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3. 9. 17. 08:59

 


장영배 교수 자택 앞에서


장영배 교수 댁 거실


장영배 교수의 빛나는 따님 혜나 양


장영배 교수 부녀와 함께 맛있는 점심을

 

 

미국에서 만난 고마운 사람들-2

 

Dr. Chang, Young-Bae

 

 

 

미국에 도착한 지 3주가 다 되어가는 오늘. 한국에서부터 읽기 시작한 박계영(Kye-Young Park)의 책 <<The Korean American Dream>>을 다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자 그가 만들어 사용한 어구 하나가 !’ 하고 떠올라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바로 ‘anjŏng ideology’란 말.

 

그는 그 말의 동의어로 ‘Establishment, Security, Stability’ 등을 제시했는데, ‘(생활기반의) 구축, 안전, (지속적) 안정성쯤으로 번역될 수 있으리라. 말하자면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들이 추구하는 안정 이데올로기란 바로 먹고 사는 방도의 모색, 각종 위해(危害)나 병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일, 외부의 충격이나 환경의 변화에도 흔들림 없는 기득권의 지속성등이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게 어찌 이민들에게서 비로소 시작된 정신이랴. 까마득한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거친 황야와 강줄기들을 넘어가며 해가 뜨는 동쪽으로 이동해 왔고, 드디어 한반도에 정착함으로써 정착민으로서의 안정 이데올로기를 추구해온 것 아닌가. 그러니 어딜 가나 한 곳에 뿌리박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생활 습관은 조상 때부터 시작되어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굳어졌다고 봐야 한다.

 

남의 땅에서 아예 뿌리박기로 작정하고 떠나 온 이민들 뿐 아니라 우리처럼 단 몇 개월 혹은 1년 동안 머물려고 이 땅에 온 사람들에게도 안정 이데올로기는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철학이다. 더구나 단 시간 내 안정 이데올로기를 구현해야 하는 단기 체류자들로서는 도착하자마자 시차 적응을 못 해 휘청거리면서도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

 

15년 전의 경험으로 미루어, 안정적인 주거, 이동 및 통신수단의 확보 등은 미국 생활에서 가장 긴요하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나마 한국인들이 많아서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들이 있는 LA와 달리 드넓은 평원 스틸워터에서 도움을 줄 한국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시차로 비몽사몽 하루 이틀 지내면서 우리는 점점 한계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져 온 비상식량도 밑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40도에 육박하는 햇살 아래 걸어 다니면서 무언가를 해결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예전에 OSU의 학부생으로부터 한두 번 받은 이메일을 뒤지다가 몇몇 한인 교수의 이름을 발견했고,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그 가운데 한 분인 장영배 교수[OSU 기계공학과])’를 찍어 전화를 드렸다.

 

간단히 내 소개를 하고나자 그 분이 대뜸 내가 연락을 해야 하는데, 먼저 연락 주셔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재미한인들의 상위 1%안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하는 성공적인 직종이 전문직, 그 가운데서도 성공적인 직종이 미국 대학의 한인 교수들이다. 미국에 온 한국인들로부터 연락 받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대개 미국 대학의 한인 교수들이라는 어떤 선배의 귀띔을 기억하고 있던 터라, 내 스스로 그 분들에게 연락하기를 꺼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좀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통화를 시작으로 장 교수님은 기꺼이 나서서 우리의 정착을 돕기 시작했다. 장 교수님은 사모님과 함께 우리를 멋진 호숫가의 레스토랑으로 초대하여 점심을 대접해 주셨을 뿐 아니라 수시로 차를 몰고 와서 우리의 시장보기를 도와주셨고, 소개해 주신 한국인 학생의 도움으로 전화를 개통했으며, 결국 몸소 우리를 차에 태우고 에드몬드 시에 가서 자동차를 사게 하심으로써 정착의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 분의 도움으로 자동차를 사는 과정에서 우리는 참 많을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 같으면 대충 후보차종을 고른 다음 이 차 사는 게 어때요?’라고 권할 법 한데, 그 분은 그러지 않으셨다. 우선 우리로 하여금 사이트를 통해 후보 차종을 몇 개 고르고 조건들을 모두 확인하도록 하신 다음, 다시 각종 사이트들을 알려 주시면서 여러 가지 지표들을 통해 그것들을 세밀히 비교하게 하셨다. 그런 다음 각 차종의 문제점들이 보고되어 있는 다른 사이트를 통해 해당 차종들을 또 한 번 스크린하게 하셨다.

