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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20 어느 인문학 교수의 근황
  2. 2011.01.04 '코 푸는 미녀 스타'
  3. 2011.01.03 2011년=민족자존심 회복의 원년
  4. 2011.01.01
  5. 2010.12.29 스마트폰 2
  6. 2010.12.12 말레이 곰 ‘꼬마’의 유쾌한(?) 탈주극
글 - 칼럼/단상2011. 1. 20. 20:30

‘인문학의 쇠락’이라는 절망적 징후의 고문 속에 지난해를 보냈다. 논문을 쓰고 학회에 참여하고 강의실을 들락거리는 등 습관화된 생활인의 자세를 견지하며 '늘 삶은 이런 거야!’라는 자조적(自嘲的) 자기암시에 길들여지고 있는 나날이다. 해가 바뀌면서 뭔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날이 갈수록 바뀌는 해가 결코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절망적 명제로 개칠되어가고 있음을 절감하는 요즈음이다. 학장직에 도전하면서 감히 ‘인문학의 부흥’을 선언했지만, 학장이 되고나서 어느 순간 스스로 인문학의 말살에 참여하고 있는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변의 교수들에게 그 대열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는 나를 발견하곤 더 깊은 절망과 회의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젊은 시절 나를 학문으로 이끌어주신 선생님은 '오래도록 썩지 않을 책'으로 승부할 것을 힘 주어 말씀하셨다. 그러나 지금 연구실에서 밤늦도록 ‘썩지 않을 책’ 아닌 ‘곧 썩어 문드러질’ 학진 등재 학술지 논문들의 작성에 정력을 불사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논문을 심사할 가능성이 많은 동학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내 주장에 서 있는 날을 갈아대는 ‘약삭빠름’을 배운다. 그들의 ‘그다지 빛나지 않는’ 논문들을 참고문헌에 집어넣는 교활함도 익혀본다. 학회지의 정해진 규격에 맞추기 위해 ‘맛있는’ 부분들을 죄다 잘라내고 건조한 뼈다귀들만 남겨둔다. 혹시나 탈 잡힐까봐 ‘논리’라는 미명 하에 전혀 맛없는 문장으로 다듬어낸다. 그걸 학문이랍시고 매달려 사는 나는 누구인가.

***

 대학본부에서 학과평가를 하겠다는데, 학문의 독자성이나 절대적 가치성은 평가 기준에 들어있을 리 없다. 평가기준들의 바탕은 도구적 실용성, 적나라하게 말하면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경제성’이다. 그 뿐인가. 중점연구소란 제도를 만들어 예산과 공간을 지원해주는 제도에서는 ‘배금주의’의 극치를 발견하게 된다. 연구소가 아무리 훌륭한 논문집과 학술연구서들을 내도, 아무리 중요한 학술발표를 해도 평가점수에 큰 의미가 없다. 오로지 외부로부터 얼마나 많은 돈을 수주해 왔느냐가 평가의 결정적 기준일 뿐이다. 논문집이나 학술총서 한 권 내지 않아도, 학술발표회 한 번 하지 않아도, ‘큰 거’ 한 건만 수주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 분야의 연구소가 ‘돈 잘 버는’ 분야의 연구소들을 이길 수 없다. 단언컨대, 이런 대학에서라면 조만간 학문은 죽어버릴 것이다. 물론 이런 사례가 이 대학만의 일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들이 이런 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다시 한 번 단언컨대, 이 나라의 대학들이 허우대는 얼마간 살아 남을지 모르나, 정신 격인 학문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학과들은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고, 그런 학과에는 투자도 많을 것이니 교수들의 연구비 수주액 또한 높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평가 척도를 아무리 바꾼다 해도 인문학 분야의 학과들은 적빈(赤貧)을 면할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학문적 수월성(秀越性)의 구현을 위해, 존경받는 아카데미즘의 표상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줄어드는 입학생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원시적인’ 생존경쟁 그 자체에 몰두하는 현실이다. 지방대학들은 이미 사투를 벌이고 있으며, 수도권이나 서울의 대학들도 조만간 그런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애를 더 낳을 가능성은 아예 없으니 상황은 갈수록 나빠질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중국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지만, 중국도 언제까지나 사람 수가 넘쳐나지 않을 것임은 현지의 교수들을 만나보면 알 수 있다. 더구나 그들의 생활수준이 나아지면서 일본이나 미국으로 방향을 돌릴 경우 우리나라 대학들이 누리는 ‘중국학생 특수’도 길어봐야 10년이 고작이다. 이제 목 좋고 산수 좋은 명당에 위치한 대학들의 건물은 양로원이나 위락시설로 용도 변경해야 할 날이 도래할 것이다. 그 때쯤 인문학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

