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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규'에 해당되는 글 55건
- 2009.01.01 새해 인사
- 2008.02.26 눈 내린 산길을 걸어서 출근하며 2
- 2008.02.16 춤추는 무희여, 그대 새의 모습을 한 신선이여!-춘앵전을 보고-
- 2008.02.01 호남성통신 4 : 얼어붙은 장가계(張家界), 사라진 무릉도원(武陵桃園) -천문산(天門山)의 서리꽃 눈꽃과 끊어진 다리의 씁쓸한 추억-
- 2008.01.23 호남성통신 2-아, 악록의 정신이여! -
- 2008.01.03 학기 말 성적평가를 마치고
눈 내린 산길을 걸어서 출근하며
조규익
출근길의 어려움에 고통 받는 분들은 ‘미친 놈!’이라 욕하시겠지만, 밤에 눈이 내리면 못 말릴 정도로 들뜬다. 아침 일찍 아이젠에 배낭차림으로 산길을 걸어 학교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저 끝에 누가 있을까 아, 나무와 눈의 조화여!
고독한 눈길
***
내 어릴 적엔 눈이 많았다. 논바닥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를 때까지도 차가운 바람은 내 작은 몸 곳곳을 파고들어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눈과 얼음이 우리의 눈길을 벗어나는 적이 없었던 한겨울은 어떠했겠는가. 30리 들길과 산길을 걸어야 하는 등굣길의 고통이야 말하여 무엇 하리오. 얄팍한 고무신발의 밑창은 닳아 반들거리고, 가끔은 찢어져 너덜거리기도 했다. 얼음으로 판장 박힌 길에 나서자마자 앞·뒤·옆으로 곡예를 하거나 넘어지고 구르기 일쑤. 유도의 낙법(落法)은 그 시절 자연적으로 체득한 생존법이었다. 눈들의 환성
***
그렇다. 그 시절 누군들 추위와 배고픔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랴. 그래서 하얀 눈은 아련한 설렘과 궁핍의 이미지로 나를 들뜨게 만드는 건 아닐까. 밤에 눈이 내리면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스키장 갈 생각에 잠을 못 이루겠지만, 유년기의 상처로 남은 마음의 궁핍에서 자유롭지 않은 나는 연구실에 도달하기까지 그 30분 남짓의 호사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 어쩌면 음력 그믐날 밤 설빔을 안고 잠 못 이루던 그 시절의 흥분이 이랬던가, 잠시 회상해본다.
2008. 2. 26. 눈 내린 산길을 걸으며 백규
-춘앵전을 보고-
조규익
당나라 고종때의 일이다. 무슨 근심이 있었던지 새벽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던 황제. 밖으로부터 꾀꼬리 울음소리를 들었다. 슬며시 창을 열고 내다본즉 노란 색 꾀꼬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갑작스레 흥이 일어, 즉시 악공 백명달을 불렀다. ‘저 꾀꼬리의 자태를 춤과 노래로 만들어보라’는 황제의 명을 받은 그는 침식을 잊은 채 며칠을 고심했다. 마침내 ‘춘앵전(春鶯囀)’을 완성한 그는 아리따운 무희를 선정, 무복(舞服)으로 분장시킨 뒤 또 며칠을 연습시켰다. 자신이 붙은 악공은 드디어 황제 앞에 그 춤과 노래를 올렸다. 황제는 크게 만족했고, 그로부터 이 춤곡은 궁중에서 공연되었으며, 우리나라에까지 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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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숭실대학교 한국전통문예연구소의 학술발표회에서는 조선조 후기 정재에 관한 5편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춘앵전 공연도 있었다. 발표된 논문들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으나, 춘앵전 공연은 그날 행사의 ‘화룡점정(畵龍點睛)’ 격이었다.
