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소식2015.07.03 11:59

 

 

 

 

 

 

 

 

지난 몇 년 간 악장문학과 해외 한인문학을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틈틈이 북한에서 나온 문학사들을 읽어 왔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그에 관한 제 생각들을 정리하게 되었고, 그 가운데 고전시가들을 중심으로 몇 편의 논문들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강조한 것처럼 북한사람들 특히 학자들의 생각이 너무나 경직되어 가뭄에 실개천 마르듯문학작품의 분석이나 해석에서는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른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나 주체적 사실주의만으로 무궁무진한 문학작품의 이면적 의미를 퍼 올리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들 사유(思惟)의 정형성은 침대에 키를 맞추어 발을 잘라내던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몇 종 되지도 않지만, 그들의 문학사를 다 읽고 더 많은 글을 쓰다가는 수많은 동어반복(同語反覆)’의 함정에 빠질지 모르겠다는 우려 때문에, 당분간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제 사유의 또 다른 틀이 생성되어 이전에 보이지 않던 그들 문학사의 이면적 의미들이 보일 때쯤 다시 쟁기를 들고 나설 생각입니다.

 

여기에 이 책의 머리말을 이곳에 옮겨 놓습니다.

 

 

머리말

 

남북한은 말과 글자, 그리고 역사를 공유한다. 그래서 이 땅의 단일민족은 역사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단과 이질화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역사 또한 양분되고 말았다. 민족에게 남겨진 역사적 사실들은 하나이되, 그에 대한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남북한 역사 이질화의 근원은 이념이다. 처음에 통치이념으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북한은 한 발 더 나아가 주체사상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역사의 이질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북한에서 이른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나 주체적 사실주의의 잣대는 그런 것들이 없던 시기의 옛 문학이나 지금의 창작문학에 가리지 않고 적용되었다. 옛 문학에 대해서는 해석의 도구로, 지금의 문학에 대해서는 창작과 비평의 원리로! ‘김일성의 교시’, ‘김정일의 지적과 함께 제시된 것이 강령으로서의 사회주의 미학 혹은 주체미학이었다. 문학작품이든 문학사이든 획일화의 감옥에 가둬버린 것이다.

 

우리 고전시가를 통해 그 실상의 일부나마 확인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 이 글이고, 일부 학자들이 고창해 온 통일문학사의 서술이 허구라는 점도 이 공부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북한의 문학사()를 이 땅의 다수 문학사들 가운데 하나로 취급해주면 될 일이지, 다양성을 추구해온 남한의 문학사들까지 굳이 주체미학의 형틀에 묶인 북한식 문학사로 획일화시킬 필요야 있겠는가.

 

문학사에도 시대의 소임이 주어진다. 시대정신이나 미학을 벗어나기 힘든 것이 문학사라는 뜻이다. 각자 자기 시대의 목소리로 해석한 문학사를 읽으려 하기 때문이다. 통일 후 문학사 아카이브에는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남한의 문학사들과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북한의 문학사()가 그들먹하게 들어차겠지만, ‘문학사 서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극소수의 학자들이나 그것들을 찾게 될 것이다.

 

책을 멋지게 만들어주신 보고사 김흥국 사장님과 편집부 이순민 선생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해외에서 학업을 마치고 패기 넘치는 교수로 뉴욕대학(New York University)에 입성한 큰 아이(경현)와 현대건설에서 훌륭한 기업인의 꿈을 키우고 있는 작은 아이(원정)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이 책을 건넨다.

 

을미년 한여름

백규서옥 주인

조규익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문학사>>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문학사>>

 

 

 


북한에서 발간된 고전 작품들

 

 

 


북한에서 발간된 고전 작품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06.14 16:55

 


이명재 교수

 

 


최미정 박사

 

 


김낙현 박사

 

 


전영선 박사


 


이한창 교수

 

 

 

한국문예연구소 2014년도 전반기 학술발표대회를 마치고

 

 

 

 

