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도 제 연구실에서는 네 사람의 연구자들[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이 음악으로서의 보허자(步虛子) 악곡과 시가로서의 보허사(步虛詞)를 분석・정리하는 모임들을 가졌습니다. 이미 우리 팀은 세종대 궁중정재 ‘봉래의’와 고려시대 궁중 속악정재 ‘동동’을 복원하고 분석하여 책으로 엮어낸 경험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작업 또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작년 11월 21일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복원 공연 및 학술발표회를 가졌습니다.
보허자步虛子: 허공을 즈려밟고 훨훨 나는 신선이여!
태평성세 유토피아 이루시는 제왕이여!
국가지정문화재 전수회관 풍류극장
2020. 11. 21.
그 자리에서 이루어진 학술발표들과 공연을 함께 묶은 책이 오늘 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책 제목과 출판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허자步虛子
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
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
민속원, 2021. 3. 2.
이 책의 내용과 의미는 책의 서문과 목차에 잘 밝혀져 있으므로, 그것들을 여기에 붙이겠습니다.
◆ 머리말 ◆
신선의 음악과 춤,
노래 속에 즐거운 ‘시간여행’을...
보허자步虛子에 관한 멋진 설화 한 토막.
일설에 이르기를, “진사왕[조식]이 유산할 때 문득 허공에서 경을 외는 소리가 들리는데, 맑고 심원하며 굳세고 밝으므로 음을 아는 자가 본뜨고 그려내어 신선의 소리로 삼았으니, 도사가 이를 모방하여 보허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원異苑>> 권5
남북조 시대 최고의 산수시인山水詩人 사령운謝靈運이 “천하의 재능이 한 섬이라면, 그 중 8말을 조식이 차지하고, 내가 한 말을 가졌으며, 나머지 한 말을 세상 사람들이 나눠가졌다.”고 말할 정도로 조식曹植은 천재 시인이었다. 지금 보허성 혹은 보허자의 근원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에 보허자가 얼마나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웠으면, 그들은 조식을 내세워 이런 스토리까지 만들었을까
우리는 몇 해 전부터 중세왕조들의 궁중예술을 연구해오는 중인데, 고려․조선의 궁중예술들은 악곡․노래[시가/악장]․춤이 융합된 무대예술[정재呈才]이었다. 음악만으로, 춤만으로, 시가만으로는 그 미학의 진수를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융합예술체들이다. 그래서 각 부분을 연구한 뒤 하나로 합치는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올려야 완성되는, 복잡하지만 즐거운 작업들을 해온 것이다. 그간의 연구 결과들은 아래와 같다.
무대들
고려 및 조선노래 복원 연주회: 노래박물관 특별전[600년의 소리향]
-국립국악원 우면당, 2011. 11. 10.
세종, 음악으로 다스리다
-한중연 소강당[학술발표], 대강당[축하공연], 2012. 11. 27.
봉래의鳳來儀:세종의 꿈, 봉황의 춤사위 타고 하늘로 오르다!
–국립국악원 우면당, 2013. 11. 21.
동동動動: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사랑의 염원이여!
–국가지정문화재 전수회관 풍류극장, 2018. 12. 1.
펴낸 책들
조규익・문숙희・손선숙, <<세종대왕의 봉래의, 그 복원과 해석>>, 민속원, 2015.
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 <<동동動動: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 민속원, 2019.
동동에 빠져 지낸 뒤 보허자와 보허사를 만났고, 상당 기간의 연구를 거쳐 세 번째 복원공연 및 학술발표회를 가졌다.
초창기 도교의 재초의례齋醮儀禮에 쓰이다가 문인들에게 수용되었고, 궁중으로까지 들어갔다는 것 외에 보허자의 본질과 확산 과정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나마 문헌에 약간씩의 단서들이 남아 있어 추적은 가능했다. 보허자에 올려 불린 악장으로서의 <벽연롱효사碧烟籠曉詞> 덕에 보허사의 본질을 유추할 수 있었고, 보허사 범주 안의 시작품들을 많이 남겨준 중국 시인들과 조선의 시인들 덕에 시문학으로서의 보허사 수용양상을 살필 수 있었다. 15세기 여민락과 16세기 여민락의 관계 및 15세기 낙양춘의 선율을 바탕으로 16세기 보허자에서 15세기 보허자의 선율을 찾아낼 수 있었다. 또한 보허자 곡의 연주로 추었다는 <<악학궤범>>의 기록 덕에 학무鶴舞도 복원할 수 있었다.
