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12. 7. 1. 14:25

 

 

 

1. 엄경희 교수의 <<전통시학의 근대적 변용과 미적 경향>>(학고방, 2011/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27)이 2012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

 

엄경희 교수의 <<전통시학의 근대적 변용과 미적 경향>>(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27)이 2012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이 책에는 전통이란 개념으로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고자 한 저자의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1부[현대시조의 흐름과 전망], 2부[현대시의 하위장르로서의 자연시의 경향] 등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이 책은 전통시가와 현대시의 연속성을 찾으려는 연구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본다.

 

 

2. 정영문 교수의 <<조선시대 통신사문학 연구>>(지식과교양, 2011/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0), 2012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

 

정영문 교수의 책 <<조선시대 통신사문학 연구>>(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0)가 2012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일본을 여행했던 통신사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연구서다. 조선시대에 외국 특히 일본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란 통신사 사행에 참여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했다. 이런 이유로 일본과 일본인에 관한 기록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조선시대에 주변국가와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사행록은 여행하면서 실제로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서술한 기록문학인 동시에 보고문학인데, 이 책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한일 관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되리라 본다.

 

 

3. 조용호 박사의 <<아리랑 원형 연구>>(학고방, 2011/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25)가 2012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

 

조용호 박사의 <<아리랑 원형 연구>>(학고방, 2011/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25)가 2012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현재 학계나 일반인들 사이에서 <아리랑>은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으나, 그 말의 뜻은 물론 노래가 의미하는 텍스트 상황도 정확히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조용호 박사는 오랜 기간 한민족의 혼이자 민족의 노래를 대표하는 <아리랑>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해 왔는데, 그 결과를 집대성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기점으로 학계의 <아리랑> 연구는 비로소 본궤도에 접어들 수 있으리라 본다.

 

Posted by kicho
알림2012. 4. 16. 18:17

 

 

한국문예연구소 논문집 <<한국문학과 예술>>(9집) 출간!!!


한국문예연구소에서는 반년간 학술지 <<한국문학과 예술>> 9집을 출간했다. 이번 호에는 “1990년대 이후 패러다임과 문학지형의 변화”라는 주제 하에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소설적 형상화」(이경재), 「1990년대 이후 한국 연극의 변화」(백로라), 「윤대녕 소설의 노스탤지어 미학 : <<은어낚시통신>>을 중심으로」(백지혜), 「멜랑콜리 시학」(류신), 「현대시에서의 그로테스크」(이해운), 「이미지에서 서사로, 악몽에서 일상으로-편혜영 소설의 변화와 2010년대 소설의 향방-」(서영인) 등 6편의 특집논문과 1편의 일반논문[「조선조 文宣王樂章 연구」/조규익]을 실었고, 「중국 석학이 바라 본 지난날의 우리 모습-<<해동삼유록>>(위욱승 지음)을 읽고-」(소재영), 「난해한 선천역학의 닫힌 문 열기-<<소강절의 선천역학(고회민 저/곽신환 옮김)>>을 읽고-」(조희영), 「한 식민지 엘리트 군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경천아일록>>(김경천 지음/김병학 옮김)을 읽고-」(김기철), 「발로 쓰는 학문태도의 정수-<<동아시아 문화 교류론>>(소재영 지음)을 읽고-」(김태준), 「사행록 텍스트 다양하게 곱씹어보기-<<조선시대 사행록의 텍스트와 콘텍스트>>(정영문 지음)를 읽고-」(한태문) 등 5편의 서평과 자료 및 자료해제[「가사로 풀어낸 조선왕조의 이면사-박순호 본 <한양가(1)> 소개-」]를 실었다. 지금까지 <<한국문학과 예술>>에는 국내외 석학들에 의해 작성된 해당분야의 주목할 만한 논문들과 서평들, 해제들이 실림으로써 한국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Posted by kicho
알림2012. 3. 2. 13:59

