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8. 5. 23. 19:52

하회 별신굿 탈놀이 다섯째 마당의 파계승

 

하회마을의 아름다운 초가들

 

하회마을 초가들 사이의 골목길

 

하회마을에서 만난 장독들

 

병산서원에서 숭실국문 학생들과

 

병산서원에서 집행부 학생들과

 

병산서원에서 외국인 유학생들과

 

병산서원에서 임채훈 교수, 엄경희 교수, 소신애 교수 등과

 

 

학술답사 후기

-학술답사인가?-

 

                                                                                                                  조규익(숭실대 교수)

 

내 학창 시절 은사 한 분은 늘 논문은 발로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논문을 발로 써라? 처음엔 그 말씀이 몹시 낯설었다. 당시 엉망진창인 번역을 발 번역이라 부르던 나였지만, ‘발 논문이란 조어(造語)의 진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이가 들고 공부가 좀 익어지면서 깨달았다. 자료를 찾아 발로 뛰는학자가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일까. 팔도 어디든 내가 필요로 하는 자료의 소장 자()를 찾아다니는 일이 연구 작업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꽤 된다. 그렇다고 내가 좋은 논문들을 쓰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큰 실수 없이 어쭙잖은 글들이나마 엮어 낼 수 있는 건 전적으로 그 때 익힌 현장 중시의 습관 덕분이리라.

 

국어국문학의 현장은 우리 전통사회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그런 공간들이 제법 남아 있었다. 어느 마을 논두렁이나 밭두렁에만 가도 생생한 자료제공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들이 방언이었고, 힘들거나 즐거울 때 질러내는 소리들이 민요였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로부터 물려받아 기억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둔 이야기들은 좀 많았나. 그런 걸 찾으러 틈나는 대로 방방곡곡 누비고 다니며 국어국문학도들은 자긍심을 지닐 수 있었다. 사라지는 우리의 전통과 정서를 글자로 잡아놓고 분석하여,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민족문화의 파수꾼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이제, 세월은 마구 변하여 외견상 전통사회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국어국문학도들의 임무나 사명을 고도로 세련시켜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사실 변화는 잔존(殘存)을 전제로 하는 개념일 뿐 사라짐이 아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여 찾는 일을 포기할 순 없다. 변화의 근거들이야 하다못해 DNA에라도 남아있을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집요함은 공부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최종병기. 문학이나 언어의 생산자이자 사용자인 사람들을 만나 보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을 키워 낸 자연과 문화적역사적 잔존물들을 현장에서느껴보지 못한다면, 강의실에서 펼쳐지는 담론들의 공허함을 무슨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오.

 

우리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관광여행을 본받으려 하지 않는 것도 답사지역이 우리의 또 다른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밤을 새워 그곳 인물들의 문학을 찾고, 무형 문화재의 뿌리를 가늠하며, 숨은 역사를 캐는 일은 이 시대의 국어국문학도에게 부여된 사명이자 특권이다. 2018년도 숭실 국문인들이 그 사명과 특권을 오롯이 수행하고 누릴 수 있도록 지역선정-계획 수립-사전답사-자료집 준비등으로 학생회장 김태호를 비롯한 집행부원들이 진한 땀을 흘렸다. 그 덕에 멋진 자료집이 나왔고, 모두 참여하여 현장 공부의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이제 우리 모두 귀한 공부여행에 적극 동참하여 하나라도 더 얻어오는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

 

위 글은 2018학년도 숭실대 국어국문학과 학술답사 자료집에 실은 나의 인사말이다. 나는 교수 초년병 시절부터 몇 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학술답사에 참여하여 학생들과 고락을 함께 해왔다. 그동안 사회의 변화와 함께 학술답사의 양상도 많이 바뀌어 이젠 일반인들의 여행과 구분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지역과 방문 대상이 역사나 전통문화로 한정되고 강의실 교육의 연장이라는 점에서나 국문과의 학술답사는 일반인들의 관광여행과 구분될 따름이다. 그러나 오늘날 목적과 테마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만큼 일반인들의 관광여행도 많이 세련되었다. 오히려 문화답사 동호인들끼리의 여행일 경우 대학의 학술답사보다 더 전문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 일반인들의 안목이나 교양 수준은 많이 높아진 반면, 대학 교육은 거의 완벽하게 대중화보편화되었다. 따라서 앞 시대엔 전문인들이나 예비전문인들이 주로 수행하던 학술답사가 이젠 교양의 심화나 지적인 욕구의 충족을 지향하는 일반인들의 문화관광 여행과 구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대학 내에서 학술답사는 국어국문학과의 고유활동으로 굳어지다시피 했다. 그 분야의 교수 로 30년 넘게 재직해오면서 깨달은 시대의 변화는 매우 크고 의미심장하다. 인터넷의 무한한 확장, 기계화를 통한 전통사회의 변화, 교통통신의 발달을 통한 전국의 1일 생활권화 등으로 현장 조사나 학습의 중요도가 많이 저감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을 데리고 역사와 전통의 맥이 살아있는 현장을 둘러 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신나는 일이다.