 

그 과정에서 섣불리 결정하지 마세요라는 충고를 빈번히 건네시는 것이었다. 차를 사게 하신 것은 물론 보험사까지 꼼꼼하게 챙겨주신 장 교수님. 그 과정에서 성미 급한 나로서는 약간 답답하기도 했지만, 참으로 귀한 가르침이었음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 가르침이 단순히 차 사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인생사 자체의 소중한 지표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실력 있고 열정적인 교수로서의 학교생활, 다정다감한 가장으로서의 가정생활, 실천적 목자이자 신도로서의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해 나가시는 장 교수님 덕에 생면부지의 땅 스틸워터에서 이제 막 시작된 가을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

 

남을 돕는다는 것. 특히 해외에서 조건 없이 동포를 돕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평소 닦아 온 신앙의 힘과 사랑의 정신이 아니라면,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9. 13. 11:38

 


공항에 픽업 나온 Du 교수 내외와 함께 스틸워터(Stillwater)의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나누며


연구실에서-Du 교수

 

미국에서 만난 고마운 사람들 1

         Dr. Yongtao Du

 

 

나그네가 되어 보면 안다. 사람은 많으나 반겨 주는 사람이 귀하다는 것을. 그래서 객지살이를 경험해본 사람만이 객지살이의 어려움을 알고, 객지에 나온 사람 도울 줄을 안다. 물론 객지살이를 경험했다고 모두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녀야 하고, 돌고 도는 게 세상의 이치임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마음과 지혜를 갖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배고픈 경험을 한 사람만이 배고픈 설움을 안다. 그렇다고 배고팠다가 부자가 된 사람 모두가 배고픈 사람들을 돕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자신의 것으로 바꿔 볼 줄 아는 따스함과 여유, 즉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어짊[]을 지닌 사람만이 이런 선행을 실천할 수 있다. 아무나 나그네를 반겨하고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다.

 

***

 

초행길의 오클라호마 공항에 내렸다. 학과 비서 수잔이 보낸 이메일에 Dr. Du가 픽업 나온다고는 했으되, 1시간이 넘는 거리의 공항으로 픽업을 내 보낼 정도면 그저 갓 박사학위를 받은 젊은 강사쯤이겠지지레 생각하고 애당초 OSU의 사이트에 들어가 그가 누구인지 검색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서로들 약속 시간보다 30분쯤이나 공항 안에서 헤맨 뒤에 만난 그는 젊은 중국인이었다. 다행히 중국사, 동양사, 혹은 아세아 문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기에 차를 타고 이동하는 1시간 남짓 동안 우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추정한 것처럼 갓 박사학위를 받은 강사가 아니었다. 일리노이-어바나(Illinois-Urbana)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 대학에서 동양문명 연구’, ‘동아시아’, ‘역사학 주제론’, ‘세계사 읽기 세미나등을 강의하고 있는 어엿한 부교수였다.

물론 학과장은 내가 한국인임을 감안하여 중국인인 그에게 픽업을 부탁했을 것이다. 그 부탁을 받은 그는 귀찮은 티 한 점 안 내비치고 직접 차를 몰아 그 먼 길을 달려온 것이었다. 한동안 말을 나누다 보니 우리는 통하는 게 많았다. 사실 우리는 중국에 대하여 그리 호의를 갖고 있지 않았고, 특히 동북공정 등으로 양국의 역사학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미국이라는 바다에서 만난 그 순간 우리는 중국식 표현으로 이미 라오 펑여우(老朋友)’였다.

스틸워터에 도착한 뒤 그는 부인까지 불러내 우리를 중국음식점으로 데려갔다. 같은 중국인인 그 부인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참한가. 시차에 시달리고 16시간이 넘는 먼 비행길에 지쳐 입맛이 썼지만, 미국식으로 달고 짜게 변한 중국음식을 그리도 맛있게 먹으며 우리에게 권하는 두 교수 부부의 은근한 정을 반찬 삼아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부터 우리를 숙소로 찾아와 부족한 게 없는지 살펴주는 그 부부의 정성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나 혼자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중국 땅에서 학부를 마치고 석사와 박사 과정으로 유학 나온 그가 아닌가. 낯도 설고 말도 선 이국땅에서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을 것인가. 어쩌면 그런 경험이 바로 우리를 바라보며 역지사지의 동정심으로 발휘된 게 아니었을까. 물론 앞에서 말한 대로 아무리 그런 경험을 갖고 있다 해도 원래 따뜻한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우리는 이곳 오클라호마의 한촌(寒村/閑村) 스틸워터에 와서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얻기 시작했다. 나그네 생활을 몇 차례 해보았지만, 이 이상 더 큰 횡재(橫財)가 어디에 있을까. 부디 나도 그들에게 횡재라고 생각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9. 9. 08:32

