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14. 11. 5. 13:59

 

 

 

 

 

저는 2013년 2학기 풀브라이트 방문학자(Visiting Fulbright Scholar)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 역사학과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현지를 틈틈이 답사하고 체험한 기록들을 정리하여, 최근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푸른사상)라는 제목의 문화 답사기를 펴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토네이도의 본고장으로만 알려졌을 뿐인 오클라호마를 보물찾기라는 테마를 통해 새롭게 읽어내고자 했지요. 책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물 1: 스틸워터와 OSU, 그 안식과 탐구의 낙원

평온과 정밀(靜謐)의 오클라호마에 안착

역사학과를 찾아

학과 비서들과의 만남

카우보이 풍의 노신사, 학과장 로간 교수와의 만남

브렛 학장과의 만남

평원 속 지성의 오아시스, OSU에서

역사학과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마치고: 한국의 이미지를 새것으로!

카우보이들, 풋볼의 진수를 보여주다!

미국 대학의 졸업식과 감동: 왜 우리는 이렇게 하지 못하는가?

안식과 힐링의 낙원 스틸워터에서

 

보물 2: 인디언, 인디언 역사, 인디언 문화

오클라호마와 인디언 부족들

대초원에서 만난 오세이지 인디언들

체로키 후예의 집을 찾아 패러다임 전환의 증거를 찾다

오클라호마 동쪽에서 체로키 인디언들을 만나다!

체로키어오시요(Osiyo)’와 우리말‘ (어서) 오세요!’의 정서적 거리

스틸워터의 이웃동네에서 만난 판카 인디언들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아이오와 인디언 족

지혜로운 치카샤 족, 인디언 사회의 자존심

촉토 족의 뿌리와 투쟁, 그리고 예술

촉토 족의 탁월한 교육열, 풍부한 역사 자취

놀라운 세미놀 인디언들의 역사와 문화의식

카이오와, 아파치, 코만치, 그리고 대평원의 서사시

카이오와 족의 삶과 예술

무서운 코만치에서 상식의 미국인으로!

크릭 족의 꿈과 현실을 찾아

오클라호마 밖의 인디언: 뉴멕시코의 앨버커키와 스카이 시티, 그리고 푸에블로족

암굴 속에 서린 생존 의지‘, 반델리어 국립 유적지와 푸에블로 족의 말 없는

외침

부드러운 어도비, 완강한타오 푸에블로인디언들

 

보물 3: 미국의 길, 66번 도로(Route 66)의 낭만

미국에서 길을 찾으며: 우리도 스토리가 있는 길을 한 번 만들어 봅시다!

작은 일탈을 꿈꾸는 66번 도로, 그 낭만과 허구

엘크 시티와 국립 66번 도로 박물관 단지

클린턴 시티와 ‘66번 도로 박물관

엘 르노 시티와 캐나디언 카운티 뮤지엄

66번 도로에 살아 있는 역사의 공간, 유콘 시티

누구 혹시 이 소녀를 아시나요?: 유콘에서 만난 우리들의 누이

한국전 참전용사의 아들 리차드 카치니와 유콘 참전용사 박물관

오클라호마의 숨은 별: 거쓰리 시티/ 66번 길의 경이로운 옛 건축물: 아카디아 라운드

 

 

 

 

 

 

보물 4: 박물관과 미국 역사

서부 개척시대 미국의 소리: 국립 카우보이와 서부유산 박물관

예술로서의 역사, 역사로서의 예술: 털사의 길크리스 박물관에서 길을 잃다!

인간의 악마성을 깨우쳐 준 공간: 오클라호마 시 메모리얼 뮤지엄
오클라호마 밖의 박물관: 예술과 역사의 도시 산타페와 박물관들

 

보물 5: 열정과 도전의 대학인들

미국의 중남부에서 아시아 역사를 가르치는 젊은 학자: 용타오 두 교수

학자와 목자의 삶: 한인 교수 장영배 박사

빛나는 한국학생 브라이언

한반도에 관심이 큰 소련 역사 전문가 림멜 교수

탁월한 젊은 영어 교육자 제이슨 컬프

역사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온 프레너 교수

 

