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학술문2021. 11. 18. 21:22
                                                                                           

                                                시사IN 740호[2021. 11. 23.]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인공지능 분야 최정상에 오른 조경현 교수는 인공지능의 편향과 사회적 영향에 목소리를 내고 다양성을 강조한다. “인간의 나쁜 면과 기술은 같이 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인공지능 분야 차세대 톱스타로 꼽히는 조경현 뉴욕 대학 컴퓨터과학과 교수.ⓒ시사IN 조남진

 

인공지능의 세계적 권위자들이 나란히 손에 꼽는 차세대 톱스타는 1985년생인 조경현 뉴욕 대학 컴퓨터과학과 교수다. 그는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 대학 교수와 ‘신경망 기계번역’을 고안해 인공지능 번역의 혁신을 이끈 인물이다. 그가 만든 ‘어텐션(attention·집중)’ 메커니즘은 GPT-3를 비롯한 초거대 인공지능의 기반 기술이 되었다.

 

지난 6월 삼성 호암상 공학상을 수상한 그는 상금 3억원 중 1억원을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는 여자 학생’을 위해 써달라며 모교인 카이스트에 기부했다.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교사 일을 그만둔 어머니의 이름을 딴 ‘임미숙 장학금’이다. 1억원은 인문학 연구를 위해 백규고전학술상에, 3만 유로(약 4000만원)는 비유럽 국가에서 온 컴퓨터과학 전공 여자 학생에게 써달라며 자신이 유학한 핀란드 알토 대학에 기부했다.

그가 여성 과학자 양성을 위해 상금을 기부하는 일은 이미 유명하다. 남성이 대부분인 이 분야에서, 그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조카가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여성 AI 과학자가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호암상 수상 연설에서는 “제 공부 및 연구 경력에는 ‘우연’과 ‘운’이 많이 작용했다”라고 말했다. 카이스트에서 같이 강의를 듣던 선배가 핀란드 알토 대학 머신러닝(기계학습) 석사과정 팸플릿을 우연히 전달해줘서 인공지능을 공부했고, 역시 우연히 신경망 연구 그룹에 배정됐으며, 학회 아침식사에서 요슈아 벤지오 교수 옆자리에 앉은 인연으로 그와 함께 연구한 데다, 연구 주제로 생소했던 기계번역을 선택한 것 모두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이다.

궁금했다. 세계 레벨에서 최정상에 오른 그는 왜 자신의 커리어를 ‘운’이라 말하나. 인공지능 연구의 최전선에서 오히려 인공지능의 편향과 사회적 영향에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양성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친구들과 놀러 나가고 맥주 마시는 데서 즐거움을 얻으며, 최근에는 〈오징어 게임〉도 한번에 다 봤다는 조경현 교수를 화상 앱 ‘줌’으로 90분간 만났다.

 

조경현 교수와 함께 ‘신경망 기계번역’을 고안한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 대학 교수.ⓒAP Photo

 

GPT-3의 등장을 어떻게 보셨나요?

 

사실 이렇게 대중적으로 크게 관심이 있을 줄은 예상 못했어요.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 기술은 굉장히 조금씩 발전해요. 하루아침에 뭐가 확 바뀌는 건 별로 없고요. GPT-3에서 쓰는 알고리즘 자체는 나온 지 꽤 오래됐어요. 다만 이걸 그동안 상상하지 못한 스케일과 엄청나게 많은 양의 데이터로 훈련시켰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GPT-3가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죠.

 

GPT-3는 ‘파라미터(parameter· 매개변수)’를 1750억 개 갖췄다고 합니다. 기존 GPT-2의 100배라는데, 이게 커졌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너무 좋은 질문인데요.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앱스토어 들어가서 앱을 설치할 때 용량이 나오잖아요. 어떻게 보면 용량과 파라미터 개수는 같은 거거든요. (딥러닝이 사용하는) 신경망이나 AI 시스템이 다 소프트웨어니까, 파라미터 개수는 프로그램의 사이즈와 같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이게 크면 좀 더 뭘 많이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죠.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답했을 때의 문제점은 언제나 이게 틀린다는 건데요(웃음). 사실 파라미터의 개수를 세는 거 자체가 연구 주제입니다. 그걸 어떻게 정의하고, 세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가 않아서요.

 

무슨 뜻인가요?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기자 두 명이 썼는데 길이가 다르다고 해보죠. 그렇다면 과연 기사의 길이를 글자 수로 세는 게 맞는지, 아니면 실제 기사 안에 담긴 내용의 양을 세는 게 맞는지 생각해볼 수 있겠죠. 어떤 사람은 글을 간결하게 잘 써서 똑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데도 짧게 쓰는 반면, 주저리주저리 늘려 쓰는 사람도 있잖아요. 신경망이나 소프트웨어도, 똑같은 걸 배우는 데 파라미터가 굉장히 많이 쓰일 수도 있고 적게 쓰일 수도 있어요. 용량이 큰데 아무것도 못하는 프로그램을 짜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GPT-3가 교수님에 대해 “바둑 챔피언이었다가 구글 딥마인드의 머신러닝 연구자가 되었다”라고 틀린 주장을 한 게 떠오르네요.

 

네, 봤어요(웃음). 어떻게 보면 놀랍고, 다르게 보면 놀랍지 않은 일이에요. 사실 저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꽤 ‘그럴싸한’ 답이었잖아요. 근데 문제를 푼다는 건 원래 그런 거거든요. 학습 중에 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 답을 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좀 지어내야 해요. 전에 봤던 걸 그럴듯하게 조합하는 거죠. 그럼 지금까지 없던 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과연 이게 맞는 답인지 알기 힘들다는 게 문제입니다. 재밌는 게, 이 답을 생성한 신경망에게 물으면 당연히 맞는다고 할 거거든요. 그게 아니었다면 답을 안 했겠죠. 이렇다 보니 인공지능의 답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할 수 있고 그러려면 뭐가 필요한지 질문이 생기고,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GPT-3가 이른바 ‘인공 일반지능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의 시초이거나 적어도 포문을 열었다는 평가도 있는데요.

 

그래요? 하하하. 제 생각에 그건 비약이 큰 것 같은데요. 대체 AGI가 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거의 철학이나 종교에 가까워서, 그렇게 정의가 안 되어 있는 용어로는 무슨 얘길 할 수가 없습니다. 지능이란 것도 과연 어디에서 선을 그을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사람이 지능이 있냐, 없냐 하면 대부분 있다고 하겠죠. 유인원의 경우도 대부분 있다고 하고요. 아무래도 똑똑하잖아요. 사자나 호랑이, 개와 고양이는 지능이 있나 하면 또 있는 것 같죠. 조금 더 가서 벌을 생각해보면, 기억력이 좋아서 몇십㎞ 밖에 있는 꽃을 보고 돌아와서 다른 벌들을 다 데리고 가니 똑똑한 것 같고요. 그럼 지렁이는? 땅속에 있다가 비가 오고 습해진 걸 느끼면 올라가요. 이런 걸 보면 조금 똑똑한 거 같고. 만약 주위의 자극에 반응해 몸을 움직이는 게 지능의 일부라면, 사람은 호랑이·사자·개·고양이에 비해 떨어지죠. 벌이 수십㎞ 길을 외우는 것도 사람은 못하고요. 이렇게 보면 지능이란 ‘있다, 없다’라기보다는 스펙트럼에 가깝습니다. 다방면에 걸쳐 있죠.

 

6월24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조경현 교수 발전기금 감사패 전달식. 미국에 있는 조 교수를 대신해 어머니 임미숙씨(가운데)와 아버지 조규익씨(오른쪽)가 대신 참석했다.ⓒKAIST 제공
 

GPT-3는 어디쯤일까요?

 

짧게 질문했을 때 그 뒤를 어떻게 이어야 하는지 답하는 걸 보면, 확실히 언어 면에선 어떤 동물보다도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반면 이미지나 비디오를 보는 건 못하니, 이쪽은 어떤 동물보다도 못한 것 같고요. 롱 텀 메모리(장기 기억)도 없죠. 그렇다면 과연 GPT-3라는 게 (지능의 다방면 중에) 어디에 위치하는지, 나아가서 AGI가 대체 이 큰 면의 어디에 있는 건지 알아야 GPT-3가 AGI에 가까이 간 건지 멀리 떨어진 건지 알 수 있는데 그게 전혀 정의가 안 되어 있잖아요. 그렇게 보면 GPT-3가 AGI의 포문을 열었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네요. 답이 아닌 답이네요(웃음).

