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소식2015. 7. 3. 11:59

 

 

 

 

 

 

 

 

지난 몇 년 간 악장문학과 해외 한인문학을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틈틈이 북한에서 나온 문학사들을 읽어 왔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그에 관한 제 생각들을 정리하게 되었고, 그 가운데 고전시가들을 중심으로 몇 편의 논문들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강조한 것처럼 북한사람들 특히 학자들의 생각이 너무나 경직되어 가뭄에 실개천 마르듯문학작품의 분석이나 해석에서는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른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나 주체적 사실주의만으로 무궁무진한 문학작품의 이면적 의미를 퍼 올리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들 사유(思惟)의 정형성은 침대에 키를 맞추어 발을 잘라내던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몇 종 되지도 않지만, 그들의 문학사를 다 읽고 더 많은 글을 쓰다가는 수많은 동어반복(同語反覆)’의 함정에 빠질지 모르겠다는 우려 때문에, 당분간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제 사유의 또 다른 틀이 생성되어 이전에 보이지 않던 그들 문학사의 이면적 의미들이 보일 때쯤 다시 쟁기를 들고 나설 생각입니다.

 

여기에 이 책의 머리말을 이곳에 옮겨 놓습니다.

 

 

머리말

 

남북한은 말과 글자, 그리고 역사를 공유한다. 그래서 이 땅의 단일민족은 역사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단과 이질화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역사 또한 양분되고 말았다. 민족에게 남겨진 역사적 사실들은 하나이되, 그에 대한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남북한 역사 이질화의 근원은 이념이다. 처음에 통치이념으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북한은 한 발 더 나아가 주체사상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역사의 이질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북한에서 이른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나 주체적 사실주의의 잣대는 그런 것들이 없던 시기의 옛 문학이나 지금의 창작문학에 가리지 않고 적용되었다. 옛 문학에 대해서는 해석의 도구로, 지금의 문학에 대해서는 창작과 비평의 원리로! ‘김일성의 교시’, ‘김정일의 지적과 함께 제시된 것이 강령으로서의 사회주의 미학 혹은 주체미학이었다. 문학작품이든 문학사이든 획일화의 감옥에 가둬버린 것이다.

 

우리 고전시가를 통해 그 실상의 일부나마 확인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 이 글이고, 일부 학자들이 고창해 온 통일문학사의 서술이 허구라는 점도 이 공부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북한의 문학사()를 이 땅의 다수 문학사들 가운데 하나로 취급해주면 될 일이지, 다양성을 추구해온 남한의 문학사들까지 굳이 주체미학의 형틀에 묶인 북한식 문학사로 획일화시킬 필요야 있겠는가.

 

문학사에도 시대의 소임이 주어진다. 시대정신이나 미학을 벗어나기 힘든 것이 문학사라는 뜻이다. 각자 자기 시대의 목소리로 해석한 문학사를 읽으려 하기 때문이다. 통일 후 문학사 아카이브에는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남한의 문학사들과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북한의 문학사()가 그들먹하게 들어차겠지만, ‘문학사 서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극소수의 학자들이나 그것들을 찾게 될 것이다.

 

책을 멋지게 만들어주신 보고사 김흥국 사장님과 편집부 이순민 선생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해외에서 학업을 마치고 패기 넘치는 교수로 뉴욕대학(New York University)에 입성한 큰 아이(경현)와 현대건설에서 훌륭한 기업인의 꿈을 키우고 있는 작은 아이(원정)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이 책을 건넨다.

 

을미년 한여름

백규서옥 주인

조규익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문학사>>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문학사>>

 

 

 


북한에서 발간된 고전 작품들

 

 

 


북한에서 발간된 고전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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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3. 11. 11. 12:52

 

66번 도로[Route 66]에 살아 있는 역사의 공간, 유콘 시티(Yukon City)

 

 

 

 


66번 도로 가의 Arcadia Round Bahn에 전시 중인 66번 도로 표지판

 

 