기업의 CEO들을 모아다가 인문학 강좌를 열거나, 심지어 노숙자들까지 불러 모아 인문학을 가르치기도 한다. 인문학의 생활화나 저변확대란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열악한 인문학의 상황이 도사리고 있다. 죽음을 앞둔 인간만이 가장 순수해지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거리의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문학의 임종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셈이다. 사실 잘 나가던 시절의 인문학도들은 밀려드는 대학생들을 감당하기에도 일손이 모자랐다. 그러나 학생들도 외면하고 대학의 재단이나 본부조차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하는 지금, 인문학의 남아나는 일손들을 제대로 관리할 방도가 없다. 대학 외의 수요 창출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는 일이다. 옛날에는 글을 읽어 벼슬을 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나 벼슬자리는 한계가 있고 수요자는 많으니,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당쟁도 바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출발했다. 지금도 젊고 실력 있는 인문학도들이 대학에 입성하지 못한 채 거리를 방황하며 울분을 삼키고 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이들의 생활을 우리 모두가 책임 질 일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청춘을 바쳐 ‘돈 안 되는’ 학문의 길을 선택한 지식인들이 최소한의 기본생활조차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적 현실이 어째서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니란 말인가. 어떻게 수수방관만 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방책은 없는 것일까.

***

오늘도 날이 저문다. 연구실 책상에 앉아 머리를 굴려 보아도 이데아는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거리로 나설 수도 없다. 이 방 어디엔가 내가 찾아 헤매는 이데아는 숨어 있겠지만, 우둔한 인문학 교수의 머리통으로는 자취조차 찾아낼 수 없다. 따스한 방 안의 공기가 행복감보다는 절망감으로 느껴지는 것은 조만간 떠오르는 햇살 아래 참새 같은 새내기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작은 희망의 끈이라도 건네기 위해 이 겨울 인문학 교수는 무슨 지혜를 어떻게 찾아내야 할지 고민이다. 내 손이 비었다는 걸 안다면 그들 역시 풀솜에 물 젖듯 재빨리 절망의 포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인문학 교수에겐 암흑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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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1. 1. 4. 19:15
‘코 푸는 미녀스타’

                                                                                                         조규익

몇 년 전, 유럽을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받은 문화적 충격 하나가 있다. 호텔, 모텔, 펜션, 민박 등 잠자리는 다양했지만, 정해진 시각에 다양한 사람들과 아침식사를 함께 한 점은 어디서나 같았다. 식당에 빵과 햄, 치즈, 우유, 요거트, 잼, 커피 등등, 다양한 메뉴들이 차려져 있고,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음식들을 담아다가 식탁에 앉아 먹은 다음 말 없이들 떠나곤 했다.

유럽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 특히 중국이나 한국인들과 달리 식탁에서 말이 없거나 톤을 낮추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그들의 ‘코 푸는 습관’이었다. 대부분 앉자마자 아니 식사 중에도 이곳저곳에서 예사로 ‘팽! 팽!’하면서 코들을 풀어 제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만 서로 어안이 벙벙하여 앉아 있을 뿐, 그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려서부터 밥상 앞에서 말을 많이 하여 꾸지람을 들어온 우리였다. 밥그릇을 앞에 두고, 더구나 많은 손님들이 주변에 앉아 있는 자리에서 소리 높여 코를 푸는 일이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말로 나직하게 ‘야만인들이로군!’하면서 킥킥댄 것도 당연했다. 우리는 그들이 밥상 앞에서 코를 푸는 행위에 대해 관대한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코에 무언가 들어 있으면 숨을 쉴 수 없고, 숨을 쉬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 밥을 먹는 일보다 코를 푸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고 다급한 일이다!’ 라고 그들은 오랜 세월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며 그들의 무례한(?) 행위를 용인하기로 했다.

