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13.08.02 16:47

 

 

전공 분야의 우물 깊은 곳에서 만난 새로운 영역들 … “작은 것에도 의미가 있죠”

-박태일·조규익·박정규 교수의 어떤 시도들-

                         

                                                              

                                                                                                                                    윤상민 기자 <교수신문>    

 

 

시 전공자의 지역 문학 연구, 고전문학 전공자의 고려인 한글문학 연구, 신문방송 전공자의 시 전집 편역…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종래의 국문학 연구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근포 조순규 시조 전집』, 『소년소설육인집』(도서출판 경진 刊)을 발간한 박태일 경남대 교수(국어국문학과), 『CIS 지역 고려인 사회-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태학사 刊)를 상재한 조규익 숭실대 교수(국어국문학과), 『단재 신채호 시전집』(기별미디어 刊)를 내놓은 박정규 전 청주대 교수(신문방송학과)가 그 주인공이다. 자신의 주 전공 분야를 가로질러 새로운 분야에 발을 딛는 이들의 작업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3, 5월에 『근포 조순규 시조 전집』, 『소년소설육인집』을 발간한 박태일 교수의 작업은 지역문학총서 시리즈 15, 16권이다. 말하자면 지역문학연구의 일환으로 시작한 셈이다.

 

박 교수는 오랫동안 계속됐던 일국주의 문학연구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로 지역문화연구를 시작했다. 기존의 국가주의 체제에서 소외됐거나 도태됐던 중견 작가나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우리의 민족문학이라는 큰 전통 속에 남기고 복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국가주의 체제에서 소외됐던 지역작가 발굴 사실 박 교수의 지역문화 연구는 이미 1990년대 후반에 경남·부산 지역을 연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지역문학연구>라는 학술지를 14집까지 낼 만큼 열정적으로 매달렸지만, 학술진흥재단의 변화로 원고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중단됐었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지역문학회(회장 김동근 전남대)를 창립하면서 그의 연구는 오히려 전국권으로 확대됐다. 제주, 전남, 충청, 인천에서 뜻을 같이 하는 교수들이 뭉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로 <한국지역문학연구> 총서를 2권까지 발간했다.

 

그렇다고 경남, 부산지역의 연구가 미진해진 것은 아니다. 이번에 출간된 15, 16권에 이어 그의 예전 작업들의 결실이 계속해서 총서로 출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의 지난한 작업의 결과물과 그 과정 속에서 뜻을 공유한 이들의 활동은 이렇게 한국지역문화연구의 풍성한 열매로 맺히고 있다.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박 교수는 “지역 문학을 연구하면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라 작품의 상업성이 떨어져서 출판이 매우 어렵다. 입력부터 편집, 교정까지 주변 지인과 제자들과 함께 알음알음 하고 있고, 출판에 따른 모든 부담도 편역자 본인이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HK사업이니 BK사업은 그들의 작업과 상관이 없어 보인다. 이번에 출간한 『근포 조순규 시조 전집 무궁화』에 그가 부여하는 의미는 뭘까. 경남 지역의 중요한 작가의 발굴이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美文主義의 전통을 가진 한국 시조의 전통과는 다른 사회학적인 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엮어낸 『소년소설육인집』 은 1920년 자생적 계급주의 문학을 몇몇 문학가가 독점했다는 국문학계의 통념의 반대편에 서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아동문학, 지역문학가의 저변을 찾아냄으로써 계급주의 문학에 대한 반성을 시도했다. 올해 출간될 총서 17권은 1950년 이전까지 부산지역에서 나왔던 동인지에 대한 연구다. 잊힌 혹은 뭍힌 매체를 발굴해내기 위해 오늘도 연구실 불을 밝히는 박 교수는 말한다. “작은 것이라고 해서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고려인 1, 2 세대의 한글문학은?