황금색 옷으로 갈아입은 무원 최서윤씨는 흡사 신선이라도 된 듯, 일렁이며 춤을 추었다. 객석에 앉은 학인(學人)들은 넋을 잃고 아름다운 춤사위에 취했다. 춤이 진행되는 10분 가까이 객석으로부턴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고, 가끔씩 탄성만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었다. ‘감동적인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무아지경에 몰입한 춤꾼 최서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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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앵전에는 두 가지 이미지, 즉 아름다운 꾀꼬리의 그것과 가볍고 자유로운 신선의 그것이 겹쳐 있었다. 옛날부터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으면 신선이 된다고 믿었는데, 그 상태로 날아오르는 것을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 했다. 하느님의 사자로 선향(仙鄕)인 곤륜산을 오르내리던 신조(神鳥)가 봉황이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신선이 봉황이나 학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덕흥리 고분과 무용총에도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승천(昇天)하는 존재, 혹은 자유로운 존재라는 점에서 신선과 새는 유사한 것일까. 새의 동작을 모방하여 춤사위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낸 것도 새가 날개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날개는 ‘날아다니는 신선’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날개가 있어야 복잡한 인간세상을 초탈하는 신선이 되어 신적인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 기독교의 천사와 비슷한 존재일까.
꾀꼬리의 아름다움을 본떠 만든 춘앵전은 새의 이미지와 인간 및 선계를 성공적으로 연결시켰으니, 이 정재 30박 째의 동작인 ‘과교선(過橋仙)’은 그 핵심이다. 이것은 춘앵전 동작 가운데 압권인 이 용어를 번역하면 ‘다리를 건너는 신선’ 더 구체적으론 ‘신선이 다리를 건너듯 추는 춤사위’가 될 텐데, 무원이 좌와 우로 돌 때 마치 신선이 다리를 건너가듯 사뿐사뿐 춤을 추는 모양에서 유추된 용어가 바로 그것이다.
춤꾼 최서윤씨의 환상적인 춤사위
***
그러나 과연 이것뿐일까. 다음의 동작들은 내 눈을 어지럽게 했다.
*새가 날개를 펴고 날듯이 빙글빙글 도는 ‘회란(廻鸞)’(8박)
*날아오르듯 발을 가볍게 디디며 추는 ‘비리(飛履)’(11박)
*한 층 한 층 탑에 올라가듯 세 걸음 나아가며 차츰 두 팔을 올려 드는 ‘탑탑고(塔塔高)’(15박)
*원앙을 쳐서 날갯짓을 하도록 소매를 뿌려 내리는 ‘타원앙장(打鴛鴦場)’(16박)
*기분 좋은 산들바람에 하늘하늘 걷는 듯 악절에 맞추어 추는 ‘사사보여의풍(傞傞步如意風)’(24박)
*금모래가 날리는 것처럼 황금색 꾀꼬리가 나뭇가지를 분주하게 오락가락하듯 앞뒤로 나왔다 물러
갔다 하는 ‘비금사(飛金沙)’(27박)
*제비가 둥지로 돌아가듯 춤추며 물러가는 ‘연귀소(燕歸巢)’(32박)
*새가 아름다운 꽃 앞에서 요염한 자태를 짓듯 교태를 부리는 ‘화전태(花前態)’(18박)
*꾀꼬리가 날갯짓을 하듯 소매를 들어 휘두르는 ‘요수(搖袖)’(17박)
*새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잎을 물려다 그만 두듯 물러서는 ‘당퇴립(當退立)’(20박)
*새가 날개를 펼치려다 내리는 것처럼 소매를 살짝 나부끼는 ‘소섬수(小閃袖)’(21박)
*새가 번갈아 좌우로 몸을 기울여 걷듯 하는 ‘사예거(斜曳裾)’(7박)
*새가 몸을 높였다 낮추는 동작을 이어 하듯 소매를 낮추었다 높였다 하는 ‘저앙수(低昻袖)’(9박)
*꾀꼬리가 날개를 펴고 뛰어 올라 흔들리는 꽃잎을 잡듯이 세 번 몸을 돌리는 ‘전화지(轉花持)’(19
박)
*꾀꼬리가 머리를 낮추었다가 들듯 허리를 꺾었다가 다시 펴는 ‘절요이요(折腰理腰)’(10박)
*꾀꼬리가 두 날개를 한일자로 폈다가 반쯤 내리고 다시 올려 뿌리듯 하는 ‘수수쌍불(垂手雙拂)’(3
박)
*꾀꼬리가 살래살래 몸을 돌리듯 물결이 맴돌 듯 몸을 돌리며 춤을 추는 ‘회파신(廻波身)’(29박)
등등. 거의 모든 춤동작이 새의 움직임이었고, 그 바탕엔 신선이 있었다.