학술발표회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예산 확보나 발표자 및 토론자 섭외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장 어렵고 신경 쓰이는 일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도외시다. 적지 않은 돈과 신경을 써서 잔치를 벌여 놓고도 손님이 없어 텅 빈 좌석을 망연히 바라만 보아야 하는 주최 측으로서는 괴롭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여 발표논문을 작성해온 발표자들에게 인사가 아닌 것 같아 좌불안석이다. 물론 발표자들이라고 그런 현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들 역시 학술발표회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당사자들이자 그런 참상에 대하여 ‘동병상련(同病相憐)’하는 이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주인의 입장에서 겪어야 하는 미안함과 민망함은 말로 표현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내 또래의 학자들이 만나면, 이제 ‘학술발표대회는 더 이상 열지 말아야 할까보다’라는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다. 후학들이 더 이상 자신의 선생 혹은 몇몇 선배들을 제외한 남의 논문과 책을 읽거나 인용하려 들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니, 남의 학술발표회에 자발적으로 참석하기를 바라는 일이야말로 과람(過濫)한 기대라 할 것이다.

 

***

 

“해외 한인문학의 현주소”라는 타이틀 아래 그 분야의 고수들을 모신 덕이었을까. 그럭저럭 학술발표대회를 마칠 수 있었다. 정년 이후 지금까지 현대문학의 비평과 해외 한인 문학의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이명재 교수[중앙대]가 ‘유럽지역의 한인 한글문단’을, 10여년을 미국에 살면서 직접 한인 시인들을 만나면서 연구를 해온 최미정 박사[성서대]가 ‘재미 한인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현장을 바탕으로 하는 예리한 분석력을 구사하는 김낙현 박사[중앙대]가 ‘구소련 고려인 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북한문학의 탁월한 전문가 전영선 박사[건국대]가 ‘북한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관록과 끈기의 노학자 이한창 교수[전북대]가 ‘재일 한인문학의 연구현황과 과제’를 각각 발표했고, 유선모 교수[경기대], 강진구 박사[중앙대], 김성수 박사[성균관대], 허명숙 박사[숭실대]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토론도 이어졌다.

 

***

 

현재 7백만의 한인들이 해외에 나가 있다. 남북한 합친 인구를 7천만으로 잡을 때 10%가 넘는 인구요, 남한 인구 5천만의 14%에 해당하는 인구다. 그렇게 많은 한인들이 해외에서 문학을 창작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해나갈 것이다. 문제는 ‘한글문학’의 지속성이다. 해외 한인 3세만 되면 언어나 정서의 면에서 완전히 현지인으로 바뀌게 되는데, 우리말이나 글을 잃어버린(잊어버린) 상태에서 더 이상 우리 문학이 산출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해외 한인 한글문학의 ‘내일’은 어둡다는 것이 대체적으로 일치를 본 견해였다. <<고려문학>>처럼 문학저널을 우리나라에서 발간함으로써 국내와 현지의 문인들을 결부시켜 현지인 문학을 유지하려는 방법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시들어가는 현지인 문학을 잠시 부축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이와 관련 카자흐스탄의 탁월한 극작가 한진은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 문단[*고려인 문단: 인용자 주]은 풍전등화의 처지이다. 우리말[*고려말, 즉 한국말: 인용자 주]로 쓴 작품을 읽을 수 있는 독자들도 거진 없다싶이 하지만 우리말로 글을 쓰는 작가들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러니 재쏘고려인문학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기조차 거북한 일이다. 우리말을 부흥시키기 전에는 우리 문학을 부흥시킬 수 없다는 것은 뻔한 상식일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 와서 재쏘동포들 사이에서는 우리말을 배우려는 열성이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젊은이들 속에서 우리말로 문학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나오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문학작품을 쓸 수 있는 말은 적어도 어머니의 젖과 함께 몸과 넋에 배인 말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나 지금 어린애에게 젖을 물리는 그 어머니들도 우리말을 모른다. 이렇게 자꾸 캐여보면 암담하기만 하다.(…)한글문학의 전공시기를 메울 문학은 제 생각에는 아마 로씨야어로 쓴 우리 고려인 작가들의 문학일 것이다. 다행히 지금 우리 문단에는 로씨야말로 글을 쓰는 재간 있고 전망이 있는 신예작가들이 있다. 그들의 작품은 오라지 않아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다. 쏘련에서도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또 조국 본토에서도 우리말로 쓰지 않은 작품이 조선-한국문학이냐 아니냐 하는 론쟁이 많이 벌어졌고 또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립장에서 볼 때 아직은 우리 고려인 작가들이 고려인들의 생활을 묘사한 작품은 범민족문학권에 포괄하는 것이 선책이라고 생각한다. 될 수 있는 대로 이 진공시기가 짧고 하루 빨리 우리말 문학이 부흥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 말이 3, 40년 전에 한진이 진단한 ‘고려인 문단’의 현실이고 보면, 지금 고려인 문단이나 그와 유사한 수준의 다른 지역 한인들의 문단은 거의 완벽하게 붕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왕성하게 이민을 떠나는 미국의 경우라면, 한인문학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새로 태어나는 ‘한국계 미국인’들은 영어로, 한인 1, 2세들은 한국어로 문학창작을 지속함으로써 ‘미국 내 한국문학의 맥’은 이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진의 말대로 러시아어로 창작하는 고려인들에 의해 ‘고려인 문학의 맥’은 이어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대로 ‘러시아문학’일 뿐 ‘한국문학’은 아니라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해외 한인들의 자손을 우리나라에 데려와 우리 말 교육을 시키는 방안도 있겠지만, 그 역시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일 터. 해외 한인공동체가 건실하게 성장하고, 그런 공동체들을 바탕으로 한국어와 현지어가 함께 구사되기 전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말하자면 한국어와 현지어를 사용하는 세대들이 공존하거나, 이중어를 사용하는 후속 세대들이 늘어날 때 ‘한국어문학’과 ‘현지어문학’의 병행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의 국력도 해외 한인들의 정치ㆍ경제적 지위나 민족의식도 다 함께 높아져야 그런 일이 가능해질 것은 당연하다.