 

올해는 안동지역을 답사 대상으로 잡았다. 첫날(517)은 하회마을에 도착,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함께 관람한 뒤 하회마을의 정취를 음미하고 병산서원(屛山書院)에 들렀으며, 풍산읍에 있는 안동 펜션 & 게스트에서 1박을 했다. 다음 날은 분과에 따라 고전문학학회와 민속문화학회는 가송리 농암종택(聾巖宗宅)을 방문한 뒤 한국국학진흥원 및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에, 현대문학회는 권정생 동화마을과 이육사문학관 및 농암종택에 각각 들렀으며, 언어학회는 가구1리 마을회관에서 방언을 채록하고 영호루와 안동 문화의 거리를 답사했다. 셋째 날에는 전원이 함께 도산서원(陶山書院)과 소수서원(紹修書院)을 들러 서원문화를 체험한 뒤 오후에 서울로 돌아왔다.

 

***

 

방대한 이 지역의 문화와 정신을 받아들이기에 23일은 매우 짧았다. 그러나 학생들의 표정에서 작지만 어떤 변화의 조짐을 읽어낼 수는 있었다. 물론 학생들 각자의 내면적 수준이나 성향에 따라 감수(感受)한 것들은 달랐으리라. 어쨌든 늘 복잡한 도심에서 각자의 삶을 살다가 함께 한국의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불리는 안동에 찾아가 선비문화를 체득한 것은 이들의 삶에 큰 정신적 자산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나는 답사 기간 내내 서원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지역의 사림문화(士林文化)를 제대로 볼 것을 학생들에게 주문했다. 농암종택 안 쪽에 위치한 분강서원(汾江書院)의 입교당(立敎堂)에 학생들을 앉히고 농암 선생의 풍류와 자연 친화의 삶을 강의했고, 도산서원의 전교당(典敎堂)에서는 퇴계 선생의 시가와 도학적 세계관을 강의했다. 병산서원, 도산서원, 농암종택, 소수서원 모두 자연과의 조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심성 수양의 공간이었음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자 노력했다.

 

그 분들이 추구한 도()자연 속에서 읽어낸 불변의 길이라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늘이 천성으로 부여한 생태의식이 바로 도학의 바탕이었던 것이다. 주어진 세상의 삶을 마치고 뛰어난 생태 공간인 안동의 땅에 스며든 위대한 스승들. 일찍이 퇴계 선생은 <도산십이곡>의 제9곡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古人) 못 뵈

고인(古人)을 못 뵈어도 가시던 길 앞에 있네

가시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찌 할꼬

 

그렇다. 신재(愼齋), 농암(聾巖), 퇴계(退溪) 등 우리 스승들의 걸어가신 길을 뒤쫓아 가면 잘못 될 일 없을 터인즉, 이제라도 따라가 보자. 학생들을 지도하겠노라 나선 길이었으나, 나 스스로 배움만 가득 안고 온 23일의 학술답사였다.

 

농암종택에 들어서며

 

농암종택 안쪽의 넓고 안온한 풍경

 

농암종택의 분강서원

 

분강서원에서 강의를 듣는 학생들

 

멀리서 잡은 농암종택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안동 박실에서 구미 일선리로 이건한 삼가정의 현판

 

퇴계 선생에게 내린 교지

 

도산서원의 안온한 모습

 

도산서원 전교당 앞에서

 

도산서원 전교당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도산서원 시사단(試士壇)

 

순흥의 죽계루 앞에서

 

근재 안축(安軸)의 <죽계별곡(竹溪別曲)> 현판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학술답사집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 2. 28. 14:33

 

 

 소설인가? 생태학 보고서인가?

-‘늑대토템(狼圖騰)’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

 

                                                                                                                         조규익(국어국문학과 교수)

 

 

 

토템은 아버지를 대치한 최초의 형식이었을 것이고, 신은 아버지가 인간의 모습을 되찾은 후대의 형식이다. 모든 종교 형성의 뿌리인 아버지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신 관념이라는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 이유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아버지에 대한 관계, 그리고 아마 동물에 대한 관계에서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S. 프로이트, 󰡔토템과 타부󰡕에서-

 

 

 

수만 년 거센 바람이 빗질하여 키워낸 목초로 수많은 초식동물들을 키워내던 몽골 초원. 인간의 짧은 안목과 인색한 이기주의를 한 치도 허용치 않던 원초의 공간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 자연이 허락한 먹이사슬의 꼭짓점에 지금은 인간이 앉아 있으나, 늑대가 그 공간을 지배하며 인간에게 생존경쟁의 원리를 생생하게 가르쳐 주던 한때가 있었다. 생존의 원리에 대한 정당한 명분을 뺏기지 않으려는 늑대와 한사코 빼앗으려는 인간 사이에 피 터지는갈등과 싸움이 벌어지던 초원. 그곳에서의 싸움은 인간과 늑대 전사들 간의 명백한 게릴라전이었다.

