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8.07.06 12:05

 

 

관련 유튜브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z4CNmiLF-YU&feature=youtu.be

 

 

팔불출(八不出)의 변(辯)-학자로 자란 아들을 보며

 

 

누군가는 말했다. ‘저 잘났다 자랑하는 놈, 마누라 자랑하는 놈, 자식 자랑하는 놈, 선조와 부모 자랑하는 놈, 형제 자랑하는 놈, 후배 자랑하는 놈, 돈 자랑하는 놈, 고향 자랑하는 놈을 팔불출(八不出)이라 부른다고. ‘불출이란 사전적으로 못난이란 뜻이지만, 어감(語感) 상으론 엄청 못난 놈쯤 되는 말이다. 체면 중시 사회에서 수오지심(羞惡之心: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뼛속 깊이 간직하고 이 나이까지 살아 온 나다. 그런데 지금 팔불출 가운데 세 번째 불출이 되어 보고자 한다.

 

근래 한두 가지 일을 경험하면서 내 알량한 자존심의 메커니즘이 더 이상 작동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내 생각에 자존심이란 살아 갈 날들이 살아 온 날들보다 많을 때생겨나기 쉬운, 특이한 심리다. 이제 교수로서 내 인생의 한낮은 기울었고, 내 뒤에 끝도 없이 늘어선 후생(後生)들은 빨리 비켜서라고 재촉한다. 가당치 않은 자존심으로 그들에게 군림하려 한 과거를 버리고, 그들의 장점을 인정하면서 슬그머니 앞자리를 양보하는 것. 그 길만이 내게 남은 유일한 출구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따라서 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아들의 장점을 인정하는 것도 즐거움일 뿐 자존심 차원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제 내 협소한 울타리를 걷어내려는 것은 꽤 오래 전부터 견지해 온 학자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심각하게 도전을 받는 중이고, 어쩌면 그런 도전들의 정당성이 역사적 필연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조경현(Kyunghyun Cho)33살 된 내 큰 아들이다. 이번 방학에 그가 보여준 놀라운 일을 계기로 망설임 없이 이 공간에서 그를 언급하게 되었다. 그는 현재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다. 20022,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카이스트(KAIST)로 진학하는 그를 보내며 쓴 글(공부하러 집 떠나는 아들을 보며, 󰡔어느 인문학도의 세상 읽기󰡕, 인터북스, 2009)의 마무리 부분에 다음과 같은 내 소망을 담은 바 있다.

 

자식이 어찌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으랴? 그리고, 알아주기를 바란들 무엇 하랴? 그러나, 세상의 아들들이 이것만은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의 부모들 대부분은 공부하러 집 떠나는 아들들에게 물질로 호강시켜 줄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험한 세파 속에서도 자신의 두 발로 서서 당당하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 그러나 이왕이면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와 민족에게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부모에게 자부심을 안겨 주는 것. 이 시대의 부모로서 그 이상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247~248)

 

이것이 16년 전 집을 떠나던 그에게 아버지의 입장에서 표명한 소망이었고, 그 점은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카이스트를 나온 그는 핀란드의 알토대학(Aalto University: 201011일에 설립된 핀란드의 대학교. 2010년부터 정부 주도 하에 핀란드의 산업경제문화를 선도하는 기존의 세 대학-헬싱키 기술 대학교헬싱키 경제대학교헬싱키 미술 디자인 대학교-을 합병하여 출범했음)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몬트리올 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거친 뒤, 2016년 뉴욕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처음에 그가 영국이나 스웨덴 등의 전통 명문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았으면서도 핀란드의 대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지만, 결국 묻지 않았다. 그의 고집을 알고 있었고, 그를 믿어야 한다는 나의 자기억제(self-control) 소신' 때문이기도 했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핀란드의 그 대학에서 유능한 교수의 지도로 인공지능분야를 공부한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인공지능이란 말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고, 그 때만 해도 내겐 뜬구름 잡는 듯한그 분야나 공부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카이스트에서는 물론 핀란드로 간 뒤에도 그는 부모에게 돈 한 푼 요구하지 않았다. 매우 궁금했지만, 그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핀란드는 학비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당시만 해도 우수한 핀란드 교육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파견되던 우리나라 시찰단들을 위해 그가 틈틈이 영어 통역 알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다박사과정에 진학한 뒤에는 큰 규모의 핀란드 정부 장학금을 받았는데, 학비와 생활비는 물론 해외 컨퍼런스 참여에 따르는 모든 비용을 해결할 만큼 풍족한 것이었다. 그 장학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비로소 나는 핀란드라는 나라를 존경하게 되었다. 외국인을 무료로 교육시켜주고 장학금까지 지급하면서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가능성 있는 젊은 인재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국가가 나서서 양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야말로 국가 이기주의가 그악하달 정도로 팽배한 지금의 상황에서 매우 숭고한 일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인구 550만의 작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를 존경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런 과정에서도 나는 그가 컴퓨터 계통을 전공한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인 것을 알고 있지 못했다. 문외한이기도 하려니와 내 전공에 묻혀 살아 온 나로서는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어렴풋이 그가 당시에 갖고 있던 학문적 비전(vision)을 짐작하게 되었다. 석사논문(Improved Learning Algorithms for Restricted Boltzmann Machines/2011)과 박사논문(Foundations and Advances in Deep Learning/2014)에 그가 꿰뚫어 본 미래가 분명 담겨 있지 않은가! Dr. Juha Karhunen, Dr. Tapani Raiko, Dr. Alexander Ilin 등 유수 학자들의 지도 아래 그는 이미 8년 전부터 10년 이내에 핫이슈로 부상될 딥 러닝(deep learning)의 중요성을 알고 차곡차곡 준비해 왔음을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학위를 받고 핀란드를 떠난 그는 캐나다의 몬트리올 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자기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요슈아 벤지오(Dr. Yoshua Bengio) 교수를 찾아간 것이다. 그곳으로 간 지 1년쯤 지났을까. 채용 공고에 응모한 미국과 영국, 스위스, 스코틀랜드 등의 유수 대학들에서 교수직 제의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저울질한 것은 미국의 뉴욕대학교와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였는데, 내가 보기에도 두 곳의 장단점은 분명했다. 오래도록 대학물을 먹은 나로서는 전통적인 명성과 함께 정년 직으로 채용되는 옥스퍼드가 나아 보였으나, 결국 그는 뉴욕대학을 선택했다. 그 대학에 딥 러닝 분야의 석학 얀 르쿤(Dr. Yann LeCun) 교수가 있었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세계의 중심인 뉴욕, 경쟁과 자기혁신의 용광로인 미국 대학사회에서 맘껏 연구 활동을 펼치고자 한 그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잘은 모르지만, 캐나다로 건너 간 뒤부터 그의 학문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그는 랩(lab)에 몰려드는 세계의 수재들을 지도하며 다양한 테마의 연구에 몰두하고, 한 주에 한 번씩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이끌어주며, 연간 십여 차례씩 국내외 컨퍼런스와 연구교류 여행을 해야 하는 간단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컴퓨터의 딥 러닝을 이용한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with deep learning)’인 듯하다. 그가 고안한 것으로 알고 있는 NMT(Neural Machine Translation/신경망 기계번역)는 이미 인공지능 컴퓨터 언어학습 분야의 핫 이슈가 되어 있고, 현재 그는 서로 다른 언어들 사이에서 통번역을 자유자재로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메커니즘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