그런 차원에서, 앞으로 ‘해외 한인문학의 연구’는 ‘해외 한인문학 지속의 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것이 학술토론의 주된 논점이었다.

 

 

 

 

 
                                                        유선모 교수

 

 



                                                       강진구 박사

                                              



                                            사회를 보는 윤세형 선생

 

 



                                             토론 마무리 멘트-조규익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04.30 16:55

 

 

 


            원동지역으로부터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이 처음으로 도착하여 토굴을 파고 살던
   우쉬또베 교외의 황무지. 지금은 공동묘지로 바뀌어 있음.

 


고려인들이 최근까지 거주하다가 모두 떠나 폐허가 된 우쉬또베 인근의 모쁘르 마을

 

 


2002년 아리랑 극장의 가수 김막달레나

 

 


벨라루스 고려인협회에서 고려인들과 함께[수도 민스크에서]

 


카자흐스탄의 탁월한 고려 시인 '이 스따니슬라브'

 

 

우쉬또베의 바스쮸베 언덕에서 김병학 시인과 이 스따니슬라브 시인.
뒤쪽으로 보이는 하얀 시설물들이 고려인들의 공동묘지임.[2006년]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 호텔 로비에서 소설가 블라지미르 김

 

 


카자흐스탄 고려인 극작가 한진 선생의 손녀 한율리아와 김병학 시인.[백규 연구실에서]

                                                                                 

 

 

*이 글은 <<CIS 지역 고려인 사회 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태학사, 2013]의 머리말인데, 몇 분의 요청으로 이곳에 옮겨 놓습니다.

 

 

 

 

고려인들과 ‘고려인 문학’

 

 

긴 여정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오래 전의 고려인이 되어 그들이 겪어 온 ‘탈향과 이주’의 역정을 추체험하는 길이 간단치 않았다. 그들의 자취를 찾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이른바 CIS[독립국가연합 :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에 속한 몇몇 나라들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곳들에 상상 속의 고려인들은 더 이상 없었다. 김경천 장군의 말발굽 소리도, 홍범도 장군의 신출귀몰도, 작가 조명희의 빛나는 문장도 사라지고 없었다.