       ***

오늘 아침 인터넷 속의 오솔길을 어슬렁거리다가 영화배우 송승헌이 “바로 옆에서 ‘팽’하고 크게 코 푸는 김태희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는 기사를 보고는 픽 웃음이 나왔다. 송승헌이 아마도 유럽여행 중에 식탁에서 거침없이 코를 풀어 제끼는 선남선녀들을 보았다면 졸도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쩌면 배우 김태희는 해외여행을 하다가 식탁에서 코를 푸는 외국인들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일들이 국제 예의의 표준 상 크게 어긋나는 일은 아니라는 착각을 했으리라. 그러나 유럽은 유럽,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다. 송승헌 같은 멋진 신사가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공개된 장소에서 코를 ‘팽!’ 푸는 일을 생소하게 받아들일 만큼 우리는 아직 꽉 막혀버린 동방예의지국에 살고 있는 걸까?
                                                                   <숭실대 교수>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1. 1. 3. 08:10

2011년=민족자존심 회복의 원년


                                                                                                    조규익
                                                                        
 지난해의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포격만큼 최근 들어 우리의 현실을 각성시켜 준 사건들도 없었다. 북한에 의해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그간의 도발들이 지난 정권들의 '햇볕정책'과 맞물려 '안보 현실의 추상화'에 기여했다면, 이번 사건들은 우리에게 '안보 현실의 문제적 실상'을 구체적으로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 정권들의 '햇볕정책'이 얼마나 공허한 '짝사랑'에 불과했는가를 만천하에 드러낸 동시에 반사적으로 우리의 체제나 대비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 준 것이 바로 이 사건들이다.


 그런데 두 사건의 바탕에는 간단치 않은 국제 정치적 맥락이 깔려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난 뒤 한국과 미국은 서해에서 대규모 연합훈련을 했고, 이어 우리 군은 포격사건으로 중단되었던 정례적 사격훈련을 재개했다. 이 훈련을 트집 잡아 북한은 보복타격의 협박을 공언했고, 연평도 포격사건의 책임소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던 중국과 소련이 들고 나서서 사격훈련을 저지하려 했다. 심지어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소집을 요구하여 '한 국가가 자기 영토 안에서 실시하는 정례적 훈련'까지 포기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서방세계를 중심으로 하는 대다수 이사국들의 반대로 무산되긴 했으나, 일방적으로 북한 편을 들고 있는 러시아나 중국의 태도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적 역학의 미래에 대하여 매우 시사적이다.


 또 한 가지 공교로운 일은 한국과 미국의 공조로 연평도 포격사건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응급대비를 하는 와중에, 미뤄두었던 '한미 FTA'의 원안이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수정·타결된 점이다. 의도 여부를 불문하고 미국의 군사적 지원이 '한미 FTA'를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타결되도록 한 지렛대로 작용했음은 뻔한 일이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자국의 이익을 생각하면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바람직하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남한에 의한 통일국가가 출범하는 것은 두 나라 모두에게 껄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내버려두면 무너지게 되어 있는 북한을 어떻게든 떠받쳐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이들 나라의 최고 전략이다. 더욱이 조만간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만나 대화의 재개에 합의할 것으로 관측되고, 그간의 강성 기조를 바꾸어 6자회담의 수용을 암시한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언급을 미루어 본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주판알 튀기기가 이미 본격 가동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그것대로 그들에게는 기회이고, 단순한 분쟁으로 끝난다 해도 한국에 고통을 주면서 통일한국의 출범을 막을 수 있으니 그건 그것대로 이익이다. 이런 와중에 국제적인 바보 역할을 하는 것이 남북한의 권력집단이고, 희생되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민초들이다. 자국 내 이권을 담보로 식량이나 물자를 구걸하러 뻔질나게 중국을 찾는 김정일 집단에게 민족의 자존심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그에 대응하여 자신들의 이익 확보에 바쁜 미국이나 일본의 힘을 빌려야 하는 남한 또한 떳떳치 못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그간의 안이했던 자세를 고쳐 안보 분야의 '주적 개념'을 손 보고, 북한 주민들을 회유하는 방향으로 통일정책을 수정한다 해도,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구조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통일은 어렵다. 북한이 불시에 붕괴하도록 방치하지도 않을 것이며, 우리의 흡수통일 또한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의 입장에서야 분단구조의 고착화를 원할 텐데, 그 구조가 지속되는 한 안보 불안은 상존할 것이다. 이런 쉽지 않은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남북한 모두 의식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김정일 사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탈북자들을 관리하는 현행 체제를 좀 더 효율적으로 정비하여 통일 이후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불안감을 없애주어야 한다. 주변 열강들의 이해에 휘둘리는 것이 남북한의 현재 모습이다. 남북통일의 대전제는 민족의 자존심이다. 2011년을 남북한이 함께 민족자존심 회복의 원년으로 삼을 수 있도록 힘을 합해야 하는 것은 남북한이 열강들의 먹잇감으로 지속되어 온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숭실대 교수/인문대 학장>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1. 1. 1. 14:33