우리는 1,500여 년 전의 보허자가 우리 곁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이렇게 추적해왔다. 이 책으로 1차 보고의 의무를 마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다시 ‘시간여행자’가 되어 또 다른 작품들과 씨름하다가 퍼뜩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신선의 음악과 노래, 춤 속에서 즐긴 ‘시간여행’은 매우 환상적이었고, 그래서 행복했다.
큰 도움 주신 한국연구재단과 힘들인 원고를 멋진 책으로 꾸며주신 민속원의 홍종화 사장님과 편집부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강호 제현의 애정 어린 비판을 고대한다.
2021. 3. 1.
지은이들을 대표하여
조규익
◆ 목차 ◆
제1부
총서 / 19
조규익
제2부
악장으로서의 <보허사步虛詞>, 그 전변轉變에 따른 시대적 의미 / 27
조규익
1. 머리말 28
2. 고려왕조의 보허자․보허사 수용과 1차적 의미 전변 32
3. 조선왕조의 보허자 계승과 콘텍스트의 복합성 44
4. 조선조 보허자 악장 텍스트의 실험과 2차적 의미 전변 51
5. 맺음말 68
제3부
조선조 문인文人들의 보허사步虛詞 수용양상 / 71
성영애
1. 머리말 72
2. 송대宋代 <<악부시집樂府詩集>>에 나타난 보허사步虛詞 개관 75
3. 문인文人들의 보허사步虛詞 수용양상 80
4. 맺음말 97
제4부
15세기 보허자 음악 복원 연구 / 99
문숙희
1. 머리말 100
2. 보허자 리듬 변천 과정과 15세기 보허자의 리듬 104
3. 15세기 보허자 음악 찾기 113
4. 맺음말 124
제5부
보허자 음악에 맞춘 성종대成宗代 학무 복원 연구 / 127
손선숙
1. 머리말 128
2. <<악학궤범>>의 <학무> 검토 132
3. <학무> 복원의 주요 키워드 11가지 135
4. <학무> 복원의 수용 범위와 근거 139
5. <학무>의 가무악歌舞樂 융합적 복원 안무보 198
6. 맺음말 200
제6부
총결 / 207
조규익
제7부
텍스트 / 223
1. 고려사 악지 오양선 기록224
2. 악학궤범 학무 기록225
3. 여민락 악보 226
4. 금합자보 악보000
5. 대악후보 악보000
Abstract 215
참고문헌 227
찾아보기 233
강호제현의 많은 조언과 편달,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1. 3. 19.
조규익 드림
◆췌언(贅言)◆
세상에 또 한 권의 책을 보태면서
책이란 무엇이며, 왜 만드는 것일까요? 많지는 않지만, 지금 제 서재에는 이름 모를 옛 선조들이 꼬박꼬박 적은 다음 묶어놓은 책 형태의 문적들과, 근대 이후 신활자로 출간한 선학들의 책들이 몇 권 꽂혀 있습니다. 글자를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변변한 종이도 없던 시절, 그 분들은 왜 그런 자취를 남긴 걸까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도 들으려 하지 않고 글자로 써놓아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던 그 당시에 그 분들이 느낀 좌절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지금은 모르지만, 앞으로 백년 천년 뒤 누가 있어 이 글을 보면 내가 이 땅에 살다 갔음을 알아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이런 문적을 남겼겠지요? 저는 그저 제가 하고 있는 공부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면 흐뭇하고 즐거워 이 날 이 때까지 아무도 읽어주지도 알아주지도 않는 글들을 반복적으로 쓰고 있습니다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아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가득 채운 미세먼지 한 톨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비로소 ‘남은 기간’과 ‘해야 할 것들’ 사이의 불균형이나 괴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생 시절 저를 아껴 주시던 나손(羅孫) 김동욱(金東旭) 선생님은 저를 만나실 때마다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물으셨고, 제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당신의 말씀을 툭툭 던지곤 하셨습니다. 나중에 선생님의 말씀들을 곱씹어 보며 그 말씀들 속에 담긴 아이디어가 얼마나 금쪽같은 것들이었는지를 깨닫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왜 그런 아이디어들을 속속 더 많은 논저들로 만들어 내지 않으실까?’ 물론 선생님은 당시 이미 등신대(等身大)의 논저들을 남겨 놓으셨으니, 거기에 새삼 무엇을 더 얹으실 수 없는 입장이셨지만, 어린 저로서는 의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저도 그 때 그 분의 연치에 도달했습니다. 