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8.02.09 16:26

사랑하는 2014학번 졸업생 여러분!

 

 

학부 졸업생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학창생활을 마무리한 14학번 여러분에게 따뜻한 축하를 보냅니다. 무엇보다 자녀들을 잘 길러주시고 대학교육까지 책임 져 주신 학부모님들께 감사드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교수님들, 재학생 여러분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어제 밤 저는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와 젊음의 열정으로 빛나던 여러분의 새내기 시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덧없이 흐르는 시간의 여울에 밀려 여러분과 이별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혹시 시간의 무상함을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인가요? 여기 계신 교수님들 가운데 제가 가장 먼저 쓸쓸한 계절에 접어들었기 때문일까요? 여러 교수님들을 대표하여 여러분에게 석별의 정을 담아 한 말씀 드려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된 것 또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정신없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어제의 가치기준이 달라져 있는 오늘을 발견합니다. 내일은 또 어떤 변화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우리 모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이 그 변화를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이미 개막되었다고 하지만, 미래를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불안감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가 충분한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나라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가 충분치 못하여 많은 젊은이들이 상당 기간 실의의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건 이공계나 인문계 모두 함께 겪는 고통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이 고도지식정보화 단계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넘어가는, 일종의 과도기 혹은 조정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공부한 인문학이 조정기를 거친 미래의 대한민국에 긴요하게 쓰일 시기가 조만간 도래한다고 보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그리하여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수준으로라도 인문학의 수요가 늘어나는, 괜찮은 시대가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일자리를 갖고 교문을 나서는 사람이라고 안심해선 안 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실망해서도 안 되는 것은 변화의 바람이 어느 곳을 향할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길게 보아 인문학의 창조적 소양과 역량을 갖춘 여러분이야말로 조만간 찾아올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기회들을 많이 포착하게 되리라는 것이 우스갯말로 수렵채취시대에 태어나 농경시대, 산업화시대, 정보화시대, 고도지식정보화시대를 거쳐 오며 변화의 속성을 체험했다고 자부하는’^^ 제 판단입니다. 일단 사회에 나가 크게 변하는 사회의 조류와 용감하게 부딪쳐 보라고 권고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학교가 온실이었다면, 사회는 밀림입니다.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신분이 바뀌는 지금이야말로 여러분 스스로 내면의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 순간입니다.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 분명합니다. 일방적으로 배려를 받아 온 기존의 시간대에서 부모, 형제, 이웃 등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는 시간대로 180도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수들이 지난 4년 간 중점을 두어 가르친 것도 바로 그런 주체적 의무감의 함양이었습니다.

 

과거 여러분의 선배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자리에서 저는 그들에게 ‘10년 후에 만나자는 약속을 먼저 건네곤 했습니다. 저 자신도 그러했지만, 통계적으로 대학 졸업 후 10년이 지나면 대부분 자리를 잡고 사회적 정체성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꿈과 능력을 믿습니다. 함께 약속합시다. 앞으로 10년 후인 2027, 저는 멋진 칠순잔치를 열고 그 자리에 여러분을 주빈(主賓)으로 초대하겠습니다. 그 때 멋진 모습으로 저를 찾아 주기 바랍니다.

 

이제 출항의 돛을 높이 달고 용감하게 망망대해로 나가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늠름한 뒷모습에 언제까지라도 파이팅!’을 외치겠습니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여러분의 앞날에 신의 보살피심과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2018. 2. 9.

 

조규익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7.03.28 22:57

갑작스런 시간여행

 

  

요즘 따라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진다.

잠들기 전에 마무리하려고 가져 온 원고를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은 채 잠들었을 때, 서재 어딘가에 있을 책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왔으면서도 늘 그러하듯 무책임하게 내일 아침으로 미루고잠들었을 때, 더욱 그렇다.

 

새벽 3시나 넘었을 무렵. 서재로 넘어가 책장을 짚어가던 중, 웬 작고 허름한 책자 하나가 손에 잡혔다. “젊은 대지에 사색의 씨앗을 뿌리며...”라는 그럴싸한 제목과 철학과 92학번 일동 함께 씀/1992. 12. 1.”이 명기된 수제(手製) 소책자였다. 순간 25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이 시작되었다.

 

1992년은 숭실 부임 5년째인 병아리 교수 시절이었다. 필수 과목 교양국어와 작문을 국문과 교수와 강사들이 전담하던 당시였다. 그 해 2학기에 나는 철학과 1학년생들의 작문을 맡고 있었다. 참 해맑고 순수한 그들이 좋았다. 철학과 학생들이어서 그랬을까. 글쓰기의 요령도 척척 터득해 나갔다. 말을 걸어도 요즘 학생들처럼 쭈뼛거리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들의 삶과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어서였을까.

