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학술문2020. 3. 8. 17:39

 

 

 

                                                                     조규익(숭실대 교수)

 

 

 

 

하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서정적 반작용으로서의 넋두리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의 명언[<<존재와 무>>]은 인간이 ‘던져진 존재’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애당초 아무런 규제나 구속 없이 태어난 인간은 원초적으로 ‘자유인’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 태어난 인간이기에 사회의 규범이나 도덕∙종교 등에 기댈 수밖에 없지만, 그런 범주를 벗어나는 경우 한갓 ‘고민에 싸인 자유인’일 뿐이다. 실존적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의 판단으로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며, 종교나 관습은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넘기 어려운 죽음과 이별을 초극하기 위해 의지하는 작은 ‘언덕’에 불과하다. 아무리 기대는 종교가 있다 해도 실존적 존재 스스로 마지막에 넘어야 할 최악의 장애물은 죽음 혹은 이별이다.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1813~1855)는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모든 사람은 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는데, 그 병은 바로 절망”이라고 했다. ‘절망의 종말은 죽음’이라는 것이 이 말의 뜻이겠지만, 사실은 ‘타인의 죽음을 보며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고, 그 절망의 나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그러니 죽음과 절망, 그 중 어떤 것이 선행하는 지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 ‘남의 죽음’을 보면서 그 죽음이 조만간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심한 아이러니다. 라틴어 경구(警句)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그대는)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기억하라!]’야말로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우주적 법칙을 흔히 망각하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던지는 냉혹한 명령이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우리 선조들도 죽음이나 이별의 두려움과 절대성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죽어서 떠난 자들을 지극 정성으로 받들어 온 것도 죽음의 두려움과 허무를 초극하려는 산 자들의 몸부림이었다. 부부 혹은 사랑하는 남녀를 떼어놓는 우주적 법칙은 죽음이었다. 그 가운데 여성은 남성보다 죽음에 대하여 더 민감했다. 남편은 가족을 부양하고, 가족은 아버지 혹은 남편에 의지해왔다. 자식들이 장성해 있다면, 비록 남편이 떠나도 아내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큰 걱정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 없는 젊은 부부, 자식이 어린 젊은 부부, 자식 없는 노부부에게 닥친 ‘남편의 죽음’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충격 아니었겠는가. 굳이 부부가 아니라도, 지극히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 찾아오는 죽음 또한 또 다른 의미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수천 년을 이어오며 ‘사랑과 죽음’을 노래했고, 그것들 가운데 후대의 문서에 요행히 살아남은 것들 덕에 오늘날 우리들은 그 맥을 짚어낼 수 있게 되었다. 노래와 노래 사이가 수백 년을 격해 있으면서도 우리 의식의 원형을 잘 유지해 왔고, 면면히 이어진 정서의 끈을 놓치지 않은 채 우리 민족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점은 신기한 일이다. 그 가운데 사랑하는 임이 죽어 떠나는 현장에서 터뜨리는 넋두리는 우리 민족 여인들의 집단심성에 각인되어 있다고 할 만큼 절절하다.

 

“무당이 죽은 사람의 넋을 대신하여 하는 말[북한사전: 무당이 굿할 때 중얼대듯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고 동이 닿지 않게 늘어 놓는 말’]/불평이나 불만을 늘어놓으며 하소연하는 말[북한사전: 원통하거나 억울한 일을 길게 늘어놓아 하소연하거나 마음속에 품었던 것을 불평스럽게 늘어놓는 말]” 등 우리나라와 북한의 넋두리에 대한 정의가 다르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여인의 넋두리는 의식화(儀式化)된 무당의 넋두리보다 앞선다. 어원적으로 넋두리는 ‘넋[魂]’과 ‘두리’의 합성어다. ‘두리’는 동사 ‘두루다[還]’ 즉 ‘돌이키다’의 명사형이다. 따라서 ‘넋두리’는 ‘(떠나가는) 넋을 돌이킴’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일원인 필자는 어려서부터 전통적 상례의 현장을 꽤 많이 접했다. ‘누구 집에 초상났다!’는 외침이 마을을 울리면, 그 집에 달려가 사자(死者)의 모습을 본 다음 사자를 붙잡고 넋두리하며 통곡하는 부인과 딸, 며느리 등 여성들의 모습을 보곤 했다. 죽음보다 넋두리에 싣던 여인들의 사연과, 애조(哀調)로 점철된 목청이 더 슬펐다. 그렇던 상례가 완벽하게 바뀐 것은 현재의 ‘장례 산업’이 우리 사회에 정착하면서부터였다. 병원 영안실에 상청이 마련되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은 ‘넋두리의 슬프고 아름다운 전통’을 상실하게 되었고, 새로운 세대에게 <공무도하가>를 비롯한 우리 고전의 ‘넋두리 문학’ 혹은 ‘만가(輓歌)’를 설명할 근거마저 잃어버렸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부인은 그의 부재가 불러올 곤경들을 떠올리며 애조의 극치를 달리는 목청으로 통곡했다. 시신을 어루만지거나 자신의 가슴을 치며 큰 소리로 곡을 함으로써 육신을 빠져 나가 하늘로 올라가는 혼이 되돌아오는 기적을 간절히 소망한 것이다. 가능하면 큰 소리로, 아름다운 율조로 넋두리를 내뱉은 것은 시신이 굳기 전에 혼이 되돌아와 남편이 소생할 수도 있으리라는 가느다란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아내는 떠나가는 남편을 한사코 붙잡으려 했던 것일까. 그렇게 하는 게 예의로나 체면으로나 합당하다고 여겼던 것일까. 사실 긴 논의가 필요한 문제이긴 하나,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이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독자적 자아를 정립하게 된 것은 20세기 말부터였다. 사실 유교 이데올로기가 삶의 원리로 스며든 중세부터 예의나 체면이 중시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성의 자립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육체적∙정신적으로 유일하게 믿고 사랑을 나누던 사람이 남편이었고, 재화를 벌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 또한 그였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전통사회의 여성에게 남편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남편의 주검 앞에서 내뱉는 아내의 넋두리가 남편의 소생에 대한 간절한 소원이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자를 위한 무의(巫儀)에서 무당이 중얼거리는 듯한 투로 엮어나가는 넋두리는 사자 주변 여성의 그것과 다른 차원의 작위적 연기(演技)일 따름이었다.

