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3. 11. 23. 09:05

 

우리도 스토리가 있는 길을 한 번 만들어 봅시다!

-1-

 

 

손 형,

 

참 오랜만입니다. 그간 본의 아니게 격조했었군요. 오늘은 형께 모처럼 길 이야기를 건네 볼까 합니다. 뜬금없이 웬 길 이야기를 하느냐고 타박하지 말아 주세요. 우리가 작은 발과 짧은 다리를 움직여 꼬박꼬박 넘어 다니던 그 옛날의 시골길이 생각나시나요? 고갯길, 원둑길, 논둑길, 고샅길, 신작로 등 갖가지 길들이 이어져 우리의 시골길을 이루고 있었지요. , 혹시 박목월의 시 <나그네>를 기억하시는지요? 함께 감상해 보실까요?

 


목월 시인의 젊은 시절 모습<동리목월기념관>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이 시 속의 나그네가 단순한 존재는 아니겠지요. 아마도 그는 어떤 복잡한 사연을 갖고 길을 떠난 게 분명하군요. 물론 무작정 길을 떠났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달처럼 미끄러지듯 남쪽을 향해흐트러짐 없이 가고 있는 모양으로 보아 속으로는 어떤 목적과 사연이 있을 겁니다. 그가 가고 있는 길 또한 단순한 도로가 아니겠지요. 그래서 시인도 남쪽지방으로 삼백 리나 벋어 있는 외줄기 길을 말했을 겁니다.

 

~길에는 온갖 사연들이 스며들어 있었겠지요. ‘사랑, 미움, 믿음, 배신, 약속등등 몇몇 기호로 요약되는 복합적 인간사가 이 길바닥에는 깔려 있을 겁니다. 길목 마다 조롱박처럼 매달려 있는 주막에는 늘 술이 익어가고, 그런 술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인간사가 좀 복잡합니까? 얼굴 반반하고 몸매 고운 주모라도 있는 경우라면 더 복잡해지겠지요. 고속도로와 철길이 생기면서 옛길은 사라졌지만, 우리의 목월 선생은 그 옛길을 잘도 찾아내서 우리에게 힌트로 던져 주신 것이지요.

 


엘크시티에서 스틸워터로 오는 길

 

 

우리에게도 삼백 리나 되는 남쪽 길이 있었다는 걸 알려 주려는 노 시인의 마음 씀씀이가 제겐 감동 그 자체입니다. 아마도 서울에서 저 전라남도 혹은 경상남도 바닷가 어디쯤까지 이어지는 길이었겠지요. 그걸 찾아내어 복원하라는 것이 목월 선생의 묵시(黙示) 아니겠는지요?

 

요즘 제주도에서 시작한 올레길이 뜨면서 그와 유사한 둘레길도 나타난 모양입디다만. 숲이 있는 곳이면 마구잡이로 파헤쳐 길을 만들어 놓고는 사람들을 유인하는 모습이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습디다. 말하자면 요새 만들어지는 길은 스토리 혹은 히스토리가 없는 무미건조한 공간일 뿐이지요. 걷는 자들이 무언가를 갖고 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물리적인 길이라는 점에서, 그것들은 목월 선생이 발견하신 남도 삼백 리와는 비교될 수 없지요.

 

 


이중섭의 <길>(이미지 갤러리)

 

 

***

 

이곳에 와서 지낸 몇 달 동안 여러 가지를 목격했습니다만, 가장 가슴 뛰는 일은 ‘66번 길을 발견한 일입니다. 처음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요. ‘참 할 일 없는 미국인들이라고 빈정거리면서 말이지요. ‘넓은 땅덩어리에 필요하면 길을 뚫고, 그 길이 불편하면 뭉개버리고 새 길이나 다른 길을 뚫는 게 예사이지, 그 무슨 길을 가지고 이리도 호들갑을 떠는가?’ 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한 번 두 번 지나다니면서 이게 예사 길이 아니라는 점, 길이란 그저 다니는 것만으로 소임을 다하는 단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지요.