신이 허여한발톱과 이빨, 그리고 전략을 보유한 늑대는 초원의 챔피언이었고, 그 왕좌는 자연과 세계를 위해 아니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해 유지되는 것이 옳았다. 늑대와 달리 이렇다 할 발톱도 이빨도 없이 강자에 대한 대책 없는 복수심과 교활한 욕심만 그득한 것이 인간의 내면이다. 그런 늑대와 인간이 초원이란 한 공간에서 주도권 싸움을 벌여온 것이다. 싸움의 룰이 대체로 공정했던 초반과 달리, 갈수록 늘어나는 인간 욕망의 부피에 그 공정성은 훼손되고 말았다. 주도면밀하다는 점에서 늑대와 인간은 비슷하지만, 늑대는 본능인 반면 인간은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어쨌든 생태계란 한때 잘 때려먹고 살다가없어져도 괜찮은 허약한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에, 늑대와 인간은 최선을 다해 싸워야 했다. 인간의 짧은 안목으로 볼 때, 늑대와 인간은 서로를 죽여야 살아남는 제로섬 게임의 경쟁자들이다. 불행하게도 상대방을 절멸(絶滅)시킬 경우 스스로의 삶도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늑대와 인간의 공존은 당위이자 존재의 원리다. 늑대와 인간이 불안하게 공존하는 초원은 먹이사슬의 꼭짓점을 차지하기 위해 양자가 결전을 벌이는 최종 공간인가. 아니면, 최강의 경쟁자들끼리 공존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궁극적인 화해에 도달하게 될 최후의 공동체인가. 챔피언 결정전에 나선 두 선수들의 피나는 싸움을 관찰하여 기록한 것이 이 글, 소설 아닌 생태 관찰 보고서로서의 󰡔늑대토템󰡕이다.

늑대도 인간도 생태계를 유지해가는, 동등한 위치의 구성원일 뿐이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학문이 생태학이라는 상식은 인간의 존재를 너무 크게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어쩌면 오류일지도 모른다. 근원적으로 인간 역시 자연의 한 요소에 불과하므로 자신들을 자연과 분리된 특권적 존재로 생각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자연을 자연스럽게 바라보거나 유지시키는 학문이 생태학이라면, 인간을 예외적인 존재로 단정해 놓고 자연과 분리시킬 필요도 분리시켜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지식청년 출신의 장룽(姜戎)30여년을 올론 초원 늑대들의 생태를 관찰하여 완성시킨 󰡔늑대토템󰡕늑대를 통한 인간의 생태학적 보고서인 셈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 책은 늑대와 인간이 공존해야 한다는 생태계의 당위를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이기적 행태에 대한 고발과 늑대토템사상의 차원 높은 합리성을 강조한 인문학적 보고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몽골늑대

 


몽골초원

 

작가 장룽은 21살의 지식청년 천전으로 바뀌어 무대인 몽골 초원에 등장한다. 내몽골 변경 올론 초원의 인민공사 목축대대에 자원하여 배속된 실제 지식청년 장룽은 그곳에 11년간 머물면서 자신을 매료시킨 늑대의 생태와 정신을 체험적으로 관찰하게 된다. 초원에서 늑대와 함께 자라고 늙어온 빌게노인의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늑대의 정신을 이해했을 뿐 아니라 유목민과 농경민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거리 또한 절감했다.

실제로 그는 늑대를 만나면서 두 가지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늑대는 초원의 혼을 주도했고, 그것이 강인한 생명력과 전투력을 가능케 한 유목정신으로 승화되었다는 것. 즉 유목 생활 내부의 냉혹한 생존경쟁은 강한 늑대와 군마, 강한 무사들을 지속적으로 키워 왔으며, 그것들을 바탕으로 낙후되었던 유럽의 로마문명이나 중세의 봉건제도를 무너뜨림으로써 세계사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 그 첫 번 째 깨달음이었다.