 

여성들의 이런 넋두리로부터 한 단계 더 나아간 곳에 ‘상여를 메고 나가며 부르는’ 만가(輓歌)가 있었다. 여성의 넋두리와 만가가 발화(發話)나 가창(歌唱)의 주체∙상황∙격식 등에서 다르긴 하나, 그것들 모두는 분명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 ‘<공무도하가>∙<가시리>∙<원부가>’ 등 우리 옛 노래들을 넋두리와 만가의 범주 안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둘. <공무도하가>와 <가시리>의 거리

 

 

 

여보 그 물 건너지 마시랬지요

당신은 기어이 건너시다가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당신을 어이하면 좋아요?

<공무도하가>

 

가시렵니까 가시렵니까?

버리고 가시렵니까?

날러는 어찌 살라하고

버리고 가시렵니까?

붙잡아 두고 싶지마는

서운하면 아니 올까 두려워

서러운 임 보내 드리오니

가시는 것처럼 돌아오소서

<가시리>

 

 

하북성(河北省) 조선현(朝鮮縣)의 조선진(朝鮮津)에서 호리병을 낀 백수광부(白首狂夫)가 물을 건너려다 빠져 죽자, 말리던 그의 처가 공후를 타며 노래[<공무도하가>]를 부른 뒤 따라 죽었다. 이 광경을 진졸(津卒) 곽리자고가 목격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곽리자고의 처 여옥이 이 노래를 다시 불렀으며, 이웃집 여인 여용에게 전해주어 널리 퍼지게 된 노래가 바로 <공무도하가>다. 사건은 매우 단순하고 소박하다. 학자들은 ‘백수광부(白首狂夫)가 호리병을 들었다’는 말에서 ‘미치광이 늙은이가 술병을 들었다’거나 백수광부를 주신(酒神)으로까지 과장 해석해 왔지만, 술병 아닌 강을 건너기 위한 도구를 들고 강에 뛰어들었다가 빠져 죽었다고 보는 일설도 있는 만큼 ‘술’에 너무 구애될 필요는 없다.

 

추정컨대, 애당초 이 노래는 중국 측 문인(文人)이나 악관(樂官)이 수집한 것을 진(晉)나라 최표(崔豹)가 상화가(相和歌)들을 모아놓은 <<고금주(古今注)>>에 실었고, 그 후 중국의 시인들에게 널리 수용되어 수많은 악부시로 재탄생된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다. 중국 측의 문헌에 실려 있고, 중국의 역대 시인들이 수용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냈으며, 중국의 금조(琴操) 구인(九引) 가운데 하나로 편입되어 있다 해도, 당시 고조선 강역 안의 우리 민족에 의해 만들어지고 전파된 노래임은 분명하다. 그 속에 다른 나라나 민족의 여성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넋두리 구조’가 핵심으로 들어 있음은 당연하다. ‘물 건너다 빠져 죽은’ 남편을 바라보고 늘어놓은 이 노래는 원래 넋두리이었을 뿐 노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넋두리는 하도 처절하고 아름다워 사람들의 입과 귀를 거치는 과정에서 노래로 바뀌었고, 윤색된 배경설화가 붙으면서 중국의 문인들과 예인들에게 광범하게 수용되었을 것이다.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그렇게 물에 빠져 떠나시면, (홀로 남은)나는 어떻게 살아요?’라는 여인의 절절한 감정이 노래의 핵심이다. 물에 빠져 죽어간 남편을 위해 한바탕 넋두리로 애도한 뒤 절망을 이기지 못한 그 여성도 물에 뛰어들어 남편을 따라간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서러운 넋두리로 남편에 대한 애도와 함께 자신에 대한 애도[즉 자만(自輓)]의 ‘의식(儀式)아닌 의식’까지 수행한 뒤 목숨을 끊은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가시리>를 이미 전고(前稿)[<<정형시학>> 24]에서 「‘죽어 이별’의 노래 <가시리>」란 제목으로 언급한 바 있다. <공무도하가>가 ‘넋두리’라면, <가시리>는 ‘만가(輓歌)’다. 만가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나 가사이고, 상여꾼들의 상엿소리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만가는 ‘의례화(儀禮化)된 넋두리’다. 위에 인용한 노랫말들에서 보듯이 <공무도하가> 전체는 <가시리>의 1~4구와 내용적∙형태적으로 부합하는 넋두리다. 말하자면 <가시리>도 전반은 넋두리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반에 들어가면서 달라진다. 제5구의 ‘붙잡아 두고 싶다’는 것은 생존에 대한 집착이다. 죽어 떠나는 임을 현실에 붙잡아 놓고 싶다는 화자의 집착과 욕망을 드러낸 부분이다. 그러나 ‘한 번 죽어 떠난 임이 살아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화자 자신은 그 절망감으로부터 자아를 지켜야 했고, 그 구체적 자기방어(自己防禦)의 수단으로 제6구의 언술[서운하면 아니 올지 모른다]을 내놓는다. 화자로서 ‘죽어 떠나는’ 임이 자신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떠나길 바랄 리 없음에도 그렇게 표현한 것은 다시 돌아올 길 없는 길을 떠나는 임에게 ‘돌아오지 못할 명분’ 정도는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승에 살아남은 화자는 죽어 떠난 임에게 마음의 짐을 가질 이유가 없어질 것 아닌가. 노래의 화자는 관형어구 ‘죽어 이별한’을 ‘나를 싫어해서 떠난’으로 바꿔치기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제7구의 ‘서러운’은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화자가 주체일 경우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죽음의 절대성 때문에 서러운 것이고, 떠나는 임이 주체일 경우 이승의 삶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단절 때문에 서러운 것이다. 그런 모호성은 제8구[‘가시는 것처럼 돌아오라’]에서 해결되고 양자의 거리는 사라진다. 그래서 제8구는 넋두리[환혼(還魂)]일 수도, 초혼(招魂)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승의 미련을 훌훌 털고 떠나셨듯이 (나를 힘들게 하지 말고) 다시 돌아오라’는 당부. 전통 시대 초혼 의식(儀式)의 모티프가 바로 그것 아닌가.