우리가 유콘을 찾은 것은 112()이었다. 사실은 66번 루트에서 비교적 유명한 오클라호마시티 남쪽 엘크(Elk) 시의 국립 66번 도로 박물관(National Route 66 & Museum)’, ‘옛 마을 박물관 단지(Old Town Museum Complex)’, ‘농업 및 목축업 박물관(Farm and Ranch Museum)’ 등 세 박물관들을 돌아보기 위해 집을 나선 길이었는데, 오클라호마시티에 들어오니 시곗바늘은 이미 11시 반을 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목적지는 스틸워터로부터 달려 온 만큼의 시간을 그로부터 더 달려야 하는, 100마일이나 먼 거리에 있었다. 도착하면 오후 2시쯤 될 것이고, 점심을 먹고 나면 3시쯤 될 것 아닌가. 난처했다. 박물관 하나를 겨우 보고나서 다시 되돌아 와야 하고, 되돌아오는 길 또한 300마일쯤이나 될 것이니, 오밤중이나 넘어서야 집에 들어 갈 수 있을 것이었다. 끔찍하게 드넓은 미국 땅. 그 중에서도 끝없이 펼쳐진 벌판의 왕국 오클라호마를 얕본 우리의 실책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출발했어도 쉽지 않을 거리였는데, 느직이 일어나 아침을 다 챙겨먹고 나선 길이니 여유롭게 돌아보고 오기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하이웨이의 출구를 빠져나와 주유소와 푸드마트, 구멍가게 등을 겸한 휴게소에 들렀는데, 마침 66번 도로가 그 휴게소 옆을 지나고 있었다. ‘작전 상 후퇴아닌 시간 상 노정 변경이었다. 마트에 들른 그 지역 사람들에게 물으니, 하나같이 유콘시티를 추천했다. 그래, 오늘은 유콘을 탐사하기로 하자. 그렇게 해서 우리는 66번 길가에 묻혀 있던 유콘을 찾아낸 것이다.

 

***

 

시내에 들어서자 저 멀리 도시 입구 쪽의 메인 스트릿 양 옆에 원통형의 거대한 건물들이 서 있었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듯 그 건물들의 위압적인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다가가 보니 두 건물 모두 제분공장이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그 사이를 지나는 철길도 녹이 슬어 있어 이 제분공장에서 밀가루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알만한 단서는 아무데도 없었다. 퇴락한 옛날의 영화들이 건물 벽의 각종 글씨들에만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제분공장들이라면 아마 이 근동 사람들이나 먹여 살리는 데 만족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차에 실려와 조달된 밀을 가루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그 기차로 다른 지역에 실어다 팔기도 했을 것이다. 나중에 보기로 하고 우리의 1차 관심처인 유콘 역사박물관[Yukon Historical Museum]’을 찾기로 했다.

 


유콘 제분소[Yukon Mill]-"유콘의 최고 밀가루"란 문구가 눈에 띈다


맞은편에 있는 또 하나의 제분소


유콘 역사박물관[Yukon Historical Museum]

 

그러나 작은 도시의 메인 스트릿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박물관을 찾았으나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책자에 소개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규정상 미리 예약을 해야 볼 수 있으나, 오늘은 그냥 보여주겠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가니 80대로 보이는 깨끗한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은 캐롤(Carol Knuppel). 이른바 자원봉사 큐레이터였다. 건강은 좀 안 좋아 보였으나 맑고 지성적이며 자신들의 향토 역사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지식인이었다.

 


유콘 역사박물관의 큐레이터 캐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캐롤과 백규 

 


생활사 관련 소장품을 설명하고 있는 캐롤


캐롤과 전직 소방관인 남편, 그리고 백규

 

폐교된 초등학교를 1 달라에 주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개관한 박물관이었다. 우리가 이미 목격하고 온 밀가루 공장 유콘 밀(Yukon Mill)을 중심 컨셉으로 박물관의 콜렉션은 이루어져 있었다. 캐나디언 카운티(Canadian County)에 속한 유콘은 1891년 스펜서(A. N. Spencer)에 의해 세워졌으며, 오클라호마시 인접 도시로 존속되어 왔다. 캐나다 카운티의 유콘 구역에서 있었던 골드러쉬(gold rush)를 바탕으로 명명된 유콘 시티가 지금은 오클라호마시티 직장인들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이 지역 농업의 중심지로서 대규모 제분작업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그런 역사적 바탕 위에서 비로소 우리는 Yukon Mill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콘의 시민들은 Yukon Mill에 대단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는 말로 큐레이터 캐롤의 설명은 시작되었다. 보헤미아에서 이민 온 체코인들의 자본으로 세워진 것이 이 제분소들이었다. 1891년 이 도시가 세워지고 철도까지 부설되자 이 도시는 급속히 번성하게 되었다. 1898년에 이르자 이 도시는 체코 이민자들의 보금자리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유콘은 '오클라호마의 체코 수도'로 알려질 정도였다.

