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08. 10. 26. 15:16

황주홍 강진 군수님의 매서운 회초리
*이 글은 <조선일보> 2008년 10월 20일자에 실린 기고문으로,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경구'라고 생각되어 이곳에 옮겨 놓습니다. -백규-


[기고] '저녁 6시 이후'가 선진화돼야 한다
먹고 마시는 모임에 시간 탕진
이런 풍토에서 노벨상 나올까
황주홍 전남 강진군수
 


일본 열도가 떠들썩하다. 이틀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니 그럴 만하다. 물리학상은 3명 모두 일본인이었고, 화학상은 일본과 미국의 학자들이 휩쓸었다. 그 바람에 우리 한반도도 떠들썩했다. 내용은 좀 달라서, 왜 우리는 일본처럼 될 수 없느냐는 주제로 요란했다.

일본은 되는데 한국은 왜 안 될까? 결론은 하나다.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성과는 노동시간에 비례한다. 일본인이 특별히 우수해서가 아니라면 연구한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 노벨상을 휩쓰는 거다. 그뿐이다.

한국인은 선진국 사람보다 훨씬 덜 연구하고 공부한다. 한국 성인 1인당 독서량이 192개국 중 166위라는 UN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한국인들은 이 부족분을 인맥과 로비와 '배째라'라는 저돌성으로 충당하며 사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소모임의 박람회장'이다. 한국인의 모임 성격은 딱 두 가지다. 친목모임 아니면 접대모임이다.

친목모임은 과거지향적이다. 같은 곳에서 태어난 이들의 향우회, 같은 해 태어난 이들끼리의 (동)갑계, 교문을 같이 드나든 사람들의 동문회, 미국 같이 다녀온 직장인들의 찬미회, 시청 총무과를 거친 공무원들의 총우회, 배낭여행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배사랑회…등등 우리들의 소모임은 과거 어느 한때의 인연을 매개로 한다. 당연히 주된 활동과 이야기도 미래보다는 과거를 향한다. 접대모임은 안면 터서 청탁하는 것이다. 고위험 사회에서의 '보험'들기다. 공식적으론 안 되는 일을 사사롭게 해결하는 모임이다. 거의 매일 저녁 접대하고 접대받는 분들도 부지기수다.

밥 먹고 술 먹고, 1차 가고 2차 가고, 노래방 가고 찜질방 가고, 폭탄주 마시고 건배하고… 공무원이건, 직장인이건, 사업가건, 교수건, 법조인이건, 예술인이건 예외가 없다. 찾아다녀야 할 모임이 너무 많고 만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 '진짜 일'을 할 시간이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문제는, 다른 선진국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퇴근해서 집으로 직행하는 한국인 드물고, 퇴근해서 1차 2차로 직행하는 선진국 사람 드물다. 발렌타인 한번 안 마셔본 교수가 드문 게 한국인 반면, 발렌타인 한번 마셔본 교수가 드문 게 일본이고 미국이다. 그 차이에서 승부가 크게 갈린다.

낮 시간에 일하는 것은 한국이나 선진국이나 별 차이 없다. 결정적 승부처는 오후 6시 이후의 '자유시간'에서다. 긴긴 자유시간을 우리는 과거를 위해, 편법을 위해 소비한다. 선진국 사람들은 마치 낮 시간의 연장처럼 저녁과 밤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생활은 밋밋하고 심심하고 외롭다. 재외동포들은 한국을 '즐거운 지옥'이라 한다. 야간생활이 어쩌면 이리도 위태위태 박진감 있고 육감적인지 힘들지만 재밌어 죽겠다는 거다. 노벨상은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장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내 단언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한국에선 노벨상이 나올 수 없다. 공부하지 않고 공부할 수 없는 나라에서 무슨 용빼는 재주로 노벨상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우리들의 6시 이후가 '선진화'되지 않는 한 노벨상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일이 될 것이다.