 

<가시리>는 애당초 민간의 누군가가 애절하게 부른 ‘사별가’였다. 그 절제된 슬픔의 세련된 표현과 그로 인한 감동은 그 노래가 궁중으로 도입된 이유였다. 그런 노래가 궁중음악 전문가들에 의해 개작된 다음 임금을 위한 무대에서 속악으로 가창되었다는 것은 처음의 노랫말과 지금의 노랫말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들은 넋두리 혹은 만가의 표지(標識)가 노출되지 않도록 개작 과정에서 엄청나게 신경 썼을 것이다. <가시리>의 주제를 단순한 ‘이별의 정한’으로 알고 있는 후대 수용자들의 착시현상도 여기서 생겨난 것이다. ‘이별의 정한’으로 못 박은 양주동 선생의 주장[「가시리 평설」]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오늘날의 ‘<가시리> 담론’도 바로 이 착시현상을 바로잡지 못한 데서 빚어진 결과이다.

 

 많은 사람들은 ‘산 자와의 이별’을 <가시리>의 ‘당연한 내용’으로 여긴다. 그러나 시적 진술의 심층이 표층과 같다고 보는 것은 매우 순진한 관점이다. 사실 이 노래의 표층 어디에도 ‘산 자와의 이별’이란 표지나 단서는 없다. ‘날 버리고 가지 말라’, ‘붙잡고 싶지만 서운하게 여겨 돌아오지 않을까봐 그냥 보내 드린다’, ‘떠나는 것처럼 돌아오라’ 등의 언급들로 보아 <가시리>가 ‘산 자와의 이별’을 노래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노래에 대한 모독이다. 시나 노랫말을 산문으로, 그것도 보고서나 계약서 같은 실용문 수준으로 받아들일 경우라면, <가시리>의 담론을 ‘산 자와의 이별’이라고 부를 만하다. 물론 ‘산 자와의 원치 않는 이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죽음과 맞먹는 괴로움일 수는 있다. 그러나 좀 더 자연스러운 상황이라면, <가시리>를 죽어 떠나는 연인에게 재회의 언약을 절절하게 강조하는 언술로 보는 것이 맞는 관점이며, 그럴 경우 심층에 잠재된 이 노래의 정체는 죽은 자를 애도하는 만가이면서 살아남은 화자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자만가(自輓歌)’일 수 있는 것이다.

 

<가시리>는 <공무도하가>의 넋두리에서 한 단계 더 의식화(儀式化)로 나아간 노래라 할 수 있다. 당시 고려 궁중의 무대에서 속악으로 부르며 임금에게 송도(頌禱)하던 노래이기 때문이다. 사실 무대 위의 여악(女樂)들은 임금을 위해 최고의 사랑을 바쳐야 했다. 그 때의 분위기가 극적인 사랑의 표현을 요구했다면, ‘죽음으로 패러프레이즈된 사랑’이나, 넋두리의 외피를 쓴 사랑의 표현 등 역설적 담론들 모두 가능했다. 그래서 <가시리>는 단순히 ‘살아 이별’의 노래가 아니라, ‘죽어 이별’의 노래, 더 구체적으로 ‘죽음을 원망하는 넋두리를 바탕으로 죽음을 극복해낸’ 사랑 노래일 수 있다.

 

넋두리를 통해 남편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을 동시에 애도하고, 그 넋두리가 노래로 변신하여 남아있는 <공무도하가>. ‘죽어 이별’의 상황이나 감정을 통해 ‘죽음을 극복한’ 노래로 승화된 <가시리>. 이 둘은 각각 넋두리와 만가로서 얼마간의 거리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하나로 뭉뚱그려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것도 사실이다.

 

 

셋. 만가풍(輓歌風) 서정노래로서의 <원부가(怨婦歌)>

 

 

16세기 장∙단가를 통틀어 우리 노랫말의 작자들을 대표하는 정철(1536~1593)이 남편 잃은 아낙의 입을 빌어 만가풍의 서정노래를 지었다.

 

 

남편 죽고 우는 눈물 두 젖에 내려 흘러

젖 맛이 짜다하고 자식은 보채거든

저놈아 어떤 마음으로 계집 되라 하느냐

<<<이선본 송강가사>> No.18>

 

 

이 노래의 화자는 남편을 사별한 아내다. 아내 아닌 제3자가 관찰자 겸 화자로 등장하여 정황을 전달하는 노래라 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먼저 떠난 남편에게 던지는 젊은 아내의 직설적이고 진솔한 어조를 보라.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을 둔 채 세상을 뜬 남편을 원망하는 것이 이 노래의 표층이다. ‘당신은 이 나약한 마누라와 어린 자식을 버려둔 채 왜 그리 황망하게 떠나셨나요? 이렇게 일찍 가실 거면 왜 나를 계집으로 삼으셨나요? 당신 없는 세상에서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나요?’가 이 노래의 심층이다.

 

표층만으로 보면 거친 항의(抗議)성 투정이다. 그는 혼례식에서 ‘백년해로’를 약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아놓은 지 한 두 해만에 세상을 떴으니, 아낙으로서야 어찌 투정뿐이었겠는가.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 사라지고, 삶의 의욕이나 방도는 물론 든든한 버팀목마저 사라진 상태에서 칭얼대는 아이만 묵직한 짐으로 남아 있는 게 그녀의 절망적 현실이다. 아낙에겐 앞으로 살아갈 창창한 날들이 걱정일 것이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궁리하기 전에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왜 나를 계집으로 데려왔느냐’는 원망조의 넋두리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죽은 남편에 대한 애도’를 극적으로 고양시키기 위해 끌어온 소도구로서의 비유가 절묘하다. ‘남편의 죽음에 솟아나는 눈물이 흘러내려 두 젖을 적시니 아이는 젖 맛이 짜다고 보챈다’는 내용의 노랫말이 그것이다. 지극한 슬픔을 이렇게 절묘한 방식으로 에둘러 드러낸 것이다. ‘아내와 아이를 이토록 슬프게 만들어 놓고 당신은 무책임하게 떠날 수 있느냐’는 넋두리를 늘어놓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넋두리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절묘한 소재를 동원한 시문학이나, 그 속에는 죽은 남편을 향한 애도와 사랑의 넋두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앞 시대의 넋두리와 만가가 이 노래에서 비로소 비유를 통한 시문학적 세련미를 갖추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넋두리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무도하가>와, 넋두리 부분이 포함된 만가의 모습을 보여준 <가시리>에 이어 <원부가>가 나타남으로써 만가풍 서정 노래는 일반화될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넷. 넋두리 혹은 만가, 혼효(混淆)된 에로스와 타나토스