***
무대 위의 돗자리가 치워지고 무희가 사라진 다음에야 우리는 현실계로 돌아왔고,
그 시점으로부터 나는 황금색 꾀꼬리와 신선이 만들어낸 선계(仙界)의 환상공간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아, 우리를 잡답(雜沓)의 일상으로 되돌려 보낸 무희여!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춘앵전’의 무희여!
2008. 2. 13.
백규
얼어붙은 장가계(張家界), 사라진 무릉도원(武陵桃源)
-천문산(天門山)의 서리꽃 눈꽃과 끊어진 다리의 씁쓸한 추억-
혹시 이번 참에 무릉도원을 밟아보는 것이나 아닐까. 지도에서 무릉원(武陵源)을 목격하고는 그곳을 주책없이 대뜸 천하의 절경이라 일컫는 장가계와 연관 지어 생각하기로 했다. 복숭아꽃 만발한 무릉도원.
언제인가 외부인과 연락이 단절된 그곳에 어부 한 사람이 어쩌다가 들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그곳에 천하의 절대 선경(仙境)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사람을 잡고 물으니, 자신들은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이곳에 들어온 이래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생사를 초월한 절대 낙원이 바로 그곳이었던 것. 자신들의 존재와 공간을 누설치 말 것을 약속하고 빠져나온 어부가 그곳에 다시 갔으나, ‘다시는’ 그곳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바로 그 무릉도원엘 가고 있다는 설렘으로 잠시나마 가슴이 벅차올랐다. 꿈같이 선경에 들렀다가 다시 그곳을 찾아가는 어부의 심정으로. 우리는 험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상덕국제호텔에서 이른 아침을 먹은 다음 우리는 장가계를 향해 허위허위 너덧 시간을 달렸다. 상덕의 시계(市界)를 벗어나 무릉원으로 진입할수록 고도는 높아갔고, 주변의 봉우리들은 날이 서기 시작했다. 길 주변 산기슭에 띄엄띄엄 널려있는 민가들은 온기를 모조리 잃어버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한 결 같이 시멘트로 지은 단층 혹은 2층들이었는데, 짓다가 중단한 집들이 태반이었다. 어둠이 깔려도 따스한 불빛 한 줄기 새어나오지 않고, 텅 빈 공간을 채운 것은 적막과 추위뿐이었다.
다들 어디에 갔을까. 호남성 일대의 가옥들에는 난방장치가 아예 없다는 설명을 들었고, 지금까지 호텔들을 거치면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썰렁한 날씨 속에 사람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거지가 남 잠자리 걱정해주듯, 나는 노랑노랑한 아이들과 구부정한 이 땅의 할매 할아배들이 눈에 밟혔다.
고도가 높아갈수록 기온은 낮아지고, 버스의 창문에 눌어붙는 입김과 성에로 창밖은 가려지고 있었다. 더구나 닥쳐오는 산간의 이른 어둑발은 우리를 하염없는 졸음의 구렁으로 몰아넣었다. 한참 꿈속을 헤매는데 모두 내려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이 들려 와 퍼뜩 잠이 깼다. 몇 년 전의 물난리로 없어진 황가 계곡의 다리가 아직 공사 중이라서 차가 갈 수 없으니 우리는 모두 내려 걸어서 계곡을 건너야 한다고 했다.
무릉원 황가계곡의 끊어진 다리, 중단된 공사현장
깜깜한 밤, 차에서 내리자 토가족 원주민들이 몰려왔다. 계곡 건너편으로 짐을 지고 갈 일꾼들과 사람들이 빙판 진 계곡 길을 미끄러짐 없이 건너 갈 수 있도록 발에 감을 짚신 등을 팔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다리 공사에서 품을 팔아봤자 하루 종일 20원 벌이가 고작이었으나, 트렁크 두어 개만 계곡 건너편으로 옮겨주면 40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이곳 사람들이 다리의 완공을 원치 않는다는 것도 헛말이 아니었다.