그 반대로, 냉혹하고 강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형편없이 나약해졌고, 그 나약성으로 인해 비약적인 발전을 기할 수 없는 농경문명의 한계가 중국의 치명적인 결함이라는 것이 그 두 번째 깨달음이었다. 따라서 식량 생산의 면에서 비효율적인 초원을 농토로 바꾸어 곡물생산을 늘이고 목축의 방법을 바꾸려는 국가의 시책이야말로 무한한 발전의 원동력을 꺾는 일임을 주인공은 강하게 주장하지만, 개발 시대의 조류를 혼자서 막을 수는 없었다.

그가 빌게노인을 비롯한 초원의 주민들로부터 배우고, 실제 늑대들의 생태로부터 체득한 것은 초원에 내재되어 오랜 세월 지속해온 생태적 공존의 원칙이었다.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초원을 보호하고 초원은 목축을 통해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상호 공존의 토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늑대 또한 초원을 정복하고 인간과 경쟁을 벌이는 존재이긴 하지만, 초원을 해치는 동물들의 개체수를 조절함으로써 목축업을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인간과 이해관계를 함께 한다는 측면에서 3(초원-인간-늑대)는 공존의 당사자들이기도 했다.

목축대대의 대표 바오순궤이를 설득하는 올론 초원 울지 노인의 말은 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목초지를 보호하는 일이고, 이것이야말로 목축업의 근본이지요. 중요한 건 한정된 목초지 안에서 가축 수를 엄격히 통제하는 것이고()목초지를 보호하는 관건은 늑대를 지나치게 많이 잡아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초원에는 풀을 망치는 야생동물이 너무 많아요. 그 중에서도 쥐, 산토끼, 마르모트, 가젤이 가장 심한데, 이런 동물들은 목초지를 파괴하는 큰 화근이 되지요. 늑대가 없으면 쥐나 산토끼가 몇 년 안에 초원을 전부 뒤엎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늑대가 바로 그것들의 천적인지라, 늑대가 있어야 그것들이 활개를 펼 수 없게 되지요. 목초지가 잘 보호되면 목장의 재해 대처 능력 또한 커지게 된답니다.()목초지가 좋아서 수분과 토양도 유실되지 않고, 샘이나 작은 강도 물이 마르지 않으니 큰 가뭄을 만나도 마실 물이 부족할 일이 없지요. 풀이 좋으니 자연히 소와 양들도 건강해서 몇 년 간 목장에 병해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고요. 목장의 생산량이 올라가면 기계 설비를 추가할 능력도 생기니, 우물을 파거나 우리를 지어 재해 대처 능력 또한 덩달아 증강시킬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사실 목초지를 보호하여 많은 동물들을 기르고 재해에 대비하자는 것이 울지 노인의 말인 것 같지만, 초점은 말의 이면에 숨어 있다. 늑대를 보호해야 목초지가 보호되고, 목초지가 보호되어야 사람들도 살 수 있다는 생태적 순환성을 말했고, 그 논리적 연쇄의 출발점에 늑대가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오순궤이는 하지만 아직도 늑대에게 의존해 목초지를 보호한다는 말에는 그리 확신이 서지 않는군요. 늑대가 그렇게 큰 역할을 해낼 수가 있단 말인가요?”라고 여전히 늑대의 존재나 능력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초원에서 태어났거나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원의 생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는 존재가 바오순궤이다. 빌게나 울지 노인은 초원 늑대의 생태를 자신들의 몸처럼 꿰고 있는 사람들이고, 천전은 대도시 출신의 지식청년이지만, 초원 늑대의 생태를 관찰하고 경험한 덕에 바오순궤이와 빌게울지의 사이에서 양자를 통합하면서도 양자를 뛰어넘을 수 있는 통찰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늑대의 생태적 특성은 무엇일까. 늑대는 늙거나 약하거나 병든 동족에게 먹을 것을 남겨 주려 애쓴다는 것. 즉 호랑이나 표범보다 결속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먹을 것이 생기면 무리 전체를 생각한다는 것이 늑대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인간보다도 오히려 가족을 끔찍하게 챙기고, 심지어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야 하는 암 늑대까지 챙기는 것이 늑대의 생태적 본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무리들의 결속력이 강하여 우두머리 늑대가 한 번 울면 100여 마리의 늑대들이 몰려들어 함께 싸우기 때문에 초원에 살던 호랑이도 늑대 무리에게 쫓겨났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물론 늑대가 방목중인 양떼나 소, 말 등을 공격한다는 점은 초원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다. 그러나 반대로 가젤이나 마르모트 같은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음으로써 초원을 보호유지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 되는 점이다. 사실 이런 먹이사슬은 자연 환경을 바람직하게 유지하는 최고의 생태 시스템이다. 초원을 망가뜨리는 야생 초식동물들의 개체수를 유지하여 초원을 보호하고, 그 덕에 양들은 자라고, 양떼 덕에 인간의 삶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그 점이 바로 생태환경의 유지나 산업발전의 면에서 초원의 늑대가 갖는 장점이다.