 


박물관에 통째로 기증된 이발소


박물관 행사를 후원한 지역의 기업들


박물관 소장 사무용품


통째로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는 치과의원


유콘시에 관한 신문기사들을 스크랩해 놓은 자료들


통째로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는 잡화상 콜렉션

  

1893년에는 소규모 제분공장인 유콘 제분 곡물 회사[Yukon Milling and Grain Company]가 사업을 시작하여 급속히 성장했고, 1915년에는 해외로 곡물을 수출까지 하게 되었다. 그 첫 제분소는 없어진지 오래지만, 대형 곡물창고는 지금도 66번 도로와 철로가 만나는 지점에 서 있었다. 지금도 건물 북쪽의 외벽에는 유콘 제분소[Ykon Mills]”, “유콘 최고의 밀가루[Yukon’s Best Flour]” 등의 글자들이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동쪽에는 유콘 최고의 밀가루[Yukon’s Best Flour]/미국 최고급 근대 제분소[No finer or more modern mills in America]/유콘 제분 곡물 회사-유콘 오케이/유콘은 오클라호마의 체코 수도[Yukon Czech Capital of Oklahoma]” 등의 글귀들이 새겨져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 정부는 이 회사로부터 많은 밀가루를 사다가 굶주린 동맹국들을 도왔다는데, 그 덕에 이 회사는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콘밀 관련 자료들과 설립자들


유콘밀 관련 자료들

 

유콘 제분소를 중심으로 하는 이 지역 산업과 경제 관련 생활사 콜렉션들을 설명한 다음, 캐롤은 우리를 1층으로 인도하여 이 학교를 거쳐 간 졸업생들과 교사들의 사진이 가득한 방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물론 각종 교과서, 학용품, 학교 비품, 생활기록부 등 학교와 학생들에 관한 생생한 자료들이 방 안에 그득하였다. 일종의 살아있는 아카이브(archive)였다.

 


학교 졸업생 관련 자료들


학교 졸업생 관련 자료들


1959년 교사들 사진

 

***

 

박물관은 작았지만, 그곳의 콜렉션들은 1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이 도시의 삶을 보여주는 스토리의 원천이었다. 설명을 들으며 폐교를 비싼 값에 매각, 처분하는 우리나라가 문득 생각났고, 무사려한 처사가 나를 많이 안타깝게 했다. 이곳에서는 폐교를 단 1달라에 이 지역 사람들에게 넘기고, 그 공간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쓰도록 도와주고 있다 한다. 이미 썩어버렸거나 엿장수들의 손에 엿 값으로 넘어가 지금은 모조리 사라진 우리 고향의 각종 생활사 자료들을 보관, 전시할 지역 박물관을 폐교에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리 비까번쩍한건물로 우리의 외면을 치장한들 무엇 하랴. 역사와 스토리가 빠진 도시는 영혼이 빠져나간 인간의 육체나 마찬가지! 그런데 이들은 폐교를 활용하여 자신들이 스스로 모은 생활사 자료들을 박물관으로 만들고, 이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주민들은 자원봉사 큐레이터 역할을 함으로써 선대로부터 이어온 삶의 모습과 문화를 계승, 보존하며 후대로 이어주고 있었다. 자신들의 삶에 대한 자부심과 철저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66번 도로의 역사성과 유콘 시티에 대한 부러움을 함께 느끼며, 우리는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입구 쪽 코너에 세워놓은 박물관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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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학술문2011. 11. 5. 01:25

  <물질에 나서는 해녀들>

  <물질을 마치고 뭍에 오르는 해녀들>


토론문(2011. 11. 2.)



