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4. 4. 28. 10:37

 

 

 


제이슨 가족이 살고 있는 대학 아파트[Morrison]

 

 


제이슨 부부와 함께 저녁 식사 중에[Freddy Paul's에서]

 

 


식사 후 제이슨 가족과 함께

 

 


제이슨 집을 방문하여 그의 아들 그레이선[Grayson]과 함깨


 

 

 

탁월한 젊은 영어 교육자, 제이슨 컬프(Jason Culp)

 

 

 

2013827일 저녁. 이미 어둑발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 일곱 시쯤 숙소인 대학 아파트 윌리엄스[Williams]’에 도착했다. 평화로운 초원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그림 같은 아파트였다. 아파트 관리소 FRC[Family Resources Center]의 사무실을 찾아가니 훤칠한 훈남한 사람이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했다. 나중에 그가 우리 아파트의 위층에 사는 OSU 대학원생 제이슨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와 함께 그 아파트에 살며 FRC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제이슨과의 인터뷰



 

우리는 종종 그를 만났다. 아파트에 문제가 생겨도, 우편물이나 택배 수령에 문제가 있어도, 우리는 그를 불렀다. 학교에서도 내 연구실에서도 나는 그와 자주 만나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실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게 미국인들인데,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교제할 수 있는 상대가 미국인들이기도 했다. 그와 친구로 만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문화와 한국인들의 삶을 말해주었고, 그는 그간 우리가 모르고 있던 남부 미국인들의 삶과 의식(意識)을 설명해주었다.

 

그와 만나는 과정에서 그가 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외국어 사용자들을 위한 영어 교육]을 전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의 영어가 매우 명료하면서도 정확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라고 모두 표준 한국말을 명료하고 정확하게구사하지는 못하듯, 미국 사람들이라고 모두 표준 영어를 구사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영어만으로 분류할 경우 미국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대충 네 부류로 나뉘었다. 짤막하면서도 느릿느릿한 영어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어른들, 진한 사투리 억양으로 상대방을 갸웃거리게 만드는 사람들, 입에 오토바이 엔진을 단 듯 숨넘어가게 지껄여대는 학생들과 젊은이들, 제이슨처럼 교과서적인 영어로 호감을 주는 소수의 지식인들. 가끔 방송에서 목격하는 오바마 대통령, 전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현 백악관 대변인과 미 국무성 대변인 등의 대중 스피치를 통해 미국 지도자들이나 상류층의 덕목 가운데 언어의 명료성과 모범성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제이슨에게서 그런 스피치의 전형을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한국에는 많은 원어민 영어교사들이 활약하고 있다. 모두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지만, 각기 다른 그들의 특징과 개성을 뛰어 넘는 표준성과 모범성을 제이슨에게서 발견했다. 흡사 입술과 내면에 부드러운 모터(motor)를 달아놓은 듯, 그에게선 늘 명료하고 기분 좋은 영어가 솔솔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의 대학이나 공공기관에서 한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늘 갖게 하는 그였다. 그 역시 한국 같은 나라에 나가 영어를 가르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

 

제이슨 부부와 식사를 함께 한다거나 차를 마시면서, 풋볼 경기를 관람하면서, 새로 태어난 아기를 축하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사이에 개재하는 문화의 차이를 초월하여 상통하는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름을 넘어 같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힘은 바로 언어였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소통의 힘이었다. 우리는 그와 그의 가족을 만나면서 미국 체류 기간 내내 행복했다. 타향에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가 이웃에 살고 있는 것처럼 든든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비록 우리에 비해 나이는 어렸지만, 지구촌에 대하여 그가 갖고 있던 식견만은 어느 기성세대보다 월등했다. 그리고 글로벌화 된 세계에서 좀 더 멋진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게 해준 그였다. 조만간 한국에서 그를 만날 수 있게 되길 기대하면서, 그들과의 행복했던 몇 개월을 회상해보는 요즈음이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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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4. 3. 17. 20:07

 

 


OSU in Stillwater 캠퍼스 조감도

 

 

 


OSU의 분 피켄스 스테이디엄(Boone Pickens Stadium)

 

 

 

 


OSU의 전신인 Oklahoma A&M 건물.
현재는 OSU의 Honors College로 쓰이고 있음[아래 사진 참조].

 

 

 

 


OSU의 Honors College로 쓰이고 있는 Oklahoma A&M  건물.

 

 

 

 


OSU의 상징 마크

 

 

 

 


Oklahoma A&M의 문장(紋章)

 

 

 

 


OSU의 문장

 

 

 

 


OSU의 마스코트인 '피스톨 페테(Pistol Pete)

 

 

 

 


피스톨 페테의 모델인 프랭크 이튼(Frank Eaton)

 

 

 

 


1928~1950년까지 Oklahoma A&M의 총장을 지낸 베네트(Henry G.Bennett) 박사 동상.
베네트 총장은 이 대학 발전의 초석을 놓았음.

 

 

 

 


OSU의 중심에 서 있는 중앙도서관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의 설경

 

 

 

 


OSU의 '선진 기술 연구 센터[Advanced Technology Research Center/ATRC]

 

 

 

 


OSU 캠퍼스의 한 건물

 

 

 

 


스튜던트 유니언(Student Union)에서 내려다 본 OSU의 가든

 

 

 

 


OSU의 중심에 서 있는 중앙도서관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의 여름 경치

 

 

 

 


백규 연구실이 들어 있던 사우스 머레이홀(South Murray Hall)의 복도

 

 

 

 


OSU의 중심을 관통하는 몬로 거리[Monroe Street]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특강 중인 백규

 

 

 

 


 OSU의 예술과학대학[College of Arts and Science]
대닐로위츠( Bret Danilowicz)학장과 상면(학장실에서)

 

 

 

 


백규 연구실을 방문한, OSU의 탁월한 한인 교육학 교수 조윤정 박사

 

 

 

 


OSU 인근 다운타운의 레스토랑에서 역사학과의 에멀리[Graham, Emily] 교수와  함께

 

 

 

 


OSU 역사학과의 반짝이는 두 학생 마켄지(Mackenzie)와 루크(Luke Mccamon) 

 

 

 

 

 

 

평원 속 지성의 오아시스,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미국 내에서의 연구기관을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으로 정했다고 하자, 한국 풀브라이트의 심재옥 단장은 참 잘한 결정이라고 나를 추어주었다. 미국 내에서 그 학교만큼 친절하고 협조적인 기관도 드물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오클라호마 주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에 대해서 눈곱만큼의 사전 정보나 지식도 없었던 나로서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도착 후 뙤약볕 내려 쪼이는 캠퍼스를 걸어보니, 소떼 노니는 초원인 듯 한없이 넓었다. 방문한 사무실의 직원들도, 교정에서 만나는 학생들도 모두 친절해서 마음이 놓였다. 따가운 햇살만 아니라면 시차로 인해 무거워진 눈꺼풀을 닫은 채 마냥 걷고 싶은 공간이었다. 듬성듬성 세워놓은 갖가지 양식의 건축물들도 고풍스럽고 따스해 보였다. 사우스 머레이홀(South Murray Hall)과 스튜던트 유니온(Student Union) 사이에 있는 쎄타 폰드(Theta Pond). 그 안에서 살아가며 이방인이 나타나도 무서워하지 않고 꽉꽉거리며 다가오는 기러기와 오리들도 정겨웠다.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 친절한 인간, 고풍스런 건축물들이 잘 어울려 친근미를 자아내는 OSU에서 꿈같은 한동안을 지내게 된 것이었다.

