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21. 3. 28. 06:54

말없이 누워 시간을 증명하는 태안사구

 

세사(世事)가 번잡하다는 생각이 들면, 지체 없이 고향을 찾을 일이다. 고향을 찾는 일은 시간여행이다. 하기야 모든 여행이 시간여행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고향을 찾는 일은 다른 곳을 찾는 것과 다르다. 낡은 집 혹은 집터와 부모님의 산소가 있어 특별하다. 자연이 변했고 그 옛날의 사람들도 더는 살고 있지 않지만, 다북쑥으로 뒤덮인 집터나 산소는 의연히 그곳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발자국들이 찍혀 있고 그 발자국들에 묻어온 바깥세상의 티끌들이 켜켜이 쌓여 있으며 각종 잡초들이 자라나 엉켜 있는 곳. 그곳에 서리고 앉아 있는 스토리와 히스토리를 헝클어진 실타래 풀 듯 정리하려면 어쩔 수 없이 타임머신을 타야한다. 그래서 심사가 복잡할 때면 삽과 쟁기를 던져두고 달려가는 곳이 고향이다.

 

어릴 적 소에게 풀 뜯기러 다니던 백사장. 물소리와 물빛은 여전하고, 수평선에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도 그대로다. 겨우내 말라붙은 통보리사초가 바닷바람에 일렁이고, 그 사이에서 간신히 삶을 부지하고 있는 해당화 줄기들은 조심스레 눈을 틔워내고 있다. 해변에 빠끔빠끔 뚫려있는 작은 구멍들은 아마 부모 품에서 갓 떨어져 나온 달랑게 아가들의 새 집들일 것이다. 주변이 말끔한 어미 게의 집들과 달리, 녀석들의 집 주변은 온통 장난처럼 그어놓은 그림들로 어지럽다. 하하, 장난꾸러기 아가 달랑게들이여, 부디 행복하기를!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모래언덕을 힘겹게 지나 소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뚫고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빽빽한 곰솔들. 바람에 실려 번져 나가는 그들의 노래가 미세먼지로 더껑이 진 내 귀를 간질인다. 그래, 잘들 자랐구나. 손가락 굵기의 묘목을 새하얀 모래 언덕에 꽂아 넣던 수십 년 전 그 시절. 어찌 알았으랴? 순식간에 이토록 장대한 소나무 숲으로 자라날 줄을! 해신(海神)과 풍신(風神), 그리고 토신(土神)이 누천년 쉼 없이 불고 쓰다듬으며 만들었을 모래동산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신의 손길이 만든 사구(沙丘)들 대신 개미 같은 인간들이 그 곱고 이국적인 동산들을 눈 깜짝 할 사이에 집어 삼키지 않았는가. 해신과 풍신이 안간힘을 써가며 모래 알갱이들을 불어 올리고 있지만, 저 무성하게 태양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소나무 숲을 어찌 덮어버린단 말인가. 소를 풀밭에 풀어놓고 벌렁 누운 채 수평선을 바라보며 ‘따분한 고향’ 탈출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모래밭 한 가운데 화석으로 남아 있음을 비로소 발견한다. 수십 년 세월의 강을 건너며 모래밭에 남은 그 자국은 오히려 선명하게 내 눈앞으로 다가 서지 않는가. 자연은 바뀌어도 자연 속에 남겼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은 계절 따라 색깔만 바꾸어 갈 뿐, 사라지지 않음을 비로소 확인해주지 않는가.

 

내 옛집이 앉아있던 빈 터, 아직도 나를 쓰다듬어 주시는 조부모와 부모의 산소, 어린 시절 뒹굴며 찍어 놓은 모랫벌의 내 모습, 순식간에 모랫벌을 삼키고 하늘같이 자라난 소나무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않고 모래알을 불어 올리는 해신과 풍신 그리고 토신, 작은 구멍을 뚫고 구멍 앞에 현란한 그림들을 그려놓은 아가 달랑게들... 모두가 내 시간여행을 가능하도록 한 도우미들이었다. 시인 서정주는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고 국화를 노래했지만, 젊은 시절 욕망과 꿈의 미로에서 헤매다가 고향 앞에 돌아와 끊임없이 밀려드는 바닷물과 이젠 한 줌 사구에 남은 그 옛날의 내 모습이나 찾아볼 뿐이다.