 

 

 

 

자동차를 구입하고

 

 

15년 전 미국에서 자동차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생이 재미 동포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한 요인으로 내 마음에 고착되어 있음을 이번에 확인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는 미국 도착 3일 만에 어떤 동포로부터 겁 없이 자동차를 구입했고, 그 자동차를 처분할 때까지 찜찜하게 1년을 보내야 했다. 시동이 안 걸린다거나 가다가 서는 등 심각한 문제는 결코 없었으되, 100% 말끔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는 내 성격 탓에 당시 그 자동차는 모든 불쾌함과 스트레스의 근원이었다. 제반 조건들을 찬찬히 살피고 치밀하게 고려한 뒤 판단을 내려야 후회 없이 자동차를 살 수 있다는 것은 자동차의 천국 미국에서 그 때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대도시 몇을 빼곤 대중교통이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은 미국 땅에서 자동차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옛날 우리네 부모님들이 하루를 꼬박 걸려 면 소재지 장터를 걸어서 다니셨듯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날씨에 걸어서 월마트니 베스트바이니 스테이플스니 세탁소니 학교 연구실 등을 돌아다닐 순 없는 일 아닌가. 특히 다른 도시나 지방을 가게 되는 경우엔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처럼 모든 것들에 앞서 해결해야 할 것이 자동차 구입인데, 워낙 돈 단위가 크고 신경 쓸 부분이 많아서인지 대부분 미국 정착 과정의 맨 나중에 자동차 문제를 해결하기 마련이다.

  

6개월 동안 탈 것이므로 새 차를 살 필요는 없고, 여러 조건들을 꼼꼼히 살핀 뒤에 같은 값이면 최상의 중고차를 구입하라면서 틈틈이 각종 사이트의 정보를 알려주시는 OSU 기계공학과 장영배 교수님의 조언을 토대로 자동차의 탐색에 나섰다.[사실 이 분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성미 급한 우리는 약간의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며칠 만에 덜컥 사버렸을 것이다!] 자동차의 대국답게 자동차를 거래하는 공적, 사적 사이트들이 엄청나게 발달되어 있는 미국이다. ‘연식, 제조사, 마일리지, 가격, 지역, 판매자 연락처등을 달고 있는 신차 및 중고차들이 각 사이트마다 무수히 나열되어 있다. 간단히 연식과 제조사, 마일리지 및 자동차의 내외관 등을 입력하면 상하로 구분된 적정 구입가격까지 산정하여 보여주기도 하고, 그런 정보들을 입력하면 사고자 하는 자동차종에 어떤 문제들이 보고되었으며, 혹시 그 차종이 사지 말아야 할 자동차리스트에 속해 있는지 여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 뿐 아니다. 약간의 돈을 내고 VIN[한국에서의 차대 번호?]을 조회하면 사고내용이나 수리 이력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니 적당히 눈속임으로 자동차를 팔아먹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 상식을 갖춘 이곳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렇게 가혹한 환경에서 근래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들이 선전(善戰)하는 이면에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음을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중고 자동차 한 대를 사기 위해 이곳 저곳 다니면서 우리는 미국사회를 지탱하는 힘의 한 부분이 투명성에 있다는 점 또한 깨닫게 되었다.

