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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12.25 송년회 유감
카테고리 없음2019. 12. 7. 22:43

어딘가에 내 모습도 있을 것 같은데...

                                                                                                                                                                                                                             백규

 

    1968년도에 초등학교[그 때는 ‘국민학교’]를 졸업했으니, 끔찍하도록 긴 세월 '반세기'가 지났다. 국가적으로는 무장공비들이 떼거지로 내려와 준동했고, 내 고향의 경우 서해바다를 통해 들어온 간첩들이 사람을 죽이고 도망가던 시절이었다. 이런 경험들로 막바지 베이비부머 세대에 속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공산주의 혐오증’이 확실히 자리 잡게 되었다. 북괴[그 때는 북한을 이렇게 불렀다]가 살포한 ‘삐라들’을 다발로 주워 학교에 제출하는 것도 등하교 길에 우리가 수행하던 일과들 중 하나였다. 매우 흉흉하던 시절이었다.

 

    그 춥고 암울한 나날들을 보내다가 열네살에 고향을 떠나 48년째 타향살이를 하는 중이다. 그간 먹고 사는 최소한의 문제는 해결했으나, 여전히 ‘행복한 국민’은 아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토착 좌익들이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의 탈을 쓰고 백주 대낮에 활보하고 있으니’, 불안하긴 반세기 전보다 오히려 더하다. 그간 매일 사는 것이 ‘살얼음판’이었고, 불판 위의 콩 튀듯 늘 바빴다. 흡사 ‘오늘 이것을 못 끝내면 내일이 없다’는 듯, 바쁜 학구의 세월을 살아왔지만, 지금 생각하면 회한만 가득할 뿐 잡히는 게 없다.

 

    그러다가 서너 해 전부터 초등학교 동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나처럼 코를 찔찔 흘리며 핏기 없는 얼굴에 오들오들 떨며 용케도 유년기의 여울을 건넌 그들이었다. 중간에라도 만났더라면, 기름기 자르르 흐르는 그들의 ‘청・장년 시절’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다 늙어 만난 우리 모두의 얼굴에서는 이미 기름기가 빠진 지 오래였다. 그들은 내 거울이니, 나 또한 그들의 거울이리라.

    그래도 좋기만 하다. 지금의 모습에서 옛날 그들의 모습을 찾아내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더욱 좋은 것은 우리 모두 그다지 ‘옛날의 어두운 추억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옛날의 추위와 배고픔은 옷이 부실했고 먹거리가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누군들 풍족하게 지냈으랴만, 내 고향은 상대적으로 더했다. 내겐 그런 체험들이 ‘유년기의 상흔’으로 남아 있고, 아마 내 친구들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서로 그런 상처들을 들추어 내지 않고 보듬어 주려는 ‘고운 심성들’을 지니고 있다.

 

***

 

    한 달 전부터 송년회 연락이 전해져 왔다. 인천이라? 가야지! 반복해서 SNS에 뜨는 집행부의 공지와 유혹의 문구들이 내 메마른 가슴을 따스하게 했다. 그러나 날짜가 닥치면서 정말로 부득이한 사정이 생겼다. 전날 밤 잠을 설치며 고민하다가 이른 아침 ‘몸 대신 마음만’ 가기로 했다. SNS에 불참의 댓글을 다는 내 손이 한없이 느려지기만 했다.

    친구들이 보낸 유혹의 글들 가운데 ‘우리의 만남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 수 있을까?’라는 협박조의 호소가 유난히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나이가 이쯤 되고 보면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 가운데 ‘부음’이 많은데, 그 친구는 그걸 떠올렸으리라. 그렇다. 40대까지만 해도 죽음은 나와 거리가 먼 일인 줄로만 알았다. 50대에 들어서자 주변에서 날아오는 부음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50대를 졸업하면서는 부쩍 잦아졌다. 그러는 사이 나도 고향친구들의 얼굴이 몹시 보고싶어졌다. 내 얼굴이 비치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면서 깔깔 웃다보면 마음속의 찌꺼기가 모두 씻겨 내려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품을 떠나고 하나씩 둘씩 가진 것들을 내려놓기 시작하는 나이 대가 바로 ‘6학년’이다. 6학년에 들어서면 재산도 명성도 학벌도 몸만 무겁게 할 뿐,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대자연을 찾아 그간 몸과 마음에 낀 녹을 벗겨내고 1년에 한 번씩이라도 어릴 적 고향의 친구들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그들의 얼굴에 비치는 내 모습을 확인하는 것. 그보다 더 귀하고 즐거운 일이 어디에 있으랴. 올해 친구들과의 해후 기회를 놓치고 말았으니, 지루한 1년을 또 다시 어떻게 기다린단 말인가.

 

    친구들, 1년 동안 부디 건강히들 지내시게!!!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1. 12. 25. 00:49

