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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07 아, 한 율리아!
  2. 2012.05.12 요것들을 어찌 할꼬?
  3. 2012.04.21 가거지(可居地)를 찾아
  4. 2012.04.04 국회의원 후보 김모씨의 '욕설난장'
  5. 2012.03.27 힘 내라, 손수조!!!
  6. 2012.03.16 지혜롭지 못한 교육부
글 - 칼럼/단상2012. 6. 7. 16:33

 

 

 <1980년대 한진의 모습, 사진제공:김병학> 

                                           <한 율리아와 김병학 선생, 백규 연구실에서>

 

율리아와의 만남

                                                                                                    백규

몇 년 간 중앙아시아 이곳저곳을 헤매던 중, 고려인 극작가 한진을 알게 되었다. 그가 이승을 뜬 지 올해로 19년째. 말년까지 카자흐스탄의 국립고려극장 문예부장을 지낸 그였다. 10여 편의 희곡작품, 19편의 단편소설,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글 등을 오롯이 모아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김병학 시인이 정리했고, 내가 꾸려나가는 연구소에서 문예총서의 하나로 펴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인가. 책을 펴낸 지 얼마 후 국제한인문학회에서 연락이 왔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 연구’라는 테마의 국제학술회의에서 기조발제<관련 글 보기>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고려극장에서 활약한 극작가를 중심으로 한다는 부연설명과 함께. 이미 한진의 작품들을 확보해 놓은 터에 마다 할 이유는 없었다. 그 소식을 들은 김병학 선생이 또 하나의 낭보를 보내왔다. 한양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진 선생의 손녀 율리아에게 연락해 두었다는 것. 발표회장에서 그녀를 소개하는 것 자체가 한국의 학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일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자체가 멋진 퍼포먼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텍스트를 읽었다. 작품을 읽는데, 모르는 사이에 간간 눈물이 흘렀다. 작품들의 행간에서 그의 외로움과 슬픔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갈등과 방황, 현실과의 밀고 당김을 통해 결국 민족을 발견하게 된 그의 집념이 감동적이었다.

한진은 누구인가. 북한의 극작가 한태천과 모친 박성수 사이에서 1931년 태어난 그는 천재였다. 역사와 전통의 광성중학을 2년만에 마치고 평양제일고급중학교 3학년으로 편입했으며, 1948년 김일성 종합대학 노문학부에 입학했다. 거기서 만난 사람이 그의 지도교수이며 훗날 카자흐스탄에서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한 정상진이었다. 정상진은 김일성종합대학 노문학부장(1948~1950)과 북한 문화선전성 제1부상(1952~1955)을 지낸, 당대 굴지의 재사였다. 정상진으로부터 문학원론과 세계문학을 배운 한진과 그의 친구 이진[이경진]은 당시 최고의 수재로 인정을 받던 북한의 꿈나무들이었다. 그러나 6⋅25가 일어나면서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전쟁에 참여했고, 1952년 여름 대학으로 돌아와 외국유학시험을 치르고 유학생 강습소에서 교육을 받은 뒤인 10월 모스크바 영화대학 시나리오 학과에 입학했다. 모스크바에 유학한 조선 최고의 수재들은 그들의 조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운 그곳의 분위기에 취하면서 비로소 조국의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때마침 흐루시쵸프가 등장하여 스탈린을 비판하면서 그런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전쟁 후 김일성은 자신의 개인지배를 강화해 나갈 요량으로 남로당파, 연안파, 소련파 등을 속속 숙청하고 있었다. 마침 당시 연안파로 몰려 파직 당한 모스크바의 북한대사 이상조의 망명 소식은 소련의 심장부에서 자유의 맛을 본 지성인들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고, 한진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몇 고비의 우여곡절을 거쳐  1958년 8월에 망명을 결행했고, 시베리아 바르나울시 TV 방송국 책임편집위원으로 파견되었으며, 그곳에서 러시아 여인 지나이다 이바노브나를 만나 결혼했다. 그 후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로 옮긴 그는 영화사진연구소, 레닌기치 등을 거쳐 고려극장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소설과 희곡창작을 지속한 것은 물론이었다. 고려극장의 극작가로 활동하다가 말년인 1993년 7월 13일 「서울손님」이란 희곡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그는 잠들었다. [*이상 한진의 전기적인 사실은 김병학의 '한진의 생애와 작품세계', <<한진전집>>(인터북스, 2011) 참조.]