 

 

<공무도하가>∙<가시리>∙<원부가> 모두 죽음의 절대성을 노래하지만, 그 죽음은 단순한 종말로 그려지지 않는다. 어딘가로 떠나는 것일 뿐 ‘존재의 사라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르트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죽음도 끝난다”[<<존재와 무>>] 라고 말했지만, 그 때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사유’일 뿐이니, 산 자들의 ‘죽음에 대한 사유’가 남아 있는 한 ‘죽음=끝’이라 말할 수는 없다. 백수광부의 처는 왜 죽은 남편을 처절하게 불렀으며, ‘홀로 남은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할 여유도 없이 자신도 그 길을 따랐을까. <가시리>의 화자는 ‘죽어 떠난’ 임에게 ‘살아 떠난 자’가 그러하듯 돌아오라고 절규했을까. <가시리> 화자의 절규는 왜 죽음 이상의 처절함을 띠고 있을까. 어린 자식과 함께 세상에 남겨진 원부는 남편이 왜 자신에게 사랑을 심어주고 떠났느냐고 원망했을까. 세상에 홀로 남겨진 젊은 아낙의 고립무원은 왜 죽음 이상으로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죽음을 명시적으로 언급했든 암시에 그쳤든, 이 노래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죽음이다. 그리고 그 죽음이 당사자들에겐 ‘현실로서의 사라짐’이었지만, 화자들에겐 ‘죽음에 대한 인식과 사유’일 뿐이었다. 세 노래 모두 화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죽음을 맞이한 존재는 ‘사랑하는 남편[혹은 임]들’이다. 그리고 그 죽음의 대척 지점에 사랑이 있다. 여성화자들은 왜 하나같이 남편이나 임의 죽음 앞에 절망하거나 따라 죽는가. 단순히 현실적인 삶 때문에? 상대에 대한 예의로? 아닐 것이다.

 

사실 그 근저에는 사랑의 소멸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이 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곧 ’죽음의 욕동과 대립하는 삶의 욕동의 총체/삶의 욕동과 대립하는 죽음의 욕동의 총체‘[장 라플라슈∙장 베르트랑 퐁탈리스의 <<정신분석사전>>] 등이 그것들이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서로 대척의 위치에 있지만,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기도 하고, 아예 서로 섞여 구분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백수광부의 처는 전형적인 넋두리를 쏟아놓은 뒤 남편을 따라 강물에 몸을 던졌다. 유교 이데올로기가 강조하는 순절(殉節)의 의리와는 거리가 멀다. 백수광부의 처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은 남편과의 사이에 생성된 원초적 에로스가 자기 파괴적 타나토스를 생성시켰거나 불러온 결과일 뿐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강을 건널 필요가 있었건 단순히 죽기 위해 강에 뛰어 들었건 백수광부의 죽음은 처에게는 헤어 나오기 어려운 ‘우주의 붕괴’였다. 에로스적 측면에서 하늘의 사라짐을 목격하는 순간, 사라진 하늘을 찾기 위해 실존적 존재로서의 자기를 파괴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엄습했는데, 그것은 자기를 놓아둔 채 죽음의 관문을 통과한 남편의 존재를 파괴하는 일이기도 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혼돈상태는 감성과 이성이 미분화된 상황의 또 다른 양상이기 때문이다.

 

<가시리>의 화자는 백수광부의 처와 달리 매우 논리적이어서 상대의 내면을 분석하고 그 결과에 자신의 욕망을 합치시키려는 열망이 매우 강하다.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미분화 상태에서 미처 분석적 사고를 발동시킬 수 없었던 백수광부 처의 경우와 달리, <가시리>의 화자는 상대방의 내면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가시는 듯 돌아오라’는 말이 비록 의사 진술[擬似陳述, pseudo statement]이긴 하지만, 이승에 설정한 자신의 좌표를 전제로 내뱉은 말임은 분명하다. 바로 여기에서 그대를 기다릴 것이니, ‘바삐 떠나간 것처럼 바삐 돌아오시라’는 간절한 소망이다. 만약 그 위치에 백수광부의 처가 놓였다면,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가시리>의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어쩌면 그렇게 차분할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의례(儀禮) 혹은 의식(儀式)의 힘이다. 넋두리가 카오스(chaos)의 발화(發話)라면 만가는 코스모스(cosmos)의 표현이다.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혼효는 종잡을 수 없지만 무엇이든 만들어지고 현시(顯示)될 수 있는 혼돈이다. 이에 반해 다양한 관계성 안에 있는 질서를 불러 오고 모든 존재로 하여금 자신들의 안녕을 위해 그 질서에 의존하도록 하는 것이 의례이다.

 

죽은 남편을 위한 사령굿을 설명하는 어떤 학자의 견해를 인용하며 캐서린 벨은 “배우자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세상에서 어떻게 홀로 살아갈지를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국의 한 과부는 굿을 하게 되는데, 그 굿은 죽은 후에도 남편과의 관계가 계속된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고, 그녀의 상실감을 예전부터 지속되어온 가치에 종속시켜 완화해주며, 그녀의 한을 풀어 주어 그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제어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의례의 이해>>]고 했다. 남편의 죽음에 즈음하여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카오스이나, 그를 위한 굿판은 그의 처로 하여금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넘어가게 하는 징검다리이며, 그 다리를 건넌 뒤에는 코스모스 세계의 평정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과 죽음 즉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서로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늘 서로 붙어 다니는 짝이다. 카오스의 상태에서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뒤섞이거나 서로 넘나든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으므로 그 사랑을 온전히 하기 위해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카오스의 상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그의 행복을 위해 혹은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살아 가겠다’는 것은 코스모스의 상태이다. 백수광부 처의 카오스 상태를 <가시리> 화자의 코스모스 상태로 전환시킨 것이 바로 의례의 힘이다.