 

해군사관학교, 경남대를 거쳐 현재 숭실대에서 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조규익 교수. 그는 지난달 『CIS 지역 고려인 사회-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을 펴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이른바 CIS(독립국가연합: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에 속한 몇몇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고려인이 겪어 온 ‘탈향과 이주’의 역정을 추체험했다. 모든 소수민족들은 러시아인이 돼야 한다’는 스탈린의 폭압적인 동화정책, 오랜 디아스포라의 고됨으로 우리 말과 문학과 역사를 잃은 고려인 2, 3세대를 만나고 온 이야기를 그는 이 책에서 풀어놨다. 문학과 역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이었다.

 

조 교수는 외모와 약간의 생활양식, 그리고 ‘고려인’이라는 민족의 칭호만 뺀다면 그들을 동족으로 생각할만한 요소를 발견하기도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일본 제국주의를 피해 이주한 고려인은 구소련의 다수민족에 의해 또 다른 식민지인으로 타자화됐고,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서조차도 ‘주변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구소련 해체 후, 각 공화국들이 독립될 때도 ‘새로운 주변인’일 뿐이었다. 꿈에 그리던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았지만, 이곳 역시 그들에게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공고한 ‘중심부’일 뿐. 조 교수는 3년의 긴 여정 끝에 한글로 기록된 1세대와 2세대 고려인들의 문학과 예술을 추적해냈다.

 

학부에서는 정치외교학을, 대학원에서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박정규 전 청주대 교수(신문방송학과)가 지난 2월 펴낸 『단재 신채호 시전집』도 그의 광범위한 연구 이력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는 청주대 교협회장 당시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다 해직되기도 하는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그의 연구 지평은 계속해서 확장돼 가고 있다. 당시 민족문화추진회의 고전번역 1기생인 그는 박사과정에서 조선왕조시대의 신문을 연구했던 신문방송학자는 지역 언론, 한국신문학사 등의 연구 속에 1999년 신채호를 만났다. 단재가 지은 시가를 새롭게 발굴하고 기존에 발표됐던 국문시, 시조, 한시들을 정리해 『단재 신채호 시집』을 출간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신채호에 푹 빠져있다. 개화기 암울한 민족적 시련기에 활발한 언론활동과 독립운동, 아나키즘 운동에 매진했던 단재는 감옥에서 순국함으로써 그의 주옥같은 시들 역시 빛을 보지 못하고 역사 뒤켠으로 사라졌다. 박 전 교수는 신체시의 효시로 불리는 육당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11)보다 훨씬 이전에 단재가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적지 않은 시가를 발표했으며, 한시나 새로운 형식의 시가를 소개함으로써 전통 시가의 맥을 계승하고 이를 변용해 근대적인 시가를 모색해냈음을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어쩌면 학문이란 이처럼 전공 분야의 우물을 깊게 파내려가며 만나는 수많은 학문의 뿌리들이 뒤엉켜 더불어 뻗어나가는 굵은 뿌리처럼, 결국 하나의 학문이란 이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이들의 다음 저서가 궁금하다. <교수신문 2013. 7. 29. 3면>

 

Posted by kicho
연행록 - 일반2009.08.1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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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숭실대학교 가을 축제-숭실 시 낭송대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詩와 퍼포먼스의 만남, 숭실 詩 낭송 축제


Ⅰ.  시 낭송 축제 개요

<詩와 퍼포먼스의 만남, 숭실 詩 낭송 축제>는 2009년 가을 축제 때 행해질 문화행사로서 숭실대학교 전교생을 참여 대상으로 하는 시 낭송 경연대회이다. 학생들이 창의력을 한껏 발휘하고, 소통 ․ 단결과 같은 협업의 정신을 체험할 수 있도록 전공학과, 학년, 동아리 간의 경계를 불문, 개인 혹은 듀엣 혹은 단체로도 참여 가능하도록 하였다. 9월 18일까지 인터넷으로 참가 신청한 팀 가운데 9월 26일 예선을 거쳐 10팀을 선발한다. 소정의 상금을 걸고 펼치는 10월 8일의 본선 경연에는 본선에 진출한 10팀의 공연은 물론, 기성 시인들의 시 낭송과 다양한 문화 예술 공연은 곁들임으로써 풍성한 문화행사가 될 것이다. 