남들의 논저를 읽어갈 때마다 ‘이건 왜 이렇게 썼을까?’, ‘이 점을 놓친 것 같군’, ‘이런 견해를 표명한 글들이 이미 나왔는데, 미처 읽지 못했군’ 등등.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후학을 만나 이야기하면, ‘그럼 당신이 한 번 써보구려!’라는 반박이 되돌아 올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생각을 논리화하는 작업에 착수한다는 것은 ‘열정과 힘’이라는 연료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이제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열정과 힘을 다른 말로 하면 ‘젊음’이겠지요. 신은 인간에게 아이디어를 풍성하게 주면서 열정과 힘까지 주지는 않습니다. 인생을 불태워 아이디어와 지혜를 얻었다면, 그 아이디어와 지혜는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닙니다. 그를 뒤따르는 누군가들에게 건네주어야 할 ‘대가 없는’ 선물일 뿐이지요.
이 책[보허자步虛子: 궁중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을 포함, 10권 정도를 시리즈로 내고자 한 것이 얼마 전까지 갖고 있던 제 내심의 계획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3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평가결과도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헛된 꿈’을 버리라고, 제 옆지기는 자꾸 다그치네요. 좀 과하고 헛된 꿈일까요?
보허자와 보허사는 위진남북조 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교 재초(齋醮)의례의 음악과 악장으로 출발한 것인데, 그것들이 일반에 널리 퍼지면서 문인과 예술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급기야 궁정음악으로 수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보허자가 처음으로 발견되는 사례는 <<고려사 악지>>의 당악정재 5건 가운데 '오양선'의 '악곡 보허자령과 그 연주에 맞추어 부르던 <벽연롱효사(碧烟籠曉詞)>'를 들 수 있습니다. 즉 오양선의 악장 <벽연롱효사>를 악곡 보허자령의 연주에 맞추어 노래 부른다는 뜻입니다. 그 악곡과 가사가 고려 말까지 궁중에서 왕성하게 공연되던 당악정재의 핵심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것이 조선조로 이어지면서 '고려 당악'이 지속되는 한편, 새롭게 악장을 창작하여 고려 당악의 곡들에 올려 부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왕조들이 보허자 및 보허사를 수용한 양상과 조선조 성종 때 보허자령에 올려 공연된 학무를 복원하여 공연한 것'이 본 행사의 핵심입니다. 유투브[https://youtu.be/FPvrJjcHi-o]로 들어가시면 실황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발표논문들은 <<한국문학과 예술>> 36집[2020. 12. 30. 발간예정]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질정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0. 11. 22.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소장 조규익 드림
=학술발표 및 복원 공연 주 내용=
步 虛 子
허공을 즈려밟고 훨훨 나는 신선이여!
태평성세 유토피아 이루시는 제왕이여!
"가무악(歌舞樂) 융합적 시각으로 본 조선전기의 보허자"
제1부 학술발표
조규익(숭실대): <보허사(步虛詞)> 수용태(受容態)로서의 <벽연롱효사(碧烟籠曉詞)>에 대하여
2020년 2월 개최 예정이던 학술발표 및 보허자 학무 복원공연을 연기하여 11월 21일(토) 14시에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학술발표와 보허자 학무 복원공연 등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학술발표와 공연을 중심으로 현장[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그 실황을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https://youtu.be/FPvrJjcHi-o로 실시간 중계합니다. 유튜브를 통해 발표와 공연을 함께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20. 11. 13.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배상.
=행사 팸플릿=
신선의 음악과 춤, 노래 속에 멋진 ‘시간여행’을...
