내에는 물론 해외에도 선생님의 학문과 덕망을 존경하고 따르는 학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내심 부러워해 온 세월이 길었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을 흉내 내며, 선생님의 덕으로 지탱해온 지난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효빈(東施效顰)’이란 말처럼 제 미련함으로 선생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저 역시 인생의 석양에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성오 선생님 !

이제 논문이나 책을 쓴들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안 계신 이곳에서 다시 누구를 표준으로 스스로를 다잡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선생님의 넓으신 가슴이 없는 이곳에서 과연 저희들의 좁은 가슴을 넓혀가며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을까요?

 

나침반을 잃고 등대도 없는 거친 바다를 표류하는 저희에게 무언의 힘을 주시고 안식의 항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선생님 계실 때 제대로 배우지 못한 저희들의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크게 꾸짖어 주시되, 긍휼히 여기시어 이제라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세상의 고통을 모두 잊으셨을 그곳에서 편안한 청복 누리시길 가련한 후생들은 빌어드립니다.

 

2019. 12. 31.

 

후학 조규익은 크게 울며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kicho
알림2020. 2. 1. 23:44

선생님들께

 

그간 안녕들 하셨는지요?

'우한 폐렴'의 확산 양상이 심상치 않아,

일단 지난 번 보내드린 토요일(2020. 2. 8.)의 '공연 및 학술대회'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번 보내드린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시: 2020년 2월 8일(토) 오후 1시~6시

장소: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전수회관 풍류극장

 

그러나 저희들은 '우한 폐렴'에 무릎 꿇은 게 아닙니다.

놈이 무릎 꿇을 때까지 잠시 쉬어가려는 거지요.

 

부디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무지막지한 시간이 지난 뒤,

막 뒤에서 갈고 닦은 저희들의 솜씨를 다시 들고 나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 2. 1.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소장 조규익 올림

Posted by kicho
알림2020. 1. 29. 17:16

 

<모시는 글>

신선의 음악과 춤, 노래 속에 멋진 ‘시간여행’을...

 

                                                                                    조규익(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소장)

 

언제부턴가 우리에게는 별난 꿈이 있었습니다.

예술인들과 학인들이 가슴 가득 담고 있었으되 펼쳐 보이지 못한, 작지만 울림이 큰 꿈입니다. 악사들의 반주로 가공(歌工)과 무용수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무대. 그 무대 주변에 둘러앉은 학인들이 예인(藝人)들의 몸놀림과 또 다른 하나가 되는 경험을 통해 비로소 이지(理智)의 샘을 열고 도란도란 그들의 미학을 담론하는 자리. 세상 어디에 그보다 더 아름답고 성대한 공간이 있을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두 번의 멋진 무대를 만들었고, 이것들을 두 권의 책으로 엮어 낸 바 있습니다.

 

<지난 무대들>

“봉래의(鳳來儀): 세종의 꿈, 봉황의 춤사위 타고 하늘로 오르다!”[2013. 11. 21./국립국악원 우면당]

“동동(動動):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사랑의 염원이여!”[2018. 12. 1/국가지정문화재 전수회관 풍류극장]

 

<새 무대>

“보허자(步虛子): 허공을 즈려밟고 훨훨 나는 신선이여! 태평성세 유토피아 이루시는 제왕이여!”[2020. 2. 8./국가지정문화재 전수회관 풍류극장]

 

우리는 그동안 가꾸어 온 ‘꿈의 무대’를 이렇게 펼쳐 보여 왔고, 이번에도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앉으실 폭신한 좌석은 여러분을 모시고 그 옛날 고려∙조선시대의 궁중으로 날아갈 타임머신입니다. 좌석에 앉아 음악에 따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임금의 장수를 축원한 보허(步虛)의 예술에 잠시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시면, 여러분은 그 옛날 진사왕(陳思王) 조식(曹植)이 어산(魚山)의 동아(東阿)에서 만난 ‘신선 예술’의 경지를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맑고 심원하며 굳세고 밝은 그 소리와 춤사위를 통해 허공을 날아다니는 신선들을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 그들과의 그런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되돌아온 현실의 공간에서 우리는 다시 씩씩하고 치밀한 논조로 새롭고 아름다운 경험들을 담론하게 될 것입니다.