1. 참가 대상 및 참가 형태
▪ 숭실대학교 전교생(전공학과, 학년, 동아리 경계를 불문)
▪ 개인 혹은 듀엣, 단체 참여 가능

2. 낭송 작품
참가자가 기성 시인들의 작품 가운데 1편을 직접 선택함.(예심과 본심 동일 작품으로 함)

3. 시 낭송 방식
암송을 원칙으로 함.
시 내용 전달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퍼포먼스, 소도구 사용, 음악, 분장, 춤, 노래, 랩 등 연출 가능.(각 팀에서 필요한 소도구 및 음악 등은 각 팀에서 준비해야 함.)
각 팀의 낭송 시간은 10분을 초과할 수 없음.

4. 상금
▪ 대상 1팀(70만원)
▪ 금상 2팀(각 50만원)
▪ 은상 3팀(각 30만원)
(수상하지 못한 팀에게는 당일 시를 낭송해주신 시인들의 시집을 각 팀에게 증정함)

5. 심사 기준 
▪ 시 선정의 수준
▪ 내용 전달의 명료성
▪ 낭송(표현) 방식의 창의성
▪ 시 내용과 낭독 방식의 조화 및 적합성

6. 일정
1. 참가 신청: ktla@ssu.ac.kr (현재-9월 18일 마감) 문의처: 820-0846
2. 예선: 2009년 9월 26일(토) 오후 2시-5시, 벤처관 311호
3. 본선 리허설: 2009년 10월 8일(목) 오전 10시-12시, 벤처관 309호
4. 본선: 2009년 10월 8일(목) 3시-6시, 벤처관 309호


Ⅱ. 시 낭송 축제 내용

일시: 10월 8일(목) 3시-6시  장소: 벤처관 309호

1부
▪ 개회사(인문대학장)
▪ 축사(총장)
▪ 초대 시인의 시 낭송 4명(최승호, 문정희, 정우영, 우대식)

중간 휴식(전통 떡 나누기)

2부
▪ 시 낭송 대회(본선 10팀)
▪ 노래 공연 2곡(詩를 가사로 한 가곡 1인, SBS 스타킹 출연 고교생 파바로티)
▪ 심사 결과 발표 및 시상식
Posted by kicho
글 - 학술문2007.04.29 17:55
 

 
시집 『디지털 사계』를 받아 들고


김인섭 교수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오늘 저는 정년은퇴를 기념하여 시집을 간행하시는 이재관교수님의 퇴임예배에 귀중한 순서를 맞아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까마득한 사람이 이 엄숙하고 뜻 깊은 자리에 서기까지 망설임이 없지 않았습니다만, 맑고 깨끗한 마음을 정갈한 언어로 담아 시집으로 발간하시는 교수님을 뵈면서 축하드리는 일에 사양만 하는 것은 시 전공자로서 도리가 아니다 싶은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시집이 발간되자마자 건네주신 시집을 받아 읽고 저는 기존 시에서는 흔히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감동을 받았고, 교수님의 시적 경지에 크게 놀랐습니다. 이런 감동과 경탄의 마음을 여러분 앞에서 말씀 드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남다르게 얻게 되어 오히려 감사드리고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집 뒤에 수록되어 있는 교수님의 경력과 논저목록만으로도 학자로서 학문적 업적과 성과가 가히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만 죄송스럽게도 이 분야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시피 합니다. 그렇지만, 교수님의 시집 속의 작품 하나하나를 통해, 한 시인이 오랜 시간을 두고 만들어온 마음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의 치열한 시가 도달하고자 했던 정신의 세계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환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시집을 내는 일이 한 사람의 일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특히 한 평생 학문에 매진한 분에게 있어서 얼마나 아름다운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시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는 예술의 한 장르로서 문학입니다. 문학에는 시 외에도 소설과 희곡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장르가 어떻게 다른지를 말할 때 흔히 희곡은 ‘놀이’, 소설은 ‘이야기’라고 한다면, 시는 ‘노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하루 일과를 도식적으로 나누어 보면, 낮에는 세상 속에서 실제의 삶을 살아갑니다. 무대 위에서 놀이를 하는 희곡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낮 동안의 행동으로는 다하지 못했던 삶들을 찻집이나 술집에서 이야기로 풀어내기도 합니다. 이야기로도 못다 푼 마음 속 깊은 감정은 나중에 노래방에 가서라도 풀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 시는 이야기 끝에 풀어내는 노래와도 같은 것입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쌓이고 쌓였던, 일상생활에서는 좀처럼 내비치지 않는 깊은 생각, 그윽한 감정을 은밀하게 표현하는 문학입니다.