 

오픈 AI가 올해 1월 내놓은 DALL-E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이미지를 생성합니다. 인공지능이 어디쯤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인간 같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은 맞지 않나요?

 

졸업 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는 제 박사과정 학생이 2015년에 쓴 논문이, 설명이 주어졌을 때 이미지를 생성하는 거였어요.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하면 파란 바탕에 비행기 모양이 나오는. 물론 지금은 퀄리티가 굉장히 좋아졌죠. 그럼 여기서 질문은, 과연 이미지나 텍스트를 생성하는 퀄리티만 높이면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지능이라는 게 올라가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것도 해야 하는지인데, 그건 사실 알기 힘들죠.

 

한국에서는 ‘이루다’라는 이름의 AI 챗봇이 성소수자나 흑인을 혐오하는 발언을 하고, 이용자들이 챗봇을 상대로 성희롱을 했으며, 업체가 연인들의 카카오톡 대화를 설명 없이 수집해 20여 일 만에 서비스가 중단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회사에서 굉장히 실수한 거죠. 아무리 그래도 프라이버시에 대해 조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고요. 얼마 전 뉴스를 보니 한국 법무부에서 내·외국인 출입국 얼굴 사진을 사기업에 넘겼다는데 기업 이름도 안 나오고… 제 것도 다 들어가 있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큰 이슈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사후관리가 거의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그런데 이 분야가 좀 그렇습니다. 항공이나 조선 엔지니어링은 갑자기 비행기나 배를 만들어서 띄우기 어려운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은 뭘 새로 만들기가 쉬워요. 그냥 랩톱에 앉아서 알고리즘을 짤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사용할 때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일단 만들고 반응을 보자’는 식이죠.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서는 네트워크 효과가 크니까, 시스템을 만들 때의 결과를 상상해보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사용자들이 이렇게 쓰면 어떡하지’, ‘이런 질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답할까’ 몇 번 더 생각해봤어야 하는데 (이루다 운영사 스캐터랩이) 그러지 못한 게 아닐까 싶네요. 저도 교수이지만 이건 우리 교육하는 사람들의 실책이 아닌가 합니다.

 

인천공항 입국장(위). 지난해 법무부는 ‘인공지능 식별추적시스템 구축 사업’을 위해 내·외국인 출입국 얼굴 사진을 관련 업체에 넘겼다.ⓒ시사IN 이명익
 

인간이 차별이나 혐오를 하는 이상, 기술로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인간의 나쁜 면과 기술은 전혀 같이 갈 이유가 없습니다. AI라고 해서 뭔가 특이한 것 같지만 다 소프트웨어이고 알고리즘을 짜는 건데, 만약 사람이 만든 데이터에 나쁜 것들이 들어 있었고, 알고리즘은 구분을 못하니까 뭔가 나쁜 걸 내놓는다면, 그냥 그걸 안 써야 되는 것 아닌가요? 알고리즘이 그렇게 나쁜 것이라면요. 사회가 잘못된 건 잘못된 거지, 그걸 데이터로 입력해서 잘못된 편견을 더욱 재생산하는 기술을 만든다고요? 두 번째 것은 그냥 잘못된 거 같은데요.

 

기술이 사회를 반영할 뿐 아니라, 사회에 있는 편향을 증폭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

 

좀 완벽하지가 않습니다, 저희가 쓰는 알고리즘들이. 세상에는 명확한 답이 있지만 정보를 완벽하게 갖고 있지 못해서 답을 알 수 없는 문제가 있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경우에도 우리는 보통 알고리즘에게 답을 달라고 하거든요. 이때 알고리즘은 A와 B 중에 조금이라도 A가 답일 것 같으면 A만을 답으로 내놓습니다. A와 B를 같이 주는 게 아니라요. 그러다 보면 잘못된 답이 갑자기 맞는 답처럼 보이기 시작하죠. 알고리즘이 답을 모르겠다거나, 정보가 부족하니 더 가져오라거나, 정확한 확률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이 세 가지가 다 안 되니까요. 여기에 알고리즘을 배포하고 나면 사회에서 만드는 데이터들이 다시 알고리즘에 들어가고, 그걸 알고리즘이 학습하다 보니 좋지 않은 ‘되먹임 고리(feed back loop·원인과 결과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강화되는 것)’가 생길 수 있죠. 그래서 잘못된 답이 증폭되면 쉽게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공기업 등 채용에서 AI 면접이 쓰입니다. 이를 두고 “혹시 본인의 자녀가 어린 시절 잠깐 강남이 아닌 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바람에 AI 인터뷰에서 자동적으로 떨어진 건 아닐까요?”라고 블로그에 썼는데요.

 

보통 AI라고 하면 가벼운 예제를 생각해요. 프로야구에 대해 질문하면 답변해준다든지, 넷플릭스에서 다음에 볼 영화를 추천해준다든지. 실제로는 필수적인 절차에 AI가 쓰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채용 같은 경우 한번 잘못되면 사람들이 몇 년 고생한 게 날아갈 수도 있죠. 극단적으로는 드론처럼 전쟁에서 쓰이는 무기가 한번 실수하면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고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 정치적 견해를 양극화하는 게 아닌지 전 세계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간단해 보이는 알고리즘이 한번 쓰이고, 뭔가 잘못된 걸 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9년 12월12일 서울 세종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공공연구기관 기술이전 성과확산대전 2019’에서 구직자가 AI 면접을 체험하고 있다.ⓒ연합뉴스
 

예를 들면 채용 면접에 AI를 쓸 경우 사회적 합의나 안전장치가 많이 필요한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AI를 썼을 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입니다. 이 시스템을 구현했을 때 얼마나 투명성이 있는지도 중요하고요. 이 두 가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고, 규제나 감리 등 많은 체계가 필요합니다. 기록을 어떤 방식으로 남겨놓을 것이며, 결정을 누가 언제 내릴 건지도 생각해야 하죠. 그냥 ‘여기 AI 알고리즘이 있네, 한번 써보자’ 하기엔 문제가 많습니다.

 

미국에서도 알고리즘이 얼굴 인식을 잘못해서 무고한 흑인이 체포된 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문제가 그런 알고리즘들이 쓰이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쓰이고 있었던 점입니다. 대체 어떤 회사가 공급을 하는지도 한참 동안 몰랐고요. 회사를 찾아봤는데 어디 존재하는지도, 어떤 데이터를 썼는지도 알 수 없었죠. 그런 걸 법원이며 경찰이며 다 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말 그대로 흑인이면 범인일 확률이 더 높게 나오는 식이었고요. 심지어 이런 걸 쓰지 못하게 누구한테 얘기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이게 어떤 소프트웨어이고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르고,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못하고, 규제도 감사도 할 수 없었어요. 이러면 사실 알고리즘을 쓸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인공지능의 편향과 사회적 영향에 관심이 많은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저도 별로 크게 생각을 안 했는데, 팀닛 게브루(구글 AI 윤리조직을 이끌다 지난해 말 대규모 언어모델을 비판한 논문을 계기로 해고되었다고 알려진 에티오피아계 미국인 여성 연구자)가 2015년인가 뉴립스 학회(인공지능 분야의 대표적 글로벌 학회)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어요. 그러면서 ‘여기에 2000~3000명이 왔는데 흑인 연구자가 3~4명밖에 없고, 여자 연구자도 거의 없다’고 썼더라고요. 저도 거기 있었거든요. 보는 순간에 ‘어 그러네, 이거 좀 이상하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카이스트 전산과 다닐 때 같은 학년에 전산과 선택한 친구들이 60여 명이었는데, 여학생이 한 3명 있었던 것 같아요. 핀란드에서 머신러닝 석사 할 때도 여학생들은 한 10~15%밖에 안 되었고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할 때도 40~50명 중에 여자는 4~5명 정도였거든요. 뭔가 이상하죠. 그럴 이유는 딱히 없는 거 같은데. 좀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진화가 뭐 어떻게 되어서 여자는 컴퓨터 과학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데, 아니 컴퓨터가 생긴 지 60년밖에 안 되었는데 진화란 게 무슨 상관인지(웃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런 게 어딨어요.

 

인공지능 연구자나 개발자의 다양성이 왜 중요한가요?