보물 6: 아름다운 자연, 안식의 낙원

부머 호수에서 찾은 마음의 고요

리틀 사하라에서 되찾은 고향의 꿈

대초원에서 멋진울음 터를 발견하고

낙원 속의 산책로: OSU 크로스 컨트리 코스의 안식과 힐링

 

 

 

 

 

***

일반적으로 미국은 역사가 짧고, 넓은 땅에 비해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역사 문화유적의 답사라는 여행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공간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백인들의 이주 후 200여년, 인디언으로부터 따지면 그보다 훨씬 더 긴 역사가 이어져 온 땅이고, 그에 따르는 문화유산들이 적지 않은 곳입니다. 더구나 경쟁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의 대학들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문화를 생각하면, 미국은 유럽과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을 지닌 지역입니다. 무엇보다 39개에 달하는 인디언 부족의 보호구역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오클라호마는 대초원(Tall Grass Prairie)과 대평원(The Great Plains)등 풍부한 목초지와 함께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원유 등으로 오랜 동안 풍요를 구가해온 지역이기도 합니다. 풀브라이트(Fulbright)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곳의 대표적인 교육기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에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만. 이곳에 오자마자 연구 과제 외에 이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의미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가 관심을 가졌던 대상은 인디언의 역사와 문화였습니다. 저는 사람, 자연, 도시, 제도, 역사, 문화 등 감고 있던 마음의 눈을 뜨게 한 모든 것들이 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간 모르고 지내온 것들이 그의 편견을 바로잡아 주었기에 보배로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디언들과의 만남은 무엇보다 소중했습니다. 인종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백인들에 의해 고통을 받아온 인디언이야말로 역사의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보물이었던 것입니다. 서부영화나 백인들에 의해 저술된 책들을 통해 제 마음에 뿌리 내린 왜곡된 인디언의 이미지가 비로소 바로잡혀지게 된 점을 가장 곰지게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배자들이 펼쳐 온 자기 합리화의 억설(臆說)에 의해 일그러진 인디언들의 실체를 삶의 현장에서 바로잡음으로써 내면에 고착된 편견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 인디언에 대한 발견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을 통해 미국 대학들의 경쟁력이 바로 미국의 경쟁력임을 깨닫게 된 점입니다. 대학의 역사와 현실을 통해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체력을 단련하며 단합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운영되는 미국 대학의 장점을 읽어낸 것은 제 글 내용의 핵심적인 축입니다.

인디언이나 대학의 힘에 대한 발견과 함께 오클라호마나 스틸워터의 깨끗한 자연으로부터 얻게 된 힐링의 감동은 이 책 내용의 또 다른 축입니다. 부머 호수, 리틀 사하라, 산책로로 쓰이고 있는 크로스 컨트리 코스 등 잘 보존된 자연이 인간의 내면적 평정이나 행복을 위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체험적으로 진술하고자 했습니다. 제 글의 에필로그 가운데 마무리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풀브라이트 학자로서의 가볍지 않은 사명을 짊어지고 오긴 했지만, 연구 외

에 이곳에서 발견한 또 다른 것들이 나를 달뜨게 했다. 오클라호마 사람들과의

만남, 인디언의 역사나 문화와의 만남, (특히 Route 66)과의 만남,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과의 만남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했던 스틸워터는 문만 닫으

면 절간처럼 조용해지는 공간이었다. 맑은 공기 속에 한 발만 나서면 온갖 새

와 나무들이 그들먹한 낙원이었다. 그래서 기대 이상의 힐링을 체험하며 마음

속의 온갖 찌꺼기들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물론 이곳이라고 어찌 사람들 사

이의 갈등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불행들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러나 유목민들이

아름다운 꽃향기와 산토끼의 해맑은 눈빛, 그 지순(至純)한 추억으로 광풍 몰

아 치던 수많은 밤들의 괴로움을 지우듯,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걸러내는 능력

이야말로 지혜로운 인간의 전유물 아닌가. 사실 짧지 않은 6개월 동안 걸러내

야 할 단 하나의씁쓸함도 만나지 못한 나였다.

                                                          ***

스틸워터에서 화려한 행복보다는 작고 따스하며 담백한 즐거움 속에 거의

완벽한 힐링의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으니, 이제 맛있고 영양가 풍부한 풀들이

많이 자라 있기를 기대하며 다시 옛 고향으로 노마드의 소떼를 몰고 재입사(

入社)하기로 한다.”