 

굽이굽이 복잡하기만 한 디아스포라의 역정(歷程)에 지치고 힘들었던 것일까. 자신들이 지켜오던 우리 말 아니 고려 말이 현실 속에서 그리도 무거운 짐이었을까. 스탈린의 폭력적인 동화정책에 어쩔 수 없이 그 무거운 민족의 표지(標識)를 내려놓은 그들이었다. 외모와 약간의 생활양식, 그리고 ‘고려인’이라는 민족의 칭호만 뺀다면, 그들에게서 동족으로 생각할만한 요소를 발견하기란 어려웠다. 유창한 러시아어를 굴리는 그들의 혀 밑에 우리말이 깃들 틈은 더 이상 없었다. 말을 잃으니 문학과 역사를 잃고, 문학과 역사를 잃으니 민족정신을 잃어버리게 된 그들의 지난날들이 그들을 만날 때마다 그 옛날 가설극장 영사기의 낡은 필름 돌아가듯 반복적으로 눈앞에 어른거렸다. 민족의식의 희미한 끈이나마 이어보려고 무던히 애쓰던 1세대 고려인들은 고려극장의 창고 한 구석에 버려진 이름으로 쳐 박혀 있거나 우쉬또베 근교의 황무지에 녹슨 묘비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 고려인 2세와 3세들의 표정 너머에 아련히 남아있는 부모세대의 근심과 좌절을 읽어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모든 소수민족들은 러시아인이 되어야 한다’는 모토가 바로 스탈린이 표방한 동화정책의 핵심이었다. 흉포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마수를 피해 그 땅에 들어간 소수민족들 중의 하나가 고려인들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구소련의 다수민족에 의해 또 다른 식민지인으로 타자화 되는 역사적 폭력을 겪어야 했다. 일제의 끄나풀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아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로 쫓겨난 고려인들은 그곳에서도 ‘주변인’으로 낙인찍혀 제국의 공민 대우를 받지 못한 채 긴 세월을 견뎌야 했다. 일찍이 식민주의⋅억압과 피억압 등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내놓은 선구자 프란츠 파농의 ‘인종이 곧 계급’이란 말은 사실 고려인들에게도 들어맞는 명제였다.

 

그러나 구소련이 해체되고 각 공화국들이 독립된 이후에도 고려인들은 또 다시 ‘새로운 주변인’으로 타자화 되었다. 각 공화국의 주도민족에 밀려 또 다른 소수자로서의 설움을 맛보면서 새로운 식민화의 함정으로 빠져 들어간 것이다. 이처럼 탈식민의 조류 속에 ‘새로운 식민화’의 굴레에 갇히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그러던 그들이 우여곡절 끝에 그리던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았으나, 이곳 또한 그들에겐 비집고 들어갈 틈 없는 공고한 ‘중심부’일 뿐이었다. 말하자면 고국에서도 또 다른 주변인으로 타자화 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최근 3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하여 한글로 기록된 1세대와 2세대 고려인들의 문학과 예술을 추적하는 고통스런 즐거움을 누렸고, 이 책이 바로 그 결실이다.

 

***

 

그동안 많은 분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다 꼽을 수는 없으나, 물설고 낯 선 중앙아시아에서 밝은 눈과 귀가 되어 준 김병학⋅이 스타니슬라브⋅김 블라지미르⋅김 빅토리아 등 몇 분은 특히 잊을 수 없다. 그 가운데 김병학 선생으로부터 받은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젊은 나이에 카자흐스탄으로 건너 가 한동안 한글교사로 활약한 뒤 고려인 사회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해오고 있는 그를 능가할 만한 ‘중앙아시아 고려인 전문가’는 없다고 본다. 이 책에 반영된 귀한 자료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그의 손을 거친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그는 국내에서 여러 권의 고려인 관련 서적들을 출간함으로써,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화에 대한 우리나라 학계의 관심이나 수준을 괄목할 만큼 높인 사실도 강조하고 싶다. 이런 인재를 발탁해 쓰는 게 나라의 할 일이다.

 

감사하게도, 이 연구 작업을 위해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비를 제공했고, 학자의 뜻을 세우던 시기에 손을 잡아주신 도서출판 태학사의 지현구 사장님을 27년 만에 다시 만났다. 연구 활동의 한 부분을 결산하며 세월의 덧없음과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은 망외(望外)의 소득이다. 고전문학도로 살아오던 중 우연히 ‘해외 한인문학’을 만나 탐구 영역을 넓히게 되었고, 그 한 부분인 ‘고려인 문학’을 수탐하여 미흡하나마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내게 된 점을 큰 행복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소담스런 책으로 만들어 주신 태학사 한병순 부장의 노고에 감사하며, 강호제현의 아낌없는 叱正을 고대한다.

 

 

2013. 6.

 

 

달마산 아래 백규서옥에서

 

조규익

 

Posted by kicho