 

학기 내내 써온 글들을 발표하고 비평하게 하니, 그들의 글과 말이 일취월장했다. 전공과목보다도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래서 한 발 더 나아가 수필 한 두 편씩을 쓰게 했다. 그 글들 또한 재미있었다. 그냥 묻어버리기 아까워서 한데 묶었고, 한 부씩 나눠 가졌다. 그로부터 25년 동안 내 기억 속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가 지금 !’하고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멋쩍은 일이지만, 내 과거에 대하여 감동한 건 처음이다. 그래서 종이 한 장 버리지 못할 때가 많다. 숨 쉬기 어려워질 때마다 몇 아름씩 내보내긴 하지만, 가슴이 미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 책자는 고맙게도 살아남아 있었다. 혹시 모르니, 내 머리말과 권두수필(<새해의 계획을 세우며...>)을 이곳에 옮겨 놓기로 한다.

 

 

책머리에

 

어릴 적 내가 살던 곳의 면소재지에 당시로서는 유일한 대학생이 있었다. 그는 철학과에 다닌다고 하였다. 한 여름이 가깝도록 그는 오버코트 비스름하게 생긴, 검고 두툼한 옷을 입고 다녀서인지, 대체로 지저분한 몰골을 면치 못했다. 그리고 늘 고개는 약간 삐뚜름하게 숙인 채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기 일쑤였다. 나는 그의 외모에 덮씌워진 그 분위기의 근원이 바로 철학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연히 당시 그곳 사람들도 누구든 철학과에 다닌다고 하면 으레 현실과는 동떨어졌거나 약간은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철학이 우주와 인간세계의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고도로 정치(精緻)한 사고와 논리적 틀을 요구하는 학문임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것이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기도 했음을 알게 되기까지 나는 철학에 대하여 아주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대학에 진학하여 비로소 --을 두루 갖춘 인간 형 만이 지성인의 전형일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이 세 분야가 합쳐져 형성하는 인문학이야말로 전통 학문의 중심임을 인식하고 난 뒤 비로소 나는 내가 배우고 있는 공부에 자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요즈음 철학과, 국문과, 사학과에 진학하는 대학생들을 나는 국보(國寶)로 여긴다. 황금 만능, 실용적 기교 만능의 얄팍한 세태를 보라. 모두들 기를 쓰고 금방 돈 될 만한 것들만 찾아다니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그래도 정신적인 것을 탐구하겠노라 문사철의 울타리에 들어오는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아끼고 북돋워야 할 국보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들이 더욱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촘촘히 박힌 강의 시간들만 아니라면, 밀린 글 빚들만 아니라면, 거의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전공서적들만 아니라면, 나는 이들과 늘상 어울리며 인생과 문학과 철학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연히 이번 학기에 나는 애송이 철학도들과 작문이라는 과목을 통하여 만나게 되었다. 글이란 가슴과 머리 속에 파도치는 순정한 욕구의 흘러넘침이라고 믿고 있는 나로서는 사실 작문의 그 짓는다’()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그들에게 문장을 만들고, 꾸미는재주나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대학이라는 제도의 틀에 갇힌 이상 보고서를 내야하고 논문을 써야 할 것이며, 졸업 후에는 자기 소개서도 이력서도 써야 할 것이다.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고 보면 단순히 손재주에 불과하더라도 작문을 아니 가르칠 수 없는 터이렷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글 쓰는 기교만을 가르쳐온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기에는 너무 허전하여 끝나기 2, 3주 전에 수필을 한두 편씩 써 오도록 하였다. 각자의 작품을 읽히고, 동료들로 하여금 비평하게 하였다. 비록 덜 다듬어지긴 하였으되, 나름대로 발랄하고 생기 있는 삶의 편린들이었으며 예리한 비평들이었다. 그냥 버릴 수 없었다. 비록 잠시 동안이었지만 아늑한 강의실에서 우리가 공감했던 작은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고 싶었다. 아마 다른 친구들도 이것을 읽는다면, 그들 또한 마찬가지로 공감할 수 있으리라.

 

자주 싱겁게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최지환이가 이 작업을 자원하였다. 그 깡마른 체구에 킥복싱이라는 엄청난 무기가 숨겨져 있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자진하여 맡는다는 것도 이해(利害)에 초연할 수 있는 철학도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대단히 상쾌하고 즐거운 일이다.

