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9. 12. 11:42

 


호산방의 박대헌 사장

 

 

 

고서점 호산방(壺山房).

그 호산방이 문 닫았다는 소식을

어제 날짜 신문에서 접했습니다.

바닷물에 모래성 무너지듯

수많은 점포들이 어제도 오늘도 사라지는 세상.

서점이 어디 일반 가게와 같은가?’라는

제 믿음도 이제 접을 때가 된 것일까요?

십 수 년 쯤 되었나요? 종로서적이 닫을 때

며칠 동안 마음이 허전했었는데,

그 때보다 더 한 허탈감입니다.

 

사실 책에 굶주려 지내던 대학원 재학시절엔 고서점들을 뻔질나게 찾았지요.

호주머니엔 구겨진 지전 몇 장과 동전 몇 낱이 전부였는데,

무슨 호기로 그런 책들을 탐내곤 했는지...

뒤통수에 꽂히는 주인장의 눈총을 느끼면서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마냥 시간이나 끌기 일쑤였지요.

미련을 남겨 둔 채 서점 문을 나서는 마음은 왜 그리도 허전했을까요?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박대헌 사장님을 제 연구실에서 뵈었지요.

박 사장께서 ‘150만원 정가의 책을 저술출판하여

한국 지식사회를 경동(驚動)시킨 시점.

그 책을 앞에 두고

궁핍했던 시절 고서점들에서 입은 상처를 차마 거론할 순 없었지요.

 

그 후로 세월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고,

고서점들 또한 많은 시련과 변신을 시도했겠지요.

결국 그 험한 물결을 되돌리지 못한 채

호산방은 장렬히 문을 닫은 것 아니겠는지요?

지금 제 나이 또래의 우국지사(憂國之士)’라면

누군들 이 세월의 변화를 반길 수 있을까요?

얄팍한 매명(賣名)의 상술(商術)들을 보시나요?

인문학의 두겁을 뒤집어 쓴 채 세상을 호리는 사람들을 말이지요.

세상을 뒤덮은 인터넷의 그늘 아래

자리 깔고 펼치는 개그를 학문이라 착각하고 있는 세태를 말이지요.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아직도 멋진 고서점들이 즐비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동네 도서관을 출입하고,

시장을 다녀오는 아주머니들의 장바구니 속에 도서관의 책이 한 두 권씩 들어 있는 모습.

그들의 멋진 건물이나 번쩍이는 거리의 모습보다 훨씬 부러운 광경이지요.

 

책을 찢어 벽지로 쓰고, 절구에 빻아 지공예의 재료로 쓰던 시절이 엊그젠데,

이삿짐센터의 제1 기피 대상이 책 박스라는 사실을 아시지요?

그래서 노마드의 임시 공동체인 우리네 아파트 쓰레기장,

그 공간의 단골손님이 멋진 장정의 책들이라는 사실도 잘 아시지요?

 

역사의 공간으로 사라진 호산방.

그 호산방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순 없을까요?

발효되는 고서의 향기 그득한 옛날의 서점으로,

힘들 때면 찾아가 고서들과 대화하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휴식의 공간으로 말이지요.

 

우린 자손들에게 무얼 남겨야 할까요?

날카롭게 벼린 이데올로기?

번쩍이는 빌딩?

엄청난 파괴력의 ()무기?

국내외의 페이퍼 컴퍼니들에 숨겨둔 천문학적 재산?

 

동네마다

멋진 고서점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건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요?

문화나 전통, 역사란 말이 매우 추상적으로 들리신다면

선진국의 멋진 고서점에 한 번 들러 보세요!

나이 먹은 책들의 숲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 책들의 나지막한 음성을 들어보세요.

그 음성에 녹아있는 것이 바로 문화, 전통, 역사이지요.

그리고 그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것이 미래에 대한 통찰이지요.