그러나 <원부가>의 화자는 카오스나 코스모스 중 어느 쪽인지 모호하다. 작자 정철은 남편을 보낸 어린 아낙의 가련한 처지에 감정이입(感情移入)된 자신을 이 노래의 화자로 내세웠을 것이다. 이 노래 화자의 발화가 단순한 넋두리는 아니고, 그렇다고 의례화된 넋두리도 아니다. 매우 특이한 개인의 정서적 장치를 통해 비극성의 고양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픈 눈물. 그녀는 그 눈물 섞인 젖이 짜다고 보채는 아이를 내세워 그녀가 갇힌 비극성을 절절하게 그려냈고, 결국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끝을 맺는다. 물론 이 때 그 원망은 남편에 대한 사랑의 반어적 수사(修辭)임은 물론이다.

 

남아 있는 기록으로만 따지면, 우리 고전시가의 한 축은 ‘단순 넋두리’로 시작하여 ‘의례화된 넋두리’를 거쳐 ‘서정적으로 승화된 넋두리’로 확장∙정착된 만가의 갈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넋두리는 에로스와 타나투스의 양 끝이 혼돈으로 합쳐졌다가 나눠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사랑과 죽음의 원초적 문제를 씨줄과 날줄로 삼아 민족의 전통정서를 이끌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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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학술문2019. 9. 2. 16:36

*고전과의 대화: 계간 <<정형시학>> 24(2019 가을호)

 

 

죽어 이별의 노래 <가시리>

 

 

 

 

 

 

                                                                                                             조규익(숭실대 교수)

 

 

 

하나/「가시리 평설」 정전화(正典化)의 문제

 

“소박미와 함축미, 그 절절한 애원, 그 면면한 정한(情恨), 아울러 그 구법(句法) 그 장법(章法)을 따를만한 노래가 어디 있느뇨. 후인(後人)은 부질없이 다변(多辯)과 기교와 췌사(贅辭)와 기어(綺語)로써 혹은 수천어(數千語) 혹은 기백행(幾百行)을 늘어놓아 각(各)히 자기의 일편(一片)의 정한을 서(叙)하려 하되, 하나도 이 일편(一篇)의 의취(意趣)에서 더함이 없고 오히려 이 수행(數行)의 충곡(衷曲)을 못 미침이 많으니, 본가(本歌)야말로 동서문학(東西文學)의 별장(別章)의 압권(壓卷)이 아니랴.”<「가시리 평설」, <<여요전주(麗謠箋注)>>, 을유문화사, 1947, 424쪽>

 

이 언술은 고려속가(高麗俗歌) <가시리>에 대한 양주동 선생의 명쾌하면서도 자못 도발적이기까지 한 평가인데, 오늘날까지 후학들은 ‘그 평가의 무오류성’을 변함없이 신봉해 왔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 평가의 합리성을 입증하고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말하자면 고전시가 연구의 열기가 식어가고 있는 시대 조류의 와중에서 반대논리나 통합적 극복의 논리는 등장하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평가 내용의 핵심적 정서는 ‘사랑하는 남녀 가운데 남겨진 자가 떠나는 자에게 건네는 원망과 재회의 소망’, 말하자면 ‘살아 이별을 당하는 자의 지극한 심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필자는 어린 시절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 이 글을 처음으로 접했는데, 무엇보다 현란한 문체와 수사가 인상적이었고, 그 후 대학원 과정 이수 중 <<여요전주(麗謠箋注)>>(1947년 판)에 실린 그 글을 정독하면서 그 분의 생각에 좀 더 깊이 매몰되고 말았다. 「가시리 평설」이 <가시리> 해석의 정전으로 굳어지면서 지금까지 누구도 쉽사리 그 정의나 평가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려 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필자의 이 글은 학술 논문이 아니고, 최소한 학술토론의 문건으로 제공될 가능성도 없는 소품이니, 이 글을 통해 <가시리>에 대한 기존 논의와 평가를 반박하거나 나만의 새롭고 참신한 견해를 제시하기에는 적잖이 조심스럽다. 최근 들어 필자는 우리 옛 노래(혹은 노래문학)들 가운데 상당수가 ‘살아 이별’ 특히 ‘사랑하는 당사자들의 헤어짐’보다는 ‘죽어 이별’의 넋두리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공무도하가>[혹은 <공후인>]는 남편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아내의 넋두리임이 분명하고, 현대문학 초기 김소월의 <진달래꽃>도 그 맥을 이은 ‘죽어 이별’의 노래임을 말한 바 있다. 그 맥락에서 <가시리>야말로 ‘살아 이별’의 노래가 아니라, 오히려 ‘죽어 이별’의 현장에서 내뱉던 넋두리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은가.

그런 넋두리가 아름다운 곡조에 실려 궁중악의 무대에까지 오르면서 뒷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남녀의 이별 노래’로 오해되었거나 살짝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그 원천 텍스트를 넋두리로 본다고 무조건 지나치다 탓할 필요는 없다. 비록 인상비평에 머물고 말지라도, 시조 창작의 다양한 담론들의 장(場)인 <<정형시학>>에 이 문제를 공론화 하려는 것은 현 시점에서 우리 전통 정서의 본질에 대한 탐색이나 그런 정서가 근・현대에 들어와 어떤 양상으로 예술화되었는지에 대한 모색이 절실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둘/ 이별의 콘텍스트

 

<가시리>를 ‘살아 이별’로 보는 양주동 선생의 생각은 다음의 글에 결정적으로 나타난다.