 

어떤 분야든 다양성은 중요합니다. 특히 직접적으로 사회에 배포되어 쓰일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든다면요. 어떤 알고리즘을 배포했을 때 이게 어떤 식으로 쓰일지, 어떤 그룹에겐 결과가 긍정적이고 다른 그룹에겐 부정적일지 많이 상상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모두가 다 똑같은 학교를 나오고 똑같은 배경을 가졌다면 그런 상상을 하기가 힘들죠. 게다가 인공지능은 하나의 상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쓰일 수 있는 알고리즘이다 보니 다양성이 정말 중요한데, 아직은 안타깝게도 많이 부족합니다. 제 연구실만 봐도 여자 학생은 거의 없고, 흑인 학생도 한 명도 없어요. 남미 출신이 한 명 있었는데 졸업했고요. 조금씩 바꿔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겠죠.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상금을 기부하는 이유를 언급하며 “실제 능력 차이보다 아웃풋(결과) 차이가 작은 게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단 이 사람의 능력이 저 사람보다 더 좋다, 안 좋다 얘기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보통, 능력이라는 게 사회적인 프록시(대용물)를 써서 재는 거잖아요. 대학 입학시험을 잘 봤는지, 어느 회사에 입사했는지, 연봉이 얼만지, 사는 데가 어딘지 애들이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이런 걸 써서 ‘저 사람은 능력이 좋은가 보다’ 하고 사람들이 생각하죠. 그러다 보면 실제로 능력이 있는데도 사회적인 영향 때문에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고, 능력이 없는데도 운이 좋아서, 혹은 태어나길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죠. 그렇다면 사회의 역할은, 이런 노이즈(왜곡)를 최대한 막아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개개인의 능력 차이라는 게 그렇게 어마어마하지 않을 거거든요, 아무리 봐도.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웃음). 심지어는 능력을 완벽하게 측정할 수 있다고 해보죠. 능력 있는 사람은 더 잘살고 능력 없는 사람은 못살면 그게 그냥 정글이죠. 우리가 사회를 만든 목적은 태어날 때의 능력을 떠나서 모두가 더 잘될 수 있게 하는 것 아닌가요? 저희 통계에서 쓰는 말로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배리언스(variance·분산, 어떤 대상의 흩어진 정도)는 줄이고 애버리지(average·평균)는 높여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구글 AI 윤리조직을 이끌다 대규모 언어모델을 비판한 논문을 계기로 해고된 것으로 알려진 팀닛 게브루.ⓒThe New York Times
 

본인도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던데.

 

실제로 운이 좋았습니다. 해외에서 몇 년 살다 보니까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는데, 한국에서 태어난 것도 운이 아주 좋았고요. 서울에서 계속 커온 것도 운이 좋았어요. 학교도 좋은 학교를 다녔죠. 카이스트도 다니고, 고등학교는 일반고였지만 집에서 가깝고 선생님도 좋았습니다. 다 너무 운이 좋았던 것 같은데요(웃음).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공포가 뿌리 깊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지금껏 아무것도 못하다가 이제 조금 하기 시작했는데 뭐가 잘 되었는지 생각해보죠. 사진을 보여주면 대상이 뭔지 알려주긴 하지만 비디오는 잘 못해요. 음성인식은 요새 잘 되지만 좀 시끄러운 데선 잘 안 되고요. 기계번역도 예전보단 낫지만 전문적인 목적으로는 힘들죠. GPT-3의 질문과 답변은 중·고등학생 정도인데, 실제로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아직 인공지능과는 차이가 크지 않나요? 짧은 기사야 GPT-3가 쓰겠지만 요새 〈월스트리트저널〉이 쓰는 페이스북 탐사보도는 절대 못 쓸 거거든요. 〈조선왕조실록〉을 기계번역으로 영어로 옮기는 것도, 파티장에서 잘 작동하는 바텐더 로봇을 만드는 것도 아직 어렵습니다. 일부 일자리가 대체되는 건 있겠지만 아직 그렇게 대규모로 대체되거나 하진 않을 거라 봅니다. 물론 5년 지났을 때 실제로 어떨지는 정확히 알기가 힘드네요.

 

인공지능이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보나요?

 

아무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 특정한 일자리가 대체된다면 그 대체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불평등한 상황에 처하게 되겠죠. 불평등이라는 건 인공지능이라서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모두에게 동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상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은 모두가 일자리 대체를 걱정할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미리 준비를 해야죠. 나중에 10년 후가 되었든 20년 후가 되었든 갑자기 기계가 일자리를 다 대체한다고 했을 때 잃어버린 소득을 보장해줄 건지, 해준다면 어느 수준으로 할지, 그 안에서 차등을 둘 건지 아닌지 얘기를 많이 해봐야겠죠. 앤드루 양이 ‘유니버설 베이직 인컴(보편적 기본소득)’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대로 보지 못해서요. 최근 저서 〈포워드〉에서 그 얘길 많이 했다는데 시간 내서 읽어봐야겠네요.

 

인문학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조한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과학은 우주에 있는 것들을 다뤄요. 컴퓨터과학이나 인공지능이 마치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것 같아도, 계산이라는 게 다 어쨌든 우주 안에 있는 걸 어떻게 붙여서 쓰느냐의 문제니까요. 그런데 인문학은 그야말로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고 할까요. 인간이 지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의 끝은 어디인지 계속 밀어붙여보는 일에 가깝죠. 그러다 보면 말도 안 되는 게 나올 수도 있는데, 이런 건 당장의 비즈니스엔 도움이 되기 어렵죠. 인공지능 연구야 기업들이 필요하다면 자기들 돈을 많이 쓰겠지만요. 그런 면에서 인문학을 사회적으로 좀 더 서포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까 얘기랑 비슷한데, 학문 분야 간 차이도 줄여주는 게 결국은 사회의 역할 아닌가 싶네요.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21. 7. 3. 22:38

 

 

미국 뉴욕대 근처 워싱턴 스웨어 아치 앞에 조경현 교수가 섰다. 핀란드와 캐나다를 거쳐 뉴욕으로 온 이 한국 젊은이는 지금 세계 인공 지능 학계의 주목을 받는 스타다. 조 교수는 말하기를 "AI는 만능도, 마법도 아니다" 라며 "세상을 한번에 바꾸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라고 했다. 사진에 프로그래밍 언어 이미지를 합성했다. 사진작가 서승재, 그래픽 김현국

 

 

2019년 '삼성 AI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조경현 교수/삼성전자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김미리 기자의 1미리]

 

호암상 받은 36세 인공지능 석학

조경현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김미리 기자/입력 2021.07.03. 03:00]

 

2008년 가을 KAIST(한국과학기술원) 대덕 캠퍼스. 졸업으로 직진하는 대부분의 KAIST 천재와는 달리 7년째 학부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전산학과 ’02학번' 학생이 있었다. 유일한 목표는 무사히 졸업하는 것. 학점 따기 쉬운 1학년 교양과목을 집중 공략해 강의실 뒷자리를 지켰다. 하루는 선배가 학과 사무실에서 가져온 팸플릿을 건넸다. 핀란드 알토대 ‘인공 지능(AI)’ 석사과정 프로그램 모집 공지였다. 미래가 희미했던 공학도는 이듬해 무작정 핀란드로 떠났다.

 

13년 전 졸업을 걱정했던 그 청춘이 지난달 모교 KAIST 전산학과에 1억원을 쾌척했다. 장학금 이름은 ‘임미숙 장학금’, 지원 대상은 여학생이었다. 그렇다면 그 졸업생이 임미숙이냐고? 아니다. 임미숙은 기부자의 어머니다.

 

자기 이름 대신 어머니 이름 석 자를 내걸며 “여성 공학도를 지원하겠다”고 한 주인공은 30대 남자 공학자다. 세계적 AI 석학으로 꼽히는 조경현(36)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인공 지능 번역’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가 스물아홉 살이던 2014년,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와 함께 발표한 ‘신경망 기계 번역’ 개념은 기존 기계 번역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버렸다. 구글 번역기 등 대부분 번역기가 이 개념을 활용한 것이다.

 

이 천재 공학자에게 쏠린 관심은 뜨겁다. 2015년 뉴욕대 교수로 임용된 지 4년 만에 종신 교수가 됐고, 작년까지 페이스북에서 연구 과학자로도 일했다. 구글, 아마존 등 굴지의 글로벌 IT 기업이 그의 연구를 후원했다. 네이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기업의 자문도 맡고 있다. 얼마 전엔 국내 최고 권위 학술상인 ‘삼성호암상’ 공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은 타는 족족 기부하고, 남성 공학자이지만 여성 공학자 육성을 누구보다 강조한다. 최첨단 AI 전문가인데 정작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분야는 인문학이라고 역설한다. 뉴욕에 있는 괴짜 공학자를 화상 앱 ‘줌’으로 만났다.

