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7.07.22 13:24

은사님과 번개를!

 

 

<맨 앞줄 왼쪽에서 세번 째 분이 이신평 선생님>

 

 

은사님(이신평 선생님)을 근 반세기만에 만나 뵈었다. 벌써 팔순. 그러나 몸은 꼿꼿하셨고, 눈은 밝으셨으며, 말씀은 더 다듬어지신 모습이셨다. 늙어가는 제자들을 앞에 두신 은사님은 만감이 교차하셨을까. 연신 잔을 기울이셨다.

 

하교 종이 땡땡땡 울리면, 우리는 선생님을 따라 갈머리, 민어도로 낚시하러 나가곤 했다. 낚시와 바둑을 좋아하셨던 선생님. 우리를 늘 친구처럼 대해주신 20대 후반의 청춘이셨다. 고기는 잘 잡히지 않아 어깨에 멘 다람치는 늘 텅 비어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풍요롭던 어린 시절이었다. 선생님 곁을 떠난 것은 우리의 10대 초중반이었다. 중학교 진학도 쉽지 않았고 돈벌이도 마땅치 않았던 베이비 부머들의 현실을, 입만 열면 헬조선을 외치는 포스트 베이비 부머들은 알 턱이 없으리라. 그 추운 겨울날 새끼 망둥이들 어미 곁 떠나듯뿔뿔이 흩어진 우리는 모진 세파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가진 것 없이, 기댈 언덕도 없이, 물결에 밀리고 발길에 차이면서 오늘까지 견뎌 온 것 아닌가. 말 그대로 어찌어찌 살다보니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나마 입 벌리고 달려드는 아귀나 범치, 가물치 없는 이 웅덩이에까지 성체가 된 망둥이들이 모여든 것이다.

 

친구들은 거울이다. 늙어가는 얼굴들을 서로 바라보며 제 모습을 깨달으니, 거울이다. 거기에 새끼 망둥이 시절의 선생님까지 모셔다 놓았으니, 큰 거울 작은 거울들이 서로 반사하여 번개의 공간이 번쩍이는 거울 방으로 바뀐 건 당연한 일 아닌가. 큰 거울인 선생님의 모습에서 조만간 도래할 우리의 미래를 훔쳐보고, 작은 거울인 친구들의 얼굴에서 과거와 현재로의 시간여행을 위해 타고 갈 타임머신을 발견한다. 그래, 멋진 타임머신이었다. 우리가 언제 참하게 앉아 대가들의 역사책을 읽을 기회가, 여유가 있었던가. 적어도 6, 70년대부터는 우리 자체가 역사책이다. 그 이전의 역사책은 우리 부모였고, 부모 이전의 역사책은 우리의 조부모였으며, 그 이전의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우리는 역사를 DNA로 물려받았을 뿐, 허접한 책 나부랭이는 별 의미가 없었다. 진짜 역사는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마음의 역사. 반세기도 안 되어 두서너 번의 산업혁명, 정치혁명을 경험한 우리다. 그래서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화석화된 현대사의 교과서들이다. 가벼운 입과 머리로 역사를 농()하고, 근대를 논()하는 얼치기 사학도들을 만날 때마다 허무감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가벼운 논리를 끌어다 정치를 하겠노라 편을 갈라 싸우는 이 땅의 정치 모리배들이 불쌍하고 가소로울 뿐이다.

 

막잔을 비우고 헤어지지만, 우리의 시간은 기약할 수 없다. 오늘의 우리가 내일의 우리는 아니고, 지금의 이 시간과 내일의 저 시간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번쩍번쩍 튀어 달아나는 광음(光陰)의 질주 속에서 나의 정체성(正體性)’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담에 한 번 만나자라는 말보다 그래 바로 지금 만나자가 더 진실하고 정직한 말이다. 그래서 인생의 허무를 깨달은 사람들은 오늘도 저잣거리의 주막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그렇게 날은 어두워졌고, 선생님은 열차를 놓치실 세라 종종걸음으로 달리셨으며, 헤어지기 아쉬운 병철이와 영도는 ‘9월의 번개를 두 번 세 번 확인 또 확인했다.^^

<2017.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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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7.06.30 01:12

'표절이 관행'이었다고요?

     -김상곤 선생님께- 

 

 