또한, 시는 언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예술입니다. 언어를 가장 정교하게 갈고 다듬는 과정이 요구되는 예술입니다. 언어는 우리의 정신적 삶에서 공기와 같은 것이지만, 우리의 언어는 이미 탁해질 대로 탁해졌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언어를 다듬는 일은 단순한 기예가 아니라 우리의 타고난 좋은 마음을 갈고 닦는 일이기도 합니다. 번잡한 세계에서 조용히 물러나 이 세계를 고독하게 깊이 음미하는 자들의 과업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시집을 받아 든다는 것은 이같은 고귀한 작업이 빚어낸 작품들을 접하는 그야말로 정밀한 즐거움을 누리는 일입니다. 시집을 받아든 우리는 교수님을 직장의 동료나 선배, 일상인으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시인의 영혼과 교감하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저는 이 시집을 읽다가 이 분이 한 평생 시를 쓰셨더라면 우리 문단에 분명히 한 자리를 차지하셨을 거라는 생각을 금방 하게 되었습니다. 시 세계가 남다르고, 시적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집에 들어 있는 시 몇 편을 잠시 들여다 보겠습니다. 먼저, 시집 50쪽에 실려 있는 <새>라는 시를 보겠습니다. 이 시는 전체 다섯 연으로 되어 있는데, 특히 마지막 연은 놀라운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새’는 그 자유로운 비상 때문에 시인들이 즐겨 표현하는 시적 소재입니다. 그래서 예사 표현으로는 진부할 수도 있는 위험한 시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새’를


        영혼의 날개로

        우주와 입 맞추는

        아름다운 시집(詩集)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김현승 시인은 자신의 고독을 표상하는 이미지로써 ‘까마귀’라는 새를 즐겨 상징화한 적이 있습니다. 김현승 시인도 이 까마귀를 두고서 ‘영혼의 새’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 시의 새는 영혼의 날개로 우주와 입 맞춘다고 하여 김현승시의 비유보다 매우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새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시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시적인 관습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작고하신 오규원 시인이 <한 잎의 여자>라는 시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서 ‘시집같은 여자’라고 비유한 적이 있는데, 제가 알고 있기로는 ‘시집’이라는 말을 시의 비유로 표현했던 유일한 경우가 아니었나 합니다. 비유의 구체성이나 파격성에서 기성 시인에게서도 흔히 느낄 수 없는 참신한 표현을 보여주었고, 그 때문에 시적인 긴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함축적이고도 탁월한 표현에서 교수님의 시인으로서의 태도와, 시에서 추구하고 있는 시정신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현승의 경우처럼 이 시인에게 있어서도 ‘새’는 영혼으로 표상되면서 시인에게 있어서는 시적인 분신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영혼’이며, 그 영혼은 지상의 온갖 굴레와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우주의 신적인 세계와 교감하고자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혼입니다. 그런데, 더욱 아름다운 대목은, 이러한 새는 다름 아닌 ‘시집’ 자체라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교수님께서 쓰신 모든 시들은 영혼의 새가 비상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지상의 척박한 삶을 벗어나 신성한 우주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고뇌와 희열이 담긴 언어의 파노라마와 같은 것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는 동안 찬송가 394장 <주를 앙모하는 자>라는 찬송의 리듬을 마음 속으로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 독수리 같이 모든 싸움 이기고 근심 걱정 벗은 후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 주 앙모 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라는 노래 말입니다. 이 시를 통해 저는 영혼이 강건한 인간의 힘찬 상상력을 접하였고 속된 세계를 일거에 승화시키는 신성한 전율에 휩싸이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만약 김현승 시인의 시표현처럼, 하나님께서 더욱 값진 것으로 바치라 하실 때, 이 시인이 신에게 드릴, 가장 나중까지 지니고 있을,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을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아름다운 시집이 아니겠습니까?