 

원래 보허성(步虛聲)이나 보허자(步虛子)는 중국에서 발생한 도교음악이었고,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보허사(步虛詞)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유교적 패러다임으로 변용했고, 중세적 보편성의 바탕으로 녹여내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임금이 앉아있는 궁중을 현실 속에 자리 잡은 ‘선계(仙界)’라 여겼습니다. ‘상선(上仙)’인 임금의 불로장생은 당위(當爲)에 속하는 일이었지만, ‘보허 예술’에 담아낸 만백성의 염원으로 그것은 더욱 확실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시는 여러분이 바로 임금님들이십니다. 우리 예술의 헌상 대상이 바로 임금이신 여러분들입니다. 여러 가지로 바쁘시겠지만, 잠시 이곳에 오셔서 저희와 함께 멋진 ‘시간여행자’가 되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2020. 02. 08.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20. 1. 19. 13:02

 

한국문학과예술32집(추모호) 해당부분 발췌.pdf
0.65MB

 

<<한국문학과 예술>> 1집~31집

 

 

벌써 새해의 첫 달도 반이 넘게 지났습니다.

그간 건강들 하셨는지요?

 

바로 어제 <<한국문학과 예술>> 32집이 발간되었다는 보고의 말씀과 함께 논문집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 드렸는데, 받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이번 32집은 조촐하게나마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로서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고문을 맡고 계시던 고 소재영 선생님의 추모호로 만들었습니다. 고 소재영 선생님의 학덕이야 여러분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저희는 아직도 선생님께서 불의에 떠나신 일이 사실 같지 않습니다. 거듭 여러분과 함께 고 소재영 선생님의 명복을 빌어드립니다. 소재영 선생님께서는 1998년 정년을 하신 이후에도 계속 저를 성원해 주시다가 2006년 연구소가 설립되면서 고문의 역할까지 맡아 주셨습니다. 틈틈이 학술발표회에서 논문도 발표해주시고 어려움이 생길 경우 지혜도 주시는 등 늘 제 뒤에서 도와 주셨습니다.

 

비록 사무실 한 칸 없는 우리 연구소이지만, 다른 어느 연구소 못지않은 활동들을 펼쳐 왔습니다. 1년에 네 차례 전국 규모의 학술회의를 열어왔고, 1년에 네 번 학술지[<<한국문학과 예술>>]를 발간해 왔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소규모 발표∙토론회와 강독 모임 등도 가져 왔습니다. 지금까지 발간한 60여권이 넘는 학술총서∙자료총서∙문예총서 등은 우리 연구소가 기여한 업적들 가운데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 할 것입니다. 이번에 32집으로 발간한 학술지는 몇 해 전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등재지’로 지정되었고, 작년에는 우수한 점수로 ‘등재 자격 유지’의 판정을 받은 바도 있습니다. 학술지를 만드는 일, 만든 학술지를 한국연구재단의 등재지로 승격시키는 일 등이 요즘 학회들이나 연구소들의 최대 난제라는 점은 모두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나의 학술지가 등재지로 되기 위해서는 ‘일반학술지’로 출발하여 ‘등재후보’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모두 쉽지 않은 과정들입니다. 학술지를 내는 데 가장 어려운 일은 ‘자격을 갖춘’ 논문들의 조달(調達)입니다. 연구자들의 입장에서 힘들게 쓴 논문을 점수 한 점 받지 못하는 일반학술지에 투고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이젠 등재후보 학술지조차 인정해 주지 않는 학교나 기관들도 많아졌습니다. 등재학술지와 국제학술지에 실린 논문만 인정해주는 것이 새로운 추세로 바뀌면서 등재학술지까지 가는 길은 더욱 험난해진 것입니다. 지인들로부터 서운하다는 불평을 적지 않게 듣는 등 어려움도 많았습니다만, 우리 연구소가 비교적 ‘깐깐하게’ 투고논문들의 질을 관리해 온 덕에 ‘등재 학술지’로서의 권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머지 않아 국제학술지로 도약해야 하는 큰 과제를 안고 있긴 합니다만. 지금까지 걸어 온 노선을 이탈하지 않고 미래 지향적 비전을 놓아버리지만 않는다면, 언젠간 그 과제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문학 분야의 좋은 연구소 하나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 제 꿈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만들기는 쉬워도, 그것을 정상(正常) 궤도에 올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지난 몇 년 사이에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돈과 주변의 관심입니다. 제 느낌으로 ‘대학 부설 연구소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 오늘날 대학 운영자들의 인식인 듯합니다. 연구소가 대학 발전을 견인하는 선진국 대학들의 사례는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점입니다. 우리나라의 앞서가는 몇 대학들도 연구소를 훌륭하게 키워 왔고, 그것들이 대학이나 학문 발전의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후발 대학들은 반드시 유념해야 하리라 봅니다.