 

 

 


박대헌 사장의 저서 <<Korea: 서양인이 본 조선 조선관계 서양서지>>(호산방, 1996)

 

 

 


<<Korea: 서양인이 본 조선 조선관계 서양서지>>의 내용

 

 

 


박대헌 사장의 헌사(<<Korea: 서양인이 본 조선 조선관계 서양서지>>)

 

 

 


일본 천리시내의 한 고서점

 

 

 


일본 천리시내의 고서점에서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8. 1. 09:29

중국은 무도(無道)한 깡패국가, 세계 평화의 최대 걸림돌이다.

 

                                                                                                                                           백규

 

근자 중국의 마수(魔手)로부터 가까스로 풀려나 귀국한 김영환 씨에 의해 중국의 치부가 만천하에 폭로되었다.

 

중국을 다녀 왔거나 그들과 공식적인 거래를 해본 사람들은 대충 알고 있겠지만, 그들이 아직 원시적 야만의 의식수준에서 헤매고 있음은 분명하다. 세계에서 국가 공권력이 공공연하게 고문을 자행하는 나라의 대표적 사례가 북한과 중국이다. 공자와 맹자, 주자와 같은 훌륭한 선조를 모시고 있는 나라의 못난 후손들이 벌이고 있는 야만적인 폭거는 그들의 행태로 미루어 앞으로 몇 세기가 흘러도 청산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미개국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 대한민국.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해야 할까. 툭하면 잡아다 고문을 해도 모르는 척 하면서 '잡혀 들어간' 우리 국민의 '기민하지 못함'만 탓해야 할까. 어떻게든 덩치만 큰 '깡패국가' 중국의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아야겠는데, 당장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다. '정신 바짝 차리는 것'만이 그나마 그런 깡패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 모두 함께 지혜를 짜 내야 한다.

 

2005년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지금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김문수 지사가 국회의원으로 있던 당시였다. 그가 중국에서 탈북자 문제인가로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그 현장에서 무도한 중국의 공권력으로부터 테러 비슷한 폭행을 당했다. 한 나라의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어느 나라에 가서든 최소한 외교관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김 의원을 잡범 다루듯 한 일은 국제법의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김 의원을 탓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무도함을 먼저 탓했어야 할 이 땅의 정치인들 혹은 지식사회가 억울한 김 의원을 비난한 것은 뿌리 깊은 '노예근성'의 발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종북주의자들'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필자는 당시 분노를 금치 못하고 아래와 같은 칼럼을 <<조선일보>>(2005. 1. 17.)에 기고한 바 있다. 그 글을 통해 위정자들에게 '민족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최소한의 방책이라도 마련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 나라를 이끌어 간다고 하는 위정자 그룹의 '대책없음'이 우리를 분통 터지게 만드는 요즈음이다.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대권을 꿈꾸는 이른바 잠룡(潛龍)들은 무엇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갖고 있어야  한다. 깡패국가의 볼모로 전락한 국민이나 국가의 대통령이 된들 무슨 영광이겠는가? 얻어 맞으면서도 배만 부르면 그만인 '돼지'로 만족할 것인가?

 

당시의 글은 아래와 같다.  

 

 

 

******* 

 

 

 

민족의 자존심

 

 

▲ 조규익 교수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중국의 공권력에 폭행을 당했다. 국가 간의 이해(利害)가 개입된 문제라고는 해도 ‘때린 놈’이나 ‘맞은 놈’ 모두 우습게 되었다. 더욱 희한한 일은 때린 놈의 역성을 드는 집단이 우리들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점잖다 해도 ‘불량배에게 맞고 들어온 자식’을 꾸중하는 부모는 없다.

 


사실 중국을 지렛대로 북한을 움직이려면, 중국과 우리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란 어렵다.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면서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이득까지 챙기려는 중국인들의 계산법은 천하공지(天下共知)의 사실이다. 분단된 우리 민족을 뒤에서 조종하며 실익을 챙기자는 그들의 ‘꼼수’를 우리는 민족사 최대의 수치로 받아들여야 정상이다.

