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9.09.22 조국 장관께 (2)
  2. 2012.10.01 안철수가 걸린 또 하나의 덫
  3. 2012.08.07 이른바 국회의원이란 자의 천박한 입 (3)
카테고리 없음2019. 9. 22. 19:42

                                                                                                                                                             조규익

 

 으레 ‘조씨’는 ‘趙氏’려니 했는데, 얼마 전에 ‘曺氏’임을 알고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조 장관 선친의 항렬이 ‘현(鉉)자이니, 장관이 내 손자뻘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문중에서 고관하나 나왔구나!’했는데, 마냥 자랑스러워 할 상황이 아님을 깨달은 요즈음. 눈 뜨고 귀 열기가 부담스러워졌습니다. 더 이상 인내해서는 안되겠다 싶어 몇 마디 고언을 전하고자 합니다.

 

 최근 아파트 놀이터를 지나다가 초등학교 아이들이 재잘대는 말 속에서 언뜻 ‘조국’이란 단어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말끝에 깔깔대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미루어 결코 좋은 말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꼬마들이 공부나 학교교육을 통해 ‘조국이 우스운 인물’임을 알게 되었을 리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집안에서 툭하면 내뱉는 어른들의 말을 들었거나, 연일 TV나 인터넷 포털 등에 도배되는 조 장관 관련 기사들을 접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어른들은 이미 조 장관의 이름에 식상해 있고, 이제 초딩들까지 입에 올릴 정도면, 장관은 이미 ‘전 국민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안주나 횟감이 되어 있다고 말할 만합니다. 그런데, 어느 담소 자리에 가도 장관을 쓴 소주의 안주로 삼거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욕설의 대상으로 삼을 뿐, 단 한 마디 칭송이나 방어의 말은 들을 수 없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일부 과격론자들의 술자리들에서 ‘조국 체포조 결성’ 농담도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상황이 나빠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해결 책 없이 조금 더 지날 경우, 상황이 극적으로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사고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상황판단이 매우 안이하다는 점. 그게 조 장관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매일 터져 나오는 혐의들[그 중에는 혐의의 수준을 넘어 꼼짝없는 사실들로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임]의 바다에서 용케 익사하지 않고 버텨 나가는 모습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나날입니다. 조 장관은 아주 강한 멘탈리티의 소유자이거나 ‘공감능력 제로의 칠푼이’, 둘 중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느 경우라 해도 지금 저를 포함한 이 나라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미구에 도래할 비극을 예견할 수 있고, 조만간 목격하게 될 비극의 참상과 그로 인한 연민을 이겨내기 위한 ‘자기방어 메커니즘’을 슬슬 준비하고 있다는 점쯤은 알아주기 바랍니다.

 

 모든 비극의 근원은 ‘욕망’입니다. 저는 최근에 얻어 들은 가족사와 개인사를 통해 조 장관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욕망의 본질을 나름대로 분석하게 되었습니다. 조 장관이 자식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는 과정에서 부모가 저질러선 안되는 ‘반생태적・반인간적・반윤리적・반사회적’ 판단이나 행위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부와 권력의 추구 등은 결국 조 장관이 태어나고 자라온 과정에서 물려받은 생존본능의 발현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엊그제인가요? 조 장관과 함께 공부한 82학번 친구가 이렇게 술회했다지요? “조 장관은 운동권이면서도 그리 철저하게 운동하지 않은, 이른바 '반(半)운동권'인물”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현 대통령이 ‘얼치기 좌파’임은 '공인된' 한국 좌파운동의 대부 한 분이 이미 폭로한 바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제대로 된 운동권’이었다면, 지금 그 정도의 권좌에 앉을 수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운동에 모든 걸 걸고 나섰다면, 역사의 ‘거름’으로 분해되어 전설이 되었거나 간신히 역사책의 한 줄 기록으로 남는 데 불과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수고와 보상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역사를 살아왔다면, 그 운동권의 대부가 권력과 부를 차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이 역사이고, 또 그런 점이 역사의 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치기들은 역사가 수여하는 전리품을 독식하기 위해서 운동권의 명찰만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진짜 운동가들’의 희생을 통해 남겨진 전리품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한 대통령이나 조 장관 등은 ‘얼치기 운동가’들에 불과합니다.

 

  ‘진짜 운동가들’의 내면은 진심이나 진실로 가득 차 있어, 더 이상 현실적인 욕망을 채울 공간이 없지만, ‘얼치기 운동가들’의 내면에는 빈 곳이 많습니다. 그들이 필사적으로 권력과 부를 거머쥐고 싶은 것도 그 내면의 공간이 허전하게 텅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채우기 위해서라면, 가족도, 부모형제도, 친구도, 민족도 안중에 있을 턱이 없습니다. 이런 얼치기들일수록 치밀한 이론으로 치장한 멋진 위장막을 만들어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늘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구사하기 마련인 미끈한 언변을 ‘최종병기’로 갖춘 그들입니다. ‘조 장관의 말 가운데 90% 이상이 거짓’이라거나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 그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사람들의 평가도 그런 점을 뒷받침합니다.