송년회 유감



11월부터 각종 송년회의 공지(公知)가 시작되더니, 12월에 들어서니 여름철 소나기 양철지붕 두드리듯 잦아졌다. 이메일로, 스마트폰 문자로, 카카오톡으로, 전화로... 문명의 이기가 늘어나면서 송년회 연락의 횟수가 늘어나고 신속해진 모습이 귀찮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늙어가는 처지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순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을까. 송년회 가운데 두 군데를 고르기로 했다. 하나는 고등학교 동기들과의 만남, 또 하나는 고향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아, 우리 모두는 50대의 힘겨운 능선을 넘고 있었다! 그런 우리들의 가벼운 호주머니를 배려한 집행부의 따뜻한 마음과 달리 날씨는 추웠고, 모임의 장소 또한 매우 썰렁했다. 장소가 썰렁하니 음식도 서걱거리고, 돌아가는 술잔 또한 힘이 없었다. 게다가 안주로 삼아야 할 대화 또한 건강과 주변사람들의 상사(喪事), 자녀들의 혼사, 전원주택, 명퇴 등 씁쓸한 메뉴들 뿐이었다. 고혈압, 당뇨, 암, 오십견, 뇌졸중 등등 대개 죽음의 문턱에서 발견됨직한 병명들이 난무했고, 명퇴 후 창업했다가 퇴직금을 말아먹은 이야기도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대학의 교수로 잘 나가다 불시에 당한 뇌출혈로 거동이 불편한 어떤 친구의 모습은 시간의 위력에 저항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을 확인시켜 주었다. 위로하고 걱정해주는 마음들로 냉기는 덜어졌으나, 의욕도 정열도 퇴색한 우리들의 모습은 서로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었다. 어제까지 질세라 ‘원샷!’을 외치며 부딪치던 술잔들의 광채는 모두 어디로 간 것이며, 술자리가 끝나기도 전에 노래방을 예약하던 패기들은 모두 어디로 숨은 것일까. 썰렁한 자리가 파하기도 전에 슬금슬금 집구석으로 찾아 돌아가는 모습들이 딱하기만 했다.

이번 고향친구들의 모임엔 암 투병을 시작한 친구도 합석했다. 우리의 나이와 암이라는 병명이 갖는 함의(含意)를 모임 내내 안주 삼아 되씹는 모습들이 우울했다. 그 자리엔 암과 싸워 거의 이겨가는 도중의 두 친구도 있었다. 자신들이 선배라며 암 투병 중인 그 친구를 위로하는 그들의 명랑한 목소리도 우울한 분위기에 묻혀버리고, ‘잘 싸워 이기라!’는 등 토닥임이 기껏 우리가 건넬 수 있는 최대의 호의임을 확인하고 돌아서야 했다.
 
***

몇 해 전인가. 대선배 한 분으로부터 송년회의 분위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해가 갈수록 참석자들이 줄어드는 게 가장 슬프다는 것이 그 분 말씀이었다. 툭하면 친구들의 부음을 듣기 일쑤이고, 얼마간 소식이 뜸하다 싶으면 병원에 누워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송년회에 가기 싫어졌노라는 푸념이었다. 그 때만 해도 그 말씀이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할 날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착각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이즈음 송년회에 참석하면서 그 분의 그 푸념이 결코 남의 것이 아니라는 슬픈 현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 옛날 당나라 여주(汝州) 사람 유희이(劉希夷)도 <백발을 슬퍼하는 노인을 대신하여[代悲白頭翁]>란 긴 시에서 ‘年年歲歲花相似[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건만]/歲歲年年人不同[해마다 사람 얼굴 같지 않구나]’이라는 탄식을 늘어 놓았으리라. 사실 유희이의 <대비백두옹>만큼 ‘늘그막 송년회’의 쓸쓸함을 잘 표현한 시는 없을 터. 길지만 전문을 들어 내 슬픔을 대변케 하고자 한다.

洛陽城東桃李花 낙양성 동쪽 복사꽃 오얏꽃

飛來飛去落誰家 어지럽게 날아 누구 집에 떨어지나

洛陽女兒惜顔色 낙양의 아가씨, 얼굴빛이 아까워

行逢落花長歎息 길 가다 낙화 보며 길게 한숨짓는군

今年花落顔色改 올해도 꽃이 지면 얼굴빛 변하리니

明年花開復誰在 내년 꽃 필 때에 뉘 다시 있으리

已見松柏摧爲薪 소나무 잣나무가 베어져 장작 됨을 이미 보았고

更聞桑田變成海 뽕밭 변해 바다 됨을 다시 들었다네

古人無復洛城東 옛 사람은 성 동쪽에 다시 없는데

今人還對落花風 이젯 사람 꽃바람 속 다시 서 있네

年年歲歲花相似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건만

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사람 얼굴 같지 않구나

寄言全盛紅顔子 들어보게, 한창 나이 젊은이들아!

應憐半死白頭翁 얼마 못 살 늙은이 가엾어 하라

此翁白頭眞可憐 이 노인의 흰머리 가련하지만

伊昔紅顔美少年 그도 지난날엔 홍안 미소년

公子王孫芳樹下 공자왕손 더불어 꽃나무 아래 놀고

淸歌妙舞落花前 맑은 노래 멋진 춤 꽃바람 속에 즐겼다네

光祿池臺開錦繡 호화로운 자리에서 잔치도 벌였고

將軍樓閣盡神仙 화려한 누각에서 신선처럼 즐겼네

一朝臥病無相識 하루아침 병 들으니 알아주는 사람 없고

三春行樂在誰邊 봄날의 행락은 누구에게 가버렸나

宛轉娥眉能幾時 고운 눈썹 아가씨는 언제까지 고우리?

須臾鶴髮亂如絲 머지않아 흰머리 실처럼 흩어지리니

但看古來歌舞地 예전부터 노래 춤이 끊임없던 곳이건만

惟有黃昏鳥雀悲 이젠 황혼 속에 새들만 슬피 우네


돌아가신 선배 교수 한 분은 내게 “이왕 나이 먹고 건강을 잃은 처지이지만, 남은 기간 ‘어그레시브하게 살다 가겠소!’”라고 말씀하셨다. 그 분이 마지막을 진짜로 어그레시브하게 사셨는지 알 수는 없으되,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나서 얼마 안 되어 그 분의 부음을 들은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허무했다. 그렇게 시간은 덧없는 것. 그래서 요즘은 송년회에 나가기가 ‘죽도록’ 싫은지도 모른다.

<2011. 12. 24.>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