  <이번에 발간된 책 <<경천아일록>> 표지>

  <김경천 장군의 아버지 김정우. 그는 35살의 늦은 나이에 일본에 유학하고 돌아와 대한제국 육군군기창장으로 일했다.(1900-1908년)>

  <1921년 3월 연해주 공산당 지역중앙위원회 고려인 부서의 제안으로 아무르 주 크라스노야르 마을에서 개최된 연해주 빨치산 활동가들의 제1회 모임. 여기에서 고려인 빨치산 부대들을 통합하여 연해주 인민혁명군 소속으로 합병시키자는 결의가 나왔다. 맨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경천. 당시 김경천은 만주에서 연해주로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별다른 전투를 치르기 전이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데다 또 공산당원이 아닌 탓에 맨 끝줄에 서있다. 하지만 이듬해 여름에 연해주 혁명군사위원회가 그를 뽀시예트 및 훈춘 구역 빨치산 총사령관으로 임명할 정도로 용맹한 군인으로 이름을 떨쳤다.둘째 줄 왼쪽부터 첫 번째는 창의회에서 활약한 안희재(1885-1943), 두 번째는 나중에 선봉신문 농업부장을 역임한 황동훈(1903-1938), 세 번째는 연해주 한인독립운동 지도자 이동휘(1873-1935), 네 번째는 한인 지도자로서 소비에트 당국에 한인의 권리를 적극 주장했던 한명세, 여섯 번째는 1930년대 뽀시예트 구역 당서기장을 역임한 김 아파나시, 셋째 줄 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1924년 니시 고려사범학교, 1931년 해삼고려사범대학을 설립하고 이듬해 조선극장 창립에도 관여하는 등 한인 문화교육부문에 지대한 공헌을 한 김만금, 넷째 줄 왼쪽(오른쪽)에서 다섯 번째는 중국과 한국에서 신문을 발행하고 지하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던 채 그리고리(1891-1926), 맨 뒷줄 오른쪽에서 첫 번째는 제76 고려인 포병부대 정치교육장교를 역임한 김광택(1898-1957)이다.


  <간첩죄로 체포된 김경천 장군이 카자흐스탄 까라간다 유형소에 들어와 머리를 깎이기 전(1939년)>

  <간첩죄로 체포된 김경천 장군이 카자흐스탄 까라간다 유형소에 들어와 머리를 깎인 후(1939년)>

  <1918-1922년 연해주 한인빨치산 군인들의 복장. 김경천 부대의 부대원들도 이와 똑같은 복장을 착용하고 전투를 치렀다>.

     <김경천 장군의 자식들. 앞줄 왼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맏딸 지리, 셋째딸 지란, 막내딸 지희, 맏아들 수범>



연해주 지역 항일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의 일기

<<경천아일록(擎天兒日錄)>> 출간!!!

연해주 지역 항일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의 일기 <<경천아일록>>이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자료총서 1권으로 출간되었다. 함경남도 북청에서 무관 가문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김 장군의 본명은 김현충(金顯忠)⋅김광서(金光瑞)이며, 후에 신팔균⋅지청천과 함께 별명으로 '하늘 천(天)'자를 넣어 지은 김경천(金擎天, 金警天 또는 金敬天)⋅김응천(金應天) 등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김 장군의 아버지인 김정우는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구한국 육군의 엘리트 인사였는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군인이 되기를 꿈꾸었고, 한성부에서 중학교를 마친 뒤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11년 일본 육사를 제 23기로 졸업하고 도쿄에서 기병 장교로 근무하다가 1919년 기미 독립 선언 직후 지청천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청년단에 가입해 활동했고, 서간도의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했다.

1919년 김경천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머물면서 의용군을 모집하여 일본군의 지원을 받는 중국인 마적단과 싸웠으며, 창해청년단 총사령관으로 시베리아 일대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1921년에는 수청의병대의 지도자가 되었고 러시아의 혁명 세력과 연합하면서 연해주 지역의 조선인 지도자로 소련의 인정도 받게 되었다.

1922년 수청의병대는 대한혁명단으로 개칭하고, 김경천은 사령관을 맡았으며, 그해 말 고려혁명군이 조직되어 김경천은 동부사령관을 맡았다. 1922년 이후 블라디보스톡 극동고려사범대학에서 강의를 하였고 국경경비대의 장교로 일하다가 1937년 스탈린 정권 하에서 간첩죄로 체포되었고, 1939년 재차 체포되어 두 차례 복역했다.

이 일기의 번역 및 정리자 김병학 선생은 이 책 출간의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제시했다.
 첫째, <<경천아일록>>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이후 전투에 참가한 군 지휘관이 현장에서 쓴 유일한 일기다. 현대적 의미의 최고급 군사전문가 중 한 사람인 김 장군의 지략과 용맹이 유감없이 드러나 있어, 동서양 전쟁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가 어렵다.
 둘째, 광복 60년이 지나도록 친일유산의 청산이 되지 않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김 장군의 행적이야말로 후손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셋째, 이 일기가 국내 역사학자들의 단편적인 논문에만 인용되고 말기에는 그의 삶 자체가 너무나 눈물겹고 장대하고 아름답다.
 넷째,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는 김 장군의 후손과 뜻 있는 고려인들이 이 일기가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분들이 일기를 러시아어로 읽으려면 먼저 번역이 가능한 현대 한국어로 정리되어야 한다. 국한문에 드문드문 알아보기 어려운 문체로 기록된 <경천아일록>이 한국에 알려진지도 벌써 다섯 해가 넘었는데, 그 분들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이 책의 출간은 한국의 독립운동사가 보완되고, 더욱 새로워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강호제현의 일독을 고대한다.