 

OSU는 이른바 랜드 그랜트(land-grant), 선 그랜트(sun-grant)’ 대학이었다. ‘랜드 그랜트 대학이란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한 토지에 세운 대학을 뜻하는 말이다. ‘랜드 그랜트 대학에 대한 지원은 1862년에 제정된 모릴법[Morrill Acts] 대학에 대한 연방 토지 허여법(許與法)’에 근거한다. 연방이 각 주에서 선출된 상하원 의원 1명당 3만 에이커의 나라 땅을 무상으로 주고, 그 토지 수익의 90%를 농학이나 공학 관련 강좌가 개설되어 있는 주립대학의 발전 기금이나 유지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모릴법이다. 1890년과 1907년에는 기존의 모릴법에 의해 지원을 받는 모든 대학들에 의회가 직접 보조금을 교부하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다. ‘선 그랜트 대학이란 지속 가능하고 환경 친화적인 생태 기반의 대안 에너지를 연구 개발하는 대학을 뜻한다. ‘선 그랜트 계획의 지역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다섯 개의 미국 대학들이 모여 선 그랜트 연합이 결성되었고, 그 연합은 교통부, 에너지부, 농업부 등을 파트너로 삼아 연구교육 활동을 펼친다.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을 비롯, 코넬 대학교(Cornell Univ), 오레곤 주립대학교(Oregon St. Univ.), 사우스 다코타 대학교(South Dakotat Univ.), 녹스빌 테네시 대학교(Univ. of Tennessee at Knoxville) 등 다섯 대학들은 각각 선 그랜트에 기반을 두고 있는 기관들이다.

 

1890년에 세워졌고, 2012년 기준으로 23,459명의 학생들과 1,857명의 직원을 포함한 OSU는 스틸워터 캠퍼스만 해도 1,489 에이커[6.03]에 이를 만큼 넓다. 캠퍼스 안 어디에서나 피스톨을 찬 카우보이[피스톨 페테(Pistol Pete)]의 사진과 마스코트를 볼 수 있었으며, 풋볼을 비롯한 각종 경기 중에도 피스톨 페테의 분장을 한 사람이 그라운드에 나타나 분위기를 띄우곤 했다. 함께 풋볼을 관람한 제이슨으로부터 피스톨 페테의 연원을 들을 수 있었다피스톨 페테는 OSU, 뉴멕시코 주립대학, 와이오밍 대학교가 함께 사용하는 운동경기의 마스코트였다. 피스톨 페테는 프랭크 이튼(Frank Eaton)을 닮은 전통적인 카우보이의 의상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는데, 그의 형상이 OSU 카우보이 팀의 마스코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23부터였다. OSU가 원래 ‘Oklahoma A&M 대학[Oklahoma Territorial Agricultural and Mechanical College]’으로 출발할 때 당시 이 대학의 스포츠 팀은 ‘Agriculturists, Aggies, Farmers’ 등으로 불렸고, 사실 그다지 인기는 없었지만 공식명칭은 ‘Tigers’였다. 그러다가 1923년 경 Oklahoma A&M은 스틸워터의 양떼 행진[Sheep Parade]’을 인도하던 프랭크 이튼(Frank Eaton)을 새로운 마스코트의 모델로 삼아 기존의 호랑이 마스코트를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1923년부터 프랭크 이튼은 Oklahoma A&M의 마스코트로 계속 쓰였으나, 1958년에 이르러서야 OSU는 이것을 공식적인 상징으로 인정했다 한다.

 

1860년 코네티컷 주에서 태어나 캔자스로 이주한 프랭크 이튼은 여덟 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당시 자경단원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군 소속의 잔당 6명에 의해 맥주 집에서 저격당한 것이었다. 그 후 아버지 친구의 충고에 따라 열심히 권총사격 연습을 하여 결국 원수를 갚았고, 그 후로부터 그의 영웅적 행적은 전설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피스톨 페테의 모습이 가장 강렬하게 등장하는 이벤트는 스포츠 경기들과, 홈커밍[OSU’s Homecoming Celebration]을 포함한 각종 축제들이었다. 9월부터 시작되는 1학기 초부터 기숙사별로 학생들이 단결하여 홈커밍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프래터너티(fraternity)와 소라러티(sorority) 즉 남녀 사생(舍生)들이 기숙사별로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기숙사 안팎을 치장하는 등 화려한 축제를 통해 그들의 단결심을 고취하고, 그런 유대관계는 졸업 후에도 끈끈하게 지속되는 것 같았다. 이러한 홈커밍데이의 전통과 함께 OSU는 놀랄만한 스포츠 유산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점에도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시즌 중 거의 매 주말은 게임 데이(game day)’였고, 하루 전부터 재학생동문주민들이 경기장에 총출동하다시피 함으로써 평소에 조용하던 시가지는 아연 활기를 띠곤 했다.

 

게임데이는 실질적으로 스틸워터의 도시축제인 셈이었다. 7만 명을 수용하는 분 피켄스 스테이디엄(Boone Pickens Stadium)’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였고, 응원의 함성으로 천지가 진동하는 듯 했으며, 캠퍼스 안의 잔디밭과 도로변의 공터는 외지에서 온 관객과 응원단의 텐트촌으로 바뀌곤 했다. 거대한 RV(Recreational Vehicle)들과 관객들의 승용차가 시내 공용 주차장들을 점령하고, 주차장으로부터 경기장까지는 무료 셔틀버스들이 수시로 왕래했다. 이처럼 풋볼, 농구, 여자 축구, 야구, 레슬링, 테니스, 크로스컨트리 등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들이 캠퍼스 안에서 활발한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었다.

 

OSU 스포츠의 대단한 모습은 대외적인 경기력 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을 위한 생활스포츠에서도 두드러진다. 51개의 국내 선수권 챔피언십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은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이었다많은 챔피언십 보유 순위에서 OSU는 미국 대학 경기 연맹[NCAA: 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의 최상위 그룹인 1그룹[Division 1]351개 대학들 중 4위에 속하고, 아이오와캔자스오클라호마텍사스웨스트 버지니아 주를 포괄하는 12 경기 협의회[Big 12 Conference]’ 소속의 10개 대학들 중에서는 1위에 속한다. 

 

그 뿐 아니라 캠퍼스 한 쪽에 서 있는 국립 레슬링 명예의 전당 박물관[National Wrestling Hall of Fame and Museum]’은 미국 전역에서 배출된 역대 레슬링 선수들의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링컨도 루즈벨트도 슈워츠코프도 레슬링 선수출신이라는 사실을 이곳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명예의 전당은 단순히 힘깨나 쓰는 장사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잊히는 한국과 달리 오래도록 명예가 드높여지고 보존되는 미국의 힘과 지혜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OSU 스포츠의 장점이 스타플레이어들의 엘리트 스포츠 종목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구성원들의 건강관리와 유지를 위해 세운 종합 스포츠관인 콜빈 센터와 세레티안 웰니스 센터, 크로스 컨트리 경기장, 잔디 축구장, 테니스장 등이 캠퍼스 안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포츠 공간들은 대중 스포츠의 현장이었다. 구성원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시설들은 대학이 엘리트 스포츠 아닌 대중 스포츠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들이었다.