 

 

◇AI 전설 삼인방이 인정한 ‘천재’

 

AI ‘딥 러닝(컴퓨터가 방대한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규칙을 찾아내는 기술)’ 분야에서 ‘3대 전설’로 꼽히는 이들이 있다. 제프리 힌턴(구글 석학 연구원)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얀 르쾽(페이스북 수석 AI 엔지니어) 뉴욕대 교수. 2018년 ‘컴퓨터 과학계의 노벨상’으로 꼽히는 ‘튜링상’을 공동으로 받은 이 삼인방이 공통으로 꼽는 이 분야 차세대 스타가 조경현 교수다.

 

–천재들한테 천재로 인정받은 셈 아닌가요.

 

“스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세 분 다 이 분야에서 매우 유명하신 분이죠. 모두 친분이 있고요. 벤지오 교수 연구실에선 박사 후 과정(포스트닥터)을 했고, 얀 르쾽 교수는 뉴욕대 동료입니다.” 2017년 블룸버그가 선정한 ‘2018년에 주목할 인물 50인’ 명단에 올랐을 때, 그를 추천한 이는 ‘딥 러닝의 아버지’라는 힌턴 교수였다.

 

–교수님이 고안한 ‘신경망 기계 번역’은 어떤 개념인지요.

 

“기존 기계 번역은 원문과 번역본 사이에서 ‘단어’가 어떻게 번역됐는지 보고,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번역하는 시스템이었어요. 단어와 어순이 비슷한 언어끼리는 번역이 잘되는데, 한국어·영어처럼 완전히 다른 언어끼리는 엉터리 번역이 많았죠. ‘신경망 기계 번역’은 딥 러닝을 적용해 문장의 ‘맥락’을 파악해 번역하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과거엔 ‘나 말리지 마’란 문장을 번역기에 돌리면 ‘Don’t dry me’가 나왔지만, 요즘은 ‘Don’t stop me’가 나온다. AI가 접목된 결과인데, 그 핵심 기술이 조 교수가 고안한 개념에서 나왔다.

 

–'번역'에 왜 관심이 많은가요?

 

“10년 넘게 헬싱키, 몬트리올, 뉴욕에서 살며 번역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그리고 인터넷 세상에선 번역이 더 중요해요. 온라인 콘텐츠의 60%가 영어, 나머지 40%가 중국어·아랍어·불어 등으로 돼 있다고 해요. 영어 편중이 너무 심하죠.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3억명 가까운데 인도네시아어로 된 콘텐츠는 거의 없어요. AI 번역이 잘되면 이런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고, 디지털 장벽도 확 낮출 수 있어요.”

 

–곧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올까요?

 

“안타깝지만, 한참 걸릴 겁니다. AI는 만능도, 마법도 아닙니다.”

 

 

자택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조경현 / 사진작가 서승재

 

 

◇넥타이 못 매도 AI 알고리즘은 뚝딱

 

–호암재단 관계자가 공식 자료용으로 넥타이 맨 사진을 요청했더니 교수님이 넥타이를 못 맨다고 했다고요? 담당자가 “그 복잡한 알고리즘을 짜는 분이 넥타이를 못 맨다니 안 믿긴다”면서 웃더군요.

 

“교복 입을 때 지퍼로 된 넥타이 맨 거 빼고 넥타이 맬 일이 거의 없었어요. 안 해본 건 잘 못 해서…. 담당자가 유튜브로 넥타이 매는 법 영상까지 보내주셨는데 포기했어요(웃음).”

 

–'링크트인'(인맥 전문 소셜미디어)에서 한 지인이 “조경현만큼 똑똑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같이 일하면 명석함과 통찰력에 놀랄 뿐만 아니라, 유머로 동료를 무장해제시키는 재주가 있다”고 평한 걸 봤습니다.

 

“굳이 재미없고 딱딱하게 일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사람처럼 웃고 농담하는 생명체는 없어요. AI가 아직 사람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영역이기도 하고요. 유머는 창의력이 있어야 나오는데 AI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창의력입니다.”

 

–비과학고 출신으로 KAIST에 들어갔다고요?

 

“사촌 형이 KAIST에 다니고 있어 그런 학교가 있다는 건 알았어요. 고2(서울 경문고) 때 대학 입시를 생각하다가 KAIST를 찾아봤더니 일반고 2학년까지만 마치고도 갈 수 있더라고요. 빨리 대학에 가고 싶어 시험 삼아 지원했는데 운 좋게 붙었어요. 저처럼 일반고 2학년을 마치고 들어온 친구들이 만든 ‘2막 1장’이란 모임이 있었는데 열 명 정도밖에 안 됐어요. 어릴 때부터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준비한 과학고 출신과 같이 공부하려다 보니 1~2년은 엄청 헤맸죠. 방황하다 휴학도 하고,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고 오니 동기들은 거의 졸업을 했더라고요.”

 

–인공 지능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습니까.

 

“학부 땐 인공 지능 관련 정규 수업이 아예 없었어요. 특강을 들은 적이 있는데, 너무 어려워 이런 걸 어떻게 배우나 싶었습니다.”

 

 

–결국 선배가 가져다준 알토대 AI 석사과정 팸플릿이 운명을 바꿨군요.

 

“아직도 생각나요. 노란색 팸플릿. 얼마나 조악했는지. 이렇게 내 인생을 바꿀 줄 알았다면 보관하고 있을걸!”

 

–주로 미국으로 유학을 많이 가던데 굳이 핀란드를 택한 이유라도.

 

“미국으로 유학 가려면 GRE 점수가 필요한데 막판에 졸업 학점 채우느라 한 학기에 24학점씩 몰아서 들었어요. GRE고 뭐고 준비할 시간이 없었어요(웃음). 알토대 프로그램이 마침 영어로 하는 프로그램인 데다 학비가 공짜였고, 유럽에 대한 동경도 있었어요. 가보니 한국에선 모든 뉴스의 중심이 미국, 중국, 일본이었는데, 거기선 러시아, 발트 3국 같은 나라 뉴스가 계속 나왔어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핀란드에서 한 AI 연구는 어땠습니까.

 

“신입생에게 무작위로 연구실을 배정했는데, ‘인공 신경망’(인간의 신경 세포 구조를 본떠 만든 기계 학습 모델)을 다루는 연구실에 당첨됐어요. 처음 들어본 개념이라 이해는 안 됐지만, 다른 사람이 연구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굉장히 신났지요. 딥 러닝, 머신 러닝(기계 학습) 같은 개념이 지금만큼 뜨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엄청난 연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 없이 즐겁게 석·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캐나다로 건너갔지요?

 

“대학원 생활 막바지에 AI 구루들이 ‘아이클리어’라는 인공 지능 학회를 만들어 미국 애리조나에서 행사를 했어요. 핀란드에서 돌아갔는데 어찌나 멀던지. 학회 첫날 아침 식사 때 옆자리 분과 대화를 했는데, 그분이 저명한 벤지오 교수였어요. 그 인연으로 몬트리올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했고요. 정말 제가 지금까지 온 데는 ‘우연’과 ‘운’이 참 많이 작용했네요.”

 

 

맨해튼의 거리를 걸어가는 조경현 / 사진작가 서승재

 

◇AI 분야 남자 일색… 불평등 깨려 여자 공학도 지원

 

조 교수는 젊은 나이인데도 줄기차게 기부를 해왔다. 지난해 11월 ‘삼성 AI 연구자상’을 받고 상금 전액을 몬트리올대에 기부했다. 네이버, SK텔레콤 등 국내 기업체 강의료도 받는 족족 내놓았다.

 

–블로그에 이번 호암상 상금 3억원 기부 계획을 밝혔더군요.

 

“재단에서 세금 떼고 바로 계좌로 입금해주시더라고요. 수중에 이렇게 많은 돈이, 그것도 현금으로 들어오다니! 계획에 없던 돈이 생긴 거라, 제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쓸 데도 없었고요. 맨해튼 사니까 자가용 살 필요도 없고, 팬데믹 시대니 고급 휴양지 갈 일도 없고(웃음).”

 

–상금에 전혀 미련이 없을 만큼 많이 부유한가요?