                        2012. 3. 1.


              한국문예연구소  소장   조규익



조선일보 관련기사 링크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2. 24. 17:18

 <1945년 김병화 농장의 김남견과 레 베라 드미트로브나의 결혼식에서 연주하는 소인예술단(취주악단)>

  <2002년 아리랑 극장의 가수 김 막달레나>


지워진 ‘민족의 기억’ 살려내기
                                                                

고려인들의 자취를 찾아 제법 부지런히 돌아다닌 몇 년이었다.
러시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키즈스탄⋅벨라루스 등 쉽게 갈 수 없는 나라들의 여러 도시와 마을들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나 ‘이제 고려인들은 없다!’는 것이 오랜 방랑 끝에 얻은 깨달음이었다. 대체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빛바랜 사진 몇 장과 실실 부서지는 몇 권의 책자들에서나 그들의 모습을 훔쳐 볼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상상 속에서 그려 온 고려인들의 모습은 더 이상 우리 곁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마주 앉아 보아도 모습만 같을 뿐, ‘소통할 수 없는’ 타자(他者)로 남아 있을 따름이다.  
엄혹했던 구소련 체제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야 했던 그들이었다. 절망에 갇힌 민족의 탈출구를 공산주의에서 찾고자 그 이념의 고향 소련으로 갔다가 불의의 죽음을 당한 조명희. 그를 추앙하여 문학에 빠져들었다가 22년 간 북극 유형 및 강제노동의 쓰라림과 후유증으로 인생을 마감한 강태수. 그들은 원동으로부터 가축이나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쓰레기처럼 부려진 고려인들의 황당한 집단체험을 극적으로 대변한다.  

오직 내가 원하는 바는
네가 속히 귀여운 아기들의
어머니가 되며
남편의 던지는 웃음에
두터운 정으로 대답하며
또 우리에게만 부족되지 않던
그 무엇으로 보태면서
무한히 행복하기를!
그리고 또 하나는!
너는 나를 “죄인”이라고
절대 부르지 말기를!
이곳은 모두다 시대의
불측한 장난일 줄 알어라
하늘이 아무리 흐린들
네철 내내 비가 내리겠는가.
사납던 징기스한의 무덤은
오늘도 나지지 않으며
로마에 불지르고도
“오, 나의 사랑하는 로마여!” 하고
웨치던 네로의 혼은
이날도 저주의 무쇠 탈 쓰고
아마 지옥에서 헤매리라
악은 백 년 후에도 발각되며
선은 민중의 부르는 노래에
오래오래 담겨진다.

