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08. 10. 5. 11:42

버려진 아가들, 거두어진 아가들

 

조규익

 

언제부턴가 문숙희 교수 부부의 권유로 한 사회복지재단에서 ‘신생아 안아주기’ 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 입으로 ‘봉사를 합네’라고 말하기 면구스러울 정도로 미미한 일이지만, 이미 내 일상 가운데 최고의 스케쥴로 자리잡았다. ‘버려졌으나 가까스로 거두어진’ 신생아들을 만나는 매달 첫 토요일 오후. 설레는 마음으로 이 날을 기다리는 이유는 아가들의 눈빛에서 우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둘씩이나 낳아 키우며 그들을 안아 준 기억조차 아스라한 내가 남들이 낳아놓은 아이들을 제대로 안아 줄 수 있을까?’ 더구나 ‘철없는 미혼모들이 버린, 그 아가들을 흔쾌한 마음으로 안아줄 수 있을까?’ 처음에 한동안 망설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끌려가듯 찾아간 그곳에서 나는 조막만한 아가천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갓 태어난 아가에서 두 달쯤 된 아가들까지 하얀 강보에 싸인 채 각각의 침상에 군대 내무반에서 ‘취침점검’ 받는 자세들로 누워 있었다. 대부분 잠에 취해 있는 가운데, 어떤 녀석들은 지독하게도 울어대곤 했다. 젖 먹을 시간이 된 경우, 쉬를 싼 경우, 몸이 불편한 경우 등 그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이유도 대충 세 가지로 분류된다. 개중에 먹성이 좋은 녀석들은 식사 시간도 되기 전에 칭얼대지만, 단체생활을 하고 있는 몸이니 엄마와 같은 보살핌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 안타까운 모습들도 없지 않았다.

대부분 녀석들은 안아주면 좋아한다. 어떤 녀석은 눈을 맞추며 배시시 웃기도 한다. 한참 안아 준 다음 울고 있는 다른 녀석을 안아주려고 침상에 내려놓기만 하면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그만큼 가슴으로 살갗으로 눈으로 전해지는 사랑에 굶주린 때문이리라. 녀석들의 얼굴과 눈망울을 쳐다보노라면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들의 엄마 아빠는 누구였을까. 이곳에 오기까지 나 어린 그 엄마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은 어땠을까. 그들이 나눈 사랑의 순간은 달콤했겠지만, 임신과 출산에 이르기까지 그들 사이에 일어났을 갈등과 고통은 얼마나 씁쓸했을까. 오죽하면 이 천사 같은 아가들을 버려 이곳까지 오게 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의 표정은 모두들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가. 이 아이들이 커서 홀로 서기까지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다양한 인물로 커갈 것이다. 그 옛날 우리네 영웅들은 하나같이 ‘버려짐’의 쓰라린 기억을 안고 자라난 인물들이었다. 많은 전설과 신화에 보이는 ‘기아(棄兒) 모티프’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영웅으로 자라나 부족이나 민족을 이끈 지도자가 된 것이다. 최근 나는 이 아가들의 얼굴에서 숨어있는 대통령, 대기업 회장님, 판․검사, 멋진 배우, 훌륭한 선생님, 뛰어난 운동선수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만 그들을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가 문제이리라. 내가 낳은 자식들에게만 사랑을 쏟아 붓는 우리네 사고방식으론 가능한 일이 아니겠지만, 골고루 햇볕을 쪼여주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새로운 의무가 아닐까. 가뜩이나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요즈음. 이 땅의 젊은 영혼들이 사랑을 나눈 결실로 태어난 아가들이다. 비록 비정상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자발적인 노력으로(?) 가능성을 지닌 다수의 인재들을 국가에 안겨준 셈이니 그 젊은 부모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들 아닌가. 그 아가들을 재목으로 키워낼 것인지 잡초로 버려둘 것인지는 국가와 국민들이 결정할 일이다. 이 틈 저 틈으로 새어나가는 국부(國富)의 물꼬를 이들의 양육에 돌려야 할 때다. 쓸데없는 싸움질들 그만 하고, 대통령도 국회의원들도 모두 한 달에 한 번씩은 보육원에 와서 아기 안아주기 봉사에 참여할 일이다. 나랏돈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 이들을 최고의 환경에서 자라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8. 5. 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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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주의, 그 걸러지지 않는 역사의 노폐물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