 

임신년의 꼬리가 보이는 어느 날 밤 백규서옥(白圭書屋)에서

 

조규익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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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계획을 세우며

 

섣달 그믐날 개밥 퍼 주듯 한다”, “섣달 그믐날 시루 얻으러 다닌다는 속담들이 있다. 시집도 못 가고 한 해를 또 넘기는 노처녀가 홧김에 개밥을 푹푹 퍼 준다는 데서 나온 말이 전자요, 어느 집이나 다 시루를 쓰는 섣달 그믐날에 남의 집에 시루를 얻으러 다닌다는 데서 나온 말이 후자다. 또한 대중없이 인심 쓰는 경우를 빗대는 말이 전자요, 되지도 않을 일을 공연히 벌여 놓는 것을 빗대어 놀리는 말이 후자다. 양자 모두 비정상적인 마음의 상태나 행동을 나타내는 절묘한 표현들이다. 그 비정상적인 상태는 허둥대는 모양을 말하며 그 시간대로 섣달 그믐날을 지정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사람들은 으레 초조한 마음으로 허둥대기 마련인가. 섣달 그믐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간의 소중함을 알아차리는 인간의 만각(晩覺)이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가 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존경하던 은사 원정(園丁) 선생은 늘 시간의 짧음을 한탄하시며 빈둥거리던 우리의 젊음을 꾸짖곤 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실감하지 못한다. 당연히 그 때의 우리도 그런 말씀을, 대책 없이 늙어버린 훈장의 잔소리 쯤으로 흘려듣곤 하였다. 당신께서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인생의 길이를 계산해 보이셨다. 여기서 인생의 길이란 물리적 시간 혹은 생물학적 수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동물과 구별되는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치를 창조하고, 비록 하잘 것 없다 해도 나름대로의 기념비를 세우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의 길이를 뜻한다. 물론 억지를 쓰자면 자식들을 남기는 것도 하나의 훌륭한 기념비가 아니냐고 강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야 누군들 못하랴. 일생 동안 이룬 일이 그것뿐이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겠는가.

한 인간의 수명을 어림잡아 70이라 하자. 20까지는 아직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기간이고, 60에서 70까지의 10년 역시 삶의 현장으로부터 은퇴하여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니 70의 수명에서 30을 빼면 40년 정도가 독립적인 자기의식을 기반으로 가치 창조를 향해 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반 정도는 잠 자는 시간이니 이것을 빼면 20년이 남는다. 그것뿐이랴. 밥 먹는 시간, 변소 가는 시간, 남을 물고 헐뜯으며 쓸 데 없이 낭비하는 시간 등이 줄잡아도 하루의 삼분지일은 될 것이니 이것을 빼면 겨우 13년 정도 남게 된다. 다시 말하여 우리가 가치 창조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 우리의 삶에서 정채(精彩) 있는 시간이 우리의 일생 중 겨우 10년 남짓밖에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살고 있는 매 순간이 너무도 소중하지 않은가. 벽시계의 초침은 종착역을 향해 숨 막히게 재깍거리는데 아직도 눈앞의 캔버스에는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다. 무슨 기념비를 세울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도 못해 본 채 끝내버리는 것이 우리 장삼이사들의 삶이라고 체념해야 할 것인지.

 

열두 해 만에 찾아 온 원숭이가 기엄기엄 고개 마루를 넘으려 한다. 지난 섣달 그믐날에 밤을 밝히며 긁적거려 두었던 새해의 계획표가 뽀얀 먼지만 뒤집어 쓴 채 널브러져 있는 것이 올해라고 다를 리 없다. 기어코 고놈의 기념비라는 것을 윤곽만이라도 잡아 볼 게라고 설치던 정초의 오연한 패기는 칠팔월 땡볕에 엿가락 늘어지듯 우습게 되어 버렸고, 아득한 피로만이 백중사리 밀물 마냥 밀려든다. 괜히 마음으로만 바쁠 뿐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도 이 때 쯤에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화롯불 옆에서 책을 읽거나 세한도(歲寒圖)를 치면서 마음들을 가다듬은 게 아니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책을 읽거나 화폭을 어루만지며 묵은해를 돌이켜 보고 새해로 넘어가기 위한 원기를 모은 것은 아니었을까?