 

따라서 이번 일을 국제화 시대의 나라들 간에 일어날 만한 외교적 사건으로 단순화 시킬 수는 없다. ‘민족적 자존심’의 원칙적 잣대는 어느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최우선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그 잣대가 좀더 복잡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80년 전의 일을 떠올려 보자. 반정(反正)으로 인조(仁祖)를 옹립한 서인(西人) 정권은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했다. 중국으로부터 고명(誥命)과 면복(冕服)을 받지 못하면 국내에서 반대파를 누르고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누르하치의 기세가 바야흐로 명(明)나라의 숨통을 끊어갈 무렵이었다. 이덕형(李德泂)을 정사(正使)로 하는 주청사(奏請使)가 명나라 조정에 파견되었고, 그들은 넉 달 가까이 북경에서 온갖 수모를 겪는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사가 ‘시랑(侍郞)’ 정도의 관리들에게 농락을 당하기 일쑤였고, 자신들의 뜻을 요로에 전하기 위해 뇌물을 밥 먹듯 써야 했다. 북경의 혹심한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새벽부터 길거리에 꿇어 엎드려 출근하는 각로대신(閣老大臣)들에게 손을 비비던 노구(老軀)의 정사는, 바로 역사 속에 그려진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다.

 

 

그뿐인가. 천신만고 끝에 각로들을 만난 정사. 그들의 괜한 트집으로 섬돌에 내동댕이쳐져 울부짖던 그 참상을 다시 무슨 말로 표현할까.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부질없다지만,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무자비하고 철저하게 ‘농락해 온’ 저들의 무례함을 제때 제대로 징치(懲治)했더라면 현대사는 좀더 다른 방법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징치’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우리가 ‘자존심’을 세우는 방법만이라도 강구했었다면 지금 이렇게 온 국민이 참담함을 되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망해가는 명나라에게 빌붙어 국내에서 권력을 장악하려던 일부 무리들의 ‘꼼수’는 결국 민족의 자존심을 망치고 그후 조선에 잦은 전란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 된 것만 보아도, 통치 집단의 지혜로움은 분명 민족사 전개의 향방을 가르는 지표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세상사,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겉모습은 달라져도 본질은 변할 리 없다. E H 카(Carr)의 말처럼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임에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운 것 없음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말았다. 특히 21세기 초입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집단들이 매우 우매(愚昧)하고 게으르다는 점, 국민으로서는 그것이 못내 통분하다.

 

 

역사책의 한 쪽만 넘겨 보아도 우리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진실은 그득하다. 지금 중국은 남북의 분단 상황을 지렛대로 삼아 그 사이에서 철저히 이익을 취하고 있다. 그 와중에 농락당하는 건 남북한 모두의 자존심이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

 

<조선일보, 2005. 1. 17.>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1. 1. 31. 01:18

최근 정부와 한나라당은 고위당정협의를 통해 내년부터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모처럼 듣게 되는 반가운 소식이나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다.

우선 논의의 과정이나 결정 자체가 너무 즉흥적이어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야 할 교육부서나 일선학교들이 과연 당장 내년부터 국사교육을 시킬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동안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이유로 국사를 선택으로 돌렸으며, 그에 따라 국사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국사를 홀대하는 데 대하여 뜻 있는 국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여 왔음에도 정책 당국의 국사에 대한 생각은 단호했다. 그런 마당에 갑작스레 필수로 전환하겠다고 하니 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대다수 국민들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사능력 검정시험을 통과한 사람만 교원임용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한다거나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겠다는 방안도 나온 모양이니, 국사에 대한 대우가 '굶어 죽어가던 흥부네 안방에 황금을 쏟아 부은' 격이다. 그런데 우리 학계나 교육당국 혹은 일선학교에 지금 당장 국사교육을 시킬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은 무엇보다 심각하다.