새 정부의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서 어제 하루 종일 국회의원들에게 시달리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지요? 사실 어제 하루 뿐 아니라 교육부 장관 하마평이 나오면서부터 선생님의 표절문제가 도마에 올랐으니, 벌써 한 달 가까이 진한 고문을 당하신 셈이네요. 최근에 모든 언론 매체들이 선생님의 표절 소식과 분석 기사들로 도배되다시피 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선생님께서 언제쯤 후보직을 내려놓으실까 예의주시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결국 청문회에까지 오게 되었으니, 우선 그 두둑하신 배포와 자신감에 경의를 표합니다. 귀가 얇고 기가 약하여 어쩌다 들려오는 친구들의 사소한 뒷 담화마저 못 배겨내는 저로서는 그런 배포가 부럽기도 하고 경이롭기만 합니다. 비록 언론사 기자들의 필설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어제 접한 선생님의 말씀들 가운데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말씀드리기 전에 제가 선생님의 논문들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음은 물론 이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저는 선생님께서 사회운동가이거나 정치인일 뿐 교수나 학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몰랐었음을 고백하며, 그 점에 대하여 사과드립니다. 워낙 전공분야가 저와 다르기도 하지만관련 단체들에서 심각한 표절 사실들을 모조리 파헤쳐 '증거들이 차고 넘치는' 마당에 제가 굳이 찾아 읽을 필요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읽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은재 청문위원은 선생님의 27년 간 교수의 연구실적을 요구했더니 석·박사 논문을 포함 달랑 5가지가 왔는데, 자신들이 찾은 논문만 49건이었다는 요지의 지적을 내놓았고, 이종배 청문위원은 선생님께서 1982년에 발표한 석사논문을 분석해보니 일본 문헌에서 119, 한국 문헌에서 16곳 등 총 135곳을 출처 표시나 인용 표시 없이 갖다 썼는데, 논문의 어떤 부분은 일본의 문헌을 그대로 번역한 수준이었다는 충격적인 지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은재 청문위원의 말 속에는 논문의 다수가 떳떳치 못하여 일부만 제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 들어있고, 이종배 청문위원의 말 속에는 학위논문 모두가 표절에 의해 쓰였음을 강조하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청문위원들의 거듭된 지적과 비판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35년 전 석사학위논문을 쓸 당시에는 포괄적인 인용이나 출처 표시가 일반적이었다거나 선행 문단이나 후행 문단에 출처 표시를 다 했다. 포괄적인 인용 방식이 그때 방식이었다는 등의 해명을 하셨습니다. 아울러 당시의 기준과 관행으로 보면 전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씀까지 덧붙이셨습니다. 저도 그 비슷한 시절에 석사학위논문을 썼습니다만, 과연 남의 글을 ‘(포괄적인 인용이나 출처 표시라는 미명 아래)정확한 각주 표시 없이 뭉텅 뭉텅 베끼는 것이 관행이었을까요 표절과 '포괄적 인용'이 같은 뜻의 말이라는 사실을 저는 선생님의 해명을 듣고야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당시에도 심사위원들이 신경 쓰던 문제들 중의 하나가 표절이었으며, 표절하다가 들켜 망신당하던 사례들이 한 둘이 아니었음을 선생님만 모르고 계셨는지요? 무엇보다 논문작성법의 맨 첫 장에 나오는 내용이 논문은 독창적이어야 하고 남의 글을 참고할 때는 정확한 인용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상식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진정 모르셨단 말씀인가요? 석사논문 쓰시면서 논문작성법 한 번 읽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표절하면 안된다'는 것이 논문작성법을 읽어야 알 수 있는 난해한 이론인가요? 당시에 요즘의 '연구윤리규정같은 건 없었다 해도, ‘남의 글을 훔치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 아니었나요? 어찌 남의 글을 훔치면 벌을 받는다라는 명문 규정 없는 것이 남의 글을 훔쳐도 됨을 의미한다고 보시는지요? '남의 돈을 훔치는 것'보다 '남의 글을 훔치는 것'이 훨씬 고약한 범죄라는 것은 글줄이나 써본 사람이라면 절감하는 사실 아닌가요? 고심참담 날밤을 새워가며 글을 써본 사람만이 글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데, 그래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쉽게 남의 글을 절취(竊取)하는 것이지요. 표절은 비양심적 행위이고, 드러난 표절사실을 애써 숨기려 하거나 부정하는 인사들이야말로 '양심에 털난 사람들'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겁니다.    

 

이런 이유로 남의 글을 훔치는 것이 관행이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선생님과 한솥밥을 먹어 온 교수들이나 이 땅의 학자들에게 가한 끔찍한 폭력입니다. 그들의 얼굴에 '똥을 퍼부은 격'이지요. 남의 글을 훔치는 도둑질이 누구나 저지르는 관행이었다고요? 무슨 근거로 모든 교수들을 범법자로 몰아가시는 겁니까? 물론 그런 교수들도 더러 있었겠지만, 관행이라 할 만큼 그리 많지는 않았다는 것이 제 관점입니다. 대다수 선량한 교수나 학자들이 선생님의 억설과 강변으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시렵니까? 교수나 학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을 어떻게 달래실 생각이십니까? 이번의 장관 후보 선정 과정이나 청문회에서 불거진 불미스러운 소식들은 해외에도 광범하게 퍼져 나갔을 텐데, 그 과정에서 땅에 떨어진 국격은 어떻게 회복할 생각이신가요?

 

선생님은 일생 봉직하셨던 학교의 후배교수들이나 같은 시절 대학에 몸담았던 이 땅의 학자들을 표절 관행의 동참자들로 낙인찍으신 셈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대학에서 정년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셨나요? ‘다시는 찾지 않을 우물에 침을 좀 뱉으면 어떠랴!’라는 심정은 아니셨나요?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표절문제가 불거졌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야 합니다. 