 

18901225일 오클라호마 의회가 모릴법에 의거하여 개교한 오클라호마 지역 A&M 대학은 개교 이래, 많은 변화와 발전들을 거쳐 1957515일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으로 변신했고, 스틸워터를 그 본거지로 삼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스틸워터 이외에 ‘OSU-오크멀기 기술연구소[OSU-Institute of Technology in Okmulgee]’(1946), ‘OSU-오클라호마 시티[OSU-Oklahoma City]’(1961), ‘OSU-털사[OSU-Tulsa]’(1984), ‘OSU-건강연구소, 털사[OSU-the Center for Health Sciences-Tulsa]’(1988) 등의 분교들을 거느리게 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이 지역의 대표 대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스틸워터의 OSU 캠퍼스는 농업과학과 자연자원 대학[College Science and Natural Resource(CASNR)/농업경제학(Agricultural Economics), 농업경영학(Agribusiness) 16개 전공]’, ‘예술과학대학[College of Arts and Science(CAS)/영어(English), 역사(History) 24개 학과]’, ‘교육대학[College of Education(COE)/초등교육(Elementary Education), 직업기술교육(Career and Technical Education) 29개 프로그램]’, ‘공학건축기술대학[College of Engineering, Architecture, and Technology(CEAT)/소방안전기술(Fire Protection and Safety Technology), 산업공학과 경영학부(School of Industrial Engineering and Management) 13개 학부]’, ‘인문대학[College of Human Sciences(HS)/디자인학과(Department of Design), 호텔 식당경영학부(School of Hotel and Restaurant Administration) 4개 학과]’, ‘스피어스 경영학부[Spears School of Business/금융학과(Department of Finance), 마케팅학과(Department of Marketing) 7개 학과]’ 6개 대학 200여 전공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틸워터의 전체면적은 73.3였고, 그 중 다운타운의 면적은 이 채 안 되는 듯 했으며, 6.03에 달하는 OSU는 다운타운으로 감싸인 방사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미국 내 대학들 가운데 OSU의 서열이 어떠하든, 동부나 서부의 전통적인 명문대학들과 비교하여 그 수준이 어떠하든, 스틸워터를 비롯한 오클라호마 주민들은 정말로 OSU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점이 이채롭고 감동적이었다. 서울과 지방 대학들 간의 서열을 따지고, 같은 지역 안에서도 대학 간의 서열을 따지며, 같은 대학 내에서도 학과 간의 서열을 따지며 차별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하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에게 OSU는 오클라호마를 대표하는, ‘우리 대학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 속에 평화로운 모습으로 늘어서 있는, 나지막하고 고풍스런 건물들이 OSU 캠퍼스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고, 가끔 체육관으로 몰려가 ‘Go Pokes!’를 목청껏 외치며 OSU Cowboys들을 응원하는 세계의 수재들이 그 공간에 열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OSU에 머물며 미국 대학들의 경쟁력과, 그로부터 나오는 미국의 힘을 실감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에 막 도착하여 뙤약볕 아래 캠퍼스를 돌아보는 백규와 멜라니

 

 

 

 


OSU 갤러거 아이바 경기장[Gallagher Iba Arena] 앞에 서 있는 'OSU Spirit Rider'

 

 

 

 


풋볼 경기 중 OSU가 한 점을 얻자 말을 탄 카우걸과 응원단이 경기장에 나온 모습
[Boone Pickens Stadium]

 

 

 

 


풋볼 경기를 관람하는 제이슨(Jason Culp)과 백규

 

 

 

 


풋볼 경기장에서 OSU를 응원하는 학생 응원단

 

 

 

 


풋볼 경기에서 OSU가 선취점을 올리자 기뻐 뛰쳐나온 응원단

 

 

 

 


크로스 컨트리 경기장에서 힘차게 출발하는 선수들

 

 

 

 


OSU에서 운영하는 캠퍼스 내의 호텔 Atherton

 

 

 

 


홈커밍 행사의 일환으로 학생들이 만들어 전시하는 홍보판

 

 

 

 


홈커밍 행사에 전시할 기숙사 장식물들을 합동으로 제작하고 있는 여학생들[sororities]

 

 

 

 


기숙사생들 스스로 한 학기 동안 기획하여 제작한 장식물을 기숙사 전면에 부착한 모습.
많은 일반인들이 이것을 구경하기 위해 캠퍼스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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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U 캠퍼스 내의 아파트[101 윌리엄스]

 

 

 

 


OSU 아파트를 관리하는 사무실 건물[Famil Resource Center/FRC]

 

 

 

 


대학 내의 치안을 담당하는 OSU 대학 경찰서 순찰차량들

 

 

 

 


겨울을 맞은 OSU 쎄타폰드(Theta Pond)

 

 

 

 


학생들이 언제나 찾아 체력을 단련하는 콜빈 레크리에이션 센타(Colvin Recreation Center)

 

 

 

 


학생들의 체력과 건강 증진을 위해 건립된 '세레티안 웰니스 센터' 입간판

 

 

 

 


갤러거 아이바 아레나에서 갖는 후기 졸업식의 한 부분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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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4. 2. 1. 01:15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한 림멜 교수

 

 

 

한국의 통일을 열망하는 러시아 역사 전문가, 림멜(Lesley A. Rimmel) 교수

   

 

미국에 있는 동안 꽤 많은 미국의 지식인들을 만났다. 주로 교수나 강사, 박물관의 큐레이터들,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 등인데, 그 가운데는 오가는 도중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금까지 비교적 자주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미국 지식인들이 타인들 특히 외국인들을 낯설어 하며 자신들만의 울타리에 갇혀 지내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신의 전공을 통해 얻은 통찰력으로 남을 이해하기도 하고, 남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를 통해 전공에서 만난 문제들을 풀기도 한다.

 

12월 중순의 어느 날 점심시간. 브레이크 룸에서 커피를 데우고 있는데, 평소 눈인사 정도를 나누던 여 교수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며칠 전 PBS에서 방영된 비밀의 국가 북한[Secret State of North Korea]’란 다큐멘터리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참으로 많이 부끄러워졌다. 방영된다는 소식을 뉴스로 듣긴 했으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동족의 끔찍한 참상들이 미국인들의 눈앞에 발가벗겨진 채 드러난 모양이구나! 집에 돌아가자마자 포털사이트에서 그 방송을 확인했고, 며칠 후에는 다운로드해서 직접 보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거나 짐작하고 있는 사실들의 반복에 불과했지만, 미국인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왔을 내용이었다. 특히 군사조직에 가까울 정도의 병영국가 체제, 대한민국과 미국을 주된 표적으로 무력을 앞세운 협박, 몽땅 쇼 윈도우의 컨셉으로 꾸며진 평양, 비참하고 끔찍한 정치범 수용소들, 살아남을 힘마저 상실한 아이들과 일반국민들의 참상 등. 내게 북한의 현실을 일깨워 준 림멜 교수에게 달리 할 말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녀를 만나 South Korean들의 입장을 말하지 않으면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드디어 림멜 교수의 연구실에서 장시간 만나 한반도의 현실을 설명하고, 그녀의 관심사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대화들 가운데 한 부분을 이곳에 올리기로 했다.

 

 


                                                      연구실에서 필자와 대담 중인 림멜 교수

 

 

 

***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림멜 교수는 자신의 전공을 통해 얻은 통찰력으로 남을 이해하게 된대표적 미국 지식인이다. 명문 예일 대학 역사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그녀는 이듬 해 국제 교육 교류 위원회[Council on International Educational Exchange]’의 수혜자로 선발되어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레닌그라드 주립대학[Leningrad State University]에서 러시아어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며,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키로프(Kirov) 살해와 소비에트 사회: 1934-35년 레닌그라드에서의 선전과 여론[The Kirov Murder and Soviet Society: Propaganda and Popular Opinion in Leningrad, 1934-35]’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였다.