 

이제 조 장관은 ‘얼치기 운동권’의 위장을 벗고 진정한 아버지와 남편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어떤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든 더 이상 장관으로서 나라의 법무행정을 총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장관직을 억지로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하고 급한 것이 가족을 본래의 자리로 모으는 일입니다. 자신의 죄를 서둘러 고백한 뒤 사법적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책입니다. 그러자면, 장관직을 던져 버려야 합니다. 누가 집어가든 장관직을 수행할만한 인재는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만약 지금도 장관직에 미련을 갖고 있다면, 그건 조 장관과 가족들을 속속들이 파괴하고, 종국에는 이 정권까지 산산조각 내게 될 것입니다.

 

자랑스런 선조 남명 조식(曺植) 선생은 <민암부(民巖賦)>에서 ‘백성은 물과 같아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는 <<순자(荀子)>> 왕제(王制) 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백성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하라’는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어쩌면 요즘의 시국을 미리 점쳤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조 장관이 권력에 미련을 둘수록 오점은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 즉시 맞지 않는 옷을 벗어던지고, 부디 인간 본연의 양심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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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광훈

    가슴이 아픈것은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빠로서의 나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2019.09.24 07:47 [ ADDR : EDIT/ DEL : REPLY ]
  2. 백재환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아닌가. 가족을 버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을 이룬다 하여도 그것은 모두 공일 것이 틀림없지요.

    2019.09.24 11:52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12. 10. 1. 16:21

안철수가 걸린 또 하나의 덫

                                                                                                        백규

나는 평소 안철수 선생에 대하여 호감을 가져 왔고, 그 마음을 작은 글로 이곳에 올린 적도 있다.[백규서옥 블로그 http://kicho.tistory.com 참조] 따라서 이 글 역시 그런 호감과 걱정의 연장선에서 쓰게 되었을 뿐, 특정 진영이나 인물에 대한 '호(好)/불호(不好)'의 차원에서 쓰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

최근 대통령 예비후보 안철수 선생에게 닥친 악재(惡材)는 서너 가지다. 그 가운데 부동산 ‘다운 계약서’는 목하 거론 중이고, 연구업적 문제는 조금씩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나머지 문제들도 곧 입줄에 오르내릴 전망이다.

오늘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한겨레신문[http://hani.co.kr]의 1면 톱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의 연구업적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세대학 강모 교수의 뛰어난 작문실력에 놀랐고, 아무리 뛰어난 작문실력으로도 그의 치부가 가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장문의 글을 소상히 기억할 수는 없으나,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다고 표절이라니…어이쿠!”라는 매우 선정적인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제목은 강 교수의 의도가 너무 빤하게 읽혀져서 오히려 애처로웠다.

지금 안철수의 연구업적에 대하여 벌이는 논란의 핵심은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한 것이 표절인가 아닌가’에 있지 않다. 지금 세상에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거나 책으로 출판하는 것을 표절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강 교수는 흡사 세상 사람들이 ‘안철수가 자신의 석사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가 표절했다고 비난한다’라는 엉뚱한 논지의 제목을 붙이고 말았다. 따라서 ‘표절’이란 잣대를 끌어대어 ‘안철수 논문 논란’이 어불성설임을 강변함으로써 그에 대한 도덕성을 따지려는 세상의 비난을 잠재우거나 물타기하려는 강 교수의 논의야말로 어처구니없는 궤변일 수밖에 없다.