참 부끄럽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학자로서 교수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대다수의 동료 후배 교수들, 믿고 따라 준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내 스스로 참회하며 교육부 장관 후보직을 사퇴한다.” 

선생님의 사고방식이나 도덕성이 1980년대의 관행 아래서는 일부 양해되었을지 모르지만, 2017년의 대학에서는 용납될 수도 없고 용납 되어서도 안 되겠지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나름대로 치열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정신은 그 시대의 그것과 같지 않습니다. 지금 추상같은 학자정신으로 무장한 연부역강(年富力强)의 인재들이 그들먹하다는 사실을 정말로 모르시는 겁니까? 그런 모습으로 교육부 장관의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겠는지요? 전국의 교원들이나 학생들, 아니 국민들에게 장관으로서의 영(令)이 서겠는지요? 선생님께서 대한민국 지도부의 일원이 되기 어려울 만큼 이념적으로도 의심을 받고 있다는 점까지 이 자리에서 거론할 여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너그럽게 양보한다 해도 학문적 엄정성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계시는 선생님이 교육부의 수장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어떤 기회라도 잡아서 표절이 관행이었다는 말씀만은 수정하심으로써 본의 아니게 학계의 후배들이 뒤집어 쓴 똥물만큼은 닦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가뜩이나 힘드실 텐데, 두서없는 말로 혼란스럽게 해드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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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7.06.29 12:02

도깨비와의 씨름

 

 

첩첩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마을은 내 어린 시절 세계의 전부였다. 가끔 꽉 막힌 공간에서 활짝 열린 먼 곳을 꿈꾸기도 했지만, 열린 공간이란 게 무엇인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었다. 보고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몸은 대처에 나와 있으나 마음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있음을 느낀다. 세상사 별 것 아니라는 깨달음일까. 아무리 날뛰어도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허무감일까. 다시 그 좁은 공간으로 숨고 싶은 것은 복잡한 세상의 원리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는 깨달음 때문이리라

 종종걸음으로 학교에 모여든 우리들의 관심사는 뻔했다. 누가 팔뚝만한 망둥어를 잡았고, 누구네 소가 송아지를 낳았으며, 누구네 누나가 이웃마을로 시집간다는 등등 사실보도를 빼고 나면 귀신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가 남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귀신보다 도깨비가 훨씬 좋았다. 귀신 이야기를 들으며 몸서리를 쳤지만, 도깨비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고 유쾌했다. 

 우리는 툭하면 씨름을 즐겼다. 시골이라 힘이 최고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도깨비 이야기와 무관치 않았다. 당시 우리들에게 널리 퍼져 있던 도깨비 이야기는 씨름과 관련된 것이 압도적이었다. 요지는 이렇다. 윗마을의 어떤 아저씨가 밤중에 재빽이(당시 우리들은 등성마루를 그렇게 일컬었다)를 넘다가 도깨비를 만났다. 그런데 그 도깨비가 다짜고짜 씨름을 걸어왔다. 만약 이 씨름에서 도깨비를 이기지 못하면 죽음이란 걸 그 아저씨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도깨비의 허리춤을 잡았다. 건곤일척의 씨름판이 나무 울창한 재빽이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 아저씨도 힘이라면 누구 못지않았고, 씨름판에서 양은냄비 몇 세트는 이미 상으로 받은 경력의 소유자였다. 말하자면 마을의 씨름 챔피언과 원조 씨름 챔피언인 도깨비의 심판 없는일전이 심야에 벌어졌으니, 가관이었으리라. 

 몇 시간을 끙끙대며 씨름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랫마을에서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도깨비는 스르르 손을 풀더니 냉큼 사라지는 것이었다. 아저씨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훔치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 앞에 수십 년 된 몽당 빗자루 하나가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닌가. “, 내가 밤새 씨름한 것이 바로 이 몽당 빗자루였단 말인가?” 아저씨는 허탈해졌고, 집에 돌아온 후 집안을 탈탈 뒤져 몽당 빗자루들을 모조리 불살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우리는 몽당 빗자루를 싫어했다. 언제 도깨비로 변해 씨름을 걸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 

 그렇다. 지난 1년 가까이 온 국민이 달려들어 싸움을 벌이며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하나를 내 쫓고, 하나를 들여놓았다. 그런데 참! 허탈한 것은 우리 모두 죽을힘을 다해 싸웠건만, 우리 앞에 서 있는 건 두 개의 몽당 빗자루뿐이라는 사실이다. 인간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는 법. 결국 각자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슬프게도 누가 나를 위해 유토피아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님을 깨닫기까지 5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간 넓은 세상에 나왔다고 우쭐대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다가 문득 깨달으니, 그 옛날 고향 재빼기의 한 뼘 공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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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
알림2017.06.05 23:19

 

Keynote Speech on NMT(Neural Machine Technology) by Dr. Kyunghyun Cho(Professor/New York University) in Sweden

NMT(Neural Machine Technology:신경망 번역)의 원리에 대한 설명

https://play.gu.se/media/1_xt08m5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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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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