 

1995-96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강사로 재직했고, 1998년 가을학기부터 이곳 OSU에 자리를 잡고 주로 러시아중앙아시아근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과목들을 강의해 왔으며, 20여 종에 가까운 수상 및 그랜트(Grant) 수혜 경력을 갖고 있는 탁월한 교수임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는 풀브라이트(1991-92), 앨리스 폴 어워드(Alice Paul Award/1991), 국제 교류 연구 기금(International Research and Exchanges Board Grant/1991-92) 등을 비롯,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혜를 받은 학자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스탈린 시대 소련 역사에서 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이었고, 전쟁을 비롯한 집단 폭력이나 지하경제와 같은 국제적 기층민중의 현실 등에도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북한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현실에 관심을 갖는 걸까. 북한 얘기를 꺼내자 그녀는 김정은을 입에 올리며 스탈린보다 훨씬 잔인한 그의 성격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야기 도중 책장 위에 올려놓았던 스탈린의 배불뚝이 동상을 꺼내더니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체형(體形)이 스탈린과 똑같지 않으냐고 내게 물었다. 국민들을 배고프고 괴롭게 하면서 자신의 배를 불린 전형적인 독재자의 모습을 스탈린에게서 찾을 수 있고, 한반도의 김씨 3대는 바로 그 아류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스탈린 시대를 중심으로 러시아 역사를 긴 세월 연구해 온 그녀로서 국민 착취 및 학대의 전형적인 독재자로 스탈린을 꼽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체형과 인간성의 유사성까지 들면서 김씨 3대를 스탈린보다 더 잔인하고 독한 인물들로 규정하고 있는 점은 흥미로웠다. 그나마 스탈린은 자기 당대에 끝이 났지만, 김씨 왕조는 대물림을 하고 있으므로 훨씬 지독한 인물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스탈린이나 김씨 3대 등 배불뚝이 독재자들주민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악마적 지도자의 시각적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음을 그녀의 설명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스탈린의 독재가 결국 소련 해체의 단서로 작용한 것처럼 그보다 더 잔인한 모습으로 한반도 북쪽에 군림하고 있는 김씨 3대 특히 김정은의 폭력성이 조만간 체제의 전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그녀의 관점이었다.

 

 


연구실에서 필자와 대담 중인 림멜 교수

 

 


연구실에서 필자에게 설명 중인 림멜 교수

 

***

 

주변에 입양된 한국의 고아들을 언급함으로써 나를 부끄럽게 했지만, 이내 한국인 친구들이나 한국과의 친분을 강조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친밀감을 갖게 한 그녀.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삼성현대기아엘지•대한항공 등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을 죽 나열하고 그들의 장점까지 거론했으며,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삼성 폰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뿐인가. 한국의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을 독재자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을 민주주의 정착기의 대통령으로, 그 사이에 있는 노태우 대통령을 과도기로 각각 규정하는 등 한국 대통령들의 이름과 공적을 꿰고 있었으며, 반기문 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등 세계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명사들의 이름을 줄줄 외움으로써 한국인인 나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산업화의 결정적 초석을 놓은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고 있으며, 그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도 정계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다고 내가 설명하자 그 말을 수긍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물어왔다. 세대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믿음직하다는 평가를 받아 비교적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하자, 동북아시아의 큰 나라들이나 미국도 내지 못한 여성 대통령을 선출했다는 점과 함께 여성의 리더십이 나라를 흥하게 하는 선례를 한국이 만들 것이라는 고무적 관측까지 내놓는 것이었다. 북한이 매우 폭력적으로 나오는 것도 국제사회에서 보여주는 한국의 다양한 활약이나 선전(善戰)에 불쾌감을 느끼는 데 큰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그 나름의 분석을 보여주기도 했다.

 

***

 

학자로서 자신이 전공한 학문을 바탕으로 현존하는 체제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걸출했던 역사철학자 E. H. 카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가 역사라고 했다. 그 대화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온당한 해석 행위이고, 그런 해석을 통해 역사의 객관성은 확보될 수 있다고 보았다. 스탈린 시대에 생겨난 역사적 사건들의 해석을 통해 단순히 그 시대의 규명에나 그치고 만다면, 그것을 진정한 역사가의 안목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 학자를 만나자마자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김씨 3대 혹은 북한의 미래까지 내다보는 통찰을 림멜 교수는 내게 보여준 것이리라. 여지없이 엄정한 시각을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들의 해석에서 얻어내는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된 역사학자들을 만나는 일이 내겐 큰 즐거움이고, 그 즐거움을 림멜 교수와의 만남에서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컴퓨터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는 림멜 교수

 

 


림멜 교수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삼성 폰

 

 


2013. 12. 14. PBS에서 방영한 '비밀의 국가 북한' 타이틀 화면[방송화면 캡쳐]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의 어린이[방송화면 캡쳐]

 

 


군 진지를 순시하는 김정은에게 달려가며 충성을 과시하고 있는 인민군들[방송화면 캡쳐]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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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지민

    오래된 삼성 폰이 참 정겹게 느껴집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이 많은 분도 계시군요

    2014.02.02 00:51 [ ADDR : EDIT/ DEL : REPLY ]
  2. 최영민

    림멜 교수님은 아마도 스탈린 시대의 소련역사를 연구하시는 분 같은데요. 키로프가 스탈린의 친구였고, 당시 키로프의 도움이 스탈린에게는 절대적이었지요. 림멜 교수님의 논문을 읽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스탈린이 키로프를 죽인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지요. 말하자면 그를 '미래의 잠재적인 정적'으로 보았던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고모부 장성택'을 잔인하게 죽인 김정은과 '절친 키로프'를 교묘하게 죽인 스탈린, 둘 중에서 누가 더 고약한 인물일까요?

    2014.02.02 06:35 [ ADDR : EDIT/ DEL : REPLY ]
  3. 백규

    최영민 님의 댓글이 아주 인상적이군요. 그렇지요. 사실 스탈린은 열등감이 심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루지아인으로서 '대러시아'를 제창했을 정도로 러시안에 대한 민족적 열등감도 컸지요. 그런데 키로프는 스탈린보다 훨씬 잘 생겼고, 달변가로서 스탈린을 위한 대중선동의 선봉에 늘 그가 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를 절대적으로 도와주는 친구에게 강한 열등감을 느꼈던 것일까요? 아니면 최영민 님의 견해대로 '미래의 잠재적 정적'으로 생각하여 미리 제거한 것일까요? 제 생각엔 아마도 두 가지 가능성이 다 해당된다고 봅니다만. 다른 분들의 견해를 더 기다려 보겠습니다.

    2014.02.02 06:55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14. 1. 15. 06:09

 

 

 


풋볼 경기가 열리고 있는 OSU의 분 피켄스 스테이디엄(Boone Pickesns Stadium)

 

 


OSU의 실내 농구경기장 갤러거 아이바 아레나(Gallagher-Iba Arena) 

 

 


각종 스포츠와 레크리에이션 시설이 들어 있는 콜빈 리크리에이션 센터(Colvin Recreation Center)

 

 


콜빈 리크리에이션 센터의 내부 구조도

 

 


콜빈센터의 수영장에서

 

 


콜빈센터의 수영장에서

 

 

 

 

근황(3)-부러운 학생들, 그리고 건강 챙기기

 

 

 

저 같은 촌놈은 그저 일 열심히 하는 것이 최상의 건강관리라고 믿어 왔는데,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부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주변에 고롱고롱하시는노인네들이 눈에 띄면서 건강은 관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요. 한두 가지 운동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건강관리법은 없다는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이지요. 일정한 양의 운동을 일정한 시각에 꾸준히 하는 것은 자칫 게을러지기 쉬운 마음을 다잡을 수도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일거양득이지요. 그런데 30~40대 젊은이들 가운데 운동부족으로 인한 만성질환자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많다는 소식이 얼마 전 국내신문에 보도되었더군요. 한창 열심히 일할 나이 대이니 운동할 여가가 없겠지요.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일정한 시간을 마련하여 운동은 해야 합니다. 집 주변이나 산길 걷기는 돈 한 푼 안 드는 운동이고, 약간의 돈이 들긴 하지만 수영이나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등도 아주 좋은 운동이지요. 저는 30대에 들어서면서 아침마다 걷기와 달리기를 해왔고, 40대에 들어서는 테니스를 해왔으며, 지금은 아침마다 수영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이른 시각, 아무도 몸을 담그지 않은 물에서 1시간 정도 수영을 하고나면 하루의 출발이 상쾌합니다. 아주 늙어질 때까지 수영은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더 좋습니다.