조규익(숭실대학교 교수)
언제부턴가 우리에게는 특별한 꿈이 있었습니다. 예술인들과 학인들이 가슴 가득 품고 있었으되 펼쳐 보이지 못한, 작지만 울림이 큰 꿈입니다. 악사들의 반주로 가공(歌工)과 무용수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무대. 그 무대 주변에 둘러앉은 학인들이 예인(藝人)들의 몸놀림과 또 다른 하나가 되는 경험을 통해 비로소 이지(理智)의 샘을 열고 도란도란 그들의 미학을 담론하는 자리 말입니다. 세상 어디에 이보다 더 아름답고 성대한 공간이 있을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두 번의 멋진 무대를 만들었고, 이것들을 두 권의 책으로 엮어 낸 바 있습니다.
<지난 무대들> “봉래의(鳳來儀): 세종의 꿈, 봉황의 춤사위 타고 하늘로 오르다!”[2013. 11. 21./국립국악원 우면당] “동동(動動):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사랑의 염원이여!”[2018. 12. 1/국가지정문화재 전수회관 풍류극장]
<펴낸 책들> 조규익∙문숙희∙손선숙, <<세종대왕의 봉래의, 그 복원과 해석>>, 민속원, 2015. 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 <<동동動動: 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 민속원, 2015.
<새로 나올 책> 조규익∙문숙희∙손선숙∙서인화∙성영애∙임미선, <<보허자步虛子: 궁중 융합무대예술로 편입된 신선 예술의 아름다움>>, 2021. 1.
우리는 그동안 가꾸어 온 ‘꿈의 무대’를 이렇게 펼쳐 보여 왔고, 새로운 무대를 통하여 이번에도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앉으실 폭신한 좌석은 여러분을 모시고 그 옛날 고려∙조선시대의 궁중으로 날아갈 타임머신입니다. 좌석에 앉아 음악에 따라 춤추고 노래 부르며 임금의 장수를 축원한 보허(步虛)의 예술에 잠시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시면, 여러분은 그 옛날 진사왕(陳思王) 조식(曹植)이 어산(魚山)의 동아(東阿)에서 만난 ‘신선 예술’의 경지를 체험하시게 됩니다. 맑고 심원하며 굳세고 밝은 그 소리와 춤사위를 통해 허공을 날아다니는 신선들을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 그들과의 그런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되돌아올 현실의 공간에서 우리는 다시 씩씩하고 치밀한 논조로 새롭고 아름다운 경험들을 담론하고자 합니다.
원래 보허성(步虛聲)이나 보허자(步虛子)는 중국에서 발생한 도교음악이었고,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보허사(步虛詞)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그것을 유교적 패러다임으로 변용했고, 중세적 보편성의 한 요소로 끌어들이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임금이 앉아있는 궁중을 현실 속에 자리 잡은 ‘선계(仙界)’라 여겼습니다. ‘상선(上仙)’인 임금의 불로장생은 소망(所望)에 속하는 일이었지만, ‘보허 예술’에 담아낸 만백성의 염원을 통해 그것은 분명한 현실로 구현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시게 될 여러분이 바로 임금님들이십니다. 우리 궁중예술의 헌상 대상이 바로 임금이신 여러분들입니다. 여러 가지로 바쁘시겠지만, 잠시 이곳에 오셔서 저희와 함께 멋진 ‘시간여행자’가 되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한국문학과 예술>> 제35집을 발간했습니다. 하나의 학술지가 확고히 자리를 잡으려면 70~80호는 발간해야 한다고 보는데, 35집은 이른바 '꺾어지는 홋수'로서 안정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 비로소 진입했음을 의미합니다. 초심(初心)을 유지하며 100호[집]를 훌쩍 넘긴 다수의 학술지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우리가 그런 학술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라도 매 순간 기본을 다질 필요가 있음을 절감합니다.
'문학과 예술의 융합적 연구가 저희들이 지향하는 목표입니다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과제임을 항상 느낍니다. 무엇보다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지속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 학계에서 각종 연구소와 학술단체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는 있지만, 열악한 현실 때문에 내실을 기할 수 없는 것이 큰 문제이고, 우리 연구소 또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구소에 '볕드는 날'이 도래하리라는 희망 아래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
2006년 한국전통문예연구소로 출범했고, 그 후 한국문예연구소로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로 개명해 오면서 우리의 지향점은 예술작품에서 문학과 예술의 행복한 결합 양상을 분석하여 논리화 시키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그 지향점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근대 이전의 작품들 가운데는 문학과 예술의 융합체가 비일비재였고, 그런 작품들의 본질을 분석하기 위해서라도 잘 만들어진 도구가 절실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아직 효율적인 분석도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앞으로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협업(協業)의 정신 아래 활발한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하리라 봅니다. <<한국문학과 예술>>은 그런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드문 학술지입니다.