 

“부자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받는 월급이면 저 혼자 충분히 삽니다. 학계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어요. 초반 운이 어쩌다 좋아 기회를 잡으면 그걸 기반으로 점점 더 좋은 일자리를 찾게 되고, 실력이 있어도 타이밍이 안 좋아 기회를 못 잡으면 점점 더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저는 운 좋게도 전자였고요. 실제 능력 차이보다 아웃풋(결과) 차이가 작은 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불평등을 일정 부분 완화해주는 쿠션 역할을 해야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기회 불평등 때문에 실제 능력 차이보다 아웃풋 차이가 더 나요. 형편이 되는 한, 형평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호암상 상금으로 지금까지 세 가지 기부를 했다. 석·박사를 한 알토대에 3만유로(약 4000만원), 모교 KAIST에 1억원, 한국 고전 연구자를 위한 ‘백규 고전 학술상’ 제정에 1억원을 기부했다.

 

–알토대나 그 이전 몬트리올대 기부를 보면 대상이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는 신입 여자 유학생’이더군요.

 

“우선 유학생으로 사는 게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많아요. 언제든 이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사는 임시 거주자인 데다 계좌 잔액을 계속 신경 써야 해요. 유명한 관광지가 널렸는데, 부모님 오실 때나 겨우 가봅니다. 침대 틀 없이 매트리스만 깔고 지내는 경우도 많고요. 저는 아주 쪼들리지 않았는데도 늘 이케아 제일 싼 침대만 썼어요. 서울 부모님 집을 떠난 후 얼마 전까지 소파도 없었고요. 팬데믹이 길어져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지난겨울 해외 생활 처음으로 소파를 하나 장만했죠.”

 

–여학생만 후원하는 것도 특이합니다.

 

“KAIST 전산학과 때 동기 60~70명 중 여자가 너덧 명밖에 없었어요.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컴퓨터과학 분야엔 젠더(性) 불균형이 심각합니다. 그런데 AI에서는 ‘젠더 균형’이 더 중요해요. AI는 간단히 말하면 알고리즘 안에 데이터를 넣어서 학습하는 건데, 이 데이터가 젠더·지역 등 여러 측면에서 대표성(representation)을 갖는가가 중요합니다. 편향된 데이터는 알고리즘을 반복해 거치면서 편향성이 증폭돼요. 여성과 소수 집단이 배제되면 점점 더 배제되는 거지요. 이런 문제를 보완해 나가야 하는데, 연구자 대부분이 남성이에요. 그들 눈엔 이런 편향이 잘 안 보여요. 그래서 ‘다양성’을 높이는 게 무척 중요해요.” 그는 ‘증폭(amplification)’과 ‘데이터 편향(bias of data)’ 문제가 요즘 인공 지능에서 굉장히 중요한 화두라고 했다.

 

–금액을 보니, 1인당 1000달러(약 112만원) 정도를 여럿에게 나눠 주던데요.

 

“유학생들이 막 입학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 때 숨 돌릴 수 있는 조금의 여유를 준다는 의미예요. 사용처 제한도 없습니다. 친구하고 맥주 마셔도 되고, 근사한 데서 밥 한 끼 먹어도 되고, 넷플릭스 결제를 해도 되고, 아이패드 사도 됩니다. 매트리스만 사지 말고 제대로 된 침대를 사도 좋고요(웃음).”

 

–한국 기업과도 일하는데, 해외 기업과 격차가 있던가요.

 

“연구원 미팅을 주로 하는데, 다들 똑똑하고 열심히 합니다. 다만 차이라면 한국 기업엔 한국 사람만 있다는 것? 다양성을 강화해야 해요. 너무 남성 중심인 것도 문제고요. 한국 유명 IT 기업이 주최한 AI 학회 공지를 봤는데 발표자가 100% 남성이었어요. 그런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편향돼 있다는 걸 몰라요. 불균형을 깨기 위해서라도 여성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봐요.”

 

–AI가 모든 것을 대체하면 어쩌나, 사람 일자리를 위협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어요.

 

“미래 예측은 정말 어려워요. 맹목적으로 예측을 따라가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요. 증기기관, 자동차, 인터넷 등이 나왔을 때 당장엔 영향이 없었지만 몇 십 년 뒤 대중화됐을 땐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AI도 그렇습니다. 당장 이거 큰일 났네 하기보다는 어떤 영향을 줄까 심도 있게 분석하고 부작용을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해야 해요. 기술로 저같이 이득 보는 사람도 있지만, 손해 보는 사람도 있어요. 정책적으로 부작용,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경현이 엄마'로 산 어머니 향한 헌사

 

–KAIST에 어머니 이름으로 기부한 게 화제가 됐어요. 아버지 이름으로 내는 경우는 봤어도, 어머니 이름으로 내는 경우는 거의 못 봤습니다.

 

“부모님이 대학(공주사대 국어교육과) 동기예요. 어머니는 국어 교사였는데 저와 남동생을 낳고 기르느라 일을 관두셨어요. 그 시절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겠지만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어머니 희생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 이름을 넣었어요. 혹시 여자 후배들이 저희 어머니처럼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관둘까 고민하게 된다면, 이 장학금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한번 더 생각해줬으면 하고요. 개인적으론 초등학교 1학년인 여자 조카(영빈)가 나중에 AI 과학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 아이가 롤모델로 삼을 여성 AI 전문가가 나왔으면 합니다.” 장학금은 어머니의 과거, 조카의 미래를 위한 그의 작은 응원이었다. 그는 “그러고 보니 어머니와 조카 생일이 같다”며 웃었다.

 

어머니 임미숙(65)씨는 기자와 한 통화에서 “엄마를 생각하는 고운 맘을 거절하지 않는 것도 부모 역할이라 생각해서 아이 뜻을 따랐는데, 아직도 내 이름을 넣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몸을 낮췄다.

 

조 교수는 장학금을 내며 KAIST 측에 조건 하나를 걸었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과 조 교수 부모님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부친은 조규익(64) 숭실대 국문과 교수다. 그는 “내년이면 아버님이 정년인데 적적하실 것 같다. 부모님이 젊은 세대와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 부탁했다”고 했다.

 

–AI 전문가인데 한국 고전 학술상 제정도 후원했어요. 대척점에 있는 학문 같아 보이는데.

 

“아버지가 고전 문학 전문가입니다. 아버지와 제자들이 지원도 부족한데 수십 년 고군분투하며 연구하는 모습을 봐왔어요. ‘미래가 안 보이는 갑갑한 연구를 어떻게 할까’ 싶은데 돈이 안 될지라도 묵묵히 한 우물 파는 인문학자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고전’ 아들은 ‘AI’라는 전혀 다른 갱도를 파고 있는 듯했지만, 부자(父子)는 ‘언어’라는 공통분모에 뿌리 내리고 있었다.

 

–최첨단 기술을 다루는 전문가인데,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보나요?

 

“어렸을 때 책에 둘러싸여 지냈어요. 소설이든 논픽션이든 작가들이 시대상을 작품에 남기기 때문에 가보지 않고도 그 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게 신기했어요. 현재 고민을 해결하는 지혜를 과거에서 얻기도 하고요. 고전, 인문학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부는 AI 사업 등 과학기술 산업엔 컨소시엄을 만들어 몇 조원씩 지원하면서, 인문학 분야는 거의 지원을 안 합니다. 돈이 되는 분야는 기업들이 알아서 투자해요. 정부는 미래를 위해 기업이 투자하지 않는 분야에 장기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봐요.”

 

그는 “AI 연구를 하면 할수록 과연 ‘지능이란 무엇인가’ ‘이성이란 무엇인가’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인문학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상금 3억원 중 세금까지 떼니 이제 2000만원 정도만 남았다. 그래도 자신을 위해 하나쯤은 하고 싶은 게 있지 않으냐고 묻자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심심하게 사는 사람이에요. 필요한 거라고 해 봐야 맥주 정도? 그건 제 봉급으로 해결할 수 있고요. 10원짜리 하나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다 기부할 거예요. 하하!” 줌 영상 건너, 조 교수의 뉴욕 집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가구 한 점 없이 휑했고, 설거지 거리가 쌓인 싱크대 옆으로 술 몇 병이 달랑 보였다. 가상 세계를 움직이는 서른여섯의 천재 공학자는 이미 물질세계로부터 초탈한 듯했다.♣

 

 

 

=인터뷰 기사를 읽고=

 

 

아들 덕에 며칠 꿈 속 여행을 했다. 발은 땅에 붙어 있으되 머리는 구름에 닿아 있었다. 조선일보의 김미리 기자가 경현이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다며 내게 몇 가지 물어온 날부터 토요일판 조간신문이 발간・배포된 오늘[2021/7/3]까지 마음속에는 갖가지 상념들이 명멸했다. 오늘 아침 조선일보 주말 판 B01면을 가득 채운 경현이의 기사를 접한 나는 그간 숨어 살던 동굴에서 커밍아웃 당한 기분을 느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랬다.