 

 

미국의 OSU에 와서 놀란 것은 체육시설들이 환상적이란 사실입니다. 아메리칸 풋볼 전용인 분 피켄스 스테이디엄(Boone Pickens Stadium)’7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니, 우리의 국립경기장보다 훨씬 큰 규모이지요. 그밖에도 실내 농구장, 야구장, 복싱장, 레슬링장, 테니스장, 잔디 축구장 등 없는 시설이 없군요. 그 뿐 아니라 레슬링의 영웅을 추모하는 스포츠 박물관인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이 있어 스포츠에 대한 이들의 열기를 알 수 있게 하네요. 그러나 이것들보다 훨씬 부러운 것이 바로 엄청난 규모의 레크리에이션 시설이지요. 이 학교의 한 켠에 큰 건물 두 동이 서 있는데요. 콜빈 레크리에이션 센터(Colvin Recreation Center)와 세레티안 웰니스 센터(Seretean Wellness Center)가 그것들입니다. 그 안에는 대규모 피트니스 센터, 카펫이 깔린 런닝 트랙, 실내외 수영장, 라켓볼장, 복싱 및 레슬링 연습실, 댄스스포츠 연습실 등등. 저로서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각종 스포츠 종목들을 위한 시설과 공간들이 망라되어 있지요.

 

 

하루 강의를 끝낸 학생들이 간편한 옷차림으로 달려가는 데가 바로 이곳입니다. 이곳에서 마음껏 하루의 피로를 풀고 저녁식사를 한 뒤 밤공부에 몰입하기 위해서지요. 내가 가장 부러워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강의 끝나기 무섭게 좋은 자리 잡으러 도서관으로 달려가는데, 이곳 학생들은 체육관으로 달려간단 말입니다. 자리 잡으러 체육관으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빨리 몸을 풀고 와서 공부하려는 생각 때문이지요.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들은 아예 체육관 시설이 없거나, 있다 해도 언제나 무료로 이용할 수가 없지요. 그리고 체육관에서 몸이나 풀고 있을 시간이 어디에 있냐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도 이미 그런 대학시절을 거쳐 온 몸 아닌가요? 이곳 학생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학교엔 자기네 돈으로 지은 체육시설들이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모두 선배들이 돈을 희사하여 지어준 시설들이지요. 이들이 후배들을 위해 체육시설에 투자하는 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납니다.[자세한 것은 다른 데서 말씀드리지요.] 이런 시설들을 맘껏 이용하여 체력 단련을 하면서 공부에 몰두하는 미국의 대학생들이 부럽고,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불쌍하다고 생각되는 건 어쩔 수 없군요.

 

 

저도 지금 이런 체육시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곳에 도착한 며칠 뒤부터 체육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실내 수영장을 이용합니다. 무엇보다 늘 물이 흘러넘치게 함으로써 수질을 최상급으로 유지하는 점이 좋군요. 우리나라 대부분의 수영장처럼 소독약을 쓸 필요가 없으니, 수영장에서 불쾌한 소독약 냄새를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혼자 차지하기 미안할 정도로 레인이 넓고 바닥 또한 복판 쪽을 깊게 만들어 깊고 넓은 호수를 건너는 듯하니 수영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점도 빼놓을 수 없네요. 수영장 밖에 항상 관리자가 붙어 앉아 수영객들의 안전을 보살피는 모습도 보기에 좋고요. 저는 아침 6시 반~7시에 수영을 시작합니다. 서울에서는 5시 반이면 어김없이 물에 들어갔는데요, 물속에서 주로 대화를 나누면서 걸어다니는 아주머니들이나 할머니들이 오기 전에 잽싸게 하루 운동량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1.8km 이상을 쉬지 않고 헤어나가는 1시간 수영을 마치고 나면 녹초가 되다시피 했는데,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마냥 즐기고 있는 셈이지요. 강박관념 속에 쫓기듯이 하는 운동과 느긋하게 즐기며 하는 운동 사이의 차이를 지금 진하게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에는 수영 외에 걷기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뒤쪽에 이 대학 소유의 크로스컨트리(cross country) 경기장이 있어요. 큰 규모의 야산과 넓은 초지를 다듬어 구불구불 길을 내고 길바닥엔 짧은 잔디를 덮었거나 분쇄한 나무 조각들을 깔아 폭신하게 만든 길이지요. 경기 당일만 폐쇄하고 1년 내내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공간입니다. 숲을 뚫고 달리는, 오르락내리락 7마일 길입니다. 큼직한 기러기들도, 솔방울만한 참새도, 엄마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염소도, 사나운 거위도, 오동통한 사슴도, 부지런한 청설모도, 장난꾸러기 강아지도 만날 수 있는 길입니다. 1~2시간이 걸리는 코스. 숲을 통과하고 나면 넓은 초지가 펼쳐지고 그 한복판에 참한 나무 한 두 그루가 사색에 잠긴 듯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서 있는 모습에 저절로 힐링이 되는 곳입니다. 이 코스를 통과하고 나면 마음속에서 엉크러져 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나기도 하는, 희한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왜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제자들이 산책을 하면서 지식을 전수하고 토론을 펼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굳이 소요학파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는 일이었겠지요. 아리스토텔레스 아닌 누구라도 소요(逍遙)의 가치야 알 수 있는 일 아니겠어요?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된다는 것을 최근에 다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칼로리가 소모되어 육체적으로 건강해지는 것 뿐 아니라 생각을 정리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걷는 일의 효용가치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이제 잠시 후면 귀국하는데요. 소독약 냄새로 메스꺼워지는 그 수영장에 다시 나가야 하는 일,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붐비는 산책로의 대열에 다시 합류해야 하는 일, 강의 끝나면 체육관 대신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학생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아야 하는 일 등이 저를 가장 괴롭히는 일들일 것 같네요. 즐겁게 수영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우리 한국인들에겐 아직 사치일까요? 무슨 수를 쓰든, 관리들을 잘 하셔서 새해에는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갑오년 벽두에

 

백규 드림

 

 

 

 


세레티안 웰니스 센터 간판

 

 


거액을 기부하여 스포츠 시설을 세운 세레티안

 

 


크로스 컨트리 경기장 입구 표지판

 

 


크로스 컨트리 경기 시작 모습

 

 

 


산책길에 만나는 겨울 풀의 물결

 

 


산책길에 만나는 청설모

 

 

 


산책길에 만나는 기러기들[캐나디언 구스,Canadian Goose]

 

 


산책길의 평화, 그리고 힐링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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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J

    와 도대체 얼마나 어마어마한 선배들이 있길래 저정도 규모의 시설을... 대단하네요

    2014.01.26 18:41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13. 12. 23. 02:57

 

 

 

고마운 미국인들, 그리고 인디언 전사들

 

 

 

 

얼마 전 이곳 OSU 역사학과의 강사 Gary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미국에서도 이제 세계를 상대로 한 경찰국가의 노릇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으며, 그도 그 여론에 찬성한다고 했다. 나는 그의 생각이 얼마나 위험하거나 짧은지 말해 주었다. 미국이 경찰국가를 자청하는 의도의 이면에 엄청난 국가이익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 미국이 만약 경찰국가를 포기할 경우 다른 어느 나라[예컨대 중국, 일본, 러시아 등]가 경찰국가를 자임하고 나서거나 다양한 세력들의 춘추전국 시대가 전개되어 결국 미국은 자국마저 방어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것등을 들어 미국은 결코 그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포기할 수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결국 그는 내 말을 수긍했다.

 

***

 

길 가다가 한쪽 편을 들어 싸움판에 끼어들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한쪽 편을 대신하여 맞거나 때려야 하는 입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물며 다른 나라의 전쟁에 내 나라의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피를 흘리게 하는 일의 어려움이야 오죽하랴. 사실 미국이 관여해온 전쟁은 많았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이 취해왔거나 취하고 있는 대외정책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문외한인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Yukon City에서 베테란들을 만나 한국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진심어린 인사를 건넨 것처럼, 나는 미국이 625 때 우리를 구해줘서 말할 수 없이 고마운 나라라는 점은 뼈에 새길 정도로 갖고 있다. 625의 원인이나 동기를 따질 필요도 없이 만약 미국 등 UN 기치 하의 16개국이 자국의 젊은이들을 파견하지 않았다면, 죽었다 깨나도 백두혈통이 아닌 이 나이의 내가 갓 30의 애송이 김정은에게 마구 짓밟히고 있거나 분명 어느 수용소에라도 들어가 있을 것 아닌가. 그 끔찍함을 상상할 때마다 미국이 고맙기만 하다.