앞으로 더 잘해 보겠습니다. 우리 학술지에 많은 관심 가져 주시고, 적극적인 지도와 편달 또한 아끼지 말아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0. 11. 2.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조규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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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과 예술>> 제35집
[‘풍자・오락・죽음: 소설적 담론의 세 양상’ 특집호]
목차
특집논문 : 풍자・오락・죽음: 소설적 담론의 세 양상
1. 윤준섭, 조선 후기 화훼류 우언 <리국각매문답(籬菊閣梅問答)> 연구
2. 배정상, 일인칭 시점 딱지본 대중소설 연구
3. 서신혜, 유영모의 죽음철학 시작점으로서의 소설 「귀남과 수남」
4. 박선애, 노년의 고독과 좋은 죽음에 관한 두 시선 - 김기창의 <모나코>와 한승원의 <피플붓다>를 중심으로
일반논문
5. 한경자, 최승희의 러시아 공연 작품 분석 : 1956~1957 공연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6. 김은혜, 문화예술교육의 맥락에서 인문정신문화와 무용교육의 융합적 접근 모색
7. 성영애, 연산군대(燕山君代) 여악(女樂) 확대정책의 전개양상
8. 임재욱, 새로 발견한 금보 <<南薰舊譜>>의 특징과 자료적 가치
9. 장경우, 강령탈춤 대본의 통시적 변이양상 연구
10. 정영문, <한양가>에 나타난 한양의 놀이문화 연구
11. 강정화, 이광수의 미술비평문 연구
12. 안용희, 자본의 광학과 루저 혁명가 이상
13. 이주미, 조선족 서신을 통해 본 조선족의 경계인 의식과 민족 정체 성 –문화대혁명 이후 한중 수교 전까지의 서신에 나타난 '아리랑'을 중심으로
14. 최미정, <<신대륙>> 여성수필의 공간과 젠더지리
15. 반재유, 경남일보의 삼강의일사 연구
16. 조규익, 고려 말 「신찬태묘악장(新撰太廟樂章)」 연구-텍스트 구성양상과 그 정치・문화적 의미
*이 글은 <<동동動動: 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민속원/<<한국문학과 예술>> 30집 게재)에 대한 서평으로, 필자의 허락을 받고 퍼왔습니다.
궁중 융합무대예술 ‘동동(動動)’의 본질에 대한 모색과 결실-<<동동動動: 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민속원)을 읽고-
하경숙(선문대 교양학부 계약제 교수)
이 책은 고려조와 조선조의 궁중 연향에서 공연되던 가무악 융합 무대예술 ‘동동’에 관한 공동저술(저자: 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이다. ‘동동’은 고려 속악정재들 가운데 하나로서 아박(牙拍)이란 이름으로 조선조에서도 연행되던 가무악(歌舞樂) 융합의 궁중무대예술이다. 최근까지 <동동>은 ‘문자 텍스트로서의 동동’일 뿐이었고, 그것은 ‘고려속요·고려가요·여요·려가’등의 명칭으로 부르던 시문학 텍스트일 뿐이었다. 초창기 연구자들이 명칭에 대하여 갖고 있던 편견과 그로부터 확립된 문제들을 타개(打開)하고자 문학·음악·무용을 연구하는 저자들이 ‘동동’ 정재(呈才)의 융합예술적 성격을 분석적으로 고찰하기 시작했다. 중세왕조의 임금이나 고귀한 존재를 대상으로 토로한 불멸의 사랑과 불변의 서정이 융합 무대예술로 응집되었다는 것이 ‘동동’ 논의의 출발점이다. 특히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시간이 흘러도 계절이 바뀌어도 바치는 자의 사랑은 변함없음을 가·무·악으로 표현”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가무악 융합의 미학적 본질을 점검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다. 그리고 결국 ‘동동’은 전통무대예술의 진수로 꽃피어났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저자(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들은 <<대악후보>> ‘동동’의 리듬을 해석하여 선율을 찾고, 그 선율에 <<악학궤범(樂學軌範)>> 소재 <동동>의 노랫말을 구체적으로 붙여, 그 노래와 무용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속악정재 ‘동동’이 지닌 가무악 융합의 본질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각 장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저자들의 의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책은 전체 7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총서」, 2부는 「<동동>- 텍스트의 정체」, 3부는 「<동동>의 장르적 속성과 원형 모색」, 4부는 「조선전기 ‘동동’의 가무악 융합 양상」, 5부는 「조선전기 아박무 복원연구」, 6부는 「총결」, 7부는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노랫말 원문과 현대어 역, 복원음악 악보가 수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문헌과 재현 아박무(牙拍舞)를 비교·검토하여 상이점을 찾고, 조선전기 ‘동동’ 중기의 무용구조와 복원에 필요한 내용을 상세히 살피고 있다.