 

1년에 단 한 번, 체류기간은 단 1주일. 그는 여름 방학 초에만 부모가 있는 서울로 온다. 그 짧은 체류기간도 이곳저곳에서 요청한 강연 스케줄로 빡빡하다올해 강연들 중 핵심은 네이버(NAVER)의 커넥트(Connect) 재단에서 있었다. 등록자 200명을 위해 하루 네 시간 씩 이틀 동안 여덟 시간을 강의하고 온 그는 늘 그러하듯 담담했다. 강연료는 얼마나 받았느냐고 농담조로 묻자 천만 원이오. 그런데 모두 기부했어요.”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강연료 액수에 우선 놀랐고, 기부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그의 무심함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래도 태연한 척 어디에 기부했니?”라고 물으니, “여성 과학자들을 위해 소셜 벤처 걸스로봇(Girlsrobot)에 기부했어요.” 한다. “잘 했다고 대답은 하면서도 궁금증은 커졌다. 그의 전공 지식이 대체 무엇이관대 8시간 강의에 천만 원씩이나 받는 것이며, 그 돈을 한꺼번에 기부하는 배포나 철학은 또 뭐란 말인가. 궁금했으나, 더 묻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아버지이지만, 가난한 나라의 국문학 교수가 그 내용을 자꾸만 캐묻는 것도 후학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었다. 이삼일 후 그가 떠나고 나서 우연히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동아일보의 놀라운 기사 한 건을 접하게 되었다.

 

donga.com

 

과학인 키워달라” 30대 과학자 통 큰 기부

 

조경현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국내 강연료 1000만원 전액 쾌척

30세에 신경망 기계번역논문으로 딥러닝 분야 세계적 연구자 반열에

 

 

딥러닝 분야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는 젊은 한국인 과학자가 국내 대중을 대상으로 연 강연의 강연료 전액을 여성 과학 기술인을 지원하는 국내 소셜 벤처에 기부해 화제다. 주인공은 조경현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33·사진). 그는 공동연구를 위해 방한한 이달 11, 12일 커넥트재단 초청으로 경기 성남시 네이버 본사 강당에서 딥 러닝을 이용한 자연어 처리강연을 했다. 8시간 동안 2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대형 강연이었다.

 

해외 석학을 초청한 자리인 만큼 강연료가 1000만 원에 이르렀지만, 조 교수는 예비 여성 과학기술인과 대학원생을 지원하는 데 써 달라며 전액을 소셜벤처인 걸스로봇에 쾌척했다.

 

조 교수는 평소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이공계 분야 여성의 활약과 진출이 아직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뉴욕대 학부에 개설한 머신러닝 입문과목은 정원이 70명이지만 이 중 여학생 수는 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한국은 미국보다 상황이 더 열악할 것이라는 생각에 기부를 결심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아프리카의 과학, 공학 발전을 위해 교수들이 연중 몇 주씩 현지를 찾아가 강의를 하는 등 지역별, 인종별 격차를 줄이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미국 동료 과학자들의 이런 자세에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현재 구글 번역과 네이버 파파고 등이 채용 중인 신경망 기계 번역기술의 이론적 토대가 된 기념비적인 논문을 2014년 공동 저술해 학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정렬 및 번역 동시 학습에 의한 신경망 기계번역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20일 현재까지 3674회 인용된 딥 러닝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꼽힌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80621/90681370/1#csidxc09a80b7f83fa0ea2f4c765d86099f0

 

 

 