 

얼마 전 모 대학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 한 토막. 2005년 베이징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 두 명이 탈북자 인권문제로 기자회견을 하려다 중국공안 당국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함께 있던 우리나라 외교관들도 폭행을 당한 건 물론이다. 정당한 이유 없이 주재국 공권력에 의해 다른 나라 외교관이 폭행을 당한, 상식 이하의 사건이었다. 예상대로 당시 우리 정부는 묵묵부답,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가 피해자인 우리의 인사들을 질책하는 분위기였다. 분개한 어떤 인사가 그 사건을 들어 모 일간지에 칼럼을 썼고, 감명 받은 그 교수는 그 글을 당시 대학원에 재학하던 외국 학생들의 한국어 시험 지문으로 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끼어있던 중국 학생들이 그 내용에 반발하여 시험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듣게 된 그 교수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중국의 저의를 분석한 다음, 잘못 된 처사에 말 한 마디 못 건네고 있는 우리 정부의 처사를 꾸짖은 글이었다. 당사자인 중국의 국민이라면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거나 반성의 빛이라도 보이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학문을 배우러 이 나라를 찾아온 젊은이라면 더더욱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그들은 사무실로 찾아와 기세등등하게 항의를 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안하무인의 불량배로 만들었을까. 요즘 하기 좋은 말로 그들이 ‘자유분방한 인터넷 만능시대의 총아(寵兒)’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중국에 법제화 되어 있다던 ‘독생자녀제(獨生子女制 ; 1가구 1자녀 원칙) 출신의 이른바 ‘소황제(小皇帝)들’이라서 그렇게 된 것일까. 아니다. 바로 그들의 피에 흐르고 있는 ‘중화주의’의 DNA 때문이다.


 역사에도 대사작용(代謝作用)이 있는 법. 새로운 시대사조나 발전적 비전을 받아들여 과거의 노폐물을 걸러내는 작용은 역사에도 필수적이다. 대사작용이 멈춰버린 한-중 외교사의  흐름 속에서 중화주의라는 노폐물을 걸러내지 못한 중국인들은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왜곡하며 ‘자민족 우월주의’의 망상에 빠져 있다. 그러니 시험지를 들고 대학원 사무실로 항의 차 몰려온 아이들이나 이번 성화 봉송에서 집단으로 행패를 부린 그들의 행동양식은 한 틀인 셈이다. 그것은 부모나 조상들로부터 대물림 받거나 교육된 의식이거나 행동양식일 뿐이니, 말하자면 '역사의 조건화(conditioning)'라고나 할까. 자극과 자극 또는 자극과 반응 간의 연합을 통해 특정 행동이 유발되거나 학습되어지는 과정이 ‘조건화’다. 한 번도 우리나라와 선린(善隣)의 관계 설정에 나서본 적이 없는 가해자로서의 중국은 우리나라에 대한 ‘지배의식’을 대대로 학습해 물려주고 있으니, 그게 바로 ‘역사의 조건화’다.