 


여덟개의 주[일리노이-미주리-캔자스-오클라호마-텍사스-뉴멕시코-애리조나
-캘리포니아]를 통과하는 66번 도로 

 

다니면서 적지 않은 걸 경험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에드몬드 시티(Edmond City) 근처의 아카디아(Arcadia)에서 발견한 POPS를 볼까요? 66번 도로를 달리다가 멀리 앞을 바라보니 '빨대 꽂은 음료수 병' 하나가 우뚝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지나면서 보니 주유소였는데, 미국에는 주유소에서 음식도 팔고 물건도 팔지 않아요? 주유소라면 그 흔한 이른바 폴 사인(pole sign)’을 세워 놓든가 영 뭣하면 주유기 표시라도 세워 놓을 것이지 대체 '빨대 꽂은 음료수 병'을 세워 놓은 건 참으로 요상했어요.

 


POPS 주유소 마당에 세워진 '빨대 꽂은 병' 

 

그래서 우리는 그 다음번에 작정하고 이 주유소에 들어가 보았지요. 과연 레스토랑의 유리창이나 벽에는 온갖 음료수 병들로 또 한 겹을 이루고 있습디다. 사람들은 음식을 주문해 놓고 벽 쪽으로 가서 마음에 드는 걸 하나씩 들고 오는 거지요. 그러고 보니 밖에 서 있는 거대한 병 모양의 조형물은 바로 이 음료수 병들을 바탕으로 디자인한 것이더군요 글쎄.

 


POPS의 내부 앞쪽 창 

 

종업원을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여기에도 내력이 있더군요. 이게 바로 체사피크 에너지(Chesapeake Energy)라고,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천연가스 생산 회사이자 원유와 액화천연가스의 11번째 큰 생산회사로서 오클라호마 시티에 본부를 두고 있는 그 회사의 CEO 오브리 맥클레돈(Aubrey McCledon)이 아이디어를 내고, 건축가 랜드 엘리옷(Rand Elliot)d이 디자인한 것이라네요. 2007년 여름에 문을 연 뒤 급속하게 66번 도로 관광의 매력포인트로 부상했다는군요. 66번 도로 주변을 돋보이게 하는 66피트 높이의 소다 병이 바로 이것이지요. 그리고 이 POPS는 주유소 편의점 안에 비치되어 있는 수백 종의 소다 향들과 각종 브랜드들을 자랑하고 있지요. 이 뿐 아니라 이 편의점과 함께 각종 버거, 소다, 셰이크 등 다양한 식당 음식들도 갖추어져 있구요. 여기서 우리는 66번 도로가 살아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지요. '이미 존재하는 66번 도로', 이 도로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 그리고 그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바로 66번 도로를 살려 낸 힘의 원천이었어요.  

 


POPS 내부 마트 

 

또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이 주유소에서 멋진 음료수 하나를 골라 목을 축인 다음 다시 길에 올랐지요. 한참을 가다가 루터(Luther)라는  지역의 경계에 들어오자마자 길가에서 주차장인지 마굿간인지 버려진 폐가인지 언뜻 분간이 가지 않는 허름한 건물 하나를 발견했어요.

 

차를 세우고 보니, ‘66번 도로의 경계선 레스토랑[The Boundary Restaurant on Route 66]’이란 멋진 이름의 식당이었어요. 버려진 길가 건물을 외부는 그냥 두고 내부만 수리하여 레스토랑으로 개업한 경우이겠지요. 내가 보기에 내부는 온갖 앤틱 풍의 재료들로 덕지덕지 혼란스러웠지만, 미국인들의 성향은 잘 반영하고 있었지요.

 


66번 도로 Luther에서 만난 길가 '바운더리 레스토랑'


'바운더리 레스토랑' 의 문 


옛날 화폐를 이용한 이 식당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눈에 띈다.

 

 

바비큐, 핫독, 소세지 등을 팔고 있는 그 집 음식의 맛은 그저 그랬지만, 중동계 이민의 후예로 자신을 소개한 주인은 자신의 요리와 식당의 인테리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어요. 식대가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끊임없이 들어 왔지요. 그들이 만약 속도와 시간의 경제성에 충실한 현대인이었다면, 이 길로 접어들어 오지도 않았겠지요. 경제성에 충실한 사람들 사이에 살다보니 많이 피곤을 느낀 사람들이 옛날의 66번 도로를 찾아 여행을 하는 것이고, 입맛이나 분위기 또한 지난 시절의 그것을 추구하게 된 것이겠지요.