안철수 논란의 골자는 이렇다. ‘세 사람이 공저로 되어 있는 영문 논문 한 편이 서울대학 발간의 모 학술지에 실렸는데, 안철수도 저자의 한 사람[제2저자]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원래 제1저자의 석사학위논문을 영문으로 번역한 논문이라는 것. 그런데 안철수가  그 논문에 대하여 기여한 내용이 모호하다는 것[그 논문을 지도했거나, 그 논문의 어느 부분을 작성했거나, 실험을 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이름을 붙일만한) 기여를 했다면, 그의 이름이 저자의 한 사람으로 끼어 들어간 것이 이공계의 관행으로  미루어 얼마간 양해가 될 수는 있을 텐데, 그것을 도통 알 수 없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더욱 해괴한 것은 그 논문에 대한 기여도를 안철수 스스로도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 알려진 바로는 지금까지 그의 연구업적은 석⋅박사논문 두 편과 세 편의 학술지 논문을 합쳐 총 다섯 편이란다. 그 세 편 가운데 바로 이 논문이 핵심연구업적으로 서울대학 당국에 제시된 모양이다. 자신의 핵심 연구업적으로 제출된 논문이 어떤 경로로 타인의 석사논문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자신이 그에 대하여 무슨 기여를 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다면, 누가 그 연구의 진실성을 의심치 않겠는가. 만에 하나 그 논문의 발행일자가 그야말로 수십 년 전이라면 혹시 기억을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들은 대개 5년 이내의 업적물 만을 임용심사 자료로 요구하고, 그 가운데 임용 신청자가 지적한 핵심 업적에 대해서만 실제 심사에 붙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대체로 5년 이내[아니 좀 더 여유를 두어 10년이라 해도 좋다!]의 연구물에 대한 기억조차 없다면, 우리는 학자로서 안철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나의 논문을 집필하기 위해 1년, 2년 혹은 수년의 실험과 검증을 거친다고 볼 때, 어떤 과정을 거쳐 그 논문이 완성되었는지 모른다면, 애당초 연구자의 자격이 없었거나, 남의 논문에 이름만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약간 과장할 경우 최근 자신이 써낸 논문의 토씨 하나까지도 기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학자들의 기본 생리이자 의무임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참으로 면구스런 가설이지만, 연구업적이 모자라는 안철수를 동정하여 누군가가[석사논문 작성자 자신 혹은 그의 지도교수?]‘앞으로 별 문제될 일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어떤 논문의 공동저자로 안철수를 끼어 넣어주었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그는 ‘힘 하나 안 들이고’ 흡사 ‘이미 차려진 밥상 위에 수저를 올리듯’ 남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림으로써 손  쉽게 연구업적을 부풀린 것 아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안철수 스스로가 부탁하여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은 없는가. 이것들이 바로 항간의 식자층에서 갖고 있는 의혹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해당 글의 필자 강 교수는 흡사 세상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안철수가 표절을 행했다!’고 공격하는 것처럼 호도하여 세상사람들이 몰상식하고 무지몽매하다는 투로 ‘적반하장(賊反荷杖) 식’의 언설을 농(弄)한 것이다. 이른바 ‘교묘한 물 타기’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안철수 교수가 스스로 각종 콘서트나 예능프로그램, 저서 등에서 밝힌 바 있듯이, ‘연구진실성’의 문제는 한 인간인 연구자의 도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잣대로 활용될 수 있고, 또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과연 그는 이 논문의 한 부분이라도 실제로 쓴 것일까. 원래의 석사논문과 영문번역 후의 학술지 논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에 대하여 안철수는 몇 %나 기여했는가 등은 시급히 밝혀져야 할 문제다. 사실 '논문 진실성‘의 문제는 지금 거론되고 있는 ‘다운 계약서’문제보다 오히려 크고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 쪽 캠프 인사들의 인식대로 ‘다운 계약서’는 과거에 흔하게 자행되던 관행의 문제로 칠 수 있다 해도, 활자로 찍혀 후세에 두고두고 학문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논문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고 파급력이 큰 양심과 양식의 소산(所産)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궁한 논리로 그를 변호하고자 하는 인사들이 모두 서울대학이나 연세대학이라는 국내 굴지의 대학에서 밥을 먹고 있는 교수들이라는 사실이다. 흡사 ‘서울대학이나 연세대학 같이 훌륭한 대학의 교수들이 별 일 없다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왜 왈가왈부하느냐?’ 라고 질타하는 듯한 논조다. 실제로 강 교수의 논리 가운데는 ‘학문에 무지한 세상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말도 안 될 뿐 아니라, 불순하기까지 하다’는 투의 ‘진짜로 무례하고 몰상식한’ 사고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제1저자와 제3저자가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세상 사람들은 그의 연구진실성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거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비교의 대상으로 끌어와 안철수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는 강 교수가 참으로 가엾기까지 하다.

과연 우리는 자기편에 대해서는 한 없이 너그럽고, 상대편에 대해서는 한 없이 엄정한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자들의 자가당착적 잣대나 비윤리적이기까지 한 현실인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강 교수가 결론이랍시고 자못 ‘사자후라도 토하듯’ 자신의 글 말미에 달아놓은 언설을 참고자료1로, 황우석의 연구비리를 밝혀냈고 현재 안철수의 연구진실성 문제에 대하여 뜨거운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이트 BRIC(http://bric.postech.ac.kr)
의 토론글 한 편을 참고자료2로 아래에 적어 두노니, 강호의 제현들은 몸소 읽고 판단해 보시라. 존경하는 안철수 선생은 더 이상 함량 미달의 지식인들 을 보호막으로 삼지 말고, 대중 앞에 직접 나서서 자신의 연구진실성, 아니 윤리와 도덕의 바탕인 양심의 문제를 속 시원히 해명하기 바란다. 만약 답변이 궁하다면, ‘미안하다. 다음부턴 안 그러겠으니 이번만은 너그럽게 봐주라’는 식으로라도 사과하기 바란다. 그런 다음 국민들에게 표를 요구하기 바란다.<2012. 9. 29.>
  