무릉원을 떠나던 날 우리의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계곡을 건너는 토가족 남성들
어릴 적 눈 온 날 등굣길, 고무신발에 새끼를 동여 본 이후 처음으로 엉성한 짚신을 신고 계곡을 건넜다. 깊이가 30m 이상, 길이가 500여m가 넘는 끔찍한 계곡이었다. 빙판에 미끄럽기도 하고 질퍽거리기도 했다. 달빛도 없는 우중충하고 깜깜한 밤중. 인적 없는 타국의 계곡을 건너는 50여인의 나그네들은 참으로 고된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걸어서 길 공사가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자 토가족 원주민들의 억지가 이어졌다. 계곡을 건너오는 도중 손을 잡아주었으니 20원을 더 내라고도 하고, 비용으로 가방 당 20원을 더 내라고도 하면서 짐을 내주지 않는 것이었다. 험악한 순간이었다. 원래 산적(山賊) 출신이니 어쩔 수 없다고 혀를 차면서 이들의 억지 대부분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무릉원에 입성했고, 천자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
다음날 천문산을 케이블카로 올랐다. 공중에서 내려다보이는 무릉원 시가지의 집들 모두 추위에 떨고 있었다. 모두 얼어 있었다. 살아있는 것은 간혹 뿜어대는 열차의 경적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늘 진 주택들의 지붕 밑 빨랫줄에는 그들의 남루(襤樓)가 물에 젖은 채 걸려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보이는 구절양장의 도로
눈과 서리에 얼어붙은 천문산의 나무들
장가계의 산들 중 역사 기록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천문산. 운몽산이나 고량산 등의 이칭을 지닌 이 산은 해발 1518m나 된다. 해발 1300m 지점에 환하게 뚫린 구멍 즉 천문(天門)이 나타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천연 종유굴인 천문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곳에 가려면 케이블카에서 내려 다시 99개의 고개를 버스로 올라야 하고, 다시 가파른 999 계단을 걸어 올라야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도중 안개에 가려 어렴풋하긴 했으나, 천문동을 볼 수 있었다. 높이 131m에 너비 57m, 깊이 60m나 되는 큰 동굴이었다. 시내에서 시작되는 케이블카는 종착점까지 7.45km, 편도 35분의 엄청난 길이였다. 오금이 저려오는 1시간여의 체험. 그러나 손에 잡힐 듯한 설화목(雪花木)들 덕택에 그 공포는 찬탄과 쾌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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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종착점. 모든 것이 얼어 있었고, 나무들은 무거운 눈을 이고 있었는데, 나무들을 감싸고 있는 눈은 부스러지고 흩어지는 게 아니라 아예 얼어붙어 있었다. 나무들 모두 마치 두꺼운 솜바지를 입고 있는 것 같았다.
눈과 서리에 얼어붙은 천문산의 나무들
서리와 눈으로 얼어붙은 나무들 사이에서
오늘 무릉도원을 찾아 왔다가 추위에 얼고 삶에 찌든 사람들을 만나 우리의 마음마저 썰렁했지만, 이제 산정의 순수한 설화목들 속에서 그간 잃어버리고 있던 순수를 되찾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다리 끊어진 계곡을 천신만고 건너온 고생은 보상을 받지 않았는가. 그리고 우리가 이곳을 내려가면 언제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으랴! 그러고 보면 우연히 만난 무릉도원을 다시 찾지 못한 그 어부의 경우처럼, 이 천문산 케이블카의 종점이야말로 우리에겐 그 어부의 무릉도원과 같은 곳이 아니랴? 그러니 무릉도원 밖에서 무릉도원을 찾을 일이 아니오, 세상 밖에서 세상을 찾을 일이 아님을 오늘 이 천문산은 내게 포효하듯 말해주었다. 그래, 이곳에 다시는 못 올지라도 이제 세상으로 내려가자!