 


'바운더리 레스토랑'의 주방장 겸 주인이 요리하는 모습 


'바운더리 레스토랑'의 음식. 옛날 식 음식이라 함.


 '바운더리 레스토랑'에서 주인과 함께

 

 

그런 분위기, 복고풍이랄까요? 실제 삶에서는 절대 옛날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현대인의 일반적 성향 아니겠어요? 그런 현대인들이 가끔씩 자신의 공간 밖에서 순간적인 일탈을 꿈꾸는 것이고, 그런 일탈의 욕망이 66번 도로에 대한 향수로 표출되는 것이겠지요. 66번 도로를 복원시킨 사람들도 일반인들의 그런 심리를 간파한 것이겠고요. 그래서 이 길을 현대인의 경제논리를 넘어서는[beyond economic logic of modern people]’ ‘수퍼 하이웨이 66번 도로[Super Highway Route 66]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 제 생각입니다. <나머지는 다음번에 계속됩니다>

Posted by kicho
알림2011. 11. 15. 20:28


한국문예연구소, 이 가을에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다!!!

 

이 가을 들어 한국문예연구소의 뛰어난 학자들이 좋은 책들을 발간했습니다.

정영문 박사가 <<조선시대 통신사문학 연구>>(지식과교양/학술총서 30)과 <<조선시대 사행록의 텍스트와 콘텍스트>>(학고방/학술총서 32)를, 김성훈 박사가 <<바늘(箴)로 마음을 치료하다!>>(학고방/*학술총서 33)를, 박선영 박사가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은유미학>>(지식과 교양/학술총서 34)를, 민충환 교수가 <<변영태가 쓴 영시집 Songs From Korea>>(지식과교양/문예총서 13)을 각각 펴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디자인도 깔끔하고 멋집니다. 축하의 말씀들을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각 저서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영문

 

<<조선시대 통신사문학 연구>>,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30으로 출간!!!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로 발간된 <<朝鮮時代 通信使文學硏究>>(정영문, 지식과교양)는 조선시대에 일본을 여행했던 통신사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연구서이다. 한국과 일본은 고대국가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교류가 있었지만, 이러한 교류는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교류라기보다는 국가적인 필요에 의해 진행된 정책적인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한ㆍ일간의 교류를 기록한 자료가 많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 그나마 풍부한 자료를 수록하고 있는 <<해행총재>>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해행총재>>를 텍스트로 삼아 조선시대의 한ㆍ일 교류사를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박사학위논문을 다듬어 <<朝鮮時代 通信使文學硏究>>로 출판하였다. 이 책은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Ⅱ장에는 통신사의 사행노정과 그 노정이 지니는 성격, 조선시대 통신사행의 시기별 분류와 각각의 성격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임진왜란, 1636년, 1682년 전ㆍ후로 통신사의 사행을 4분류하면서 각 시기를 대표하는 사행록을 제시하였는데, 건국직후에서부터 임진왜란 직전까지 사행했던 통신사의 대표적인 기록으로는 송희경의 <<일본행록>>과 김성일의 <<해사록>>을 제시하였다. 이들 사행록을 Ⅲ장에서 분석하고 있다. 1592(선조 25)년부터 1635(인조 13)년까지 사행한 통신사의 사행록은 Ⅳ장에서 분석 제시하였다. 1636(인조 14)년부터 1655(효종 6)년까지 사행한 통신사의 대표적인 기록으로는 김세렴의 <<해사록>>과 남용익의 <<부상록>>을 제시하고, 이들 사행록을 Ⅴ장에서 분석하였다. 1682(숙종 8)년부터 1811(순조 11)년까지 일본을 사행한 통신사의 대표적인 기록으로는 신유한의 <<해유록>>과 조엄의 <<해사일기>>을 제시하고, 이를 Ⅵ장에서 분석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저자는 통신사가 비록 시기마다 다른 특징을 보이지만, 왜구문제해결이라는 현실적인 필요성에서 점차 문화교류라는 형식적인 교류로 성격이 변모되어 갔다고 보았다.