   참고자료 1

“또 하나의 논쟁거리는 발표된 학술지 논문에 누구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이 문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한다. 즉 이번 논문의 제1 저자인 석사학위 논문 제출자, 그리고 지도교수로 추정되는 제3 저자 이외에 안철수 후보가 이 논문의 작성에 기여를 했는지 여부이다. 그랬다면 제2의 공저자로 참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안 후보가 한 일도 없이 ‘숟가락 하나 얻은 격’으로 학자들 사이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제1, 제3 저자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논문 분석 결과도 안 후보의 기여가 있다고 평가했다. 더욱이 이러한 저자권(authorship)의 문제는 제3자가 평가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고,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학자들 사이의 논란 거리지 학자의 정치력을 평가하는 문제가 될 수 없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유재석의 오스틴파워 풍 댄스나 노홍철의 저질 댄스가 싸이의 미국 진출에 기여한 여부를 정치부 기자가 예단해서 말할 능력이 있는가와 비슷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논문의 저자에 누가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학계의 주장은 상당히 다양하지만 현대 과학이 진행되는 일반적인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기여가 필요하다. 연구 아이디어를 내고 제안하는 단계, 실제 연구와 실험을 수행하는 단계,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고 토의하는 단계, 그리고 최종적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투고하여 심사를 받는 단계 등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국제 학계에서는 이러한 기여 중 3가지 이상에 참여하면 저자의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고, 따라서 제자의 학위 논문이라도 그 학위 논문이 작성되는 과정에 위와 같은 기여가 있었다면 지도교수나 관련된 다른 사람이 학술지 논문에 공동으로 저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한국의 관례가 아니라 국제 학계의 윤리이다.

정치인의 개인적인 도덕성과 윤리성에 대해 꼬치꼬치 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또 이로 인해 우리 공직자의 윤리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관계나 정확한 판단에 근거하지 않은 정쟁적 비난은 정치를 혼란하게 만들 뿐이다. 또 더 나아가 학자들의 연구 활동이 위축되거나 우수한 인재가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모두 도로교통법 위반이긴 하지만 음주운전을 해서 인사 사고를 낸 운전자와 새벽 4시에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슬금슬금 지나간 운전자 모두를 다 똑같은 놈이라 비난하고 같은 정도로 처벌하는 것도 공정치 못하다.

제발, 주요 일간지 정치부 기자들은 어줍잖은 술자리 얘기들로 아까운 지면을 소비하지 말고, 대선 후보자들의 정책에 대한 정확한 분석, 비판, 실현성 여부 그리고 대안 제시로 내용을 채워주길 간절히 기대한다. 정치인도 바뀌겠다고 난리인데, 이젠 언론도 바뀔 때가 되지 않았는가?“ <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이상의 자료문은 <http://hani.co.kr>에서 퍼옴>

 

 

참고자료 2

안철수 팀 논문(1993년)의 표절에 관하여
빈쿨룸
(2012-10-0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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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팀 논문(1993년)의 표절에 관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안철수 팀의 논문 표절에 관한 글을 올린다. 표절 대상으로 의심되는 논문은 1992년, 안철수 팀의 논문은 1993년에 발표되었다. 전자는 국문이고 후자는 영문이다. 그러나 학계(인문, 사회, 이공, 의학 모두)에서는 국문 논문이라도 영문이나 기타 외국어 초록(요약문)을 싣게 되어 있다. 필자는 인문계통 전공자인 관계로 두 논문의 본문은 비교 분석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두 논문의 영문 초록을 비교해보았다.

1. 제목

1992년 논문 - 토끼 단일 심실근 세포에서 Cyclic GMP의 Ca2+ 전류 조절기전에 관한 연구/ Modulation of Calcium Current by Cyclic GMP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s of the Rabbit.

1993년 논문 - Effect of Cyclic GMP on the Calcium Current in the Ventricular Myocytes of the Rabbit.

안철수팀의 영문 논문을 국역하자면 <토끼 심실근 세포에서 Ca2+ 전류에 대한 Cyclic GMP의 영향(효과)> 정도가 되겠다. 논문 제목만으로도 두 논문의 주제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록에서 드러나지만 안철수팀의 논문에서도 “단일” 심실근 세포를 분석한다. 두 논문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Cyclic GMP에 의한 변화과정이다. 1992년 논문은 그 변화과정을 “조절기전”(Modulation)으로 표현하고 1993년 논문은 “영향/효과”(effect)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 논문의 주제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1993년의 논문이 동일한 분석대상을 통해 1992년 논문과 다른 분석결과를 제시한다면, 안철수팀의 논문은 독창적인 연구가 될 것이고 표절에 관한 모든 논란은 무지한 자들의 헛짓거리가 된다. 이 부분은 의학계 전문가들이 밝혀낼 필요성이 있다.

2. 첫 문장

1992년 논문 -

In order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intracellular cyclic GMP on the calcium channel, whole cell patch clamp technique with internal perfusion method was used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 of the rabbit.

1993년 논문 -

In order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intracellular cyclic GMP on calcium current, the whole-cell patch clamp technique with internal perfusion method was used in isolated ventricular myocyte of the rabbit.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싱크로율 98% 이상의 동일한 문장이다. 정확히 3군데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다:

1) on the calcium channel - on calcium current

안철수팀의 초록에서는 the를 빼고 channel 대신에 current를 넣었다. 두 단어는 다른 뜻인가? 거의 동일한 뜻이다. 사실 두 논문이 공통으로 다루는 주제가 어떤 “관”에 일어나는 변화이다. channel도 current도 모두 “경로”, “전류”, “통로”, “관” 등으로 유사어라 할 수 있다. 혹시 표절을 피하기 위해 the를 의도적으로 뺐다면 꽤 꼼꼼한 처사라 하겠다.

2) whole cell - the whole-cell

이 부분은 별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역시 the와 - 으로 차이를 둔 것뿐이다.