 

왜 고향을 찾는가. 내 모습을 찾기 위한 시간여행. 그것을 가능케 하는 타임머신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말없이 누워있는 사구

 

할 말이 많은 사구

 

사구와 풀들

 

사구 뒤편의 곰솔밭

 

 

 

건강한 곰솔

 

 

곰솔의 남성미

 

 

사구 앞의 등대

 

 

사구의 주인 갈매기들

 

사구 앞 해변

 

 

태안사구 아가 달랑게들의 집들과 그림

 

태안사구의 태양

 

부모님 산소

 

나무숲이 되어버린 고향집터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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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1. 3. 19. 16:54

‘읽는 책’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책’으로!!!

 

 

작년도 제 연구실에서는 네 사람의 연구자들[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이 음악으로서의 보허자(步虛子) 악곡과 시가로서의 보허사(步虛詞)를 분석・정리하는 모임들을 가졌습니다. 이미 우리 팀은 세종대 궁중정재 ‘봉래의’와 고려시대 궁중 속악정재 ‘동동’을 복원하고 분석하여 책으로 엮어낸 경험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작업 또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작년 11월 21일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복원 공연 및 학술발표회를 가졌습니다.

 

보허자步虛子: 허공을 즈려밟고 훨훨 나는 신선이여!

태평성세 유토피아 이루시는 제왕이여!

 

국가지정문화재 전수회관 풍류극장

2020. 11. 21.

 

그 자리에서 이루어진 학술발표들과 공연을 함께 묶은 책이 오늘 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책 제목과 출판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허자步虛子

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

 

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

 

민속원, 2021. 3. 2.

 

이 책의 내용과 의미는 책의 서문과 목차에 잘 밝혀져 있으므로, 그것들을 여기에 붙이겠습니다.

 

 

◆ 머리말 ◆

 

신선의 음악과 춤,

노래 속에 즐거운 ‘시간여행’을...

 

 

보허자步虛子에 관한 멋진 설화 한 토막.

 

일설에 이르기를, 진사왕[조식]이 유산할 때 문득 허공에서 경을 외는 소리가 들리는데, 맑고 심원하며 굳세고 밝으므로 음을 아는 자가 본뜨고 그려내어 신선의 소리로 삼았으니, 도사가 이를 모방하여 보허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원異苑>> 권5

 

남북조 시대 최고의 산수시인山水詩人 사령운謝靈運이 “천하의 재능이 한 섬이라면, 그 중 8말을 조식이 차지하고, 내가 한 말을 가졌으며, 나머지 한 말을 세상 사람들이 나눠가졌다.”고 말할 정도로 조식曹植은 천재 시인이었다. 지금 보허성 혹은 보허자의 근원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에 보허자가 얼마나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웠으면, 그들은 조식을 내세워 이런 스토리까지 만들었을까

 

우리는 몇 해 전부터 중세왕조들의 궁중예술을 연구해오는 중인데, 고려․조선의 궁중예술들은 악곡․노래[시가/악장]․춤이 융합된 무대예술[정재呈才]이었다. 음악만으로, 춤만으로, 시가만으로는 그 미학의 진수를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융합예술체들이다. 그래서 각 부분을 연구한 뒤 하나로 합치는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올려야 완성되는, 복잡하지만 즐거운 작업들을 해온 것이다. 그간의 연구 결과들은 아래와 같다.

 

무대들

 

고려 및 조선노래 복원 연주회: 노래박물관 특별전[600년의 소리향]

-국립국악원 우면당, 2011. 11. 10.

 

세종, 음악으로 다스리다

-한중연 소강당[학술발표], 대강당[축하공연], 2012. 11. 27.