조선시대에 외국을 여행하는 기회는 사행에 참여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할 정도였다. 이런 까닭에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조선시대에 주변국가와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사행록은 여행하면서 실제로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서술한 기록문학인 동시에 보고문학이다. 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비록 한시형식으로 기록했다고 할지라도 문학적 상상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을 선험적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체험을 바탕으로 일본과 일본인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대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사행록을 읽음으로써 조선지식인들의 일본관과 일본의 풍속, 생활상 등을 이해할 수 있다. 사행록에 대한 연구서이기에 <<朝鮮時代 通信使文學硏究>>도 한ㆍ일 관계를 이해하는데 약간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도서춢판 지식과교양, 2011. 값 22,000원

 

2. 정영문

 

<<조선시대 사행록의 텍스트와 콘텍스트>>,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2로 발간!!!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2으로 발간된 <<조선시대 사행록의 텍스트와 콘텍스트>>(정영문, 학고방)는 사행체험과 인식, 사행을 계기로 발전하였던 지방의 관변공연물에 관한 연구논문을 정리한 것이다.

조선에서는 중국과 일본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를 진행하였는데, 이들 나라를 사행하고 돌아온 사신들은 자신의 견문과 감상을 기록하였다. 그 속에는 사행당시의 상황과 사행에 참여한 인물들의 인식만 아니라 사회, 문화, 외교, 경제 등의 다양하고 상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 중에는 조선시대에 한양과 지방에서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관변공연물에 대한 관심이 책으로 나온 것이다.

저자는 사행록을 텍스트로 하여 연구한 9편의 논문을 1부 연행사와 통신사의 기록과 인식과 2부 사행록과 문화적 배경에 나누어 수록하고, 사행록과 관련한 연구논저의 목록을 부록으로 첨부하였다.

사신행차는 정해진 노정을 따라 이동하였는데, 몇몇 지역에서는 사신을 위로하는 전별연이 있었다. 전별연은 숙소와 가까운 누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자리에서 주된 관심거리는 공연이었다. 이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주변의 여러 고을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공연무대 주변은 커다란 축제의 장이 되었다. 여기에서 공연되는 양상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각 고을을 대표하는 기생과 악공이 모여들어 기량을 드러낸 반면에 평안도 지역에서는 경제력을 갖춘 일부 지역에서 독자적인 공연을 기획하였다. 그러므로 공연된 춤과 음악을 통해서 지역의 문화적 우열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공연물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부 공연물은 선상기를 통해 궁중에 소개되어 궁중정재로 정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확산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신을 위로하는 전별연 등에서 공연된 관변공연물이 여러 해 동안 반복되면서 높은 수준의 형식미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당시의 관변공연물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공연의 정확한 면모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오늘날의 지방축제처럼 조선시대에도 축제가 있었고, 지방민들도 이러한 축제를 통해 문화를 향유하였음을 이 책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도서출판 학고방, 2011. 값 22,000원

 

3. 김성훈

 

『‘箴’문학의 세계, 바늘(箴)로 마음을 치료하다!』,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3으로 출간!!!

 

잠(箴)은 침(鍼)과 통용되는 字義를 가지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때 鍼을 놓았다. 이러한 의학적 효용성이 타인이나 자신을 규계(規戒)하는 목적을 지닌 문학 장르로 발전한 것이 바로 ‘箴’이다.

이에 의거하여 과거의 학자들 역시 마음속의 티끌을 미리 제거하고 예방하기 위해 ‘箴’이라는 장르의 글을 많이 창작했다. ‘箴’은 옛 성현들의 훌륭한 문구들을 가져다가 일상의 경계로 삼기에 매우 적합한 장르였으며, 그 글에는 교훈적인 내용을 오롯이 담아냈지만 문학이라는 유연한 문체를 그릇으로 했기에 수양의 도구로도 적합하다. 즉, 교훈과 경계가 될 만한 내용을 효용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장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역대작가들의 箴작품을 대상으로 그 양식적 특성을 살피기 위해 사상적, 표현적 특질을 두루 연구한 것이다. 이를 통해 그간에 철학적인 성격이 짙은 글로만 여겨왔던 箴의 문학성도 추출해내는 계기가 되었다.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2장에서는 箴의 발생 연원을 문헌적 측면과 개념적 측면으로 나누어 고찰했다. 문헌적 측면에서는 여러 문헌의 글을 살핀 결과, 箴이 三代에 발생하였으나 周代 이후에 더욱 뚜렷한 발전양상을 보인 것으로 판단했다. 개념적 측면에서는 허신의『설문해자(說文解字)』를 비롯한 몇몇 문헌을 통해서 箴이 효용성을 목적으로 하게 된 유래를 살폈다.