소련 고려인 문단의 최고 비평가 정상진도 인정한 바 있지만, 그는 고려인 문단의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작품 형상화의 수준에서 여타 작가들은 그를 따라 잡을 수 없었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이처럼 소련의 고려인 문단을 통틀어 미학적 차원에서 우리가 건져 올릴만한 작가로 그가 유일하다는 사실이 새삼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진과 러시아 여인 지나이다 이브노브나 사이에 안드레이와 드미트리가 태어났고, 율리아는 안드레이와 러시아 여인 마리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 한진의 손녀 율리아가 러시안의 외모를 갖고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북한 지식층의 자녀로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전쟁에서 우리를 적으로 삼아 총부리를 들었던 한진. 그러나 넓은 세상에 나와 이념의 허망함과 남녘 동포의 존재를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을 체제 경쟁에서 남쪽의 승리를 입증하는 결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언제나 현실이 이상을 압도한다는 인간세상의 자명한 진리를 보여 준 생생한 사례로 보아야 하는가?

어쨌든, 우리의 품으로 돌아와 자신이 걸어야 할 미래의 길을 진지하게 묻고 있는 그의 손녀 율리아를 바라보며 흐뭇하고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건, 나 혼자만의 행복한 ‘오버센스’인가? <2012. 6. 7.>

*사진 위는 1980년대 한진의 모습
*사진 아래는 한 율리아와 김병학 선생(백규 연구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5. 12. 21:01

 

                                <위에서 내려다 본 백양사 전경>

 

요것들을 어찌 할꼬?


                                                                                                            백규

며칠 전 밤늦게 TV로 뉴스를 시청하다가 간이 떨어질 만큼 충격적인 광경을 접하게 되었다. 장성 백양사 인근의 한 특급 호텔 스위트룸. 반팔 속옷 차림의 승려들이 빙 둘러앉아 도박판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언론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겸 조계사 주지와 부주지를 비롯 이른바 도가 높다고 일컬어지는 승려들 8명이 그들이었다. 때는 4월 23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술과 담배를 곁들인 억대의 포커 도박판이었다. 24일은 백양사에서 고불총림 방장 수산당 지종 대종사의 49재가 봉행되기로 예정된 날. 앵커의 설명과 화면은 즉시 나의 상상력을 가동시켰다. 당시 그 승려들은 절 근처 특급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옷가지들을 벗어던진 채 담배를 꼬나물고 술[보아하니 양주로 짐작되었다!]을 병째로 들이키며, 억대의 판돈을 걸고 도박판을 벌이고 있었다. 하도 궁금하여 인터넷으로 백양사 근처의 호텔들을 검색해 본즉 2인 1실 기준 스위트룸 1박이 20만원 정도. 모처럼 객고(客苦)(?)을 풀기에 딱이었을 그런 좋은 곳에서, 더구나 돈이 넘쳐나는 그들이 방을 함께 쓰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각자 방을 얻은 다음 어느 한 방에 몰려 가 놀았을 가능성이 크다. 술상도 결코 쓸쓸하지는 않았을 게다. 온갖 산해진미가 그득하지 않았겠는가. 혹 술 따르는 여인들까지 곁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심심하면 한 번씩 전국의 승려들이 조계사에 몰려들어 각목 들고 패싸움을 벌이던 일을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가. 겉옷을 벗어던진 채 담배를 피워 물고 술을 병째로 들이키며 포커 판을 돌릴 정도라면, 그 자리에서 오고 간 말들은 어땠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고상한 법문(法門)이나 경구(經句), 혹은 선문답(禪問答)들이라도 돌리고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아, 몇 번 어깨 너머로 구경한 적이 있는 속한(俗漢)들의 고스톱 판을 떠올려 보았다. 대개 고스톱 판에서는 패가 잘 못 들어왔을 때 내뱉는 단발성 ‘쌍욕’들이 대부분이고, 어떤 경우는 지저분한 음담패설에 허접한 농담들이 대부분이다. 투전판이란 고상한 말들이 오고 갈 자리는 결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 아닌가. 함께 이 모습을 시청했을 아이들이나, 부처님 모시듯 ‘스님’들을 모시는 전국의 불쌍한 신도 할머니들에게 이 장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가끔 여행을 하다가 새참 시간에 맞춰 시골 마을에 들어가면 쫓아와 합장하며 들밥을 권하는 할머니들이 있다. 내가 삭발을 하고 다니니 그 분들은 나를 피곤한 탁발승으로 오인하곤 하신다. 합장을 하면서 ‘어느 절에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셨느냐?’고 정중하게 예를 표하시는 것이 신심 깊은 우리네 시골 할머니들이다. 그런 할머니들에게 승려들의 이런 수행 장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그 화면에 말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당시 오고 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온갖 지저분한 음담패설들까지 방송되었더라면, 찬란한 한국 조계종의 역사는 그 순간에 멈춰버렸을 것이다!!!

