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17.02.19 22:43

2017년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춘계학술발표대회

안녕하십니까?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에서는 2017년 2월 20(월) 숭실대학교에서 춘계 학술발표회를 갖습니다. 이번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 많은 학자들을 모시고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발표를 진행하고자 하오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드림


* 일시 : 2017년 2월 20일(월) 오후 1시 - 6시

* 장소 : 숭실대학교 벤처관 311호

  순서

13:00-13:30 등록 및 개회사 / 조규익(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소장) 사회 : 양훈식  

13:30-13:55 박효은(홍익대) 시간의 틈새 : 16-18세기 雪景의 주제적 단층과 王維
/ 토론 : 류승민(문화재청)

13:55-14:20 이상주(중원대) 默齋 李文楗의 繪畵 趣向과 「畵竹十詠」에 대한 考察
/ 토론 : 김지현(한중연)

14:20-14:45 김연갑((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일제저항기 한 지식인의 아리랑 인식
/ 토론 : 조용호(숭실대)  

14:45-15:00 중간 휴식  

15:00-15:25 김용기(중앙대) <옥황기>에 나타난 천명과 권선징악의 관계
/ 토론 : 하경숙(선문대)

15:25-15:50 유육례(조선대) 김삼의당의 연정시 연구
/ 토론 : 김성훈(숭실대)

15:50-16:15 김영덕(숭실대) 장진주사 미학의 변이와 지속 연구
/ 토론 : 정영문(숭실대)

16:15-16:30 중간 휴식

16:30-18:00 종합 토론  /  좌장 : 조규익(숭실대)


     연락처  

정영문 (숭실대학교 베어드대학 교수/한국문예연구소 연구원)
숭실대학교 글로벌브레인홀 109호
02-828-7220 / 010-6799-4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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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7.02.14 18:10

속물적 포퓰리스트 혹은 어설픈 마키아벨리스트들의 난장판

 

 

 

 

촛불과 태극기의 행렬이 주말마다 도심에서 경찰의 차벽을 사이에 두고 세를 겨룬다. 흡사 아프리카 늪지대의 하마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서로 더 크게 입을 벌려가며 우열을 겨루는 형국이다. 현직 대통령을 광장의 단두대에 매달고 그 앞에서 벌이는 들판의 싸움이 어디서 어떻게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살벌한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이른바 정치인들이다. 대통령 되어 보겠노라고 나선 몇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들 주변에 죽 늘어선 대열이 참으로 가관이다. 그 가운데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사람들의 눈도장을 찍으려는 인물들은 더더욱 볼만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광장에 모인 군중의 정치적 위임을 받은 자들임을 처음부터 모르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어떻게든 권력만 뺏으면 장땡이라는 생각에 바보들의 행진을 자랑스레 벌이고 있지 않은가. 국민을 대신하여 복잡한 나랏일을 처리하는 것이 자신들 본연의 업무임을 잊어 버렸으니, 그들에게 정치인으로서의 지혜나 자격이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군중의 대열에 파묻혀 들어가 자랑스레 사진들을 찍어 뿌리기 바쁘다. 흡사 나는 바보야!’ 희죽이 웃으며, 바보짓을 하는 그들이 참으로 가관이어서 슬프다.

 

그들은 국민이 거리로 나서기 전에 자신들에게 부여된 의무를 제대로 했어야 하고, 거리로 나서려는 국민들을 설득하고 다독였어야 한다. 국민이 나서기 전에 국민을 안심시키고 자신들이 싸움판에 들어가 얻어 맞으면서라도 잘못들을 바로잡았어야 한다. 사실 지금 대통령과 여당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야당의원이라고 나라를 난장판 만들어도 되는면허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흡사 자신들이 잘 해서 국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오기라도 한 듯, 거리의 민중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저들을 보라. 심지어 서투른 선동술을 구사하며 그들을 차가운 광장으로 불러내기까지 한다. 사실 그들이 제대로바보이기나 하다면 나라를 위해서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들은 교활하기까지 한' 바보들이라서 나라에 비극적이다. 그들은 왜 그럴까. 아마 그들의 눈엔 사람들이 모두 표로 보일 것이다. 언론에 자기 얼굴 비치는 데만 신경을 쓰는 그들을 보라. 추운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깨동무하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놓고, 며칠 후의 여론조사 수치에만 신경을 쓰는 자들이 이 땅의 이른바 정치인들이다.