조규익 교수님께서 시집 말미에 교수님의 시세계에 대해 치밀하고도 체계적인 해설을 덧붙여주셨습니다. 적절한 안내를 해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교수님의 시정신의 근저에는 언제나 절대자에 대한 구도자적인 겸허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시집 84쪽에 있는 <엄동설한>이라는 시를 그 예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첫 연만 읽어보면


       닫힌 그대의 창은

       빙벽처럼 날마다 두꺼워지고

       위엄 있게 빛나,

       다가서는 내 모습만

       말없이 반사하는 거울입니다.


시인이라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는 겸허한 자들입니다. 이 시에서도 그러한 시인의 본령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여기서 ‘그대’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창’은 빙벽처럼 날마다 두꺼워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인에게 단절감을 주는 부정적인 게 아니라, 위엄 있게 빛나는 존재입니다. 나아가 그 존재는 시인을 되비추어 스스로 성찰하게 만듭니다. 우리 인간들은 이 시의 3연에서 보는 것처럼 스스로 잠재울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그대의 세계로 성급하게 나아가고자 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우리는 그분 앞에서 눈도 뜨지 못하는 미미한 존재라는 겸허한 성찰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부분의 두 연에서는 “낮엔 반사되는 햇빛에 / 눈을 뜨지 못하고 / 밤이면 / 가랑잎 구르는 소리조차 / 과분한 낭만”이라거나,  “거울마다 갉아 지워지는 / 내 반쪽 모습이 / 엄동의 고요를 / 초침처럼 구릅니다.”라는 표현을 접하게 됩니다. 위엄 있게 빛나는 절대자와 지상의 어둠 속에 쇠락해 가며 뒹구는 인간존재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엄정한 질서를 시인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깊은 신앙은 이같은 겸허한 자세에 굳은 뿌리를 내리는 게 아닌가 합니다.


예로 든 이 작품 외에도 이 시집에는 신앙적인 시심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적지 않게 실려 있습니다. 신앙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상력의 근저에 신앙심이 작용하고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시집의 미덕은, 종교적인 신앙과 문학 예술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팽팽한 긴장을 보여주고 있어서 독자들이 신성성과 심미성이 잘 어우어진 품격 높은 정신의 세계를 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시에서도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수님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연어의 회귀>를 들고 싶습니다. 시집 46쪽에 실려 있는 작품 전문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담수에 비해 바다는                      그러나 떠남이 운명이었다면

 짜고 험하고 거칠었지만                 회귀(回歸)는 더 끈질긴 본능.

 내게 광활한 자유와 풍요와

 환상을 주었다.                            잉태와 부활을 위한

                                                변치 않는 DNA 안테나가

 어려서 떠날 때에는                       내게도 있었다.

 스틸헤드 치어처럼

 머뭇거렸으나                              돌아갈 고향은

 금방 대양에 익숙해지고                 좁고 가파르고 위험한 시내

                                                아무 교통표지판도 없는 계곡.