술 

                                                                                                                                                           조규익

어딜 가나 술이 있고, 술 때문에 문제도 생긴다. 성 추행범 등 파렴치범들을 붙잡아도 대개는 술 핑계를 대곤 한다. 난동을 부리고 나서도, 사람을 폭행하고도 술 핑계만 대면 된다고들 생각하는 현실이다. 그러니 애꿎은 술만 억울하게 생겼다.

***

가뭄에 콩 나듯, 술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다. 술이 들어가면 사람들 사이의 벽이 허물어져서 좋고, 오랜만에 ‘큰소리, 흰소리’를 겁 없이 내뱉을 수 있어서 좋다. 심한 주사(酒邪)만 아니라면, 술 몇 잔에 ‘곱게 취할’ 정도의 주량이라면, 술이란 인생의 윤활유가 아닐까. 세상의 아내들은 남편들이 술자리에서 실수할까봐 속을 태운다. 술 마시고 들어온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여자를 쳐다만 봐도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게 요즈음의 세태가 아닌가. 그러니 세상의 조신한 아내들이 늦은 시각에 남편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조바심을 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세상의 아내들이여! 몇몇 ‘주태백’을 뺀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저 취한 척할 뿐이란 사실을 알아주오. 그들은 값싼 술 몇 잔의 힘을 빌어 대낮에 뱉어내지 못한 ‘흰 소리, 큰소리’를 치며, ‘낙양성 십리허에~’로 시작되는 <성주풀이>나 목청껏 부르며 마음속의 찌꺼기들을 배설하고 있는 거라오. 그들의 흰 소리를 무슨 실정법으로 다스릴 수가 있겠소? 아니, 다스릴 필요가 있겠소?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 술 마시고 흰 소리 한 마디 내뱉지 못한다면, ××두 쪽을 싹뚝 잘라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

중국의 주호(酒豪) 유령(劉伶)은 천하의 명문 「주덕송(酒德頌)」을 남겼는데, 그 중의 한 부분을 운문으로 바꾸어 놓으면 다음과 같다.

 

여기 대인 선생이 있다네.

태초 이래의 시간을 하루로 보고,

만세의 긴 세월을 잠시라 생각한다네.

해와 달을 빛을 비추는 창문쯤으로 생각하고,

넓디넓은 천지를 집안의 뜨락이나

동네의 네거리쯤으로 생각한다네.

마음대로 활보하고, 좁은 곳을 싫어하니

그에게 집이 있을 수 없다네.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자리 삼아

마음 가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네.

멈추면 작은 잔, 큰 잔 가리지 않고 술잔을 기울이네.

어디를 가도 술통과 술독을 끌어당겨 술 마시기를 힘쓰니,

그 나머지 일이야 어찌 알겠는가?

귀한 인사들과 귀족의 자제분들, 높은 벼슬아치와 처사들

서로 흥분하여 칼날을 세우듯 대인 선생을 나무라나

선생은 술단지와 술통의 술을 마시고

술에 젖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두 다리를 뻗고 누울 뿐,

누룩을 베개 삼고 술 찌게미를 자리삼아 누울 뿐이라네.

온갖 생각과 근심이 사라지고, 즐거움만이 도도하다네.

홀로 우뚝 취하고 황홀한 기분으로 술에서 깨어난다네.

고요히 귀를 기울여도 하늘을 찢는 우레 소리 들리지 않고,

아무리 눈을 떠도 태산의 형체 보이지도 않는다네.