, 그랬구나! 세상은 그의 존재를 알고 있는데, 나만 그의 성장을 모른 채 늘 어린 아이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1997년 첫 연구년을 받아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할 때, 초등학교 6학년인 그와 4학년인 둘째 아이에게 초급 영어 회화를 가르치며 초조해 하던 나를 떠올렸다. 이 어린 것들을 데리고 낯설고 물 선 미국 땅에서 무사히 1년을 지내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내게 주어진 천금 같은 기회를 살려 이 철부지들을 낯선 미국 땅과 문화에 잘 적응시킬 수 있겠는가. 가족들을 끌고 물을 건너는 가장에겐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미국에 건너가자마자 영어도 미국 생활 자체도 그들에게 대뜸 추월당한 나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른들을 앞서 갔지만, 바로 어제까지 그들은 내게 코흘리개 아이들일 뿐이었다. 올해 초 그는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이 선정한 ‘201850개 분야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에 들었다. 사실 놀라워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뭘 갖고 그러지?’라고 심드렁하게 생각한 나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새 그는 이미 남들이 인정하는 세계적인 학자가 되어 있었다. 논문의 인용지수나 강연파일들의 태그 건수가 내 상식을 초월하고, 미국 안에서는 물론 유럽에서도 아시아에서도 그를 찾는 곳들이 많아 일일이 응대할 수 없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특히 인공지능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오늘날 그는 순풍을 탄 독수리처럼 하늘로 솟고 있다. 그러면서도 늘 겸손한 자세로 구부정하게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가 대견하다. 좀 잘 나간다고 까불다가 추락하는 세상 천재들의 말로를 잘 알고 있다는 듯 밤낮으로 노력하는 그를 보며 안심을 한다.

 

인천공항 출국장. 그를 탑승구로 들여보내고 나는 아내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지금 보니 저 녀석은 대양을 헤엄치는 고래이고, 나는 고향 마을 실개천의 붕어나 미꾸라지일세. 고래가 실개천으로 돌아올 이유도 없고, 붕어나 미꾸라지가 대양으로 나갈 이유도 없겠지. 나는 개천 속 붕어와 미꾸라지의 삶을 녀석에게 보여주며 항상 교만하지 않고 초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셈이네!”

 

제주도의 호텔 로비에서

제주도 목장에서 오른쪽부터  조경현, 백규, 임미숙, 김미언, 조원정, 조영빈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05.23 19:52

하회 별신굿 탈놀이 다섯째 마당의 파계승

 

하회마을의 아름다운 초가들

 

하회마을 초가들 사이의 골목길

 

하회마을에서 만난 장독들

 

병산서원에서 숭실국문 학생들과

 

병산서원에서 집행부 학생들과

 

병산서원에서 외국인 유학생들과

 

병산서원에서 임채훈 교수, 엄경희 교수, 소신애 교수 등과

 

 

학술답사 후기

-학술답사인가?-

 

                                                                                                                  조규익(숭실대 교수)

 

내 학창 시절 은사 한 분은 늘 논문은 발로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논문을 발로 써라? 처음엔 그 말씀이 몹시 낯설었다. 당시 엉망진창인 번역을 발 번역이라 부르던 나였지만, ‘발 논문이란 조어(造語)의 진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이가 들고 공부가 좀 익어지면서 깨달았다. 자료를 찾아 발로 뛰는학자가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일까. 팔도 어디든 내가 필요로 하는 자료의 소장 자()를 찾아다니는 일이 연구 작업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꽤 된다. 그렇다고 내가 좋은 논문들을 쓰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큰 실수 없이 어쭙잖은 글들이나마 엮어 낼 수 있는 건 전적으로 그 때 익힌 현장 중시의 습관 덕분이리라.

 

국어국문학의 현장은 우리 전통사회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그런 공간들이 제법 남아 있었다. 어느 마을 논두렁이나 밭두렁에만 가도 생생한 자료제공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들이 방언이었고, 힘들거나 즐거울 때 질러내는 소리들이 민요였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로부터 물려받아 기억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둔 이야기들은 좀 많았나. 그런 걸 찾으러 틈나는 대로 방방곡곡 누비고 다니며 국어국문학도들은 자긍심을 지닐 수 있었다. 사라지는 우리의 전통과 정서를 글자로 잡아놓고 분석하여,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민족문화의 파수꾼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이제, 세월은 마구 변하여 외견상 전통사회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국어국문학도들의 임무나 사명을 고도로 세련시켜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사실 변화는 잔존(殘存)을 전제로 하는 개념일 뿐 사라짐이 아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여 찾는 일을 포기할 순 없다. 변화의 근거들이야 하다못해 DNA에라도 남아있을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집요함은 공부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최종병기. 문학이나 언어의 생산자이자 사용자인 사람들을 만나 보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을 키워 낸 자연과 문화적역사적 잔존물들을 현장에서느껴보지 못한다면, 강의실에서 펼쳐지는 담론들의 공허함을 무슨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오.