 자기 절제를 통해 착한 이웃 혹은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방법과 태도를 교육하는 것이 현대 국가의 금도(襟度)다. 그런데 이번 일로 그들은 양식 있는 교육을 받지 못한 국민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셈이다. 그간 한-중 관계사는 외교적 상식에 비추어 유쾌하지 못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지정학적인 면에서 우리는 중국 내부의 정치적 변동에 늘 영향을 받아야 했고,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중국이 한동안 우리에게 세계를 향한 창문 노릇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왕조가 새로 들어설 때마다 그들은 ‘강-약’과 ‘지배-피지배’의 관계를 늘 확인하고자 했고, 우리는 언제나  ‘화(和)/전(戰)’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다. 땅이 넓어 물산이 풍부하고, 세계와 인접해 있어 각종 문물이 다양하니 대륙의 변방인 우리로서는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조 내내 사신들을 줄기차게 파견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저들과의 전쟁을 미연에 막아야 했고, 우리에게 부족한 물건이나 문화를 도입해야 했으며, 중국의 상징적인 힘을 국내 정치에 활용해야 했다. 우리가 저들의 속국이나 식민지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비록 외교적 생존술이었다 해도, 그것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그릇된 인식을 갖게 한 단초였음이 분명하다. 현실적 이익은 차치하고라도 우리의 사신 파견이 굴욕적인 일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명나라 때의 사신행차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는데, 하물며 우리가 오랑캐라고 질타해온 청나라 때 사신행차들의 굴욕이야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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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천 이덕형의 사행을 기록한 죽천행록>

 


 인조 2년(1624) 기울어져 가던 명나라에 파견한 주청사행(奏請使行)은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서인들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에 성공했으나 명나라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능양군을 인조로 옹립하여 반정에 성공한 서인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반석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명나라의 승인이라는 명분이 절실했다. 명나라로부터 고명(誥命)과 면복(冕服)을 받아오는 일이 무엇보다 다급하고 중요한 그들의 사명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주청사행은 국내정치용이었던 것이다. 정사 이덕형(李德泂)이 명나라의 관료들로부터 당한 농락과 시달림은 역사상 강대국인 중국이 약소국 조선에게 가해온 행패의 축소판이다. 예컨대 위대중이란 자는 주청사행을 괴롭힌 대표적 인물이었다. 조선이 후금의 누르하치와 같은 오랑캐 류라는 점, 인조반정은 명분이 전혀 없는 죄악임에도 ‘천자’의 조서를 받아 그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은 중국 조정에 대한 기망이라는 점, 누르하치에게 먹힌 요동만 회복하면 저절로 조선의 잘못된 일이 바로잡힐 수 있으므로 그 때까지 책봉의 조서를 내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 등을 주장하며 주청사행의 사명 수행을 극력 저지했다. 툭하면 시랑 정도의 관료들에게 뇌물을 바쳐야 했고, 출근하는 그들을 만나고자 추운 겨울날 새벽 길가에서 떨며 기다린 것은 물론 각로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내침을 당하자 섬돌을 붙들고 울며 사정하는 노구(老軀)의 정사는 우리 민족의 일그러진 자화상일 수밖에 없다. 가까스로 고명과 면복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정사를 상대로 마지막까지 농락하는 중국의 관료들이야말로 중화주의의 늪에 빠져 약소국을 능멸하는 불량배들의 전형이었다. 중국과 조선, 두 왕조의 외교를 담당한 것은 주로 우리 쪽에서 파견하던 사행단이었다. 연경까지 대개 비슷한 코스로 두 달 가량 걸리는, 왕복 6천리의 지겨운 길이었다. 500여명의 일행이 도보로 오가던 길. 교통편과 숙박시설이 변변할 리 없었다. 한둔하기 일쑤이던 아랫사람들보단 나았겠으나, 정사·부사·서장관 등 윗사람들이라고 크게 편안할 것도 없었다. 목욕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으며, 제때 옷 갈아입는 일 또한 분에 넘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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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행노정 답사 중 만난 하북성 노룡현의 고려포 역참에서>

 