3)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 - in isolated ventricular myocyte

외국어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부분은 참으로 간교한 작업으로 보인다. isolated는 무슨 뜻인가? 격리되거나 분리된 것이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따로 떼어놓고 그것 하나만 본다는, 즉 “single”을 관찰한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오히려 the를 뺌으로써 변화를 주었다. 1992년 논문의 영문 제목 끝부분이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 of the rabbit”이었음을 상기하자.

3. 두 번째 문장

1992년 논문 -

Cyclic GMP, cGMP analogues, cAMP, isopernaline and forskolin were perfused into cells and their effects on the calcium current were analysed by applying depolarizing step pulese of 10mV in amplitude for 200msec from holding potential of -40mV. (원본)

1993년 논문 -

Cyclic GMP, 8-bromo-cyclic GMP, cyclic AMP, were perfused into cells and their effects on the calcium current were analysed by applying depolarizing step pulse of 10mV in amplitude for 300msec from holding potential of -40mV.

역시 98% 싱크로율인데, 좀더 교활해보인다. 또 세 군데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다.

1). Cyclic GMP, cGMP analogues, cAMP, isopernaline and forskolin - Cyclic GMP, 8-bromo-cyclic GMP, cyclic AMP

1992년 논문은 더 추상적인 동시에 더 구체적인 주체를 제시한다. 더 추상적이라 함은 “cGMP analogues”, 즉 “cGMP과 유사한 것들” 혹은 “cGMP 류의 것들”로 표현하기 때문이면, 더 구체적이라 함은 “isopernaline and forskolin”을 첨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팀에서는 1993년의 추상적 표현 대신에, “cGMP”는 “Cyclic GMP”로 풀어서 표현하고 구체적으로 “8-bromo-cyclic GMP”를 덧붙였다. 그리고 1992년 논문의 “cAMP”는 “cyclic AMP”로 풀어서 표현했다.

달리 말하면, 표현들이 조금씩 다를 뿐 분석 내용은 같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2) pulese - pulse

1992년 논문의 철자 오류 pulese를 안철수팀이 pulse로 바로잡았다.

3) 200msec - 300msec

실험 수치가 바뀌었다. 그러나 다른 수치는 동일하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부디 실험 결과가 온전하게 나왔기를 바란다. 전문가들이 해결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cf. 중간에 두 논문 모두 수치를 통한 분석을 제시하는데, 이 부분이 두 논문 초록에서 차이가 나는 유일한 부분이다. 그러나 "In the presence of..." 문장이 두 초록 모두에서 발견되는데, 꽤 다른 듯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마지막 문장

1992년 논문 -

From the above results it could be concluded that cGMP increases the calcium current not through cAMP dependent protein kinase nor cAMP dependent phosphodiesterase pathway, but through independent phosphorylation pathway, possibly cGMP dependent protein kinase pathway.

1993년 논문 -

From the above results it could be concluded that intracellular perfusion with cyclic GMP increases the basal calcium current via a mechanism involving a cyclic GMP dependent protein kinase.

언뜻 보면 두 문장이 꽤 달라 보이지만, 사실 거의 흡사하다. 역시 3부분으로 나눠서 고찰해보자.

1) cGMP - intracellular perfusion with cyclic GMP

1993년 논문은 cGMP를 cyclic GMP로 표현하고 “intracellular perfusion”를 첨가함으로써 주어가 바뀐 듯한 문장을 만들었으나, 사실 연구 내용상 “intracellular perfusion”은 덧붙여도 삭제해도 마찬가지 의미의 문장이 될 것이다.

2) the calcium current - the basal calcium current

1993년 논문은 “basal”(기본적인)을 첨가했는데, 당연히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문장이다.

3) not through .... but through - via a mechanism

이런 부분을 보면 필자 또한 학자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외국어에 다소 무지한 이들을 완전히 무시하려는 의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1992년 논문에서는 친절하게 “... 이러한 점을 통해서 ..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저러한 점을 통해서 증가한다”라고 설명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1993년 논문은 증가의 이유가 아닌 부분은 필요 없어 보였는지, “via a mechanism”, 즉 “~ 저러한 과정(기제)을 통해”서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물론 두 논문은 증가의 이유가 동일하다고 결론 내린다. 단지 1992년 논문이 “cGMP dependent protein kinase pathway”라고 표현한 것을 1993년 논문은 “a cyclic GMP dependent protein kinase”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섬세하게 a를 첨가했고, 역시 “cGMP”는 “cyclic GMP”로 풀어서 표기했으며,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 “pathway”(통로)는 단호하게 삭제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했다.