흔히 종교를 믿지 성직자를 믿는 게 아니라고들 말한다. 성직자도 사람인 이상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음을 전제하는 말이다. 그렇다. 이 승려들 뿐 아니라,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외국 신부들의 성추문들, 간혹 교회를 사유재산처럼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온갖 꼼수를 부리거나 여신도들을 성폭행하는 목사들... 성직자도 인간인 이상 어느 순간 세속의 유혹에 빠져 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성직자를 보지 말고 종교의 참뜻을 바라보며 신앙심을 가지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인가. 목자 없는 새끼염소들이나 선생 없는 어린아이들을 생각할 수 없듯, 성직자 없는 신앙인들을 생각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승려들이 불교 입문을 원하는 사람들이나 신도들을 만나면 으레 삼독심(三毒心)을 버리라 한다. 삼독심 즉 ‘탐진치[貪瞋癡]’란 ‘탐욕[貪]/분노[瞋]/어리석음[癡]’ 등인데, 인간을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원인적 요소들이다. 그러나 삼독심을 버리는 게 그리 쉽겠는가. 자신들은 삼독심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세속인들을 상대로 ‘삼독심을 버리라!’고 일갈(一喝)한들 그게 무슨 감동을 줄 것인가. 차라리 그 많은 불경들 가운데 좋은 경구라도 골라 들려주어 듣는 사람 스스로 발심(發心)하도록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자신은 원수들을 죽도록 미워하면서 신도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친들 무슨 소용 있나? 자신은 재물에 끔찍한 애착심을 보이면서 ‘재물의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천당 가기 어렵다!’고 외칠 수 있나? 차라리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시편 119장 105절] 혼자서 열심히 성서를 읽고 묵상하며 실천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승려들의 참담한 행태를 목격하고나서 밀려드는 허무감을 주체할 수 없는 나날이다.  
                                                          

                                                                                                 <2012. 5. 11.>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4. 21. 17:52

가거지(可居地)를 찾아

 

 

 

 

                                                                                                                                                       