 

“처음 가신단 말씀을 들었을 때엔 그것이 오히려 농담(弄談)인 양 혹시 나를 울려 보려는 짐짓으로만 생각하였더니, 급기야 그것이 참인 줄을 알자, 또 얼마나 임께 기나긴 말씀을 하소연하였던고. 그러나 그것도 지금엔 모두 다 쓸데없는 말, 정작 임이 떠나시는 마당에 다시 무슨 경황으로 어젯 날의 기나긴 사연을 되풀이할꼬. 일체의 장황한 사설(辭說)은 지금엔 모두 췌사(贅辭)가 아니랴! 급박한 감정과 얼크러진 심서(心緖)는, 그러매로 일체의 군소리와 일체의 잔 생각을 거부하고, 다짜고짜로 원사(怨辭)로 돌진할 밖에 없는 것이다.”<「가시리 평설」, 424~425쪽>

 

양주동 선생이 <가시리>를 ‘살아 이별’, 그것도 ‘사랑하는 남녀의 이별’로 단정하고 평설을 썼다는 점은 이 부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쩌면 선생이 평설을 쓸 당시에 <가시리>가 ‘살아 이별’이냐 ‘죽어 이별’이냐의 문제로 살짝 갈등하셨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상상으로 예측해 보건대, 잠시 동안 갈등하신 뒤 예의 그 유쾌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쾌재를 부르시면서 즉각 당신의 생각을 내놓으셨으리라.

 

“‘살아 이별’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일시 나로부터 멀리 떠나가긴 하나, 가는 자의 마음이 바뀌면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지. <가시리>의 뒷부분[“붙잡아 두고 싶지마는/서운하면 아니 올세라/서러운 임 보내드리니/가시는 것처럼 돌아오소서”]좀 보게나. 이 사람아, ‘죽어 영이별’하는 상황에 ‘가는 것처럼 돌아오라’고 말할 수 있겠나?”

 

이렇게 그 분은 희희낙락 큰 소리 치셨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자. 사람이 죽었을 때 요즘은 의사가 맥을 짚어보거나 검안한 뒤 사망 선고를 내린다. 그런 다음 염을 하고 빈소로 옮긴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향촌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내 어린 시절의 경험에 비추어 말해 보자. 그 시절 사람이 죽고 나면 즉시 초혼제(招魂祭)를 지냈다. 그러나 초혼제를 지내기까지 거쳐야 할 절차가 있었다.

일단 사람이 죽으면 마을 어른 한 분이 사자(死者)의 코앞에 솜털을 드리워 통기(通氣) 여부를 가늠하며 사망 여부를 판단했다. 설사 솜털이 움직이지 않는다 해도 즉각 ‘사망’이라 단정하지 않았다. 다음 절차는 사자의 옷가지를 들고 지붕으로 올라가 북쪽을 향해 휘두르며 큰 소리로 “고(皐) 아무개 복(復)! 복(復)! 복(復)!” 하면서 육신으로부터 빠져나간 혼을 길게 부르는, 슬프고 장엄한 의식을 행했다. 전통적으로 우리에게는 사람이 죽으면 콧구멍으로 영혼이 빠져나가 시신을 맴돌다가 북쪽 하늘로 날아간다는 믿음이 있었다. 왜 북쪽이었을까. 아마 사람이 죽은 뒤 묻힌다는 ‘북망산’에서 따온 방위개념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육신은 북망산으로, 영혼은 북쪽 하늘로’ 라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육신을 빠져나간 혼이 되돌아오면, 육신은 다시 전처럼 살아나게 된다고 믿었다. 그것이 환혼(還魂)이다. 그렇게 육신을 빠져나가 하늘나라로 가는 혼을 되돌리기 위해 부르는 행위가 초혼이다. 그래서 초혼과 환혼은 우리 전통사회에서 가장 슬프면서도 장엄한 의식이었고, 사자의 지친(至親)들은 그 순간 가장 크고 서럽게 울어야 했다. 그 때의 울음소리가 클수록 떠나가던 혼이 쉽게 듣고 돌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전통사회의 곡비(哭婢)도 실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무작정 울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 말을 해야 했다. 떠나는 혼이 알아듣고 발길을 돌릴 만큼 간절하고 슬퍼야 했다. 그 순간의 말이 바로 넋두리다. 넋두리는 ‘넋[혼(魂)]+두리[환(還)]’, 즉 ‘떠나가는 혼을 되돌리는 말’이다. 남편이 죽는 순간 쪽진 머리를 풀어헤친 아낙네가 남편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자신의 가슴을 치며 “나 혼자 어찌 살라고 떠나십니까? 못 가십니다, 정녕 못 가십니다!”라고 울부짖는 그 말들이 바로 넋두리다.

<공무도하가>는 전형적인 ‘넋두리 문학’이고, 김소월의 <초혼>은 그야말로 초혼 행사를 시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김소월의 <초혼>과 긴밀하게 연관되는 노래가 <진달래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학자들은 <진달래꽃>이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시라 한다. 그 때의 이별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살아 이별’을 말하는 것임은 양주동 선생이 <가시리>를 ‘살아 이별’의 노래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 관점이다. 한국문학 연구가 한 세기 가까이 진행되고 있지만, 지금껏 그런 고정관념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다.

분명히 김소월의 <초혼>과 <진달래꽃>은 ‘죽어 이별’을 노래한 자매편들이고, <가시리>와 <진달래꽃>은 시대를 격하여 ‘죽어 이별’의 정서로 연결되는 노래 혹은 시문학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공무도하가>와 <초혼> 사이에 위치한 것이 <가시리>이고, <가시리>와 상통하는 ‘죽어 이별’의 노래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다.[*<진달래꽃>에 관해서는 다음 고에서 시조와 결부시켜 상론할 예정임.]

그런데 ‘넋두리 문학’의 화자는 예외 없이 여성이다. 전통적으로 넋두리는 여성 화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상이 났을 때 초혼은 남성이 주관하나 넋두리는 여성 전담이었다. 지붕에 올라가 사자의 옷을 흔들며 구만리장천을 향해 외치는 ‘초혼’은 굵은 목청을 지닌 남성만이 행할 수 있었다. 남성화자가 등장하는 김소월의 <초혼>을 읽어보시라. 그러면 우리 전통사회의 초혼 행사를 역력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셋/<가시리>의 텍스트와 넋두리의 미학적 의미

 

자, 이제 <가시리>가 ‘죽어 이별’의 노래임을 입증하기 위해 그 본문을 들어보기로 한다.