 생의 희로애락을

 바닷물에 듬뿍 적셔                       그래도 회귀는

 돌아올 날이 있는 줄은                   바다보다 더 자유롭고

 까맣게 몰랐다.                            더 크게 거칠게 다가오는

                                                전율의 은총이었다.


저는 이 작품을 이 시집 전체의 에필로그로 읽고 싶습니다. 에필로그의 시라면, 시집 전체는 이 한 편의 시를 위해 쓰여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시가 너무 좋아 오랫동안 감상해보고 싶습니다만, 사정상 그렇게 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정말 좋은 시는 설명 필요 없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입니다. 이 시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읽은 소감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3연과 5연, 그리고 7연에서 시 속으로 한 동안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3연에서 ‘까맣게 몰랐다.’는 이 평범한 말 한 마디가 저에게는 깊이 울려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혹은 인간 사이에서 정말 ‘까맣게’ 모를 일은 흔치 않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는’ 경우는 빈번하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까맣게 몰랐다’고 합니다. 시인은 이제야 어떤 근본적인 각성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성을 얻게 된 계기는 누가 마련해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의 문맥에 비추어 보면 ‘은총’을 베푸시는 분의 지극한 사랑의 섭리 아니겠는가 합니다.


5연에서 말하는 “변치 않는 DNA 안테나”는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테나는 누군가와 수신하고 송신하는 장치입니다. 그렇다면 DNA 안테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그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의 입김으로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맺은 신과 인간의 생명적인 관계를 계속 교신해가는 안테나이며, 그것은 영적인 안테나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또한 지상으로 잉태해 내려와 부활 승천한 예수의 위대한 삶을 이끌었던, 그의 아버지와 연결된 안테나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그 안테나가 나에게도 있었음을 비로소 확인하고 감사하며 은총을 예감합니다.


마지막 연에서 회귀는 안테나의 저쪽에 계신 분에게서 비롯된 은총이며, 그 은총은 바다보다 더 자유롭고 더 크게 거칠게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초월적인 전율에 휩싸입니다. 이와 비슷한 경지를 박목월 시인은 그의 말년의 신앙시 <크고 부드러운 손>이라는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크고 부드러운 손이 / 내게로 뻗쳐 온다. / 다섯 손가락을 / 활짝 펴고 / 그득한 바다가 / 내게로 밀려온다. / 인간의 종말이 / 이처럼 충만한 것임을 / 나는 미처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돌아가는 삶에 대한 각성과 그 벅찬 은총을 실감하는 두 시인의 상상은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경험은 이렇게 보편적인 감동과 고백을 불러일으키나 봅니다. 저는 이 시를 앞으로 저의 ‘기독교문학’ 수업시간에 좋은 작품의 사례로써 학생들에게 소개할 생각입니다. 시심과 신앙심이 어우러져 이처럼 성스럽고도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작품은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시집 <디지털 사계>을 읽고, 엄정한 신앙인이자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탁월한 시인 한 분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시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이렇게 귀한 시인이 같은 교정에 계신 줄은 저야말로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정년 퇴임을 맞이하여서야 비로소 물밀듯이 밀려오는 한 시인의 시적인 전율을 느낍니다. 일생을 몸 바친 학교를 떠나시면서 예술의 향기와 빛깔로 옷 입힌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아 있는 저희 식구들의 마음마다에 아로 새겨주셨습니다. 소중하게 남겨주신 선물 감사드리며 받겠습니다.


학자로서 듬뿍 적신 노고는 이제 풀어놓으시고, 시의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자유로운 노래를 맘껏 부르셨으면 합니다. 육신의 몸은 시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시들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럴수록 시를 쓰시는 신성한 창조적 에너지는 더욱 새롭게 솟아날 것입니다. 우주와 입 맞추는 아름다운 시들을 앞으로도 더 많이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교수님의 앞날과 또 그와 함께 잉태될 시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2월 23일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