 

첫째, 그간 산발적이고 즉흥적이며 정치적으로 취급되어오던 우리 사회 페미니즘론의 수준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였다. 그는 과학계[아니 거의 모든 분야!]에 여성인력이 소수인 문제적 현실을 강조하며 개선의 당위성을 환기시켰다. 그동안 자신이 받는 상금이나 강연료를 여성들을 위해 기부해옴으로써 여성 진출을 고무시키는 대열의 상징적 기수 역할을 스스로 떠맡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기존의 위선적 페미니즘론이 보다 개선될 가능성을 보여 준 점은 인정할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자신의 모친을 피해자의 사례로 내세움으로써 자신의 부친 역시 반페미니즘 대열의 일원임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지 아니한가.^^

 

둘째,  '인문학 중시'를 표방한 점은 자신의 부친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모친에 대한 배려와 균형을 맞추려는 세심한 마음 씀의 소산일 것이다. 나는 그간 세상이나 가족의 일에 일견 무심한 듯했던 경현이가 부모에 대하여 그런 생각까지 갖고 있으리라는 점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신문 기사를 접한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오거나 문자를 보내오면서 그의 생각이 ‘범상치 않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내가 그동안 그를 매우 무심하게 대해 왔음을 처음으로 고백하고자 한다. 경현이에 대한 지인들의 칭찬을 귓전으로 흘려 들으며, 나는 지난 시간들을 성찰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이가 자라 나름대로 무언가를 성취하기까지도 나는 내 생각과 일에 매몰되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지난 시간들에 대한 상실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걸 눈치 챈 것일까. 그는 인터뷰 후반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멘트를 덧붙였다.

 

“아버지가 고전 문학 전문가입니다. 아버지와 제자들이 지원도 부족한데 수십 년 고군분투하며 연구하는 모습을 봐왔어요. ‘미래가 안 보이는 갑갑한 연구를 어떻게 할까’ 싶은데 돈이 안 될지라도 묵묵히 한 우물 파는 인문학자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 책에 둘러싸여 지냈어요. 소설이든 논픽션이든 작가들이 시대상을 작품에 남기기 때문에 가보지 않고도 그 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게 신기했어요. 현재 고민을 해결하는 지혜를 과거에서 얻기도 하고요. 고전, 인문학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내 성찰의 결과 필연적으로 안게 될 후회나 상실감을 어루만져 주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게 도래할 회한과 미안함을 이런 말들로 조금은 가볍게 해주려는 어른스러움을 발휘한 것이리라. 내 추론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지금부터 나는 더 큰 부채감과 후회의 아픈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잠시 분리되었던 '이상 지향의 머리'와 '현실 집착의 다리'는 시간이 흘러 봉합되었고, 나는 결국 현실과 이성 조합의 시간대로 돌아왔다. 이제 30대 중반의 요량과 기획으로 세상은 분명 변할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매트릭스로 전환되어 나의 사고와 움직임을 조종할 것이다. 관념상으로나마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착각했던 나는 오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시공(時空)으로 이입(移入)하고 있음을, 지금 이 순간 깨닫고 있다. 어쨌든 앞으로 나는 그 시공의 충실한 사역자가 되어야 하리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9. 10. 27. 17:01

 

지금까지 대학으로부터 연구년을 받아 두 차례[1998. 1.~1999. 2./2014. 1.~2014. 8.] 미국에 체류했었다. 첫 연구년은 LG 연암재단 지원의 ‘해외 연구교수’로 UCLA에서, 두 번째는 풀브라이트 재단(Fulbright Foundation) 지원의 ‘풀브라이트 학자(Fulbright Scholar)’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에서 각각 황금 같은 연구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두 곳 모두에서 다수의 교수들과 교유했는데, 그들이 속한 트랙들[tenure track/non-tenure track]에 따라 그들의 심리상태는 두 갈래로 나뉜다는 점을 느꼈다. 말하자면 종신교수(tenured professor)로 승진할 수 있는 테뉴어 트랙 교수와 달리 난테뉴어 트랙 교수는 한시적인 계약 교수들이었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정년직 교수’- ‘비정년직 교수’와 유사해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정년직 교수는 몇 차례의 심사를 거쳐 정년(65세)이 보장되는 반면 비정년직 교수는 몇 년 단위로 계약을 반복하면서 정년까지 가거나 그 전에 그만 두어야 하는 트랙이다.

 

아예 정년이 없는 미국의 종신교수는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다. 건강문제가 생기거나 필요 연금액이 충족되는 등 개인적인 여건에 따라 스스로가 물러날 때를 결정하는 만큼 죽을 때까지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듯하지만, ‘종신직’이란 말 자체가 매우 매력적으로 들리는 건 사실이다. 그러니 그 나라의 테뉴어 트랙은 우리나라의 ‘정년직’과는 분명 차원이 다르다. 물론 미국의 종신 트랙 교수라 할지라도 조교수의 경우는 매년 심사를 받아 6년째에 부교수로 승진하지 못할 경우 1~2년 뒤 학교를 떠나야 한다. 미국 주요 공립대학들의 경우 대략 49%의 교수가 종신교수이거나 종신직군 교수들이며, 사립대학들의 경우 대략 33% 만이 그런 사람들이라고 한다.

 

당시 내가 주로 만난 교수들은 조교수들이었는데, 한 눈 팔 사이 없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늘 무엇엔가 쫓기듯 하는 그들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큰 연구에 몰두하는 건 종신교수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상대적으로 그들은 느긋하여, 여행이나 취미활동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았다. ‘테뉴어를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로 자신에게 부여된 햇수를 헤아리며 초조해 하는 조교수 급 테뉴어 트랙 교수들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 어려움을 현지에서 직접 목격하면서 미국 교수들의 애환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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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대 컴퓨터과학과의 조교수로 있는 큰 아이[조경현]가 영주권과 테뉴어 심사를 동시에 받게 된다는 말을 올해 초에 누군가가 말해 주었으나, 귓전으로 흘려 들은 나였다. 2015년 9월 대학에 부임하면서 미국생활이 시작되었으니 영주권은 물론 테뉴어를 그렇게 일찍 줄 리 만무하다고 생각해온 터여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5월이 되자 영주권이 발급되었고, 대학으로부터는 9월 1일부터 부교수로서 종신교수직이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말하자면 영주권은 미국 입국 3년 반 만에, 종신교수직은 뉴욕대 교수 취임 4년 만에 받게 된 것이었다. 뉴욕을 다녀 온 아내의 말에 의하면, ‘Outstanding Scholar’라는 말이 통지서에 쓰여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영주권과 종신교수직 조기 부여의 사유인 모양이었다. 아버지로서 자식 자랑인 것 같아 좀 뭣하지만, 큰 아이가 전공인 AI(인공지능)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연구 성과를 올리고 있는 만큼, 영주권과 종신교수직을 일찍 부여함으로써 녀석을 잡아두려는 미국 정부와 대학의 정책적 메커니즘이 작동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는 그 어렵게 생각되는 종신교수직을 매우 이른 나이에 받았다. 그의 나이 서른넷이니, 서른여덟에 겨우 정교수(정년보장)에 오른 내 경우를 생각하면 매우 빠른 것이 사실이다. 그로 인해 혹시 그가 나태하거나 자만에 빠질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문득 들었으나, 종신교수가 되고나서도 연구와 발표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일단 안심하기로 한다. 서울대, 카이스트 등 국내 대학들에서 스카웃하려는 여러 제의들도 고사한 채 학문적 성취만을 바라보며 매진하는 그가 대견스럽다. 

 

https://m.youtube.com/watch?v=hJbXEd5gyMk&feature=youtu.be

 

오늘 포탈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녀석이 언급된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그가 현재 뉴욕대 종신교수와 페이스북의 연구원을 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연봉이 10억’이라는 언급은 오보임이 분명하다. 그 스스로 트위터에서 ‘Not at all’이라 답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돈보다는 연구 과제들의 의미 있는 마무리와 발전만이 그의 유일한 관심사인 듯하다. 돈을 헤아리기 시작하면, 연구는 그 순간 정지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시니어 학자인 내 입장에서 미국 유수 대학의 종신교수가 된 그의 연구도정이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길 기대할 뿐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 7. 6. 12:05

 

 

관련 유튜브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z4CNmiLF-YU&feature=youtu.be

 

 

팔불출(八不出)의 변(辯)-학자로 자란 아들을 보며

 

 

누군가는 말했다. ‘저 잘났다 자랑하는 놈, 마누라 자랑하는 놈, 자식 자랑하는 놈, 선조와 부모 자랑하는 놈, 형제 자랑하는 놈, 후배 자랑하는 놈, 돈 자랑하는 놈, 고향 자랑하는 놈을 팔불출(八不出)이라 부른다고. ‘불출이란 사전적으로 못난이란 뜻이지만, 어감(語感) 상으론 엄청 못난 놈쯤 되는 말이다. 체면 중시 사회에서 수오지심(羞惡之心: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뼛속 깊이 간직하고 이 나이까지 살아 온 나다. 그런데 지금 팔불출 가운데 세 번째 불출이 되어 보고자 한다.

