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와 한나라당은 고위당정협의를 통해 내년부터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모처럼 듣게 되는 반가운 소식이나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다.
우선 논의의 과정이나 결정 자체가 너무 즉흥적이어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야 할 교육부서나 일선학교들이 과연 당장 내년부터 국사교육을 시킬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동안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이유로 국사를 선택으로 돌렸으며, 그에 따라 국사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국사를 홀대하는 데 대하여 뜻 있는 국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여 왔음에도 정책 당국의 국사에 대한 생각은 단호했다. 그런 마당에 갑작스레 필수로 전환하겠다고 하니 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대다수 국민들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사능력 검정시험을 통과한 사람만 교원임용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한다거나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겠다는 방안도 나온 모양이니, 국사에 대한 대우가 '굶어 죽어가던 흥부네 안방에 황금을 쏟아 부은' 격이다. 그런데 우리 학계나 교육당국 혹은 일선학교에 지금 당장 국사교육을 시킬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은 무엇보다 심각하다.
과거 시행해 왔던 국사교육을 상기해보면 왜 우리가 앞으로 부활할 국사교육에 큰 기대를 걸 수 없는지 분명해진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식민사관(植民史觀) 같은 잘못된 바탕 위에서 역사적 사건들의 암기만을 강요함으로써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암기 위주의 국사교육에 환멸만을 느끼게 되었다거나 역사에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교훈을 얻기보다는 자기비하의 모멸감을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시련과 극복'은 세계 모든 민족들의 역사에 공통된 주제다. 그러나 우리만큼 그 정도가 심한 민족이나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지금도 동북아의 한ㆍ중ㆍ일 3국은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꽤 오래 전부터 역사를 날조하고 날조된 역사를 그대로 교육시켜 왔으며, 중국도 역사 날조에 동참하고 있음은 최근에 불거진 '동북공정'의 실태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일본과 중국은 역사의 무기화를 통해 이 지역의 패권을 쥐어보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그나마 국사를 선택으로 돌리거나 아예 폐지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온 것이다. 그들이 역사를 날조한다고 우리까지 그에 동참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역사를 무기화 하는 그들의 행위에 대한 대응전략 정도는 세워두었어야 한다.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의 칼날을 드러냈을 때 우리의 사학계는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고, 일본이 오랫동안 역사에 대한 해석으로 도발을 해올 때도 시원한 논리로 대응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뜻 있는 재야 사학자들로부터 비판의 화살을 맞으면서도 실증사학의 울타리나 식민사관의 틀을 과감히 탈피하지 못하는 우리의 사학계는 큰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고등학생들에게 제왕의 이름, 연대 혹은 사건의 개요나 외우게 하는 것은 국사 교육이 아니다. 역사교사는 국사책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역사가의 명쾌하고 공정하며 미래지향적인 해석을 가르쳐야 한다. 영광의 역사는 그것대로 불운의 역사는 그것대로 정당한 사관에 입각한 해석적 의미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제대로 된 국사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카(E.H.Carr)가 말했듯이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라면, 제대로 된 국사교육을 통해서만 우리는 현재와 미래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나라가 망해도 정신만 있으면 살아날 수 있다'는 나철의 말은 역사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금언이다.
나라 사이의 벽을 허무는 글로벌 시대일수록 국사나 민족사를 교육시켜야 하는 것은 '드넓은 벌판에 홀로 설만한 줏대' 즉 자아 정체성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자아 정체성은 조상들이 헤쳐 나온 역경의 체험을 들려주고 극복의 지혜를 잘 다듬어 가르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다. 국사교육이 졸속으로 재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왕 국사교육을 재개하려면 제대로 준비한 다음에 하는 게 옳다.
조규익(숭실대 교수/인문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