과거 시행해 왔던 국사교육을 상기해보면 왜 우리가 앞으로 부활할 국사교육에 큰 기대를 걸 수 없는지 분명해진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식민사관(植民史觀) 같은 잘못된 바탕 위에서 역사적 사건들의 암기만을 강요함으로써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암기 위주의 국사교육에 환멸만을 느끼게 되었다거나 역사에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교훈을 얻기보다는 자기비하의 모멸감을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시련과 극복'은 세계 모든 민족들의 역사에 공통된 주제다. 그러나 우리만큼 그 정도가 심한 민족이나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지금도 동북아의 한ㆍ중ㆍ일 3국은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꽤 오래 전부터 역사를 날조하고 날조된 역사를 그대로 교육시켜 왔으며, 중국도 역사 날조에 동참하고 있음은 최근에 불거진 '동북공정'의 실태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일본과 중국은 역사의 무기화를 통해 이 지역의 패권을 쥐어보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그나마 국사를 선택으로 돌리거나 아예 폐지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온 것이다. 그들이 역사를 날조한다고 우리까지 그에 동참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역사를 무기화 하는 그들의 행위에 대한 대응전략 정도는 세워두었어야 한다.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의 칼날을 드러냈을 때 우리의 사학계는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고, 일본이 오랫동안 역사에 대한 해석으로 도발을 해올 때도 시원한 논리로 대응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뜻 있는 재야 사학자들로부터 비판의 화살을 맞으면서도 실증사학의 울타리나 식민사관의 틀을 과감히 탈피하지 못하는 우리의 사학계는 큰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고등학생들에게 제왕의 이름, 연대 혹은 사건의 개요나 외우게 하는 것은 국사 교육이 아니다. 역사교사는 국사책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역사가의 명쾌하고 공정하며 미래지향적인 해석을 가르쳐야 한다. 영광의 역사는 그것대로 불운의 역사는 그것대로 정당한 사관에 입각한 해석적 의미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제대로 된 국사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카(E.H.Carr)가 말했듯이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라면, 제대로 된 국사교육을 통해서만 우리는 현재와 미래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나라가 망해도 정신만 있으면 살아날 수 있다'는 나철의 말은 역사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금언이다.

나라 사이의 벽을 허무는 글로벌 시대일수록 국사나 민족사를 교육시켜야 하는 것은 '드넓은 벌판에 홀로 설만한 줏대' 즉 자아 정체성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자아 정체성은 조상들이 헤쳐 나온 역경의 체험을 들려주고 극복의 지혜를 잘 다듬어 가르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다. 국사교육이 졸속으로 재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왕 국사교육을 재개하려면 제대로 준비한 다음에 하는 게 옳다.  
                                                               조규익(숭실대 교수/인문대 학장)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0. 8. 15. 23:42
역사, 이젠 제대로 가르치자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CIS(독립국가연합) 등에서 만나는 해외동포 3~4세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우리말을 모르고, 우리의 역사를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말을 모르니 우리의 역사를 알 수 없고, 우리의 역사를 모르니 그들과 함께 민족 정체성을 공유할 수가 없다. 다민족 국가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고국의 말과 역사조차 모르는 처지에 고국에서 온 동포를 ‘동포 아닌 제3국인’ 혹은 그들과 공존하는 ‘타민족’ 정도로 인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원래 이민지와 고국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경계인’으로 머물러 온 그들이 이제는 그런 중간자적 인식마저 상실하고 대책 없는 미아(迷兒)로 떠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런 현상을 해외의 동포들에게서만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세대들이 겪는 ‘민족 정체성의 위기’는 더욱 우려스럽게 심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바로 철학 없는 기성세대나 나라를 경영한다는 지도층이 무사려(無思慮)하게 지향해온 ‘세계화’의 비극적 소산이다. 든든한 경제나 국방만이 세계의 복판에서 한 나라를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유일한 발판은 아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을 경우 한갓 ‘경제동물’에 불과한 인간이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기인식’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의 우리처럼 어려서부터 영어에만 몰입하게 하고 역사나 민족문화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새로운 세대들은 스스로 ‘세계시민’의 착각 속에 빠져들고 만다. 각자의 개별성과 독자성을 투철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바람직한 세계시민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때 늦은 감은 있으나,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독도 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의 교육과정’을 발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독도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면서도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 이유나 역사적 당위성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면, 조만간 우리는 제 땅마저 지키지 못하는 한심한 민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억지를 역사 교과서에 반영하여 가르쳐 오고 있으며, 중국 또한 ‘동북공정’이라는 해괴한 명칭으로 역사의 날조에 동참했다. ‘날조된 역사’를 당당하게 교육시키는 그들의 심리 저변에는 그것이 자라나는 세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경우 미래는 그 방향으로 되어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긴 시간이 지나 날조된 역사가 역사의 한 부분으로 정착되었으면’ 하는 헛된 소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날조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분명한 죄악이지만, 제대로 된 역사마저 가르치지 않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명한 직무유기이니 그것 또한 죄악이다.