 

가시리 가시리잇고(①)

버리고 가시리잇고(②)

날러는 어찌 살라하고(③)

버리고 가시리잇고(④)

붙잡아 두고 싶지마는(⑤)

서운하면 아니 올세라(⑥)

서러운 임 보내드리니(⑦)

가시는 것처럼 돌아오소서(⑧)

 

<가시리>는 <<악장가사>>∙<<시용향악보>>∙<<악학편고>> 등 조선조 관찬(官撰) 악서(樂書)들에 실려 있다. 매 연 끝에는 “위 증즐가 태평성대”라는 후렴구가 붙어 있는데, 반복되는 그 부분을 제외하고 인용한 것이 바로 이 글의 텍스트이다. 내용상 이 후렴구는 <가시리>가 궁중악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위’는 감탄사, ‘증즐가’는 현악기를 긁어내는 소리, ‘태평성대’는 ‘임금이 통치하는 지금의 시대가 태평하다’는 의례적 찬사로서 이 노래가 궁중정재(宮中呈才)에서 불리던 노래임을 보여주는 단서들이다. 고려조와 조선조 궁중에서는 왕을 비롯 지배층을 위한 가・무・악(歌舞樂) 융합의 궁중무대예술이 공연되었고, <가시리>는 무대예술인 속악정재(俗樂呈才)들 가운데 하나에서 불린 노래였다.

노래의 ①~④는 넋두리의 전형으로서 <공무도하가>의 그것과 일치한다. ⑤~⑧은 넋두리에 덧붙어 그 미학적 완성도를 높여주는 부가적 부분이다. 만약 ①~④가 전부라면, 이 노래는 단순한 넋두리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럴 경우 이 노래는 시적 자아의 실존적 좌절이나 운명의 장벽에 대한 한탄으로 그치기 때문이다. 단순한 넋두리를 넘어 서고자 하는 시적 언술을 통해 상황을 합리화 하거나 죽음에 대한 자아의 초극의지를 피력하기 위해 덧붙인 것이 후반(⑤~⑧)이다. ‘죽어 떠나는 임’과 이별하며 맞이한 실존적 상황을 아름다운 노래로 승화시킨 힘은 창작 및 가창계층의 철학이나 미학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따라서 ①~④의 단순 비극미는 ⑤~⑧의 부가적 미학으로 승화되었다.

넋두리 자체인 ①~④와 연결시키지 않을 경우, ⑤~⑧은 단순히 ‘살아 이별’의 현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당부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넋두리인 ①~④를 복합 심리적으로 세련화 시킨 것이 ⑤~⑧임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게 한 것도 ‘죽어 이별’을 ‘살아 이별’인 듯 위장함으로써 죽음의 절대성을 비켜 가고자 한 미학적 장치의 힘이었다.

⑤~⑧의 ‘붙잡아 두고 싶다’는 것은 보내는 사람 뿐 아니라 떠나는 사람도 갖고 있었을 현실적 삶에 대한 집착을 암시한다. 그러나 한 번 떠나면 그만인 죽음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화자로서는 그 절망감으로부터 자아를 지켜야 했고, 그 구체적 방어기제의 작용으로 나타난 표현이 바로 ‘서운하면 아니 올지 모른다’는 언술이다. 사실 이 경우의 ‘서운함’이란 ‘죽어 떠나는 자’가 갖고 있을 마음 상태다. 화자로서는 ‘죽어 떠나는 임’이 자신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떠나길 바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표현한 것은 돌아 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임이기에 그가 돌아오지 못할 명분 정도는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가당치 않은 이유이겠지만, ‘죽어 떠나는 임’이 자신에게 서운함을 가지는 것처럼 그려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신’이 ‘죽어 떠나는 임’에게 전혀 마음의 짐을 느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 노래의 화자는 ‘죽어 이별한’ 사람을 ‘나를 싫어해서 떠난’ 사람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바꿔치기’란 ‘죽어 떠나는 자’에 대하여 ‘살아남은 자’가 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수 있으며, ‘죽어 떠나는 자’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심리적 부채의식을 줄일 수 있는 최고의 방책이기도 했다. 상대가 ‘서러운 임’이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사실 ‘살아남은 자’와 ‘죽어 떠나는 자’ 가운데 누가 이 말의 주체가 되느냐에 따라 서러움의 의미는 달라진다. 전자가 주체일 경우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죽음의 절대성 때문에 서러움을 느낀 것이고, 후자가 주체일 경우 이승의 삶이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단절되는 데서 서러움을 느낀 것이다. 그러한 내재적 의미의 모호성이나 분열적 자아는 ⑧에서 매끄럽게 통합된다.

‘가시는 것처럼 돌아오라’는 말 속에서 서로 다르게 표현된 두 주체[남겨진 나/떠나는 임]의 감정은 하나로 합쳐지고 그 이전 단계의 애매성 또한 사라진다. 그래서 ⑧ 또한 넋두리[환혼]이자 초혼이 되는 것이다. ‘이승의 미련을 훌훌 털고 떠나신 것처럼 나를 힘들게 하지 말고 다시 돌아오라’는 당부야말로 전통 시대 초혼의 모티프와 하등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넷/<가시리>는 ‘죽어 이별’의 노래다

 

<가시리>는 궁중의 속악정재에서 불린 노래, 즉 속악가사였다. 사실 궁중 무대예술인 정재는 임금을 대상으로 하던 예술이었다. 그런 만큼 여악(女樂)들은 춤과 노래로 임금을 송축하고, 예술적 한계 안에서 ‘연모의 정’을 암시하기도 했다. 텍스트와 콘텍스트, 상호텍스트의 측면에서 면밀히 관찰하지 않을 경우, <가시리>가 ‘살아 이별’의 노래인지 ‘죽어 이별’의 노래인지 알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노래에서 화자가 의도한 궁극적 결과는 ‘죽음의 초극’이다. 전통 넋두리 노래를 전반에 제시하면서 죽음의 비극성을 바탕에 깔았고, 후반의 분열적 언술을 통해 죽음을 초극하고자 한 것이다. 전반의 넋두리는 사랑의 종말이라는 비극을 초래했으나, 후반의 언술을 통해 죽음이 초극되면서, 그것은 사랑으로 전환되었고, 결국 그 사랑은 극대화 되었다. 따라서 사랑과 죽음은 모순적 관계이자 화합의 관계이고, 궁극적 화합의 불가피성을 내포하면서 다시 분열의 미로로 빠져들기도 하는 관계이다.

