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2. 6. 17:26

 

 

 

 

                                                                                                                                조규익

 

제가 꾸려가고 있는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의 학술지 <<한국문학과 예술>> 32집이 2019년 12월 31일자로 발간되었습니다. 이번 호는 작년 11월 8일에 소천하신 소재영 교수님 추모호로 꾸며 보았습니다. 그간 국문학계의 어른으로 존경 받아오신 소 교수님은 주지하다시피 숭실대 국어국문학과를 창설하셨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연구소 고문으로 저희들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뜻하지 않게 소천하신 점을 너무 슬프게 생각하며, 이번 호에 실은 밝은 표정의 선생님을 사진으로나마 곁에 모시고 선생님께 늘 샘솟는 힘과 지혜를 간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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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오 소재영 선생님을 추모하며

 

 

성오 선생님 !

 

저는 2019년 11월 8일의 날벼락 같은 비보를 잊지 못합니다. 인사동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점심을 나눈 6월 6일의 기억이 바로 어제인데, 그토록 참담한 비보를 어떻게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겠습니까?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나서도 지금껏 꿈인 듯 현실인 듯 종잡을 수 없는 것은 그날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말씀과 보여주신 미소가 너무 청청하셨기 때문입니다. 찻집에서 “우리 아버지는 101세에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며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오신 비결이 선생님의 철저한 자기관리였고,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효심어린 약속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를 자처하며’ 오랜 세월 가까이에서 선생님을 모시던 제가 배운 것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학문적 근면성, 둘째는 대인관계에서의 모나지 않은 인품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한 곳에서 공부를 마치지 못한 저는 이곳저곳으로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선생님의 간택을 받아 숭실대학에 자리를 잡았고, 숭실에 오면서 비로소 학문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 시도 쉬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쓰시는 선생님을 뵈며, 겨우 논문 한 편 써놓고는 ‘다 이루었다는 듯’ 드러눕기 일쑤였던 저 스스로를 통렬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자료를 찾아 전국을 누비시는 모습을 뵈며, 저도 ‘자료 찾아 삼천리’의 모토를 갖게 되었고, 지금도 가끔 전국을 누비곤 합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은 참으로 따뜻하고 원만한 인격을 소유하셨습니다. 열심히만 한다면 누구든 맞아들여 제자로 키워주셨고, 만나는 상대가 누구이든 그의 근기(根機)에 맞추어 도움을 주셨습니다. 국내에는 물론 해외에도 선생님의 학문과 덕망을 존경하고 따르는 학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내심 부러워해 온 세월이 길었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을 흉내 내며, 선생님의 덕으로 지탱해온 지난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효빈(東施效顰)’이란 말처럼 제 미련함으로 선생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저 역시 인생의 석양에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성오 선생님 !

이제 논문이나 책을 쓴들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안 계신 이곳에서 다시 누구를 표준으로 스스로를 다잡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선생님의 넓으신 가슴이 없는 이곳에서 과연 저희들의 좁은 가슴을 넓혀가며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을까요?

 

나침반을 잃고 등대도 없는 거친 바다를 표류하는 저희에게 무언의 힘을 주시고 안식의 항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선생님 계실 때 제대로 배우지 못한 저희들의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크게 꾸짖어 주시되, 긍휼히 여기시어 이제라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세상의 고통을 모두 잊으셨을 그곳에서 편안한 청복 누리시길 가련한 후생들은 빌어드립니다.

 

2019. 12. 31.

 

후학 조규익은 크게 울며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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