 

그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책을 펼치기만 하면 오클라호마와 스틸워터의 감동과 아름다움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지리라 생각합니다. 강호제현의 질정(叱正)을 고대합니다.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 푸른사상, 2014.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11. 2. 14:02

2013년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발전 세미나[2013 Fulbright Visiting Scholar Enrichment Seminar]에 다녀와서

 

 

 

마지막 날-좀 더 커진 마음을 안고 다시 스틸워터(Stillwater)!

 

 

 

짧았지만,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4일 만에 이 땅에서 일어난 수백년 격동의 역사를 추체험하는 일이 어찌 간단하겠는가. 종족과 종족이 맞붙어 수백 년 삶을 이어온 터전을 뺏고 빼앗기는 투쟁이 바로 이 땅에서 계속되어 왔고, 지금도 그 불씨는 꺼지지 않은 채 내연(內燃)하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했다. 이 땅의 많은 학자들이 현장을 밟으며, 연구실에서 이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분석하고 예측하며 바람직한 방안을 연구해오고 있지만, 누가 그 정답을 알겠는가. 그 옛날 해저(海底)가 융기하여 하늘을 찌르는 산이 된 것처럼 어느 순간 역사의 주인은 바뀔 수도 있고, 수백 년 차별의 질곡에서 신음하던 자들이 채찍을 손아귀에 쥐는 순간도 있을 것 아닌가. 웅웅거리는 바람을 안고 누워 우리에게 겸허를 일깨워 주는 대초원[Tall Grass Prairie]의 드넓은 가슴을 보라.

 

***

 

큰 일정 대부분을 마무리한 토요일 아침. 이 날이 마침 36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털사 시민 마라톤의 날이었다. 어디서 그렇게들 모여들었는지 평소에는 한산하던 도로가 사람들로 가득했다. 호텔 바로 앞이 출발선이기 때문인지 적지 않게 시끄러웠다.

 


호텔 창 밖으로 보이던 성가족 성당


시민 마라톤 대회를 축하하기 위해 공연 준비를 하는 악단(City of Tulsa Pipes & Drums) 


악단의 드러머 매튜씨[Mr. Matthew] 


출발선에 그득히 모여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 


출발신호와 함께 달려나가는 시민들

 

 

한 시간 늦게 아침식사를 하고 마무리 토론과 정리를 위해 호텔 2층의 시마론 볼룸(Cimarron Ballroom)에 모였다. 모두 개운한 표정들이다. 10여 개 조로 나뉘어 지난 며칠간의 경험들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을 벌였다. 이곳에서 얻은 견문에 각자의 모국을 결부시켜 바람직한 방안을 찾는 것이 핵심이었다. 모두들 자기 나라의 형편이나 상황을 설명하기에 열을 올렸다. 따지고 보면 땅덩어리나 자원, 인재 등 모든 것을 두고 보아도 미국만한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그럼에도 참석자들 모두 자기 나라의 장점을 부각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객관적으로 큰 의미는 없겠지만, 그 모두는 애국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으리라. ‘자신의 나라도 미국처럼 이랬으면 좋겠다는 소망적 사고의 표출이었으리라. 마지막 토론을 주관한 베키[Becky Collins, President and CEO, Tulsa Global Alliance], 마캄 박사[Dr. J. Markham Collins, Professor of Tulsa University], 덕 프라이스 박사[Dr. Doug Price, Dean of Global Education, Tulsa Community College]도 참석자들의 말들을 정리하고 요약하면서 연신 고개들을 끄덕거린다. 각국의 사례들이 그들에게 큰 참고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토론과 보고의 마무리 과정도 끝이 났다.