그런데, 늑대의 자산이 그것뿐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당면하게 먹고 사는 문제 이상의 매력적인 생태적 특질을 늑대들은 갖고 있다. 튼튼한 이빨, 발톱, 근육, 그리고 이것들로부터 발휘되는 힘, 그 힘을 몇 배로 키워주는 생태적 특성으로서의 모성애와 가족애, 집단생활 등은 늑대를 단순한 초원의 야수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늑대 무리는 그들 나름의 규율에 의해 움직이고 지탱되어 나가는데, 그건 일종의 문화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늑대로부터 어떤 신성성을 발견했다. 신의 정령(精靈)이 늑대로 화()했고, 그 늑대는 인간을 텡그리(tengri)’로 데려다 주는 역할을 한다고 초원 사람들은 믿는다. 말하자면 그들의 내세관이나 신앙에까지 끼어들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 즉 토템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주인공 천전에게 늑대의 출중한 장점을 역설하는 목동 장지웬의 말도 몽골민족이 오래도록 토템으로 섬겨 온 늑대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 “몽골초원의 늑대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큰 인내력과 끈기를 가진 몽골말은 물론이고, 세계를 뒤흔든 흉노, 돌궐, 몽골의 강인한 기병들까지도 길러낸 주역이었다.”거나 몽골초원의 늑대들은 초원 사람들에게 강인한 정신력과 탁월한 전투능력, 그리고 가장 출중한 군마를 공급해 주었고, 이 세 가지가 바로 몽골초원 사람들이 세계를 뒤흔들 수 있었던 이유이자 비결이라는 이들의 대화에는 몽골초원의 늑대에 의해 사실상 조련된 몽골 군마를 소유함으로써 몽골의 기병이 더욱 강인해졌다는 믿음이 들어 있다. 그 뿐 아니라, 늑대 토템 정신의 강점은 중국인들의 유가사상(儒家思想)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었고, 천연의 연속성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가사상의 체계는 이미 쇠락했지만, 늑대토템의 정신은 서구 선진 민족들의 귀중한 정신적 유산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몽골민족에게 늑대는 인간과 텡그리를 이어주는 중개자로 인식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세월 올론 초원의 장례식이 그 증거였다. 목축민이 죽으면 옷을 벗기고 펠트로 말아 묶거나 입은 옷 그대로 달구지에 싣고 나이 든 두 명의 남자가 달구지를 끄는 말에 올라 채찍을 가한다. 달구지가 덜컹거리면서 시체는 땅에 떨어지는데, 그곳이 바로 죽은 이의 영혼이 텡그리로 돌아가는 장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 남자들이 죽은 이의 펠트를 벗기고 시신을 하늘을 향해 똑바로 눕히면 장례의식은 끝나는 것이다. 늑대들이 깨끗하게 육탈(肉脫)시킨 시신으로부터 나온 영혼이 올라가 텡크리의 품에 안기게 된다는 믿음. 그 죽음은 영원한 소멸이 아니라 텡그리의 연회에 참석하여 성스러운 물로 세례를 받고 새 생명을 부여받는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그것이 초원의 몽골민족이 진정으로 믿고 있는 늑대토템 사상의 핵심이었다.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다양한 생물들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생태계의 원리다. 몽골초원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늑대는 자신들보다 아래쪽에 위치한 동물들의 개체수를 조절함으로써 초원의 황폐화를 막아주고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늑대는 인간의 적이 아니라 우호적인 협력자인 셈이다. 그 뿐 아니라 그의 강인하고 지혜로운 생태적 습성을 본받은 종족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우세한 삶을 이루어 왔음을 역사는 입증해 주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늑대를 멸종시키지 않고 적정한 선에서 유지하기 위해 늑대토템의 신앙을 지속시켜 온 초원민족은 얼마나 지혜로운가. 초원에서 열심히 살다가 죽은 인간의 시신이 초원늑대에 의해 해체되고, 남은 영혼이 텡그리로 올라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는 믿음의 체계야말로 또한 얼마나 합리적인가.

생물학자 헤켈(E. Haeckel)의 말대로 진화론자 다윈이 제시한 생존경쟁의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복합적인 상관관계들을 연구하는 학문이 생태학이라면, 초원에서 형성된 늑대 등 다양한 동물들과 인간의 복합적인 상관관계, 혹은 조화로운 공존이야말로 세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유지해야 할 생태적 메커니즘이 아닌가.

풀밭 속에서 10여년의 시간을 험한 늑대와 뒹굴고, 그 기간을 포함하여 30여년을 소모하여 늑대 생태의 바이블을 완성해낸 작가 장룽이야말로 생태계의 건강한 유지와 보호가 인간의 지속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전제조건임을 몸으로 보여준 위대한 선각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장룽 지음, 송하진 역, 󰡔늑대토템 12󰡕, 김영사, 2015. 11.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 2. 9. 16:26

사랑하는 2014학번 졸업생 여러분!