살갗을 파고드는 한서(寒暑)의 고통도 없고

무엇을 즐기고픈 욕망도 사라진다네.

만물이 뒤섞여 있는 속세를 굽어보며

모든 것을 양자강에 떠 있는 부평(浮萍)처럼 생각하고

선생을 성토하는 무리들을 나나니벌이나 푸른 배추벌레쯤으로나 여긴다네.

 

얼마나 멋진 배포이냐? 술 마시며 패거리 짓고 죄 없는 이웃을 안주 삼아 씹어대는 요즘 세상의 좀팽이들과는 비교도 하지 말라!

우리에게도 주호(酒豪)는 있었다.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의 음주행각은 철학 차원의 정신적 바탕을 갖추고 있었으며, 김동명(金東鳴)의 <술노래>는 만세토록 이어갈 만한 절창이다.

 

샛말간 유리컵에

흥건히 고인 호박 빛 액체,

나는 무적함대의 사령장관인양 자못 호기로이

나의 적은 해양을 응시한다.

 

동구란 해안선에

넘치는 흰 거품,

아하, 인류 百億 해의

역사가 서렸구나.

 

안개인양 자욱이 피어오르는 향기 속에

시간은 갈매기 같이 날으고,

나의 좌석은

갑판보다도 더욱 흔들거린다.

 

어허, 이것 봐라, 하늘이 도는구나

물매아미 같이 뱅글뱅글 하늘이 도단 말이,

저 놀랍고도 새로운 천문학적 진실 위에

세대의 윤리는 성좌 같이 찬연하다.

 

여보게, 나는 이제

이 호박및 액체가 주는 마술을 빌어

나의 새끼손톱으로

요놈의 지구덩이를 튀겨버리려네.

 

유령이 말한 ‘대인선생’보다 훨씬 호탕하고 그럴싸한 주호(酒豪)를 김동명은 그려냈다. ‘호박 빛 액체’라면 대충 막걸리와 유사한 술이었을 텐데, 대체 몇 말을 마셔야 하늘이 돌고 지구덩이가 손톱만큼 작아진단 말인가.

***

가끔씩 막걸리 그득한 대접을 뚫어져라 응시해보기는 하지만, 새가슴처럼 작은 나의 배포로는 큰소리도 흰 소리도 못 치고, 기껏 기어들어가는 목청으로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에~’를 웅얼거리며 인생의 허무함이나 달래볼 따름이니, 세상의 아내들이여! 혹시 남편들이 술자리에서 실수나 하지 않을까, 부디 전전긍긍하지 마옵소서!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0. 12. 29. 21:01

스마트폰

 

체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툭하면 시골 들판을 떠올려 비유하는 나 같은 촌놈들을 보면 분명하다.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쟁기와 써레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괭이와 삽이 전부였을 것이다. 논뙈기 밭뙈기에 들러붙어 괭이와 삽으로 파고 두드려 논밭을 손질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쏟은 인간의 피땀은 엄청났을 것이다. 쟁기와 써레가 등장하고 소를 동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허리를 폈을 것이고. 그러다가 경운기가 등장했고, 트랙터도 굴러다니게 되었다. 나는 시골에서 써레질을 하면서 경운기와 트랙터의 위력을 흠모한 적이 있다. 불행히도 나의 노부(老父)는 경운기와 트랙터의 시대를 맞이하고도 쟁기질과 써레질을 고수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젊은이들과 함께 ‘우당탕’ 경운기를 몰고 다닐 자신이 없으셨을 것이다. 아니, 물렁한 진흙 속에서 소와 교감하면서 느릿느릿 삶을 영위해온 우리네 부모들은 경운기의 재빠름을 수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게 못내 아쉬웠다.