3장에서는, 箴의 종류가 관잠(官箴)과 사잠(私箴)으로 나뉘는 근거를 구체적으로 살폈고, 서로 주고받는 효용성을 다분히 가진 문학임을 확인했다. 또 경전류(經典類)의 전고(典故)를 활용하기에 적합한 장르임을 확인했으며, 心性 의인문학의 대표작품인「천군전(天君傳)」과 心性을 의인화한 箴을 비교하여 그 영향관계를 고찰했다. 더불어 五倫歌類의 교훈시가와의 비교를 통해 내용적 상관성을 살폈다.

4장에서는, 箴의 주제표현 양상을 직설적 경계와 비유적 경계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직설적 경계에서는 유학사상의 실천덕목과 유학적 정치관을 경계한 작품들을 주제별로 세분해보았다. 비유적 경계에서는 心性 의인화 표현이 보이는 箴을 고찰하여, 내용 전달의 효율성을 확인했다. 또 몇몇 사물 및 동물을 소재로 하여 비유적 표현을 구사한 작품들을 살폈다. 예를 들어, 거울의 속성을 비유해서 심성을 수양하는 箴의 내용을 확인했고, 사물 및 동물을 빗댄 풍유의 수사를 통해서도 箴의 문학성을 고찰했다.

5장에서는, 구약성서 ‘잠언’과의 비교를 통해 한문학 ‘箴’과의 공통적 요소를 살펴보았다. 잠언은 이야기 형식이 아니면서,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는 속담ㆍ격언ㆍ옛말ㆍ금언 등의 형식적 특성이 있는데, 이 잠언은 고립된 사건에서 끌어낸 관찰들이 아니며, 고립된 사건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니다. 이러한 점은 箴도 마찬가지인데, 箴에 담긴 교훈적 의미는 시대를 초월해서 적용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윤리적인 교훈을 주로 담아냈다는 점도 잠언과 箴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또 형식ㆍ표현적 측면에서는 잠언과 箴 모두 암송에 적합한 對句형식을 활용했음을 확인했고, 잠언의 ‘지혜’ 의인화와 箴의 ‘마음’ 의인화도 서로 비슷한 이념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6장에서는, 箴의 통시적 양상을 알아보았다. 우선 역대작가의 작품 일람을 통해 箴의 존재 양상을 살폈고, 箴이 역사적으로 어떤 전개 양상을 보였는지 역사 사료 및 문집의 기록을 통해 고찰했다.

연구 초기의 열정에 비해서는 많이 모자란 결과물이지만, 이 글이 ‘箴’ 장르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어 조금이나마 학계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더불어 ‘箴’은 올바른 삶을 살도록 권계하는 처세법을 담은 글이기에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내용으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 본다.

 

도서출판 학고방, 2011. 값 18,000원

 

4. 박선영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은유미학>>,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4로 출간!!!

 

 

숭실대학교의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34)로 박선영의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은유 미학>>(지식과교양)이 발간되었다. 이 책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은 박목월 시인(1916~1978)과 김현승 시인(1913~1975)은 동시대에 살았으며 우리 현대시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들은 기독교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표적인 시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지금까지 박목월과 김현승의 시에 관한 논의가 상당한 연구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두 시인의 시세계 전반에 걸쳐서 연구가 활성화되지는 못하였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박목월과 김현승에 관한 선행연구에서 초기시와 중기시에 비해 후기시에 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한 실정임을 지적하였다. 그는 박목월과 김현승의 후기시는 이들의 시적 역정을 마감하는 시점으로서 여기에는 이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기독교적 초월성이 수렴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특히 두 시인의 유고시집은 기독교의식이 본격적으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핵심이 초월성에 놓여 있다는 점에 천착하여 이를 고찰하였다. 초월성은 기독교 시인에게 있어 아주 보편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두 시인의 경우에는 후기시로 오면서 초월성이 본격화되기에 이른다. 이에 저자는 두 시인의 시세계 가운데서도 기독교적 초월성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후기시, 즉 박목월의 <<경상도의 가랑잎>>(1968), <<어머니>>(1968), <<무순>>(1976), 유고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1979)과 김현승의 <<김현승시전집>>(1974)에 수록된 <<날개>>, 유고시집 <<마지막 지상에서>>(1975)를 연구 범주로 삼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목한 것은 박목월과 김현승 시인이 지향하는 초월성이 정교한 은유적 의미망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박목월과 김현승은 격변기였던 근대적 시간을 살았던 시인들로서 동일성이 상실된 근대를 지나면서도 동일성의 시학을 고수하였다. 그래서 이들의 시에는 자아와 세계의 합일을 추구하는 은유적 세계관이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주지하다시피 은유는 단순히 표현 기법의 문제가 아닌 인식의 문제에 관련된 것으로 창조적인 의미생성에 관여하는 시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저자는 이러한 은유가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핵심적인 시적 원리이자 미학적 원리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이에 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두 시인의 시에 나타난 은유적 상상력을 총체화하기 위해 언술의 차원에서 은유를 파악하는 흐루쇼브스키의 은유 이론을 시분석의 방법론으로 활용하였다.