섣달 그믐날, 한 해의 계획을 점검하며 흡족해 하는 이가 그 얼마이겠는가. 아마 대개는 이것들을 다음 해로 넘겨야 하는 마음 무거움을 경험하는 경우가 태반이 넘을 것이다. 조율만 계속하다가 제대로 된 연주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마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처럼, 나 역시 계획과 다짐은 수없이 하면서 정작 실행은 못하고 말지도 모른다. 10년 남짓 허여된 가치 창조의 시간대를 헛되이 까먹으면서도 결국 그 기념비의 내용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말지도 모른다. 그러니 계획을 세운다는 일이 무의미하거나 허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것이 뻔하다 해도 내가 살아 있는 한 어찌 계획 없이 새해를 맞을 수 있으랴! 도로 굴러 내려올 줄을 알면서도 산꼭대기로 돌을 굴려 올리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던, 신화 속의 시지프스처럼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분명 살아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세밑의 피곤한 몸을 추스르며 다시 먼지나 뽀얗게 뒤집어 쓸 것이 뻔한 새해 계획표를 끄적거리는 중이다.

Posted by kicho
알림2016.08.03 21:34


 

 

 

 

<<한국문학과 예술>>을 사랑하시는 학문동지 여러분께


그간 댁내 두루 무고하셨는지요?
근래 경험하지 못했던 더위와 싸우시며 연구에 몰두하시느라 고생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말복만 지나면 시원해지겠지요?
저는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구 한국문예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조규익입니다. 늘 논문투고를 간청하는 메일만 드렸으나, 오늘은 좀 가벼운 마음으로 기분 좋은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한국문학과 예술>>이 이번에 ‘등재학술지’로 승격되었습니다. 등재후보학술지로 1년을 지낸 뒤에 받아든 ‘계속평가’의 결과라서 좀 얼떨떨하긴 합니다만. 제대로 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무겁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학문동지 여러분께서 좋은 논문도 주시고 기꺼이 심사도 맡아주시는 등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덕택이라 생각하고,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희 연구소는 ‘문학과 예술의 융합’을 모토로 2006년 4월에 출범했고, 2008년 3월에 학술지를 창간하여 올해 7월말로 18집이 나왔습니다. 현재는 매년 3회(3월말/7월말/11월말) 발간하고 있으며, 조만간 4회로 늘려볼까 계획 중입니다. 모두 짐작들 하시겠지만, 연구소 10년 세월이 평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돈 벌어오는 연구소에게만 공간과 예산을 지원해주는 것이 대학의 연구소 정책이니, 현재는 한 뼘의 공간도 한 푼의 예산도 없습니다. 그러나 조만간 좋아지리라는 희망으로 ‘고난의 행군’을 이어나가는 중입니다.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학문동지 여러분께 맨 처음으로 이 소식을 알려드리는 것은 저희 연구소를 더욱 사랑해 주시기를 간청하기 위해서입니다. 저희를 믿고 여러분의 좋은 논문을 기꺼이 맡겨 주시는 일, 저희들의 심사요청이나 토론요청을 기꺼이 수락해 주시는 일, 정기 학술대회에 좋은 발표를 해주시고 참석하시어 경청 해주시는 일, 저희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을 많이 거론해주시고 인용해 주시는 일 등입니다. 무리한 부탁을 드리는 것 같습니다만, 여러분께서 적극 도와주셔야 저희 연구소와 학술지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인문학의 쇠락을 절감하면서, ‘솟아날 구멍’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 원래 제가 연구소를 만든 목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힘만 합친다면, 괜찮은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함께 노력해 보십시다.

여러분의 도움 덕택에 좋은 소식 전해드릴 수 있게 된 점, 거듭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내 연구소려니’ 생각하시며 많은 도움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잘못 하는 점이 발견되면, 가차 없이 꾸짖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조만간 나가게 될 논문공모에 많이 응해 주시고, 올해 안에 갖게 될 하반기 학술대회장에서 여러분을 많이 뵈올 수 있길 기대하며 부실한 인사의 말씀을 줄이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2016. 8. 3.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소장   조규익 드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02.03 16:06

 

 

지금 한국의 대학들에 만연되고 있는 '반지성적 문화'가 어디 한 두 가지랴?

어느 학교라고 콕 집어 말하고 싶지 않고,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모두 거기서 거기. ‘도낀 개낀’ ‘난형난제’, ‘도토리 키 재기의 대학사회 아니더냐! 한 치 앞서 간들 무어 그리 나을 게 있고, 한 치 뒤쳐졌다고 무어 그리 못할 게 있을까?

 

한 달 전쯤인가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 하나가 찾아와 자못 흥분된 어조로 내게 말했다.

 

하루는 도서관에 들어가는데, 큰 덤프트럭 두 대가 도서관의 책을 그득하게 때려 싣고학교 밖으로 나가더군요. 궁금해서 직원에게 물어본즉 덤덤한 어조로 보존서고에 있는 도서들을 폐기처분하는 중이라고 하데요.”