우리의 편견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바로 지금’만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은 과거나 미래와 무관하다는 생각이다. 거기서 역사나 민족문화에 대한 몰각(沒覺)은 비롯되기 때문이다.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으며, 현재는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역사 철학자 E.H.카아는 역설했다. 과거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현대사회를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원인은 과거에 있으며, 미래의 원인은 현재에 있다. 주변의 타민족, 타 국가들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적 관계를 정확히 분석하고 우리의 이익을 수호하려면 원인으로서의 과거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역사에 대한 연구와 교육은 무엇보다 긴요하다. 사실 우리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이 독도만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문학, 역사, 철학 등 전통인문학의 핵심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신세대를 국제 미아로 만들고 있는 점은 기성세대들이 직시해야 할 문제적 현실이다. 경제와 군사, 문화면으로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일본이나 중국이 이 시점에 왜 ‘역사의 날조’와 ‘날조된 역사의 교육’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이들에 비해 한참 늦었지만, 우리도 ‘제대로 된’ 역사교육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민족의 미래를 담보할, ‘멀지만 확실한’ 길이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인문대 학장)

Posted by kicho
글 - 학술문2007. 5. 6. 15:19

       갈수록 새로워지는 역사의 의미
        -<<역사란 무엇인가>> 서평-
   
                                                                                                          조규익(숭실대 교수)