천문산에 오른 기쁨을 만끽하며
2008. 1. 24. 백규
-아, 악록의 정신이여!-
조규익
호남성은 궂은 겨울비에 젖어 있었다. 남방에 있다하여 내가 방심했던 것일까. 가이드의 표현대로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가 매섭다. 차라리 ‘에이는 듯한’ 우리나라의 겨울날씨가 낫다. 이곳은 매우 습한 곳이라 우리보다 기온은 높되 더 춥게 느껴지는 듯하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어느 곳을 가도 난방이 되지 않거나 시원치 않다는 사실이다. 4성급 호텔임에도 천정 밑에서 겨우 온풍기 하나가 돌아갈 뿐이었다.
우리나라야 밖에서 좀 추워도 집안으로 들어오면 등을 지질 수 있는 온돌이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온돌을 고안해 사용하기 시작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야말로 세계에서 으뜸이랄 수 있다. 이곳에서 움츠리고 길가를 걷다보면 퍼렇게 질린 얼굴로 바람 휑하니 통하는 가게를 지키는 사람들이 안쓰럽다.
호남성은 중국 22개 성 가운데 면적으로 10위(21.18㎢), 인구로 7위(6천600만), 인구밀도로 13위(313/㎢)란다. 북쪽의 호북(湖北)성과 동쪽의 장시성, 남쪽의 광둥성, 남서쪽의 장족 자치구, 서쪽의 귀주성, 북서쪽의 중경과 접한 곳. 우리가 첫발을 내디딘 장사는 호남성의 성도(省都)다. 모택동, 유소기, 호요방, 주룽지, 화룡장군 등 걸출한 인물이 많이 나온 곳도 이곳 호남성이며, 김구선생이 잠시 피신했던 곳도 이곳이다.
악록서원 앞에 세워져 있는 모택동 상
이곳에도 소수민족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토가족, 묘족, 백족, 뚱족 등 네 종족의 수가 많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옛날 이 지역에서 '산적' 노릇을 하던 토가족은 단연 으뜸. 왜 토가족(土家族 )일까.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중국인이 섬기던 토지신은 키가 작다고 한다. 그런데 토가족은 대체로 키가 작은 종족이다. 그래서 ‘토가족’이라 하며, 야채를 위주로 하는 이곳의 식사를 ‘토채(土菜)’라 한다는 것. 물론 동정호(洞庭湖)의 남쪽인 데서 명칭을 얻은 호남성의 약칭은 ‘상강(湘江)’에서 온 ‘상(湘)’이오, 이 지역의 음식은 ‘상채(湘菜)’다. 남북으로 흐르는 상강은 장사 시가지를 동과 서로 나누고 있었다. 우리가 잠을 잔 시대제경호텔도, 호남사범대학도, 악록서원도 모두 서쪽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장사시에 있는 동안 주로 서쪽에서만 움직인 셈이다.
주희 상
우리 역사를 파행으로 몰아간 중국.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들이 품고 있는 도학의 큰 맥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서원의 경내를 거닐며 산같이 위대한 지성들이 산 속에 파묻혀 진리를 궁구하고 토론하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 서원에선 그 옛날 주희(朱熹)와 장식(張栻)이 토론을 벌였다. 지금보다 삶의 여건이 결코 좋을 리 없었을 터. 백발이 성성한 대학자들이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이곳에 틀어박혀 학문을 토론했을 것이니, 참으로 존경스럽도다!
호남사범대학 문학원
학문을 한답시고 애꿎은 종이와 전기만 낭비하고 있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염량세태에 휘둘리며 일희일비하는 백규, 학문의 폭과 깊이를 획기적으로 확장시키려 하지도 못하고, 가르침을 줄만한 세상의 현인들을 찾아 나서지도 못하는 백규, 공부에 모든 것을 걸지도 못하는 겁한(怯漢) 백규...
호남성의 악록서원에서 위대한 선현들의 마음자리를 깨닫곤 헤어날 수 없는 부끄러움에 빠져드는 순간이다.
악록서원 어서루
학기 말 성적 평가를 마치고 조규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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