 

우리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관광여행을 본받으려 하지 않는 것도 답사지역이 우리의 또 다른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밤을 새워 그곳 인물들의 문학을 찾고, 무형 문화재의 뿌리를 가늠하며, 숨은 역사를 캐는 일은 이 시대의 국어국문학도에게 부여된 사명이자 특권이다. 2018년도 숭실 국문인들이 그 사명과 특권을 오롯이 수행하고 누릴 수 있도록 지역선정-계획 수립-사전답사-자료집 준비등으로 학생회장 김태호를 비롯한 집행부원들이 진한 땀을 흘렸다. 그 덕에 멋진 자료집이 나왔고, 모두 참여하여 현장 공부의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이제 우리 모두 귀한 공부여행에 적극 동참하여 하나라도 더 얻어오는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

 

위 글은 2018학년도 숭실대 국어국문학과 학술답사 자료집에 실은 나의 인사말이다. 나는 교수 초년병 시절부터 몇 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학술답사에 참여하여 학생들과 고락을 함께 해왔다. 그동안 사회의 변화와 함께 학술답사의 양상도 많이 바뀌어 이젠 일반인들의 여행과 구분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지역과 방문 대상이 역사나 전통문화로 한정되고 강의실 교육의 연장이라는 점에서나 국문과의 학술답사는 일반인들의 관광여행과 구분될 따름이다. 그러나 오늘날 목적과 테마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만큼 일반인들의 관광여행도 많이 세련되었다. 오히려 문화답사 동호인들끼리의 여행일 경우 대학의 학술답사보다 더 전문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 일반인들의 안목이나 교양 수준은 많이 높아진 반면, 대학 교육은 거의 완벽하게 대중화보편화되었다. 따라서 앞 시대엔 전문인들이나 예비전문인들이 주로 수행하던 학술답사가 이젠 교양의 심화나 지적인 욕구의 충족을 지향하는 일반인들의 문화관광 여행과 구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대학 내에서 학술답사는 국어국문학과의 고유활동으로 굳어지다시피 했다. 그 분야의 교수 로 30년 넘게 재직해오면서 깨달은 시대의 변화는 매우 크고 의미심장하다. 인터넷의 무한한 확장, 기계화를 통한 전통사회의 변화, 교통통신의 발달을 통한 전국의 1일 생활권화 등으로 현장 조사나 학습의 중요도가 많이 저감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을 데리고 역사와 전통의 맥이 살아있는 현장을 둘러 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신나는 일이다.

 

올해는 안동지역을 답사 대상으로 잡았다. 첫날(517)은 하회마을에 도착,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함께 관람한 뒤 하회마을의 정취를 음미하고 병산서원(屛山書院)에 들렀으며, 풍산읍에 있는 안동 펜션 & 게스트에서 1박을 했다. 다음 날은 분과에 따라 고전문학학회와 민속문화학회는 가송리 농암종택(聾巖宗宅)을 방문한 뒤 한국국학진흥원 및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에, 현대문학회는 권정생 동화마을과 이육사문학관 및 농암종택에 각각 들렀으며, 언어학회는 가구1리 마을회관에서 방언을 채록하고 영호루와 안동 문화의 거리를 답사했다. 셋째 날에는 전원이 함께 도산서원(陶山書院)과 소수서원(紹修書院)을 들러 서원문화를 체험한 뒤 오후에 서울로 돌아왔다.

 

***

 

방대한 이 지역의 문화와 정신을 받아들이기에 23일은 매우 짧았다. 그러나 학생들의 표정에서 작지만 어떤 변화의 조짐을 읽어낼 수는 있었다. 물론 학생들 각자의 내면적 수준이나 성향에 따라 감수(感受)한 것들은 달랐으리라. 어쨌든 늘 복잡한 도심에서 각자의 삶을 살다가 함께 한국의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불리는 안동에 찾아가 선비문화를 체득한 것은 이들의 삶에 큰 정신적 자산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나는 답사 기간 내내 서원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지역의 사림문화(士林文化)를 제대로 볼 것을 학생들에게 주문했다. 농암종택 안 쪽에 위치한 분강서원(汾江書院)의 입교당(立敎堂)에 학생들을 앉히고 농암 선생의 풍류와 자연 친화의 삶을 강의했고, 도산서원의 전교당(典敎堂)에서는 퇴계 선생의 시가와 도학적 세계관을 강의했다. 병산서원, 도산서원, 농암종택, 소수서원 모두 자연과의 조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심성 수양의 공간이었음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자 노력했다.

 

그 분들이 추구한 도()자연 속에서 읽어낸 불변의 길이라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늘이 천성으로 부여한 생태의식이 바로 도학의 바탕이었던 것이다. 주어진 세상의 삶을 마치고 뛰어난 생태 공간인 안동의 땅에 스며든 위대한 스승들. 일찍이 퇴계 선생은 <도산십이곡>의 제9곡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古人) 못 뵈

고인(古人)을 못 뵈어도 가시던 길 앞에 있네

가시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찌 할꼬

 

그렇다. 신재(愼齋), 농암(聾巖), 퇴계(退溪) 등 우리 스승들의 걸어가신 길을 뒤쫓아 가면 잘못 될 일 없을 터인즉, 이제라도 따라가 보자. 학생들을 지도하겠노라 나선 길이었으나, 나 스스로 배움만 가득 안고 온 23일의 학술답사였다.