문고본으로 출간된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학부 3학년 때였다. 길현모 선생 번역의 ‘가볍지만 무거운’ 책이었다. 두세 번 곱씹어가며 읽으라던 선배의 권유로 열심히 밑줄 그으며 읽은 덕분이었을까. 어수룩한 후배들에게 역사나 역사철학, 아니 현실에 관한 ‘그럴 듯한’ 언설들을 제법 풀어놓을 수 있었다. 역사를 떠나 존립하기 어려운 우리의 문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탈근대의 담론을 지향하는 최근의 역사서들까지 두루 섭렵해왔으나, 이 책이 내 마음에 심어준 생각의 그루터기는 처음부터 요지부동이었다.  
최근 나는 당시 그 선배의 마음으로 돌아가 ‘한국문학사’를 수강하는 학부 3학년생들에게 이 책을 ‘반 강제로’ 읽혔다. 그런데 아이들의 눈이 ‘번쩍’ 빛나는 듯 했다. 지적 충격이었으리라. 카아의 생각을 수용하는 그들의 논리는 서툴지만 풋풋했다. 일부 역사가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의 말 가운데 ‘그른 부분’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예비 지식인들의 마음에 지적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책의 힘이 30년 세월에도 변함없다면, 이제 그 책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도 되리라. 더구나 우리의 과거가 ‘드라마’란 그릇에 담겨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우리 또한 그것을 ‘역사’로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 요즈음 아닌가. 어린 시절 열심히들 외워온 ‘태정태세문단세’. 그걸 두고 ‘역사를 배웠다’고 착각하는 우리들이다. 옳건 그르건 학창시절 역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어본 적도 없는 ‘역사의 해석’을 TV 드라마에서 비로소 접하는 현실이다. 그러니 혹시 우리는 역사에 대하여 잘못 알아 왔거나 그릇 배워온 것이나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해보지 못한, 학문적 불모지의 백성들임이 분명하다.
‘역사는 과학이며, 진보한다’는 대전제를 쉽게 풀어나가는 언술들의 집합이 바로 이 책이다. 우리는 과거의 사건들을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 중시한다. 다시 말하면 사건들의 맥락이나 갈피들마다 숨어있는 의미를 ‘해석’해 내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 사건들을 모두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래서 카아는 역사가의 태도야말로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역사적 사건들의 지위(地位) 또한 해석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눈과 관점으로 보는데서 성립하며 역사가의 임무는 기록이 아닌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는 크로체의 생각을 논리적 바탕으로 삼은 것도 사건들의 해석을 역사기술의 대전제로 삼고자 한 그의 철학 때문이었다. 이런 근거 위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멋진 명제를 도출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일들이 ‘역사적 사실들’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가의 해석과 평가가 필요하며, 그 상호작용인 ‘대화’야말로 역사 기술의 대상들을 무한한 가능태로 격상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비전이 현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통찰에 의해 빛을 받을 때에만 쓰이는 것이 ‘위대한 역사’라는 관점도 이런 전제를 통해 얻어낸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한 시대를 만든 위인(偉人)은 어떤 존재인가. 한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다음 시대에 그것을 전해주며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상, 즉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존재를 카아는 위인이라 했다. 이처럼 카아는 역사의 과정에서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창조적 개인을 중시했다. 그가 시대를 만들고 이끌어간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대의 보통사람들은 그런 위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위인은 자기 시대보다 너무 앞서 가기 때문에 뒷시대에 가서야 겨우 인정받게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가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바로 그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다. 다시 말하여 그것은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부단한 대화’라는 그의 핵심명제를 부연한 내용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역사가란 단순한 분석가, 해석가에 그쳐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과거 사실들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란 언제나 도덕적 판단이나 가치판단을 내포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추상적인 도덕개념 속에 특수한 역사적 내용이 담겨져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자 산물이란 것이다. 이런 역사나 역사철학 혹은 역사 서술에 관한 본질적 견해를 바탕으로 카아는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찾는 역사가의 방법적 모색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도해왔다. 인과(因果)의 문제, 진보의 문제, 이성의 확대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미래를 모색하는 문제 등이 인류에 대한 역사 혹은 역사가의 임무라고 본 것이다. 비록 현재를 잣대로 삼긴 하지만, 단순히 과거 사실들의 해석이나 평가에만 머물 수는 없고, 미래에 대한 지평을 확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역사가의 책무라는 것이 행간에 숨어있는 그의 생각이다.
우리는 역사적 사건들을 허구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거나 해석하여 보여줌으로써 대중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가의 통찰이나 시선이 결여되기 마련인 이른바 ‘팩션(faction)’이란 새로운 장르가 범람함에 따라, 일반인들은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주몽이나 대조영은 분명 과거 한 때 이 땅에서 활약한 위인들이다. 그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무대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지만, 그 사건들이 과연 역사가의 책임 있는 비전으로 해석 또는 재현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바로 지금 동북공정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역사왜곡으로 심기가 불편한 우리가 재확인해야 할 역사철학의 금과옥조를 카아의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자소개

E. H. 카아

1892년 영국 런던 출생의 역사학자이자 국제정치학자. 케임브리지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졸업 후 1916년∼1936년까지 20여 년 간 외무성 관리로 공직생활에 몸을 담았다. 특히 1919년에는 베르사이유 강화회의에 영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1936∼1947년까지 웨일즈대학(University of Wales)의 국제정치학 교수로 있으면서 '타임(The Times)'지 논설위원을 겸했고,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 기초위원장, 옥스퍼드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 1955년 이후 모교인 트리니티 칼리지로 돌아가 1982년 타계할 때까지 고급연구원으로 지내면서 소비에트 러시아사 연구에 몰두했다. 그가 외교관이나 언론인으로 활약하면서 쌓은 현장경험은 역사와 정치에 관한 그의 시각(視角)을 형성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는 이상과 현실 혹은 이론과 실제의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도적 균형을 잡고자 노력했으며, 이런 성향은 그의 학문적 업적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과거와 미래의 대화, 사실과 해석의 상호작용 등 그의 역사인식 역시 그러한 현장경험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4. 15. 22:54
민족의 자존심