이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서론에 해당하는 Ⅰ부에서는 문제제기와 더불어 방법론을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그리고 Ⅱ부에 수록된 「<<경상도의 가랑잎>>의 사물화 양상」, 「<<사력질>>, <<무순>>에 나타난 죽음과 초월의 은유체계」, 「‘어머니’ 시에 나타난 은유 양상」, 「<<크고 부드러운 손>>에 나타난 초월성의 은유 미학」은 박목월 후기시에 나타난 은유 양상을 분석한 것이며, Ⅲ부에 수록된 「후기시의 사물화 양상 -광물에 토대 한 사물을 중심으로」, 「후기시에 나타난 ‘동물’의 은유화 양상」, 「<<마지막 지상에서>>에 나타난 은유 미학」은 김현승 후기시에 나타난 은유 양상을 분석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하여 Ⅳ부에서는 박목월과 김현승 시인의 시에 나타난 은유적 인식의 차이를 고찰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은유가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주된 미학적 원리임을 밝히고, 이들의 인식의 확장 및 갱신을 조명해내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단어나 문장의 차원에서 논의되어 온 은유의 지평을 확대하여 언술의 차원에서 고찰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박목월과 김현승 시의 은유적 상상력을 총체화함으로써 기존의 논의들과 뚜렷한 변별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도서출판 지식과 교양, 2011. 값 24,000원

 

 

5. 민충환

 

<<변영태가 쓴 영시집 Songs From Korea>>, 한국문예연구소 문예총서 13으로 출간!!!

 

 

<<변영태가 쓴 영시집 Songs From Korea>>가 한국문예연구소 문예총서 13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의 1부에는 영어로 번역한 옛 시조 102수를 실었고, 2부에는 자작 영시 33수를 우형숙 선생의 번역으로 실었으며, 책 전체는 민충환 교수가 편집했다. 변영태(1892~1969)는 큰 형 변영만[법조인이자 한학자], 동생 변영로[시인이자 교육자]와 함께 ‘삼변(三卞)’으로 불리던 정치가⋅학자⋅시인이었다. 그는 이승만 정권에서 외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내면서 큰 공을 세웠고, 고려대학교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그의 저술로 <<나의 조국>>(1956), <<외교어록>>(1959), <Songs From Korea>>(1948) 등이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시조 영역의 선례(先例)들이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시조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영역(英譯)을 시도함으로써 후대 인사들에게 시조 영역의 모범을 보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창작 영시 또한 당시로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희귀한 작업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쉽지 않은 영시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시를 창작하고 옛 시조를 번역했다는 점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요즈음에도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도서출판 지식과교양, 2011. 값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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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학술문2009. 11. 12. 00:38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9203
교수신문 원문링크

 

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한국기독교 예술을 찾아서'(11.13)
 