 


마무리 토론에 참여한 참가자들

 

***

 

방에서 짐을 꾸려 내려오니 스틸워터까지 나를 태워 가기로 약속한 론 박사[Dr. Ron Bussert, Vice President for Administration and Finance]가 벌써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티룸으로 모시고 가 커피 대접을 하며 통성명을 했다. OSU 털사 캠퍼스에 근무한다는 그 분의 집은 털사 시내에 있었다. 그러니 나를 집에 내려 준 다음 다시 그 길을 되짚어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참으로 송구스럽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니 더욱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래서 급한 대로 하나의 약속을 받아냈다. 론 박사도 점심 전이고 나도 내 아내도 점심 전이니 스틸워터에 도착한 다음 점심 대접을 하겠다는 제의를 했고, 그 제의를 그 분이 흔쾌히 받아들임으로써 미안감이 약간은 덜해졌다. 그 순간부터 이곳 풍습에 따라 편안한 마음을 갖기로 했다. 스틸워터의 집까지 오는 데 1시간 남짓 걸렸으나, 서로가 궁금한 게 많아서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 새 집 앞이었던 것이다. 아내를 불러내 그 분과 함께 괜찮은 레스토랑 프레디폴스(Freddi Paul’s)’로 직행했다. 토요일 점심이라선지 식당은 한산했고, 음식은 달았다. 나지막한 어조로 자상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론 박사는 참으로 편한 상대였다. 나누는 대화도 맛이 있고, 먹는 고기 맛도 일품이었다. 하이클라스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교양의 정도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인물이었다. 우리는 두 시간 가까운 식사 동안 서로의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었고, 훗날을 기약할 수 있었다. 가벼운 피로가 기분 좋게 몰려드는 토요일 오후였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Ron 박사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Ron 박사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10. 28. 23:55

 

아메리카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미래의 꿈을 찾다!

 

 

2013년 풀브라이트 방문 학자 발전 세미나[2013 Fulbright Visiting Scholar Enrichment Seminar]에 다녀와서

 

 

         제1일차-치밀한 미국인들

 

 

 

 

풀브라이트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어 미국 내 대학을 비롯한 연구기관들에 체류하고 있는 학자들은 기간 중 최소 1회 이상 34일의 발전 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최근 나는 미리 3회까지의 시기와 주제만을 알려 준 다음, 신청을 받아 배정하는 풀브라이트 측[CIES(Council for International Exchange of Scholars, 국제 학자 교류 위원회’) Enrichment Seminar Team]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광대한 미국 땅에서 미리 장소를 알려 준다면 대개 한쪽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에 고안해낸 지혜였을 것이다. 그들이 제시한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옛날의 서부에서 새로운 서부로: 미국 스토리의 형성에 기여하는 땅의 역할 [Old to New West: The Role of Land in shaping the American Story](10/23-26)

2. 법의 지배: 인권과 정의[Rule of Law: Human Rights and Justice](11/20-23)

3. 사회적 기업가 정신: 혁신하는 비영리 단체들과 발전하는 공동체들[Social Entrepreneurship: Innovating Nonprofits Developing Communities](2014 3/19-22)

 

모두 유익했으나, 그래도 나와 가까운 쪽은 1번이었다. 1번을 1순위, 2번을 2순위로 선택하여 신청했으나, 1번의 지원자가 많아 부득이 나를 대기표에 올렸다는 연락이 왔다. 어쩔 수 없이 2번으로 갈 각오를 하고 있던 차 928일에 털사 전 지구 연합[Tulsa Global Alliance, 약칭 TGA]’에서 이메일이 왔다. 국무성의 지원을 받아 1번을 주제로 자신들이 이번 세미나를 주관하게 되었으니, 신청할 사람은 하라는 연락이었다. 대기표에 올려놓았다던 나에게까지 연락한 것을 보면, 막상 뚜껑이 열려 멀리 떨어져 있는 오클라호마의 털사시티(Tulsa City)가 세미나 장소임을 알게 된 상당수의 사람들이 포기한 모양이었지만, 나로서는 사막 속의 단비인 셈이었다.

 

스틸워터에서 차를 몰고 달리면 1시간 남짓 걸리는 털사가 아닌가. 어차피 풀브라이트에서 비행기 표를 비롯한 모든 비용을 대 주는데 이왕이면 여행하는 셈 치고 먼 곳으로 가는 게 좋지 않으냐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썩 좋지도 않은 미국 비행기들을 갈아타면서까지 여행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고, 무엇보다 1번 주제가 내겐 환상이었다. 1012TGA가 보내 준 Overview[행사개요]를 보고는 더더욱 가슴이 설렜다. 이 지역 인디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탐구가 세미나 내용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

 