 

애당초 이들의 관심과 목표는 국사를 잘 다루는 데있지 않았다. 대통령과 여당이 죽을 쑬수록 이들은 쾌재를 부른다. 국민들이 힘들어 불만이 쌓일수록 이들의 얼굴엔 화색이 돈다. 그 엄청난 권력이 아른아른 손에 잡힐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 반대와 비난의 목청만 높인다. 그것을 선명성혹은 야당 기질이라 착각하는 그들이다. 우리 역사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식민주의자들이 조선의 당파싸움을 부각시켜 온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우리 민족에게 심어줄 패배주의의 근거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우리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그런 저급한 생각을 '속물적 포퓰리즘(populism)'이나  어설픈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으로 합리화 하기도 한다. 이미 많은 지적들이 있어온 우리 정치인들의 속물적 성향은 너무 자명하여 이 자리에서 재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후자의 성향에 대해서는 약간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원래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지배자의 여우와 같은 간사한 책략/사자와 같은 힘은 그 나름의 대의명분을 지니고 있어, 지금 우리 정치인들의 안목 없음과는 주소가 다르다. 당시 이탈리아인들의 마음에 휘황한 로마문명의 힘을 불러 일으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고자 한 것이 마키아벨리의 급이 높은계산이었다. 경우에 따라 도덕이나 정의보다 개혁이 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야 가능한 일. 그래서 지금 우리 정치인들의 행태를 마키아벨리즘으로 보는 것은 마키아벨리즘을 우롱하는 처사에 지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스트가 본다면, 우리 정치인들의 저급함에 깜짝 놀라지 않을까.

 

***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통령과 함께 어리석고 교활한 정치인들을 한꺼번에 바꿔버리기 위해서는 촛불이나 태극기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올바른 민심의 방향을 제시하는  집단지성은 감성보다 냉철한 이성을 토대로 보다 굳건해질 수 있다. 냉철한 이성으로 방황하는 정치인들을 다그쳐 제자리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정치인들에게 제대로 된 정치를 가르쳐 본 적도 요구해 본 적도 없다. 지금 촛불을 끄고 태극기를 접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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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7.01.29 14:38

어수선한 새해를 맞으며

 

 

 

 

 

 

정유년이 밝았다.

닭의 해라지만, 첫날 새벽에도 상서로운 닭의 울음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TV를 켜기가 무섭게 보기 싫은 얼굴들이 화면 가득 밀려온다.

이른바 국정농단의 세력이 밉지만, 권력을 좇는 부나비 군상(群像)도 밉상이긴 마찬가지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도 국민들의 눈만 속이면 그만이라는 모양새들이다. 누구를 뽑아도 그놈이 그놈이라지만, 안 뽑을 수도 없으니 고민이다.

 

몇몇 부나비들의 현란한 춤에 민초들은 마음 둘 곳이 없고, 언론 매체들은 칠팔월 각다귀들처럼 날뛴다. 물 건너에서는 전대미문의 듣보잡이 등장하여 조자룡 헌 칼 쓰듯대권을 휘두를 태세이고, 휴전선 이북에서는 막 되먹은 애송이 하나가 위험한 칼춤을 추고 있으며, ‘깡패국가중국과 왜구 나라일본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 길길이 날뛰고 있다. 이 판에 우리만 좁디좁은 한반도 남쪽에서 굿판 아닌 굿판을 벌이는 중이다. 굿판의 끝이 어떨지 뻔히 보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요란한 작두춤 속에 환호작약 시끄럽다.