 

근래 한두 가지 일을 경험하면서 내 알량한 자존심의 메커니즘이 더 이상 작동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내 생각에 자존심이란 살아 갈 날들이 살아 온 날들보다 많을 때생겨나기 쉬운, 특이한 심리다. 이제 교수로서 내 인생의 한낮은 기울었고, 내 뒤에 끝도 없이 늘어선 후생(後生)들은 빨리 비켜서라고 재촉한다. 가당치 않은 자존심으로 그들에게 군림하려 한 과거를 버리고, 그들의 장점을 인정하면서 슬그머니 앞자리를 양보하는 것. 그 길만이 내게 남은 유일한 출구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따라서 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아들의 장점을 인정하는 것도 즐거움일 뿐 자존심 차원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제 내 협소한 울타리를 걷어내려는 것은 꽤 오래 전부터 견지해 온 학자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심각하게 도전을 받는 중이고, 어쩌면 그런 도전들의 정당성이 역사적 필연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조경현(Kyunghyun Cho)33살 된 내 큰 아들이다. 이번 방학에 그가 보여준 놀라운 일을 계기로 망설임 없이 이 공간에서 그를 언급하게 되었다. 그는 현재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다. 20022,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카이스트(KAIST)로 진학하는 그를 보내며 쓴 글(공부하러 집 떠나는 아들을 보며, <<어느 인문학도의 세상 읽기>>, 인터북스, 2009)의 마무리 부분에 다음과 같은 내 소망을 담은 바 있다.

 

자식이 어찌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으랴? 그리고, 알아주기를 바란들 무엇 하랴? 그러나, 세상의 아들들이 이것만은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의 부모들 대부분은 공부하러 집 떠나는 아들들에게 물질로 호강시켜 줄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험한 세파 속에서도 자신의 두 발로 서서 당당하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 그러나 이왕이면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와 민족에게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부모에게 자부심을 안겨 주는 것. 이 시대의 부모로서 그 이상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247~248)

 

이것이 16년 전 집을 떠나던 그에게 아버지의 입장에서 표명한 소망이었고, 그 점은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카이스트를 나온 그는 핀란드의 알토대학(Aalto University: 201011일에 설립된 핀란드의 대학교. 2010년부터 정부 주도 하에 핀란드의 산업경제문화를 선도하는 기존의 세 대학-헬싱키 기술 대학교헬싱키 경제대학교헬싱키 미술 디자인 대학교-을 합병하여 출범했음)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몬트리올 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거친 뒤, 2016년 뉴욕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처음에 그가 영국이나 스웨덴 등의 전통 명문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았으면서도 핀란드의 대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지만, 결국 묻지 않았다. 그의 고집을 알고 있었고, 그를 믿어야 한다는 나의 자기억제(self-control) 소신' 때문이기도 했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핀란드의 그 대학에서 유능한 교수의 지도로 인공지능분야를 공부한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인공지능이란 말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고, 그 때만 해도 내겐 뜬구름 잡는 듯한그 분야나 공부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카이스트에서는 물론 핀란드로 간 뒤에도 그는 부모에게 돈 한 푼 요구하지 않았다. 매우 궁금했지만, 그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핀란드는 학비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당시만 해도 우수한 핀란드 교육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파견되던 우리나라 시찰단들을 위해 그가 틈틈이 영어 통역 알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다박사과정에 진학한 뒤에는 큰 규모의 핀란드 정부 장학금을 받았는데, 학비와 생활비는 물론 해외 컨퍼런스 참여에 따르는 모든 비용을 해결할 만큼 풍족한 것이었다. 그 장학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비로소 나는 핀란드라는 나라를 존경하게 되었다. 외국인을 무료로 교육시켜주고 장학금까지 지급하면서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가능성 있는 젊은 인재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국가가 나서서 양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야말로 국가 이기주의가 그악하달 정도로 팽배한 지금의 상황에서 매우 숭고한 일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인구 550만의 작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를 존경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런 과정에서도 나는 그가 컴퓨터 계통을 전공한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인 것을 알고 있지 못했다. 문외한이기도 하려니와 내 전공에 묻혀 살아 온 나로서는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어렴풋이 그가 당시에 갖고 있던 학문적 비전(vision)을 짐작하게 되었다. 석사논문(Improved Learning Algorithms for Restricted Boltzmann Machines/2011)과 박사논문(Foundations and Advances in Deep Learning/2014)에 그가 꿰뚫어 본 미래가 분명 담겨 있지 않은가! Dr. Juha Karhunen, Dr. Tapani Raiko, Dr. Alexander Ilin 등 유수 학자들의 지도 아래 그는 이미 8년 전부터 10년 이내에 핫이슈로 부상될 딥 러닝(deep learning)의 중요성을 알고 차곡차곡 준비해 왔음을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학위를 받고 핀란드를 떠난 그는 캐나다의 몬트리올 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자기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요슈아 벤지오(Dr. Yoshua Bengio) 교수를 찾아간 것이다. 그곳으로 간 지 1년쯤 지났을까. 채용 공고에 응모한 미국과 영국, 스위스, 스코틀랜드 등의 유수 대학들에서 교수직 제의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저울질한 것은 미국의 뉴욕대학교와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였는데, 내가 보기에도 두 곳의 장단점은 분명했다. 오래도록 대학물을 먹은 나로서는 전통적인 명성과 함께 정년보장 직으로 채용되는 옥스퍼드가 나아 보였으나, 결국 그는 뉴욕대학을 선택했다. 그 대학에 딥 러닝 분야의 석학 얀 르쿤(Dr. Yann LeCun) 교수가 있었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세계의 중심인 뉴욕, 경쟁과 자기혁신의 용광로인 미국 대학사회에서 맘껏 연구 활동을 펼치고자 한 그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잘은 모르지만, 캐나다로 건너 간 뒤부터 그의 학문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그는 랩(lab)에 몰려드는 세계의 수재들을 지도하며 다양한 테마의 연구에 몰두하고, 한 주에 한 번씩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이끌어주며, 연간 십여 차례씩 국내외 컨퍼런스와 연구교류 여행을 해야 하는 간단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컴퓨터의 딥 러닝을 이용한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with deep learning)’인 듯하다. 그가 고안한 것으로 알고 있는 NMT(Neural Machine Translation/신경망 기계번역)는 이미 인공지능 컴퓨터 언어학습 분야의 핫 이슈가 되어 있고, 현재 그는 서로 다른 언어들 사이에서 통번역을 자유자재로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메커니즘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

 

1년에 단 한 번, 체류기간은 단 1주일. 그는 여름 방학 초에만 부모가 있는 서울로 온다. 그 짧은 체류기간도 이곳저곳에서 요청한 강연 스케줄로 빡빡하다올해 강연들 중 핵심은 네이버(NAVER)의 커넥트(Connect) 재단에서 있었다. 등록자 200명을 위해 하루 네 시간 씩 이틀 동안 여덟 시간을 강의하고 온 그는 늘 그러하듯 담담했다. 강연료는 얼마나 받았느냐고 농담조로 묻자 천만 원이오. 그런데 모두 기부했어요.”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강연료 액수에 우선 놀랐고, 기부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그의 무심함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래도 태연한 척 어디에 기부했니?”라고 물으니, “여성 과학자들을 위해 소셜 벤처 걸스로봇(Girlsrobot)에 기부했어요.” 한다. “잘 했다고 대답은 하면서도 궁금증은 커졌다. 그의 전공 지식이 대체 무엇이관대 8시간 강의에 천만 원씩이나 받는 것이며, 그 돈을 한꺼번에 기부하는 배포나 철학은 또 뭐란 말인가. 궁금했으나, 더 묻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아버지이지만, 가난한 나라의 국문학 교수가 그 내용을 자꾸만 캐묻는 것도 후학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었다. 이삼일 후 그가 떠나고 나서 우연히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동아일보의 놀라운 기사 한 건을 접하게 되었다.