노벨상뿐이랴. 한국과 한국인이 6시 이후의 긴 시간을 이렇듯 철저히 과거 찾기, 인연 만들기에 사용하는 한 조국에 더 큰 희망은 솔직히 어렵다. 한국의 선진국 반열 진입은 6시 이후의 과거몰입적, 인맥제일주의적 행태의 변경 없인 불가능하다.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이 인식이 일본의 노벨상 독식에 따른 우리들의 요란한 반성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8. 4. 26. 12:38
*이 글은 "2008 국립국악원 정악단 정기연주회 - 노래와 선율이 함께 하는 여민락"(2008. 4. 1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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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민락 공연 팜플렛>

왜 지금 ‘여민락’을 말해야 하는가


                                                                조규익(숭실대 교수)


아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용비어천가> 읊지 말라’고 핏대를 올리는 지식인들이 의외로 많다. 정도 이상으로 대통령을 추어올리는 언론의 논조에도 ‘노비어천가’를 부른다거나 ‘명비어천가’를 읊는다고 비난한다. <용비어천가>를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일수록 그것을 ‘아부성 발언’으로 폄하하는 데 용감하다. 철학과 경륜을 갖추었던 한 시대의 지성들이 왕도정치와 이상국 건설의 꿈을 담아 만든 <용비어천가>가 500여년 후의 무식한 자손들로부터 이렇게 몹쓸 희롱을 당하는 현실이다.


세종대왕의 주도로 만들어진 향악정재 ‘봉래의’에서 전인자와 진구호 다음으로 나오는 것이 ‘여민락’이고, 그 음악에 올려 부른 가사가 바로 <용비어천가>(1·2·3·4·125장)다.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 하겠다’는 것이 그 음악의 취지이고, 그것을 정재의 앞부분에 배치했으니, 임금의 뜻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만하다. ‘애민(愛民)’이야말로 치자가 명심해야 할 첫 덕목임을 세종대왕은 강조하려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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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장가사의 여민락 부분>

조선왕조의 근원이 깊고 멀다는 것, 왕 되는 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해야 나라를 영원히 보전할 수 있다는 것 등이 <용비어천가>의 내용적 줄기다. 물론 6조(목조·익조·도조·환조·태조·태종)의 사적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지적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용비어천가>의 핵심인 ‘물망장(勿忘章)’(110~124장)과 ‘졸장(卒章)’(125장)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수사적 장치일 뿐이다. 초등학생일지라도 그런 내용을 가지고 ‘<용비어천가>=아부성 발언’이라는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주거를 호화롭게 하지 말라, 좋은 음식을 탐하지 말라, 형벌을 마음대로 하지 말라, 백성들의 고통을 잊지 말라, 아부하는 간신들을 멀리 하라, 백성들의 언로를 막지 말라, 세금을 공평하게 거두어 나라의 근본을 다져라, 바른말 하는 신하를 중시하라, 학자들을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 하라,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라...”


왕조 초반에 최고의 지성들을 모아 이런 금언(金言)을 만들고,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의 무대에 올려 공연하게 함으로써 ‘군-신-민’이 함께 그 뜻을 새기도록 한 일을 동서고금의 어느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한 번이라도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읽어 보면 그것이 임금을 위한 수신 교과서나 지배계층을 겨냥한 정치학 교과서일지언정 아부의 언사가 결코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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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민락을 연주하는 모습>


         ***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국민을 위한 공복(公僕)임에도 지금껏 그들은 국민 위에 군림해 왔다. 최근 대통령이 공석에서 ‘머슴론’을 통해 땅에 떨어진 이도(吏道)를 질타한 일도 <용비어천가>의 핵심적인 내용과 맥을 함께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의 요체는 ‘국태민안’이다. 국가를 태평하게 유지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이상정치의 알파요 오메가다. 풍족한 의식주와 든든한 국방, 반듯한 사회기강 속에서 백성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권력과 부를 얻고자 아부의 수단으로 만든 것이 <용비어천가>는 아니다.


고금의 역사로부터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을 얻은 지성인들. 그들은 <용비어천가>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가 어떻게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쳐 왔는가를 되새겨보고자 했다. 힘겹게 창업한 조선왕조가 영속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고 있었다. 최고 통치자인 왕들이 나태를 벗어나 백성을 위하는 일에 매진해야 왕조는 망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믿었던 것이다. 그들은 후대의 왕들을 대상으로 ‘잊지 말아야 할’ 금언들을 들어놓음으로써 모든 공직자들까지 깨우친, 이른바 1석2조의 효과를 얻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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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민락 가사의 짜임>

‘임금이 하늘인 시대’였음에도 그들은 국태민안의 요체가 ‘경천근민(敬天勤民)’ 즉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해야 하는 일임을 감히 왕에게 강조한 그들이었다. 대통령이든 관료이든 민심이 천심임을 망각하고 자신의 소리(小利)만 취할 때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국민의 공복임을 잊고 있는 관료집단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용비어천가>를 끊임없이 부르고 들어야 하는 시대다. 국립국악원이 ‘여민락’을 창조적으로 재현하고자 한 일이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