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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07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구나!’
  2. 2010.06.21 제 노릇 잘 하기
글 - 칼럼/단상2016. 5. 7. 04:53

 

 


황발이

 

 


화난 게

 

 


칠게

 

 


칠게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구나!’

 

 

 

충남 서해안의 한 한촌(寒村)이 내 고향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기름진 갯벌이 질펀하게 펼쳐진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작고 큰 게들의 천국이었다. 그럴 듯한 꽃게는 아니지만, ‘사시랭이능정이쇠발이황발이달랑게돌짱이등 작지만 먹음직한 게들이었다. 전라도와 경기도 해안 지역 사람들을 만나면 통하는 게 있다. ‘갯벌에서 나오는 해산물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남북도 서해안 지역을 특별히 동일한 게 섭식(攝食) 문화권이라고 부른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마파람은 습한 기운을 머금은 남풍이니, 곧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고이기도 하다. 게들은 몸의 염도를 유지해야 살 수 있다. 비에 소금기가 씻겨 내려가면 안 될 일. 그러니 갯벌 표면으로 올라와 부지런히 먹을 것을 찾던 게들도 비가 온다는 남풍의 경고에 바짝 긴장하고,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자신들의 집이래야 갯벌에 뚫어놓은 작은 구멍이 고작인데,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곧추 세웠던 잠망경을 접어야 하리라. 그래서 마파람이 불면 게들은 치켜세웠던 자신들의 눈을 접고는 냉큼 집으로 몸들을 숨기는 것이다. 흔히 배고픈 사람이 허겁지겁 밥을 퍼먹는 모습이나 관리들이 나랏돈 집어삼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무언가를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집어삼키는 모습을 이렇게 그려낸 것이니, 우리 옛 어른들의 눈썰미가 이처럼 매서웠다.

 

도시 사람들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는 속담을 그럭저럭 들어서 알고는 있다. 그러나 시골 출신이든 도시 사람들이든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다는 말은 대부분 모른다. 속담사전들을 들춰봐도 없다. 그러나 내 고향에서는 흔히 통용되어 왔고, 특히 돌아가신 내 어머니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는 속담 대신 이 말을 자주 쓰셨다. 어머니를 비롯한 고향의 어른들은 게 잡이 선수들이셨다. 그럴 듯한 물고기를 잡을만한 곳도 아니었으니, 그나마 그런 게들을 잡아다 없는 반찬을 보충하셨을 것이다.

 

짜디짠 김치와 엄지손가락만한 게 여라믄 마리가 반찬의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릴 적엔 딱지와 발을 뗄 것도 없이 통째로 으드득씹어 먹으며, 속으로 참 맛도 더럽게 없다는 불평을 하곤 했는데, 요즈음은 그 맛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얼마 전 동네 시장에 나갔다가 억지를 부려옛날의 그 게들과 비스름한 것들을 한 보시기 사온 적이 있다. 간장에 절였다가 끼니 때 식탁에 꺼내놓고 옛날처럼 으드득씹어 먹으니, 아내의 눈치가 심상치 않았다. 며칠 잘 먹다가 아내의 눈치가 심각하게 바뀌는 걸 보곤 냉큼 게에 대한 추억과 미련을 접고 말았다.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구나!’가 게로부터 온 말일까. 우리 고향 어른들은 게를 잡으며 게의 해부학적생리학적 구조를 잘도 파악하신 것 같다. 나도 어릴 적 게를 가만히 관찰해본 적이 있다. 게들은 두 개의 큰 집게를 갖고 있다. 우리가 손으로 물건을 집거나, 싸움할 때 상대방에게 주먹질을 하듯이 그들은 집게로 물건을 잡거나 적을 물기도 한다. 나머지 발들은 이동할 때 사용한다. 잘 아시다시피 게들이 드넓은 갯벌에 올라와 식사를 하거나 해바라기를 하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해바라기 할 때는 움직이지 않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늘 부지런히 꼼지락거린다. 어릴 적에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갯벌에서 무언가를 집게로 집어 올려’ (육안으로는 잘 구분되지 않는작은 입으로 나르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들만의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갯벌에 살고 있는 플랑크톤이나 물고기의 사체 등으로부터 분리된 유기물들을 집어먹고 있었으리라.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그걸 보면서 나는 참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저렇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를 집게로 잡아 어느 세월에 그 큰 배를 채운단 말인가. 차라리 (게의) 딱지를 까고 갯벌에 널린 먹이를 집어넣으면 순식간에 배를 채울 수 있을 것 아닌가. 당시 나는 게들을 보며 늘 이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래, 저 굶주린 게들은 현미경으로 보아야 겨우 보일만한 유기물들을 하루 종일, 아니 일생동안 집게로 들어 올려 입으로 운반하며 생명을 유지해온 것이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바로 내 마음을 미리 알아채신 것처럼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구나!’라는 속담을 만들어 쓰고 계셨던 것이다.  