 

그래. 제정신을 갖고서야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의 어느 대학에선들 학자로살아갈 수 있겠느냐? ‘집안이 좁으니 세간들 가운데 때가 묻은 것들을 골라 쓰레기장에 버리듯, 버리는 거겠지!’라고 대답하는 내 마음이 심히 불편했다.

 

#그 대학 교수로 있는 친구의 말. 며칠 전 논문을 쓰다가 급한 책이 있어 학교 도서관을 검색하니 보존서고에 소장되어 있더란다. 그러나 지금 정리 중이라 볼 수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 '정리'라는 것이 '폐기물 처리'를 말했고, 미루어 짐작컨대 그 책들은 폐기도서 트럭에 실려 나간 게 분명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제자를 통해 이웃 학교의 도서관에서 다섯 권이나 되는 그 책(영인 자료 본)을 빌려다가 아예 복사제본까지 해버렸단다. 대학생들은 잘 보지 않아 자리만 차지하는 책이니, 도서관 직원들도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만약 그런 (귀한) 책을 폐지로 취급하여버렸다면, 속된 말로 '참 망할 ××들'이라고 그 친구는 크게 흥분했다.

 

#꽤 오래 전이다. 이름뿐이었지만, 도서관의 무슨 위원이라 하여 1년에 한 번 정도 있는 회의에 나간 적이 있었다. 누군가 이제 IT 시대이니, 페이퍼 북은 줄이거나 없애고 e-book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다고, 서양의 명문대학들은 미련해서 도서관에 페이퍼 북 채우는 노력을 기울이는 줄 아냐고 역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하기야 엔지니어들이 대학의 수장이나 도서관의 책임자로 군림하는 시대이니, 그들에게 도서관의 의미를 묻는 것은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격일 것이다.

 

#내 연구실에는 출판사 사장들이나 영업사원들이 수시로 들른다아직은 제법 책을 사주기 때문일 것이다. 끙끙 무거운 책 짐을 들고 방문한 그들에게 주로 인문학 도서들을 폐기처분하는’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의 만행^^을 말해줄 수가 없다. ‘앞으로 경기가 풀리면 출판시장도 좋아지지 않겠느냐?’는 입에 발린 위로의 말이나 뱉어낼 뿐, 축 쳐진 그들의 어깨를 받쳐 줄 희망적 언질을 건넬 방도가 없다. 내가 아무리 강심장이라 한들 힘들게 만든 책들이 소설책들처럼 잘 읽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처분된다는 말을 그들에게 어찌 해줄 수 있으랴.

 

***

 

내게 미국 대학들의 가장 감명 깊은 공간은 도서관이었다. 교수도 학생도 실제적인 학구 활동은 그곳에서들 펼치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대학자 노교수를 만난 것도 숲처럼 빽빽한 서가들 사이에서였다. 적어도 내가 찾는 사람들은 늘 연구실 아니면 도서관에 있었다. 그런 도서관들에서 멀쩡한 도서들을 폐기하는 꼴을 보지 못했다. 공간이 충분한 점도 그 이유의 하나는 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수백 년 그들을 지탱해온 지성적 문화 풍토를 누구도 거역하려 들지 않기 때문으로 보였다. 물론 그들에게도 공간의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대학 도서관들에서는 기프트 센터(gift center)’를 마련하고 서고에서 퇴출되는 책들을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학생들이나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대학 도서관 뿐 아니라 지역의 공공도서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정기적으로 폐기 도서들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다시피하고 있었다. 책을 한 보따리씩 들고 나오며 함박웃음 짓는 그들이 부러웠다. 한없이 부러웠다. , 선진국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학문적 변화주기로 볼 때 인문학과 이공학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실용적 도구학과 정신적 학문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대학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 논하고 싶지 않은 것은 이미 이 땅에서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대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형이하적 도구학 전공자들이 패권을 휘두르고, 나라 전체로도 지도적인 학자들이 모조리 사라진 형국이니, 지금의 대학들은 대학이 아니다. 대통령이 대학을 알 리 없고, 교육부 장관은 정권의 입맛에 맞춰 우왕좌왕하다가 정치판으로 복귀하면 그만이며, 교육 관료들은 잠시잠시 그런 장관의 손짓에 맞춰 춤추는 것으로 소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나라, ‘해외 유학 동안 열등생으로 지내다가 복귀하여 지배자 행세하는’(김종영, <<지배받는 지배자-미국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돌베개, 2015, 참조.) ‘지적 사기꾼들’(어떤 인사의 말 인용)이 학문 권력을 독점하는 나라, 정치권과 학계를 부지런히 오가며 곡학아세(曲學阿世)해도 대단한 학자로 대접받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하기야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면, 페이퍼 북 없이도 논문 한 편을 써내는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인사가 내 주변에 있으니, 다시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으랴!ㅠㅠ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John M. Olin Library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John M. Olin Library 서가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John M. Olin Library 서가