 동지(冬至)·정조(正朝)·성절(聖節)·천추(千秋) 등 정례 사행단만 가는 게 아니었다. 왕비나 세자의 책봉에도, 왕의 죽음에도, 왕위를 물려주거나 선왕을 추숭할 때도 사신들을 보냈으며, 사은(謝恩)·주청(奏請)·진하(進賀)·진위(陳慰)·진향(進香) 등 임시 사행단은 수시로 파견되었다. 그런 역사가 조선조 내내 이어진 것이다. 중국인들의 뇌리에 박힌 것은 반복되어온 사행 파견의 불평등한 외교관계였다. 그렇게 역사가 왜곡되는 과정에서 청 말 황준헌(黃遵憲)이란 자의 ‘조선책략(朝鮮策略)’같은 글도 나타나게 되었다. “오늘날 조선은 중국 섬기기를 마땅히 예전보다 더욱 힘써서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조선과 우리는 한 집안 같음을 알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그의 언설이야말로 올림픽 성화 봉송에서 난동을 부린 중국 청년들의 ‘한국관(韓國觀)’을 정확히 적시한 내용이다. 멀쩡한 남의 나라 외교관이나 국회의원, 언론사의 특파원을 폭행하고도 정당한 법 집행이라 강변한 중국. 자국의 배가 서해상에서 골든로즈호를 침몰시키고 도주한 사건에 대하여 ‘피해 선박이 구난장비를 갖추지 않아 인명피해가 났다’고 억지 논리를 편 중국. 그것도 모자라 이제 그들은 남의 나라에 몰려와 자신들의 국기를 휘두르며 폭력까지 행사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은 스포츠 경기장을 제외한 그들의 영토 안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여 우리의 국기를 흔들거나 애국가를 부르도록 내버려 둔 적이 없다. 그런 그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수백 명의 유학생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국기를 들고 수도 서울의 한복판을 누비게 만들었으니, 그 배짱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중국을 떠나 너희가 살 수 있느냐’고 큰 소리 치는 철없는 중국의 젊은이를 보며, 그들의 만용과 만행을 가능케 한, 비뚤어진 중화주의가 세계평화의 재앙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다시 묻건대, 이런 비극을 초래한 장본인은 우리인가 아니면 그들인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8. 2. 23. 21:18
아, 교수들의 꼬락서니여!
-새 정부에 참여한 문제교수들을 보며-

                                                                           조규익

장관을 비롯한 정부 고위직에 취임하려면 국회의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언론과 인터넷 매체의 ‘무자비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얼핏 국회의 청문회가 무서운 것 같지만, 사실 후보자들에게 더 무서운 것은 후자다. 검푸른 물 넘실대는 바다에 무슨 괴물이 숨어 있는지 모르듯, 넓고 깊은 언론이나 인터넷의 바다엔 어떤 ‘저승차사들’^^이 칼을 갈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약간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해도 공직에 임명받은 사람들이 도덕성으로나 지적 수준으로나 도토리 키 재기로 뻔한 국회의원들을 청문회장에서 대면한다 해도 그리 겁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일 테니 잘 닦인 언변으로 둘러대면 별 문제없으리라 믿고 있을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재야 지식인들이나 익명의 투사들은 참으로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닌 존재들이다. 과연 자신들의 생업은 어떻게 꾸려나가는지 의문일 정도로 표적이 나타나기만 하면 시시콜콜 뿌리까지 캐내고야 말지 않는가. ‘설마 누가 기억하랴!’ 싶은 옛날 옛날 한 옛날의 주례사나 연설문, 작은 칼럼까지 챙기는 그들이니 말이다. 그러니 중년 무렵에 그럴 듯한 자리 하나쯤 꿰차고 싶으면 입이나 손끝을 함부로 놀리지 말아야 할 것은 물론 자식 놈들 좀 나은 학교에 보내고자 슬쩍 옆 동네 친구 집에 주민등록을 옮겨놓는 등 ‘얄미운 짓’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 동사무소, 세무서, 등기소, 출입국 관리소, 이발소, 수퍼마켓 등 ‘얄미운 대상’의 정보를 캐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것이 인터넷 바다의 투사들이다. 이제 이들에게 적당히 둘러대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할 수가 없게 된 세상이다.
이번의 경우 누가 교수출신 장관들의 표절문제를 들춰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인터넷의 바다에서 그들의 범죄행위가 속속 업데이트 되거나 베일을 벗어가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두 가지의 모순된 감정을 갖는다. 하나같이 표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른바 ‘잘 나가는’ 교수들의 행태에 대한 탄식이 그 하나요, 비록 법적 절차에 의한 것은 아니나 비리에 대한 사회적 응징을 목격하면서 갖게 되는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과 안도감이 그 둘이다.