제주학의 글로컬化(glocalization), 그 모범적 선례의 수립을 지향하며

                                                                             조규익(숭실대학교 교수)


지역학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들이 참여하여 현대학문의 전향적 흐름인 통섭(統攝)이나 융합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학문적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분야입니다. 제주학연구센터의 신설을 통해 제주지역학을 진작(振作)하려는 제주발전연구원의 미래지향적 도전에 경의를 표합니다. 주강현 교수님, 조동오 교수님의 발표와 「제주학연구센터 운영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잘 읽었습니다. 주 교수님과 조 교수님의 발표는 「제주학연구센터 운영 기본계획」을 크게 보완해주시는 내용으로 생각되며, 저는 두 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따라서 저는 두 분의 발표와 「기본계획」을 읽은 소감 정도의 소박한 견해를 표명하는 선에서 토론자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고자 합니다.

***

제주학연구센터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각 지역에는 지역학을 연구하는 기관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학연구소의 철학이나 비전이 시대정신에 맞게 제시되어야 하고, 활동의 방향성 또한 그에 맞추어 고안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주는 한국 속의 제주이기도 하고 세계 속의 제주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제주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한국 혹은 세계 안의 한 부분이라는 보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문화적으로 본토 및 세계와의 적절한 관계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제주의 정체성은 살아날 수 있고, 세계화와 지방화라는 일견 상충되는 방향성 또한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제주의 특수성만을 강조할 경우 제주학은 결코 멀리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특수성을 몰각(沒却)한 채 보편성만 추구한다면, 제주도의 정체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상반되는 두 방향성을 발전적으로 통합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길이 제주학연구센터의 성패를 가름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기본계획」의 모두(冒頭)에 밝힌 ‘계획수립의 배경’에서 저는 현실적인 고민을 발견했습니다. 제주지역이 풍부한 문화자원을 갖고 있지만, ‘세계화의 흐름과 국제자유도시 지향 속에 제주인의 문화적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 ‘제주인들이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제주학의 대중화 실현이 요구’된다는 점 등이 해당 내용의 핵심입니다. 이런 현실인식은 뒤쪽에 제시된 제주학연구센터 설립의 비전[“지역을 넘어 세계로 향하는 제주학 정립” : 「기본계획」, 64쪽]과는 약간 어긋난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제주인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당위와 ‘세계화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는 현실의 상충을 「기본계획」의 첫머리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계획」의 도처에서 제주학연구센터의 차별화를 모토로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지역 뿌리를 찾는 작업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지역주민에게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하여 궁극적으로 지역발전의 견인차 역할’[「기본계획」 67쪽]을 해야 한다거나, ‘제주지역을 대상으로 제주지역의 내재적 발전을 위한 실천적 활동을 지향하며, 제주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추구해야 한다’는 등 대상과 활동의 범주를 제주로 국한하는 논조는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공간적 범위를 한반도, 일본, 동남아, 몽골, 중국, 대만, 연해주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와 전 지구로 확대해야 한다는 점 또한 강조하고 있습니다.[「기본계획」, 70쪽] 이처럼 「기본계획」에서 발견되는 약간의 어긋남은 역설적으로 새롭게 출범하는 제주학연구센터가 유지해야 할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제를 다음과 같이 세울 수 있다고 봅니다.

제주학의 중심은 제주이고, 한반도와 세계는 그 변방이다.

제주학의 특수성은 한반도와 세계 지역학의 보편성과 긴장의 관계를 갖는다.