 

농암종택에 들어서며

 

농암종택 안쪽의 넓고 안온한 풍경

 

농암종택의 분강서원

 

분강서원에서 강의를 듣는 학생들

 

멀리서 잡은 농암종택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안동 박실에서 구미 일선리로 이건한 삼가정의 현판

 

퇴계 선생에게 내린 교지

 

도산서원의 안온한 모습

 

도산서원 전교당 앞에서

 

도산서원 전교당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도산서원 시사단(試士壇)

 

순흥의 죽계루 앞에서

 

근재 안축(安軸)의 <죽계별곡(竹溪別曲)> 현판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학술답사집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03.31 17:00

 

그간 북한에 대하여 어렴풋하나마 갖고 있던 내 나름의 감(感)을 논리화시킬 만한 지식도 정보도 없어 애만 태워오던 중이었다.  오늘 비로소 가슴이 뻥 뚫리는 설명을 접했다. 현 집권세력이 '몽상가들임'은 상식처럼 되어 있는 사실이지만, 그 이유를 이처럼 명쾌하게 짚어준 논객이 없었다. 제대로 된 전문가를 비로소 만난 기쁨,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30/2018033001775.html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03.29 18:40

 


 


흘러가는 물을 보며

 

 


부모님 묘소에서

 

 

많은 죽음들을 기억하며

 

 

                                                                                                                                조규익

 

 

두 해 전에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올해 가까운 친구 김성원이 떠났고, 며칠 전엔 대학원 시절 함께 공부하던 정명기도 떠났으며, 최근 들어 이런 저런 이유로 비명(非命)’에 떠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그간 죽음에 대한 고민이나 사색을 통해 나름대로 의미부여의 방법을 터득했다고 자신하기 때문일까. 이젠 어떤 죽음도 비교적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사(自然死), 병사(病死), 사고사(事故死) 모두 항거할 수 없는 상황의 산물이다. 또한 개인적사회적 이유로 인한 최근의 자살들 역시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산물일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반듯하게챙겨 갖고 있지 않다면, 견디기 어려운 광경들을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는 요즈음이다. 사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자살이다. 어쩌면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없고, 그동안 지탱해오던 사회적 자아를 유지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자살일 것이기 때문이다. ‘절망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키엘케골의 말도 바로 그런 점을 지적했으리라.

 

가차 없는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에 인간은 종교에 귀의한다고 한다. 사실 죽음이 매우 두려운 것은 죽음 이후의 세상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삶을 예비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지금도 사람들을 교회로, 성당으로, 사찰로 이끄는지 모른다. 돈독한 논리체계로 사후 세계를 치밀하게 설계해 온 종교들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권유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세계의 주재자인 신을 받들고 있을 것이다. 그 믿음이 강할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경감되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의 내면에 남아 있는 한 종교는 계속 번창할 것이라고 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자연물로서의 인간의 삶은 참으로 짧고, 그 가운데 가치 창조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더욱 덧없다. 하기야 한갓 미물로서 무슨 가치를 창조하겠노라뜻을 세우는 것 자체가 오만하고 가당찮은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저 하나의 던져진 존재라는 점을 깨닫기만 한다면, 겸손한 자세로 생명의 장()’인 세상에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다 사라지련만. 대부분은 주어진 생애 동안 기고만장하여 같은 공간의 동지들과 멱살잡이로 날밤을 지새우기 마련이다. 소수는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돌아보고 깨달음을 얻지만, 대부분은 삶에 대한 헛된 집착으로 그런 깨달음조차 얻지 못하는 것 아닌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그대는)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경구(警句). 아침저녁 열심히 가꾸어 오던, 꽃 같은 얼굴이 한 줌 재로 바뀌어 풀밭에 뿌려질 때, 풍채 좋던 친구가 주검 옷에 둘둘 말려 석자 깊이의 무덤으로 내려 갈 때, 그들을 바라보며 비로소 내 모습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을 보며,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자연법칙에서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착각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그 자리에서 시신으로 바뀐 그들과 나의 자리바꿈을 통해 비로소 삶과 죽음의 우주적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며, 그 순간부터 죽음은 두렵지 않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죽어야 할까? 하나, 둘 떠나는 이웃들을 보며, 그 순번이 내게 돌아올 때까지 나는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이며 어떻게 그 순간을 맞아야 할지, 이제 결정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메멘토 모리!!!

 

 


등걸에서 새싹이...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03.14 14:45

최근 광주의 찻집에서

 

 

 

 

친구를 보내며

 

 

                                                                                                               백규

 

 

다정하던 친구 김성원이 이승을 떠났다.

내가 마지막으로 다녀 온 다음 날부터

그는 급격히 혼돈에 빠져들었고,

드디어 12일 새벽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오늘 아침 이른 시각

너무나 짧은 발인식을 마치고

그는 뜨거운 불의 정화(淨化) 의식을 거쳐 저승으로,

나는 현실의 원리가 작동하는 일터로 다시 돌아왔다.

 

눈을 감기 나흘 전

병원으로 그를 찾았다.
그는 나를 보고 싶어했고

나 역시 그가 몹시 궁금했다.

서로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우리는 힘주어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밝은 웃음이 모처럼 그의 얼굴에 번졌다.

언젠가 그에게 처음으로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학교 졸업 후 지금껏 나는 인천 방향으론 소변도 보지 않았노라!”.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 같지만,

사실 그 속에는 어린 시절 그곳에서 겪은 고통과

마음의 상처가 듬뿍 실려 있었다.

그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그동안 나의 그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음을

병상 머리맡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갑자기 폰을 집어 들더니

어느 부분엔가 저장해 놓은 사진 한 장을 찾아 더듬거렸다.

마지막 순간 내게 보여주려고 잘 갈무리해 두었겠지만,

정신이 혼미해진 탓인지 결국 사진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어릴 적 동생을 안고 있는 사진이라는데,

무뎌진 손끝과 흐려진 정신으론 끄집어 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엉망이 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통해

마지막으로 내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려는속 깊은 마음씀이었으리라.

 

그 뿐 아니다.