                                                                                                                                                          백규

어릴 적 자신의 ‘주검 옷’을 미처 마련하지 못한 노인들이 초조해 하는 모습을 뵐 때마다, 그 분들의 마음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못난 자식들이라 해도 당신 마지막 가는 길에 옷 한 벌 못해 입힐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안달하시는 걸까?’ 생각하며 그 분들의 속내를 가늠하지 못했다. 당신들 스스로의 손으로 최고의 주검 옷을 만들고 싶으신 마음, 그 옷을 입고 ‘고운 자태로’ 저 세상의 첫 문턱을 밟고 싶으신 그 마음을 철없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악다구니처럼 뜯어갈 줄만 알았지 부모의 마음을 한 치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 놈들, 제 가족이나 자신의 치장에는 돈 아까운 줄 모르면서 부모를 위해서는 푼돈을 아까워하는 자식 놈들, 바쁜 세상 탓만 하며 모든 걸 대강대강 장사치들의 손에 맡겨버리곤 ‘할 일 다 했다’고 손 터는 자식 놈들을 보며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들어가는 여행길만큼은 스스로의 손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이 땅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매 순간 갖고 계시는 거다. 이 땅의 어떤 자식이 그 지극한 속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우리나라 노인들이 땅에 발붙이고 말년을 살아가며 땅 속으로 들어갈 날을 준비하는 것은 오랜 세월 이어 내려 온 삶의 지혜이자 법칙이다. 번잡한 도회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떵떵거리다가 어느 순간 닥쳐 온 죽음 앞에 허둥대는 현대인들로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철학이기도 하다. 노후나 죽음에 대한 대비의 전통이 끊어진 것은 산업화에 이은 고도정보화의 물결 탓이다. 요즘 그 격랑이 점점 잦아들어 평온을 되찾고 있기 때문인가. 일부이긴 하지만 이제 현대인들이 조부모나 부모세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지혜의 전통을 찾아 나서게 된 것도 그로부터 생겨난 성찰의 덕분이리라. 자식들을 독립시키고 직장에서 퇴임한 다음 잡답(雜沓)의 도시를 탈출하여 조용한 전원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관조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깨달음의 묵직한 보따리를 텅 빈 농촌에 풀어놓고, 잠시 후면 몰려 올 자식들의 귀향을 기다리며 살다가 슬그머니 흙 속으로 스며드는 것. 한 줌 흙이 되어 소나무를 잣나무를 밤나무를 키우는 거름이 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삶일 것이냐.

나이 사십 후반이라면, 틈틈이 전국의 산과 들판을 돌아다녀볼 일이다. 돌아다녀보면 안다. 우리를 키운 8할이 계곡의 바람과 고운 물, 보드라운 흙이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역시 거기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라도 욕망을 버리고 ‘살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고의 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 ; 1670~1756)이야말로 우리 역사상 드문 선각자다. 살 만한 곳의 조건으로 그는 네 가지를 제시했다. 지리(地理)⋅생리(生利)⋅인심(人心)⋅산수(山水)가 그것들인데, 그 가운데 하나만 빠져도 낙토(樂土)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리란 ‘장풍득수(藏風得水)’ 즉 풍수를 포함한 그 땅의 현실적⋅형이상학적 이치, 생리란 그 땅이 인간에게 허락할만한 경제적 가치, 산수란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경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다한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頑惡)하다면 소용없는 일. 괜한 텃세로 들어와 정착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어놓거나 사사건건 트집으로 괴롭힌다면, 차라리 사막 한 가운데서 선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다녀보면 안다. 우리네 강토 안에서 이 네 조건 갖춘 땅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

  정년퇴임한 곳 언저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얼쩡대는 인사가 있다면, 어리석은 후배들을 닦달하고 작당하여 소리(小利)를 탐하려는 자가 있다면, 고개 들어 마지막 광채를 불사르며 바다로 스며드는 태양을 응시해볼 일이다. 깨끗하지 못한 우리를 자신의 넓은 품에 받아들여 정화시키고, 마지막을 아름답게 해 줄 대자연이 우리네 삶터 바로 곁에 있지 않은가. 허탕 치는 나날이지만, 오늘 또 다시 ‘가거지(可居地)’의 탐색에 나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012. 4. 21.>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4. 4. 15:34

국회의원 후보 김모씨의 ‘욕설 난장’