 2009 년 11 월 10 일 화17:44:25 교수신문 
 
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소장 조규익)는 오는 13일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한국 기독교 예술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2009년 전국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박선영 숭실대 교수는 「박목월 초기시의 공간은유를 주제로 발표하고 박슬기 서울대 교수가 토론에 나선다. 차봉준 숭실대 교수는 「백도기의 ‘본시오 빌라도의 수기’연구」를 선보이고 이형진 홍익대 교수가 토론한다.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1920년대 초 주일학교 공연 레퍼토리 분석-아동가극 대본을 중심으로」를 발제한다. 이승희 성균관대 교수가 토론자다. 이어 3부에서는 공기태 계명대 교수가 「미주 한인교회의 역사와 성가대의 현황」을 발표하고 문숙희 한국문예연구소 연구원이 토론에 나선다. 화가 채창완 씨는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의 반성과 과제」를 발제할 예정이다. 이정구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 교회 건축의 실태」를 발표하며, 이상진 숭실대 교수가 토론에 참석한다. 종합토론은 박정신 숭실대 교수가 좌장으로 참여해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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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소식] 《세계철학대회의 반성과 한국철학의 전망》외

 

조선일보 원문링크


■한국철학회(회장 황경식)는 14일 오전 10시 건국대 산학협동관 223호에서 《세계철학대회의 반성과 한국철학의 전망》이란 주제로 2009년 추계학술대회를 연다. 〈영미철학 전통에 대한 한국철학의 대응〉(김기현), 〈유럽철학 전통에 대한 한국철학의 대응〉(홍윤기) 등 6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02)450-3382

■한국문학연구학회(회장 김영민)는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사업단과 공동으로 14일 오전 10시 연세대 백양관 211호에서 《제도로서의 '독자'》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근대초기 독자층의 형성과 매체의 역할〉(전은경), 〈일제 말기 소설 독자층의 분화〉(천정환) 등이 발표된다. (02)2123-3501

■박종훈 단국대 도예학과 교수(강진 도예연구소 소장)의 〈박종훈 도예전〉이 11일부터 17일까지 서울 관훈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청자에서 금·옻·도자까지 다양한 도예 작품이 전시된다. (02)734-1333

■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소장 조규익)는 13일 오후 1시 한경직기념관에서 《한국 기독교 예술을 찾아서》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갖는다. 〈1920년대 초 주일학교 공연 레퍼토리 분석〉 〈한국 교회 건축의 실태〉 등이 발표된다. (02)820-0846

■박성원 등 한국의 공예작가 26명의 작품을 전시하는 제33회 필라델피아미술관 크라프트쇼가 11일부터 15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필라델피아크라프트쇼는 미국 최대 공예작가 쇼로, 올해는 한국이 초대국가로 선정돼 한국 공예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게 된다. 문의 한국공예문화진흥원 (02)733-9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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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09. 11. 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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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국문예연구소 전국 학술 대회


한국 기독교 예술을 찾아서



일시: 2009년 11월 13일(금) 오후 1:00-6:00

장소: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 김덕윤 예배실

주최: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모시는 글

    이제 11월,
    추수(秋收)가 끝난 들판을 바라보는
    마음이 흐뭇하기도 하고
    동장(冬藏)의 다급함에
    바빠지기도 하는 시절입니다.

    우리는
    그간 소중하게 가꾸어온
    소담스러운 양식을
    마저 거두려 합니다.

    기독교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매진해오신
    석학들이 담론을 펴는 자리에
    선생님을 정중히 모시고자 하오니
    부디 오셔서 빛내 주소서

                    2009. 11. 3.

          한국문예연구소  소장  조규익 드림



<순서>


                                                        사회: 허명숙


1부                                   

1:00-1:05 인사                                 조규익(한국문예연구소 소장)

1:00-1:15 축사                                 김대근(숭실대학교 총장)


2부                                   

발표 1) 1:15-1:55      박목월 초기시의 공간은유

                        발표: 박선영(숭실대) 토론: 박슬기(서울대)

발표 2) 1:55-2:35      백도기의 「본시오 빌라도의 수기」 연구

                        발표: 차봉준(숭실대) 토론: 이형진(홍익대)

발표 3) 2:35-3:15      1920년대 초 주일학교 공연 레퍼토리 분석

                                -아동가극 대본을 중심으로"

                        발표: 박영정(한국문화관광연구원) 토론: 이승희(성균관대)


중간 휴식 3:15-3:30


3부                                   

발표 4) 3:30-4:10      미주 한인교회의 역사와 성가대의 현황

                        발표: 공기태(계명대) 토론: 문숙희(한국문예연구소)

발표 5) 4:10-4:50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의 반성과 과제

                        발표: 채창완(화가) 토론: 이성원(갤러리 무이)