 

미국 도착 거의 한 주 만에 드디어 자동차 한 대를 구입하게 되었다. 작은 도시 스틸워터에 있는 딜러샵들을 대충 다 둘러보았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팔기 위해 사이트에 내 놓은 차들을 여러 대 보고 나서도 만족스런 차를 발견하지 못한 우리였다. 이제 자동차 없이는 더 지탱할 수 없다는, 인내의 한계에 도달했을 즈음. 인근 에드몬드 시의 한인 교회 이종태 목자님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사연을 올리자마자 좋은 차가 나타났다는 그 분의 답 글이 있었고, 우리는 장 교수님의 차로 한 시간 거리의 그곳에 가서 드디어 그 차를 사게 되었다. 장 교수님과 이 목자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딜러를 설득하여 조건이 좋은 중고차를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드넓은 미국 땅에서 드디어 날개를 달게 된 우리는 단 하루 만에 스틸워터의 도로망을 대충 섭렵하게 되었고, 땀 흘리지 않고 연구실에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차 없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날아가면서 덩달아 시차에서 오는 피로 또한 눈 녹듯 사라지는 어제 오늘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9. 8. 07:40

 

 


OSU의 백규 연구실에서. 왼쪽이 수잔, 오른쪽이 다이아나

 

둘쨋날 부재중에  다이아나가 써놓고 간 메모

 

 

학과 비서들과의 만남

 

 

Fulbright Scholar로 선정되었음을 통보 받은 뒤 미국 내의 연구기관을 정하고 그 책임자로부터 초청장을 받는 일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토네이도 소식이 좀 걸리긴 했으나, 학교의 자매대학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 아니라 한적한 중남부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연구와 힐링을 겸할 수 있다고 본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은 망설일 필요가 없는 적지(適地)였다.

 

우리의 인문대학에 해당하는 OSU‘College of Arts and Sciences’의 대닐로위츠[Bret Danilowicz] 학장에게 이메일을 보내자 하루 만에 쾌락의 응답이 왔고, 그로부터 일주일 만에 역사학과 학과장 로간[Michael F. Logan] 교수로부터 초청장이 도착했다. 그런데 그 초청장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내용은 선생님께서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우리는 선생님께 연구실, 비서의 지원, 컴퓨터와 인터넷 서비스 등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During your stay here, we will be able to provide you with and office space, secretarial support and computer and internet access]라는 요지의 약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비서의 지원(secretarial support)’.

 

대학에서 비서는 으레 총장실에나 앉아 있는 묘령의 여직원으로 알고 있던 내 상식으로 비서의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로간 교수의 말은 묘한 감동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30년 가까이 한국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제자 대학원생들이 대부분인 조교들로부터 강의와 연구에 도움을 받아오던 나로서는 학과 비서의 존재나 성격에 대하여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하바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란 제목의 책과 드라마로 번역소개된 ‘The Paper Chase’가 한동안 대중의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 킹스필드(Kingsfield) 교수에게 비서 노팅엄(Mrs. Nottingham)이 있었다. 외부인들 특히 학생들에게 타협을 모르던 고집스런 캐릭터였지만, 교수에겐 매우 충직한 비서였다. 이처럼 명비서 노팅엄[배우는 베티 하포드(Betty Harford)]의 존재 같은 간접자료를 통해 나는 겨우 미국 대학 학과들의 비서 상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 역사학과의 비서는 수잔[Susan Oliver]과 다이아나[Diana Fury]인데,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주로 수잔과 메일을 주고받았다. 이메일을 보내자마자 간결하면서도 자상하게 답신을 보내주던 그녀 덕분에 나는 준비과정에서 많은 수고를 줄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킹스필드 교수의 노팅엄을 잠시 잊은 채, 한결같이 이쁘고붙임성 좋은 한국의 비서들만 상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부친 짐의 배달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끙끙대다가 아무래도 학과 비서를 통해 알아보아야겠다는 계산으로 시차 적응도 안 된 사흘 만에 학과 사무실로 나가 수잔과 다이아나를 만났다. 중년 혹은 중년에 가까운 두 여성이 나를 맞았고, 그 가운데 약간 젊은 수잔이 매우 사무적으로 나를 배정된 연구실로 안내하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것 아닌가. 그 때서야 이곳이 미국이고, 미국 대학의 학과들에는 노팅엄만 있을 뿐, 한국의 비서들은 없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내가 미국 우체국으로부터 받은 전화번호와 연락처를 주며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자 ‘Yes!’하며 나가더니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하는 수 없이 학과 사무실에 가서 다이아나에게 수잔의 행방을 물은 즉 짐을 찾으러 우체국에 나갔다는 것이다.