                                                                                                                                                               백규


국어선생으로서 낯을 들지 못하는 나날이다. 그간 어린 영혼들에게 교과서만 읽혔을 뿐 ‘정확하게 말하는 법’ ‘아름답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점을 통렬히 반성한다. 이 땅에서 우리말과 글을 팔아 밥을 먹고 있지만, ‘지저분하고 천한 말들의 향연장’으로 전락한 우리네 삶터를 목도하면서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는 나날이다.
  최근엔 더욱 기가 질리는 광경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선량(選良)[즉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김모씨. ‘몸집만 어른’인 그로부터 우리 사회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고 들어서도 안 될’ 최악의 언어테러를 당하고 만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나이로 쳐도 불혹인 40이 멀지 않았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으며, 모 대학 교수까지 역임했으니, 그를 보고 ‘철이 없다’는 표현을 갖다 댈 수는 없으리라. 그 뿐인가. 아무나 명함을 내밀 수 없는 정당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까지 받은 몸이다. 선량이 되어 민의(民意)를 대변하겠노라고,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 이 나라를 바로잡아 보겠노라고 대단한 포부를 밝힌 ‘대단한 인사’가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그는 입만 열면 하수구나 변기에서 풍기는 악취보다 더 구역질 나는 욕설들을 내뱉을 수 있을까. 그가 속한 그룹을 열렬히 지지하는 어떤 매체는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그 매체와 비슷한 성향이면서도 얼마간 양식이 살아 있는 다른 언론들까지 그의 ‘지저분한 언사’를 대서특필할 정도로 그의 욕설은 우리 사회에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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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길 가던 중 초등학생들 곁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주고받는 말들의 대략 90%가 욕이었다. 그들은 욕설을 그야말로 숨 쉬듯 내뱉었다. 그 욕설의 대부분은 성(性)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들 대부분은 그런 욕설들이 진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그 초딩들’의 욕은 ‘나꼼수’나 유튜브를 통해 확인한 ‘그 어른들’의 욕에 비해 애교스럽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접한 김모씨의 욕설은 구역질이 나서 끝까지 들을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초등학생들과 김모씨의 언사가 연결되면서 나는 김모씨 같은 어른들의 말, SNS 등을 통해 여과 없이 중계되는 그 욕설들이 바로 우리 시대 아이들의 ‘언어 교과서’임을 알게 되었다. 나 같이 고지식한 국어 선생들의 입장에선 그들 말대로 우리들과 ‘쨉이 되지 않는’ ‘살아있는 국어선생들’이 바로 ‘김모씨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한편으론 고마운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사실 요즘은 초등학생에서 어른들까지 욕이 일상화 되어 가고 있다 한다. ‘상아탑에 숨어 살아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 험한 욕 한 번 듣지 않고 살아온 그대는 세상물정 모르는 말 하지 말라'는 면박을 친구로부터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요즘의 세태를 깨닫게 되었다.  
***
그렇다면 김모씨는 왜 그런 욕설을 내뱉는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나꼼수’는 왜 욕을 일상어처럼 사용하는 것일까. 그들의 입장에서 그것을 ‘아주 잘 못 된’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오물’을 뱉어냄으로써 후련해지는, 일종의 자기중심적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노린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 모두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는 전제 아래, 그런 ‘오물 치우기’를 그들 스스로 감당하겠다는 ‘소영웅주의’의 발로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길게 따질 필요도 없이 김모씨 역시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는 가장일 텐데,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들을 아내나 아이들에게 들려 줄 수 있을까. 자신의 아이들이 밥상머리에서 자신이 ‘나꼼수’에서 내뱉는 그런 말들을 내뱉는다면[왜? 아빠가 이미 대중을 상대로 내뱉었으니까!], 그는 아버지로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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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만 돌아오면 특히 ‘말’이 험해진다. 사실 김모씨가 뱉은 욕설은 ‘말’의 범주에 속하지도 못한다. 적어도 말이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욕설들에 대체 무슨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제대로 된 정치의 역사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말 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학교에서도 기껏 교과서만 읽었지, ‘제대로 된 화술’을 가르친 적이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만 모아 놓으면 육두문자와 폭력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지난 선거에도 나는 정치인들의 ‘담론 수준’을 비판하는 글들을 여러 편 쓴 바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저급해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한다. 예의를 갖춘 언사와 멋진 논리만이 상대를 굴복시키는 ‘최종병기’임을 알만한 인사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게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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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과 혀[즉 말]는 근심의 문이며, 몸을 죽게 하는[망치는] 도끼’라는 것이 <<명심보감>>의 금언이다. 철없는 아이들이 쳐주는 박수에 도취되어, 보기에도 딱한 ‘소영웅주의’에 도취되어, 아이들마저 사용하길 꺼려하는 욕설들을 마구 내뱉은 김모씨. 이제 그 말들이 가시가 되어 자신의 앞길을 막게 되었으니 ‘남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습기가 솜과 같고, 남을 해치는 말은 날카롭기가 가시와 같으니 한 마디 말이라도 무겁기가 천금과 같고, 한 마디라도 남을 해치면 아프기가 칼로 베는 것과 같다’는 <<명심보감>>의 경구를 재삼 명심하면서, 깊은 산속에 들어가거나 가까운 교회당에라도 가서 꽤 긴 참회의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2012. 4. 4.>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3. 27. 18:56