 

***

 

매스미디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공직자들이나 기업가들의 부정과 부패 소식을 토해낸다. 눈 먼 돈이 널려 있는데,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나랏돈이 내 돈이요, 회사 금고 안의 돈도 내 것인데, 안 먹으면 멍청이란 말일까. 갯벌에 널린 눈 먼 유기물들은 온통 게들의 먹이다. 그러나 게들은 욕심 내지 않고 그 둔탁한 집게로 한 알 한 알 조심스레 들어 올려 먹을 뿐이다. ‘딱지를 까고먹으면 순식간에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라고 모르진 않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들은 딱지를 까고먹지는 않는다. ‘딱지를 까고 먹는 행위가 죽음임을 알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으레 눈 먼 돈을 보면 딱지를 까고덤벼든다. 그러다가 걸려서 사회적 생명이 끊어지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게만도 못한존재임이 분명하다. 다함없는 헛된 욕망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제 공직자들이나 기업가들은 (딱지 깐) 게 사진을 집무실에 걸어놓고 다음과 같이 외치면서 아침저녁으로 경배(敬拜)할 일이다.

 

저는 오늘도 딱지를 까고 먹지 않겠습니다!”(출근 시의 구호)

저는 오늘도 (다행히) 딱지를 까고 먹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게님!”(퇴근 시의 구호)

 

 


꽃게

 

 


게들의 천국(신안군 증도)

 

 


게들의 천국(신안군 증도)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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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0. 6. 21. 11:20

제 노릇 잘 하기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孔子)에게 정치를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논어-안연편의 내용이다. ‘~다워야 한다’는 것은 각자에게 맡겨진 노릇을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백 쪽이 넘는 정치학 교과서들보다 이 한 마디가 훨씬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현실 정치의 난맥상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총체적인 혼란에 빠져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국가 안보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고, 지방선거가 끝나자 여야 혹은 보수와 진보세력은 국민의 뜻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며 마주 달리는 기차들처럼 충돌을 거듭하고 있다. 수뢰(收賂)와 권력남용 등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의 독직(瀆職) 사건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탈세나 주가조작 등 기업인들의 탈선도 수시로 드러나고 있다. 추상같은 법의 권위로 범죄를 다스려야 할 검찰이 민간인들로부터 돈과 접대를 받아온 부끄러운 관행도 일부이긴 하지만 드러나고 있다. 학교장과 행정직을 돈과 연줄로 사고 팔아온 비리나 빗나간 이념교육으로 어린 학생들을 오도하는 일부 교사들의 행위는 갈 데까지 가버린 교육계의 한심한 현실이다. 그 뿐인가. 아동 성폭행 사건들의 범인 대열에 이제는 나이 든 어른들까지 끼어들고야 말았다.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통해 기강이 무너진 군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감사원의 조사가 군의 특성을 무시한 채 진행되었다고 아무리 항변을 해도 엄연한 군기(軍紀)의 붕괴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안보의 현장에서 사건은 언제나 생길 수 있다. 사건이 발생한 것도 큰일이지만 사건의 수습과정이 지리멸렬했던 것에 대하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군인으로서 ‘제 노릇’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결과를 가지고 국정을 이끌고 있는 여당은 참패를 인정하면서도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승리에 도취된 야당은 무리한 요구로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각자가 추구하는 이념에 따라 국론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으며, 심지어 어떤 시민단체는 천안함 사건을 논의하는 유엔 안보리에 정부를 헐뜯는 편지를 보내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정치인들이나 시민단체가 ‘제 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학교장과 행정직을 돈이나 연줄로 사고파는 행위,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편향된 이념교육을 시키는 일 등에서 우리 교육의 붕괴를 점치게 되는 것도 교육자들이 ‘제 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어른들이 아이들을 성욕 해소의 대상으로 보는 일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기본을 포기한 일이다. 자신의 자녀들에게만 부모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 어른들 모두에게 부여된 임무이자 어른 노릇의 참뜻이다. 사회를 짐승들이 들끓는 정글로 바꾼 것은 어른들이 ‘제 노릇’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치는 간단하다. 모두가 ‘제 노릇’을 하면 된다.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면, ‘제 노릇’이 나올 수 없다. 공익과 공리(公理), 도덕적 판단을 우선하여 법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고 권리를 행사하면 충실한 ‘제 노릇’이 된다. 일의 수행 과정에서 꼼수를 부린다면 그건 결코 ‘제 노릇’이 아니다. 꼼수는 자신을 망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도 지도층의 꼼수 때문이다. 지도층의 꼼수는 국민들을 오도한다. 국민들까지 꼼수의 유혹에 넘어가면 사회는 대책 없는 혼란에 빠진다.

 

앞서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던 제나라의 경공은 “임금이 임금 노릇 못하고 신하가 신하 노릇 못하고 아비가 아비 노릇 못하고 자식이 자식 노릇 못하면 비록 곡식이 있으나 어찌 먹겠는가?” 라고 덧붙였다.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총체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은 채 태연히 밥을 먹을 수는 없다. 아비 노릇, 자식 노릇을 못하는 것은 사실 ‘제 노릇’을 못하는 임금과 신하가 있기 때문이다. 지도층만 ‘제 노릇’을 잘 해도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 구한말의 혼란기를 닮았다는 평을 하는 논자들도 있다. 돌고 도는 게 역사라지만 지도층이 ‘제 노릇’을 못하는 것만큼은 닮아서 될 일이 아니다. 꼼수를 버리고 모두가 ‘제 노릇’을 성실히 수행하는 대장정(大長征)에 참여할 때다.

 

조규익(숭실대 교수/인문대 학장)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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