4. 결론

두 논문의 영문 초록만을 보았을 때 1993년 논문이 1992년 논문을 표절한 것은 거의 확실하다. 다만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혹시나 1993년 논문이 다른 분석 결과를 내놓기 위해 동일한 분석 대상을 연구했다면 모르겠으나, 초록의 마지막 문장의 의미를 고려해볼 때 그 가능성은 없다. 본문의 표절 여부는 의학계의 전문가들이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 BRIC(http://bric.postech.ac.kr)>

참고자료 3

표절과 무임승차, 그리고 학자로서의 양식의 문제.
[일반인] 금빛노을
(2012-10-06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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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후보의 박사학위논문의 표절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다. 이 사안이 MBC에서 보도된 뒤, 서울대의 조국교수는 “(학계 규칙을) 모르고 안철수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무식한 것이고, 알고도 했다면 악의적인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안철수후보 역시 2008년 8월 한 인터넷 매체 인터뷰에서 “표절에 대한 관대한 문화 역시 걸림돌이다. 학생들조차 표절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화 속에서 지식 산업이 성장하기는 쉽지 않다”고 발언한 바 있다. 따라서 안철수후보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조국교수처럼 표절시비에 대해 ‘무식’하고 ‘악의적’이라는 식으로 세치혀의 칼날을 휘두르기보다는 냉정하게 표절논란의 옳고그름을 가리는 것이 필요하다.

총선을 전후해서 문대성의원의 논문표절이 문제되었을 때, 조국교수는 <'참고문헌 빼고 72쪽 논문 중 9쪽(전체의 12%)을 따옴표 없이 출처도 명기하지 않은 ‘오타’까지 베꼈다>고 비판한 적이 있었다. MBC에서 지적한 것도 <따옴표 없이 출처도 명기하지 않고’ ‘오타’까지 베꼈다>는 것 아닌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문대성의원을 대상으로 지적하면 정의롭고 안철수후보를 대상으로 지적하면 무식하고 악의적이 되는가? 필요에 따라 임의로 잣대를 들이대거나 들이댄 잣대를 빼앗는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

석사학위논문을 수정하고 다듬어서 관련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분명 학계의 관행이다. 하지만 관행도 관행나름이다. 석사학위논문을 다듬어서 관련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대개 연구쪽으로 진로를 정한 사람이 박사과정 진학을 전후해서 하는 것이지, 문제가 된 논문의 제1저자인 김규현처럼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이 그것도 석사학위논문을 제출한 지 5년이 지나서 영역한 것 외에는 거의 수정없이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김규현과 안철수후보는 1988년에 서울의대 생리학교실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안철수후보는 석사를 받은 직후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단국대 의대교수로 채용이 되었으니 당연히 석사학위논문을 다듬어서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이 조국교수가 말한 ‘학계의 관행’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자신의 석사논문을 학술지에 싣지 않아도 무방했을 김규현은 석사학위 취득 후 5년이 지난 1993년에 학술지에 학위논문을 재수록하였고, 서울의대에서 조교도 지내고 단국대 의대 교수로서 학과장까지 했으니 마땅히 ‘학계의 규칙’을 따랐어야 할 안철수후보는 자신의 석사학위논문을 학술지에 싣는 대신 석사동기의 재수록논문에 제2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안철수후보가 석사동기의 논문에 제2저자로 슬쩍 이름을 올린 이 논문을 학회지에 게재된 지 18년이나 지난 2011년에, 그것도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임용서류에 주요연구업적으로 실었는가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교수를 공채할 때에는 응당 제출된 논문의 전공일치 여부를 심사한다. 그리고 연구업적은 대개의 경우, 석박사학위와 최근 5년간의 논문실적을 서류에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안철수후보는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임용서류에 5편의 주요연구업적을 기재했는데, 석박사논문을 제외한 나머지 3편이 모두 1993년에 작성된 논문이었고 문제가 된 김규현의 논문은 이 3편의 논문 가운데 한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은 안철수후보가 제3저자로 된 논문인데, 이 논문은 부산의 모 의대교수가 자신이 1993년 2월에 쓴 석사학위논문을 가필하고 안철수후보를 포함한 총 7명을 공저자로 하여 대한생리학회에 실은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편이 역시 1993년에 대한의학협회지에 <의료인의 컴퓨터 활용범위>라는 제목으로 쓴 안철수 자신의 논문이다. 이들 논문은 모두 안철수후보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임용되기 위해 제출한 서류에 주요연구업적으로 기재되었고,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임용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이들 논문에 대한 검증은 대한민국 대통령후보로서의 안철수에 대한 후보검증 이전에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대학교의 교수공채시스템에 대한 공정성과 절차적 적법성을 가리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기도 하다.

안철수후보는 2011년에 서울대학교에 제출하는 서류에 왜 하필이면 1993년에 작성된 논문들을 주요연구업적으로 기재했던 것일까? 그리고 안철수후보는 왜 1993년에 동기와 후배의 논문에 제2저자, 제3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일까? 1993년 이후에 전문학술지에 실은 논문이 없어서라면 ‘석좌교수’나 ‘대학원장’으로 불리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1993년에 작성된 3편의 논문이 해당 학과나 해당 대학원과 무관한 논문이라면 굳이 이를 서류에 올릴 필요도 없는 것이고, 서류에 이를 올리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논문에 대한 논란은 안철수후보 자신이 자초한 것이므로, 이들 논문에 대해 논란을 ‘무식’이니 ‘악의적’이니 하고 비난하는 조국교수의 발언이 오히려 무식하고 악의적인 것이다.