무대 위의 여악(女樂)들이 임금에게 수(壽)와 복(福)을 바치는 서왕모 등 신선의 퍼스나를 갖추는 것은 당시 당악(唐樂) 정재들에 흔한 장치였고, 당악정재와 상호 텍스트의 관계를 맺고 있던 속악정재들의 경우도 임금에 대한 송도(頌禱)나 축수(祝壽)는 공통된 모티프였다. 그러니 무대 위에 등장한 여악들은 임금에게 최고의 사랑을 바쳐야 했다. 평범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극적인 사랑을 요구했다면, ‘죽음으로 패러프레이즈된 사랑’도 가능한 것이고, 넋두리의 외피(外皮)를 쓴 사랑담론 또한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가시리>는 단순히 ‘살아 이별’의 노래가 아니라, ‘죽어 이별’의 노래,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죽음을 노래하는 넋두리를 바탕으로 죽음을 극복해낸’ 노래이다.

텍스트의 외면 만으로는 ‘살아 이별’인지 ‘죽어 이별’인지 애매모호하다. 이면까지 뒤집어 봐야 양자는 대립적이면서도 궁극적으로 통합되는 주제들임을 알 수 있다. 죽음을 노래한 이면에 궁극적인 사랑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노래를 ‘죽어 이별’의 노래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해석처럼 이것을 ‘살아 이별’의 노래로 본다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죽음과 죽음에 대한 초극의지를 간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시리>를 좀 더 복합적으로 살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가시리>의 이면을 들여다 볼 만큼 우리의 해석적 안목은 충분히 확장・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조규익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아너 펠로우 교수(Honor Soongsil Fellowship Professor). 인문대 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소장. 도남국문학상・성산학술상・한국시조학술상 등을 수상. LG 연암재단 해외연구교수로 UCLA에서 ‘재미한인 이민문학’을, 풀브라이트 학자(Fulbright Scholar)로 OSU에서 ‘해외한인문학과 비교문학’을 연구. <<조선조 악장 연구>>・󰡔북<<문학사와 고전시가>>・<<동동: 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 외 다수의 저・편・역서와 논문들을 발표했음.

홈페이지(http://kicho.pe.kr) 및 블로그(http://kicho.tistory.com)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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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2012. 7. 17. 16:26

 

문숙희 박사의 새 책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복원 악보집>>이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5로 발간!!!

 

한국문예연구소 문숙희 박사가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복원 악보집>>(도서출판 학고방)을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5로 출간했다. <<시용향악보>>는 조선조 명종 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악보로서 고려 말~조선 전기의 민간과 궁중에서 애창되던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세종실록악보>>와 <<세조실록악보>>에 조선의 건국을 칭송하는 악장들이 실려 있는 것과 달리, 이 악보에는 주로 그 시대에 유행하던 고려가요 및 궁중의 나례(儺禮)의식에 사용되던 무속음악들이 실려 있다. <<시용향악보>>의 ‘향악(鄕樂)’이란 삼국시대부터 불리던 우리의 음악이라는 뜻으로서 ‘당악(唐樂)’ 즉 중국에서 들어온 음악에 대칭되던 용어인데, 이것을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면 ‘국악’의 뜻이 된다. 문 박사는 <<시용향악보>>에 실려 있는 26곡 전곡(全曲)을 복원하여 책으로 엮었는데, 이 가운데 <사모곡>⋅<서경별곡>⋅<청산별곡>⋅<가시리>⋅<이상곡>⋅<상저가>⋅<낙양춘>⋅<보허자>⋅<납씨가>⋅<대국>⋅<구천>⋅<별대왕> 등은 음반[<<노래박물관 특별전>>]으로 공개한 바 있다. 이 책의 발간을 계기로 우리의 옛 노래들의 악보 전모가 밝혀질 수 있게 되었다. 국악 및 국문학 연구자나 감상자들 모두 필수적으로 곁에 두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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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07. 7. 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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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 책 <<풀어읽는 우리 노래문학>>(논형, 2007. 7. 1.)을 펴냈습니다. 전공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우리 고전시가의 아름다움을 알려드리기 위해 쉽게 쓰려고 노력해 보았습니다만, 독자 여러분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걱정스럽습니다. 다음은 이 책의 목차입니다.

머리말

1부 우리 노래 다시 읽기
이별의 비극, 승화된 넋두리의 미학  공무도하가·가시리·원부가
유리왕이 지은 ‘군–민 소통’의 태평가  두솔가
훔쳐보기와 일탈의 미학  서동요·쌍화점·간부가
‘무소유’와 버림의 힘, 그 예술적 발현  우적가
삶과 죽음의 이중주, 그 예술적 형상화  제망매가
위대한 모정의 승리  도천수관음가
비장한 사랑과 죽음, 그 제의적 등가성  불굴가
‘사랑노래’의 시 문법과 미학적 전형성  단심가
서울의 찬가, 인간 욕망의 정치적 수사학  신도가
역사와 현실, 그 경계의 시적 형상화  용비어천가
성과 속의 서사적 대결과 숭고한 결말  월인천강지곡
열어줌과 풀어줌  장진주사
성본능과 일탈의 꿈  만횡청류
완경의 서사로 위장된 정치적 메시지  관동별곡
시대정신과 지식인의 대외인식  일동장유가
패기의 젊음이 엿본 세계, 그 빼어난 표현미  병인연행가
부패한 지배층과 민중의 저항, 그 미학적 승화  물것노래·거창가

2부 삶과 노래, 그리고 노래문학
1. 우리 노래문학의 흐름
2. 우리 노래문학과 자연, 그리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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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2007. 7. 3.

백규 드림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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