힘 내라, 손수조!!!


‘아기장수’의 전설이 전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겨드랑이에 날개나 비늘을 달고 태어난 영웅, 힘이 센 아기장수의 비극적 종말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가 나중에 역적으로 몰려 멸문(滅門)될 것을 우려한 부모가 그를 맷돌로 눌러 죽이자 건너편 산 밑에서 용마가 구슬피 울며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이곳저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중세 권력의 횡포로 뜻을 펴 보지 못한 채 무수히 죽어간 영웅들. 이 땅에서 어렵사리 삶을 이어가던 중세의 민초들은 영웅을 대망하면서도 지배계층의 논리에 가담하여 ‘어린 영웅 죽이기’에 나서는 모순을 자행한 것이다.

4⋅11 총선이 다가오면서 백주 대낮에 ‘어린 영웅 죽이기’가 어른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딱한 광경을 목도한다. 스물일곱의 손수조 후보. 그가 후보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 혼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양심도 패기도 다 썩고 허우대만 남은 어른들이 활개치던 정치판에 이제 새 바람이 불겠구나. 패해도 좋으니 신나게 한 번 싸워 보거라. 불순한 암수로 민심을 호리는 정치인들을 그대의 풋풋함으로 제압해 보거라. 그러나 그에 대한 기대와 함께 증폭되는 불안감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바나에 내던져진 한 마리 양같은 그가 안쓰러웠다. 스물일곱의 북한 김정은이 정권을 잡은 일에 대해서는 입도 달싹 못하던 인사들이 그녀의 말 한마디에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일을 목격하며 내 불안은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녀는 처음에 ‘3000만원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당찬 말을 했다가 도저히 안 되자, 그 약속을 포기하겠다고 한 모양이다. 또 한 건은 그 돈 3000만원의 출처. 그는 원래 이 돈이 전세방을 뺀 것이라 했는데, 나중에 보니 전세방은 아직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할 일 없는 누군가 확인하곤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원래 전세방을 빼서 쓰려고 했는데, 요즘 전세방이 잘 안나가 할 수 없이 어머니에게 꾸었노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손수조는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언론에 보도된 것들만 대충 추리면 다음과 같다. 조모 서울대 교수는 트위터에 "'형사 책임'은 아니더라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라 몰아댔고, "서울 남영동에 18평 원룸으로 전세 3000만원짜리가 있다고? 증여세 공제한도액이 3000만원인 바 탈세 목적으로 이중계약서가 작성된 것이 아닌지 확인해보아야 한다"는 법률적 멘트까지 날렸다. 공모 소설가는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해야 할 일이라 했고, 진모 교수 역시 ‘면책특권’을 들먹거리며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 뿐인가. 어떤 당의 대변인이란 사람도 이런저런 말로 손 후보와 그 당을 비아냥거렸다.

대단한 사건이다. 한 마디씩 내뱉은 인사들의 경륜으로 보나 나이로 보아 그들의 작은 딸 쯤 될 스물일곱 살짜리 손 후보의 말 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며 그가 북한의 김정은보다 어쩌면 훌륭한 ‘아기장수’의 영웅성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갖게 되었다. 왜 그들은 ‘와!’ 하고 달려들어 그의 작은 몸을 ‘맷돌로 눌러’ 죽이거나 물어뜯어 죽이려는 것일까. 그를 죽이지 않으면 그들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젊은이가 참하게 직장생활이나 해야 하는데...’라고 자못 다정한 멘트를 날린 모 정당 유모 대표의 말처럼 걱정스런 부모의 심정 때문일까?