모든 것이 결정되면서 주최 측의 주도면밀함이 감지되었다.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참석자들[이번에는 40개국 70명의 학자들]의 교통편과 숙박 및 식사 주선, 세미나 장소 마련, 강사 및 패널리스트 섭외, 자원 봉사자 동원, 이동 차편 마련, 현장 견학 등 행사 전반의 일정을 짜고 조정하는 일들일 텐데, 사실 가까이에 사는 내가 오히려 쉽지 않은 존재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비행기 표를 사서 보내주고 공항에 픽업을 나가면 그만이지만, 내 경우는 나 스스로 차를 몰고 가거나 주최측이 누구를 보내서 라이드를 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내 스스로 차를 몰고 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규정상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TGA의 행사 책임자 Bob Lieser씨와 이곳 역사학과 학과장 사이에 몇 번의 이메일이 오고 가는 것 같더니 최종적으로 내게 이메일이 왔다. 스틸워터에 있는 OSU 메인 캠퍼스와 OSU 털사 캠퍼스를 왕래하는 셔틀버스[Orange Big Bus]에 자리를 예약해 놓았고, 털사에 도착하는 대로 Mr. Clark Frayser가 픽업을 나갈 것이며, 세미나가 끝나고 돌아오는 날엔 Dr. Ron Bussert가 스틸워터의 집까지 나를 태워다 준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통보해 주는 것 아닌가. 참으로 한 치의 빈 틈도 보여주지 않는 그들이었다. 내가 만약 이런 행사를 주관했을 경우, 참가자가 스스로 차를 몰고 오겠다고 한다면 얼마나 반가웠을까. 규정과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는 이들의 자세가 첫판부터 범상치 않았다.

 

***

 

23일 오후 310. OSU 털사 캠퍼스에 도착하니 클라크 씨가 차를 대놓고 내가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차로 호텔[Holiday Inn City Center]에 도착하여 등록 후 체크인을 한 것이 330. 방에서 쉬다가 5시 정각에 호텔 2층의 시마론 포이어(Cimarron Foyer)와 테라스 등에서 간단한 음식을 들며 참석자들끼리 환담을 나누다가, 버스를 타고 세미나 장소인 길크리스(Gilcrease) 뮤지엄[미국통신 12 참조]으로 이동했다.

 


TGA에서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준 일정표


세미나 기간동안 패용한 명찰


참가자들의 숙소[Holiday Inn City Center, Tulsa]

 


호텔 방에서 내다 본 털사 다운타운의 모습[가운데 첨탑 건물은 성가족 성당]

 

뮤지엄 강당에서 열린 행사의 내용은 환영사와 기조연설이었는데, 털사 대학교 세계교육 담당 교무 부처장인 셰릴 박사(Dr. Cheryl Matherly), 미 국무성 교육문화국 성인 프로그램 매니저인 레빈(David Levin) , IIE[Institute of International Education, 국제 교육 연구소]의 캠벨(Kristin Campbell), 털사 대학교의 길크리스 박물관 담당 부총장인 듀안 킹 박사(Dr. Duane King) 등의 간단하면서도 인상적인 환영사에 이어 털사 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인 론다 박사(Dr. James Ronda)로부터 미국 서부의 발견[Finding the American West]’이란 주제의 기조연설을 들었다. 그는 미국 서부의 광범한 역사를 소개한 다음 서부를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한 핵심 장소로 오세이지(Osage) 카운티를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넓은 의미의 서부, 특히 오클라호마가 갖고 있는 무궁한 현실적 의미와 한계를 설파했고, 우리가 내일 보게 될 Tall Grass Prairie[대초원, 이하 TGP로 약칭]가 갖고 있는 인간적물질적 경관의 의미를 이해해 줄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우연이겠지만, 그는 강연 서두에 오클라호마 주를 소개하면서 "Oklahoma State is taller than South Korea."라고 '콕 집어' 말했는데, 미국의 1개 주보다 작은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우리의 현실'에 대하여 착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작은 나라를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이 궁금하기도 했다.]