***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 임명된 E여대의 김 아무개 교수, 청와대 수석으로 임명된 S여대의 박 아무개 교수 등은 그들 가운데 압권이다. 제한적으로나마 공개된 사이트를 통해 확인해보니 두 사람 모두 해당 전공분야에서는 대단한 명망을 지닌 학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우러름의 대상이었을 것이요, 동학이나 선·후배들로부터는 부러움과 시샘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학교의 명예를 드높인다는 이유로 대학당국은 그들을 얼마나  우대했을 것인가. 그런 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 즉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짐을 이르는 말)’격으로 그의 덕망은 더 이상 숨겨둘 수 없어 새 대통령에게까지 발탁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뛰어난 분들이 학계를 욕 먹이고, 한국 지식사회의 추악한 단면을 대변할 수 있단 말인가. 보도에 따르면 김 교수는 자신의 논문을 십여 편이 넘는 저널들에 중복 투고했고, 박 교수는 제자의 논문을 표절했다 한다. 중복 투고는 이미 노무현 정권의 김 아무개 장관 때 문제가 불거져 그를 사임으로 몰고 간 사건이기도 한데, 이번 사건은 그보다 훨씬 ‘죄질’이 무겁다. 특히 중복투고를 통해 ‘연구비’를 꼬박꼬박 받았거나 그 논문들이 승진·재임용에 이용되었다면, 그것은 표절 이상의 비리일 수밖에 없다.
박 교수의 행위는 더 참담하다. 표절의 경우 대개 같은 반열에 있는 학자들의 글을 대상으로 하기 마련인데, 제자의 글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 경우야말로 가히 해외토픽 감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2002년과 2006년 두 건이나 제자의 논문을 표절했다니, 다시 무슨 변명을 덧붙일 수 있을까. 앞으로 더 튀어나올 것들은 없을까 우려하는 것이 과연 나만의 걱정일까.   박 교수는 “‘의혹을 받은 논문은 2006년 4월 제자보다 먼저 학회에 투고했고 게재가 8월에야 되었으며, 내 논문이 제자보다 먼저 나왔고, 이후에 제자에게 데이터를 쓰도록 허가해줬다”는 요지의 해명을 했다 한다. 데이터를 공유하면 분석의 문장까지 같아지는지 수십 년 간 논문을 써온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변명 치고는 참으로 궁색하다.
논문의 선·후란 저널의 발행일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며, 논문을 읽는 사람들로서는 논문 작성 과정의 일들은 알아야 할 이유도 알 필요도 없는 사항이다. 두 논문의 문장들이 상당 부분 일치하고 발행일자가 다르다면 뒤의 것이 앞의 것을 표절했다고 판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기본 상식을 모르지 않을 박 교수가 어째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예컨대, 제자와 데이터를 공유함으로써 내용이 동일하게 되었다면 그런 사실을 각주로 밝혀 놓든가, 기자들의 추정대로 공동논문이라면 공저자로 제자의 이름을 넣든가, 무슨 조치를 취했어야 마땅한 일이다. 진짜로 박 교수의 해명이 맞다면 그 제자가 박 교수의 논문을 표절한 것이 분명하니, 제자를 추궁해야 마땅한 일 아닌가.
정신이 돌지 않은 이상, 어찌 감히 제자가 학위논문 지도교수의 논문을 표절할 수 있겠는가. 제자가 지도교수의 논문을 ‘슬쩍 했다’기보다는 논문의 마감 시한에 쫓긴 교수가 제자의 논문을 대충 ‘짜깁기’했다고 보는 게 정황 상 맞을 것이다. 어쩌면 그 분은 제자들에게 아마도 ‘절대적인 힘’을 지닌 존재였을 것이다. 어쩌면 교수님의 말씀에 토를 단다거나 반론을 제기하는 것조차 허용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석사논문 쯤이야 대부분 학자들이 무시하는 현실이니, 들킬 염려도 없을 테고. 어차피 학계에 존재가 알려질 논문도 아니라면, 지도교수인 내가 좀 실례 하는 것도 그대에게 그다지 손해나는 일은 아니겠지?” 라는 일방적 선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써본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