모든 면에서 참 사려 깊은 그였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친구들 일이라면 빠진 적 없었고,

함께 어울리기 좋아한 그였다.

자신이 정한 원칙은 한 치도 어김없이 지키려 했고,

적당히 타협하지 않으려 했다.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해주길 원하다 보니,

그들 역시 때로는 지치고 힘들었으리라.

그래도 늘 넉넉한 웃음으로

모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곤 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만,

삶과 이승에 대한 애정이 유독 도타운 친구였다.

그래서인가.

이렇게나 빨리 홀로 먼 길 나선 그가 안쓰러울 뿐이다.

붙잡는 이승의 손길을 지긋이 뿌리친 채,

그는 떠났다.

삭막한 세상을 함께 할 친구 하나가 줄어든 것이다.

이 상실감이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채 절망으로 연결된다면,

그 때문에 나 또한 세상을 뜨게 되리라.

허무의 심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나 또한 이승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되리라.

 

오늘

햇살은 이리도 좋은데,

그대는 어디쯤 가고 있는가.

길가에 주막 한 채라도 있거든

병마 탓에 그동안 끊었던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사 마시며

얼큰 취한 목소리로 <희망가> 한 자락이라도 불러 보시게나,

사랑하는 친구여!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앉아서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풍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2018. 3. 14.

 

 성원을  보내며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02.28 14:33

 

 

 소설인가? 생태학 보고서인가?

-‘늑대토템(狼圖騰)’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

 

                                                                                                                         조규익(국어국문학과 교수)

 

 

 

토템은 아버지를 대치한 최초의 형식이었을 것이고, 신은 아버지가 인간의 모습을 되찾은 후대의 형식이다. 모든 종교 형성의 뿌리인 아버지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신 관념이라는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 이유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아버지에 대한 관계, 그리고 아마 동물에 대한 관계에서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S. 프로이트, 󰡔토템과 타부󰡕에서-

 

 

 

수만 년 거센 바람이 빗질하여 키워낸 목초로 수많은 초식동물들을 키워내던 몽골 초원. 인간의 짧은 안목과 인색한 이기주의를 한 치도 허용치 않던 원초의 공간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 자연이 허락한 먹이사슬의 꼭짓점에 지금은 인간이 앉아 있으나, 늑대가 그 공간을 지배하며 인간에게 생존경쟁의 원리를 생생하게 가르쳐 주던 한때가 있었다. 생존의 원리에 대한 정당한 명분을 뺏기지 않으려는 늑대와 한사코 빼앗으려는 인간 사이에 피 터지는갈등과 싸움이 벌어지던 초원. 그곳에서의 싸움은 인간과 늑대 전사들 간의 명백한 게릴라전이었다.

신이 허여한발톱과 이빨, 그리고 전략을 보유한 늑대는 초원의 챔피언이었고, 그 왕좌는 자연과 세계를 위해 아니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해 유지되는 것이 옳았다. 늑대와 달리 이렇다 할 발톱도 이빨도 없이 강자에 대한 대책 없는 복수심과 교활한 욕심만 그득한 것이 인간의 내면이다. 그런 늑대와 인간이 초원이란 한 공간에서 주도권 싸움을 벌여온 것이다. 싸움의 룰이 대체로 공정했던 초반과 달리, 갈수록 늘어나는 인간 욕망의 부피에 그 공정성은 훼손되고 말았다. 주도면밀하다는 점에서 늑대와 인간은 비슷하지만, 늑대는 본능인 반면 인간은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어쨌든 생태계란 한때 잘 때려먹고 살다가없어져도 괜찮은 허약한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에, 늑대와 인간은 최선을 다해 싸워야 했다. 인간의 짧은 안목으로 볼 때, 늑대와 인간은 서로를 죽여야 살아남는 제로섬 게임의 경쟁자들이다. 불행하게도 상대방을 절멸(絶滅)시킬 경우 스스로의 삶도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늑대와 인간의 공존은 당위이자 존재의 원리다. 늑대와 인간이 불안하게 공존하는 초원은 먹이사슬의 꼭짓점을 차지하기 위해 양자가 결전을 벌이는 최종 공간인가. 아니면, 최강의 경쟁자들끼리 공존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궁극적인 화해에 도달하게 될 최후의 공동체인가. 챔피언 결정전에 나선 두 선수들의 피나는 싸움을 관찰하여 기록한 것이 이 글, 소설 아닌 생태 관찰 보고서로서의 󰡔늑대토템󰡕이다.

늑대도 인간도 생태계를 유지해가는, 동등한 위치의 구성원일 뿐이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학문이 생태학이라는 상식은 인간의 존재를 너무 크게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어쩌면 오류일지도 모른다. 근원적으로 인간 역시 자연의 한 요소에 불과하므로 자신들을 자연과 분리된 특권적 존재로 생각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자연을 자연스럽게 바라보거나 유지시키는 학문이 생태학이라면, 인간을 예외적인 존재로 단정해 놓고 자연과 분리시킬 필요도 분리시켜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지식청년 출신의 장룽(姜戎)30여년을 올론 초원 늑대들의 생태를 관찰하여 완성시킨 󰡔늑대토템󰡕늑대를 통한 인간의 생태학적 보고서인 셈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 책은 늑대와 인간이 공존해야 한다는 생태계의 당위를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이기적 행태에 대한 고발과 늑대토템사상의 차원 높은 합리성을 강조한 인문학적 보고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몽골늑대

 


몽골초원

 

작가 장룽은 21살의 지식청년 천전으로 바뀌어 무대인 몽골 초원에 등장한다. 내몽골 변경 올론 초원의 인민공사 목축대대에 자원하여 배속된 실제 지식청년 장룽은 그곳에 11년간 머물면서 자신을 매료시킨 늑대의 생태와 정신을 체험적으로 관찰하게 된다. 초원에서 늑대와 함께 자라고 늙어온 빌게노인의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늑대의 정신을 이해했을 뿐 아니라 유목민과 농경민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거리 또한 절감했다.