-강태수 <마음 속에 넣어 두었던 글> 중에서


고려시인 강태수는 북극유형이란 마지막 길을 떠나며 자신의 연인에게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여인으로서의 행복한 삶을 누려 달라고 부탁한다. 동시에 자신의 상황이 ‘시대의 불측한 장난’일 뿐, 자신은 죄인이 아님을 절규한다. ‘하늘이 아무리 흐린들 사계절 내내 비는 내리지 않을 것’이란 확신과 함께 징기스칸 및 네로의 악행을 예로 들었지만, 그가 여기서 언급하고자 한 인물은 징기스칸이나 네로가 결코 아니다. 그가 이들을 통해 암시하고 싶었던 인물은 스탈린이었다. 스탈린 치하에서 강제이주와 북극 유형을 통해 젊음과 사랑을 잃은 그였다. 그러니 그에게 스탈린보다 더 극악한 군주는 없었을 터. ‘저주의 무쇠탈을 쓰고 지옥에서 헤매리라’는 그 저주의 대상은 네로가 아니라 스탈린이었다. 인생의 막바지에서야 시인은 자신이 몸담아 온 공간, 그간 생존을 위해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환멸과 증오를 이런 저주로 표출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 조명희나 강태수만 그러했을까.
***
1세대 고려인 한 분을 만나기로 약속하고 날아간 키르기즈스탄. 비쉬켁 국제공항에 도착해 연락하니 그 분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오늘 내일 하시는 중이었다. 이처럼 어딜 가도 1세대 고려인을 만나기란 불가능했다. 만날 수 있는 대상은 기껏 2~3세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은 우리말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  우리말을 잃으니 우리 역사를 잃게 되고, 우리 역사를 잃으니 민족의 정체성을 잃게 되며,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니 피차 민족적 동질감을 공유할 수 없었다. 찻집이나 식당에 마주 앉아도 그저 이민족을 만나듯 서로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었다. 절망이었다.
그러다가 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들어온 고려인 3~4세들을 만나게 되었다. 작업 현장에서 우리말을 배우며 급속히 민족적 동질감을 회복해가는 그들이 신기했다. 나라 밖에 흩어져 살며 정체성을 상실한 한민족 후손들에게 우리는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 그들을 보며 2천년의 지독한 디아스포라를 극복하고 민족 공동체의 강고한 모습을 과시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떠올랐다. 겨우 1~2세기의 디아스포라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체면은 말이 아닐 것이다. 이제 이산(離散)과 유랑(流浪)의 세월을 청산하고 민족 공동체로 거듭 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실수로 포맷 된 컴퓨터 디스크를 복원하듯 ‘지워진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DNA에 잠재되어 있는 말과 정신의 씨앗을 움틔우기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해야 한다. 뒤통수에 와 닿는 의심의 눈초리를 무릅쓰면서 이들 나라들을 뒤지고 다니는 것도 혹시 우리 모두의 기억을 되살려 줄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 때문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희미한 의식의 끄나풀이라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 단계에서 당장 먹고 사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민족의 미래를 개척하는 일이다. 개개인의 수명엔 한계가 있지만, 민족의 수명은 영원하다!
***  
지워진 ‘민족의 기억’ 살려 내기.
이처럼 화급하면서도 멋진 프로젝트가 또 있을까. 외세의 침탈과 거센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헤맨 디아스포라의 세월을 담담하게 객관화시킬 만큼 우리의 마음과 체력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모두의 관심이다. 나라들 사이에 이념의 장벽은 희미해지고 있지만, 정작 개인들은 이해관계의 장벽을 나날이 공고하게 쌓아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동체보다 개인의 행복과 이익을 우선하는 개인주의[혹은 이기주의]의 물결은 민족주의를 능가할 정도다. 우리의 과제는 소아(小我)를 넘어 민족의 어제와 오늘을 발판으로 바람직한 내일을 건설하는 일이다. 우리의 기획은 그런 소망으로부터 시작된다. 중앙아시아의 각처에서 고려인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귀한 사진자료들을 구했으며, 그것들을 일일이 디지털 자료로 만들었다. 그것들 가운데 1차적으로 묶은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남아있는 자료들을 정리⋅발간함으로써 민족공동체의 기억을 되살려 내는 작업을 계속하기로 한다.
강호 제현의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고대한다.

                               2012. 1. 1.

                                                  한국문예연구소 소장  조규익  

*이 글은 최근에 펴낸 <<사진으로 보는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이주 및 정착사 : 우리 민족의 숨결, 그곳에 살아있었네!>>의 머리말입니다.
Posted by kicho
출간소식2012. 2. 23. 17:30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삶에 관한 사진자료집 출간!!!

 

  <발간된 책>

  <우즈벡 지진허 마을의 백산옥 할머니(1909년생)>

  <우즈벡의 프라우다 농장 학교 교사들(1960년대)>

<평양에서.  오른쪽 첫번째가 최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오른쪽 네번째 인물이 김일성(1946년)>



사진으로 보는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이주 및 정착사


     우리 민족의 숨결,
    그곳에 살아 있었네!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자료총서 2
김 이그나트, 김 블라지미르, 조규익 엮음
도서출판 지식과교양, 2012. 3./ 15,000원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지나온 세월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자료집이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자료총서 2’로 출간되었다. 숭실대 조규익 교수(한국문예연구소장/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지식인 김 이그나트 및 김 블라지미르 등과 함께 중앙아시아 고려인들[보통사람들로부터 유명인들까지]의 사진들을 수집하여 자료집으로 엮었다. 그동안 이 지역 고려인들에 관한 문서자료들은 꽤 출간되었지만, 두어 건의 작품사진집 이외의 사진자료집이 학술자료총서의 형태로 출간된 것은 처음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머리말 : 지워진 ‘민족의 기억’ 살려내기-조규익
  1부 : 고려인들의 삶
  2부 : 가르침과 배움
  3부 : 일과 일터
  4부 : 고려인 가족
  5부 : 풍속[돌⋅결혼⋅회갑⋅장례]
  6부 : 나라 밖의 북한인들, 북한의 고려인들
  발문 : 우리는 돌아간다-김 블라지미르 씀/오두영 역