 

 

학부 졸업생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학창생활을 마무리한 14학번 여러분에게 따뜻한 축하를 보냅니다. 무엇보다 자녀들을 잘 길러주시고 대학교육까지 책임 져 주신 학부모님들께 감사드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교수님들, 재학생 여러분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어제 밤 저는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와 젊음의 열정으로 빛나던 여러분의 새내기 시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덧없이 흐르는 시간의 여울에 밀려 여러분과 이별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혹시 시간의 무상함을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인가요? 여기 계신 교수님들 가운데 제가 가장 먼저 쓸쓸한 계절에 접어들었기 때문일까요? 여러 교수님들을 대표하여 여러분에게 석별의 정을 담아 한 말씀 드려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된 것 또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정신없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어제의 가치기준이 달라져 있는 오늘을 발견합니다. 내일은 또 어떤 변화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우리 모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이 그 변화를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이미 개막되었다고 하지만, 미래를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불안감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가 충분한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나라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가 충분치 못하여 많은 젊은이들이 상당 기간 실의의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건 이공계나 인문계 모두 함께 겪는 고통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이 고도지식정보화 단계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넘어가는, 일종의 과도기 혹은 조정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공부한 인문학이 조정기를 거친 미래의 대한민국에 긴요하게 쓰일 시기가 조만간 도래한다고 보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그리하여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수준으로라도 인문학의 수요가 늘어나는, 괜찮은 시대가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일자리를 갖고 교문을 나서는 사람이라고 안심해선 안 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실망해서도 안 되는 것은 변화의 바람이 어느 곳을 향할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길게 보아 인문학의 창조적 소양과 역량을 갖춘 여러분이야말로 조만간 찾아올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기회들을 많이 포착하게 되리라는 것이 우스갯말로 수렵채취시대에 태어나 농경시대, 산업화시대, 정보화시대, 고도지식정보화시대를 거쳐 오며 변화의 속성을 체험했다고 자부하는’^^ 제 판단입니다. 일단 사회에 나가 크게 변하는 사회의 조류와 용감하게 부딪쳐 보라고 권고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학교가 온실이었다면, 사회는 밀림입니다.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신분이 바뀌는 지금이야말로 여러분 스스로 내면의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 순간입니다.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 분명합니다. 일방적으로 배려를 받아 온 기존의 시간대에서 부모, 형제, 이웃 등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는 시간대로 180도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수들이 지난 4년 간 중점을 두어 가르친 것도 바로 그런 주체적 의무감의 함양이었습니다.

 

과거 여러분의 선배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자리에서 저는 그들에게 ‘10년 후에 만나자는 약속을 먼저 건네곤 했습니다. 저 자신도 그러했지만, 통계적으로 대학 졸업 후 10년이 지나면 대부분 자리를 잡고 사회적 정체성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꿈과 능력을 믿습니다. 함께 약속합시다. 앞으로 10년 후인 2027, 저는 멋진 칠순잔치를 열고 그 자리에 여러분을 주빈(主賓)으로 초대하겠습니다. 그 때 멋진 모습으로 저를 찾아 주기 바랍니다.

 

이제 출항의 돛을 높이 달고 용감하게 망망대해로 나가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늠름한 뒷모습에 언제까지라도 파이팅!’을 외치겠습니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여러분의 앞날에 신의 보살피심과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2018. 2. 9.

 

조규익

 

                                                                 

Posted by kicho
알림2018. 2. 5. 14:09

 

 

2018년도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봄 학술대회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함께 모여 학술의 새로운 조류를 체험하시고,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자유로운 담론을 펼치도록 하십시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일시: 201826() 13:00~16:00

장소: 숭실대학교 벤처중소기업센터(벤처관) 311

 

12:30~13:00 등록

13:00~13:20 개회사: 조규익(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장),  사회: 문숙희

 

기획 발표: 한국예술의 미학적 발현태,   사회: 문숙희(숭실대)

 

13:20-13:50

문학작품의 회화 표현을 통한 시대 문화 발현

발표 조인희(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연구원) / 토론 박효은(고려대)

 

13:50-14:20

순조 대 이후 춘앵전의 변모양상-1930년대 춘앵전 기록서를 중심으로

발표 김꽃지(한국전통문화연구원 연구원) / 토론 성영애(숭실대)

 

14:20-14:50

1931년 영상자료에 기초한 향령무의 재현가치

발표 손선숙(숭실대) / 토론 강기화(한예종)

 