1부에서는 속악정재 ‘동동’의 성격을 살펴 그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또한 장르적 속성이나 명칭 등과 함께 학계에서 미해결된 속가의 문화·예술적 측면을 면밀히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동동’이 그동안 하나의 공연물로 연구되지 못한 원인은 악보와 무보 해석의 불완전성에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동동’의 음악을 찾아야 하고, 그 음악에 노랫말을 융합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노래와 무용을 융합함으로써 가무악 융합의 속악정재 ‘동동’을 온전히 복원”(21쪽)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담론을 뛰어넘어, 정재의 악곡과 노랫말 모두가 ‘동동’이라는 구체적인 융합예술작품으로 구현되는 핵심임을 밝히고 있다.
2부 「<동동>-텍스트의 정체」(조규익)에서는 ‘동동 텍스트가 지닌 문화·예술적 본질과 지향성’을 찾고 ‘송도지사(頌禱之詞)와 선어(仙語)’의 관계, ‘놀이와 선어의 상관성’등을 규명했다. 저자(조규익)가 “‘동동’은 생산 시점 이후 현재까지 노랫말과 음악·무용의 인접분야들이 하나로 융합된 텍스트로 존재해왔고, 그 예술·문화적 콘텍스트 양상 또한 적어도 근대 이전까지는 유지”(62쪽)되었다고 밝혀, 텍스트 하나만을 적출하여 해석하는 작업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이는 원천적 오류를 초래하는 일로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콘텍스트(context) 의 현실을 살피는 작업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동동’에 송도의 말이 많고, 그것들은 ‘신선의 말’을 본뜬 것이라 한 <<고려사 악지>>의 언급이야말로 속악정재 ‘동동’이 당시의 당악정재들과 상호텍스트적 연관성이 있음을 암시한다는 것이 저자(조규익)의 주장이다. 즉 당대 궁중악 중 당악과 속악은 ‘임금의 수와 복’을 송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행되던 예술장르였고, 그 범주에서 공연되던 정재들은 송도적 모티프의 구현을 지향하던 공연예술의 형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동놀이[動動之戱]’라 지칭한 <<고려사 악지>> 속악조에 따르면 동동이 지닌 놀이적 성격이 상세히 나타나고 있으며, 동시에 융합예술체로서의 놀이적 면모를 보여준다. 놀이에 상정된 대상은 임금이며 원시 제천행사들에서 공연되던 놀이들이 후대의 정재들에 이르러 그것들의 의례화·질서화를 통하여 완성된 예술의 모습으로 구현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당악정재의 창작원리나 동기·구조 등과, ‘동동’을 비롯한 속악정재들이 상호텍스트적 연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등을 상세히 보여준다. 이는 속악정재 ‘동동’이 당악정재의 악장들을 본뜬 송도를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으로 패러프레이즈함으로써 속악정재 나름의 독자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화론적 측면으로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제 3부 「동동의 장르적 속성과 원형 모색」(성영애)에서는 <동동>의 장르적 속성 및 그간 문제가 되어온 <동동>과 <장생포>와의 관련성 등을 살폈고, <동동>의 원형 모색과 함께 그동안 미해결된 문제들의 방향을 찾고자 했다. 저자(성영애)는 “<동동>은 궁중에서 공연된 국가음악으로 정재의 악곡과 노랫말 모두 <동동>이란 명칭 아래 역사서나 악서(樂書)에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다”(77쪽)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장르 명칭을 ‘고려속악가사’로 부르고, 그 줄임말로 ‘고려속가’를 사용하는 것이 <동동>의 장르적 속성을 나타내는 정확한 용어임을 밝히고 있다. 