 

그 때문인가? 중늙이가 된 지금도 나는 도구에 관심이 많다. 80년대 중반, 밤중 몰래 학원에 다니며 타자기를 배웠으면서도 꼬박꼬박 만년필로 원고지 수백 매 분량의 박사학위논문을 쓰게 되었다. 그 때까지도 기계에 익숙지 않아서였을까. 그러나 우리 또래에게 흔한 ‘독수리 타법’을 웃어줄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타자기 덕분이었다. 그러다가 ‘문서작성기’가 나오자 냉큼 갈아탔고, 컴퓨터가 나오자 겁 없이 달려들었으며, 오늘까지 업그레드 되는 족족 그것들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제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컴퓨터에 사로잡혀 되는 말 안 되는 말 가리지 않고 내뱉으며 사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로 여긴다. ‘286→386→펜티엄’으로 숨가쁘게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누구보다 빨리 갈아탔기 때문이다. 단어를 쉽게 외우는 기계, 환상적인 디지털 사진기, 사진 보관용 외장하드, 휴대용 복사기, 종이 안 걸리는 프린터, 등등. 이름을 대기에도 숨찬 많은 기계들을 그때그때 남들보다 일찍 어답팅해온 것이 바로 나였다. 그러나 벅찬 기대감을 갖고 사용해보면 ‘별 것’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좀 느긋하게 ‘지둘렸으면’ 성능도 개선되고 가격도 내려갔으련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남들보다 앞서서 그런 기기들을 널름널름 사 제꼈는지 참으로 한심한 내 청춘시절이었다. 그러니 내 곁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눈총을 받은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휴대 전화기에 대해서만큼은 처음부터 인내심을 발휘하려 했다. 사실 휴대전화가 나올 때부터 내심 꼴불견들이란 생각을 했다. 집과 연구실에 놓인 전화기만으로도 충분 이상인데, 막중한 국가대사를 수행하는 것도 아닌 친구들이 무엇 때문에 손바닥만한 기계를 들고 걸어다니며 급하지도 않은 말들을 지껄이는지 도통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학교 학생들까지 휴대폰을 쓰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스마트폰으로 갈아타게 되었다. 아들놈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었다. 들어보니 환상적이었다. ‘고놈’ 하나만 들고 있으면 ‘만사OK'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살짝 들었다. 트위터란 것을 잘만 활용하면 내가 상대하는 학생들은 물론 소설가 이외수처럼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수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번거롭게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은행과 거래를 할 수 있고, 이메일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단어공부도, 영화감상도, 독서도 할 수 있고, 신문을 읽을 수도 방송을 듣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일일이 기억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기능들이 나를 유혹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내가 스마트폰을 갖고 나자 갖가지 문제점들을 알려주었다. 은행거래나 이메일의 기능은 해킹의 위험이 있으니 쓰지 말라 하고, 민감한 정보는 절대로 올리지 말라고 겁을 주는 것이었다. 트위터를 열었으나 내 강의에 들어오던 한 녀석만이 내게 팔로윙을 해주었을 뿐이다. 내 전화기의 트위터를 클릭하면 이외수의 글만 몇 페이지에 걸쳐 빽빽하게 올라와 있을 뿐이니, 그간 내가 올린 ‘주옥같은 글들’은 과연 누가 읽고 있단 말인가.ㅠㅠ

 

***

 

길을 걸어가는데 평소에는 연락도 하지 않던 누군가가 전화를 해왔다. 왜 전화를 했느냐고 물으니, 그는 되레 나보고 ‘왜 자기에게 전화를 걸었느냐?’고 묻는다. 아뿔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전화기를 끄지 않은 채 호주머니에 넣었더니, 무심결에 내 손에 닿은 전화기가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불러낸 모양이었다. 아, 이 스마트폰의 무지막지한 민감함이여!

문자를 찍으려 해도 둔감한 손끝이 자꾸만 오타를 낸다. A의 번호를 눌러야 하는데, 실수로 B의 번호를 눌러 황급히 끊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둔중한 내 생체리듬과 스마트폰의 민감함이 빚어내는 불화는 가뜩이나 피곤한 삶을 더 괴롭게 하는 나날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고 만다면 ‘얼리 어답터’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을 터. 눈 꼭 감고 ‘천수만의 새우 튀듯’ 현란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스마트폰을 다루는 10대 아이들을 부지런히 곁눈질하리라. 혹시 아는가? 1년만 고생하면 환상적인 새 삶이 열리게 될지. 어쨌든 스마트폰 만세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0. 12. 12. 22:18

말레이 곰 ‘꼬마’의 유쾌한(?) 탈주극

 