실제로 그는 늑대를 만나면서 두 가지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늑대는 초원의 혼을 주도했고, 그것이 강인한 생명력과 전투력을 가능케 한 유목정신으로 승화되었다는 것. 즉 유목 생활 내부의 냉혹한 생존경쟁은 강한 늑대와 군마, 강한 무사들을 지속적으로 키워 왔으며, 그것들을 바탕으로 낙후되었던 유럽의 로마문명이나 중세의 봉건제도를 무너뜨림으로써 세계사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 그 첫 번 째 깨달음이었다.

그 반대로, 냉혹하고 강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형편없이 나약해졌고, 그 나약성으로 인해 비약적인 발전을 기할 수 없는 농경문명의 한계가 중국의 치명적인 결함이라는 것이 그 두 번째 깨달음이었다. 따라서 식량 생산의 면에서 비효율적인 초원을 농토로 바꾸어 곡물생산을 늘이고 목축의 방법을 바꾸려는 국가의 시책이야말로 무한한 발전의 원동력을 꺾는 일임을 주인공은 강하게 주장하지만, 개발 시대의 조류를 혼자서 막을 수는 없었다.

그가 빌게노인을 비롯한 초원의 주민들로부터 배우고, 실제 늑대들의 생태로부터 체득한 것은 초원에 내재되어 오랜 세월 지속해온 생태적 공존의 원칙이었다.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초원을 보호하고 초원은 목축을 통해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상호 공존의 토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늑대 또한 초원을 정복하고 인간과 경쟁을 벌이는 존재이긴 하지만, 초원을 해치는 동물들의 개체수를 조절함으로써 목축업을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인간과 이해관계를 함께 한다는 측면에서 3(초원-인간-늑대)는 공존의 당사자들이기도 했다.

목축대대의 대표 바오순궤이를 설득하는 올론 초원 울지 노인의 말은 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목초지를 보호하는 일이고, 이것이야말로 목축업의 근본이지요. 중요한 건 한정된 목초지 안에서 가축 수를 엄격히 통제하는 것이고()목초지를 보호하는 관건은 늑대를 지나치게 많이 잡아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초원에는 풀을 망치는 야생동물이 너무 많아요. 그 중에서도 쥐, 산토끼, 마르모트, 가젤이 가장 심한데, 이런 동물들은 목초지를 파괴하는 큰 화근이 되지요. 늑대가 없으면 쥐나 산토끼가 몇 년 안에 초원을 전부 뒤엎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늑대가 바로 그것들의 천적인지라, 늑대가 있어야 그것들이 활개를 펼 수 없게 되지요. 목초지가 잘 보호되면 목장의 재해 대처 능력 또한 커지게 된답니다.()목초지가 좋아서 수분과 토양도 유실되지 않고, 샘이나 작은 강도 물이 마르지 않으니 큰 가뭄을 만나도 마실 물이 부족할 일이 없지요. 풀이 좋으니 자연히 소와 양들도 건강해서 몇 년 간 목장에 병해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고요. 목장의 생산량이 올라가면 기계 설비를 추가할 능력도 생기니, 우물을 파거나 우리를 지어 재해 대처 능력 또한 덩달아 증강시킬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사실 목초지를 보호하여 많은 동물들을 기르고 재해에 대비하자는 것이 울지 노인의 말인 것 같지만, 초점은 말의 이면에 숨어 있다. 늑대를 보호해야 목초지가 보호되고, 목초지가 보호되어야 사람들도 살 수 있다는 생태적 순환성을 말했고, 그 논리적 연쇄의 출발점에 늑대가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오순궤이는 하지만 아직도 늑대에게 의존해 목초지를 보호한다는 말에는 그리 확신이 서지 않는군요. 늑대가 그렇게 큰 역할을 해낼 수가 있단 말인가요?”라고 여전히 늑대의 존재나 능력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초원에서 태어났거나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원의 생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는 존재가 바오순궤이다. 빌게나 울지 노인은 초원 늑대의 생태를 자신들의 몸처럼 꿰고 있는 사람들이고, 천전은 대도시 출신의 지식청년이지만, 초원 늑대의 생태를 관찰하고 경험한 덕에 바오순궤이와 빌게울지의 사이에서 양자를 통합하면서도 양자를 뛰어넘을 수 있는 통찰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늑대의 생태적 특성은 무엇일까. 늑대는 늙거나 약하거나 병든 동족에게 먹을 것을 남겨 주려 애쓴다는 것. 즉 호랑이나 표범보다 결속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먹을 것이 생기면 무리 전체를 생각한다는 것이 늑대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인간보다도 오히려 가족을 끔찍하게 챙기고, 심지어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야 하는 암 늑대까지 챙기는 것이 늑대의 생태적 본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무리들의 결속력이 강하여 우두머리 늑대가 한 번 울면 100여 마리의 늑대들이 몰려들어 함께 싸우기 때문에 초원에 살던 호랑이도 늑대 무리에게 쫓겨났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물론 늑대가 방목중인 양떼나 소, 말 등을 공격한다는 점은 초원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다. 그러나 반대로 가젤이나 마르모트 같은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음으로써 초원을 보호유지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 되는 점이다. 사실 이런 먹이사슬은 자연 환경을 바람직하게 유지하는 최고의 생태 시스템이다. 초원을 망가뜨리는 야생 초식동물들의 개체수를 유지하여 초원을 보호하고, 그 덕에 양들은 자라고, 양떼 덕에 인간의 삶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그 점이 바로 생태환경의 유지나 산업발전의 면에서 초원의 늑대가 갖는 장점이다.