 

젊은이들에겐 힘 쓸 만한 일자리가 없고, 일찌감치 일자리를 잃은 젊은 노인들은 한숨 속에 시간만 죽인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자들은 일신 편한 것만 도모하고, 돈 있는 자들은 긁어모으느라 여념이 없다. 젖도 안 떨어진 피붙이에게 금 수저 물려주기 바쁘고, 부와 권력 허세 속에 날 새는 줄 모른다.

 

사람을 키우지 못한 죄, 제대로 사람을 키우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죄, 좋은 싹들을 모조리 경쟁으로만 내 몰아 온 죄, 잘 하는 자와 훌륭한 자를 존경하지 않고 줄줄이 매장시켜 온 죄, 감당도 못할 자리에서 시위소찬(尸位素餐)만 즐겨온 죄, 코드 맞는 자들끼리 동아리를 만들어 권력과 이익을 독점해 온 죄, 오늘만 살고 내일은 생각하지 않으려는 이기적 탐욕죄...

 

돌아가는 형세가 어찌 올해라고 나아질 수 있을까.

누군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지만,

어제와 같은 오늘이라면, 그 오늘이 무슨 의미가 있으리?

그 오늘이 좀 더 나은 내일을 잉태하지 못한다면,

오늘로 이어진 어제의 그 아수라장을

무슨 수로 견뎌낼 것인가.

 

지금은 난국.

정유년은 어쩌면 그 난국의 시작일 수 있다.

임진왜란의 어리석음을 반복한 통절의 정유재란을 기억하는가.

부나비들에게 깨달음을 기대하는 건, 부질없는 일일까.

유황불이 몸을 태워 역한 냄새를 뿜어내면 모두가 괴롭다.

나라의 내일을 위해, 후손을 위해,

제 몸들을 스스로 파묻어, 모두를 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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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7.01.25 15:54

정치와 예술의 금도(襟度)

-표창원 의원께-

 

 


                          에두아르 마네-올랭피아- 1863년

 

 

 

의정활동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신지요?

 

국회의원이 되시기 전, 경찰대 교수이자 프로파일러로서 늘 주요 사건이 터질 때마다 큰 방송들의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시어 조언을 하시던 의원님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 저는 그런 사건들을 접하면서, 저렇게 탁월한 전문가들 10명만 있다면 우리나라가 많이 좋아질 수도 있을 텐데!’ 라는 비원(悲願)아닌 비원을 갖기도 했었습니다. ‘조만간 좀 더 큰일을 하는 직책으로 발탁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짐작하던 차, 아니나 다를까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발 빠르게 나서서 의원님을 영입했지요. 제 취향이 아닌 정당으로 영입되어 가시는 모습을 보며 일말의 서운함은 있었지만, ‘우리나라 정당 특히 야당의 격이 약간은 높아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갖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수족이 모두 잘린 지금은 참 묘한 시점입니다. 판을 한 번 들여다볼까요? 집권당으로서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라 할 만큼 절망과 수치 속에 숨죽이고 있는 반면, ‘다음 대통령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확실한 승리의 아지랑이에 휩싸여 있는 쪽이 더불어민주당이지요. 여당이나 대통령의 입장에서야 입이 천 개라 한들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요? 기라성 같은 율사들을 쓰러져 있는 대통령 앞에 대항마로 포진시켜 놓았지만, 무슨 수로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들을 막아내어 국면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요?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를 아시지요? 천하장사인 초나라의 항우(項羽)와 필부출신의 한나라 유방(劉邦)이 쟁패하던 상황이었지요. 항우에게 다가오는 운명의 날. 날랜 장수 범증(范增)마저 떠나고 동쪽으로 밀려가던 중 해하(垓下)에서 한나라 명장 한신(韓信)에게 포위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밤, 사방에서 들려오는 구슬픈 초나라 노래. 한신이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로 하여금 고향의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지요. 그 상황에 절망한 항우는 결국 오강(烏江)으로 뛰어들어 자결하고 말았다는 옛 이야기 말입니다. 국민들의 분노를 등에 업은 야당의 공격에 지리멸렬해 있는 여당이 바로 운명의 날을 향해 가는 항우 군의 모습이라 할까요?