이제 한국의 지식사회는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 한 편의 논문을 써서 이 저널, 저 저널에 싣는 행태는 그래도 남의 글을 도둑질하는 건 아니니 좀 덜하다고 치자. 학자금과 생활비의 조달에 잠 잘 시간도 없는 요즈음의 학인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책과 씨름하고 지문이 닳도록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요즈음의 학인들. 그런 그들이 고심참담 속에 써 놓은 글을 누군가가 빼앗아가는 현실 앞에서, 같은 지식사회의 구성원이라 자처하는 우리가 과연 무슨 말을 보탤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그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권부의 핵심 구성원으로 발탁되고 있는 이 잘못 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과연 누가 나서서 이런 모순과 역리(逆理)를 바로잡을 것인가.
                                                                       2008. 2. 23.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7. 8. 14:04
정치인들도 교육에 동참하라!

이른바 ‘잠룡(潛龍)’들이 뛰어나와 하나밖에 없는 승천(昇天)의 티켓을 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지금. 온갖 술수가 난무하여 혼란스러운 ‘2007년 6월의 공간’을 뜻 있는 사람들은 난세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모두가 ‘정치’를 탓한다. 정치만 있고, 양식(良識)에 바탕을 둔 도덕이나 인간미가 상실되었다 한다. 제대로 된 정치나 정치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정(人情)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한비자(韓非子)는 말했다. 인정이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 또는 생각’이 인지상정이다. 물고 뜯으며 싸우는 것은 ‘나만 깨끗하고 너는 더럽다’는 고집스런 편견을 대전제로 한다. 그래서 제 허물은 덮어두고 남의 흠집만 캐내어 세상에 광고하기 바쁘다. 남의 흠은 작은 것이라도 크게 부풀리고 자신의 것은 감추면서 남을 깎아내리려 한다. 이 대열에 후보들은 물론 전·현직 대통령, 국회의원 등 이른바 정치인들이 뒤질세라 끼어들고 있다.

정치적 권위가 형성되는 핵심은 정책 결정자 또는 기관이 정통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정치집단이 정통성을 확보하려면 사회의 일반적 윤리를 바탕으로 정치집단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옳다는 관념이 국민들 사이에 보편화 되어야 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베버의 설명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윤리를 외면하고 술수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일에만 몰두하는 우리의 현실은 비극이요 재앙이다.

지더라도 멋지게 지는 모습, 비록 적이라도 장점을 칭찬해주는 금도(襟度)가 실종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내뱉는 오물 같은 증오의 언사들이야말로 그들의 적만 듣고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음이 분명하다.

이쯤 우리의 걱정을 털어놓아보자. 우리의 교육이 걱정이다. 어른들보다 훨씬 영악하게 세상을 배워가는 것이 이 땅의 2세들이다. 그들은 발달된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의 힘으로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의 언행을 거의 실시간으로 접한다. 강단의 선생들이 내뱉는 고답적인 말보다 전투적이고 상스러운 정치인들의 말을 훨씬 빨리 받아들인다.

지금의 선생들은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에 대해 일종의 열등감을 갖고 있다. 선생의 가르침보다 매스 미디어의 총아들이 보여주는 언행이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있는 사실 없는 사실 까발리고 부풀려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려는 정치인들에게도 자식들은 있을 것이다.

한 점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검증의 당위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라도 검증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자는 그야말로 ‘하늘을 우러러 한 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남을 검증하려면 철저한 자기검증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자기검증만 제대로 한다면 굳이 남을 검증할 필요 없고, 그에 따라 ‘네거티브 전략’이란 저급한 용어가 등장할 필요도 없다. 네거티브 전략은 우리 사회의 신뢰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그 결과는 교육의 황폐화로 이어진다.