저자(성영애)는 그간 논란이 많았던 <동동>과 장생포와의 관계를 다양한 문헌의 비교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고려사>> 악지와 열전의 기록을 중심으로 곡명과 창작자, 왜구 출몰지역으로 살펴본 내용을 통해 <동동>은 관찬서와 일반 문집에 기록된 <장생포>와 전혀 관련이 없었으며, <<동국문헌비고>>를 수보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상세히 밝혔다. 또한 <동동>은 궁중연례악으로서 회례연(會禮宴)·사신연使臣宴)·나례연(儺禮宴)에서 송축이나 송도의 의도로 연행되었으며, 특히 나례연 중 ‘처용지희(處容之戱)’ 안에서 ‘동동지희’가 연행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동동’은 악·가·무를 통해서 임금에게 송도의 뜻을 바치는 종합예술작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문해(文解) 위주로만 연구해온 상황이 그간 <동동>의 원형을 밝히는데 어려움을 주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 4부 「조선전기 ‘동동’의 가무악 융합 양상」(문숙희)은 ‘동동’의 선율을 찾고, 그 선율에 노랫말을 융합하여 ‘동동’ 노래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여기에 노래와 무용을 융합하여 가·무·악으로 합쳐진 융합적 존재로서의 ‘동동’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저자(문숙희)는 “‘동동’은 장구점 단위가 소절에 해당되고 악보에 가사도 없고 음 또한 퍼져 있어서, 악보에서 기본박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113쪽)고 밝히면서 연구가 쉽지 않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기본박 찾기를 통한 방법’으로 해석된 리듬을 찾고, 그 중 ‘동동’과 같은 장단의 악곡을 통해 ‘동동’의 리듬과 정간시가를 찾는 노력을 기울여 결과를 도출하고 이에 ‘동동’의 특질을 찾아 보여주었다.
“‘동동’은 정읍을 편곡하여 만든 노래로 보고 있다. 정읍과 같은 이름을 공유하기도 하고 또 많은 선율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두 악곡에는 가사가 다르듯이 다른 부분도 있다.”(138쪽)고 설명하면서 두 악보를 비교한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동동’ 선율은 ‘정읍’의 선율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대악후보>> ‘동동’ 악보는 현악기 악보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동동’ 악보에 ‘강’이란 용어가 직접 사용되지 않았지만, 음악적인 내용으로 볼 때 ‘동동’은 진작류 형식에 해당한다고 밝히며 ‘동동’에서 강이란 가사의 구를 싣고 있는 선율, 하나의 악구에 해당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동동’의 정간시가는 일정한 길이로 되어있지 않고, 5정간과 3정간이 각각 같은 길이의 3분박 한 박으로 해석되며 노랫말 텍스트 <동동>은 선율이 가사에 비해 매우 길 뿐만 아니라, 가사를 천천히 진행하면서 음을 길게 늘여 부르는 노래라고 설명했다.
제 5부 「조선전기 아박무 복원연구」(손선숙)는 문헌 고증을 통해 전기 아박무를 복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아박무는 고려시대에 ‘동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조선전기에 명칭이 아박으로 바뀐 뒤 조선후기를 거쳐 현재까지 이른다. 이에 <<악학궤범>>에 기록된 조선전기 아박무를 검토, 기존의 재현 아박무를 점검하고 문헌과 재현 아박무를 비교 검토하여 복원 관점으로 기록구조와 진행구조를 살펴 복원에 필요한 실제 수용범위와 근거에 대해 살피고 있다.