14:50-15:00 휴식 및 정리

 

15:00-15:30

李匡師)書訣禮道의 생명미학-意象意境變奏를 중심으로

발표 김연재(공주대학) / 한윤숙(성균관대)

 

 

자유 발표,   사회: 하경숙(선문대)

 

15:30-16:00

이덕형의 <죽천행록> 재론

발표 김일환(동국대) / 김지현(광운대)

 

16:00-16:30

대립인유를 통해 본 신동엽 시와 오장환 시 연구

발표 이대성(서강대) / 박동억(숭실대)

 

 

16:30-16:50 휴식 및 정리

16:50-18:00 종합토론(좌장: 조규익)

18:00~ 만찬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 1. 17. 12:47

작비금시(昨非今是)의 깨달음

 

 

4년 전(2013. 9.~2014. 2.) 미국에 다녀와서 책(<<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 푸른사상, 2014. 11.)을 한 권 낸 바 있다.(백규서옥 블로그 No.119 참조) 당시 그 책을 교수들에게 증정하면서 나름대로의 소회를 적은 서한도 책갈피에 끼워 보냈는데, 책을 받았다는 반응은 10% 정도였고 그 서한에 대한 반응은 거의 zero에 가까웠다.

 

객쩍은 짓을 했나?’라고 자책하며 한동안 겸연쩍은 시간을 보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지난해 숭실 근속 30을 맞게 되었다. 나름대로 어떻게 기념을 할까 생각하다가 부랴부랴 새 책(<<<거창가> 제대로 읽기>>, 학고방, 2017. 10. 23.)을 내고, 교수들에게 돌렸다.(백규서옥 블로그 No.3 참조) 학자가 시간의 마디마디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수단으론 책을 능가할 게 없다는 것이 내 철학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의 응답률은 대략 20%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표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겠지만, ‘당신과 같은 직장에서 한 솥밥을 먹으며 30년을 근속하고 있노라는 인사는 전해지지 않았을까.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허전한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논문을 쓰다가 책 한 권이 필요하여 책장을 뒤지던 중, 책들 속에 끼여 질식하기 직전의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를 발견했다. 책을 펼치자 이쁘게편집출력된 서한이 접힌 채로 툭 떨어졌다. , 바로 내가 정성스레 작성하여 교수들에게 보낸그 편지였다. 읽어보니, 숫자(3336/3033)만 바꾸면 현재의 내 상황을 정확히 드러낼 만한 내용이었다. 교수직이 얼마나 따분한생활인지, 이 글을 읽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편지를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숫자만 바꿔 이곳에 올리고, 그 때 그 편지와, 그 글에서 숫자만 바꾼 숭실 근속 30년의 인사장을 늦었지만 이곳에 올린다.

 

                                                       ******

 

        님께

 

 

안녕하신지요?

인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조규익입니다.

 

엊그제 여름이었는데, 벌써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늘 그래 왔습니다만, 최근 들어 시간의 덧없음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저는 해군사관학교의 전임을 시작한 스물넷부터 36년째, 경남대학교의 전임을 시작한 스물일곱부터 33년째 상아탑을 지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저보다 앞서 이 길을 걸어가신 선배님들을 뵈며 참으로 끈기 있게 한 길을 걸어오셨구나!’라고 경이로운 눈길을 보내곤 했는데, 저도 이미 그 반열에 들어서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간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 그저 잠시 졸다 깨어보니 한낮이 기울어 버린그런 느낌입니다. 이제 비로소 흘려보낸 시간의 덧없음과 함께 맞이하는 시간의 질과 양이 나날이 달라짐을 절감합니다. 명문 <귀거래사(歸去來辭)>를 통해 마음이 육신의 노예가 되어(心爲形役)’ 동분서주하던 과거의 시간대에서 전원으로 돌아온 뒤 어제가 그릇되었고 지금이 옳다(昨非而今是)’고 선언한 도연명(陶淵明)을 떠올립니다. 저도 무명(無明)의 어제에서 깨달음의 오늘로 돌아 왔다고 한다면, 좀 주제넘은 말일까요? 시간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좀 더 본질에 충실한 생활로 돌아간() 것을 도연명이 말한 작비금시(昨非今是)’의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지요?