 

***

 

미국은 사실 베테란의 나라다. 역대 대통령들을 비롯한 정치인들 대부분이 베테란들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도시를 가든 베테란을 위한 뮤지엄이 있고, 추모기념관이나 공원들이 중심부에 마련되어 있다. 나는 유콘 시티의 베테란 뮤지엄에서 625 당시의 귀한 자료들을 얻었고, 그로부터 멀지 않은 엘 르노시티의 다운타운에서 625 전몰용사들의 추모비를 발견했다. 그리고 최근 치카샤 인디언 네이션을 답사하던 중 듀랭(Durant)이란 자그마한 도시에서 625 전몰용사 추모비를 또 발견했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촉토(Choctaw) 인디언 네이션 뮤지엄과 세미뇰(Seminole) 인디언 네이션 뮤지엄에서 625 관련 자료들을 여러 점 목격하고 감동을 받은 바 있다.


투스카호마(Tuskahoma)에 있는 촉토 네이션 뮤지엄(Choctaw Nation Museum)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자국의 용사들을 명예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가 미국임을 이런 사례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625가 끝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하여 자국으로 모셔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라. 살아있는 참전용사들마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우리와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베테란들을, 전몰용사들을 그딴 식으로대접해 놓고 어떻게 젊은이들보고 전쟁터에 나가라고 할 수 있을까.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해외의 전쟁터에 기꺼이 나가는 젊은이들을 보며, 미국의 시대가 쉽게 저물지 않을 것임을 감지하게 된다.

 

 


유콘 시티 베테란 뮤지엄의 한국전 코너

 


6 25 당시 한국전에 참여했던 카치니[당시 상사]가 표창을 받는 모습

 


엘 르노 시티 다운타운에 있는 전몰용사 추모 공원

 

***

 

엘 르노 시티 다운타운의 전몰용사 추모공원 한 복판. ‘Korea’라는 글자들이 선명한 비석 중심에 ‘Dobbs, Johnny F./Johnson, Melvin J./Reed, Amzie O./Rogers, Glenn R./Rother, Robert L./Stanphill, Verlyn L./Wiewel, James M./Williams, Johnny/Wosika, Paul J./Ruser, Charles H./Morse, Robert L./Hollman, Paul H.’ 등 한국에서 전사한 미국의 젊은이들의 빛나는 이름들이 올라 있었다.

 

 


엘 르노시티 전몰용사 추모공원의 한국전 전사자 추모비

 

 

치카샤 인디언 네이션에서 촉토 네이션으로 넘어가는 어름에서 듀랭(Durant) 시티를 만났고, 그 시청 앞의 ‘Korean War’라는 추모비에서 ‘Donnie J. Airington/Troy W. Bailey/J. C. Burr/James H. Cross/George H. Dillard/Carl Dill/Ernest H. Haddock/George O. Hiser/Arnett Lamb/Dewey E. McGehee/Charles L. Minyard/Loy A. Philpot/Ben D. Trout’ 등 젊은 전사자들을 발견했으며,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듀랭(Durant) 시티의 한국전 전몰용사 추모비

 

 

촉토 네이션 뮤지엄의 한복판에도 각종 전쟁에서 활약한 촉토족 전사들의 활약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12차 세계대전에서 암호 해독병으로 활약한 그들의 공적이 크게 부각되어 있었다. 촉토족 언어가 전선에서 연합군 측 암호로 쓰인 점을 이 뮤지엄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한국전에서도 활용되었을 것이다. 미국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뮤지엄의 뜰에도 전몰용사를 추모하는 비석이 서 있었고, 한국전에서 사망한 용사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Amos, Morris/Bryant Jr., William/Burris, Tony *winner of Medal of Honor/Cole, William/Dill, Carl/Green, Joe/Franklin, Preston/Frazier, Elam/Kaniatobe, Charles/Killingsworth, Leo/Mcclure, Jim/Mccurtain, Buster/Mccurtain, Isaac/Ontayabbi, Timothy/Rasha, Willie/Watson, Leonard’ 16명의 혈기방장했을 젊은이들이 전사자 추모비에 자랑스럽게 올라 있었다. 이 가운데 명예훈장을 받았을 정도로 전공이 혁혁했던 인물 Burris, 형제가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BusterIsaac 등은 한동안 내 눈길을 끌었다. 추모비 뒤쪽에 촉토족의 용맹을 대표하는 붉은 전사[Red Warrior]’가 적의 가슴을 향해 활을 힘껏 당기는 모습의 동상이 서 있는데이들 전몰용사들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후예들이 아니겠는가.

 

 


촉토 네이션 뮤지엄 뜰에 서 있는 한국전 전몰용사 추모비


2차세계대전에서 암호병으로 활약하여 큰 공을 세우고 훈장을 받은 촉토족 전사들

 


촉토 네이션 뮤지엄 앞에 서 있는 '붉은 전사[Red Warrior]' 상

 

최근 만난 한 미국인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열아홉 나던 해 한국전쟁에 참여했다고 했다. 다행히 그는 살아 돌아왔지만, 그 점으로 미루어 이곳에서 만나는 전몰용사들 역시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걸치는 젊은이들이었을 것이다.

 

더 감격스런 일은 위워카(Wewoka) 시티의 세미뇰 네이션(Seminole Nation)에서 있었다. 세미뇰 네이션 뮤지엄에는 군사박물관[military museum]’이란 별도의 방을 마련하고, 제12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 등 미국인들이 참여한 세계 각처의 전쟁 코너들을 별도로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전 코너에서 참으로 인상적인 자료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해병중위 팩터(Kenneth J. Factor)가 정찰임무 수행 중 전선에서 실종되었다는 사실과 그의 사진이 전시되었을 뿐 전몰용사들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 그들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에 관한 귀한 자료들이 여러 점 전시되어 있었다. 그 때의 한국인들에 관한 캐리커츄어(caricature) 석 점인데, 그림도 그림이려니와 그 밑에 달아둔 멘트가 감동적이었다. 약간 서양식으로 변이된 복장의 노인 둘, 여인네 둘, 꼬마 셋, 장승 하나를 그린 다음, ‘한국인들은 우아하고 자부심 강한 민족[The Koreans are a graceful and proud race]’이라는 멘트를 달아놓은 것이 그 하나이고, 소달구지를 몰고 가던 중 넘어진 소에게 화를 내는 주인과 깔깔대며 재미있어 하는 구경꾼들을 그린 다음 한국인들은 가끔 화를 내면서도 예리한 유머감각을 지녔다[They have a keen sense of humor despite their occastional bursts of temper]’는 멘트를 달아 놓은 것이 두 번째 것이며, 장대비가 쏟아지는 속에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들을 그린 다음 한국에서는 7월과 8월에 장마철이 시작된다[The rainy season occurs in July and August]’는 사실 관계 멘트를 달아놓은 것이 세 번째 것이었다. 이들이 얼마나 따스하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한국인들을 관찰했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사례들이었다.

 

 


위오카(Wewoka) 시티에 있는 세미뇰 네이션 뮤지엄

 


세미뇰 네이션 뮤지엄의 한국전 코너

 


한국전 코너의 '6 25 전쟁 종군 기장'

 


한국전에서 실종된 팩터(Kenneth J. Factor) 중위

 


한국전 코너에 전시된 자료들

 


한국전 코너에 전시된 자료

 


한국전 코너에 전시된 자료

 


한국전 코너에 전시된 자료

 


한국전 코너에 전시된 자료(한국 가이드북)

 


한국전 코너에 전시된 자료(한국 가이드 북)

 


한국전에 관한 저널의 보도

 

 

그러나 무엇보다 내 가슴을 찡하게 만든 것은 이들이 전선에 나가는 자민족 군인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만들었음직한 한국어 교재였다. ‘추가적인 표현[Additional Expression]’이란 표제가 붙은 것으로 보아 주 교재는 별도로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실린 총 18개의 표현들은 한국에 가면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라고 그들 나름대로 판단했던 것 같은데, 그 내용이 참으로 흥미롭다.