 

 


미국 스틸워터(Stillwater) 시립도서관

 

 


스틸워터 시립도서관에서 폐기도서들을 싼 값으로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모습

 

 


오클라호마주립대학(OSU)의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

 

 


오클라호마주립대학(OSU)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의 서가

 

 


오클라호마주 거쓰리시티(Guthrie City)의 카네기 도서관
(오클라호마 주에서 가장 먼저 세워졌음)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09.12 11:42

 


호산방의 박대헌 사장

 

 

 

고서점 호산방(壺山房).

그 호산방이 문 닫았다는 소식을

어제 날짜 신문에서 접했습니다.

바닷물에 모래성 무너지듯

수많은 점포들이 어제도 오늘도 사라지는 세상.

서점이 어디 일반 가게와 같은가?’라는

제 믿음도 이제 접을 때가 된 것일까요?

십 수 년 쯤 되었나요? 종로서적이 닫을 때

며칠 동안 마음이 허전했었는데,

그 때보다 더 한 허탈감입니다.

 

사실 책에 굶주려 지내던 대학원 재학시절엔 고서점들을 뻔질나게 찾았지요.

호주머니엔 구겨진 지전 몇 장과 동전 몇 낱이 전부였는데,

무슨 호기로 그런 책들을 탐내곤 했는지...

뒤통수에 꽂히는 주인장의 눈총을 느끼면서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마냥 시간이나 끌기 일쑤였지요.

미련을 남겨 둔 채 서점 문을 나서는 마음은 왜 그리도 허전했을까요?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박대헌 사장님을 제 연구실에서 뵈었지요.

박 사장께서 ‘150만원 정가의 책을 저술출판하여

한국 지식사회를 경동(驚動)시킨 시점.

그 책을 앞에 두고

궁핍했던 시절 고서점들에서 입은 상처를 차마 거론할 순 없었지요.

 

그 후로 세월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고,

고서점들 또한 많은 시련과 변신을 시도했겠지요.

결국 그 험한 물결을 되돌리지 못한 채

호산방은 장렬히 문을 닫은 것 아니겠는지요?

지금 제 나이 또래의 우국지사(憂國之士)’라면

누군들 이 세월의 변화를 반길 수 있을까요?

얄팍한 매명(賣名)의 상술(商術)들을 보시나요?

인문학의 두겁을 뒤집어 쓴 채 세상을 호리는 사람들을 말이지요.

세상을 뒤덮은 인터넷의 그늘 아래

자리 깔고 펼치는 개그를 학문이라 착각하고 있는 세태를 말이지요.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아직도 멋진 고서점들이 즐비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동네 도서관을 출입하고,

시장을 다녀오는 아주머니들의 장바구니 속에 도서관의 책이 한 두 권씩 들어 있는 모습.

그들의 멋진 건물이나 번쩍이는 거리의 모습보다 훨씬 부러운 광경이지요.

 

책을 찢어 벽지로 쓰고, 절구에 빻아 지공예의 재료로 쓰던 시절이 엊그젠데,

이삿짐센터의 제1 기피 대상이 책 박스라는 사실을 아시지요?

그래서 노마드의 임시 공동체인 우리네 아파트 쓰레기장,

그 공간의 단골손님이 멋진 장정의 책들이라는 사실도 잘 아시지요?

 

역사의 공간으로 사라진 호산방.

그 호산방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순 없을까요?

발효되는 고서의 향기 그득한 옛날의 서점으로,

힘들 때면 찾아가 고서들과 대화하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휴식의 공간으로 말이지요.

 

우린 자손들에게 무얼 남겨야 할까요?

날카롭게 벼린 이데올로기?

번쩍이는 빌딩?

엄청난 파괴력의 ()무기?

국내외의 페이퍼 컴퍼니들에 숨겨둔 천문학적 재산?

 

동네마다

멋진 고서점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건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요?

문화나 전통, 역사란 말이 매우 추상적으로 들리신다면

선진국의 멋진 고서점에 한 번 들러 보세요!

나이 먹은 책들의 숲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 책들의 나지막한 음성을 들어보세요.