                                                                                                                      조규익

자격 있는 자만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원문보기 클릭-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중국의 공권력에 폭행을 당했다. 국가 간의 이해(利害)가 개입된 문제라고는 해도 ‘때린 놈’이나 ‘맞은 놈’ 모두 우습게 되었다. 더욱 희한한 일은 때린 놈의 역성을 드는 집단이 우리들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점잖다 해도 ‘불량배에게 맞고 들어온 자식’을 꾸중하는 부모는 없다.

사실 중국을 지렛대로 북한을 움직이려면, 중국과 우리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란 어렵다.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면서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이득까지 챙기려는 중국인들의 계산법은 천하공지(天下共知)의 사실이다. 분단된 우리 민족을 뒤에서 조종하며 실익을 챙기자는 그들의 ‘꼼수’를 우리는 민족사 최대의 수치로 받아들여야 정상이다.

따라서 이번 일을 국제화 시대의 나라들 간에 일어날 만한 외교적 사건으로 단순화 시킬 수는 없다. ‘민족적 자존심’의 원칙적 잣대는 어느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최우선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그 잣대가 좀더 복잡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80년 전의 일을 떠올려 보자. 반정(反正)으로 인조(仁祖)를 옹립한 서인(西人) 정권은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했다. 중국으로부터 고명(誥命)과 면복(冕服)을 받지 못하면 국내에서 반대파를 누르고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누르하치의 기세가 바야흐로 명(明)나라의 숨통을 끊어갈 무렵이었다. 이덕형(李德泂)을 정사(正使)로 하는 주청사(奏請使)가 명나라 조정에 파견되었고, 그들은 넉 달 가까이 북경에서 온갖 수모를 겪는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사가 ‘시랑(侍郞)’ 정도의 관리들에게 농락을 당하기 일쑤였고, 자신들의 뜻을 요로에 전하기 위해 뇌물을 밥 먹듯 써야 했다. 북경의 혹심한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새벽부터 길거리에 꿇어 엎드려 출근하는 각로대신(閣老大臣)들에게 손을 비비던 노구(老軀)의 정사는, 바로 역사 속에 그려진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다.

그뿐인가. 천신만고 끝에 각로들을 만난 정사. 그들의 괜한 트집으로 섬돌에 내동댕이쳐져 울부짖던 그 참상을 다시 무슨 말로 표현할까.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부질없다지만,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무자비하고 철저하게 ‘농락해 온’ 저들의 무례함을 제때 제대로 징치(懲治)했더라면 현대사는 좀더 다른 방법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징치’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우리가 ‘자존심’을 세우는 방법만이라도 강구했었다면 지금 이렇게 온 국민이 참담함을 되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망해가는 명나라에게 빌붙어 국내에서 권력을 장악하려던 일부 무리들의 ‘꼼수’는 결국 민족의 자존심을 망치고 그후 조선에 잦은 전란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 된 것만 보아도, 통치 집단의 지혜로움은 분명 민족사 전개의 향방을 가르는 지표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세상사,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겉모습은 달라져도 본질은 변할 리 없다. E H 카(Carr)의 말처럼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임에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운 것 없음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말았다. 특히 21세기 초입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집단들이 매우 우매(愚昧)하고 게으르다는 점, 국민으로서는 그것이 못내 통분하다.

역사책의 한 쪽만 넘겨 보아도 우리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진실은 그득하다. 지금 중국은 남북의 분단 상황을 지렛대로 삼아 그 사이에서 철저히 이익을 취하고 있다. 그 와중에 농락당하는 건 남북한 모두의 자존심이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