 

꽤 오래 전에 귀한 자료(<거창가>)를 입수한 뒤 책 한 권과 논문 여러 편을 낸 바 있으나, 다른 데 신경을 쓰다가 그 귀한 것을 그만 10년 넘게 망각의 늪에 빠뜨려 놓고 있었습니다. 최근 새로 쓴 글들을 하나로 엮고, 오독(誤讀)오역(誤譯)을 바로잡아 새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던가요? 책이 나온 뒤 가족들과 지인들을 불러다가 소중한 약속을 나누다가, 오랜 세월 한솥밥을 먹어 온 벗님들을 문득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욕심은 후회를 남기고, 반성 없는 후회는 파멸을 부른다는 금언을 되새기며, 이 공동체에서 더 머물게 될 몇 년 간 좋은 추억들만쌓고 싶은 소망으로 파편화된 제 학문적 견해들이나마 엮어 올리오니, 부디 소납(笑納)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7. 12. 31.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규익 드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 1. 2. 11:48

지나온 40, 또 다른 40

-새문사 40주년을 축하함

 

 

조규익(숭실대 교수)

 

 

사범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되었고, 모 대학 교육대학원에 잠시 적을 두었었다. 어수선하기 짝이 없던 1978년의 일이다. 교육대학원 재학 중 그 대학 도서관에서 쉘리(P. B. Shelley)<<시의 옹호(A Defence of Poetry)>>를 우연히 만났다. 시론 강의를 들어볼 기회가 없었던 내게 이 책이 주는 충격은 컸다.

 

우선 제목이 흥미로웠다. ‘시의 옹호? ‘사람들의 비판으로부터 시를 변호하겠다는 뜻일 텐데, 그 말이 내 호기심을 도발했다. ‘를 경()으로까지 숭배해 온 동양에서야 시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 내가 알고 있는 시 혹은 시인에 대한 비판은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이 유일했고, 그의 논리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발원한 서양 시론의 발판이었다. 그래서 그 책이 눈에 뜨였던 것일까.

 

다 읽고 나자, 새삼 번역자와 출판사가 눈에 들어왔다. 영문학자이자 비평가였던 윤종혁 선생은 당시 지식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던 인사였으나, 신생 새문사의 출판사명은 아주 생소했다. ‘새롭다는 뜻일 것이고, 출판사인 이상 이란 을 뜻할 텐데, ‘신문(新文)’이라 하든지 차라리 새 글이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아니면 말 그대로 새 문(new gate)’의 뜻일까. 의아함과 호기심으로 새문사란 명칭이 마음에 콕 박힌 것은 그 때부터였다.

 

직장과 교육대학원을 접고,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모 대학에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지적 홀로서기를 준비하던 내 대학원 시절은 영인본 출판의 전성기였고, 의미 있는 연구서들이 대량 출간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때 맞춰 새문사에서도 내 전공분야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병욱, 김열규, 신동욱 등 당대를 풍미하던 선학들이 국문학의 키를 잡고 새문사를 한국 지식사회의 광장으로 몰고 나왔다.

 

새문사의 책이 나올 때마다 두려움과 부러움이 엄습했다. 이 분들을 능가하는 이론과 논리로 내 시대를 열어 볼 수 있을 것인가. 새문사에서 이 정도의 책들을 낼 기회가 내게도 주어질 것인가. 전자는 두려움, 후자는 부러움이었다. 새문사의 책이 나올 때마다 내 호주머니는 가벼워졌고, 두려움과 부러움의 무게는 커져만 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몇몇 출판사들에서 내 책들을 내기도 했지만, 새문사에는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두려움과 부러움이 오기로 변하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흘려보낸, 긴 세월이었다. 좋은 글의 생산자도, 읽어줄 소비자도 많아 한국문학이 잘 나가던 당시였다. 시장의 활황으로 좋은 출판사들의 목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무지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한 복판에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책에 갈급(渴急)하며 살아왔다. 교과서 외에 읽을 거라곤 비료 부대에 인쇄된 글들뿐이었다. 책에 관한 내 유년기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더 이상 책을 놓아둘 공간이 없는 최근까지 지출의 1순위는 책이다. 그래서 좋은 책과 저자, 출판사는 내가 선망하는 불변의 대상들이다. 3, 40년 세월의 갈피 속에서 저자와 출판사가 함께 이룩한 학문적 결실의 양적인 증대나 의미 있는 발전은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우리 지식사회가 이제 학문의 르네상스를 넘어 완숙기에 접어 든 것이다.

 

당시 40대 초반이셨을 이규 사장님을 몇 해 전에 뵈었다. ‘처음으로 부탁을 받아새로운 세대의 <<한국문학개론>>을 여러 학자들과 함께 만들었고, 내친 김에 <<조선조 악장 연구>>도 낼 수 있었다. 학생에서 학자로 변신해온 지난 세월은 책에 대한 내 트라우마의 치유 기간이었고, 바야흐로 장년에 접어든 새문사의 성장기였으며, 우리나라 지식사회의 완숙기였다. 이제 누군가 또 다른 트라우마 보유자를 발굴하여 그와 함께 또 다시 40년을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불혹(不惑)’에 접어든 새문사가 계획하고 수행해야 할 당면 과제가 아닐까.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