 

I’m hungry                                   SEE-jahng HAHM-nee-dah

I’m thirsty                                    MAWG mah-ROOM-nee dah

I’m lost                                         NAH-noon KEE-rool eer-huss-SOOM-nee-dah

I’m tired                                      NAH-noon CHAWM KAW-dahn HAHM-nee-dah

I’m wounded                              NAH-noon CHAWM tahch-huss-SOOM-nee-dah

Stop!(to someone running away)           KUG-ee sut-suh

Hold still!                                                     KAH-mah-nee ISS-suh

Wait a minute!                                           CHAHNG-gahn kee-dah-REE-see-yaw

Come here!                                                 EE-ree AW-see-yaw

Quickly!                                                       BAHL-lee

Right away!                                                 KAWT

Come quickly!                                            BAHL-lee AW-see-yaw

Go quickly                                                   BAHL-lee KAH-see-yaw

Help! SAH-rahm                                       SAHL-liyaw

Help me                                                      CHAWM TAW-wah choo-SIP-see-yaw

Bring help                                                  SAH-rahmool CHAWM TAHR-yudah CHIOO-see-yaw

I will pay you                                            TAWN too-ree-gess-SOOM-nee-dah

 

 


당시 한국전에 참가할 세미뇰 병사들에게 교육하던 한국어 추가 교재

 

 

 

자기 민족의 젊은이들을 아무런 정보도 없는 한국의 전쟁터에 내보낸다고 생각해보라. ‘이 녀석들이 배고프면 어쩌나, 목이 마르면 어쩌나, 낯설고 물 선 타국 땅에서 길을 잃으면 어쩌나!’ 얼마나 걱정이 많았을까. 미국 연방정부의 명령이니 네이션에서도 파병을 거역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교육을 시킨 것 아닐까. 도망가는 적군에게 ‘stop!’ 대신 거기 섰어![KUG-ee sut-suh!]’라고 외쳐야 알아듣는다는 걸 대체 누가 알려 주었단 말인가. 이 추가적 표현들이야말로 생존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인데, 영문자로 간신히적어놓은 이 발음대로 말했다 한들 알아먹었을 한국인들이나 인민군들이 몇이나 되었을까. 그러나 아무것도 모른 채 보내는 것보다는 이 정도라도 알려서 보내는 것이 그나마 부모 형제, 동족으로서는 마음 놓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길 떠나는 자식에게 불안한 마음에서 쓸데없이이것저것 잔소리하는 우리네 부모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렇게 이역만리 전쟁터로 사랑하는 아들들을 보낸 미국인들, 혹은 인디언들이었다. 그들의 희생 덕에 우리는 기사회생(起死回生)했고,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 등 따습고 배부른우리는 당시 거지 몰골로 우리네 사립문을 흔들며 나는 시장합니다!’라고 외쳤을 인디언 전사들, 아니 이름 모를 험한 계곡에서 피 흘리며 죽어갔을 그들의 모습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기억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오히려 당시 우리를 죽이려 했던 적들에게 공공연히 부역(附逆)하려는 무리가 백주대낮에 활개를 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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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3. 12. 21. 11:54

 

 

 

 

길 이야기

 

 

 

 

 

그대는 우울한 시절 햇살과 같아

그 시절 지나고 나와 지금도 나의 곁에서

자그만 아이처럼 행복을 주었어

 

~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고

아픈 시간들 속에서 어떻게든 가야만해

 

혼자서 걸어간다면 너무나 힘들 것 같아

가끔이라도 내 곁에서 얘기해 줄래

그 많은 시간 흐르도록 내 맘속에 살았던 것처럼

 

사랑도 사람도 나를 외면했다고 하지만

첫 새벽 공기처럼 희망을 주었어

 

오랫동안 소리 없이 내게 살아왔던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모처럼 접해 본 윤도현의 노래 <>이다. 행복한 사람도 상처를 입은 사람도 살아있는 이상 걸어가야 하는 것이 길이다. 길을 말하다가 너에 대한 사랑으로 끝맺는 윤도현의 노래가 좀 낯선가. 작사자는 누군가 먼 길을 가다가 문득 내 곁에서 함께 걷고 있는 길동무로서의 를 발견했을 것이다. 혹은 를 통해 함께 걸어가야 할길을 예감했거나 함께 해야 할운명을 깨달은 건 아닐까. 그래서 윤도현의 와 함께 함으로써 운명적 사랑이 구현되는 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길에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가. 아니다.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것이 길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시작도 없다. 길에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면, 그건 길이 아니다. 언젠가 시작되었겠지만, 그저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어져 오는 것이 길이고, 끝 간 데 없이 뻗어가는 것이 길이다. 잘 찾아간 것으로 여겼지만, 곰곰 생각하면 잘 찾아간 길이 아닌 경우가 전부다. 그래서 다시 출발점을 찾지만, 그 찾으려는 출발점도 마치 끝인 양 잘 찾아지지 않는 것이 길이다.

 

어떤 사람들은 길이 길다의 형용사와 관계가 깊은 명사라 한다. 옛 사람들은 마장으로 그 길이를 가늠해왔고 현대인들은 kmmile로 그 길이를 재고 있지만, 그건 그냥 인간의 짧은 인식이 만들어놓은 편리한 단위일 뿐이다. 끝인 것 같은 곳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 길인데, 그 길을 누가 어떻게 잴 수 있단 말인가. 길을 찾다 보면 시작과 끝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누구나 경험하지 않는가.

 

누군가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 했다. 시작도 끝도 없이, 한시도 쉼 없이 걸어야 하는 길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휴게소에 들러 잠시 웃으며 쉬면서도 갈 길을 걱정해야 하고, 다 왔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도 다시 돌아갈 길을 걱정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갈 길과 돌아오는 길은 한 치도 끊어지지 않는 연속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걸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인생의 험한 길을 걸어가면서도, 그 사이에 부지런히 올레길을 찾고 둘레길을 찾으며 골목길을 헤맨다.

 

길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지만, 사람이 가면 길이 되고 길을 내면 사람이 다닌다. 그래서 인간세상에 길 없는 곳이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옳은 길그른 길을 구분하지만, 옳고 그름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또 어떤 길이 옳았는지는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판단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많은 시간의 기준도 명확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길을 찾아왔으나 제대로 찾은 사람은 많지 않고, ‘올바른 길을 통해 삶이 완성된다고 믿고 있지만, 올바른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길을 찾으러 길을 나서기가 두려워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고, 발로 밟을 수 있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길이나 찾아다니며 맛볼 따름이다.