 

상승과 하강이 이처럼 극명하게 대조되는 상황을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물론 상승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하강의 국면으로 접어들기도 하고, 그 반대로 하강하다가 상승하게 되는 것은 세상의 다반사(茶飯事)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극적인 사변(事變)이나 외적인 충격이 있지 않고서야 바야흐로 방향을 잡은 국면이나 추세가 시간을 앞당겨 바뀌긴 어렵지요. 음양(陰陽)이 교차하는 것은 세상사의 이법이고,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영웅호걸이라 해도 그런 음양의 추세를 갑자기 뒤집기는 불가능한 게 우주의 이법이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한 야당의 잠룡군(潛龍群)에서 차기 대통령이 나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일 겁니다. 말하자면, 야당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희색(喜色)을 억누르며 표정관리하기 어렵고, 혹시나 이 흐름이 바뀔세라 시간의 더딤을 한탄하고 있을 겁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도 그간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때를 기다려온 야당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역사의 순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인지요? 이런 꽃놀이 판에서 자중자애(自重自愛)해야 한다는 것은 요즘 똘똘한 초등생들도 아는 행동수칙 아닌가요? 이제 열매를 손에 쥐었다고 방심한 것일까요? 열매를 딴 뒤에 벌어질 논공행상을 대비한 것일까요? ‘대통령 탄핵 청문회에서 공을 세우지 못했으니, 이런 공이라도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조급한 영웅심이 발휘된 것일까요?

 

국회 건물 안에서 펼친 대통령 나체화 전시회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접하며 참으로 기가 막히고 부끄러워 이틀 연속 혀만 차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평생 문학을 공부하며 예술 쪽도 곁눈질을 해왔습니다만, 그걸 만들어놓고 예술의 자유, 창작의 자유운운하시는 모습을 보며, ‘소가 웃다가 코뚜레 부러지는 일이 바로 여기서 재현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항상 예술이 대중의 미학을 선도한다고는 하나, 저같이 우매한 민중에게 그것도 예술임을 강변하려 한다면, 솔직히 번지수를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은 것이지요. 무엇보다 그걸 국회로 끌고 와서 난장을 벌인 장본인이 좋아하던 표 의원님이었다니!

 

우리 현대사의 고비를 목격하고 느끼며 나이를 먹어 온 베이비부머 세대의 일원으로서, 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심한 내면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치 풍자와 예술을 가장한 폭력행위까지 국회의사당에서 스스럼없이 자행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이제까지 제가 공부해온 미학의 상식과 바탕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있는 중입니다.

 

풍자나 은유가 필요하거나 힘을 발휘하는 것은 정치권력의 폭압으로 민중이 할 말을 하지 못할 때뿐입니다. 입 달린 사람이면 누구나 대통령을 욕하는 지금, ‘풍자예술을 통해 달리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다는 건지요?

 

사실 예술에 대한 해석이나 미학에 대한 논의도 보편적 상식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요. 현 대통령의 얼굴과 150여년 전 마네의 작품을 합성하여 만든 작품 아닌 작품으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면, 그 자체가 풍자예술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단순한 분풀이 이상의 의미도 없는 일입니다.

 

의원님의 판단착오로 가능했던 그런 행사가 정치적으로 누구에게 손해이고 누구에게 이득인지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시대 정치인들의 의식수준이 매우 저급하고, 행동거지 또한 너무 경망하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 점이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멋진 지식인이자 유능한 전문가로 알아 왔던 의원님이 그 동네에 들어간 이후 그렇게 표변했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의원님을 거울로 삼아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겠다고 우리 스스로 다짐할 수만 있다면, 이번의 사건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중언부언(重言復言)한 제 말씀이 부디 의원님께 불쾌감을 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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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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