 

봉래의鳳來儀:세종의 꿈, 봉황의 춤사위 타고 하늘로 오르다!

–국립국악원 우면당, 2013. 11. 21.

 

동동動動: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사랑의 염원이여!

–국가지정문화재 전수회관 풍류극장, 2018. 12. 1.

 

 

펴낸 책들

 

조규익문숙희손선숙,  <<세종대왕의 봉래의, 그 복원과 해석>>, 민속원, 2015.

 

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  <<동동動動: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 민속원, 2019.

 

 

동동에 빠져 지낸 뒤 보허자와 보허사를 만났고, 상당 기간의 연구를 거쳐 세 번째 복원공연 및 학술발표회를 가졌다.

 

보허자步虛子:허공을 즈려밟고 훨훨 나는 신선이여!/태평성세 유토피아 이루시는 제왕이여! –국가지정문화재 전수회관 풍류극장, 2020. 11. 21.

 

이제 그 결과를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는다.

 

초창기 도교의 재초의례齋醮儀禮에 쓰이다가 문인들에게 수용되었고, 궁중으로까지 들어갔다는 것 외에 보허자의 본질과 확산 과정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나마 문헌에 약간씩의 단서들이 남아 있어 추적은 가능했다. 보허자에 올려 불린 악장으로서의 <벽연롱효사碧烟籠曉詞> 덕에 보허사의 본질을 유추할 수 있었고, 보허사 범주 안의 시작품들을 많이 남겨준 중국 시인들과 조선의 시인들 덕에 시문학으로서의 보허사 수용양상을 살필 수 있었다. 15세기 여민락과 16세기 여민락의 관계 및 15세기 낙양춘의 선율을 바탕으로 16세기 보허자에서 15세기 보허자의 선율을 찾아낼 수 있었다. 또한 보허자 곡의 연주로 추었다는 <<악학궤범>>의 기록 덕에 학무鶴舞도 복원할 수 있었다.

 

 

우리는 1,500여 년 전의 보허자가 우리 곁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이렇게 추적해왔다. 이 책으로 1차 보고의 의무를 마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다시 ‘시간여행자’가 되어 또 다른 작품들과 씨름하다가 퍼뜩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신선의 음악과 노래, 춤 속에서 즐긴 ‘시간여행’은 매우 환상적이었고, 그래서 행복했다.

 

큰 도움 주신 한국연구재단과 힘들인 원고를 멋진 책으로 꾸며주신 민속원의 홍종화 사장님과 편집부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강호 제현의 애정 어린 비판을 고대한다.

 

2021. 3. 1.

 

지은이들을 대표하여

조규익

 

 

 

◆ 목차 ◆

 

제1부

총서 / 19

  조규익

 

 

제2부

악장으로서의 <보허사步虛詞>, 그 전변轉變에 따른 시대적 의미 / 27

  조규익

 

1. 머리말 28

2. 고려왕조의 보허자․보허사 수용과 1차적 의미 전변 32

3. 조선왕조의 보허자 계승과 콘텍스트의 복합성 44

4. 조선조 보허자 악장 텍스트의 실험과 2차적 의미 전변 51

5. 맺음말 68

 

 

제3부

조선조 문인文人들의 보허사步虛詞 수용양상 / 71

성영애

 

1. 머리말 72

2. 송대宋代 <<악부시집樂府詩集>>에 나타난 보허사步虛詞 개관 75

3. 문인文人들의 보허사步虛詞 수용양상 80

4. 맺음말 97

 

 

제4부

15세기 보허자 음악 복원 연구 / 99

문숙희

 

1. 머리말 100

2. 보허자 리듬 변천 과정과 15세기 보허자의 리듬 104

3. 15세기 보허자 음악 찾기 113

4. 맺음말 124

 

 

제5부

보허자 음악에 맞춘 성종대成宗代 학무 복원 연구 / 127

손선숙

 