기조발표를 하는 Dr. James Ronda

 

***

 

730. 우리는 박물관의 비스타 룸(Vista Room)으로 이동,하여 Rick Morton, Nathan Eicher, Isaac Eicher 3인조 스윙밴드(swing band)의 서부 지역 컨트리 뮤직인 블루그라스를 감상하며 첫날의 만찬과 대화를 즐겼다. 그 자리에는 오클라호마 지역의 풀브라이트 동문들, 털사 커뮤니티의 지도자들, TGA 관리 이사들, 기업 회원 등 많은 지역 유지들이 초대되었는데, 그 가운데 이색적인 인사가 바로 인디언 출신의 이 지역 최고 기업가 메슈리 박사[Dr. Dayal T. Meshri]였다. ARC[Advance Research Chemicals, Inc.]CEO인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반복하여 강조했다. 특히 현대자동차를 방문한 일과 부산에서 술을 마시던 추억을 크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는 그에게 호감을 느낀 것은 그와 나 사이에 어떤 소통의 끈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찬장에서 연주하고 있는 3인조 밴드


만찬장에서 스리랑카의 학자 Dr. Asanthra, 인디언 출신 CEO Dr. Dayal T. Meshri와 함께


만찬장에서  Dr. Dayal T. Meshri, Mr. Clark Frayser와 함께


만찬장에서 TGA 대표 Ms. Becky 및 Mr. Charles와 함께


만찬장에서 Mr. Clark Frayser와 함께


만찬장에서 Dr. Cheryl Matherly, 털사대학교 한국인 학생 김세연과 함께

 

***

 

9시쯤 만찬이 끝났다. 첫날의 몇 시간을 보내며 나머지 일정도 빡빡하게 진행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세미나 기간에 무엇을 배워야 할지 뚜렷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40개국에서 몰려든 70명의 학자들이 영어라는 기호 하나로 훌륭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 영어와 미국의 현실적인 힘을 느끼기 시작했고,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모든 일들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미국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나와 우리의 쓸데없이 대범함에 일순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매 순간 톱니바퀴처럼 철저한 정확성을 중시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대충 해!”라는 상투어야말로 나와 우리의 진로를 막는 커다란 돌덩어리임을 깨닫게 된 것은 세미나 첫날에 얻은, 무엇보다 큰 수확이었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8. 31. 22:51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다시 미국에 가며 

 

 

도전과 힐링!

 

사실 도전과 좌절이야말로 인생을 엮어가는 날줄과 씨줄일 텐데, 그 좌절을 힐링으로 바꿔치기하는 세상의 지혜를 새삼 배우기로 한다. 도전을 통해 희망을 그리면서도 그 실현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좌절하거나 더 멋진 신기루를 찾아나서는 게 인간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나 역시 그러했다. 국문학도로서의 외길을 걸어오며 내 지적 능력이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 사유와 모색을 끊임없이 반복해왔고, 그것들이 바로 도전과 좌절이라는 최대공약수로 수렴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만난 내 분야의 블루오션이 해외 한인문학임을 깨달았고, 몇 년간의 여행을 마친 후 최근 <<CIS 지역 고려인 사회 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이란 책 한 권을 냄으로써 또 한 단계의 모색과 방랑을 가까스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해외 한인들의 문학을 제외할 경우 한국문학사에 대한 내 나름의 비전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깨달음을 통해 비로소 나의 대책 없는 방랑벽을 잠재울 수 있었다. 결국 15년 전 UCLA에서 만난 재미 한인문학을 이번 기회에 다른 차원으로 모색하고 싶다는 욕망과 도전의 결기(決起/決氣)가 나를 추동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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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Fulbright Commission에서 내 과제를 선정해 줌으로써 ‘Fulbright Researcher’ 혹은 ‘Visiting Fulbright Scholar’라는 영광스런 타이틀, 선망하던 미국의 대학가를 다시 밟게 되었다. 15년 전 선발되어 캘리포니아의 UCLA에서 나를 새로운 세계로 입사시킨 LG 연암재단의 해외연구교수와는 또 다른 의미의 학문적 커리어가 아닌가. 과연 1998년 이후 15년 동안 모색과 수정’, 아니 대책 없는 지적 방랑을 거듭해오던 연구도정에 내 나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까. 인식의 깊이와 폭을 넓히려는 무작정의 새로운 도전보다는, 그간 벌여놓은 너절한 공사판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후배들과 담소를 나눌만한 언턱거리라도 만들어 놓을 수 있을까. 아내와 함께 17시간 비행의 고통을 감내하며 이곳에 날아온 이유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