 

***

 

이번에도 우리 연구소 학술지에는 기라성 같은 학자들의 좋은 논문들이 실렸습니다. 그 제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특집논문: 고전문예의 본질과 미학

 

1. 김동건, 「감동의 전통적 이해를 위한 서설」

 

2. 강기화, 「『중용』의 치중화 사상을 통해 본 동래학춤 비약태의 생명미」

 

3. 유순영, 「사군자화훼수목병풍을 통해 본 석정 이정직의 회화」

 

4. 이상욱, 「K-pop을 활용한 외국인 유학생 전용 고전문학 전공 수업사례 연구-황진이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을 중심으로」

 

일반논문

 

5. Jin, Yongzhen, 「朝鮮時期登科試券及科文硏究動態考述」

 

6. 김성훈, 「최현 문학 연구의 현황과 전망」

 

7. 김지현, 「최현의 『조천일록』 속 유산기(遊山記) 연구」

 

8. 윤세형, 「17세기 초 최현의 사행기록으로 본 요동 정세」

 

9. 이은선, 「한-베 수교 이후 한국 소설에 나타난 베트남 심상지리와 전쟁-관광 연구」

 

10. 주춘홍, 「한국 전쟁기에 중국어로 번역된 이기영의 작품 연구」

 

11. 엄경희, 「백석ㆍ이용악 시에 나타난 노스탤지어의 양상과 ‘고향’의 헤테로토피아」

 

서평

 

1. 박은미, 「백석(白石)으로 읽는 백석(白石)」

 

2. 김지현, 「사치로 바라본 명말 사대부의 문화사」

 

자료해제

 

1. 정영문, 「하회지역 여성들의 놀이현장을 기록한 <화류가>」

 

 

 

앞으로도 우리 연구소와 학술지에 많은 조언과 격려 보내 주시고, 좋은 논문들 많이 투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20. 1. 18.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소장 조규익 드림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20. 1. 1. 12:09

 

 

Daum 이미지에서

                                                                                                                                                                                                                              백규

 

 

기해년이 뒷산으로 넘어가고 경자년이 앞산에서 넘어왔다. 돼지해가 가고 쥐해가 된 것이다. 돼지도 풍요와 다산(多産)의 동물이지만, 쥐는 거기에 ‘근면성’까지 더하는 동물이다.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쥐에 관련되는 경험과 일화들을 적지 않게 갖고 있다. 우리는 1년 내내 쥐와의 신경전을 벌였다. 추수가 끝나는 늦가을부터 곡식을 두고 그들과 전쟁을 벌였고, 이른 봄에는 소중한 씨앗들을 지키기 위해 더욱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종자를 심고 나서도 쥐와 새는 우리의 변함없는 주적(主敵)이었다. 그토록 미운 존재가 쥐였지만, 관점을 약간 바꾸면 그들은 우리가 배워야 할 ‘선생’이었다. 바로 근면성과 민첩성 때문이었다. 그들은 항상 가족단위로 움직이며 부지런히 먹이를 훔쳐내는 ‘기술 좋은 꾼들’이었다. 다산의 동물이니, 많은 자식들을 먹이려면 몸이 부서져라 ‘도둑질’에 나설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부성애와 모성애가 출중하고 삶에 대한 집착과 적응력이 누구보다 강한 그들이다. 쉴 새 없이 갉아대고 물어뜯으며 먹을 것을 찾는 그들을 보라. 쥐의 군단이 달려들어 갉아대면 철옹성이라도 단번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만큼 강한 어금니와 전투력을 갖고 있는 그들이다.