 

donga.com

 

과학인 키워달라” 30대 과학자 통 큰 기부

 

조경현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국내 강연료 1000만원 전액 쾌척

30세에 신경망 기계번역논문으로 딥러닝 분야 세계적 연구자 반열에

 

 

딥러닝 분야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는 젊은 한국인 과학자가 국내 대중을 대상으로 연 강연의 강연료 전액을 여성 과학 기술인을 지원하는 국내 소셜 벤처에 기부해 화제다. 주인공은 조경현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33·사진). 그는 공동연구를 위해 방한한 이달 11, 12일 커넥트재단 초청으로 경기 성남시 네이버 본사 강당에서 딥 러닝을 이용한 자연어 처리강연을 했다. 8시간 동안 2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대형 강연이었다.

 

해외 석학을 초청한 자리인 만큼 강연료가 1000만 원에 이르렀지만, 조 교수는 예비 여성 과학기술인과 대학원생을 지원하는 데 써 달라며 전액을 소셜벤처인 걸스로봇에 쾌척했다.

 

조 교수는 평소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이공계 분야 여성의 활약과 진출이 아직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뉴욕대 학부에 개설한 머신러닝 입문과목은 정원이 70명이지만 이 중 여학생 수는 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한국은 미국보다 상황이 더 열악할 것이라는 생각에 기부를 결심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아프리카의 과학, 공학 발전을 위해 교수들이 연중 몇 주씩 현지를 찾아가 강의를 하는 등 지역별, 인종별 격차를 줄이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미국 동료 과학자들의 이런 자세에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현재 구글 번역과 네이버 파파고 등이 채용 중인 신경망 기계 번역기술의 이론적 토대가 된 기념비적인 논문을 2014년 공동 저술해 학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정렬 및 번역 동시 학습에 의한 신경망 기계번역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20일 현재까지 3674회 인용된 딥 러닝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꼽힌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80621/90681370/1#csidxc09a80b7f83fa0ea2f4c765d86099f0

 

 

 

, 그랬구나! 세상은 그의 존재를 알고 있는데, 나만 그의 성장을 모른 채 늘 어린 아이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1997년 첫 연구년을 받아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할 때, 초등학교 6학년인 그와 4학년인 둘째 아이에게 초급 영어 회화를 가르치며 초조해 하던 나를 떠올렸다. 이 어린 것들을 데리고 낯설고 물 선 미국 땅에서 무사히 1년을 지내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내게 주어진 천금 같은 기회를 살려 이 철부지들을 낯선 미국 땅과 문화에 잘 적응시킬 수 있겠는가. 가족들을 끌고 물을 건너는 가장에겐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미국에 건너가자마자 영어도 미국 생활 자체도 그들에게 대뜸 추월당한 나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른들을 앞서 갔지만, 바로 어제까지 그들은 내게 코흘리개 아이들일 뿐이었다. 올해 초 그는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이 선정한 ‘201850개 분야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에 들었다. 사실 놀라워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뭘 갖고 그러지?’라고 심드렁하게 생각한 나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새 그는 이미 남들이 인정하는 세계적인 학자가 되어 있었다. 논문의 인용지수나 강연파일들의 태그 건수가 내 상식을 초월하고, 미국 안에서는 물론 유럽에서도 아시아에서도 그를 찾는 곳들이 많아 일일이 응대할 수 없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특히 인공지능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오늘날 그는 순풍을 탄 독수리처럼 하늘로 솟고 있다. 그러면서도 늘 겸손한 자세로 구부정하게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가 대견하다. 좀 잘 나간다고 까불다가 추락하는 세상 천재들의 말로를 잘 알고 있다는 듯 밤낮으로 노력하는 그를 보며 안심을 한다.

 

인천공항 출국장. 그를 탑승구로 들여보내고 나는 아내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지금 보니 저 녀석은 대양을 헤엄치는 고래이고, 나는 고향 마을 실개천의 붕어나 미꾸라지일세. 고래가 실개천으로 돌아올 이유도 없고, 붕어나 미꾸라지가 대양으로 나갈 이유도 없겠지. 나는 개천 속 붕어와 미꾸라지의 삶을 녀석에게 보여주며 항상 교만하지 않고 초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셈이네!”

 

제주도의 호텔 로비에서

제주도 목장에서 오른쪽부터  조경현, 백규, 임미숙, 김미언, 조원정, 조영빈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 2. 9. 16:26

사랑하는 2014학번 졸업생 여러분!

 

 

학부 졸업생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학창생활을 마무리한 14학번 여러분에게 따뜻한 축하를 보냅니다. 무엇보다 자녀들을 잘 길러주시고 대학교육까지 책임 져 주신 학부모님들께 감사드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교수님들, 재학생 여러분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어제 밤 저는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와 젊음의 열정으로 빛나던 여러분의 새내기 시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덧없이 흐르는 시간의 여울에 밀려 여러분과 이별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혹시 시간의 무상함을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인가요? 여기 계신 교수님들 가운데 제가 가장 먼저 쓸쓸한 계절에 접어들었기 때문일까요? 여러 교수님들을 대표하여 여러분에게 석별의 정을 담아 한 말씀 드려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된 것 또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정신없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어제의 가치기준이 달라져 있는 오늘을 발견합니다. 내일은 또 어떤 변화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우리 모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이 그 변화를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이미 개막되었다고 하지만, 미래를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불안감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가 충분한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나라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가 충분치 못하여 많은 젊은이들이 상당 기간 실의의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건 이공계나 인문계 모두 함께 겪는 고통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이 고도지식정보화 단계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넘어가는, 일종의 과도기 혹은 조정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공부한 인문학이 조정기를 거친 미래의 대한민국에 긴요하게 쓰일 시기가 조만간 도래한다고 보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그리하여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수준으로라도 인문학의 수요가 늘어나는, 괜찮은 시대가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일자리를 갖고 교문을 나서는 사람이라고 안심해선 안 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실망해서도 안 되는 것은 변화의 바람이 어느 곳을 향할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길게 보아 인문학의 창조적 소양과 역량을 갖춘 여러분이야말로 조만간 찾아올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기회들을 많이 포착하게 되리라는 것이 우스갯말로 수렵채취시대에 태어나 농경시대, 산업화시대, 정보화시대, 고도지식정보화시대를 거쳐 오며 변화의 속성을 체험했다고 자부하는’^^ 제 판단입니다. 일단 사회에 나가 크게 변하는 사회의 조류와 용감하게 부딪쳐 보라고 권고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학교가 온실이었다면, 사회는 밀림입니다.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신분이 바뀌는 지금이야말로 여러분 스스로 내면의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 순간입니다.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 분명합니다. 일방적으로 배려를 받아 온 기존의 시간대에서 부모, 형제, 이웃 등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는 시간대로 180도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수들이 지난 4년 간 중점을 두어 가르친 것도 바로 그런 주체적 의무감의 함양이었습니다.

 

과거 여러분의 선배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자리에서 저는 그들에게 ‘10년 후에 만나자는 약속을 먼저 건네곤 했습니다. 저 자신도 그러했지만, 통계적으로 대학 졸업 후 10년이 지나면 대부분 자리를 잡고 사회적 정체성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꿈과 능력을 믿습니다. 함께 약속합시다. 앞으로 10년 후인 2027, 저는 멋진 칠순잔치를 열고 그 자리에 여러분을 주빈(主賓)으로 초대하겠습니다. 그 때 멋진 모습으로 저를 찾아 주기 바랍니다.

 

이제 출항의 돛을 높이 달고 용감하게 망망대해로 나가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늠름한 뒷모습에 언제까지라도 파이팅!’을 외치겠습니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여러분의 앞날에 신의 보살피심과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2018. 2. 9.

 

조규익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17. 12. 31. 15:16

 

조경현 박사(뉴욕대 교수/페이스북 AI 연구 과학자)Bloomberg에서 2018년에 주목해야 할 50인 가운데 1인으로 선정되었다.

 

추천인인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 박사는 자연 언어 처리 즉 번역 앨고리즘을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한 디자인 과정으로 불리는 인공지능의 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계번역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Kyunghyun Cho

Assistant professor, NYU; research scientist, Facebook AI Research

Nominated by Geoffrey Hinton

Cho works in a subfield of artificial intelligence called natural language processing, designing processes to make translation algorithms faster and more accurate. “He’s had a huge impact on machine translation,” Hinton says.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