1. 머리말 128

2. <<악학궤범>>의 <학무> 검토 132

3. <학무> 복원의 주요 키워드 11가지 135

4. <학무> 복원의 수용 범위와 근거 139

5. <학무>의 가무악歌舞樂 융합적 복원 안무보 198

6. 맺음말 200

 

 

제6부

총결 / 207

조규익

 

 

제7부

텍스트 / 223

 

1. 고려사 악지 오양선 기록 224

2. 악학궤범 학무 기록 225

3. 여민락 악보 226

4. 금합자보 악보 000

5. 대악후보 악보 000

 

 

Abstract 215

참고문헌 227

찾아보기 233

 

 

 

 

강호제현의 많은 조언과 편달,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1. 3. 19.

 

조규익 드림

 

 

 

 

 

 

 

췌언(贅言)

 

 

세상에 또 한 권의 책을 보태면서

 

 

책이란 무엇이며, 왜 만드는 것일까요? 많지는 않지만, 지금 제 서재에는 이름 모를 옛 선조들이 꼬박꼬박 적은 다음 묶어놓은 책 형태의 문적들과, 근대 이후 신활자로 출간한 선학들의 책들이 몇 권 꽂혀 있습니다. 글자를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변변한 종이도 없던 시절, 그 분들은 왜 그런 자취를 남긴 걸까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도 들으려 하지 않고 글자로 써놓아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던 그 당시에 그 분들이 느낀 좌절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지금은 모르지만, 앞으로 백년 천년 뒤 누가 있어 이 글을 보면 내가 이 땅에 살다 갔음을 알아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이런 문적을 남겼겠지요? 저는 그저 제가 하고 있는 공부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면 흐뭇하고 즐거워 이 날 이 때까지 아무도 읽어주지도 알아주지도 않는 글들을 반복적으로 쓰고 있습니다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아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가득 채운 미세먼지 한 톨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비로소 ‘남은 기간’과 ‘해야 할 것들’ 사이의 불균형이나 괴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생 시절 저를 아껴 주시던 나손(羅孫) 김동욱(金東旭) 선생님은 저를 만나실 때마다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물으셨고, 제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당신의 말씀을 툭툭 던지곤 하셨습니다. 나중에 선생님의 말씀들을 곱씹어 보며 그 말씀들 속에 담긴 아이디어가 얼마나 금쪽같은 것들이었는지를 깨닫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왜 그런 아이디어들을 속속 더 많은 논저들로 만들어 내지 않으실까?’ 물론 선생님은 당시 이미 등신대(等身大)의 논저들을 남겨 놓으셨으니, 거기에 새삼 무엇을 더 얹으실 수 없는 입장이셨지만, 어린 저로서는 의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저도 그 때 그 분의 연치에 도달했습니다. 남들의 논저를 읽어갈 때마다 ‘이건 왜 이렇게 썼을까?’, ‘이 점을 놓친 것 같군’, ‘이런 견해를 표명한 글들이 이미 나왔는데, 미처 읽지 못했군’ 등등.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후학을 만나 이야기하면, ‘그럼 당신이 한 번 써보구려!’라는 반박이 되돌아 올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생각을 논리화하는 작업에 착수한다는 것은 ‘열정과 힘’이라는 연료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이제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열정과 힘을 다른 말로 하면 ‘젊음’이겠지요. 신은 인간에게 아이디어를 풍성하게 주면서 열정과 힘까지 주지는 않습니다. 인생을 불태워 아이디어와 지혜를 얻었다면, 그 아이디어와 지혜는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닙니다. 그를 뒤따르는 누군가들에게 건네주어야 할 ‘대가 없는’ 선물일 뿐이지요.

 

이 책[보허자步虛子: 궁중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을 포함, 10권 정도를 시리즈로 내고자 한 것이 얼마 전까지 갖고 있던 제 내심의 계획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3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평가결과도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헛된 꿈’을 버리라고, 제 옆지기는 자꾸 다그치네요. 좀 과하고 헛된 꿈일까요?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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