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1. 12. 25. 00:49

송년회 유감



11월부터 각종 송년회의 공지(公知)가 시작되더니, 12월에 들어서니 여름철 소나기 양철지붕 두드리듯 잦아졌다. 이메일로, 스마트폰 문자로, 카카오톡으로, 전화로... 문명의 이기가 늘어나면서 송년회 연락의 횟수가 늘어나고 신속해진 모습이 귀찮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늙어가는 처지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순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을까. 송년회 가운데 두 군데를 고르기로 했다. 하나는 고등학교 동기들과의 만남, 또 하나는 고향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아, 우리 모두는 50대의 힘겨운 능선을 넘고 있었다! 그런 우리들의 가벼운 호주머니를 배려한 집행부의 따뜻한 마음과 달리 날씨는 추웠고, 모임의 장소 또한 매우 썰렁했다. 장소가 썰렁하니 음식도 서걱거리고, 돌아가는 술잔 또한 힘이 없었다. 게다가 안주로 삼아야 할 대화 또한 건강과 주변사람들의 상사(喪事), 자녀들의 혼사, 전원주택, 명퇴 등 씁쓸한 메뉴들 뿐이었다. 고혈압, 당뇨, 암, 오십견, 뇌졸중 등등 대개 죽음의 문턱에서 발견됨직한 병명들이 난무했고, 명퇴 후 창업했다가 퇴직금을 말아먹은 이야기도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대학의 교수로 잘 나가다 불시에 당한 뇌출혈로 거동이 불편한 어떤 친구의 모습은 시간의 위력에 저항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을 확인시켜 주었다. 위로하고 걱정해주는 마음들로 냉기는 덜어졌으나, 의욕도 정열도 퇴색한 우리들의 모습은 서로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었다. 어제까지 질세라 ‘원샷!’을 외치며 부딪치던 술잔들의 광채는 모두 어디로 간 것이며, 술자리가 끝나기도 전에 노래방을 예약하던 패기들은 모두 어디로 숨은 것일까. 썰렁한 자리가 파하기도 전에 슬금슬금 집구석으로 찾아 돌아가는 모습들이 딱하기만 했다.

이번 고향친구들의 모임엔 암 투병을 시작한 친구도 합석했다. 우리의 나이와 암이라는 병명이 갖는 함의(含意)를 모임 내내 안주 삼아 되씹는 모습들이 우울했다. 그 자리엔 암과 싸워 거의 이겨가는 도중의 두 친구도 있었다. 자신들이 선배라며 암 투병 중인 그 친구를 위로하는 그들의 명랑한 목소리도 우울한 분위기에 묻혀버리고, ‘잘 싸워 이기라!’는 등 토닥임이 기껏 우리가 건넬 수 있는 최대의 호의임을 확인하고 돌아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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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인가. 대선배 한 분으로부터 송년회의 분위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해가 갈수록 참석자들이 줄어드는 게 가장 슬프다는 것이 그 분 말씀이었다. 툭하면 친구들의 부음을 듣기 일쑤이고, 얼마간 소식이 뜸하다 싶으면 병원에 누워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송년회에 가기 싫어졌노라는 푸념이었다. 그 때만 해도 그 말씀이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할 날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착각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이즈음 송년회에 참석하면서 그 분의 그 푸념이 결코 남의 것이 아니라는 슬픈 현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 옛날 당나라 여주(汝州) 사람 유희이(劉希夷)도 <백발을 슬퍼하는 노인을 대신하여[代悲白頭翁]>란 긴 시에서 ‘年年歲歲花相似[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건만]/歲歲年年人不同[해마다 사람 얼굴 같지 않구나]’이라는 탄식을 늘어 놓았으리라. 사실 유희이의 <대비백두옹>만큼 ‘늘그막 송년회’의 쓸쓸함을 잘 표현한 시는 없을 터. 길지만 전문을 들어 내 슬픔을 대변케 하고자 한다.

洛陽城東桃李花 낙양성 동쪽 복사꽃 오얏꽃

飛來飛去落誰家 어지럽게 날아 누구 집에 떨어지나

洛陽女兒惜顔色 낙양의 아가씨, 얼굴빛이 아까워

行逢落花長歎息 길 가다 낙화 보며 길게 한숨짓는군

今年花落顔色改 올해도 꽃이 지면 얼굴빛 변하리니

明年花開復誰在 내년 꽃 필 때에 뉘 다시 있으리

已見松柏摧爲薪 소나무 잣나무가 베어져 장작 됨을 이미 보았고

更聞桑田變成海 뽕밭 변해 바다 됨을 다시 들었다네

古人無復洛城東 옛 사람은 성 동쪽에 다시 없는데

今人還對落花風 이젯 사람 꽃바람 속 다시 서 있네

年年歲歲花相似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건만

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사람 얼굴 같지 않구나

寄言全盛紅顔子 들어보게, 한창 나이 젊은이들아!

應憐半死白頭翁 얼마 못 살 늙은이 가엾어 하라

此翁白頭眞可憐 이 노인의 흰머리 가련하지만

伊昔紅顔美少年 그도 지난날엔 홍안 미소년

公子王孫芳樹下 공자왕손 더불어 꽃나무 아래 놀고

淸歌妙舞落花前 맑은 노래 멋진 춤 꽃바람 속에 즐겼다네

光祿池臺開錦繡 호화로운 자리에서 잔치도 벌였고

將軍樓閣盡神仙 화려한 누각에서 신선처럼 즐겼네

一朝臥病無相識 하루아침 병 들으니 알아주는 사람 없고

三春行樂在誰邊 봄날의 행락은 누구에게 가버렸나

宛轉娥眉能幾時 고운 눈썹 아가씨는 언제까지 고우리?

須臾鶴髮亂如絲 머지않아 흰머리 실처럼 흩어지리니

但看古來歌舞地 예전부터 노래 춤이 끊임없던 곳이건만

惟有黃昏鳥雀悲 이젠 황혼 속에 새들만 슬피 우네


돌아가신 선배 교수 한 분은 내게 “이왕 나이 먹고 건강을 잃은 처지이지만, 남은 기간 ‘어그레시브하게 살다 가겠소!’”라고 말씀하셨다. 그 분이 마지막을 진짜로 어그레시브하게 사셨는지 알 수는 없으되,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나서 얼마 안 되어 그 분의 부음을 들은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허무했다. 그렇게 시간은 덧없는 것. 그래서 요즘은 송년회에 나가기가 ‘죽도록’ 싫은지도 모른다.

<2011. 12. 24.>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