 

지금 나는 쥐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쥐의 ‘다산성과 근면성’에 기대어 올 한 해 나 스스로를 고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내 처지이기 때문이다. 올해 나는 재직 중인 대학으로부터 생애 마지막 연구년을 얻었다. 대부분의 대학 교수들은 별 문제만 없으면 6년에 1년씩은 연구년을 받을 수 있지만, ‘말년 병장’인 나로서는 참으로 긴요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대를 앞두고 이것저것 할 일도 많다. 옛날 같았으면, ‘당근!’ 이 귀한 연구년을 해외로 나가 연구활동에 몰두할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제대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놓칠 수 없는’ 기회. 내 삶터를 잠시도 떠날 수 없다. 문득 지난 세 번의 연구년을 생각해본다. 첫 연구년엔 LG연암재단으로부터 ‘해외연구교수’ 프로젝트의 '따뜻한' 연구비를 받아 미국 UCLA에서 스스로 개안(開眼)하며 '비교문학'의 진수를 익힐 수 있었고, 두 번째 연구년엔 동서유럽 20여 개 나라들을 돌며 ‘유럽문명의 보편성’을 답사∙체험했으며, 세 번째 연구년엔 풀브라이트(Fulbright) 재단의 지원으로 미국 OSU에서 자아를 확장∙심화시키며 '미국내 소수민족의 문학'을 연구할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연구년. 겸허하고 조신한 자세로 치밀하게 지난날들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멋진 농막’을 완성하는 일이다. 그간 잡초 무성하게 방치해 두었던 에코팜에 작지만 의미 있는 내 ‘마지막 집’을, 정말로 튼튼하고 순조롭게 완성해야 한다. 2월 20일 착공하여 6월 10일 완공할 수 있으려면, 계획과 다짐에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리라. 두 번째는 그동안 진행해오던 ‘한중일 악장문학 비교연구’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일이다. ‘문학사 집필’을 현역 마지막 과업으로 삼아 진행해오다가, 5~6년 전 문학사 집필을 뒤로 미루고 앞당긴 과업이 바로 이것. 제대와 더불어 깨끗이 정리하려던 내 연구실을 에코팜으로 고스란히 옮기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 내 시대의 마지막 문학사를 풀 향기와 흙 내음 섞어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가 남다르지 않겠는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향리로 돌아간 도연명과는 처지가 다르겠지만, 주경야독(晝耕夜讀)의 패기나 철학이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고, 그 준비를 제법 ‘옹골차게’^^ 해보려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이다.

 

아, 사람에게 주어진 물리적 시간이야 부귀빈천(富貴貧賤)을 가리지 않고 동일할 것이나, 그것들을 ‘내 것’으로 재창조하는 일만큼은 천만 가지로 다를 것이다. 공자는 삼계(三計)를 설명하며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으며, 일생의 계획은 근면함에 있다’[一日之計在晨 一年之計在春 一生之計在勤]고 했으며, 송나라 학자 주신중(朱辛中)은 인생오계(人生五計)로 ‘생계(生界)∙신계(身計)∙가계(家計)∙노계(老計)∙후계(後計)’를 들었다.[<<독서기수략(讀書記數略)>> 권 24] 지금의 나는 이 가운데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공자의 이른바 ‘근면’을 좇아야 하고, 주신중의 이른바 ‘후계’를 좇아야 하리라. 공자 말씀대로 근면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삶을 마쳐야 후손들에게 남기는 것이 있고, 죽을 때까지 건강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주신중 선생의 말씀대로 ‘후계(後計)’[“60 이상 된 사람이면 안으로 마음을 살펴 추호라도 부끄럼이 없게 해야 한다”]에 따라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이다.

 

아, 이제 막 새로운 도전의 경자년이 시작되었다!