저자(손선숙)는 “기존에 재현된 아박무는 기존의 선행연구자들이 해석한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여 매월 가사에 따라 춤에 변화를 주는 등 다양한 춤사위를 구성하여 추었는데, 2월사부터 8월사까지만 새로운 춤을 추고, 10월사부터 12월사까지는 <<악학궤범>>에 기록된 ‘북향-대무-배무’를 추었다.”(155쪽)고 밝혔다. 이는 재현 때 수용한 변무의 원칙에 위배되고, 문헌 기록대로 재현하였다는 원칙에도 위배되어, 결국 재현 아박무는 그 어느 원칙에도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저자가 <<악학궤범>>의 변무가 새로운 춤이 아니라 ‘북향-대무-배무’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북향·대무·배무’할 때 박을 치는 횟수와 무용 진행구조 관점으로 분석했기 때문임을 밝혔다. 또한 ‘기존 재현 아박무’는 가사 및 춤 진행에 따른 무구 사용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유절형식에 따른 ‘변무’의 원칙성에 위배되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아박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구성인 대형 이동 위치와 방향, 춤사위가 필요한데, <<악학궤범>>에는 춤사위와 무용수들이 선 위치를 제외한 나머지 내용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166쪽)고 밝혔다. 특히 이 책에서는 아박무 복원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내용들과 보충되어야 함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악학궤범>>에 기록된 ‘동동’ 중기의 아박무는 ‘무진-북향무-대무-북향-배무-환북향-무퇴’로 추어야 하고, 이와 같은 춤을 무려 11회 반복하며 추는 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악학궤범>>과 같은 고무보를 바탕으로 아박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문헌 고증이 선행되어야 하고, 궁중정재의 재현 및 복원을 위해 춤의 기록이 문헌으로 전해지는 <<악학궤범>>의 내용을 단순히 이론상으로 이해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여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궁중왕실문예시스템’ 마련과 궁중 정재복원전문가의 배출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 6부 「총결」에서는 가무악 융합 예술체 ‘동동’의 본질을 분석하고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고려조 궁중에서 시작된 속악정재 ‘동동’이 조선조에 들어와 ‘아박’으로 개명되면서 변화를 모색했고, 새롭게 추구된 변화가 그 뒷시대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미학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도 그래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학적 측면은 지속과 변이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음악과 무용의 텍스트를 온전하게 복원하고자 하는 목표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노랫말 텍스트 ‘동동’을 정확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접분야인 음악 텍스트와 무용 텍스트를 이해해야 하고, 이들이 하나로 융합된 텍스트 전체를 이해·분석하기 위해서는 콘텍스트로서 당대의 예술적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융합 텍스트로서의 ‘동동’을 이해하기 위해 근대 이전까지 조선 왕조에서 공연된 재현 정재들을 통해 가무악 융합의 예술적·문화적 분위기를 이해·분석·수용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동동’이 단순히 문자 텍스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무악 융합 무대예술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동동’은 여성의 예술이다. 단순히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왕조의 임금이나 고귀한 존재를 대상으로 토로한 불멸의 사랑과 정서가 결합된 총체적인 종합예술임을 규명해낸 것이다. 저자(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들은 동동의 예술미학을 구현하기 위해 그동안 기울여온 노력과, 그에 따른 다양한 결과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노랫말 텍스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콘텍스트로서의 악곡과 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동안 연구자들은 간과해왔다. 고전시가가 어떤 양상으로 실연(實演)되어 왔는지에 대한 통합적 시각이나 시야를 충분히 갖출 필요가 있음을 저자들은 강조한다. 그것들 가운데 상당수 작품들의 생산이나 향유계층이 민중이라는 사실만을 강조함으로써, 그것들이 궁중에서 임금을 비롯한 지배계층의 연향에 쓰였다는 사실을 그동안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음악학계 및 무용학계와 협업의 필요성과 절실함을 느낀 저자들이 착수한 작업들의 결실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런 모색과 노력을 통하여 이루어진 이 책이야말로 ‘고려속요 동동’에서 ‘속악정재 동동’으로 인식을 전환함으로써 그 원형과 위상을 새롭게 찾아낸 구체적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저자들은 ‘텍스트 지평의 전환’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텍스트의 본질을 외면한 채 무조건 답습해 오던 기존의 오류들과 다양한 문제들에 주목하고, 텍스트의 ‘분리에서 융합’으로 전환한 다음 지속적인 모색과 반성을 통해 만들어낸 연구 결과들 덕에 우리는 ‘동동’의 융합예술적 본질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동동’은 단순한 그리움과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융합적인 궁중무대예술작품이다. 그 본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차원 높은 예술적 경지를 경험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