안철수후보가 자신의 이름을 동료와 후배의 논문에 제2저자, 제3저자로 끼워넣은 1993년 당시는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의 표현에 따르면 ‘커다란 공백기’였고 ‘의학연구를 할 수 없는’ ‘엄청난 고문’같은 시절인 군의관 복무시절이었다. 안철수후보는 39개월의 군복무기간을 ‘공백기’라고 하였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1993년부터 2년동안은 서울의 연구소에 배치되어 집에서 출퇴근했다고 한다. 그의 말과 달리, 어느 정도는 공부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었을 법하다. 그런데 안철수후보는 의학공부 대신 컴퓨터바이러스백신 개발에 몰두해 있었다. 그 연구소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컴퓨터바이러스백신 개발에 몰두했던 그가 그래도 제2저자, 제3저자로 의학학술논문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보아 생리학관련 연구소에 근무했었을 듯하다. 그래서 팀원의 일원으로 이름이 올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전역 이후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연구실적이 필요해서 동료와 후배의 논문에 슬쩍 이름을 끼워넣었을 수도 있을 듯하다.

어쨌든 이들 논문에 대한 심사를 거쳐 바로 1년전인 2011년에 안철수후보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되었고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란 직함이 그가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데 있어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학위논문을 포함하여 5편의 논문에 대해 표절이든 무임승차든 논란이 생긴 부분에 대해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동안 교수출신의 유명인들이 장관등의 고위직 후보로 내정되어 인사청문회를 할 때마다 ‘자기표절’이니 ‘이중게재’니 하고 온갖 독설을 퍼붓던 바로 그 사람들이 자신들과 정치적 성향과 이해관계가 엇갈린다고 해서 안철수후보의 석박사 학위논문과 여타 학술논문에 대한 표절시비와 무임승차논란이 확산된다고 해서 이를 ‘정치적 의도’라는 말로 차단막을 치고 ‘무식’이니 ‘악의적’이니 하는 막말로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도 ‘정치적’이다.

정치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모든 칭찬과 비판은 당연히 정치적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인 논란을 학문적으로 밝히는 것이 바로 이곳 브릭에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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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2. 8. 7. 21:23

이른바 국회의원이란 자의 천박한 입

 

                                                                                                                                                         백규

 

본인에게는 약간 미안한 말이지만, ‘이종걸’이란 국회의원[통합민주당]이 있었는지 오늘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트위터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그년’으로 지칭했다 하여 언론매체들이 떠들썩하다. 네티즌 가운데 몇 사람이 표현의 지나침을 지적하자 ‘그년’이 ‘그녀는’의 준말이라고 강변했다니, 더욱 기가 찰 일이다. 30년 가까이 국어선생을 하고 있지만, ‘그년’이 ‘그녀는’의 준말로 일상 언어생활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서야 알게 되었으니, 나도 문제적 인간인가?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번 김용민이란 사람이 막말파동으로 국회의원 후보 자리에서 쫓겨난 지 채 몇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같은 당에서 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런 걸 보면 바야흐로 이제 정치의 계절은 시작된 것 같다. 5년 전 선거철에도  정치인들의 험한 말은 차마 들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언어순화를 요구하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었다.[조선일보 바로가기] 그러나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지금, 반복되는 ‘역사의 법칙’이나 씁쓸하게 떠올릴 뿐이다.

 

                           ***

 

그렇다면 왜 이렇게 험한 말들이 속사포처럼 튀어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를 요즈음 사람들이 ‘없으면 단 한 시도 못 산다’는 SNS 즉 ‘사회적(사교적) 연결망 서비스’에서 찾게 된다. 긴 문장 대신 짧은 문장으로 수시로 일어나는 상황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메커니즘이 바로 그런 서비스이다. 어떤 사실을 목도하거나 말을 들었을 때, 또는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잠시잠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돌멩이 던지듯 뱉어내는 것이 바로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다.

 

참 가관인 것은 나이가 지긋이 들었다고 생각되는 서울시장도, 정당의 대표나 국회의원도, 상당수 대학교수들도 여기에 목을 매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의 진위를 따져 볼 겨를도 없이 그냥 쏘아대고 만다. 그 말은 즉각 팔로워(follower)들에게 전달되고, 그들은 또 자신들의 팔로워들에게 리트윗(retweet)함으로써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져나간다.

 

일단 트윗 혹은 리트윗된 말들은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옆에 있는 단 한 사람에게 속삭이듯 건넨 말도 주워 담을 수 없거늘 하물며 수십만 수백만에게 전달된 말을 무슨 수로 주워 담는단 말인가. 그런 말들은 진위에 관계없이 여론이란 허울을 쓰고 나라를 흔들어 놓기 일쑤다.

 

                          ***

 

박원순 서울시장도, 서울법대 조국 교수도, 소설가 이외수 씨와 공지영 씨도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SNS 애용자들이다. 엄청난 팔로워들을 거느린 그들이 부러워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사실 이들의 한 마디 말이 갖는 의미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가. 자신들의 말 한 마디에 따라 대중들이 쉽게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면, 그 말들을 가볍게 SNS로 던져댈 일은 아니다. 그래서 SNS에 의존하는 요즈음의 정치인들이나 사회운동가들, 문화인들이 그렇게 천박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

 

한 마디 말을 꺼내기 위해 수십 번 되 뇌이고 고민하는 과정을 이들은 아예 생략해 버린다. 일단 던져놓고, 나중에 잘못이 드러날 경우 수정하면 된다는 배짱들일 것이다. 그래서 늘 강호에는 무책임한 말들로 인한 혼란 때문에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참으로 한심한 인사들이 아닌가. SNS를 애용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흡사 ‘고자질하는 애들’ 같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일단 자신이 곰곰 생각하며 해결하거나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큰 소리로 떠들고 본다. ‘그들이 어떻게 해주겠지’ 하는 심산일까.