 

***

 

미국에 체류하면서 휴일이나 휴가에는 반드시 길을 나선다. 남한 면적의 두 배가 넘는 오클라호마 주는 미국 역사의 양지와 음지를 모두 갖고 있다. 그 가운데 내가 크게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음지에 속하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역사와 문화다'식민주의'가 백인들의 원죄라면, 그 원죄의 역사적 표본을 이곳에 만들어 놓은 그들의 진의는 무엇이었을까. 자신들의 새로운 삶터를 건설하기 위해 인디언들을 고향에서 쫓아낸 백인들. 자신들의 본거지에서 쫓겨나 눈물의 장정[Trails of Tears]’이란 쓰라림을 맛보며 대부분 오클라호마의 한 구석에 강제로 정착당한 인디언들. 그들 두 부류의 인간들은 오늘날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오클라호마주 전역 교통도

 


이번에 여행을 하고 있는 치카샤 및 촉토 인디언 지역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이른바 '눈물의 여정(Trail of Tears)'

 

그런데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쉽지 않다. 그 그늘을 확인하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은 물론 각종 휴가나 방학 등을 활용하지만, 길이 너무 멀어서 쉽지 않다. 그래도 쉬지 않고 다니는 편이다.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은 길의 매력에 있다. 내가 지금 사는 곳과 가려는 곳이 엄청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지만, 그 연결고리로서의 길은 또 다른 가치와 의미를 지닌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미국의 길들은 넓고 곧다. 특히 가도 가도 산이 보이지 않는 오클라호마의 길은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솜씨 좋은 장인이 대지에 그은 미학적 직선처럼 보인다. 그저 자를 대고 종이 위에 쭉 긋는 선이 미학이나 철학을 갖기란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대지의 핏줄을 타고 심장을 직격(直擊)하는 선은 생명이나 미학, 혹은 철학과 직결된다. 그 생명성을 느끼게 하는 직선의 미학이 이곳 길들에는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한동안 내가 천착해온 ‘66번 도로와는 다른 차원의 의미가 직선으로 쭉 뻗은 오클라호마 주의 길들에는 들어 있다는 것이다.

 

 


Route 66 표지판

 


클린턴에서 스틸워터 오는 도중

 

땅이 넓으니 그런 것 아닌가라고 항변할 수 있겠는데, 사실은 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다만 나는 이미 나 있는 길들의 해석적 의미, 혹은 내 나름의 생각이나 느낌을 강조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길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가장 큰 요소는 인공과 자연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이다. 길을 따라 형성된 도시나 주택 등 인공의 구조물들은 철저히 자연의 질서와 호흡을 함께 하는데, 그 점이 그 자연스러움을 해치지 않는 요인이다. 땅 넓이에 비해 사람 숫자가 턱 없이 적으니, 굳이 자연의 질서를 거스를 필요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 아니라 어떤 나라라도 이런 도로들을 갖고 있다면, 나는 그들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엘크에서 클린턴 가는 도중

 

6개월 가까운 기간 유럽을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길의 아름다움에 반한 적이 있다. 자동차를 몰아 스위스의 산하를 건너고 오르내릴 때의 짜릿한 흥분을 잊을 수 없다. 하늘로 솟구쳤다가 바다 밑으로 잠기는 듯한 충격을 스위스에서 운전하는 동안 느꼈기 때문이다. 동쪽의 바리항에서 서쪽의 나폴리까지 이태리를 횡단할 때 느낀 평화로움과, 프랑스 남부로 가기 위해 몽블랑 산맥의 터널을 넘을 때 느꼈던 혼돈과 재생의 희열을 그 후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다. 프랑스 중남부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하이웨이와 독일 로만틱 가도를 달릴 때의 편안함과 드라이버로서의 자긍심을 그 후 다시 느껴본 적이 없다. 동유럽 루마니아를 종단하면서 열악한 도로사정과 그들의 험한 운전 관습 때문에 흘린 땀과 긴장감을 그 후 어디에서도 다시 체험하지 못했다.

 

 


엘크 시 초입


치카샤에서 촉토로 넘어가는 길 어디쯤

 


OSU 중심을 가로지르는 먼로 길[Monroe Street]

 

***

 

15년 전 LA에 머물 때 간헐적으로 미국 안에서의 장거리 운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아직도 그 때 달리던 캘리포니아 서쪽의 1번이나 101번 해안도로를 잊지 못한다.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주를 거쳐 캐나다 로키산맥을 종단할 때의 그 천상에 오른 듯하던기분도 잊지 못한다. 미국 서부지역 사막지대의 가물가물한 지평선을 바라보며 달리다가 난데없는 폭우를 만나 흔들거리던 차 안에서의 말 못할 두려움 또한 잊지 못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시도 잊을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의 길과 운전자들이다. 땅은 좁은데, 사람도, 차도 많아 참으로 운전하기 어렵다. 시간은 없는데 도로가 막히면 짜증이 난다. 교통신호나 법규를 지키려다간 바보 취급당하기 일쑤다. 규정 속도를 지키려다간 뒤차 운전자에게 모진 욕설이나 듣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집단 스트레스에 걸려 있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평소에 점잖고 존경받는 사람도 일단 핸들만 잡으면 매우 거칠어지는 것이 우리나라라고들 말한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누구나 세계 어딜 가도 최고의 운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끼어들기 천재, 앞지르기 천재, 신호위반 천재, 차선 안 지키기 천재, 경적 심하게 울리고 라이트 번쩍거리기 천재, 창유리 내리고 욕설 퍼붓기 천재 등등. 우리나라 사람들은 목숨을 건 곡예운전의 달인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내가 운전을 그만 두어야 그나마 제 명대로 살지!’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

 

미국에서는 길, 특히 오클라호마 주와 같은 전원지역의 길들 덕분에 행복해진다. 야산 하나 보이지 않는 드넓은 들판 사이를 달리다 보면, 가슴이 뻥 뚫리고 휘파람이 저절로 불어진다. 길 좌우에는 목장이 이어지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검정 소들이 가끔 고개를 들어 달려가는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한다. 목초지에서 베어낸 풀들을 말아놓은 건초뭉치들도 흡사 십대 남자 아이 얼굴의 여드름처럼 아름답게 돋아 있다.

 

 


킹피셔 인근 지역도로

 


킹피셔 인근지역에서 포착한 지평선 위의 소들

 


치카샤에서 촉토로 가는 도중, 산중의 한 목장을 지나면서 만난 소들. 이들을 가까이 보려고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더니 글쎄 이 녀석들이 웅얼거리며 걸어와 우리를 유심히
쳐다 보더군요. 우리가 그들을 구경한 게 아니고, 그들이 우리를 구경하는  형국이었지요.
      사람 보기 어려운 산 속의 목장에서,동양인을 보기란 더더욱 어려웠을 겁니다. 
    신기한 눈초리로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들의 모양을 보며
내심 얼마나 멋쩍던지요.

 


촉토 인디언 지역[이곳은 오클라호마 주에서 유일한 산악지역임]에서 만난 길

 


치카샤 지역의 길을 달리다가 만난, 어떤 목장 입구

 


토우손(Towson) 포트(Fort) 근처 길가에서 만난 농장입구[아마 주인 부부의 이름이겠지요?]

 

그 뿐 아니다. 땅 속에서 원유를 퍼내는 검은 색 채굴기들이 도처에 널려 있고, 그것들은 흡사 사마귀처럼 끄덕거리며 원유를 길어 올린다. 흡사 까치집처럼 생긴 겨우살이들이 다닥다닥 붙은 교목들이 길 좌우에 즐비하고, 다운타운을 벗어난 도시 외곽의 나무숲에는 멋지게 지은 집들이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마을마다 하얀색의 교회들이 하늘 높이 첨탑을 높이 올린 채 서서 마을의 역사를 대변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합쳐져 흥미로운 서사구조들을 만들어내고 끊임없이 이야기들을 이어간다. 그래서 길은 단순히 지나가는 통로가 아니고, 각종 사건을 재료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발효의 공간이다. 그래서 나는 길을 사랑하고 길 위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애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역마살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글로벌 시대에 누군들 역마살을 피해갈 수 있으랴. 그리고 어쩌면 역마살이 낀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의 매력에 심취한사람들일 것이다. 역마살이 끼었대도 좋으니, 의미를 찾아 방황할만한 좋은 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스틸워터로 돌아오는 길에 잡은 한 컷[주택 옆에 목장이 있고,
그 곁에서 원유채굴기가 작업을 하고 있음].


아무 보는 사람 없어도 끄덕거리며 혼자서 열심히 원유를 길어 올리는 장한 채굴기

 


177번 도로를 달리다가 발견한 소규모 인디언[Iowa Tribe] 집단 거주지의 표지판

 


오클라호마주 길 위에는 늘 태양이 빛난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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