탈식민의 시대인 지금, 그리움과 선망의 대상일지언정 제주를 변방으로 보는 본토인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본토를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제주인들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서울⋅부산⋅인천 등을 제외한 어느 지역도 제주만큼 타 지역이나 타국과 교류가 많았던 곳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제주인들 만큼 제주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를 느끼는 지역민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체성은 ‘불변(不變)과 고착(固着)’에서 형성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질적인 것들의 섞임과 변화를 통해 ‘내 것’을 좀 더 선명하게 구분해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체성입니다. 본토나 세계 문화와의 교류를 기피할 이유가 없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기존의 지역 연구소들이 정체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사업의 대상이나 범위를 자신들의 영역만으로 한정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계획」의 ‘비전’은 대단히 도전적이면서도 타당합니다. 그런데, 핵심 분야나 구체적인 사업으로 들어가면 비전의 내용은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습니다. 핵심 분야[「기본계획」, 64쪽]에 ‘본토 및 세계와의 연계사업’이 들어가야 하고, 세부사업 추진계획[「기본계획」, 78쪽]에 ‘본토와의 비교연구/다른 나라들과의 비교연구’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제주도는 인구의 유입을 통한 저변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제주에서 출생한 사람’ 뿐 아니라 주제로 이주해온 사람은 당연히 제주인으로 넣어야 하고, 타지에 살면서 제주를 연구하는 등 제주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넓은 범위의 제주인’으로 넣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점은 연구팀 구성원을 제주도 내 인력에 국한하지 말고 본토나 외국인도 포함시킬 수 있는 근거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 교수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연구 주체의 존재에 대하여 ‘대학-외부 연구주체, 대학-사회’라는 맥락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는데, 제주 내의 연구자나 제주 외의 연구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제주도 및 제주대 출신이거나 그와 연관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학문적 기반이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큰 문제입니다. 그런 한계를 뛰어넘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와 함께 ‘연구자체 사업’[「기본계획」, 86쪽]의 ‘제주도민 대상 제주학 교육사업 실시’에서 대상범위를 제주도민으로 한정한 것은 단견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제주도 밖의 주민들까지도 대상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제주학 교육사업’[「기본계획」, 79쪽]은 아카데미즘(academism) 일변도를 지양해야 합니다. ‘해녀학교/제주 민요학교/제주 민속놀이학교’ 등 놀이와 일이 통합된 체험적 교육만이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제주 해양문화 연구’[「기본계획」, 80쪽]에도 ‘제주 거주 작자의 창작문학 연구’ 혹은 ‘제주를 소재나 공간으로 한 문학 연구’ 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만약 이런 점들이 보완되면, ‘제주학연구센터의 단계별 발전과정’[「기본계획」, 76쪽]은 ‘제주학연구센터 독립기(2017)’에 ‘제주학연구센터 확장기(2020)’까지 추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주학의 대상지역을 제주만으로 한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토론자가 체험한 바에 의하면, 본토의 해안이나 오사카 등지에는 출가(出稼) 물질 후 눌러 살게 된 해녀들이나 그 후예들이 남아 있습니다. 중국의 해안에도 북한의 해안에도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에도 제주 해녀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단순히 물질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민속문화의 매개자로서 노 젓는 노래, 물질하는 노래, 각종 설화 등 많은 문화적 콘텐츠를 그런 지역들에 유포시킨 공로자들입니다. 제주학의 아카이브 구축 사업은 이런 현장조사를 병행하면서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주 교수님께서 강조하신 아카이브 확충의 방법들은 반드시 실천에 옮겨져야 할 것입니다. 아카이브를 소홀하게 생각해온 것이 우리나라 지역학회나 연구소들의 공통된 폐단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제주학연구센터는 그런 문제점의 해결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삼아야 하리라 봅니다.

***

주 교수님께서도 이미 언급하셨지만, 제주인에게 ‘변방의식의 극복’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중심적 영역의 확보를 통한 정체성의 확립은 제주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제주를 특별자치도로 설정한 것은 제주도민들의 변방의식을 떨쳐버릴 수 있는 첫 기회라고 봅니다. 진정한 ‘탈식민’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행정조치와 함께 제주도민의 자생적 의식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방언, 민속 문화, 고유한 생활양식 등 제주의 문화를 살리고, 그것들을 통해 제주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일이야말로 제주인들에게는 정신적 홀로서기의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학연구센터는 그 확실한 이론적⋅실제적 바탕일 수 있습니다. 센터를 중심으로 시대의 보편적 요구인 융복합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본토나 해외의 경험 있는 학자들이나 컨설팅 분야의 인력들을 초치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외국으로부터 섬 문화의 활성화를 통해 이룩한 선례들을 활발하게 도입할 수만 있다면, 제주학연구센터의 발전 단계는 훨씬 앞당길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할 때 정부로부터 큰돈을 끌어오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제주 연구자들의 인력풀을 확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제주를 주제로 하는 프로젝트의 개발에 적극 참여하게 하는 것도 간접적인 투자방식으로는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제주를 주제로 하는 프로젝트 팀을 꾸릴 경우 연구센터의 연구원이 공동연구자로 적극 참여하거나 소정의 절차를 거쳐 연구센터의 자료를 서비스하는 등 현실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왕 제주학연구센터가 출범한 이상 제주 지역 내 기존의 학회나 연구소, 대학 등과의 역할 중복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들과 발전적인 제휴를 맺고, 장기적으로는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 제주학연구센터는 빠른 시간 안에 지역학의 글로컬化를 이룩한 모범적 선례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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