아이들은 그저 폐쇄된 학교 울타리 안에서 교과서만 읽는 로봇들이 아니다. 어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복사하듯’ 배운다. 무슨 거창한 교육정책을 세워주길 기대할 만큼 정치인들의 자질을 믿는 우리도 아니다. 다만 평균적인 윤리의식이나 양식 위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되, 자신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 자식들의 교과서로 수용된다는 사실만이라도 명심해달라는 것이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4. 15. 22:54
민족의 자존심

                                                                                                                      조규익

자격 있는 자만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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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중국의 공권력에 폭행을 당했다. 국가 간의 이해(利害)가 개입된 문제라고는 해도 ‘때린 놈’이나 ‘맞은 놈’ 모두 우습게 되었다. 더욱 희한한 일은 때린 놈의 역성을 드는 집단이 우리들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점잖다 해도 ‘불량배에게 맞고 들어온 자식’을 꾸중하는 부모는 없다.

사실 중국을 지렛대로 북한을 움직이려면, 중국과 우리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란 어렵다.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면서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이득까지 챙기려는 중국인들의 계산법은 천하공지(天下共知)의 사실이다. 분단된 우리 민족을 뒤에서 조종하며 실익을 챙기자는 그들의 ‘꼼수’를 우리는 민족사 최대의 수치로 받아들여야 정상이다.

따라서 이번 일을 국제화 시대의 나라들 간에 일어날 만한 외교적 사건으로 단순화 시킬 수는 없다. ‘민족적 자존심’의 원칙적 잣대는 어느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최우선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그 잣대가 좀더 복잡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80년 전의 일을 떠올려 보자. 반정(反正)으로 인조(仁祖)를 옹립한 서인(西人) 정권은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했다. 중국으로부터 고명(誥命)과 면복(冕服)을 받지 못하면 국내에서 반대파를 누르고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누르하치의 기세가 바야흐로 명(明)나라의 숨통을 끊어갈 무렵이었다. 이덕형(李德泂)을 정사(正使)로 하는 주청사(奏請使)가 명나라 조정에 파견되었고, 그들은 넉 달 가까이 북경에서 온갖 수모를 겪는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사가 ‘시랑(侍郞)’ 정도의 관리들에게 농락을 당하기 일쑤였고, 자신들의 뜻을 요로에 전하기 위해 뇌물을 밥 먹듯 써야 했다. 북경의 혹심한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새벽부터 길거리에 꿇어 엎드려 출근하는 각로대신(閣老大臣)들에게 손을 비비던 노구(老軀)의 정사는, 바로 역사 속에 그려진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다.

그뿐인가. 천신만고 끝에 각로들을 만난 정사. 그들의 괜한 트집으로 섬돌에 내동댕이쳐져 울부짖던 그 참상을 다시 무슨 말로 표현할까.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부질없다지만,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무자비하고 철저하게 ‘농락해 온’ 저들의 무례함을 제때 제대로 징치(懲治)했더라면 현대사는 좀더 다른 방법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징치’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우리가 ‘자존심’을 세우는 방법만이라도 강구했었다면 지금 이렇게 온 국민이 참담함을 되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망해가는 명나라에게 빌붙어 국내에서 권력을 장악하려던 일부 무리들의 ‘꼼수’는 결국 민족의 자존심을 망치고 그후 조선에 잦은 전란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 된 것만 보아도, 통치 집단의 지혜로움은 분명 민족사 전개의 향방을 가르는 지표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세상사,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겉모습은 달라져도 본질은 변할 리 없다. E H 카(Carr)의 말처럼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임에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운 것 없음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말았다. 특히 21세기 초입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집단들이 매우 우매(愚昧)하고 게으르다는 점, 국민으로서는 그것이 못내 통분하다.

역사책의 한 쪽만 넘겨 보아도 우리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진실은 그득하다. 지금 중국은 남북의 분단 상황을 지렛대로 삼아 그 사이에서 철저히 이익을 취하고 있다. 그 와중에 농락당하는 건 남북한 모두의 자존심이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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