그 음성에 녹아있는 것이 바로 문화, 전통, 역사이지요.

그리고 그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것이 미래에 대한 통찰이지요.

 

 

 


박대헌 사장의 저서 <<Korea: 서양인이 본 조선 조선관계 서양서지>>(호산방, 1996)

 

 

 


<<Korea: 서양인이 본 조선 조선관계 서양서지>>의 내용

 

 

 


박대헌 사장의 헌사(<<Korea: 서양인이 본 조선 조선관계 서양서지>>)

 

 

 


일본 천리시내의 한 고서점

 

 

 


일본 천리시내의 고서점에서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12.22 16:32

 

문학과 환경학회 국제학술 심포지엄[ ‘동요하는 경계들: 자연, 기술, 예술’]-오키나와 나고 시

메이오 대학교/2014년 11월 22-23일 

 

 


문학과 환경학회 국제 심포지엄 표지


 


다큐멘타리의 내레이터로 등장하여 끝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시무레 미치코 선생

 

 


다큐멘터리 <꽃의 정토로> 타이틀 화면

 

 


이시무레 미치코의 <<고해정토>>의 영문 번역판

 

 


한국의 전통 생태학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필자

 

 


이시무레 미치코의 「꽃의 정토로(花の億土へ)」에 나타난 '문학이론의 척도'를 발표하고 있는
미네소타 대학교의 크리스틴(Marran, Christine L.) 교수

 

 


발표를 마치고 같은 세션의 발표자들과 함께

 

 


점심식사 후 대만 담강대학교(Tamkang University)의 황(Huang, Peter) 교수와 함께 

 

 

 

 

*교수신문 760호(2014. 12. 22)에 실린 글을 이곳에 퍼다 놓습니다.

 

 

 

'환경과 문학' 담론, 그 세련화를 지향하며

   학술대회 참관기-문학과 환경학회 국제심포지엄을 다녀와서
2014년 12월 22일 (월) 10:16:58 교수신문 editor@kyosu.net

   
 

 

▲ 해상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헤노코 해변에 설치한 텐트. 문학과 환경학회 국제심포지엄이 열린 오키나와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조규익 교수는 바로 이곳에서 일본의 환경론이 보다 심도있게 융합 양상을 띄며 발전하고 있음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사진제공= 조규익

 

 

 
 
이 글은 조규익 숭실대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지난 11월 22일부터 이틀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시의 메이오대에서 열린 2014년 동아시아 문학과 환경학회 국제 심포지엄[2014 The International Symposium on Literature and Environment in East Asia[ISLE-EA]/Unsettling Boundaries: Nature, Technology, Art]을 다녀와서 학회 참관기로 보내온 글이다.

 

 


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오키나와 나고(名護) 시의 메이오(名櫻) 대학에서 열린 ‘2014년 동아시아 문학과 환경학회 국제 심포지엄’은 한국·일본·미국·타이완·중국·오스트레일리아·홍콩·캐나다 등 세계 각국에서 모여 든 100여명의 학자들과 수십 명의 대학원생들이 모여 벌인 학술의 난장이었다. ‘동요하는 경계들: 자연, 기술, 예술’이란 주제가 암시하듯 현격하게 다른 분야의 학문들이 환경이란 범주로 융합돼야 하는 당위를 모토로 내건 심포지엄이었다.

 

‘전날 밤의 다큐멘타리 상영/이틀에 걸친 논문 발표/환경 분쟁지역 헤노코(へのこ) 답사’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진행된 심포지엄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환경파괴가 단순히 물리적인 문제이거나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한시적인 문제가 아니며, 세대를 넘어 영원히 지속될 뿐 아니라 인문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의 지혜를 융합해 미연에 방지하거나 해결해야 할 ‘절박한 삶의 문제’임을 천명하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심포지엄 전날 밤 참여자들을 위해 상영한 다큐멘타리「꽃의 정토로(花の億土へ)」는 이 심포지엄이 지향하는 결론을 미리 암시한 일종의 가설이자 화두(話頭)였다. 자신의 고향 구마모토 현(熊本縣)의 미나마타(水俣)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환경문제를 문학으로 고발해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환경 공해의 고발과 해결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이시무레 미치코(石牟괋道子). 그녀가 주연으로 출연해 미나마타병의 현상과 의미를 심도 있게 설파하고, 시라누이(不知火) 바다의 아름다운 사계를 통해 그 공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시간대의 희망을 그려낸, ‘한 편의 시’와 같은 기록 영화였다.