서울대공원을 탈출하여 청계산에 숨어든 수컷 곰 ‘꼬마’가 일주일 째 포획팀을 놀리고 있는 중이다. 곰 때문에 등산객이 줄어 생계에 지장을 받는 산 입구의 상인들에겐 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내게는 참으로 ‘오랜만의 재미있는’ 뉴스가 아닐 수 없다. 혼자 운전을 하면서, 혼자 조용한 길을 걸으면서 ‘그 놈’을 생각할 때마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금할 수 없다. 과연 그는 지금 가슴 뛰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까? 아니면 낯설고 물 선 ‘타국’의 산하를 헤매고 다니며 배고픔과 공포에 떨고 있을까?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이 터졌을 무렵 신문을 통해서 동물원의 한 관계자가 내린 기막힌 분석을 접하게 되었다. 동물원에서는 이 말레이곰 ‘꼬마’를 ‘씨곰’으로 들여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동물원에 있던 씨받이 암콤은 이 꼬마에겐 ‘할머니뻘’쯤 되는 나이라나? 그러니 그 녀석이 스트레스를 받고 탈출을 감행했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나는 이 분석을 접하곤 몰래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 분석이 잘못 되어서 웃은 게 아니라, ‘어쩌면 그리도 재미있게 정곡을 짚어냈을까’ 감탄했기 때문이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시라! 외국에 팔려서 장가라고 와봤는데, 신방에 들어가니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신부차림을 하고 있으니, 신랑의 입장에서 혼비백산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기분으로 어떻게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며, 어떻게 신부의 옷을 벗길 수 있겠는가?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 해도 그렇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만하는 인간이 참으로 못할 짓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냥 할머니 곰은 그대로 살다가 자연사하게 놔두고, 차라리 ‘꼬마’의 나이에 걸맞은 젊은 암콤으로 짝을 맞추어 들여왔으면 오죽 좋았으랴! 그렇게 했다면, 문을 열어놓고 밖으로 나가라고 한들 그 ‘꼬마’ 녀석이 도망갔겠는가?

 

필자는 지금 집에서 작은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고 있는데, 이 녀석이 말만 못 했다 뿐 생각만큼은 멀쩡하다. 제 의사표현에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에게는 한사코 따라 다니며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만다. 그것이 인간에겐 정으로 읽히는 것이다. 동물에게 마음이 없다고? 천만에! 순수하고 곡진하다는 점에서 같은 인간들보다 훨씬 도타운 정을 느끼게 된다. 희로애락이나 사랑과 증오의 가장 격렬하고 단순한 감정을 그들도 인간 못지않게 갖고 있음을 나는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인간의 반응이 시원치 않을 경우 그들 역시 실망하고 또 다른 양식의 시도를 감행한다는 점도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네 발 달린’ 동물이라고 깔볼 수 있단 말인가.

 

20대 청년인 ‘꼬마’에게 60대 할머니를 신부로 붙여준 인간들은 반성해야 마땅하다. 어쩌면 그는 사방에 둘러쳐진 철제 울타리 안에서 쪼글쪼글 주름투성이의 신부를 보며 ‘언제 어디서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이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 사랑해야 하느니라!’라고 강요하는 인간들의 메시지를 읽어냈을 것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도망갈 곳 없는 철제 울타리 안에서 그는 잠시 절망에 잠겨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다가 어느 사이 문이 열렸고, 문 밖으로 검은 숲이 보였겠지? 비록 그 숲 속에 무수한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해도 ‘이 절망보다야 더하겠느냐?’라는 생각으로 냅다 튀어나갔을 것이다. 어쩜 그는 지금 이른바 ‘페로몬’이라는 호르몬으로 서울 대공원 철책 안으로 통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코드가 맞지 않는 늙은 암콤으로서야 어찌 ‘꼬마’에게 응답을 보낼 수 있으랴. ‘꼬마’가 돌아오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 그러니, 인간들이여! 제발 ‘꼬마’를 포획하기 전에 외국에서 ‘매력적인 젊은 암콤’ 한 마리를 급히 수입해다가 신방에 앉혀놓기 바란다. 그러면 이 추운 날 애꿎은 젊은 경찰들 고생시키지 않아도 아마 그 녀석은 제 발로 걸어 들어 올 것이다.

 

2010. 12. 12.

백규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