 

팔로워들 가운데는 얼마나 단세포적이며 생각 없는 어린애들이 많은가. 이 사회의 어른을 자처하는 인간들이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공공의 일들을 ‘아가들’에게 고자질하여 들고 일어나게 만드는 격이다. 그래서 나는 툭하면 SNS에 의존하는 현대의 정치를 ‘고자질의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종걸이란 국회의원도 아마 그 SNS의 마력에 빠져 있는 인물인 듯하다. 박근혜 후보에게 잘못이 있다면 기자회견을 하든 칼럼을 쓰든, 아니면 만나서 항의를 하든 방법은 많을 것이다. 어쩌자고 ‘그년’이란 상말 호칭을 사용하여 수많은 팔로워들에게 뿌려댄단 말인가. 그러고도 스스로가 국회의원임을 내세울 수 있는가? 국회의원으로서의 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

 

“구설자(口舌者)는 화환지문(禍患之門)이요 멸신지부(滅身之斧)라[입과 혀는 화가 들어오는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다]”, “상인지어(傷人之語)는 환시자상(還是自傷)이니 함혈분인(含血噴人)이면 선오기구(先汚其口)니라[남을 해치는 말은 도리어 스스로를 해치니 피를 머금고 남에게 뿜으려 하면 먼저 자신의 입을 더럽히게 되느니라]” 등의 말들은 모두 옛날에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과서 <<명심보감(明心寶鑑)>>에 기록되어 있다. 아무리 몹쓸 시대로 변했다 한들, 환갑 진갑 다 지냈거나 그에 가까운 어른들이 옛날 열 살 남짓되던 아이들만도 못해서야 쓰겠는가? 정치인들이여! 부탁하노니 반성하는 뜻에서라도 당분간 제발 그 입들에 자물쇠 좀 채워주기 바란다.

 

<2012. 8. 7.>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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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객

    백규 선생님, 이종걸의 소속당은 '통합민주당'이 아니라, '민주통합당'이랍니다.

    2012.08.09 11:45 [ ADDR : EDIT/ DEL : REPLY ]
  2. 4324

    다음에서 뜻이 다른 하나를 고르시오.
    1) 그녀는 서슬이 퍼래서
    2) 그년 서슬이 퍼래서
    3) 그년은 서슬이 퍼래서

    당연히 답은 3번이다.

    당신은 1번을 고를텐가?

    물론 중의적으로 진짜 그년이라고 욕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판단은 "나는"을 "난", "누구를 바로로 아나?"을 "누굴 바로로 아나?" "저를 데려가요"을 "절 데려가요"와 같이 "그녀는 서슬이 퍼래서"를 "그년 서슬이 퍼래서"로 줄인 것이 분명하다.

    혹자는 네 애인이나 아내나 어머니를 그년이라고 말할 수 있냐고 말한다.

    내 애인이나 아내나 어머니를 그년이라고는 말하지 못 해도

    그년 내 애인이다.
    그년 내 아내다.
    그년 내 어머니다.

    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2012.08.11 00:45 [ ADDR : EDIT/ DEL : REPLY ]
  3. 4234

    4324님, '그년 서슬이 퍼래서'와 '그녀는 서슬이 퍼래서'를 '내포(內包)의 질량'이 같은 표현들이라고 보시는군요. 더구나 '누굴 바보로 아나?'가 '누구를 바보로 아나?'의 줄임말이라는 사실, '그년 서슬이 퍼래서'의 줄임말이 '그녀는 서슬이 퍼래서'의 줄임말 이라는 사실. 이 둘의 사례를 같은 저울에 놓고 달 수 있는 표현들이라고 보시는 님의 '출중하신' 상식이 참으로 놀랍군요. 말이란 특히 구어(口語)란 항상 '맥락'을 중시해야 하고, 관습이나 다중의 상식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을 모르지 않으실 것 같은 분이 이런 억견(臆見)을 내놓으시다니 답답합니다. 이종걸 의원이 갖추고 있는 상식과 지성의 수준을 잘 모릅니다만, 님께서는 이종걸 의원이 애초에 변명한 대로 '그녀는'의 준말로 '그년'을 사용했다고 믿으시는군요. 그는 그 변명이 안 통하자 두어 가지 구차한 방향으로 말을 바꾸었고, 나중에는 사과를 하고 말았지요. 그의 말을 믿고 안 믿고는 님의 자유이지만, 받아들이는 언중(言衆)의 상식에서 판단해 주심이 옳을 줄로 압니다. 특별히 이종걸 의원을 변호하실 의향이나 필요가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2012.08.11 15:07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