그 바다가 갖고 있던 본래의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공해로 일그러진 현실의 참상이 대비되면서 자연환경의 파괴가 인류의 삶에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 듯, 전편에 걸친 ‘환상과 리얼리즘’의 융합적 미학이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이시무레 미치코의 삼부작(<<고해정토(苦海淨土)>>, <<신들의 마을>>, <<하늘의 물고기>>)은 이미 환경 문제를 예술로 승화시킨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었으며, 일본 학자들은 물론 서양 학자들도 이시무레 미치코와 그녀의 문학을 ‘환경 혹은 환경문학’의 중심에 올려놓고 그들의 담론을 생산하거나 정제시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아름다운 헤노코 해변을 누구로부터 지켜야 하는지,
난해한 의문이 떠올랐다. 누구의 말대로 ‘세계전략 차원의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는 미국인가, 아니면 그 미국을 편드는 일본 정부인가, 아니면 일본의
가상적 적대국인 중국이나 북한인가. 그런 것들이 아니라면 개발이란 미명
아래 자연환경을 운명적으로 파괴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들인가.

 

 

서구 사회나 일본이 일찍부터 산업화의 길을 걸어온 만큼 환경 파괴의 문제나 삶의 피폐화 등 인간 소외의 문제를 인식하고 자각해온 역사가 길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만하다. 그런 비극적 현상들을 각종 예술의 소재로 그려내고자 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철학이나 종교학을 포함한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그런 것들을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성화되면서 환경론이 보다 심도 있는 융합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한 점은 충격이었고, 그것은 적어도 우리가 갖고 있는 환경인식의 낙후성이나 단편성과 대비되는 그들의 학문적 선진성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의 경우 이미 담론화된 철학 혹은 인문과학을 환경과 억지로 융합시키려 한다는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환경이 물적인 객체라 해도 그것이 담론화의 대상으로 이미 편입돼 인식의 한 자리를 점하고 있는 한 그들과 대비되는 우리의 후진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 날 답사한 헤노코(へのこ) 해변을 바라보며, 군사기지 건설의 현실적 필요성과 자연보호의 명분은 양자택일의 문항이 아니라 그 역시 지혜로운 타협과 융합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나름의 판단을 내리게 됐다. 미 해군기지의 증설을 극력 저지하며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의 텐트 바깥엔 ‘투쟁 3871일째’라는 팻말이 작지만 완강한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아름다운 헤노코 해변을 누구로부터 지켜야 하는지, 난해한 의문이 떠올랐다. 누구의 말대로 ‘세계전략 차원의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는 미국인가, 아니면 그 미국을 편드는 일본정부인가, 아니면 일본의 가상적 적대국인 중국이나 북한인가. 그런 것들이 아니라면 개발이란 미명 아래 자연환경을 운명적으로 파괴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들인가.

 

환경론의 인문학적·미학적 승화는 단발적 캠페인이나 저항운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환경문제를 ‘대를 이어’ 지속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원리로 격상시키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우리가 환경 문제를 문학이나 예술로 고발하고 형상화 할 뿐 아니라 초기 단계부터 교육과 연계시킨다면 ‘미래의 개연적 환경파괴 문제’는 근원적으로 예방될 수 있을 것이며, 예기치 않은 환경문제들도 체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수월히 마련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역사 발전 원리의 두 축인 당위와 현실은 환경에도 적용돼야 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갖춰야 할때임을 깨달은 기회였다.

 

                                                                                     조규익(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오키나와 전도

 

 


오키나와 나하 시 시가지

 

 


나고 시 도착 후 저녁식사를 한 식당

 

 


마을 식당의 소박하고 정갈한 상차림

 

 


저녁 무렵 나고 만에서

 

 


호텔 창 밖으로 내다 보이는 저녁 무렵의 나고 만

 

 


학술 심포지엄이 열린 메이오 대학 정문

 

 


나고 시 시가지

 

 


호텔 근처에서 만난 교회[종교법인 궁리(宮里) 그리스도 교회]

 

 


교회의 내부

 

 


헤노코 해변으로 가는 길에 만난 미군기지[Camp Shwab]

 

 


투쟁단의 텐트에 부착된 구호[새 지사와 함께 열심히 합시다!!]

 

 


헤노코 해변 해상기지 건설 저지 투쟁 3871일째를 알리는 표지판

 

 


헤노코 해변에서 바라본 캠프 슈와브

 

 


헤노코 해변에서 만난 용궁신사

 

 


헤노코 해변의 아름다운 바위

 

 


헤노코 해변의 방파제

 

 


헤노코 해변 방파제 안쪽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