그런데, 늑대의 자산이 그것뿐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당면하게 먹고 사는 문제 이상의 매력적인 생태적 특질을 늑대들은 갖고 있다. 튼튼한 이빨, 발톱, 근육, 그리고 이것들로부터 발휘되는 힘, 그 힘을 몇 배로 키워주는 생태적 특성으로서의 모성애와 가족애, 집단생활 등은 늑대를 단순한 초원의 야수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늑대 무리는 그들 나름의 규율에 의해 움직이고 지탱되어 나가는데, 그건 일종의 문화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늑대로부터 어떤 신성성을 발견했다. 신의 정령(精靈)이 늑대로 화()했고, 그 늑대는 인간을 텡그리(tengri)’로 데려다 주는 역할을 한다고 초원 사람들은 믿는다. 말하자면 그들의 내세관이나 신앙에까지 끼어들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 즉 토템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주인공 천전에게 늑대의 출중한 장점을 역설하는 목동 장지웬의 말도 몽골민족이 오래도록 토템으로 섬겨 온 늑대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 “몽골초원의 늑대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큰 인내력과 끈기를 가진 몽골말은 물론이고, 세계를 뒤흔든 흉노, 돌궐, 몽골의 강인한 기병들까지도 길러낸 주역이었다.”거나 몽골초원의 늑대들은 초원 사람들에게 강인한 정신력과 탁월한 전투능력, 그리고 가장 출중한 군마를 공급해 주었고, 이 세 가지가 바로 몽골초원 사람들이 세계를 뒤흔들 수 있었던 이유이자 비결이라는 이들의 대화에는 몽골초원의 늑대에 의해 사실상 조련된 몽골 군마를 소유함으로써 몽골의 기병이 더욱 강인해졌다는 믿음이 들어 있다. 그 뿐 아니라, 늑대 토템 정신의 강점은 중국인들의 유가사상(儒家思想)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었고, 천연의 연속성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가사상의 체계는 이미 쇠락했지만, 늑대토템의 정신은 서구 선진 민족들의 귀중한 정신적 유산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몽골민족에게 늑대는 인간과 텡그리를 이어주는 중개자로 인식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세월 올론 초원의 장례식이 그 증거였다. 목축민이 죽으면 옷을 벗기고 펠트로 말아 묶거나 입은 옷 그대로 달구지에 싣고 나이 든 두 명의 남자가 달구지를 끄는 말에 올라 채찍을 가한다. 달구지가 덜컹거리면서 시체는 땅에 떨어지는데, 그곳이 바로 죽은 이의 영혼이 텡그리로 돌아가는 장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 남자들이 죽은 이의 펠트를 벗기고 시신을 하늘을 향해 똑바로 눕히면 장례의식은 끝나는 것이다. 늑대들이 깨끗하게 육탈(肉脫)시킨 시신으로부터 나온 영혼이 올라가 텡크리의 품에 안기게 된다는 믿음. 그 죽음은 영원한 소멸이 아니라 텡그리의 연회에 참석하여 성스러운 물로 세례를 받고 새 생명을 부여받는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그것이 초원의 몽골민족이 진정으로 믿고 있는 늑대토템 사상의 핵심이었다.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다양한 생물들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생태계의 원리다. 몽골초원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늑대는 자신들보다 아래쪽에 위치한 동물들의 개체수를 조절함으로써 초원의 황폐화를 막아주고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늑대는 인간의 적이 아니라 우호적인 협력자인 셈이다. 그 뿐 아니라 그의 강인하고 지혜로운 생태적 습성을 본받은 종족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우세한 삶을 이루어 왔음을 역사는 입증해 주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늑대를 멸종시키지 않고 적정한 선에서 유지하기 위해 늑대토템의 신앙을 지속시켜 온 초원민족은 얼마나 지혜로운가. 초원에서 열심히 살다가 죽은 인간의 시신이 초원늑대에 의해 해체되고, 남은 영혼이 텡그리로 올라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는 믿음의 체계야말로 또한 얼마나 합리적인가.

생물학자 헤켈(E. Haeckel)의 말대로 진화론자 다윈이 제시한 생존경쟁의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복합적인 상관관계들을 연구하는 학문이 생태학이라면, 초원에서 형성된 늑대 등 다양한 동물들과 인간의 복합적인 상관관계, 혹은 조화로운 공존이야말로 세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유지해야 할 생태적 메커니즘이 아닌가.

풀밭 속에서 10여년의 시간을 험한 늑대와 뒹굴고, 그 기간을 포함하여 30여년을 소모하여 늑대 생태의 바이블을 완성해낸 작가 장룽이야말로 생태계의 건강한 유지와 보호가 인간의 지속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전제조건임을 몸으로 보여준 위대한 선각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장룽 지음, 송하진 역, 󰡔늑대토템 12󰡕, 김영사, 2015. 11.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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