 1937년 강제이주 시기[몇몇 경우는 그보다 훨씬 이전의 자료도 있다]부터 최근까지 고려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들을 선별했다는 점에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삶에 관한 어떤 연구서보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자료들을 통해 고려인 연구자들이나 그간 고려인들의 삶에 대하여 말로만 들어왔던 일반인들은 고려인들의 생활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편자들은 그간 몇 년 동안 현지의 고려인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그간에 겪은 고초를 들었고, 그들의 선조와 자신들이 남긴 기록들을 수집했으며, 미래의 소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은 편자인 조규익 교수가 그간 진행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자료정리 작업과 연구 작업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미 확보한 사진자료만 1천 건이 넘기 때문에 기회 닿는 대로 나머지 사진들을 계속 출간하겠다는 것이 조 교수의 생각이다.


 구소련 체제 아래 우리와 단절의 역사를 지속해온 고려인이 우리 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지도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간 우리는 그들을 우리 민족의 일원이 아닌 ‘고려인’으로 타자화(他者化)하는, 잘못을 범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우리와 동등한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 들여야 하며,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그들과 우리가 정신적으로 합일을 이루어야 한다. 학술적 차원의 해석이나 연구보다 사진이나 기록물들을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을 우선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 교수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워진 ‘민족의 기억’ 살려내기!
이처럼 화급하면서도 멋진 프로젝트가 또 있을까. 외세의 침탈과 거센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헤맨 디아스포라의 세월을 담담하게 객관화시킬 만큼 우리의 마음과 체력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모두의 관심이다. 이산(離散)과 유랑(流浪)의 세월을 청산하고 민족 공동체로 거듭 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실수로 포맷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복원하듯 ‘지워진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다.“


조 교수가 머리말에서 강조한 것처럼 ‘지워진 민족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이런 작업은 계속되어야 하며, 국민적 관심 속에 이런 작업들의 의미와 가치가 강조되어야 하리라 본다. 강호제현의 일독을 기대한다.    

 

Posted by kicho
알림2011. 11. 22. 12:03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전국학술발표대회

 

“1990년대 이후 패러다임과 문학 지형의 변화”

 

 

일시 : 2011년 12월 02일 (금), 10시 30분 ~ 18시 00분

장소 : 숭실대학교 정보과학관 102호

주최 :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모시는 글

 

 

한 해를 보내며

타작마당의

마지막 낟가리를

털어 들일 때가 되었군요.

 

지난 세기 말에 바뀐

의식의 패러다임은

제대로 지속되고 있는 걸까요?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우리 문학정신의 현주소를

짚어 보려 하오니

부디 오셔서

함께하여 주소서.

 

 

신묘년 만추

 

한국문예연구소 소장 조규익 드림

 

 

 

 

 

 

 

순서

 

 

1부 사회: 허명숙(숭실대)

인사: 조규익 한국문예연구소장 10시 30분 ~ 10시 35분

축사: 김대근 숭실대 총장 10시 35분 ~ 10시 40분

 

1. 발표: 극현실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환상-임철우 소설을 중심으로

이경재(숭실대) - 토론: 허병식(동국대) 10시 40분 ~ 11시 20분

2. 발표: 1990년대 이후 한국 연극의 변화 및 전개 양상

백로라(숭실대) - 토론: 이승희(고려대) 11시 20분 ~ 12시 00분

 

점심 12시 00분 ~ 13시 30분

 

3. 발표: 90년대 문학과 윤대녕 소설의 미학

백지혜(서울대) - 토론: 정여울(서울대) 13시 30분 ~ 14시 10분

4. 발표: 감각의 재발견

이재복(한양대) - 토론: 엄경희(숭실대) 14시 10분 ~ 14시 50분

 

휴식 14시 50분 ~ 15시 00분(떡 나누기)

 

2부 사회: 김인섭(숭실대)

 

5. 발표: 멜랑콜리 시학

류 신(중앙대) - 토론: 이성희(서울대) 15시 00분 ~ 15시 40분

6. 발표: 그로테스크와 파국의 상상력

이해운(숭실대) - 토론: 이기성(이화여대) 15시 40분 ~ 16시 20분

7. 발표: 이미지에서 서사로, 악몽에서 일상으로-편혜영 론

서영인(경북대) - 토론: 김명훈(서울대) 16시 20분 ~ 17시 00분

 

종합토론 - 좌장: 이은봉(광주대) 17시 00분 ~ 18시 00분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