 

 아뿔싸, 엄청난 무게의 박스 두 개를 연약한 여성이 어찌 다룰 수 있단 말인가. 이곳 스틸워터(Stillwater)의 지리에 어두웠던 나는 다만 내 짐이 어느 우체국에 보관되어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찾아야 하는지만 알고자 했으나, 그녀는 내 말을 듣자마자 해당 우체국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조교에게 우체국 편지 심부름조차 시키길 꺼려하던 나인지라, 그 소식에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다. 40 만 원 이상의 탁송료가 들었던 박스 두 개의 중량이 미안함으로 내 마음을 짓눌렀다. 아무리 비서라지만, 첫 대면에 짐꾼 노릇을 명()한 셈이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남아 있던 다이아나에게 사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노라고 구구하게 해명했지만, 그녀의 말은 간단했다. ‘It’s our duty!’란다. 결국 수잔을 만나지 못한 채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고, 하루 뒤 다시 들른 내 연구실에는 태평양을 건너 온 박스 두 개가 오롯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수잔, 박스에 대한 언급은 입도 뻥긋 아니 한 채 우리를 맞아 주는 게 아닌가.

 

그 해프닝을 통해 제 할 일에만 충실한미국인들의 업무 철학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연구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교수들의 일을 충실하게 거들고 해결해주는 것이 학과 비서들의 업무이고,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자신들의 본업임을 그들은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혹 생색이라도 내면 어쩌나?’하고 걱정하던 내게, 그녀는 사무실의 꽃이 아닌 충직한 전문가로서의 존재의미를 120% 보여주고 말았다. 미국 도착 이후 내 인식의 한계가 심각하게 도전을 받은 첫 사례였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8. 31. 23:25

 


하늘에서 내려다 본 오클라호마시티 시가지


하늘에서 내려다 본 오클라호마 산하


한가한 오클라호마 공항에서


오클라호마 공항에서 확인한 자연의 위력


공항으로 픽업 나왔던 OSU의 Du 교수 내외와 스틸워터의 중국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스틸워터(Stillwater), 그 평온과 정밀(靜謐)의 입체적 공간성

 

 

27일 오전 11[한국 시각] 인천공항을 출발, 큰 원을 그리며 태평양 상공을 건넌 OZ23627일 오전 950[미국 시각] 시카고의 오헤어 공항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내외국인들로 장사진을 친 가운데 두 시간이 넘는 검색과 입국 수속을 거친 오후 230. 드디어 오클라호마로 가는 작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로부터 두 시간 후 한적한 오클라호마 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오클라호마의 산하(山河)이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뿐. 수없이 가로 세로 직선으로 그어진 도로망은 마치 신의 솜씨인 듯 망망한 평원을 바둑판처럼 분할하고 있었고, 그 위로 부드러운 구름뭉치들이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평화 그 자체의 정물화였다. 그 위에 어찌 토네이도의 폭력을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바닷가 모래사장에 한참동안 공들여 이쁜성채를 만들어 놓은 어린아이가 갑자기 생겨난 심술로 마구 휘저어 놓듯, 인간의 앞에서 조화를 부리고픈 신의 의지도 그렇게 작동되는 것일까. 한적하면서도 요새같이 든든하게만 보이는 공항의 화장실 팻말 위쪽의 토네이도 피난처[Tornado Shelter Area]’란 팻말을 보고서야 지난 5월의 악몽 같았을 토네이도의 현장이 바로 이 지역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

순식간에 짐을 찾은 뒤, 픽업 나온 OSU 역사과의 Du[Yongtao Du] 교수를 만난 것이 오후 5시 반. 한적한 길을 두 시간여 달려 드디어 스틸워터에 도착했다. 오클라호마가 카우보이의 본산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스틸워터는 소떼를 몰던 카우보이들이 소들과 함께 코를 박고 물을 마시며 갈증을 지웠을 만한, 조용한 평원이었다. 시차로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Du 교수 부부를 따라간 곳은 자신들의 홈 푸드를 대접하겠다며 데려간 대형 중국음식점이었다. 그들의 호의와 성의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그곳 식당의 음식을 통해 강남의 유자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속담을 새삼 확인한다. 잔디 곱게 깔린 구릉에는 나지막한 대학 아파트들이 널찍널찍 앉아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조용한 곳이 바로 우리가 들어갈 윌리엄스 아파트[101 N. University Place Apt #1]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기 무섭게 시차에 지친 아내는 곯아떨어지고, 나는 나답게불면의 새벽을 맞아야 했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