발표 6) 4:50-5:30      한국 교회 건축의 실태

                        발표: 이정구(성공회대) 토론: 이상진(숭실대)


종합토론  5:30-6:00                    좌장: 박정신(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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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학술문2007. 4. 10. 18:11
하나. 인간과 삶, 그리고 죽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음만큼 무섭고 신비한 현상도 없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따스한 햇볕 아래 오순도순 즐기다가 한 순간 숨이 끊어져 깜깜하고 차가운 땅 속에 묻히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은 죽음의 불가항력에 당황한다. 불치의 병으로 신음하다 결국 추하게 탈진한 상태로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죽음의 무자비함에 몸을 떤다. 인간이 종교에 귀의하는 것도 살아있는 동안 가차 없는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다. 종교를 성립시키는 것은 절대적인 힘을 지닌 신이다.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죽음의 공포는 얼마간 해소될 수 있다. 그 신의 위력을 빌어 이야기되는 종교적 담론의 핵심은 죽음 혹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한 것이다. 사실 인간이 죽음에 대하여 공포를 느끼는 것은 죽는 순간의 통증보다 죽음 이후의 시공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살과 뼈가 원소로 해체되어 스며들거나 흩어지면 그 뿐인가. 아니면 육체에서 이탈된 영혼이 또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가.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판이해진다. 엘리자베스 큐블러로스는 인간이 죽음을 맞는 마지막 단계로 ‘사후 생명에 대한 희망’을 들었다. 사후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가진 사람만이 죽음을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하여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독배를 마시고 죽어가던 소크라테스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나는 이제 떠날 때가 되었네. 나는 죽기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들 가운데 누가 더 좋은 일을 만나게 될 것인가, 신밖에는 아무도 모른다네.’ 라고 말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긴 했지만, 소크라테스 자신도 사후 세계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사후 세계를 믿는 것이 정신위생상 좋다는, 정신분석학자 융의 생각은 종교적 담론의 틀 안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려는 현대인의 본능적 욕구를 적절히 지적한 경우다. 키엘케골은 절망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고 그에 대한 희망을 갖는 일이야말로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니, 죽음의 두려움을 뛰어넘기 위해 만들어낸 종교의 관념체계는 빛나는 인간 지혜의 소산이라 할 것이다.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이 피할 수 없는 죽음.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우주적 그물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며, 조만간 직면해야 할 죽음으로부터 생겨하는 우울함이나 비애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오랜 세월 인간이 만들어온 문화적 집적(集積)의 대표 항은 ‘삶과 죽음’이다. 시간의 물결에 떼밀려가는 생명체들. 그래서 생명체에게 ‘살아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외연으로는 상반되는 개념들이지만, 이면적으로는 동의어인 것도 그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죽음에 대한 무수한 담론들을 만들어 왔다. 죽음의 미덕을 찬양하는 경지가 바로 그런 담론들의 극단이다. 그것들은 말하자면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효과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이른바 자기방어(自己防禦)의 기제(機制)라 할 수 있다. 거추장스런 육신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상태로 신들의 세계에 들어가 새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은 현세적 삶이 괴로운 민초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이승에서의 삶을 더 연장하고자 하는 것이 모든 이의 본능적 욕구였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은 죽음을 거부하는 그들의 본능을 표현한 말이다. 그런 욕구의 한 편에 죽음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심지어 찬양하는 표현까지 생겨나는 것이다.
죽음은 문학이나 예술적 표현물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제재들 중의 하나였다. <제망매가>는 기록으로 남겨진 것들 가운데 꽤나 이른 시기의 노래다. 작자가 비교적 소상히 설명되어 있고, 표현기법이 세련되어 있으며, 그 사상적 배경 또한 분명하다. 그 뿐 아니라 노래를 둘러싼 정황이 신비화 되어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흥미를 끈다. 말하자면 가장 흔한 주제를 노래함으로써 보고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되, 그 정황이나 배경은 가장 신비스러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게 하는 점에 이 노래의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누이동생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소재를 노래했으면서도 죽음 자체가 자아내는 미학이나 분위기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이 특이하다. 삶과 죽음의 언저리에서 이루어지는 서정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불심(佛心)으로 윤색되거나 가공되었으며, 어떻게 지속되어 왔을까.

둘. <제망매가>에 내재된 두 얼굴의 사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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