‘공자의 말씀대로 근면하게, 주신중 선생의 말씀대로 후계(後計)를 철저하게’ 준비할 일이다.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19. 12. 31. 23:32

     

 

                                                                                                                            

                                                                                                                                                                                                                                                                           백규

 

2019년 마지막 일요일. 극장을 찾았다. 영화예술인들의 상상력을 통해 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내 우려의 무게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근자 영화 ‘백두산’[감독 이해준]의 계속되는 인기는 어쩌면 나처럼 한국인들 모두가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집단적 불안의 표출 양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세 번 백두산을 찾았다. 모두 중국을 통해서였다. 두 번은 연변대학에서의 학술회의에 참여했을 때, 한 번은 학교의 공식적인 답사일정으로 연변과기대학을 방문했을 때였다. 갈 때마다 날씨가 좋아 백두산의 산세와 천지의 물빛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나를 소름끼치게 한 것은 백두산 어귀에서 만난 뜨거운 물과 흙 속의 ‘이글거리는 불’이었다. 흡사 장작불에 얇은 흙으로 만든 겉옷을 입혀 놓아 당장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듯, 그 불은 살아 있었다. 내 인문학적 상상력의 측면에서는 그 불덩이가 이글거리는 눈초리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리라. 기분 나쁘게 굴면 표토(表土)를 부수고 뛰쳐나가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이었다. 백두산을 대충 훑어보고 돌아서는데, 오금이 마구 저려왔다. 그 사정권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불안감이 내면을 어지럽혔다. 첫 번째 방문에서 갖게 된 불안감은 두 번, 세 번을 거치면서 증폭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자 언론매체들은 ‘백두산 화산 활동 가능성’의 문제들을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전공학자들의 연구가 소개되고, 그들이 직접 매체에 나와 설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세계 각처에서 화산 활동 재개의 소식이 보도될 때마다 백두산 화산 관련 내용이 언급되곤 하였다. 백두산이 불을 내뿜으면 중국의 동북삼성 지역과 핵을 갖고 미쳐 날뛰는 북한은 망할 것이고, 남한도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내용이었다.

 

포스터에 암시된 바와 같이 결국 ‘백두산’의 중심서사는 핵무기를 매개로 ‘남한-북한-미국’이 삼각 축으로 연결된 그것이었다. 여기에 문제의 해결사로 사지(死地)에 파견되는 남쪽의 조인창[하정우 분]과 수용소에 갇혀있던 북측의 이중첩자 리준평[이병헌 분]이 벌이는 극단적 갈등과 화해, 7번 갱도에 핵을 터뜨려 마그마를 분출시킴으로써 마지막 대폭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사건의 단초를 마련한 강봉래[마동석 분]의 열연 등이 그 서사의 줄기를 이루고 있었으며, 조인창과 그의 임신한 부인 사이에 일어나는 이별과 만남, 헤어지고 나서 어렵사리 만난 어린 딸을 조인창에게 부탁한 뒤 장렬하게 폭사하는 리준평 등 휴먼 드라마의 양념들이 겉절이에 고춧가루 뿌려 버무려진 상태인 듯 풋풋한 풍미를 발하고 있었다.

 

영화를 잘 아는 동료교수 한 사람은 ‘몇몇 배우들의 명품 연기를 빼면 영화의 서사 자체가 졸렬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라고 혹평을 했지만, 나로서는 그렇게만 볼 수 없었다. 백두산이 폭발함으로써 북한이 초토화되었다는 점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백두산으로 상징되는 북한 수뇌부의 존립근거[이른바 ‘백두혈통’]가 저절로 파괴되는 역사의 순리를 이 영화는 암시하고 있으며, ‘남한에 대한 최후의 공격수단이자 방어수단으로 생각해오던 핵폭탄을 남한의 군인이 탈취하고 북한의 군인이 비장하게 죽어가며 폭파시킴으로써 한반도를 구한다’는 설정이야말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영화적 상상력의 압권 아닌가. 비록 군데군데 어설픈 점들이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백두산의 폭발 가능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잘 대변했다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백두산 폭발과 함께 꺾이어 나뒹구는 김씨 부자의 동상이 암시하는 통일한국의 비전을 슬쩍 보여줌으로써 한국인 모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물한 점도 간과할 수 없으리라.

 

영화가 단순한 ‘오락예술’일 수 없음은 그것이  인간 행위의 현실적 표본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영화 ‘백두산’을 곰곰 되씹어 보며 작품 속에 숨겨 놓은 다양한 코드들을 세심하게 찾아내야 할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든 감독과 배우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