참, ‘뭣 같은 정치판’이라지만, 대명천지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아직도 ‘아기장수’ 하나 용납하지 못할 만큼 옹졸한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도 이젠 ‘아기장수’ 하나쯤 키워 우리 미래의 한 부분을 맡겨볼만한 때도  된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러니 손 후보는 그들의 어투대로 ‘절대 쫄지 말고’ 당당하게 나아가야 한다. 말 많은 자는 말로 망하게 마련. 가급적 말수를 줄여 공격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약한 모습 보이면 달려드는 게 하이에나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었을 그 어른들이 어린 후보의 말꼬리나 잡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며 매우 부끄러워지는 어제 오늘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3. 16. 09:21

지혜롭지 못한 교육부



                                                                                                                                                                   백규

학교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남의 일만도 아니다. 나 자신이 가해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그간 정권들 마다 ‘사회정화’나 ‘폭력배 근절’을 내세우며 소란을 피워왔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가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학교폭력’이란 근원을 애써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동안 학교는 사회폭력의 온상 역할을 충실히 해온 것이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학생이 자라 선생이 되며, 바늘도둑이 자라 소도둑 되는 법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비로소 폭력을 배우고 조직폭력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간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한 학교야말로 모든 폭력의 종묘장(種苗場)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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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에 의하면, 최근 교육부는 학교폭력의 실태를 파악했다고 한다. 폭력조직인 ‘일진’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 학교가 전국적으로 643개교이고, 그 중 한 학교는 학생 전원이 자신들의 학교에서 일진이 활약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다. 작은 시골학교들만 빼놓고 전국 대부분의 학교들에 폭력배가 있으며, 그 숫자도 20만~40만에 이른다고 했다. 그런데 교육부는 힘들여 조사한 결과를 왜 발표하지 않는 걸까. 알려진 바에 의하면, 부작용이 우려되어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작용이란 무엇일까. ‘학교폭력이 심한 학교를 공개할 경우 그 학교에 사회적 비난이 집중되고, 가해·피해 학생들이 알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는데, 아마 교육부가 말한 부작용이란 이 점을 말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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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한 여름 시원한 느티나무 아래서 갓 쓰고 타령하는 교육부의 모습’이 진정 가관이다. 얼핏 대단한 교육적 소신이나 철학인 듯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사경을 헤매는 암환자가 있다 하자. 환자를 살리려면 수술을 해야 한다. 암 덩어리를 도려내자면 아픔과 괴로움이 필수적으로 따른다. 그러나 환자나 의사는 그걸 감수해야 한다. 당장의 아픔이 무섭고 싫어서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대로 그냥 죽겠다’는 말 아닌가. 물론 교육부에서는 항변할 것이다. 드러내지 않고 자신들의 신중한 방법으로 개선해 보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폭력배들이 학교교육을 망쳐 온 긴긴 세월, 실태파악조차 못한 교육부의 ‘직무유기’를 감안할 때 그 말을 믿을 수도 없으려니와, 교육을 두고 그간 반복해온 헛발질이 이번 일이라고 달라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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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된 말로 학교 폭력을 일소하는 데 ‘용빼는 재주’ 없다. 잠시는 아프고 괴로워도 공론의 장에 터놓고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민들은 폭력배가 많은 학교에 당분간 자녀들을 보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폭력학교로 낙인찍힌 학교들은 당분간 텅 비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에 속속들이 폭력의 뿌리를 뽑고 다시 태어난다면 오히려 학교는 더 좋아질 것이고, 국민들도 암 수술 후 완치된 환자를 대하듯 그런 학교에 더 큰 애정을 부어줄 것이다. 혹시 폭력배들이 많다고 조사된 학교의 학교장들이 교육부에 공개하지 말라는 압력을 넣을 수도 있으리라. 그렇더라도 교육부와 장관은 소신을 갖고 이번 기회에 학교폭력을 소탕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나마 그동안 추락을 거듭해온 교육부의 위상 회복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교육부의 차후 행보를 예의주시하고자 한다.<2012. 3. 16.>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